까치발(시와편견 서정시선 79)
김옥남 시집
시와편견 서정시선 78권. 시인 김옥남의 시는 독특한 자신의 삶의 기록이다. 김옥남 시인은 주로 엄마, 딸 부부, 손녀, 언니, 남편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인만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시를 빚어낸다. 그러나 시를 통하여 독자에게 건너온 순간 그만의 것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하고 재연 불가능한 시인만의 삶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철학과 깨달음과 지혜로 귀착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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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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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녹여낸 수용과 긍정의 철학
복효근 시인
시는 한 인간의 삶의 궤적과 그 안에서 일어난 직간접 경험을 기록한다. 단순한 사실의 기록을 넘어서 그 경험 속에서 체득한 철학과 깨달음, 지혜를 포함한다. 한 개인의 삶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온 인류가 쌓아온 철학과 깨달음과 지혜가 한 개인의 독특한 대체 불가능한 경험 속에서 구현된 것이라고 해야 옳겠다. 물론 시적 상상과 시적 언어를 통해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사실적 기록물이나 일반적 철학서와는 다르다. 비유를 구사하고 시인 자신만의 상징을 만들어 쓰고, 때로는 단어와 구절을 생략하기도 하며 주술관계를 비틀어놓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적 언어사용과는 다른 전략적 언어사용을 통해 독자의 상상과 추리를 허용한다. 따라서 시에 쓰인 언어의 사실성보다는 그 안에 함축된 내재적 의미를 찾아가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기록이 독자의 것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데는 독자의 상상과 추리 때문에 가능하다. 시인의 경험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독자의 경험으로 치환되기도 하며 길항하기도 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시인 김옥남의 시 또한 독특한 그 자신의 삶의 기록이다. 김옥남 시인은 주로 엄마, 딸 부부, 손녀, 언니, 남편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인만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시를 빚어낸다. 그러나 시를 통하여 독자에게 건너온 순간 그만의 것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하고 재연 불가능한 시인만의 삶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철학과 깨달음과 지혜로 귀착됨을 볼 수 있다.
뜨거운 커피에
각 얼음을 넣으니
퐁당 소리를 내며 가라앉더니
얼른 물 위로 떠오른다
?
얼음은 뜨겁다는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찌찌찍 소리를 내며
조금씩 녹아내린다
?
얼음 주위로 미세한 기포가 생기더니
몇 개의 작은 물방울이 되었다가
이내 사라진다
?
뜨거운 커피와 차디찬 얼음은
그렇게 밀당을 하면서
서서히 하나가 되어간다
「부부」
인용한 시의 본문은 경험과 관찰의 사실적 기록이다. 그러나 제목 '부부'라는 단어와 시의 내용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제목과 본문이 비유적 관계에 놓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뜨거운 커피에 각얼음을 넣고 그 변화의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 뜨거운 물 위에 들어간 얼음은 "뜨겁다는/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녹아내린다. 그리고 "얼음 주위로 미세한 기포가 생기더니/ 몇 개의 작은 물방울이 되었다가/ 이내 사라진다." 면밀한 관찰이다. 제목이 '부부'임을 상기하자. 얼음과 뜨거운 물은 각각 부부의 보조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부'의 만남은 뜨거운 물과 얼음의 만남일 수 있다. 때론 뜨겁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인내하여 서로를 견디며 사는 것이 부부다. 얼음 주위로 미세한 기포들이 발생하듯 물거품 같은 사소한 일들로 밀고 당기며 사는 것이 또한 부부다. 세상에 좋은 일만 겪으며 사는 부부란 없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서로 밀고 당기며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부부다.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를 오가며 살아낸 연륜만이 그려낼 수 있는 삶의 진실이다. 오늘날의 부부들은 그 뜨거움과 그 차가움을 수용하지 못하고 쉽게 결별을 택하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 속에서 얻은 철학과 지혜를 오늘날의 부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레트로 카페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오래된 재봉틀이다
재봉틀을 꼭 미싱이라 하는 엄마는
옛날을 회상하듯 재봉틀 옆에서 떠나지 못한다
젊은 엄마가 미싱에 앉아
전쟁으로 찢긴 꿈을 꿰맨다
박음질이 엇나가자
촘촘히 박힌 검은 실들을
쪽가위로 톡톡 잘라내고 다시 박으면서
삶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머리를 흔든다
엄마는 우리들의 옷을 만들면서
