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청춘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이 남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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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파괴한 청춘들의 이야기
‘강제징집’의 실체를 파헤친 최초의 대중서
197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로 끌려갔다. 단순한 입대가 아니었다. 신체검사도, 입영명령서도 없이 모든 절차가 무시된 ‘납치’였다. 병영 안에서는 감시와 통제 아래 사상 개조와 동료를 배신하라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 이른바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이다. 공식 집계로만 2921명이 강제징집되고 2388명이 프락치 강요를 당했으며 그중 9명이 숨졌다.
그동안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은 일부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을 뿐 그 전모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 최근에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실상이 점차 공개되고 있는 중이다. 민병래 작가와 강녹진(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이 공동 기획하여 출간한 이 책은 국방의 의무와 군대를 탄압의 도구로 이용한 국가폭력의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생애를 복원한다. 이 책은 ‘파괴된 청춘’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강제징집’의 실체를 파헤친 최초의 대중서
197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로 끌려갔다. 단순한 입대가 아니었다. 신체검사도, 입영명령서도 없이 모든 절차가 무시된 ‘납치’였다. 병영 안에서는 감시와 통제 아래 사상 개조와 동료를 배신하라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 이른바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이다. 공식 집계로만 2921명이 강제징집되고 2388명이 프락치 강요를 당했으며 그중 9명이 숨졌다.
그동안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은 일부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을 뿐 그 전모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 최근에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실상이 점차 공개되고 있는 중이다. 민병래 작가와 강녹진(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이 공동 기획하여 출간한 이 책은 국방의 의무와 군대를 탄압의 도구로 이용한 국가폭력의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의 생애를 복원한다. 이 책은 ‘파괴된 청춘’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고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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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어느 날 갑자기 군대로 납치당한 청년들
어느 날, 경찰이 불법시위에 가담했다며 당신을 연행해간다. 전경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보니 군부대. "뭐 아픈 데 없나?" 같은 몇 가지 질문을 끝으로 바로 전방 부대로 입대 처리된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해, 부모님은 아들이 실종되었다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이 놀라운 상황은 가상이 아니다. 약 40년 전인 1980년대 숱하게 벌어진 일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신체검사도 없이, 보호자인 부모에게 연락도 안 하고 군대로 끌고 가는 사실상의 납치가 횡행했다. 국방부와 군대뿐 아니라 경찰과 대학, 내무부 등 국가 조직이 총체적으로 이 범죄에 관여했다.
이 범죄를 '강제징집'이라 부른다. 강제징집은 정권에 비판적인 학생운동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군사정권의 탄압 전술이었다. 대한민국 남성 청년이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를 수용소처럼 이용해, 학생들을 가두고 감시했으며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강제징집된 인원은 확인된 것만 2921명, 이 중 2388명이 프락치 공작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문사한 청년도 9명이다.
피해자들의 삶으로 재구성한 국가폭력의 실태
이 책의 1부에서는 희생자 7명의 짧은 생애를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군대로 끌려가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생생히 재구성한다. 정성희는 열아홉 나이에 강제징집되어 보안사의 프락치 공작에 시달리다 초소에서 목에 네 발의 총상을 입고 죽는다. 그리고 자살로 발표되었다. 이윤성은 2대 독자이고 아버지 나이가 예순을 넘어 당시 병역법 기준으로는 현역 복무 대상이 아니었지만, 경찰의 강요로 입대하였다. 그는 제대를 불과 8일 앞두고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다 영내에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된다. 역시 자살이라고 했다. 김두황은 경찰에 불법 연행되어 열흘 가까이 폭행을 당하다가 입대하고, 3개월 만에 해안 초소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다. 이 역시 자살로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슬픔에 돌아가셨다.
그 시기 군대 내에서 일어난 모든 죽음은 자살이었다. 시신은 빠르게 군 주관의 부검을 거쳐 화장되었고, 가족에게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한희철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살'한 데 대하여 "하등의 이의 없으며 차후 본 건으로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치 않을 것임을 서약하며 이에 각서를 제출합니다"라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해야 했다. 국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족들을 감시하고 미행하기도 했다. 보안사는 이윤성 가족의 동향을 1995년까지 감시했고, 전화를 도청하는 기미도 보였다. 사망한 김용권의 어머니 박명선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며 여기저기 다니자, 경찰이 출입을 감시하고 어느 날부터는 아예 미행까지 했다. 군대와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학생운동 탄압을 위한 조직적 국가범죄
강제징집은 박정희정권 때 처음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3선개헌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연행해 입영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슈에 따라 벌어진 시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강제징집을 활용했다. 전두환은 이를 발전시켜 '학생운동권'이라는 집단을 겨냥한 탄압 전술로 완성한다. 전두환은 1981년 4월 2일 "소요 관련 학생을 전방부대에 입영토록 하라"라는 지시를 내리고, 몇 개월의 준비를 거쳐 11월 2일 「소요 관련 대학생 특별조치(안)」가 마련된다. 나이, 신체검사 실시, 신체 상태 등 어떤 것도 고려하지 말고 징집하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연행한 학생들을 군부대로 호송했고, 대학은 강제 휴학 처리를 해주며 호응했다.
