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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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 속에 녹아든 철학의 뼈
시인 김인숙은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철학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철학은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명제의 타당성을 확인한다. 직관과 통찰과 시적 자유로 무장된 시인의 상상력은 철학적 상상력을 가히 초월한다. 시가 철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철학을 포섭한다.
시는 집에 집을 들이는 일이다. 읽는 자는 그가 가진 읽기의 집에 쓴 자의 쓰기의 집을 들인다. 시를 쓰는 자는 그가 가진 쓰기의 집에 사물이나 사태의 집을 들인다. 집을 들이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요컨대 시를 짓는 일이나 집을 짓는 일이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집 속의 집은 이 집도 저 집도 아닌 제3의 집이다. 바로 거기서 이해나 해석은 물론, 창작의 독립성이 성립한다. 김인숙의 시에 대한 나의 독해는 궁극적으로 내 방식의 독해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글로 쓴 해설은 김인숙의 것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 바로 독자의 것이다. 집이 집으로 이어지는 집의 연쇄가 읽고 쓰고 읽기인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김인숙의 시를 읽는 나의 방식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길잡이 말의 안내를 받는다.
1)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2)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3)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4)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5)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이는 1936년 4월 2일, 로마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행한 강연, 〈횔더린과 시의 본질〉에서 다섯 개의 길잡이 말을 내세운 것과 동일한 방식이며, 칸트Immanuel Kant가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의 출발점으로서 내세운 순수오성개념(12범주)과 유사한 형식의 전개라 할 수 있다.
김인숙의 시집 『눈부신 창문』은 시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정교하게 교직交織되어 있다. 이 시집은 삶과 우주, 존재와 관계, 시간과 공간, 사랑과 초월을 넘나드는 깊은 사유의 길을 개척한다. 시인은 익숙한 일상적 이미지와 우주 탐사선 '솔라 오비터' 같은 과학적 이미지가 어우러진 독특한 조형미를 통해 우리 존재가 처한 다층적 현실을 포착한다.
이 해설은, 시인 김인숙의 시적 사유의 핵심과 시적 의미를 중심으로 하여, 시 속에 녹아든 철학의 뼈를 발라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존재의 연결과 사랑의 흐름
시 「스쳐가다」는, 인간 존재의 관계성과 일시성, 그리고 우주적 연대성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스침'이라는 행위를 통해 존재들이 서로 맞닿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탐구한다.
솔라 오비터가 금성을 스쳐갔다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아니야
미소만 스쳐갔을 거야
우주 같은 호수,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스치면서 부력을 얻어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 떠간다
먼 길 혼자 힘으로는 가지 못하지
사람이 사람을 스치면서 용기를 얻고 얻은 용기로 다음 사람을 스쳐 또 다음 사람으로 건너가는 거야
그런데, 얼마나 건너야 끝에 닿을까
담방담방 태양계를 떠서 가는 솔라 오비터
나도 모르게 나의 마그마 근처를 스쳐간 사람, 생의 어느 길목을 어느 시간대로 건너가고 있는지
체온을 남기고 새는
출렁이는
가지의 힘을 얻어 가지를 떠나는데
─「스쳐가다」 전문
「스쳐가다」라는 시의 제목은 순간적 접촉, 지나침,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과 변화를 함축한다. 시인은 유럽우주국ESA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동 개발한 태양 탐사선 '솔라 오비터'가 금성을 스쳐 지나가 궤도를 수정하는 과학적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에는 우주적 규모의 '스침'이 개별적 인간 존재와 맞닿는 지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스쳐가다'는 '닿는 듯, 닿지 않는 듯 지나간다'는 말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삼라만상이 서로를 스쳐간다. 시간 위의 모든 존재가 스쳐간다. 시간은 변화와 운동의 근원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원자가 원자를 스쳐가고, 입자가 입자를 스쳐가며 바람이 바람을 스쳐간다. 이념이 이념을 스쳐가고 마음이 마음을 스쳐간다. 그것은 짧은 마주침이면서 동시에, 원래부터 있었던 영원한 마주침이다. 우연성과 필연성의 변증법적 지양이 그것이다. 우주의 원리가 그러하다. 시인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솔라 오비터'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시에 배치함으로써, '스침'은 단순한 물리적 접촉을 넘어 거대한 우주 속 존재들의 미묘한 상호작용과 연결된다. 이는 한편으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 즉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성을 상기시킨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접촉에서 '스침'과 같은 미세한 만남이 존재의 의미를 형성한다고 보지 않았던가.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 아니야 / 미소만 스쳐갔을 거야"라는 이 부분은 물리적 접촉이 아닌 '미소'라는 비가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정서적 연결을 시사한다. 