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신는 시간(실천 총서 53)
김미연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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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수필가는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한 지 7년 차로, 이 책이 첫 수필집이 된다. 수필에 앞서 일찍이 詩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무엇보다도 묘사가 뛰어나다. 어떤 대상을 만나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다채롭다. 상징과 은유가 기본이 되는 시인으로서 그 저력이 수필작품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번 책 《신발 신는 시간》은 1부 〈욕망의 동산〉에서부터 사유의 물꼬를 튼다. 수필에서 흔히 대하는 독백체의 문체를 뛰어넘어, 어떠한 현상에 비판의 잣대도 거침없이 대는 붓 끝을 세운다.
‘날아간 새’에서는 날아온 새를 다루는데, 결국 자유를 탐해 가두려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채고 새가 날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술회하는 마음씨가 순연하다. ‘문수보살’은 혼혈을 기울인 책을 지인에게 건네고 잘 읽힐지에 대해 일어나는 작가의 번민을 상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를 들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번 책 《신발 신는 시간》은 1부 〈욕망의 동산〉에서부터 사유의 물꼬를 튼다. 수필에서 흔히 대하는 독백체의 문체를 뛰어넘어, 어떠한 현상에 비판의 잣대도 거침없이 대는 붓 끝을 세운다.
‘날아간 새’에서는 날아온 새를 다루는데, 결국 자유를 탐해 가두려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채고 새가 날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술회하는 마음씨가 순연하다. ‘문수보살’은 혼혈을 기울인 책을 지인에게 건네고 잘 읽힐지에 대해 일어나는 작가의 번민을 상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를 들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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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품해설]
시간과 행위 사이에서 피워 올리는 문향(文香)
金善化(수필가ㆍ시인ㆍ한국수필 편집장)
우리는 작가 개개인의 문체를 통해 다양한 점을 유추해낸다. 특히 진솔함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장르에서는 더욱 이 점이 두드러진다. 작가마다의 개성 있는 체험이 각기 다른 향기로 문장을 살찌운다.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은 첫인상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필자와는 먼 거리에 있음에도 그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음에 큰 의미를 두며, 작가의 문장 속 여행을 했다.
김미연 수필가는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한 지 7년 차로, 이 책이 첫 수필집이 된다. 수필에 앞서 일찍이 詩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무엇보다도 묘사가 뛰어나다. 어떤 대상을 만나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다채롭다. 상징과 은유가 기본이 되는 시인으로서 그 저력이 수필작품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번 책 《신발 신는 시간》은 1부 〈욕망의 동산〉에서부터 사유의 물꼬를 튼다. 수필에서 흔히 대하는 독백체의 문체를 뛰어넘어, 어떠한 현상에 비판의 잣대도 거침없이 대는 붓 끝을 세운다.
'날아간 새'에서는 날아온 새를 다루는데, 결국 자유를 탐해 가두려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채고 새가 날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술회하는 마음씨가 순연하다. '문수보살'은 혼혈을 기울인 책을 지인에게 건네고 잘 읽힐지에 대해 일어나는 작가의 번민을 상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를 들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아, 잠시, 책 한 권 주려고 가져왔는데."
"다음에 주세요."
- '문수보살' 서두
문맥 따라가는 눈길을 가로질러 가슴이 철렁한다. 별일 아니겠지 하는 바람으로 다음 문장을 훑는다. 마침내 상대방에게 책은 전달되고, 다음 묘사가 기가 막히다.
후루룩!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간다. 생경하면서도 익숙하다. 표지의 붉은 꽃송이가 바람에 날아가겠다. 책을 펼칠 때는 너나없이 희한하게 식은 국 둘러 마시듯 후루룩 넘길까. 너무 뜨거워 식히는 것일까. 마음의 삐죽한 얼음조각이 시비를 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엔진에 열이 올라서 그런가.
- '문수보살' 중에서
엔진에 열이 올랐다고 꼭 얼굴이 달아오르지는 않을 터인데, 작가는 굳이 이 문장을 쓰고 있다. 에둘러놓는 문장에서 오히려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 독자가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 노련한 장치이다. 헌데 잘 읽었다고 문자가 왔단다. '그녀는 어쩌면 책에 갇힌 나를 풀어주려는 문수보살의 화신인지도 모르겠다.' 하는데 덩달아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맞다. 문수보살!
이밖에도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다. '홈'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길을 차용하여 사람들 사이에 나는 마음의 길을 이끌어낸다. 배려의 길, 잘 디뎌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흠집과 홈을 내자는 메시지가 가슴을 울린다.
전체 작품 47편 중 원고지 5매 내외의 단(短)수필이 2할이나 되는데, 이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밀도를 더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보기이다. 앞의 '날아간 새'나 '홈'에 이어 '회화의 괴물'에서 그 진수가 나타난다. 손이 불편한 여인의 풀린 운동화 끈을 정성들여 매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느낀 단상이 깊고 넓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연결하는 솜씨가 세련되어 입이 딱 벌어진다. 적소에 척척 배열하여 의미를 다지는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죽비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내게 크나큰 장애가 있음을 알았다. 남의 입장은 전혀 살피지 않는 습성과 얼마나 내 위주로 사는가를. 〈중략〉 돌아간 눈, 튀어나온 입, 어디 그뿐일까. 정신상태마저 뒤틀어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회화의 괴물'이 아닐 수 없다.
