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망과 파프리카(문학세계현대시인선 221)
이희명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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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명 시인은 사랑을 받들고 갈망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면서, 사랑이 곧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존재의 언어’ 탐구자다. 삶의 오랜 연륜이 쌓인 뒤 ‘존재의 집’(시詩) 짓기에 들어섰지만, 마음자리를 조신하게 낮추면서도 사랑으로 귀결되는 삶을 치열하게 지향하는 시편들은 감성과 언어 감각이 예민하고 섬세한 서정抒情의 옷을 입은 그 도정道程의 음영들이 교차하는 서사敍事를 다채롭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 풍진세상을 살아야 하는 여성으로서는 아픔과 상실감에서 자유롭지 않고 받들며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길 위에서 때로는 길항拮抗하는 마음과도 마주치지만 순응과 비애의 긍정적 변용, 겸허한 내려놓기의 자성自省으로 나아가는 결기를 내비치기도 한다.
언어의 흐름이 활달하고 유장하면서도 미세한 기미들까지 첨예한 감각으로 포착하면서 특유의 발랄한 발상과 감성적 사유로 감싸 떠올리는 은유隱喩의 결과 무늬들이 매력적이다. 또한 우주와 거시적인 자연 현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미시적 심상心象 풍경으로 변용하는 감정이입과 투사 기법도 시적 개성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풍진세상을 살아야 하는 여성으로서는 아픔과 상실감에서 자유롭지 않고 받들며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길 위에서 때로는 길항拮抗하는 마음과도 마주치지만 순응과 비애의 긍정적 변용, 겸허한 내려놓기의 자성自省으로 나아가는 결기를 내비치기도 한다.
언어의 흐름이 활달하고 유장하면서도 미세한 기미들까지 첨예한 감각으로 포착하면서 특유의 발랄한 발상과 감성적 사유로 감싸 떠올리는 은유隱喩의 결과 무늬들이 매력적이다. 또한 우주와 거시적인 자연 현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미시적 심상心象 풍경으로 변용하는 감정이입과 투사 기법도 시적 개성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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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눈이 밝아지면 모든 사물이 그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고 순기능順機能만 증폭시켜 주지는 않는다. 눈이 흐려서 제대로 보지 못하던 것들 역시 환하게 보이므로 그렇지 않은 기능도 강화되게 마련이다. 시인은 시각적(감각적)인 눈으로만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차원을 넘어선 사유와 '마음눈'으로 그 이면까지 깊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다.
눈동자를 바꿨다
오, 눈부신 세상
노랑나비 날개 끝에 얹힌 하얀 비애
세상이 환해져 작은 얼룩도 또렷이 보인다
타박타박, 맨발로 저문 강둑을 걷는 사람아
어젯밤엔
꿈길까지 환해져
한때 흐릿하던
그대 뒷모습도 또렷하게 보였다
─「눈부신 비애」 전문
역설적逆說的인 뉘앙스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시에서 화자는 눈 수술을 하고 나니 세상이 환하게 보여 감탄할 정도로 눈부시지만, 비애와 얼룩 등 그 눈부심의 또 다른 이면이 마음눈에 환히 보인다는 사실을 극대화해 떠올린다. 밝아진 마음눈은 움직이는 노란빛에 얹힌 하얀 비애, 환하므로 또렷하게 보이는 작은 얼룩, 그 근원을 시사示唆하는 상실의 비애까지 선명하게 되살려 반추하게 한다.
게다가 눈이 밝아진 뒤에는 꿈길까지 환해져서 "맨발로 저문 강둑을 걷는 사람"(헤어진 사람)의 한때 흐릿하던 "뒷모습도 또렷하게 보였다"는 대목이 말해주듯이, 잊혀가던 상실의 비애가 꿈길에서조차 또렷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환기喚起한다. 밝아진 눈은 세상을 눈부시게 바라보게 하면서도 그 이면의 뒷모습까지 보이는 비애를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눈부신 세상=눈부신 비애'라는 등식도 낳게 한다.