여기서 '스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존재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받는 의미 있는 교차점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를 뜬다'는 비유로, 인간관계의 힘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우주적 운동으로 재해석한다. 시에서 '팔꿈치', '손등', '미소'로 표현되는 '스침'은 물리적 접촉을 넘어 감정과 정신의 미묘한 전달을 의미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Dasein in der Welt' 개념과 맞닿는다. 인간 존재는 세계 속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그 '스침'을 통해 자기 존재를 자각한다.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스치면서 부력을 얻어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 떠간다"는 구절의 '부력'과 '무중력의 수면' 이미지는 존재가 관계 속에서 받는 영향을 상징한다. 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관계론적 존재론'과 연결되어, 개별 존재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유동적 존재임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스치면서 용기를 얻고 얻은 용기로 다음 사람을 스쳐 또 다음 사람으로 건너가는 거야"라는 구절은 한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타인과 공유되고 전파되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곧 인간관계의 연쇄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 사회의 고립과 단절을 넘어, 인간 사이의 연대와 상호작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것이다. 존재는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부력을 얻으며 흐르는 존재임을 말한다.
이 시는 또한 '얼마나 건너야 끝에 닿을까'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존재의 무한성과 여정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삶은 끊임없는 스침과 이어짐, 용기와 전이가 반복되는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와 '너', 그리고 '우주'와 연결된다. 이러한 사유는 시인이 전통적인 인간 중심 서사를 넘어 우주적 스케일에서 존재론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는 '체온을 남기고 새는', '가지의 힘을 얻어 가지를 떠나는데'라는 자연적 이미지로 마무리되며, 존재의 흔적과 생명의 연속성을 표현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기氣' 사상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기는 우주 만물의 생명 에너지로, 흐름과 순환을 통해 존재가 유지되고 변한다는 개념이다.
요약하자면, 시 「스쳐가다」는 미시적 접촉에서 시작해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되는 존재론적 성찰이다. '스침'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며, 각 존재가 타자와 만나며 자기 존재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간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어우러진 이 시는 관계성과 일시성, 그리고 존재의 유한성과 무한성을 포괄하는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의 중반부에 "나도 모르게 나의 마그마 근처를 스쳐간 사람, 생의 어느 길목을 어느 시간대로 건너가고 있는지"라는 진술을 슬쩍 비춤으로써 시인은 지나간 어느 사랑을 초월적 입장에서 아련히 바라보는 견자見者의 서정도 곁들인다.
스침은 나아가 숲길과 몽상가의 스침으로 이어진다.
2.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시간, 성장, 그리고 모순적 존재
시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는, '오전', '숲길', '의자', 그리고 '몽상가'라는 시적 이미지들을 통해 시간, 존재, 사유의 관계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특히 '오전'이라는 시간대는 '깨어남'과 '가능성'의 순간으로서, 존재가 잠에서 깨어 현실과 만나기 전의 미묘한 경계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오전'이라는 시간 개념을 통해 사유하고 성장하는 존재의 모순성과 시간적 중첩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둠을 건너와 반쯤 검은 물이 든 오전이 의자 위에 앉아 있어 반 백 반 흑이네 키가 작은 아이에게 정오까지 기다려 보라고 할까 성장 호르몬은 깊은 밤 잠잘 때만 나온다는데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사색은 허물어질 거야
당신은 의자를 잡고 서서 운동을 하고 나는 의자 위에 서서 정리를 해요 싱크대 수납장의 성장판이 닫혔어요 우리는 각자의 의자를 들고 숲길로 갈까요
정오의 숲길은 의자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
아이가 프라하에서 셀카를 찍어 보냈어 도로변의 아파트가 성곽 같네 성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모르지 밀크 브라운의 밝은 머리 색깔은 국내에서 뽑은 거야 근데 눈썹만 유독 검은색이네
석양이 내린 황금 골목길에서 카프카를 만나 봐
더운 날의 변신은 힘들어
키는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 아니지
뾰족지붕 아래 릴케의 색 바랜 의자를 치워 버릴까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전문