- '회화의 괴물' 말미 부분
2부는 첫 작품 '조물주에게'에서 상당한 해학을 낳고 있다. 여행 중에 화장실 문제를 겪으며 펼쳐가는 의미 확장이 실감난다. 소피를 참다가 엉뚱하게도 조물주에게 항변을 쏟아놓는다. 그러면서 기막힌 상상력으로 손목에서 팔꿈치 사이 어디쯤에 오줌길을 만들어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투정을 부린다. 나아가 복식업계의 디자인에까지 상상력을 발휘하니, 여간 익살스러움이 아니다. 연약한 듯 살살 엄살을 부려 강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꾼 중의 꾼, 글 꾼이다.
그랬다면 복식업계는 팔목용 팬티로 호황을 누릴 것이고 세금을 더 많이 내어 복지국가 건설에 도움을 주겠지요. 디자이너, 염색업자, 직물공장, 특히 상품 안내자는 아침 방송에 나와 팔목용 팬티를 무려 15개나 준다며 호호 낭랑 잠을 깨우겠지요. 아마도 도기업체는 팔목용 요강을 공공장소 어딘가 본보기로 설치하여 홍보에 열을 올리겠지요. 늦게나마 조물주의 심도 있는 인간 설계를 촉구하며 머리띠를 두르는 바입니다.
- '조물주에게' 중에서
'신발 싣는 시간'은 4년 전,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그 문학성을 널리 인정받았으며 상황묘사가 탁월하다. 유년기, 버스에 오를 때 신발을 길에 벗어놓고 오른 점이 해학을 부른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데 너무 깨끗해 방에 들어가듯 신을 길바닥에 벗고 올랐다. 자갈길을 흔들며 가는 중간중간 사람들을 태우니 어느덧 만원이었다. 어른들 다리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할 때 하얀 종아리 두 개가 보였다. 그 종아리의 맨발은 못 위에 올려진 게 아닌가. 자꾸 밀려가면 나도 저 못 위에 맨발이 얹힐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중략〉 신발은 웃음과 울음과 고단함과 씁쓸함이 오롯한 한 채의 집이다, 먼 길을 동행한 나룻배다. 삶의 색깔과 냄새와 영혼을 사려놓은 삼광주리다. 그러기에 마지막 가는 길에 꼭 챙기는 유품이다. 링컨 기념관에서는 링컨이 암살되었을 때 벗겨진 부츠를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고 한다. 우리도 임의 신발을 챙겨 빈소에 모신다.
- '신발 싣는 시간' 중에서
이런 저런 신발을 신으며 생활하는 속에서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사유의 지평이 넓어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허리 숙여 신발 신는 시간에 겸허를 배운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이끌어내는데 함께 공감하게 된다. 신발을 신고 어떤 출발선에 선 느낌으로 바짝 긴장하게도 된다. 하물며 마지막 가는 길에 꼭 챙기는 물건이 신발임에랴.
'대나무의 바림질'과 '태점' 역시 은유와 형상화에 능하다. 집 앞 대숲의 모습을 청곰이라 놓고 시작한다, 놀라운 발상이다.
대숲에 바람이 인다. 한 무리 청곰이 산기슭을 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리저리 뒤섞인다. 낭떠러지를 만나자 어미는 새끼를 안쪽으로 몬다. 서로 끌어안고 머리를 맞대며 포효하는 곰이다. 새 빛과 묵은 빛이 섞바뀌며 털의 바림질이 인다. 〈중략〉 흐린 날은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 우두커니 서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 '대나무의 바림질' 중에서
흔히 나 어릴 적에 이랬어요. 하는 식의 화법이 아니다. 과감한 생략과 함축 속에서 의미화에 주력한다. 결국은 인생무상에 이르러 뒤돌아보는 마음가짐을 유도해낸다. 빛의 무수한 계단이 펼쳐지는데, '빛은 어쩌면 인간 영혼의 집합일지도 모른다.' 는 말미에 숙연해진다.
문인화에서 고목이나 바위에 찍는 점을 태점(苔点)이라 한다. 한자 뜻풀이로 이끼의 점이다. 고목의 옹이, 난초 뿌리를 덮는 돌 부스러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흙더미, 수풀 같은 것도 다 태점으로 일컫는다. 〈중략〉 나는 태점(胎点)이라 쓰고 우주의 시작점으로 해석하고 싶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한 점 인간이 태어나듯 그림의 생명점이 태점이라 여겨진다.
-'태점' 중에서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대목이다. 지성을 겸비한 김미연 수필가는 어느 한 가지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원초적으로 파고들거나 재해석에 박차를 가하는 점이 매력 있다. '태점'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창출해내는데, 이는 동음이의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섣부른 차용이야 금세 그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의미화에 주력한 한 단어 한 어절이 문학성을 확보하여 문장 씹는 맛을 안겨준다.
'말의 생명'에서는 고향마을 유래를 더듬어가며 음운변화 등에 의해 달라지는 말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어서 "말도 자란다."는 표현에 무릎을 치게 한다. 소문이 무성하여 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 차원 높은 세계에서 말을 성장시킨다. 아주 개성 강한 표현이다. '붉은 등'은 홍수 지던 날의 단상을 원고지 6매 내외의 단수필로 그려냈다. 짧은 글에 서사가 함축되어 있고 인정스런 고향 사람들이 살아나 꿈틀댄다. 학교 옆 낮은 돌담에 무대를 만들어 연극을 보여주며 아이나 어른이 정서적으로 어우러지는 데서 향기를 내고, 업어서 개울을 건너 주던 아저씨의 등이 붉은 등으로 뜨끈하게 형상화된다.
