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라는 나무(시인수첩 시인선 62)
김수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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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삶의 풍경에 다정한 말을 건네다
김수상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물구라는 나무』가 출간되었다. 2013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한 그는 ‘시의 기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시인’으로, 또 ‘언어의 바다를 온몸으로 항진해 온 흔적을 작품에 오롯이 담는 시인’으로 평가받아왔다.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낡고 소외된 것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시인은 우리 시대의 가장 평범한 것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풍경 속에서 빛나는 시적 이미지들을 발견해왔다. 이번에 출간한 『물구라는 나무』에서도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낡은 언어, 버려진 언어들을 데리고 와서 다시 쓸모 있게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바라보는 것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이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 시대로부터 소외된 삶들에게 말을 걸어왔던 시인이 이번에는 스스로의 내면의 풍경에 주목한다. 그리고 낡은 삶들을 다독였던 그동안의 다정한 목소리로 스스로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시적 순간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래서 시인의 형편과 내밀한 감정들이 새겨진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마치 그의 삶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박한 이미지들을 따라가면서 작품에 담긴 것들이 잃어버린 자기 삶의 편린들과 닮아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번 시집 『물구라는 나무』의 무대는 시인과 독자의 삶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삶의 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수상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물구라는 나무』가 출간되었다. 2013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한 그는 ‘시의 기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시인’으로, 또 ‘언어의 바다를 온몸으로 항진해 온 흔적을 작품에 오롯이 담는 시인’으로 평가받아왔다.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낡고 소외된 것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시인은 우리 시대의 가장 평범한 것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풍경 속에서 빛나는 시적 이미지들을 발견해왔다. 이번에 출간한 『물구라는 나무』에서도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낡은 언어, 버려진 언어들을 데리고 와서 다시 쓸모 있게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바라보는 것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이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 시대로부터 소외된 삶들에게 말을 걸어왔던 시인이 이번에는 스스로의 내면의 풍경에 주목한다. 그리고 낡은 삶들을 다독였던 그동안의 다정한 목소리로 스스로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시적 순간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래서 시인의 형편과 내밀한 감정들이 새겨진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마치 그의 삶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소박한 이미지들을 따라가면서 작품에 담긴 것들이 잃어버린 자기 삶의 편린들과 닮아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번 시집 『물구라는 나무』의 무대는 시인과 독자의 삶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삶의 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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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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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포옹하는 구원의 언어들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자꾸 생각난다/형편이 어려워질 때마다 수정동 