하지만 시인은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라는 시에서 자신의 마음눈이 밝지 않다고 자성하고 있어 그 까닭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역시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진정성을 담보로 언어유희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밀한 심중心中을 내비치면서 시적 묘미를 증폭시킨다.
나이 들어도 모르는 게 많아요 홍옥 홍로 부사 이름을 잘 몰라서 그냥 사과라고 불러요 좀 더 다정하게 불러주면 좋을 것을요 설탕과 소금도 헛갈려서 말썽이지요 이해와 오해도 자주 혼동해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고 하네요
사람과 사랑, 같은 말 아닌가요? 저기 사랑이 걸어오고 있어요 사랑이 쌓여서 사람이 되었어요 사랑이 없었다면 어찌 제 가슴이 이리 아프겠어요 눈물이 나네요 붉어진 가을 입술을 씻어 내리는 저 빗소리 굴러 내리며 뒹굴며 저도 우나 봐요 대낮에 가슴을 후벼 파더라고요
나이 들어 모르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 사람인지 사랑인지 좀 모르면 어때요 피망도 맛있기만 한 걸요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오래 생각했어요
이젠 생강할래요 꿀 한 스푼 넣으니 알싸하고 이리 개운한걸요
사람해요! 당신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 전문
이 시의 첫 연에서 시인은 경험이 오래 쌓였음에도 '사과'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해 구체적인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지 못하고, 겉모양이 비슷한 '설탕'과 '소금', 뜻이 정반대인 '이해'와 '오해', 발음과 본질이 비슷한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이 헛갈리거나 혼동하게 하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하지만 둘째 연에서는 '사람'과 '사랑'에만 무게중심을 두면서 그 함수관계에 천착穿鑿한다. '사람=사랑'이라는 등식으로 '사랑'이 쌓인 '사람'인 화자가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며 울게 되고 대낮에 가슴 후벼 파이게도 된다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첫 연에서의 '모름'이 '앎'으로 환치換置되는 건 비애에 대한 '마음눈'의 밝음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절절함의 소산이기도 할 것이다.
이어서 셋째 연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적시摘示한 '절대지'보다는 인간의 차원으로 돌아와 '무지'에 오히려 행복(위안)을 느끼게 된다는 반전反轉을 통해 오래 생각했으면서도 판단유보로 회귀해 보기도 한다. "나이 들어 모르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라는 고백은 아는 것을 모르는 척 살고 싶다는 역설로도 보인다.
이희명의 시는 대체로 서사적 서정의 빛깔을 띠고 있으며, 언어의 흐름이 유장하고 활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교차하거나 서로 포개지는 묘미를 거느리고, 미세한 기미들까지도 첨예한 감각으로 포착하면서 은유의 옷을 입히는 감성적인 사유가 돋보인다.
눈동자를 바꿨다
오, 눈부신 세상
노랑나비 날개 끝에 얹힌 하얀 비애
세상이 환해져 작은 얼룩도 또렷이 보인다
타박타박, 맨발로 저문 강둑을 걷는 사람아
어젯밤엔
꿈길까지 환해져
한때 흐릿하던
그대 뒷모습도 또렷하게 보였다
─「눈부신 비애」 전문
역설적逆說的인 뉘앙스의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시에서 화자는 눈 수술을 하고 나니 세상이 환하게 보여 감탄할 정도로 눈부시지만, 비애와 얼룩 등 그 눈부심의 또 다른 이면이 마음눈에 환히 보인다는 사실을 극대화해 떠올린다. 밝아진 마음눈은 움직이는 노란빛에 얹힌 하얀 비애, 환하므로 또렷하게 보이는 작은 얼룩, 그 근원을 시사示唆하는 상실의 비애까지 선명하게 되살려 반추하게 한다.