"어둠을 건너와 반쯤 검은 물이 든 오전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는 시적 이미지는 오전이라는 시간이 빛과 어둠, 성장과 멈춤,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상태임을 암시한다. 성장 호르몬이 밤에만 분비된다는 생물학적 사실은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며,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가는 정신의 성장 가능성을 상징한다. '반 백 반 흑'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색채의 대비를 넘어서 시간과 존재의 불확실한 상태, 즉 '미완성의 완성'을 뜻한다. 또한, 백과 흑이라는 색채 대비를 통해 '빛과 어둠', '알려짐과 미지' 사이의 긴장감을 현시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음양陰陽 사상과도 맞닿아 있어, 존재의 이중성, 즉 상반되면서도 보완적인 힘들의 조화를 시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숲길'은 자연과 인간 존재가 만나는 공간이며,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에서처럼 내면의 자아 탐색과 성찰의 길로 해석될 수 있다.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깊은 층위로 들어가는 여정이며,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오솔길holzwege'을 연상시킨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Dasein를 '세계 속에 내던져진 존재'로 보고, 이 존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길'과 '걷기'로 비유한다. 또한 이 부분에서 시인은 '의자'와 '몽상가'를 등치시킨다. 의자의 정지성과 몽상의 운동성을 융합시켜 인간 존재가 가지는 사유의 무의식성을 드러내면서 오전을 인간 존재가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당신은 의자를 잡고 서서 운동을 하고 나는 의자 위에 서서 정리를 해요"라는 구절은 서로 다른 존재의 입장과 시간 경험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시간의 상대성, 개인적 성장과 정체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다. '성장판이 닫혔다'는 말은 물리적 성장뿐 아니라 심리적·정신적 변화의 끝자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정오의 숲길은 의자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라는 구절의 '정오', '숲길', '의자'의 관계에서, 의자는 객체이고 정오와 숲길은 주체이다. '의자'는 앉아 있는 장소이자 '몽상가'라는 은유로서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을 연결한다. 시인은 '의자 위에 앉은' '정오'와 '숲길'이라는 두 공간을 병치해서 사유하는 정신적 존재(인간)의 복합적 층위를 드러낸다. '의자'는 정지와 고요, 사유의 공간을 의미한다.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은 '움직임'에서 '멈춤'으로, '외부'에서 '내부'로의 전환이다. 몽상가는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 잠기는 존재로, 이는 데카르트Ren? Descartes 이후 '근대 주체'의 내면적 성찰과 닿아 있다. 몽상은 현실의 구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사유의 상태이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적 경험'에서 몸과 의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정오는 곧 몽상과 사유의 절정으로서의 정오가 된다.
'프라하에서 셀카를 찍은 아이'라는 구체적 이미지와 '카프카' '릴케'와 같은 소설가나 시인을 호출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시인의 지적 상상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탐구함을 보여 준다. 결국 이 시는 시간이라는 개념 아래서 성장과 변화, 그리고 존재의 이중적 양상을 설파하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성장판', '키 작은 아이', '릴케의 의자' 등은 성장과 변화, 그리고 존재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키가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 호르몬이 밤에만 분비된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시간성과 한계를 암시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생명력entelechy' 개념과 공명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는 '시간'과 '공간', '움직임'과 '멈춤', '현실'과 '몽상'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며, 존재의 근원적 상태와 사유의 본질을 다층적으로 성찰하는 시이다. 이는 서양 철학과 동양적 사유가 만나 조화롭게 공존하는 철학적 미학을 구현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사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본질에 대한 사유의 성찰로 이행하여 마침내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3.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관계의 선, 소통의 물결
시 「라인」은, '선line'이라는 공간적·시간적 경계와 흐름을 매개로 하여 존재와 관계, 변화와 지속에 관한 깊은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 '라인'은 단순한 직선이나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삶과 인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존재의 궤적, 그리고 그 궤적들이 얽히고설키는 관계의 장場을 의미한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
시선의 끝에서 숨은 꽃이 피는 물결선이 출렁인다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자존심은 직선의 경도硬度로 어제의 얼굴을 고집하지만
흔들리는 직선이 마침내 둥글게 편해지는 지점에서
당신은 가상선으로 말하고 나는 물결무늬 흐름으로 속에 들인다
엽서가 왔다
태양이 우리에게로 오는 길
화상을 피해 마침내 길을 나서는 우리의 길가에
곱게 물든 낙엽처럼 나뒹구는 가상선은 아름다웠다
빨랫줄이 하늘을 가르며 빙의를 털어내던 날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의 외형선은 수척했다
사람 사이에도
얼음 어는 시간이 있어 모서리선에는 날카로운 날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수면처럼 깊이 손을 잡는다
악수는 선이 선을 잡고 선이 선을 쓰다듬는 의식
춤추는 빨랫줄을 밟고 그네처럼 차오르는 약속
당신 부근에 선 내 마음이 중심선이 된다