자신과 다른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파란 소망을 덧대어 박는다
자투리들을 모아 만든 붉은빛 조각보가
소박한 양은 밥상을 감싸주고
둘러앉은 우리들의 숟가락 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지금도 안방에는
부라더 미싱이 엄마와 함께 있다
「부라더 미싱」
지금도 시인의 엄마가 계시는 안방에 놓인 '부라더 미싱'을 보며 엮어낸 시다. 어머니는 아직도 미싱이라 부른다. 아마도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기계이기 때문에 sewing machine 이라는 발음 대신 사용하는 말일 게다. 지금 시인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전쟁으로 찢긴 꿈을 그 미싱으로 꿰매어 가족의 미래를 이어갔다. "박음질이 엇나가자 /촘촘히 박힌 검은 실들을/ 쪽가위로 톡톡 잘라내고 다시 박으면서/ 삶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하"며 "엄마는 우리들의 옷을 만들면서/ 자신과 다른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파란 소망을 덧대어" 나아갔던 것이다. 어디 자투리 천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릴 수 있었으랴. "자투리들을 모아 만든 붉은빛 조각보가/ 소박한 양은 밥상을 감싸주고/ 둘러앉은 우리들의 숟가락 소리가/ 장단을 맞"추었다. 미싱은 그래서 단순한 재봉틀이 아니라 어머니의 분신으로 시인에겐 각별한 물건이다. 정성과 희생의 상관물인 것이다. 그러한 수공업적인 섬세함이 시인의 삶에 배어 있다. 일회용품이 우리의 생활 도구 전반을 차지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수시로 취사 선택되는 이 시대와는 달리, 엄마는 정성과 사랑과 보살핌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시인의 눈엔 현대적인 삶의 일회성과 즉흥성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슴푸레한 아침
어린 딸의 팔이 아빠의 목을 감싸 안고
머리를 아빠의 어깨에 힘없이 떨구고 있다
아빠의 한 손은 딸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등을 토닥인다
?
토닥이는 손과 박자를 맞추듯이
아빠는 선 자리에서 서성인다
싸늘한 공기가 훑고 지나간 듯
딸은 목을 움츠린다
?
거친 숨을 내쉬며 다가온 엄마는
딸의 목에 스카프를 둘러준다
처진 어깨를 흔들며
부부는 총총걸음을 옮긴다
?
아직도 잠이 덜 깬 듯 칭얼대는
어린 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맞벌이」
맞벌이를 하는 시인의 딸 내외와 시인의 손녀를 두고 쓴 시일 것이다. 현대적인 삶의 리듬에 따라 여유 없이 돌아가는 딸 가족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어슴푸레한 아침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부모의 시간에 맞추느라 어린아이는 아침부터 어깨가 처져 있다. 부모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는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따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부분 육아 시설에 맡겨져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전통시대의 육아법에 비추어 보면 할머니는 그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어린 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걱정스러운 질문은 단순히 손녀가 가야 하는 육아시설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다. 사랑과 정성의 보살핌이 기본이었던 시대를 회상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아이가 살아가야 할 시대의 삭막함에 대한 우려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적인 삶의 삭막함에 대한 시인의 우려스러운 시선은 「2030 데이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남녀가 카페서 만나 서로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간간이 서로의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웃으며 "손도 맞잡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서/ 잘도 논다." "그러다 언뜻 밖을 한번 쳐다보더니/ 각자 고개 들어 눈 한번 맞추고/ 서로의 짐을 챙겨/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간다." (「2030 데이트」) 시인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그저 담담하게 묘사했지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한탄이 섞여 있다. 마주 눈빛을 맞추며 정담을 나누고 손도 잡고 애틋한 시간을 나누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는 것으로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시인에게는 삭막하게 보였을 것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진술은 역시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문장이라 하겠다. '함께' 라는 말이 따뜻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의미한다면 '각자'는 개별화되고 개인주의적인 차가운 현대인의 특징이 드러난 말이다. 맞벌이 부부와 아이가 '각자' 하루를 살아가듯이 연인마저도 각자 제 영역 속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이 시인은 안타까운 것이다. 아울러 잃어버려서 되찾아야 할 가치를 드러내는 데 시인의 시심이 바쳐져 있다.