고관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밥벌이 때문에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이 내려간 부산/매트리스 하나 겨우 들어가는 여인숙을 개조한 달셋방/나 같은 사내들이 혼자 사는 곳/맞은편 초량의 산복도로엔 벚꽃이 한창이었다/두고 온 어린아이들 생각에/물에 맨밥을 말아 먹어도 목이 막혔다/상조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건너편 초량의 산꼭대기 집들의 불빛을 부러워했다/피어나는 산벚의 분홍 구름 떼/꿈인 듯 생시인 듯 그때는 담배를 참 많이도 피워 댔다/인생은 괴롭다는데 나도 빨리 구름처럼 사라지고 싶었지/순서를 기다리던 공동 세탁기/그래도 옥상에 널린 사내들의 빨래는 깨끗하였다/초량에는 돼지갈비 골목이 있고/찌그러진 냄비에 끓여주는 감자탕 집도 있었다/고관에는 오래된 목욕탕 굴뚝만 아득히 높았고/고관(高官)도 대작(大爵)도 볼 수 없었다/흘러가는 흰 구름, 흘러가는 산벚의 연분홍 구름들,/흘러가는 초량의 빽빽한 가난들,/고관의 달셋방 옥상에서 바라본 초량의 산복도로 산벚은/불에 덴 자국처럼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다시 가난해질 때마다 나는 고관의 달셋방 옥상을 생각한다/나빠지려고 할 때마다 고관 옥상의 흰 빨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 「고관(古館)」 전문(64~65페이지)
김수상 시인에게 시는 슬픔을 견디고 삶을 살아내게 하는 힘이었다. 거대한 시련의 파도들이 삶을 덮쳐오고 격한 정념을 치를 때면 그는 조촐한 공간에서 울분과 자괴와 환멸의 감정들을 복기하며 이들을 시의 언어로서 안쳤을 것이다. 부산 초량에 있는 고관마을에서 일했던 경험이 담긴 위의 시는 이번 시집에 실려 있지만 경험 내용으로 보면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되었어야 할 작품이다. "여인숙을 개조한 달셋방"에서 혼자 지내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적막한 노동을 하던 시절의 풍경을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은, 이 무렵의 시편들과는 달리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상황에 대한 상세한 형상화만으로도 시인이 겪었을 신산한 마음을 핍진하게 전달하고 있는 시는 끝에 몰린 한 시절의 처지와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시간적 거리감이 언어적 간명함의 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김수상의 시에는 현실적 궁핍함이 시의 언어로 고스란히 옮겨 앉는 법은 별로 없다.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일상적 삶의 결여를 시적 자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과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성격은 적어도 이번 시집에까지 두루 이어지는 특징이다.
김수상에게 시는 자신의 현실적 곤궁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기긍정의 자질로서 전환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시를 쓰는 것은 그에게 현실을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시인은 쓰면서 세계를 경험한다//쓰는 일 자체가 세계의 새로운 경험,/삶에 시를 가두어 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각광받는 시」)라는 시적 진술은 그에게 시작(詩作)이 한 편의 작품을 넘어 현실을 새롭게 겪는 경험의 장임을 웅변해준다. '궁함이 시적 수월성의 중요한 자양(詩窮而後工)'이라는 전통 시학의 관점을 넘어 그에게 시는 현실적 곤궁을 타개하는 새로운 현실 경험의 장인 셈이다(이 대목은 김수영의 흔적이 어른거리는 지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유사한 두 개의 어휘를 만지작거려 새로운 시적 인식에 이르는 이 시의 작법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말을 가지고 잘 노는 김수상의 시적 작업이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현실을 열어젖히는 새로운 인식 경험의 한 방법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언어를 다루어 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작의 과정은 예상치 못했던 현실을 겪는 과정이며, 그러한 점에서 "시인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는 사람"(「각광받는 시」)인 것이다. 아울러 그에게 이러한 시쓰기는 곤궁의 현실에 갇힌 자신을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포월(包越 : 감싸안으며 넘어서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억울한 일이 많을 때는
이불을 덮고 일부러 땀을 내서 푹 잔다
잠이 안 와도 캄캄한 이불 속에 있으면
언젠가 잠은 찾아온다
땀으로 흥건해진 축축한 몸
혼자서 자주 건넜던 열(熱)의 언덕들을 지나면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이 찾아온다
허물 많던 인간이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
아주 억울한 일이 있을 때는
더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는다
-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 전문(85페이지)