개울은 시장을 갈 때도, 출생, 사망신고를 할 때도 반드시 건너냐 했던 곳이요, 논물을 퍼 올리기 위해 만나는 곳이며, 상여가 쉬고 종구쟁이 소리에 노잣돈이 놓이는 곳이다. 삶의 근간이며 별리의 건널목이다.
- '붉은 등' 중에서
결국 위와 같은 건너가다의 의미를 이끌어냄에 가슴이 더워진다.
'조산-조새미'는 동화처럼 재미있고 위트로 반짝여, 작은아이 시절의 작가와 그 마을길을 자박자박 함께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어느 땅, 어느 마을이나 그 지명을 파고들면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작가는 고향마을의 근원을 찾아 의미화 한다. 이어지는 '그리운 산'에서는 쓰라린 역사속의 이야기로 할아버지가 살다 간 시대의 대 서사시 같은 수필이다.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닌 제3의 발견이며 원래 소재로 다가온 것에 대한 재해석일 때 가치가 있는바, 작가는 이를 성실히 갖추어가며 흡인작용을 한다. 3부의 '왼쪽 귀의 고백'은 귀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수사법이 뭉클하다. 어떠한 현상을 만났을 때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무게감으로 작용한다.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 중 과감하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작품을 몇 편 들 수 있는데, 4부의 '생물선생 울타리'와 '고사리 유권자', 7부의 '백정, 누가 만드나' 등이다. 겉으로 번드레한 명성과 너무도 대치되는 환경 훼손하는 인물 앞에서 필치를 세워 꼬집고, 선거철 표밭에 비유한 고사리 밭이 그럴싸하다. 그리고 장편수필에 해당하는 '백정, 누가 만드나'는 가슴을 여미고 경건히 읽어나가야 할 곧은 소리가 도처에 깔려 있다.
다시 서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띠풀, 들봄 등등의 잔잔한 언어에서 꿈틀거리는 희망의 가락이 너울댄다. 띠풀을 찾아다닐 때는 어릴 때이고, 어리다는 곧 희망으로 환치된다. 살기 곤곤했던 시절엔 식솔들과 겨울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워 봄을 기다리기 마련, 기나긴 겨울을 나고 훈기 도는 봄을 우리들은 얼마나 기다렸던가. 여기서 작가는 2월을 들봄 달이라고 정보전달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펼쳐지는 상황에서 사람살이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난다.
설이나 대보름의 이쪽저쪽에 입춘이 든다. 동지와 춘분의 한 가운데 놓이는 입춘(立春)은 한자말이다.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들봄이란 말이 있다. 토박이 말 박사이신 염시열 님은 2월을 들봄 달로 쓴다. 듣기도 좋고 부르기에 얼마나 좋은가.
들봄하고 소리하면 입에서 새그러운 침이 돈다. '들'은 들어간다는 말로써 곳의 옮김이요 때의 바뀜이다. '봄'은 본다는 이름씨다. 즉, 들어오는 것을 본다는 말이다.
- '들봄을 기다리며' 서두
이번 책에서 가장 가슴 서늘한 글을 꼽으라면 단연 '묏등에 둘러앉아'라 하겠다. 제목이 제시하는 대로 삶의 의미와 허무가 범벅되어 가슴을 누른다. 누구라도 이런 서사가 있을 것이요, 이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어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운 일이다. 헌데 작가는 부분 부분을 뚝뚝 끊어내 휴지(休止)를 두며 내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만큼 주제 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글을 툭툭 건드렸다는 증거가 된다.
뒤처져서 내려온 내가 고요를 흔들었다. "사진 한판 찍읍시다. 한 장씩 빼서 거실에 걸어둡시다!"
말이 없다. 아무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새 봉분인 듯 바위인 듯 명상으로 조용하다. 묏등 역시 흙이 부슬부슬 내려앉으며 묵언이다. 오래지 않아 봉분은 평지로 돌아갈 것이다.
노인들은 서로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다가 산 중턱의 한 묏등에 약속도 없이 둘러앉은 것이다. 젊은 시절 세상일에 설레고 부딪고 상처받다가 또 다른 세상의 이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가끔 자기 생일을 맞아 자식들이 다녀가면 소박한 음식을 사며 소소한 즐거움을 나눈다. 어쩌면 자신의 헛헛함을 깊숙이 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 '묏등에 둘러앉아' 서두
피차 감추려 해야 감춰지지 않는 노년의 모습이다. 수필의 수미(首尾)에서 할 말 다 나왔다. 그저 보여주기 식의 회화적 수사로 이끌어간다 하더라도 의미가 크고 깊게 전달되면 성공한 수필이다.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 없다가 문장 뒤에 숨어 무언의 말을 낳게 하는 것이다. 생과 멸의 간극에서 작가는 이러한 본성을 살펴 잘 활용하여 더욱 문향을 피워 올린다.