내 앞에 선 아름다운 당신 가슴으로 난 하염없는 길
먼 눈길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
─「라인」 전문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시선의 끝에서 숨은 꽃이 피는 물결선이 출렁인다"는 구절은 '선'이라는 형상을 단순한 공간적 경계가 아닌 감정과 관계를 잇는 다차원적 매개체로 확장시킨다. 시인은 '자존심'이라는 경직된 직선을 '물결무늬 흐름'으로 부드럽게 변화시키며, 고집스러운 마음의 고정성을 유연하게 해체한다. '가상선' '외형선' '모서리선' 등 다양한 선의 개념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조화를 은유한다. 여기서 '직선'과 '물결선'은 각각 존재론적 안정성과 유동성을 상징한다. '직선'은 전통적으로 명확하고 고정된 경계, 자아의 견고한 정체성을 나타내지만, 흔들리고 둥글게 변하는 '물결선'은 고정된 자아가 아닌 유연한 존재를 암시한다. 반면 '물결무늬 흐름'은 변화와 운동, 즉 현상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유동성'을 상징하며,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그리고 메를로-퐁티의 철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고정된 본질이 아닌 변화 속에서의 자기 전개를 강조했고, 베르그송은 시간과 삶을 '지속dur?e'으로서, 연속적이고 흐르는 운동으로 이해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과 몸이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고정되지 않은 '선'을 그린다고 보았다.
시에서 '가상선virtual line'과 '외형선outline'은 존재가 물리적 실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경험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띠는 선으로, 들뢰즈의 '가상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가상성은 현실과는 달리 잠재적 가능성과 생성의 장이며, 존재의 다층적 차원을 보여준다.
특히 '악수'는 선이 선을 '잡고 쓰다듬는 의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시적 관계론과 철학적 의례론에 뿌리를 둔다. 서로 다른 '선'들이 만나 손을 맞잡고, 서로를 인정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행위는 하버마스J?rgen Habermas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 혹은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라인'은 단절된 개인들의 경계가 아니라, 상호 작용하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관계의 현장'인 것이다.
관계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순간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고 변화하는 움직임이다. '빨랫줄이 춤추고 그네처럼 차오르는 약속'은 이러한 소통과 신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이 시는 또한 '내 마음이 중심선이 된다'는 선언을 통해 주체가 관계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자세를 제시한다. 결국 「라인」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와 세계를 넘어서,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비추는 존재의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모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다. 그러니까 선Line은 존재와 비존재, 주체와 타자, 나와 너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자 흐름임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삶의 흐름과 관계성, 그리고 존재의 복합적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통찰을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직선의 자존심'이 가진 날카로운 날을, '선이 선을 쓰다듬는 의식'인 악수를 통하여, 타자 중심의 외형선과 가상선의 길을 내고, 마침내 아름다운 상대에게로 나의 사랑의 눈길이 정착하는 것이다.
정착하는 사랑의 눈길은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가 철썩이는 물가를 멀리 바라본다.
4.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경계의 사유, 삶과 죽음의 교차로
시 「물가를 걷다」는, '길'과 '물가'라는 시적 공간을 통해 존재의 경계, 변화, 그리고 인간 실존의 고독과 연대에 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경계는 삶과 죽음, 안정과 불안정, 고립과 연대의 경계이다. 시인은 길이 끝나는 벼랑과 그 아래 흐르는 물을 통하여 삶의 한계와 그 너머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 즉 '존재의 두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길이 끝나는 곳에 벼랑이 있었고 벼랑 아래 물이 흘러 다시 길이 열렸다
배는 여전히 건너편 먼 육지에 정박해 있다
새벽에 누가 또 이곳을 지나간 것인가
물기슭에 자국을 남기며 가장 낮은 곳을 걸어간 족적이 지금은 벽에 걸려 있다
무늬 돌이 구들장처럼 쌓여 있는 허공의 책들이 검게 물결 진다
벼랑 끝을 걷다가 떨어지는 사람의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앙상한 갈비뼈는 희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물가에서 하얀 피리를 불고 있다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물결의 젖은 손에 붙들린 피리 소리가 해안을 철썩이고 있다
순결이란 그런 것,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일촉즉발로 장전된 침묵
안내도 없이 하늘 아래 외로움이 물가를 걷는다
걷는 모습이 달빛 같아 애월涯月이다
─「물가涯를 걷다」 전문
"길이 끝나는 곳에 벼랑이 있었고 벼랑 아래 물이 흘러 다시 길이 열렸다"라는 구절은 존재의 한계와 그 너머를 상징한다. 그 너머 흐르는 것은 또 다른 길이다. 벼랑은 죽음 혹은 절망의 이미지이지만,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새로움과 희망, 그리고 지속성을 의미한다. 죽음과 삶은 흘러서 순환하고 희망과 절망 또한 흘러서 순환한다.