『물구라는 나무』에는 이전의 시편들과 달리 격한 정념의 내용들이 휘발되어 있다. 상실, 자괴, 수치, 궁핍, 설움, 외로움 등의 감정들은 한결 순화(順和)되었고, 이 자리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안심(安心)의 태도가 깊게 배어들어 있다. 김수상의 이전 시편들이 자신의 현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현실을 향한 응전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에 수록된 적잖은 작품들에는 외부의 현실적 상황을 자신의 내면을 통해 해소하려는 자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억울한 일이 많을 때는 이불을 덮고" 잠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한다는 위의 전언은 이전의 시와는 다소 결이 다른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시인의 정념의 열도는 상당히 낮아져 있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자기 내면을 다스림으로써 해소하려는 태도가 본격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인식은 "열(熱)의 언덕들을 지나면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육체적 경험에 바탕을 둔 자연성에 기초하고 있다. 몸의 자연이 현실 세계에 대한 시인의 태도에 중요한 전범이 되고 있는 셈이다. 몸의 경험을 현실에 대한 대응 자세로서 전환하는 시인의 모습은, 한걸음 나아가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을 "허물 많던 인간이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데까지 이른다. 외부의 현실을 내면적으로 해소하는 이러한 태도는 이번 시집의 작품들에서 두루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절 마당에 수양매실 환하다
휘휘 늘어졌다
어떤 가지들은 땅에 닿았다
꽃으로 잘 엮은 주렴 같다
봄바람에 마음을 다 내주었나
느릿느릿 마당을 쓸고 있다
이제는 처지는 것들이 좋다
솟구치는 것들의 진절머리,
힘 풀고 아래로 아래로만 나붓거리는 마음이여,
생각 없이 사는 유순한 마음이여,
늘어진 꽃가지 사이로
내 마음도 한 가지인 양
척, 감겨든다
- 「처지다」 전문(본문 26페이지)
사찰의 마당에 휘늘어진 '수양매실나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시인의 마음이 자연 사물을 보는 시선에 투영된 시에는 "솟구치는 것들의 진절머리"로 압축하여 표현된 열렬한 정념들에 대한 피로가 내장되어 있다. "힘 풀고 아래로 아래로만 나붓거리는" "처지는 것들"의 형상이 고단한 시절을 통과하면서 치렀을 상실감, 울분, 그리움, 자책 등의 격정으로부터 놓여나고 싶다는 심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생각 없이 사는 유순한 마음", 생각 없이 살다니, 시를 통해 미루어보건대 슬픔과 분노를 안으로 안으로만 삭였을 그는 밀려드는 생각들로 인해 마음의 난장을 겪었을 터, 그 고단함이 수양매실의 자연 형상에서 마음을 풀었을 것이다.
"유순한 마음"이란 앞서 살폈던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에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처럼 솟구치는 격정을 안으로 정화하는 과정, 즉 "저절로 맑아지는" 자연의 시간에 자신을 맡기는 상태이다.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화야말로 이번 시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인의 태도는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나서 생각하면 아무 일 아닌데/혼자서 가시처럼 분노를 키운 것은 아닌지"(「무른 가시」) "뒤집어 신으면 되는 것을/남이 미울 때도 뒤집어 생각하고/…(중략)…/혹시 뭐라고 하면, 그냥 한번 웃어줘야지/뒤집으니 정말 속이 편하다"(「양말은 잘못 만들어진 거야」)는 이러한 시적 진술들은 외부 현실을 마음의 문제로 수렴하여 해소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담고 있다. 나아가 "꽃진 자리가 꽃 핀 자리/웃던 자리가 울던 자리/이긴 자리가 진 자리"(「때죽나무」) 등의 표현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는 단순히 자연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일시적 반응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전환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에 욕망을 덜고 비우는 과욕(寡慾)이나 무욕(無慾)의 지향이라기보다 안심입명(安心立命), 혹은 순명(順命)에 더 근접한 듯하다.
누가 아픈가 보다
너무 사랑하면 눈이 멀어
날개가 돋는다
나는 공중을 헤엄치며
당신 쪽으로 간다
주저앉아 오래 울어
송진처럼 굳어진 자리
산 하나를 다 업고도
내 몸은 가볍게 출렁인다
바라지 않는 마음이여
눈 뜨고 꽃잠 든다
- 「나비」 전문(본문 44쪽)
김수상의 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념 중 하나는 과거 상실에 기반한 모티프(motif)이며, 자책과 버려짐, 설움과 우수, 그리고 대상을 향한 열렬한 그리움 등은 여기에서 파생된 정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러한 정념의 열도가 한풀 잦아들었으며, 이전의 시에서 시적 장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기이한 시적 유머나 유희의 감각은 약화되었다. 대신 진술은 보다 간명해졌고 시의 발상은 담백해졌다.