약속하지 않고도 늘 그 시간대, 그 길에서 만나지만 어느 날은 어르신 한 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저 아래 논길로 가나? 은연중 묻고 대답한다. 가야 할 길로 갔겠지!
언젠가 한 사람 두 사람 이 산길을 못 올라올 때가 올 것이다. 생멸(生滅)의 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만남도 이별도 다 산의 일부다.
묏등을 두르고 각각의 생각에 잠겨 묵묵히 들녘을 내려다본다.
- '묏등에 둘러앉아' 말미
마음에 저장된 언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끌어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문학성이 좌우된다. 독자들은 위의 대목들을 곱씹을 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무그늘이 드리워지고 바위가 안성맞춤으로 서 있는 봉분가에서 음식을 나누며 기념하고,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암암리에 확인하다가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 봉분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올라오질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에 부인할 사람 그 누구랴. 더욱이 만남도 이별도 다 산의 일부라는 어절에 가슴이 젖는다.
작가는 연이어 보여주는 단수필 '어느 주걱의 일생'에서 한 나무주걱을 발견하고 의인화ㆍ풍자ㆍ해학으로 희화화한다. 가마솥에서 기운 좋게 밥을 퍼내던 주걱이지만 세월 속에 밀려나게 되자 화장실 열쇠나 매달고 그걸 지키는 새 역할이 주어졌다는 논지인데, 이를 보고 작가는 나이 든 사람도 늘그막에 어떤 새로운 직무가 맡겨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풍자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북천, 하고 말해봐'는 제목이 재미있고, '사려니 숲 가는 길'은 입구와 관련해서 마음속의 그리운 길에 대한 명상이 다채롭다.
눈앞에 새로운 길을 두고 돌아서는 기분은 살아온 나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십 대에 시를 쓰겠다고 나부대다 시집 한 권 남기고 다른 길을 들었던 것, 문인화의 농담(濃淡)에 취해 있지만 끝까지 가야 하나 망설이는 것, 취미 하나 더 배울까 하다가 욕심이다 싶어 그만둔 것, 모두가 눈앞에 두고 들어서지 못하는 저 길과 같다. 빈약한 내 삶의 숲이 자꾸 눈에 밟힌다. 〈중략〉 앞사람이 밟았을 나뭇잎에 지그시 발자국을 포갠다. 길은 나뭇잎 바스라지는 소리로 발자국을 흡수하며 푹신해졌겠다. 사려 깊은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 바람도 한몫했다. 바람과 낙엽은 가시버시였을까,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었던 느린 음성을 뿌린다. 그 낮은 음성에 빨려들어 우리도 말 수가 줄어든다.
- '사려니 숲 가는 길' 중에서
문장을 가만가만 따라가다 보면 '망건-남강'에서 보여주듯 말에 대한 재해석에 매료된다. 지명에도 역사가 흐르고 민족의 혼이 배어 우리를 지켜본다는 논리가 통하는 것을 확인한다.
작가는 이 책 맨 끝에 '찹쌀떡과 도서관'으로 자리를 채운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지 싶다. 보기 드물게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유연한데, 가용을 벌기 위해 찹쌀떡 장사를 했다는 용기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종이 가방에 받아온 떡은 제법 묵직했다. 처음엔 쉽게 찹쌀떡~ 소리가 목구멍에서 안 나왔다. 한 번 외치고 나니 그다음은 쉽게 나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일도 아니었다. 주로 자취하는 친구들 집 창문 아래서 외쳤다. 밤길을 함께 다녀준 친구도 있고 찹쌀떡을 자주 사준 친구도 있었다. 학비까진 못 돼도 잡비는 됐다. 팔다가 못 팔면 실컷 먹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학생지도부 선생님한테 불려가 "상행위는 교기 문란"이라는 주의를 들었으나 울지는 않았다는데…. 필자는 그 여고생이 너무도 기특하고 장하게 여겨진다. 청운의 꿈을 향해 내달리는 과정에 학생 신분으로서 맛보는 부끄러움이나 억울함이 무슨 대수였겠는가. 훗날 그가 오랜 공직생활을 거쳐 도서관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이는 될성부른 떡잎이 이미 그때부터 웃자라고 있었던 게 자명한 것을. 박진감 넘치는 수필 한 편이 짙은 여운을 안긴다.
이상 짚어본 바와 같이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구성에 치밀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더한다. 시간과 행위 사이에서 의미를 형성하고, 슬쩍 돌려놓은 메시지까지 찾아 읽게 하는 묘미가 있다. 이것이 아름다운 글꽃으로 피어 쉬 잦아들지 않는 향기를 낸다.
시간과 행위 사이에서 피워 올리는 문향(文香)
金善化(수필가ㆍ시인ㆍ한국수필 편집장)
우리는 작가 개개인의 문체를 통해 다양한 점을 유추해낸다. 특히 진솔함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장르에서는 더욱 이 점이 두드러진다. 작가마다의 개성 있는 체험이 각기 다른 향기로 문장을 살찌운다.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은 첫인상이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필자와는 먼 거리에 있음에도 그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음에 큰 의미를 두며, 작가의 문장 속 여행을 했다.