철학적으로 '길'은 존재론적 여정, 즉 인간이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인간 존재는 항상 어떤 길 위에 서 있으며, 그 길은 '죽음이라는 한계'와 마주하는 '유한성'의 공간이다. 시 속 벼랑은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 존재의 한계를 상징하며,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시간'과 '변화'의 메타포이다.
물은 현상학과 동양철학에서 중요한 존재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며 고정되지 않는 '유동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헤겔과 베르그송의 시간 철학, 그리고 노자의 '도'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자는 '물'을 '도'의 본질적 은유로 삼아 자연스러운 흐름과 무위無爲를 강조한다. 「물가를 걷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지를 탐구한다.
배는 강을 건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여전히 건너편 먼 육지에 정박해 있"는 배는 길은 열렸지만 길을 걸어갈 수단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존이 삶의 현장에서 자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애로와 난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또, "새벽에 누가 또 이곳을 지나간 것인가"라고 물으며 흘러간 인물들의 족적을 책으로 표상하여 '무늬 돌이 구들장처럼 쌓여 있는 허공'에서 '검게 물결 진다'고 한다. 그들은 '벼랑 끝을 걷다가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절벽에는 희고 '앙상한 갈비뼈'가 걸려 있다고 한다. 순결한 실존적 삶의 치열성과 절박성, 마멸과 잔존이 이보다 더 감각적으로 묘사될 수 있겠는가.
나아가 '흰옷 입은 여인'이 물가에서 '하얀 피리'를 부는 장면을 통해 시인은 순결과 침묵, 그리고 '일촉즉발'의 긴장을 연출한다. '하얀 피리'와 '갈비뼈'의 이미지는 존재의 연약함과 순결성, 그리고 생명력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피리 소리는 '침묵'과 '소리'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여, 레비나스의 '타자성' 철학을 또한 연상시킨다. 타자는 나와 완전히 구별되면서도 나의 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존재로, 시 속 여인의 피리는 고독하면서도 타자를 향한 소통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피리는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를 낸다. 이것은 고통과 희생,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상징이다. 물결 소리는 해안과의 접촉, 즉 경계와 접촉의 긴장감을 은유한다. 그것들은 "일촉즉발로 장전된 침묵"으로서의 순결이다.
"안내도 없이 하늘 아래 외로움이 물가를 걷는다"는 구절은 존재론적 고독과 불확실성, 삶의 근원적 불안을 드러낸다. 시적 화자는 달빛 같은 '애월'을 걸으며 존재의 한계와 그 너머를 묵상한다. 이 시는 끝과 시작, 죽음과 삶, 고립과 연대가 교차하는 존재의 복합적 모순을 이와 같이 깊이 사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는 '애월涯月'이라는 표현으로 '길가'와 '달'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존재의 고독과 동시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는 실존철학에서 '순간적 계시Kairos'와도 닿아, 한순간의 체험 속에서 삶의 의미와 초월성을 경험하는 인간의 모습을 함축한다.
요컨대, 「물가를 걷다」는 존재의 한계와 변화, 그리고 고독과 연대라는 실존적 주제를 물의 흐름과 길의 상징을 통해 섬세하게 사유하며, 동서양 철학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통찰을 시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물가를 걷는 시인은 마침내 소통의 입구로서의 창문과 창문을 통해서 다가오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눈부신 창문을 넘어서 오는 바로 당신은 아름답다.