이전 시편들이 부재한 '당신'을 향해 날아올라 "공중을 헤엄치"는 정념을 담은 것이라면, 위의 작품은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가볍게 출렁이는" 나비의 형상을 펼쳐 보여준다. 물론 시인이 형상화한 나비의 '출렁임',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저 형상의 배후에는 "주저앉아 오래 울어 송진처럼 굳어진 자리"의 무게가 가로놓여 있다. "주저앉아 오래 울"었던 내상(內傷)이 '꽃잠 든 나비'의 형상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 저 나비의 '출렁임'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어른거린다. 그간 김수상의 시가 보여주었던 정서적 감염력이 절실함과 열도(熱度)에 빚진바 적지 않은데,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니, "산 하나를 다 업고도" "가볍게 출렁이"는 "꽃잠 든" 나비의 형상은 홍역처럼 치른 한 시절을 통과하여 당도한 시인의 현재를 표상하는 심미적 형상일 것이다.
그러나 저 날개를 접고 든 "꽃잠"이 눈을 뜨고 진행되는 잠임을 생각할 때 저 심미적 형상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자연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이입하는 자연(自然)의 서정으로 길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눈 뜨고 꽃잠"에 든 저 "가볍게 출렁이는" "바라지 않는 마음"의 이후 행로(行路)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자꾸 생각난다/형편이 어려워질 때마다 수정동 고관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밥벌이 때문에 가기 싫어도 할 수 없이 내려간 부산/매트리스 하나 겨우 들어가는 여인숙을 개조한 달셋방/나 같은 사내들이 혼자 사는 곳/맞은편 초량의 산복도로엔 벚꽃이 한창이었다/두고 온 어린아이들 생각에/물에 맨밥을 말아 먹어도 목이 막혔다/상조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건너편 초량의 산꼭대기 집들의 불빛을 부러워했다/피어나는 산벚의 분홍 구름 떼/꿈인 듯 생시인 듯 그때는 담배를 참 많이도 피워 댔다/인생은 괴롭다는데 나도 빨리 구름처럼 사라지고 싶었지/순서를 기다리던 공동 세탁기/그래도 옥상에 널린 사내들의 빨래는 깨끗하였다/초량에는 돼지갈비 골목이 있고/찌그러진 냄비에 끓여주는 감자탕 집도 있었다/고관에는 오래된 목욕탕 굴뚝만 아득히 높았고/고관(高官)도 대작(大爵)도 볼 수 없었다/흘러가는 흰 구름, 흘러가는 산벚의 연분홍 구름들,/흘러가는 초량의 빽빽한 가난들,/고관의 달셋방 옥상에서 바라본 초량의 산복도로 산벚은/불에 덴 자국처럼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다시 가난해질 때마다 나는 고관의 달셋방 옥상을 생각한다/나빠지려고 할 때마다 고관 옥상의 흰 빨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 「고관(古館)」 전문(64~65페이지)
김수상 시인에게 시는 슬픔을 견디고 삶을 살아내게 하는 힘이었다. 거대한 시련의 파도들이 삶을 덮쳐오고 격한 정념을 치를 때면 그는 조촐한 공간에서 울분과 자괴와 환멸의 감정들을 복기하며 이들을 시의 언어로서 안쳤을 것이다. 부산 초량에 있는 고관마을에서 일했던 경험이 담긴 위의 시는 이번 시집에 실려 있지만 경험 내용으로 보면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되었어야 할 작품이다. "여인숙을 개조한 달셋방"에서 혼자 지내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적막한 노동을 하던 시절의 풍경을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은, 이 무렵의 시편들과는 달리 자신의 형편을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상황에 대한 상세한 형상화만으로도 시인이 겪었을 신산한 마음을 핍진하게 전달하고 있는 시는 끝에 몰린 한 시절의 처지와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시간적 거리감이 언어적 간명함의 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김수상의 시에는 현실적 궁핍함이 시의 언어로 고스란히 옮겨 앉는 법은 별로 없다.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일상적 삶의 결여를 시적 자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과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성격은 적어도 이번 시집에까지 두루 이어지는 특징이다.