?
세상이?코로나로 움추려든
21년 1월
영하 10도의 날씨에
영일시장은 적막하다
?
모녀가 운영하는 야채 집에
털 모자를 쓴 어머니는 난로 옆 의자에 앉아
장갑 낀 손을 호호 불고 있다
그 옆에 서있던 딸이 손님을 반긴다
딸은 고구마와 양파를 한쪽에 던져놓고
더덕과 우엉을 저울에 잰다
?
손님은 "새해 처음 만났으니 잘 줘."라 하고
딸은 "첫 손님이니 깎지 마."라고 응수한다
딸이 고구마 값을 물어보자
어머니는 잘 주라고 한다
?
손님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덕담을 하자딸은 "언니도 건강하세요."라고 하며거스름돈을 건넨다손님은 "새해 용돈, 엄마와 커피 드셔."라며손사래를 친다
「영일시장」
시인이 꿈꾸는 세상살이의 모습이 잘 그려진 시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건너며 만난 시장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그려져 있다. 더 남기려고 야박하게 구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은 경쟁 속에서 더 많은 부를 누리기 위하여 오직 돈을 앞세우며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여기 한 마디 건네는 말조차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영하 10도를 기록하는 혹한에 코로나로 손님조차 뚝 끊긴 새해 부근이다. 혹한보다 더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나락으로 떨어졌던가? 그럼에도 모녀가 운영하는 조그만 채소 가게에서 오가는 대화는 혹한과 코로나를 녹이고도 충분하다. 서로 건강을 빌고 공대하며 배려한다. 시인이 꿈꾸는 따뜻한 세상의 모습이다. 다소 밑지는 삶을 살더라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세찬 비바람에 떨어진진초록의 풋감이 땅에서 뒹굴며 누렇게 익어간다물기 젖은 지렁이가감 주위를 쓱 돌면서 단물을 맛보고비둘기가 파드득거리며 와서 감을 파먹고참새는 호로록 날아와 쪼아 먹는다개미는 속까지 들어가 핥고는욕심스레 턱에 감을 잔뜩 얹고 간다땅에 떨어져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헌신」
세찬 비바람에 떨어진 풋감이 땅 위에 뒹굴며 숙성되어가는데 지렁이가, 비둘기가, 참새가, 개미가 그 감을 먹는다. 감은 떨어져서도 여러 생명들을 위하여 제 한 몸을 바친다. 헌신이다. 자연은 서로 순환의 질서 속에서 여여하다. 인간은 어떤가? 자연의 질서마저 거스르고 자신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하여 탐욕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헌신과 희생의 가치는 먼지 낀 고전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시인의 시는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버티고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일지도 모른다. 제 한 몸을 위해 자연의 희생을 바라는 현대인, 자연을 위하여 제 한 몸을 헌신하는 풋감, 너무 단순한 비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의 순환 질서 속에서 그 섭리를 배우려는 시인의 자세는 겸허하다.
그러고 보면 그러한 겸허와 희생과 헌신의 자세는 모태로부터 전해져온 것이다. 간조의 포구 조금때 드넓게 펼쳐진 진회색 뻘, "햇빛이 반사된 그곳은/ 사력을 다해 숨으려고 하는 게들을 보듬어주고/ 미처 떠나지 못한 바닷물을 위해/ 기다란 물길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구순의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뻘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폐 될까 봐/ 혼자 사시는 어머니/ 아직도 우리들 걱정으로/ 끈적끈적한 가슴에/ 촉촉한 물길이 흐르고 있겠지"(「뻘」)하고 생각한다. 그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촉촉한 물길이 시인의 가슴 속에도 나 있는 것이다.