입대시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학생운동으로 복귀하는 걸 막기 위해 전향을 강요했고, 학생운동 조직의 정보를 불고 프락치 활동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녹화공작이다. 1981년 강제징집된 정재홍의 증언이다.
"들어가니 완전히 지옥이었죠. 명찰과 계급장이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허리띠를 풀은 상태에서 폭력이 시작되었죠. 무조건 때렸어요. 얼차려 주고 주먹으로 가슴과 배를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엄청 맞았습니다. 그다음부터 진술서를 썼죠. 오전에 쓰면 오후에 검사하러 들어오고, 저녁이면 그다음 날 오전에 검사하러 들어왔어요. 하루에 두 번씩 검사를 하는데 매 맞는 시간입니다. 자기들이 아는 내용이 없거나 새로운 사실이 없으면 정신봉이라고 새겨진 팔각 형태의 몽둥이로 온몸을 때렸습니다. 몽둥이 찜질이죠. 엉덩이만 때린 것이 아닙니다. 등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에 멍이 들 정도였어요." -232쪽.
보안사는 이런 심사, 순화, 프락치 활동 강요 과정을 개인별 '존안자료' 안에 기록했는데, 10만 쪽 분량이 넘는 2388개의 개인별 존안자료가 존재한다.
국가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
2부에서 저자는 이 '강제징집 및 전향·프락치 공작(강전치)'에는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같은 시기의 다른 인권유린 사건과 차별되는 심각성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정치적 반대 세력을 파괴하려는 분명한 목적으로 실행된 집단박해였다. 야당도 언론도 숨죽이고 있던 당시, 정권의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은 학생운동권이었다. 정권은 학생운동권을 적으로 보고 강전치 공작을 통해 분쇄하려 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처럼 정치적 목적의 집단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사건은 일부 정부조직이나 공직자의 일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실행되었다. 집권자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병무청, 치안본부에다가 문교부까지 다수의 행정기구가 동원되어 국민 중 특정 집단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했다. 국가 차원의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까닭이다.
셋째, 군대가 탄압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강제징집은 국방의 의무 수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신체검사에 미달해도 입대시키고 전방에서 감시했다. 병사를 수시로 취조하고 구타하기도 했다. 계엄령이나 쿠데타처럼 군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더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전치 공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의문사한 이들은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었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관련된 부처 중 단 한 곳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으며,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하면서도 누가 어떻게 죽음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파괴된 청춘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누가 이 범죄에 관여했는지 밝히고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껏 한국에서는 군대의 국가폭력은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 학살은 물론 4.3 제주와 5.18 광주에서의 학살도 처벌받지 않았다. 군부 쿠데타에도 관대했다. 저자는 그런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2024년 계엄령과 내란 시도로 나타났으리라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의 굴레를 벗고, 반공국가의 틀을 해체해야 한다. 강전치 공작의 진실 규명이 중요한 이유이다.
어느 날, 경찰이 불법시위에 가담했다며 당신을 연행해간다. 전경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보니 군부대. "뭐 아픈 데 없나?" 같은 몇 가지 질문을 끝으로 바로 전방 부대로 입대 처리된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해, 부모님은 아들이 실종되었다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이 놀라운 상황은 가상이 아니다. 약 40년 전인 1980년대 숱하게 벌어진 일이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신체검사도 없이, 보호자인 부모에게 연락도 안 하고 군대로 끌고 가는 사실상의 납치가 횡행했다. 국방부와 군대뿐 아니라 경찰과 대학, 내무부 등 국가 조직이 총체적으로 이 범죄에 관여했다.
이 범죄를 '강제징집'이라 부른다. 강제징집은 정권에 비판적인 학생운동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군사정권의 탄압 전술이었다. 대한민국 남성 청년이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를 수용소처럼 이용해, 학생들을 가두고 감시했으며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강제징집된 인원은 확인된 것만 2921명, 이 중 2388명이 프락치 공작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문사한 청년도 9명이다.
피해자들의 삶으로 재구성한 국가폭력의 실태
이 책의 1부에서는 희생자 7명의 짧은 생애를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군대로 끌려가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생생히 재구성한다. 정성희는 열아홉 나이에 강제징집되어 보안사의 프락치 공작에 시달리다 초소에서 목에 네 발의 총상을 입고 죽는다. 그리고 자살로 발표되었다. 이윤성은 2대 독자이고 아버지 나이가 예순을 넘어 당시 병역법 기준으로는 현역 복무 대상이 아니었지만, 경찰의 강요로 입대하였다. 그는 제대를 불과 8일 앞두고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다 영내에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된다. 역시 자살이라고 했다. 김두황은 경찰에 불법 연행되어 열흘 가까이 폭행을 당하다가 입대하고, 3개월 만에 해안 초소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다. 이 역시 자살로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슬픔에 돌아가셨다.