김수상에게 시는 자신의 현실적 곤궁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기긍정의 자질로서 전환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시를 쓰는 것은 그에게 현실을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시인은 쓰면서 세계를 경험한다//쓰는 일 자체가 세계의 새로운 경험,/삶에 시를 가두어 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각광받는 시」)라는 시적 진술은 그에게 시작(詩作)이 한 편의 작품을 넘어 현실을 새롭게 겪는 경험의 장임을 웅변해준다. '궁함이 시적 수월성의 중요한 자양(詩窮而後工)'이라는 전통 시학의 관점을 넘어 그에게 시는 현실적 곤궁을 타개하는 새로운 현실 경험의 장인 셈이다(이 대목은 김수영의 흔적이 어른거리는 지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유사한 두 개의 어휘를 만지작거려 새로운 시적 인식에 이르는 이 시의 작법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말을 가지고 잘 노는 김수상의 시적 작업이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현실을 열어젖히는 새로운 인식 경험의 한 방법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언어를 다루어 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작의 과정은 예상치 못했던 현실을 겪는 과정이며, 그러한 점에서 "시인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는 사람"(「각광받는 시」)인 것이다. 아울러 그에게 이러한 시쓰기는 곤궁의 현실에 갇힌 자신을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포월(包越 : 감싸안으며 넘어서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억울한 일이 많을 때는
이불을 덮고 일부러 땀을 내서 푹 잔다
잠이 안 와도 캄캄한 이불 속에 있으면
언젠가 잠은 찾아온다
땀으로 흥건해진 축축한 몸
혼자서 자주 건넜던 열(熱)의 언덕들을 지나면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이 찾아온다
허물 많던 인간이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
아주 억울한 일이 있을 때는
더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는다
-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 전문(85페이지)
『물구라는 나무』에는 이전의 시편들과 달리 격한 정념의 내용들이 휘발되어 있다. 상실, 자괴, 수치, 궁핍, 설움, 외로움 등의 감정들은 한결 순화(順和)되었고, 이 자리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안심(安心)의 태도가 깊게 배어들어 있다. 김수상의 이전 시편들이 자신의 현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현실을 향한 응전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에 수록된 적잖은 작품들에는 외부의 현실적 상황을 자신의 내면을 통해 해소하려는 자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억울한 일이 많을 때는 이불을 덮고" 잠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한다는 위의 전언은 이전의 시와는 다소 결이 다른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시인의 정념의 열도는 상당히 낮아져 있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자기 내면을 다스림으로써 해소하려는 태도가 본격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인식은 "열(熱)의 언덕들을 지나면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육체적 경험에 바탕을 둔 자연성에 기초하고 있다. 몸의 자연이 현실 세계에 대한 시인의 태도에 중요한 전범이 되고 있는 셈이다. 몸의 경험을 현실에 대한 대응 자세로서 전환하는 시인의 모습은, 한걸음 나아가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을 "허물 많던 인간이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데까지 이른다. 외부의 현실을 내면적으로 해소하는 이러한 태도는 이번 시집의 작품들에서 두루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절 마당에 수양매실 환하다
휘휘 늘어졌다
어떤 가지들은 땅에 닿았다
꽃으로 잘 엮은 주렴 같다
봄바람에 마음을 다 내주었나
느릿느릿 마당을 쓸고 있다
이제는 처지는 것들이 좋다
솟구치는 것들의 진절머리,
힘 풀고 아래로 아래로만 나붓거리는 마음이여,
생각 없이 사는 유순한 마음이여,
늘어진 꽃가지 사이로
내 마음도 한 가지인 양
척, 감겨든다
- 「처지다」 전문(본문 26페이지)
사찰의 마당에 휘늘어진 '수양매실나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시인의 마음이 자연 사물을 보는 시선에 투영된 시에는 "솟구치는 것들의 진절머리"로 압축하여 표현된 열렬한 정념들에 대한 피로가 내장되어 있다. "힘 풀고 아래로 아래로만 나붓거리는" "처지는 것들"의 형상이 고단한 시절을 통과하면서 치렀을 상실감, 울분, 그리움, 자책 등의 격정으로부터 놓여나고 싶다는 심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생각 없이 사는 유순한 마음", 생각 없이 살다니, 시를 통해 미루어보건대 슬픔과 분노를 안으로 안으로만 삭였을 그는 밀려드는 생각들로 인해 마음의 난장을 겪었을 터, 그 고단함이 수양매실의 자연 형상에서 마음을 풀었을 것이다.