5.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소통의 입구와 비소유의 아름다움
표제시인 「눈부신 창문」은 시집의 전체적 사유를 응축한 작품이다. 이 시는 존재론적 사유와 현상학적 인식론, 그리고 관계론적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한 철학적 배경 위에 세워져 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눈부신 창문』은 단순한 물리적 창문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세계를 인식하고 타자와 소통하는 경계이자 매개체로서의 '창문'을 상징한다. 이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인식론과 연결된다.
물 흐르듯 당신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당신은 밝음으로 거기 있고
나는 조금씩 어둠을 밀어냅니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강가의 버드나무가 싹눈을 먼저 틔웁니다 보이지 않는 부활의 시간을 향해 창문이 먼저 달려갑니다 시간이 보이면 시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미래는 있지만 서로 다른 미래입니다
창문의 결은 물결 같습니다
바람에 밀리며 방향을 바꿉니다
나는 산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학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맞은 거리만큼 보면서 본 만큼만 알겠습니다
물결을 흘려보내며 제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창문은
나를 당신에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내게로 데려오는 입구입니다
골목길 남의 집 담장 위에 줄장미가 푸지게 피었습니다 핏빛 붉은 꽃잎에 숨이 멎습니다 아찔한 현기증으로 뒤뚱거리면서도
나는 당신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가지게 됨을 압니다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물 흐르듯 당신을 데려와야 합니다
마음에 여백을 만들면
당신이 내게 걸어 들어와 눈부신 창문이 됩니다
─「눈부신 창문」 전문
시인은 '창문'을 '나'와 '너', 내면과 외부 세계를 잇는 통로, 즉 소통의 입구로 상징화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이 단순한 대상 인식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는 창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창문은 '투명한 경계'로서, 자아와 타자,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만 동시에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김인숙 시인이 '눈부신 창문'을 통해 드러내려는 바 역시 이와 같다. 창문은 빛과 어둠,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지만, 동시에 그 너머를 들여다보게 하며, 내면과 외부 세계의 흐름을 매개한다.
이 시의 구조는 창 안-창문-창밖의 세 가지 단계로 파악된다. 당신은 창밖에 있고 나는 창 안에 있다. 창밖은 밝고 창 안은 어둡다. 제 자리에 서 있는 창문이 양자의 중간 위치에서 양자를 매개한다. 이리하여 창밖=밝음=당신=아름다움=부활의 시간으로 등치된다.
또한 '눈부신'이라는 형용사는 현상학적 '현시Erscheinung'를 함축한다. 이는 빛남을 통해 사물이 드러나고, 의미가 발생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시인은 창문을 통해 '당신'과 '나'가 서로에게 다가서고, 서로의 존재를 밝히는 '현시의 장'을 펼친다. 여기서 '눈부심'은 지식이나 인식의 순간뿐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타자와의 소통과 관계 형성의 순간을 상징한다.
"물 흐르듯 당신에게 다가가야 합니다/당신은 밝음으로 거기 있고/나는 조금씩 어둠을 밀어냅니다"라는 이 구절은 소통과 관계 맺기의 섬세함을 표현한다. '밝음'과 '어둠'이라는 대립적 이미지가 당신과 나의 조화로 교차하면서, 존재의 차이와 거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가까워짐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산만하지 않을 것입니다/박학하지 않을 것입니다/알맞은 거리만큼 보면서 본 만큼만 알겠습니다/물결을 흘려보내며 제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라는 구절, 여기서 시인은 집중과 절제를 이야기한다. 관조자의 정관靜觀을 이야기한다. 욕심을 버리고 한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봄으로써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소유하려는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시한다.
시인이 규정하기를, 창문은 '나'를 '당신'에게 보내는 통로가 아니라, '당신을 내게 데려오는 입구', 그러니까 '당신'을 '나'에게 연결하는 통로다. 이는 관계와 소통의 쌍방향성을 시적 언어로 구현한 것이면서 적극적인 나의 현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창문은 곧 당신을 나에게 들이는 나의 열린 마음이 된다. 그러나 제 자리에 서 있다.