게다가 눈이 밝아진 뒤에는 꿈길까지 환해져서 "맨발로 저문 강둑을 걷는 사람"(헤어진 사람)의 한때 흐릿하던 "뒷모습도 또렷하게 보였다"는 대목이 말해주듯이, 잊혀가던 상실의 비애가 꿈길에서조차 또렷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환기喚起한다. 밝아진 눈은 세상을 눈부시게 바라보게 하면서도 그 이면의 뒷모습까지 보이는 비애를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눈부신 세상=눈부신 비애'라는 등식도 낳게 한다.
하지만 시인은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라는 시에서 자신의 마음눈이 밝지 않다고 자성하고 있어 그 까닭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역시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진정성을 담보로 언어유희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밀한 심중心中을 내비치면서 시적 묘미를 증폭시킨다.
나이 들어도 모르는 게 많아요 홍옥 홍로 부사 이름을 잘 몰라서 그냥 사과라고 불러요 좀 더 다정하게 불러주면 좋을 것을요 설탕과 소금도 헛갈려서 말썽이지요 이해와 오해도 자주 혼동해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고 하네요
사람과 사랑, 같은 말 아닌가요? 저기 사랑이 걸어오고 있어요 사랑이 쌓여서 사람이 되었어요 사랑이 없었다면 어찌 제 가슴이 이리 아프겠어요 눈물이 나네요 붉어진 가을 입술을 씻어 내리는 저 빗소리 굴러 내리며 뒹굴며 저도 우나 봐요 대낮에 가슴을 후벼 파더라고요
나이 들어 모르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 사람인지 사랑인지 좀 모르면 어때요 피망도 맛있기만 한 걸요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오래 생각했어요
이젠 생강할래요 꿀 한 스푼 넣으니 알싸하고 이리 개운한걸요
사람해요! 당신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 전문
이 시의 첫 연에서 시인은 경험이 오래 쌓였음에도 '사과'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해 구체적인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지 못하고, 겉모양이 비슷한 '설탕'과 '소금', 뜻이 정반대인 '이해'와 '오해', 발음과 본질이 비슷한 '사람'과 '사랑'이라는 말이 헛갈리거나 혼동하게 하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하지만 둘째 연에서는 '사람'과 '사랑'에만 무게중심을 두면서 그 함수관계에 천착穿鑿한다. '사람=사랑'이라는 등식으로 '사랑'이 쌓인 '사람'인 화자가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며 울게 되고 대낮에 가슴 후벼 파이게도 된다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첫 연에서의 '모름'이 '앎'으로 환치換置되는 건 비애에 대한 '마음눈'의 밝음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절절함의 소산이기도 할 것이다.
이어서 셋째 연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적시摘示한 '절대지'보다는 인간의 차원으로 돌아와 '무지'에 오히려 행복(위안)을 느끼게 된다는 반전反轉을 통해 오래 생각했으면서도 판단유보로 회귀해 보기도 한다. "나이 들어 모르는 게 많아서 행복해요"라는 고백은 아는 것을 모르는 척 살고 싶다는 역설로도 보인다.
이희명의 시는 대체로 서사적 서정의 빛깔을 띠고 있으며, 언어의 흐름이 유장하고 활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교차하거나 서로 포개지는 묘미를 거느리고, 미세한 기미들까지도 첨예한 감각으로 포착하면서 은유의 옷을 입히는 감성적인 사유가 돋보인다.