김미연 수필가는 월간 《한국수필》로 등단한 지 7년 차로, 이 책이 첫 수필집이 된다. 수필에 앞서 일찍이 詩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무엇보다도 묘사가 뛰어나다. 어떤 대상을 만나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다채롭다. 상징과 은유가 기본이 되는 시인으로서 그 저력이 수필작품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전체 7부로 구성된 이번 책 《신발 신는 시간》은 1부 〈욕망의 동산〉에서부터 사유의 물꼬를 튼다. 수필에서 흔히 대하는 독백체의 문체를 뛰어넘어, 어떠한 현상에 비판의 잣대도 거침없이 대는 붓 끝을 세운다.
'날아간 새'에서는 날아온 새를 다루는데, 결국 자유를 탐해 가두려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채고 새가 날아간 것이 아닐까 하고 술회하는 마음씨가 순연하다. '문수보살'은 혼혈을 기울인 책을 지인에게 건네고 잘 읽힐지에 대해 일어나는 작가의 번민을 상세히 표현한 작품이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예를 들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아, 잠시, 책 한 권 주려고 가져왔는데."
"다음에 주세요."
- '문수보살' 서두
문맥 따라가는 눈길을 가로질러 가슴이 철렁한다. 별일 아니겠지 하는 바람으로 다음 문장을 훑는다. 마침내 상대방에게 책은 전달되고, 다음 묘사가 기가 막히다.
후루룩!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간다. 생경하면서도 익숙하다. 표지의 붉은 꽃송이가 바람에 날아가겠다. 책을 펼칠 때는 너나없이 희한하게 식은 국 둘러 마시듯 후루룩 넘길까. 너무 뜨거워 식히는 것일까. 마음의 삐죽한 얼음조각이 시비를 건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엔진에 열이 올라서 그런가.
- '문수보살' 중에서
엔진에 열이 올랐다고 꼭 얼굴이 달아오르지는 않을 터인데, 작가는 굳이 이 문장을 쓰고 있다. 에둘러놓는 문장에서 오히려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 독자가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치를 이미 알고 있는 노련한 장치이다. 헌데 잘 읽었다고 문자가 왔단다. '그녀는 어쩌면 책에 갇힌 나를 풀어주려는 문수보살의 화신인지도 모르겠다.' 하는데 덩달아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맞다. 문수보살!
이밖에도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다. '홈'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길을 차용하여 사람들 사이에 나는 마음의 길을 이끌어낸다. 배려의 길, 잘 디뎌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흠집과 홈을 내자는 메시지가 가슴을 울린다.
전체 작품 47편 중 원고지 5매 내외의 단(短)수필이 2할이나 되는데, 이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밀도를 더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보기이다. 앞의 '날아간 새'나 '홈'에 이어 '회화의 괴물'에서 그 진수가 나타난다. 손이 불편한 여인의 풀린 운동화 끈을 정성들여 매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느낀 단상이 깊고 넓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연결하는 솜씨가 세련되어 입이 딱 벌어진다. 적소에 척척 배열하여 의미를 다지는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죽비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내게 크나큰 장애가 있음을 알았다. 남의 입장은 전혀 살피지 않는 습성과 얼마나 내 위주로 사는가를. 〈중략〉 돌아간 눈, 튀어나온 입, 어디 그뿐일까. 정신상태마저 뒤틀어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회화의 괴물'이 아닐 수 없다.
- '회화의 괴물' 말미 부분
2부는 첫 작품 '조물주에게'에서 상당한 해학을 낳고 있다. 여행 중에 화장실 문제를 겪으며 펼쳐가는 의미 확장이 실감난다. 소피를 참다가 엉뚱하게도 조물주에게 항변을 쏟아놓는다. 그러면서 기막힌 상상력으로 손목에서 팔꿈치 사이 어디쯤에 오줌길을 만들어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투정을 부린다. 나아가 복식업계의 디자인에까지 상상력을 발휘하니, 여간 익살스러움이 아니다. 연약한 듯 살살 엄살을 부려 강한 효과를 이끌어내는 꾼 중의 꾼, 글 꾼이다.
그랬다면 복식업계는 팔목용 팬티로 호황을 누릴 것이고 세금을 더 많이 내어 복지국가 건설에 도움을 주겠지요. 디자이너, 염색업자, 직물공장, 특히 상품 안내자는 아침 방송에 나와 팔목용 팬티를 무려 15개나 준다며 호호 낭랑 잠을 깨우겠지요. 아마도 도기업체는 팔목용 요강을 공공장소 어딘가 본보기로 설치하여 홍보에 열을 올리겠지요. 늦게나마 조물주의 심도 있는 인간 설계를 촉구하며 머리띠를 두르는 바입니다.
- '조물주에게' 중에서
'신발 싣는 시간'은 4년 전,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그 문학성을 널리 인정받았으며 상황묘사가 탁월하다. 유년기, 버스에 오를 때 신발을 길에 벗어놓고 오른 점이 해학을 부른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데 너무 깨끗해 방에 들어가듯 신을 길바닥에 벗고 올랐다. 자갈길을 흔들며 가는 중간중간 사람들을 태우니 어느덧 만원이었다. 어른들 다리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할 때 하얀 종아리 두 개가 보였다. 그 종아리의 맨발은 못 위에 올려진 게 아닌가. 자꾸 밀려가면 나도 저 못 위에 맨발이 얹힐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중략〉 신발은 웃음과 울음과 고단함과 씁쓸함이 오롯한 한 채의 집이다, 먼 길을 동행한 나룻배다. 삶의 색깔과 냄새와 영혼을 사려놓은 삼광주리다. 그러기에 마지막 가는 길에 꼭 챙기는 유품이다. 링컨 기념관에서는 링컨이 암살되었을 때 벗겨진 부츠를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고 한다. 우리도 임의 신발을 챙겨 빈소에 모신다.