"나는 당신을 가지지 않음으로써/온전히 가지게 됨을 압니다"는 '비소유의 소유'라는 역설을 말하는 시적 진술이다. '비소유의 아름다움'은 소유를 넘어선 존재론적 태도로서, 관계와 삶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을 반영한다. 또한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구절은 소유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미학적 명제이기도 하다. 이는 '서로 다른 미래'를 가진 개별 존재들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철학적 입장이면서 동시에 '미적 소유의 법칙'이라는 미학 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미적 소유의 법칙'이란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 그의 『미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다. '미적 소유'는 '물질적 소유'나 '법률적 소유'와는 다르다. 물질적 소유는 특정인이 가지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다. 법률적 소유는 소유권을 법률에서 인정하는 소유이다. 이와는 달리 미적인 대상은 한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 같이 가질 수 있으며 법률적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이 미적 가치를 알고 그것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제로 보면서 즐길(감상할) 때, 바로 그때 미적 대상(예술 작품)의 진정한 소유자는 바로 그 사람(감상자)이 된다는 것이 '미적 소유의 법칙'이다. 바로 이러한 법칙을 시인은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라는 시구로 표현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김인숙은 동양철학적 관점과 서양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비소유의 아름다움'은 불교적 무아無我 사상과도 통한다.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아름다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가진다는 사유는 존재의 비집착과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이는 존재론적 자유와 윤리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탐구하는 현대의 철학적 논의와도 맥이 닿는다.
마지막으로, 창문은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관계적 주체성의 메타포로서 작동한다. 창문을 통해 '서로 다른 미래'를 가진 개별 존재들이 동시에 공존하며 상호 작용하는 세계를 시인은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공간은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의 핵심 개념과도 연결된다. 존재는 단절된 '나'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세계 내 존재'로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한다.
* 사유의 창문을 열다
시인 김인숙의 시집, 『눈부신 창문』은 존재의 경계, 인식의 투명성, 그리고 관계의 개방성을 사유하며, 인간이 세계와 맺는 다층적 관계의 미묘함과 아름다움을 철학적으로 조명한 역저이다. 여기서 삶과 우주, 존재와 관계,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이것들을 아우르는 사유 안에서 융합하여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개념이 된다.
이 시집은 우주 탐사선과 스침, 일상의 의자와 몽상가, 숲길과 물가와 창문이라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존재의 심층적 의미를 탐색한다. 시인은 '용기'와 '부력', '선'과 '경계', '소통'과 '단절', '사랑'과 '모순', '삶'과 '죽음'이라는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인간 존재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깊이 성찰한다.
단순한 서정시집이 아니라 사유와 명상을 요구하는 이 시집을 통해서 독자는 자신의 삶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부신 창문'을 하나씩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시집 속에 녹아든 것이 철학의 뼈만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서정의 뼈'를 발라낼 수도 있고, '자연의 뼈'나 '사랑의 뼈' 또는 '연민의 뼈'나 '사회적 현실의 뼈'도 발라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것들이 뒤엉켜 만들어 낸 낯선 혼종의 뼈도 탐색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뼈를 더듬어내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시인 김인숙은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철학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철학은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명제의 타당성을 확인한다. 직관과 통찰과 시적 자유로 무장된 시인의 상상력은 철학적 상상력을 가히 초월한다. 시가 철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철학을 포섭한다.
시는 집에 집을 들이는 일이다. 읽는 자는 그가 가진 읽기의 집에 쓴 자의 쓰기의 집을 들인다. 시를 쓰는 자는 그가 가진 쓰기의 집에 사물이나 사태의 집을 들인다. 집을 들이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요컨대 시를 짓는 일이나 집을 짓는 일이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집 속의 집은 이 집도 저 집도 아닌 제3의 집이다. 바로 거기서 이해나 해석은 물론, 창작의 독립성이 성립한다. 김인숙의 시에 대한 나의 독해는 궁극적으로 내 방식의 독해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글로 쓴 해설은 김인숙의 것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라 바로 독자의 것이다. 집이 집으로 이어지는 집의 연쇄가 읽고 쓰고 읽기인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김인숙의 시를 읽는 나의 방식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길잡이 말의 안내를 받는다.
1)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2)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3)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4)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5)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이는 1936년 4월 2일, 로마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행한 강연, 〈횔더린과 시의 본질〉에서 다섯 개의 길잡이 말을 내세운 것과 동일한 방식이며, 칸트Immanuel Kant가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의 출발점으로서 내세운 순수오성개념(12범주)과 유사한 형식의 전개라 할 수 있다.
김인숙의 시집 『눈부신 창문』은 시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정교하게 교직交織되어 있다. 이 시집은 삶과 우주, 존재와 관계, 시간과 공간, 사랑과 초월을 넘나드는 깊은 사유의 길을 개척한다. 시인은 익숙한 일상적 이미지와 우주 탐사선 '솔라 오비터' 같은 과학적 이미지가 어우러진 독특한 조형미를 통해 우리 존재가 처한 다층적 현실을 포착한다.