목차
목차
Ⅰ
눈부신 비애 ______ 10
관전자 ______ 11
돌배나무엔 꽃구름 하얗게 피어나고 ______ 12
명랑한 계란찜 ______ 14
낙화 ______ 16
귀소歸巢 ______ 18
압화 ______ 20
발리를 끄다 ______ 22
나지막한 봄날 ______ 24
말들의 세계 ______ 26
한낮의 농담 ______ 28
재채기 변주곡 ______ 30
골목 풍경 ______ 32
발화 ______ 34
어린 왕자에게 ______ 36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 ______ 38
Ⅱ
별후 ______ 42
어미의 땅 ______ 44
민들레를 그리다 ______ 46
기억의 먼지 ______ 48
돈, 돈 ______ 50
오독 ______ 52
허공 ______ 54
그 밤의 귀소 ______ 56
한로 ______ 58
지붕 ______ 60
따뜻한 조문 ______ 62
환절기 ______ 64
참싸리꽃 ______ 66
처서 무렵 ______ 67
노인보호구역 ______ 68
Ⅲ
퍼즐 맞추기 ______ 72
모놀로그 ______ 74
장마를 건너는 방법 ______ 76
죽은 사람은 모두 착하다 ______ 78
환생 ______ 80
어머니의 분홍신 ______ 82
슬픔의 빛깔 ______ 84
기름 짜러 가는 여자 ______ 86
그릇 이야기 ______ 88
이름을 버리다 ______ 90
암전 ______ 92
불로不老 ______ 94
어치의 꿈 ______ 96
수묵水墨 ______ 98
보물찾기 ______ 100
황태 ______ 102
허기 ______ 104
Ⅳ
스톡홀름 증후군 ______ 108
야간 산행 ______ 110
가출 ______ 112
스케치 ______ 114
열두 폭 치마 그러안고 ______ 116
돌아오지 않는 강 ______ 118
우리들의 보석상자 ______ 120
을숙도 유감 ______ 122
백내장 ______ 123
리본 찾기 ______ 124
붉은 잠 ______ 126
소리가 외출한 날 ______ 128
마이삭 ______ 130
설산을 오르다 ______ 132
붉은 망주석 ______ 134
흐린 날 펼쳐보는 낡은 수첩 하나 ______ 136
┃해설┃이태수(시인)
사랑인 사람의 길 걷기 ______ 139
눈부신 비애 ______ 10
관전자 ______ 11
돌배나무엔 꽃구름 하얗게 피어나고 ______ 12
명랑한 계란찜 ______ 14
낙화 ______ 16
귀소歸巢 ______ 18
압화 ______ 20
발리를 끄다 ______ 22
나지막한 봄날 ______ 24
말들의 세계 ______ 26
한낮의 농담 ______ 28
재채기 변주곡 ______ 30
골목 풍경 ______ 32
발화 ______ 34
어린 왕자에게 ______ 36
피망과 파프리카를 잘 구별하지 못해요 ______ 38
Ⅱ
별후 ______ 42
어미의 땅 ______ 44
민들레를 그리다 ______ 46
기억의 먼지 ______ 48
돈, 돈 ______ 50
오독 ______ 52
허공 ______ 54
그 밤의 귀소 ______ 56
한로 ______ 58
지붕 ______ 60
따뜻한 조문 ______ 62
환절기 ______ 64
참싸리꽃 ______ 66
처서 무렵 ______ 67
노인보호구역 ______ 68
Ⅲ
퍼즐 맞추기 ______ 72
모놀로그 ______ 74
장마를 건너는 방법 ______ 76
죽은 사람은 모두 착하다 ______ 78
환생 ______ 80
어머니의 분홍신 ______ 82
슬픔의 빛깔 ______ 84
기름 짜러 가는 여자 ______ 86
그릇 이야기 ______ 88
이름을 버리다 ______ 90
암전 ______ 92
불로不老 ______ 94
어치의 꿈 ______ 96
수묵水墨 ______ 98
보물찾기 ______ 100
황태 ______ 102
허기 ______ 104
Ⅳ
스톡홀름 증후군 ______ 108
야간 산행 ______ 110
가출 ______ 112
스케치 ______ 114
열두 폭 치마 그러안고 ______ 116
돌아오지 않는 강 ______ 118
우리들의 보석상자 ______ 120
을숙도 유감 ______ 122
백내장 ______ 123
리본 찾기 ______ 124
붉은 잠 ______ 126
소리가 외출한 날 ______ 128
마이삭 ______ 130
설산을 오르다 ______ 132
붉은 망주석 ______ 134
흐린 날 펼쳐보는 낡은 수첩 하나 ______ 136
┃해설┃이태수(시인)
사랑인 사람의 길 걷기 ______ 139
저자
저자
이희명
경북 선산 출생, 2018년 《대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3년 대구문화예술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고 대구문인협회 회원이며 '다락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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