- '신발 싣는 시간' 중에서
이런 저런 신발을 신으며 생활하는 속에서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사유의 지평이 넓어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허리 숙여 신발 신는 시간에 겸허를 배운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이끌어내는데 함께 공감하게 된다. 신발을 신고 어떤 출발선에 선 느낌으로 바짝 긴장하게도 된다. 하물며 마지막 가는 길에 꼭 챙기는 물건이 신발임에랴.
'대나무의 바림질'과 '태점' 역시 은유와 형상화에 능하다. 집 앞 대숲의 모습을 청곰이라 놓고 시작한다, 놀라운 발상이다.
대숲에 바람이 인다. 한 무리 청곰이 산기슭을 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리저리 뒤섞인다. 낭떠러지를 만나자 어미는 새끼를 안쪽으로 몬다. 서로 끌어안고 머리를 맞대며 포효하는 곰이다. 새 빛과 묵은 빛이 섞바뀌며 털의 바림질이 인다. 〈중략〉 흐린 날은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 우두커니 서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 '대나무의 바림질' 중에서
흔히 나 어릴 적에 이랬어요. 하는 식의 화법이 아니다. 과감한 생략과 함축 속에서 의미화에 주력한다. 결국은 인생무상에 이르러 뒤돌아보는 마음가짐을 유도해낸다. 빛의 무수한 계단이 펼쳐지는데, '빛은 어쩌면 인간 영혼의 집합일지도 모른다.' 는 말미에 숙연해진다.
문인화에서 고목이나 바위에 찍는 점을 태점(苔点)이라 한다. 한자 뜻풀이로 이끼의 점이다. 고목의 옹이, 난초 뿌리를 덮는 돌 부스러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흙더미, 수풀 같은 것도 다 태점으로 일컫는다. 〈중략〉 나는 태점(胎点)이라 쓰고 우주의 시작점으로 해석하고 싶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한 점 인간이 태어나듯 그림의 생명점이 태점이라 여겨진다.
-'태점' 중에서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대목이다. 지성을 겸비한 김미연 수필가는 어느 한 가지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원초적으로 파고들거나 재해석에 박차를 가하는 점이 매력 있다. '태점'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창출해내는데, 이는 동음이의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섣부른 차용이야 금세 그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의미화에 주력한 한 단어 한 어절이 문학성을 확보하여 문장 씹는 맛을 안겨준다.
'말의 생명'에서는 고향마을 유래를 더듬어가며 음운변화 등에 의해 달라지는 말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어서 "말도 자란다."는 표현에 무릎을 치게 한다. 소문이 무성하여 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 차원 높은 세계에서 말을 성장시킨다. 아주 개성 강한 표현이다. '붉은 등'은 홍수 지던 날의 단상을 원고지 6매 내외의 단수필로 그려냈다. 짧은 글에 서사가 함축되어 있고 인정스런 고향 사람들이 살아나 꿈틀댄다. 학교 옆 낮은 돌담에 무대를 만들어 연극을 보여주며 아이나 어른이 정서적으로 어우러지는 데서 향기를 내고, 업어서 개울을 건너 주던 아저씨의 등이 붉은 등으로 뜨끈하게 형상화된다.
개울은 시장을 갈 때도, 출생, 사망신고를 할 때도 반드시 건너냐 했던 곳이요, 논물을 퍼 올리기 위해 만나는 곳이며, 상여가 쉬고 종구쟁이 소리에 노잣돈이 놓이는 곳이다. 삶의 근간이며 별리의 건널목이다.
- '붉은 등' 중에서
결국 위와 같은 건너가다의 의미를 이끌어냄에 가슴이 더워진다.
'조산-조새미'는 동화처럼 재미있고 위트로 반짝여, 작은아이 시절의 작가와 그 마을길을 자박자박 함께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어느 땅, 어느 마을이나 그 지명을 파고들면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작가는 고향마을의 근원을 찾아 의미화 한다. 이어지는 '그리운 산'에서는 쓰라린 역사속의 이야기로 할아버지가 살다 간 시대의 대 서사시 같은 수필이다.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닌 제3의 발견이며 원래 소재로 다가온 것에 대한 재해석일 때 가치가 있는바, 작가는 이를 성실히 갖추어가며 흡인작용을 한다. 3부의 '왼쪽 귀의 고백'은 귀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수사법이 뭉클하다. 어떠한 현상을 만났을 때 천착해 들어가는 힘이 무게감으로 작용한다.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 중 과감하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작품을 몇 편 들 수 있는데, 4부의 '생물선생 울타리'와 '고사리 유권자', 7부의 '백정, 누가 만드나' 등이다. 겉으로 번드레한 명성과 너무도 대치되는 환경 훼손하는 인물 앞에서 필치를 세워 꼬집고, 선거철 표밭에 비유한 고사리 밭이 그럴싸하다. 그리고 장편수필에 해당하는 '백정, 누가 만드나'는 가슴을 여미고 경건히 읽어나가야 할 곧은 소리가 도처에 깔려 있다.