"유순한 마음"이란 앞서 살폈던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에 "저절로 맑아지는 해열의 시간"처럼 솟구치는 격정을 안으로 정화하는 과정, 즉 "저절로 맑아지는" 자연의 시간에 자신을 맡기는 상태이다.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화야말로 이번 시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인의 태도는 시집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나서 생각하면 아무 일 아닌데/혼자서 가시처럼 분노를 키운 것은 아닌지"(「무른 가시」) "뒤집어 신으면 되는 것을/남이 미울 때도 뒤집어 생각하고/…(중략)…/혹시 뭐라고 하면, 그냥 한번 웃어줘야지/뒤집으니 정말 속이 편하다"(「양말은 잘못 만들어진 거야」)는 이러한 시적 진술들은 외부 현실을 마음의 문제로 수렴하여 해소하려는 시인의 태도를 담고 있다. 나아가 "꽃진 자리가 꽃 핀 자리/웃던 자리가 울던 자리/이긴 자리가 진 자리"(「때죽나무」) 등의 표현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는 단순히 자연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일시적 반응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전환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에 욕망을 덜고 비우는 과욕(寡慾)이나 무욕(無慾)의 지향이라기보다 안심입명(安心立命), 혹은 순명(順命)에 더 근접한 듯하다.
누가 아픈가 보다
너무 사랑하면 눈이 멀어
날개가 돋는다
나는 공중을 헤엄치며
당신 쪽으로 간다
주저앉아 오래 울어
송진처럼 굳어진 자리
산 하나를 다 업고도
내 몸은 가볍게 출렁인다
바라지 않는 마음이여
눈 뜨고 꽃잠 든다
- 「나비」 전문(본문 44쪽)
김수상의 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념 중 하나는 과거 상실에 기반한 모티프(motif)이며, 자책과 버려짐, 설움과 우수, 그리고 대상을 향한 열렬한 그리움 등은 여기에서 파생된 정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러한 정념의 열도가 한풀 잦아들었으며, 이전의 시에서 시적 장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기이한 시적 유머나 유희의 감각은 약화되었다. 대신 진술은 보다 간명해졌고 시의 발상은 담백해졌다.
이전 시편들이 부재한 '당신'을 향해 날아올라 "공중을 헤엄치"는 정념을 담은 것이라면, 위의 작품은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가볍게 출렁이는" 나비의 형상을 펼쳐 보여준다. 물론 시인이 형상화한 나비의 '출렁임',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저 형상의 배후에는 "주저앉아 오래 울어 송진처럼 굳어진 자리"의 무게가 가로놓여 있다. "주저앉아 오래 울"었던 내상(內傷)이 '꽃잠 든 나비'의 형상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 저 나비의 '출렁임'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어른거린다. 그간 김수상의 시가 보여주었던 정서적 감염력이 절실함과 열도(熱度)에 빚진바 적지 않은데,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니, "산 하나를 다 업고도" "가볍게 출렁이"는 "꽃잠 든" 나비의 형상은 홍역처럼 치른 한 시절을 통과하여 당도한 시인의 현재를 표상하는 심미적 형상일 것이다.