그 시기 군대 내에서 일어난 모든 죽음은 자살이었다. 시신은 빠르게 군 주관의 부검을 거쳐 화장되었고, 가족에게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한희철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살'한 데 대하여 "하등의 이의 없으며 차후 본 건으로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치 않을 것임을 서약하며 이에 각서를 제출합니다"라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해야 했다. 국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족들을 감시하고 미행하기도 했다. 보안사는 이윤성 가족의 동향을 1995년까지 감시했고, 전화를 도청하는 기미도 보였다. 사망한 김용권의 어머니 박명선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며 여기저기 다니자, 경찰이 출입을 감시하고 어느 날부터는 아예 미행까지 했다. 군대와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학생운동 탄압을 위한 조직적 국가범죄
강제징집은 박정희정권 때 처음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3선개헌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연행해 입영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슈에 따라 벌어진 시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강제징집을 활용했다. 전두환은 이를 발전시켜 '학생운동권'이라는 집단을 겨냥한 탄압 전술로 완성한다. 전두환은 1981년 4월 2일 "소요 관련 학생을 전방부대에 입영토록 하라"라는 지시를 내리고, 몇 개월의 준비를 거쳐 11월 2일 「소요 관련 대학생 특별조치(안)」가 마련된다. 나이, 신체검사 실시, 신체 상태 등 어떤 것도 고려하지 말고 징집하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연행한 학생들을 군부대로 호송했고, 대학은 강제 휴학 처리를 해주며 호응했다.
입대시키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학생운동으로 복귀하는 걸 막기 위해 전향을 강요했고, 학생운동 조직의 정보를 불고 프락치 활동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녹화공작이다. 1981년 강제징집된 정재홍의 증언이다.
"들어가니 완전히 지옥이었죠. 명찰과 계급장이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허리띠를 풀은 상태에서 폭력이 시작되었죠. 무조건 때렸어요. 얼차려 주고 주먹으로 가슴과 배를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엄청 맞았습니다. 그다음부터 진술서를 썼죠. 오전에 쓰면 오후에 검사하러 들어오고, 저녁이면 그다음 날 오전에 검사하러 들어왔어요. 하루에 두 번씩 검사를 하는데 매 맞는 시간입니다. 자기들이 아는 내용이 없거나 새로운 사실이 없으면 정신봉이라고 새겨진 팔각 형태의 몽둥이로 온몸을 때렸습니다. 몽둥이 찜질이죠. 엉덩이만 때린 것이 아닙니다. 등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에 멍이 들 정도였어요." -232쪽.
보안사는 이런 심사, 순화, 프락치 활동 강요 과정을 개인별 '존안자료' 안에 기록했는데, 10만 쪽 분량이 넘는 2388개의 개인별 존안자료가 존재한다.
국가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
2부에서 저자는 이 '강제징집 및 전향·프락치 공작(강전치)'에는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같은 시기의 다른 인권유린 사건과 차별되는 심각성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정치적 반대 세력을 파괴하려는 분명한 목적으로 실행된 집단박해였다. 야당도 언론도 숨죽이고 있던 당시, 정권의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은 학생운동권이었다. 정권은 학생운동권을 적으로 보고 강전치 공작을 통해 분쇄하려 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처럼 정치적 목적의 집단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사건은 일부 정부조직이나 공직자의 일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실행되었다. 집권자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병무청, 치안본부에다가 문교부까지 다수의 행정기구가 동원되어 국민 중 특정 집단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했다. 국가 차원의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까닭이다.
셋째, 군대가 탄압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강제징집은 국방의 의무 수행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신체검사에 미달해도 입대시키고 전방에서 감시했다. 병사를 수시로 취조하고 구타하기도 했다. 계엄령이나 쿠데타처럼 군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더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강전치 공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의문사한 이들은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었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관련된 부처 중 단 한 곳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으며,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하면서도 누가 어떻게 죽음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파괴된 청춘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누가 이 범죄에 관여했는지 밝히고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껏 한국에서는 군대의 국가폭력은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 학살은 물론 4.3 제주와 5.18 광주에서의 학살도 처벌받지 않았다. 군부 쿠데타에도 관대했다. 저자는 그런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2024년 계엄령과 내란 시도로 나타났으리라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의 굴레를 벗고, 반공국가의 틀을 해체해야 한다. 강전치 공작의 진실 규명이 중요한 이유이다.
목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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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1부 먼저 간 그대들
1장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열아홉 살의 죽음 ┃ 정성희2장 제대 8일 전 목을 맸다고? ┃ 이윤성3장 의문사한 친구를 위한 40여 년 ┃ 김두황4장 22살 나이에 한 선택, 누구의 책임인가 ┃ 한영현5장 군대에서 의문사한 참전용사의 아들 ┃ 한희철6장 아들 잃은 엄마의 한 맺힌 싸움 ┃ 김용권7장 부당한 죽음의 속박은 사라지지 않는다 ┃ 최우혁
2부 제노사이드에 버금가는 국가폭력
1장 군대라는 이름의 수용소2장 고문과 전향 및 프락치 강요, 그리고 의문사3장 가해자는 누구인가4장 제노사이드에 버금가는 국가폭력
글을 마치며
부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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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민병래
1960년 강원 출생. 생업에 종사하면서, 1998년부터 한글을 모르는 노인과 이주민을 상대로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다. 2016년 촛불 광장에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민병래의 사수만보』,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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