다시 서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띠풀, 들봄 등등의 잔잔한 언어에서 꿈틀거리는 희망의 가락이 너울댄다. 띠풀을 찾아다닐 때는 어릴 때이고, 어리다는 곧 희망으로 환치된다. 살기 곤곤했던 시절엔 식솔들과 겨울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워 봄을 기다리기 마련, 기나긴 겨울을 나고 훈기 도는 봄을 우리들은 얼마나 기다렸던가. 여기서 작가는 2월을 들봄 달이라고 정보전달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펼쳐지는 상황에서 사람살이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난다.
설이나 대보름의 이쪽저쪽에 입춘이 든다. 동지와 춘분의 한 가운데 놓이는 입춘(立春)은 한자말이다.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들봄이란 말이 있다. 토박이 말 박사이신 염시열 님은 2월을 들봄 달로 쓴다. 듣기도 좋고 부르기에 얼마나 좋은가.
들봄하고 소리하면 입에서 새그러운 침이 돈다. '들'은 들어간다는 말로써 곳의 옮김이요 때의 바뀜이다. '봄'은 본다는 이름씨다. 즉, 들어오는 것을 본다는 말이다.
- '들봄을 기다리며' 서두
이번 책에서 가장 가슴 서늘한 글을 꼽으라면 단연 '묏등에 둘러앉아'라 하겠다. 제목이 제시하는 대로 삶의 의미와 허무가 범벅되어 가슴을 누른다. 누구라도 이런 서사가 있을 것이요, 이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어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운 일이다. 헌데 작가는 부분 부분을 뚝뚝 끊어내 휴지(休止)를 두며 내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만큼 주제 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글을 툭툭 건드렸다는 증거가 된다.
뒤처져서 내려온 내가 고요를 흔들었다. "사진 한판 찍읍시다. 한 장씩 빼서 거실에 걸어둡시다!"
말이 없다. 아무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새 봉분인 듯 바위인 듯 명상으로 조용하다. 묏등 역시 흙이 부슬부슬 내려앉으며 묵언이다. 오래지 않아 봉분은 평지로 돌아갈 것이다.
노인들은 서로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다가 산 중턱의 한 묏등에 약속도 없이 둘러앉은 것이다. 젊은 시절 세상일에 설레고 부딪고 상처받다가 또 다른 세상의 이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가끔 자기 생일을 맞아 자식들이 다녀가면 소박한 음식을 사며 소소한 즐거움을 나눈다. 어쩌면 자신의 헛헛함을 깊숙이 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 '묏등에 둘러앉아' 서두
피차 감추려 해야 감춰지지 않는 노년의 모습이다. 수필의 수미(首尾)에서 할 말 다 나왔다. 그저 보여주기 식의 회화적 수사로 이끌어간다 하더라도 의미가 크고 깊게 전달되면 성공한 수필이다.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 없다가 문장 뒤에 숨어 무언의 말을 낳게 하는 것이다. 생과 멸의 간극에서 작가는 이러한 본성을 살펴 잘 활용하여 더욱 문향을 피워 올린다.
약속하지 않고도 늘 그 시간대, 그 길에서 만나지만 어느 날은 어르신 한 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저 아래 논길로 가나? 은연중 묻고 대답한다. 가야 할 길로 갔겠지!
언젠가 한 사람 두 사람 이 산길을 못 올라올 때가 올 것이다. 생멸(生滅)의 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만남도 이별도 다 산의 일부다.
묏등을 두르고 각각의 생각에 잠겨 묵묵히 들녘을 내려다본다.
- '묏등에 둘러앉아' 말미
마음에 저장된 언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끌어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문학성이 좌우된다. 독자들은 위의 대목들을 곱씹을 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무그늘이 드리워지고 바위가 안성맞춤으로 서 있는 봉분가에서 음식을 나누며 기념하고,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암암리에 확인하다가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 봉분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올라오질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에 부인할 사람 그 누구랴. 더욱이 만남도 이별도 다 산의 일부라는 어절에 가슴이 젖는다.
작가는 연이어 보여주는 단수필 '어느 주걱의 일생'에서 한 나무주걱을 발견하고 의인화ㆍ풍자ㆍ해학으로 희화화한다. 가마솥에서 기운 좋게 밥을 퍼내던 주걱이지만 세월 속에 밀려나게 되자 화장실 열쇠나 매달고 그걸 지키는 새 역할이 주어졌다는 논지인데, 이를 보고 작가는 나이 든 사람도 늘그막에 어떤 새로운 직무가 맡겨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풍자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북천, 하고 말해봐'는 제목이 재미있고, '사려니 숲 가는 길'은 입구와 관련해서 마음속의 그리운 길에 대한 명상이 다채롭다.
눈앞에 새로운 길을 두고 돌아서는 기분은 살아온 나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십 대에 시를 쓰겠다고 나부대다 시집 한 권 남기고 다른 길을 들었던 것, 문인화의 농담(濃淡)에 취해 있지만 끝까지 가야 하나 망설이는 것, 취미 하나 더 배울까 하다가 욕심이다 싶어 그만둔 것, 모두가 눈앞에 두고 들어서지 못하는 저 길과 같다. 빈약한 내 삶의 숲이 자꾸 눈에 밟힌다. 〈중략〉 앞사람이 밟았을 나뭇잎에 지그시 발자국을 포갠다. 길은 나뭇잎 바스라지는 소리로 발자국을 흡수하며 푹신해졌겠다. 사려 깊은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 바람도 한몫했다. 바람과 낙엽은 가시버시였을까,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었던 느린 음성을 뿌린다. 그 낮은 음성에 빨려들어 우리도 말 수가 줄어든다.