"잘 띄지도 않게/ 얌전히 꽃을 피우는 채송화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낮은 곳에서/ 누가 봐주지 않아도/ 제 즐거움에 살고 있는/ 나를 닮은 것 같아서"(「채송화」)라고 말하는 시인의 가치관과 맥을 같이 한다. 채송화는 맨드라미, 분꽃 그늘 아래서도 낮게 엎드려 겸손하게 꽃을 피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무엇인가의 배경이 되어준다.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세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 무엇보다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라고 하겠다.
시인은 "아파트 화단의 대추나무 주위에/ 아기 대추나무들이 연한 잎들을 나풀거리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본다. "대추나무의 뿌리에서/ 숨죽이며 겨울을 견디고/봄에 움을 틔웠을 것이다// 아니 지난가을/ 땅에 떨어진/ 붉게 익은 대추 몇 알이/ 겨울에 온 힘을 모으고/ 봄에 싹을 돋우었을 것이니" 시인은 저 어린 대추나무싹이 기특하기만 하다. "경비 아저씨께 아기 대추나무 좀/ 보살펴 달라고 하였더니/ 대추나무에 가시가 있어 다칠 수 있다"며 경비 아저씨는 벌초하듯 그 어린싹들을 다 제거해버렸다. "아, 미안해." 시인은 공연히 자신이 그 어린싹을 다 죽여버린 것만 같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이게 다 내 오지랖이 넓은 탓이지.' 하면서 마음 아파한다.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돌 된 손녀가소파에 기어 올라가려고까치발을 한다
앙증맞은 손에 온 힘을 모으고
기저귀 찬 엉덩이를 치켜들고
한 발을 들어서 올리려 하지만
아직은 닿지 않아
작은 얼굴을 찡그린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슬쩍 엉덩이에 손을 대어 주자손녀는 오른발을 소파에 올리고엉덩이를 올리더니나를 보고 웃는다"어구 참 잘했어."나는 박수를 치면서 연신 칭찬해준다
앞으로 손녀는 이보다 더 힘들게세상을 기어올라 가겠지
「까치발」
사랑과 정성을 우선가치로 생각하는 시인이 손녀를 대함에 있어서는 오죽하겠는가? 소파에 어렵게 기어오르려는 손녀의 엉덩이를 슬쩍 손을 대 준다. 자력으로 오르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슬쩍' 손만 대어주는 것이다. 성취감을 맛본 손녀에게 할머니는 "박수를 치면서 연신 칭찬해준다// 앞으로 손녀는 이보다 더 힘들게/ 세상을 기어올라 가겠지." 여기서 생명을 부양하는 사랑의 자세를 본다. 격려와 칭찬이다. 그리고 믿음이다. 긍정이다.
이러한 믿음과 긍정의 자세는 자신을 대할 때도 일관된다. 어깨관절이 손상되어 고생을 할 때도 왼쪽 팔을 쓰지 못해도 "오른손으로?밥도 먹고 세수도 한다/ 왼쪽에 보호대를 차고/ 오른손으로 살살/ 조심조심 운전도 할 수 있다// 두 손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일을 못해 불편할 뿐"이라며 "오른손잡이에게/ 왼쪽 어깨가 아픈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작은 위로」)고 말한다. 탓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긍정하고 수용한다.
시인은 오이지를 담그면서도 깨닫는다. "시간 지나자/ 그 상황 견딜 만하다고/ 순순히 자신을 내어주니/ 투명해지면서/ 꼬들꼬들해진다./ 내 시집살이처럼/" (「오이지」) 모진 시집살이를 겪으면서도 인내하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철학으로 일관하다 보니 오이지가 그러하듯이 투명해지고 꼬들꼬들해지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다리고 수용하고 인내하며 스스로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긍정적 에너지가 시의 곳곳에 넘친다.
울퉁불퉁한 현무암
둥글넓적한 돌 두 개가 포개져 있다
떨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언감생심
붙어 있어야만 하니 지겨운가 보다
?