그러나 저 날개를 접고 든 "꽃잠"이 눈을 뜨고 진행되는 잠임을 생각할 때 저 심미적 형상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자연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이입하는 자연(自然)의 서정으로 길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눈 뜨고 꽃잠"에 든 저 "가볍게 출렁이는" "바라지 않는 마음"의 이후 행로(行路)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5
1부
업(業)·15
잘 넘어가는가요·16
영웅좌(英雄座)·17
빛·18
나무 자세·20
첫사랑·21
물구라는 나무·22
하(?), 크게 열릴 하·24
물다·25
처지다·26
창(窓)의 말·27
엔트로피·28
사월·30
산국(山菊)·31
당단풍·32
2부
장미의 나날·35
굽은 등·36
가다 보았네·37
한통속·38
한 다리를 더 건너면 - 리유(吏洧)에게·40
토끼는 귀가 길다·42
나비·44
금강역·45
시(詩), 다녀가다·46
때죽나무·48
측백나무 열매 두 알·50
첼란은 찰랑대고·52
무른 가시·53
양말은 잘못 만들어진 거야·54
쉬운 일 없다·56
3부
점(點)·59
꽃 피기 전, 안심 연밭·60
뺨을 치며 불러보는·62
고관(古館)·64
환호작약·66
컬러 노트·68
샤랄랄라 이끼·69
처서 무렵·70
얼룩·71
사진 한 장·72
각광받는 시·73
중중무진(重重無盡)·76
카프카와 포도·78
헌 신에 대하여·80
돌·82
4부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85
듯의 용법·86
상쾌한 수평의 일·88
구름 밖의 진실한 일·90
바슐라르 선생께·92
참외의 시간·93
성주대교 건너편 여름 구름은 이 세상
구름이 아닌 듯·96
성밖숲 왕버들·98
시 쓸 때마다 생각해도 시를 잘 못 쓰게
되는 자기 최면술·100
붙어 있다가 떨어지는 것들·102
카페 할리스 북쪽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 스케치·104
아름다운 나날·106
샤시 로라 레일·109
해설 | 김문주(문학평론가)
구원으로서의 시 쓰기와 포월(包越)의 시학·113
1부
업(業)·15
잘 넘어가는가요·16
영웅좌(英雄座)·17
빛·18
나무 자세·20
첫사랑·21
물구라는 나무·22
하(?), 크게 열릴 하·24
물다·25
처지다·26
창(窓)의 말·27
엔트로피·28
사월·30
산국(山菊)·31
당단풍·32
2부
장미의 나날·35
굽은 등·36
가다 보았네·37
한통속·38
한 다리를 더 건너면 - 리유(吏洧)에게·40
토끼는 귀가 길다·42
나비·44
금강역·45
시(詩), 다녀가다·46
때죽나무·48
측백나무 열매 두 알·50
첼란은 찰랑대고·52
무른 가시·53
양말은 잘못 만들어진 거야·54
쉬운 일 없다·56
3부
점(點)·59
꽃 피기 전, 안심 연밭·60
뺨을 치며 불러보는·62
고관(古館)·64
환호작약·66
컬러 노트·68
샤랄랄라 이끼·69
처서 무렵·70
얼룩·71
사진 한 장·72
각광받는 시·73
중중무진(重重無盡)·76
카프카와 포도·78
헌 신에 대하여·80
돌·82
4부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시간·85
듯의 용법·86
상쾌한 수평의 일·88
구름 밖의 진실한 일·90
바슐라르 선생께·92
참외의 시간·93
성주대교 건너편 여름 구름은 이 세상
구름이 아닌 듯·96
성밖숲 왕버들·98
시 쓸 때마다 생각해도 시를 잘 못 쓰게
되는 자기 최면술·100
붙어 있다가 떨어지는 것들·102
카페 할리스 북쪽 창가에서 바라본
풍경 스케치·104
아름다운 나날·106
샤시 로라 레일·109
해설 | 김문주(문학평론가)
구원으로서의 시 쓰기와 포월(包越)의 시학·113
저자
저자
김수상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3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가 있다.
2018년 제4회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가 있다.
2018년 제4회 〈박영근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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