- '사려니 숲 가는 길' 중에서
문장을 가만가만 따라가다 보면 '망건-남강'에서 보여주듯 말에 대한 재해석에 매료된다. 지명에도 역사가 흐르고 민족의 혼이 배어 우리를 지켜본다는 논리가 통하는 것을 확인한다.
작가는 이 책 맨 끝에 '찹쌀떡과 도서관'으로 자리를 채운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지 싶다. 보기 드물게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유연한데, 가용을 벌기 위해 찹쌀떡 장사를 했다는 용기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종이 가방에 받아온 떡은 제법 묵직했다. 처음엔 쉽게 찹쌀떡~ 소리가 목구멍에서 안 나왔다. 한 번 외치고 나니 그다음은 쉽게 나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일도 아니었다. 주로 자취하는 친구들 집 창문 아래서 외쳤다. 밤길을 함께 다녀준 친구도 있고 찹쌀떡을 자주 사준 친구도 있었다. 학비까진 못 돼도 잡비는 됐다. 팔다가 못 팔면 실컷 먹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학생지도부 선생님한테 불려가 "상행위는 교기 문란"이라는 주의를 들었으나 울지는 않았다는데…. 필자는 그 여고생이 너무도 기특하고 장하게 여겨진다. 청운의 꿈을 향해 내달리는 과정에 학생 신분으로서 맛보는 부끄러움이나 억울함이 무슨 대수였겠는가. 훗날 그가 오랜 공직생활을 거쳐 도서관장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이는 될성부른 떡잎이 이미 그때부터 웃자라고 있었던 게 자명한 것을. 박진감 넘치는 수필 한 편이 짙은 여운을 안긴다.
이상 짚어본 바와 같이 김미연 수필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구성에 치밀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더한다. 시간과 행위 사이에서 의미를 형성하고, 슬쩍 돌려놓은 메시지까지 찾아 읽게 하는 묘미가 있다. 이것이 아름다운 글꽃으로 피어 쉬 잦아들지 않는 향기를 낸다.
목차
목차
1부 욕망의 동산
욕망의 동산 - 12
우둔의 협곡을 날다
날아간 새
문수보살
홈
회화의 괴물
버티기
2부 신발 신는 시간
조물주에게
신발 신는 시간
위안
대나무의 바림질
태점
말의 생명
붉은 등
조산 - 조새미
그리운 산
3부 화석
사랑하는 나의 불완전
내 몸 순례기
내게로 온 한포기 꽃을 위하여
왼쪽 귀의 고백
손
화석
배암차즈기
4부 생물 선생 울타리
생물 선생 울타리
물풀의 계획
띠풀을 만나다
들봄을 기다리며
고사리 유권자
첨단의 도시
5부 나를 향해 짖는다
나를 향해 짖는다
어느 고양이의 방랑기
국화
다음에 오자
묏등에 둘러 앉아
알밤을 주우며
얄미운 봄
어느 주걱의 일생
6부 황계폭포 가는 길
북천하고 말해 봐
사려니 숲 가는 길
여수 돌게
황계폭포 가는 길
만복대 가는 길
7부 찹쌀떡과 도서관
개천예술제의 강물
아, 소나무
백정, 누가 만드나
망건 - 남강
찹쌀떡과 도서관
작품해설_ 金善化
욕망의 동산 - 12
우둔의 협곡을 날다
날아간 새
문수보살
홈
회화의 괴물
버티기
2부 신발 신는 시간
조물주에게
신발 신는 시간
위안
대나무의 바림질
태점
말의 생명
붉은 등
조산 - 조새미
그리운 산
3부 화석
사랑하는 나의 불완전
내 몸 순례기
내게로 온 한포기 꽃을 위하여
왼쪽 귀의 고백
손
화석
배암차즈기
4부 생물 선생 울타리
생물 선생 울타리
물풀의 계획
띠풀을 만나다
들봄을 기다리며
고사리 유권자
첨단의 도시
5부 나를 향해 짖는다
나를 향해 짖는다
어느 고양이의 방랑기
국화
다음에 오자
묏등에 둘러 앉아
알밤을 주우며
얄미운 봄
어느 주걱의 일생
6부 황계폭포 가는 길
북천하고 말해 봐
사려니 숲 가는 길
여수 돌게
황계폭포 가는 길
만복대 가는 길
7부 찹쌀떡과 도서관
개천예술제의 강물
아, 소나무
백정, 누가 만드나
망건 - 남강
찹쌀떡과 도서관
작품해설_ 金善化
저자
저자
김미연
2016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작가회,
진주문인협회, 경남수필 문학회
2019년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
2019년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동상
2019년 경찰문화대전 시 부문 특선
시집 『빨간 그물코 스타킹』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작가회,
진주문인협회, 경남수필 문학회
2019년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
2019년 공무원 문예대전 시 부문 동상
2019년 경찰문화대전 시 부문 특선
시집 『빨간 그물코 스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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