처음엔 조금만 돌려도
위아래 울퉁불퉁
파드닥 파드닥
돌가루가 떨어져 나가고
잘 돌아가지도 않고
드르륵드르륵 ?
서로를 할퀴며 상처 주기에 여념이 없다
?
돌과 돌 사이 물을 넣고
불린 콩을 넣으니
의외로 신나서 둘이 합을 잘 맞춘다
?
서로 긁고 긁히는 줄만 알았더니
시나브로 마모되어
흐른 시간만큼
서로 익숙해져 편안한지
?
아무것도 넣지 않고 돌려도
이제는
큰소리 없이 잘도 돌아간다
「현실부부」
시인이 보여주는 인내와 헌신과 수용이라는 긍정의 철학은 현실경험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무암 거친 돌로 만든 맷돌은 "처음엔 조금만 돌려도/ 위아래 울퉁불퉁/ 파드닥 파드닥/ 돌가루가 떨어져 나가고/ 잘 돌아가지도 않고/ 드르륵드르륵/ 서로를 할퀴며 상처 주기에 여념이 없다." 맷돌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나 인간관계, 특히 부부 사이를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과 돌 사이 물을 넣고/ 불린 콩을 넣으니/ 의외로 신나서 둘이 합을 잘 맞춘다// 서로 긁고 긁히는 줄만 알았더니/ 시나브로 마모되어/ 흐른 시간만큼// 서로 익숙해져 편안한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돌려도/ 이제는/ 큰소리 없이 잘도 돌아간다." 수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 양보하고 인내하며 배려하다 보니 어느 순간 원활하게 돌아가더라는 내용이다. 머리로만 사는 게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라 아니할 수 없다.
? ? ?
구부정하게 허리 굽은 할머니돌을 주워길 옆에 놓는다
?
다음 날외로울까돌 위에 작은 돌을 올려놓는다지나가던 사람들그 위에 돌을 올리곤작은 바람을 읊조린다마법사의 돌이라도 되는 듯
「돌탑」
시인이 시를 쓰는 자세와 이유를 밝혀놓은 작품이다. 할머니가 돌 하나를 길가에 놓는다.다음 날 그 돌이 외로울까봐 시인이 그 돌 위에 돌을 올려놓는다. 바로 그 마음이다. 맨 처음 돌을 놓은 그 할머니의 그 마음을 이어받아 그 돌 위에 돌을 올려놓는 마음이 시인이 시를 쓰는 마음이다. 어머니한테 모태로부터 물려받은 희생과 헌신과 정성과 사랑의 마음을 이어받아 시로써 그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잃어버리고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아름다운 가치와 정신을 안타까워하면서, 한편 자신의 삶의 경험 속에서 건져 올린 소중한 철학과 지혜를 시로써 노래하여 뒤에 오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의 손녀가 또 그 손녀의 손녀가 돌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더 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마법 같은 기도를 하며 시를 읊조리는 것이다.
시인의 시 곳곳에서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꼭 이어가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볼 수 있었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인의 경험 속에서 시인이 찾아내고 깨달은, 그리하여 시인의 철학과 지혜로 체화된 덕목들이다. 정성과 사랑, 희생과 헌신, 인내와 수용, 그리고 긍정 등의 덕목들이 따뜻하게 담겨있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맑은 거울과 같은 시편들이다. (시인 복효근)
목차
목차
부부
아침형 인간
여름방학
2030 데이트
맞벌이
부라더 미싱
헌신
미련
선물
영일시장
채송화
미안한 발
자매
첫 등원
엄마
2부
외갓집 가는 길
정리
한강 철교
매미
모모
작은 위로
대화
거미줄
까치발
갱년기
꽃잔디
퇴화
흔적I
흔적II
수능일
3부
현실부부
옹이
모과
동지
구례 장터
노란 원추리
붉은 노을
함박웃음
잠꾸러기
부부싸움
봄
오이지
웃자, 웃자
오지랖
4부
천연 수면제
현실
같은 길, 다른 풍경
돌탑
델타바이러스
가을밤
6월 30일
장마
짝사랑
불면
뻘
초화화
물놀이
질경이
그루터기
시집해설 복효근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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