이 해설은, 시인 김인숙의 시적 사유의 핵심과 시적 의미를 중심으로 하여, 시 속에 녹아든 철학의 뼈를 발라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존재의 연결과 사랑의 흐름
시 「스쳐가다」는, 인간 존재의 관계성과 일시성, 그리고 우주적 연대성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스침'이라는 행위를 통해 존재들이 서로 맞닿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탐구한다.
솔라 오비터가 금성을 스쳐갔다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아니야
미소만 스쳐갔을 거야
우주 같은 호수,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스치면서 부력을 얻어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 떠간다
먼 길 혼자 힘으로는 가지 못하지
사람이 사람을 스치면서 용기를 얻고 얻은 용기로 다음 사람을 스쳐 또 다음 사람으로 건너가는 거야
그런데, 얼마나 건너야 끝에 닿을까
담방담방 태양계를 떠서 가는 솔라 오비터
나도 모르게 나의 마그마 근처를 스쳐간 사람, 생의 어느 길목을 어느 시간대로 건너가고 있는지
체온을 남기고 새는
출렁이는
가지의 힘을 얻어 가지를 떠나는데
─「스쳐가다」 전문
「스쳐가다」라는 시의 제목은 순간적 접촉, 지나침,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과 변화를 함축한다. 시인은 유럽우주국ESA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동 개발한 태양 탐사선 '솔라 오비터'가 금성을 스쳐 지나가 궤도를 수정하는 과학적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에는 우주적 규모의 '스침'이 개별적 인간 존재와 맞닿는 지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스쳐가다'는 '닿는 듯, 닿지 않는 듯 지나간다'는 말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삼라만상이 서로를 스쳐간다. 시간 위의 모든 존재가 스쳐간다. 시간은 변화와 운동의 근원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원자가 원자를 스쳐가고, 입자가 입자를 스쳐가며 바람이 바람을 스쳐간다. 이념이 이념을 스쳐가고 마음이 마음을 스쳐간다. 그것은 짧은 마주침이면서 동시에, 원래부터 있었던 영원한 마주침이다. 우연성과 필연성의 변증법적 지양이 그것이다. 우주의 원리가 그러하다. 시인은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솔라 오비터'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시에 배치함으로써, '스침'은 단순한 물리적 접촉을 넘어 거대한 우주 속 존재들의 미묘한 상호작용과 연결된다. 이는 한편으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 즉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성을 상기시킨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접촉에서 '스침'과 같은 미세한 만남이 존재의 의미를 형성한다고 보지 않았던가.
"팔꿈치가 스쳤을까, 손등이 스쳤을까 / 아니야 / 미소만 스쳐갔을 거야"라는 이 부분은 물리적 접촉이 아닌 '미소'라는 비가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정서적 연결을 시사한다. 여기서 '스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존재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받는 의미 있는 교차점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를 뜬다'는 비유로, 인간관계의 힘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우주적 운동으로 재해석한다. 시에서 '팔꿈치', '손등', '미소'로 표현되는 '스침'은 물리적 접촉을 넘어 감정과 정신의 미묘한 전달을 의미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Dasein in der Welt' 개념과 맞닿는다. 인간 존재는 세계 속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그 '스침'을 통해 자기 존재를 자각한다.
"스치면서 부력을 얻고 스치면서 부력을 얻어 무중력의 수면으로 물수제비 떠간다"는 구절의 '부력'과 '무중력의 수면' 이미지는 존재가 관계 속에서 받는 영향을 상징한다. 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관계론적 존재론'과 연결되어, 개별 존재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유동적 존재임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스치면서 용기를 얻고 얻은 용기로 다음 사람을 스쳐 또 다음 사람으로 건너가는 거야"라는 구절은 한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타인과 공유되고 전파되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곧 인간관계의 연쇄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 사회의 고립과 단절을 넘어, 인간 사이의 연대와 상호작용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것이다. 존재는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부력을 얻으며 흐르는 존재임을 말한다.
이 시는 또한 '얼마나 건너야 끝에 닿을까'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존재의 무한성과 여정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삶은 끊임없는 스침과 이어짐, 용기와 전이가 반복되는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와 '너', 그리고 '우주'와 연결된다. 이러한 사유는 시인이 전통적인 인간 중심 서사를 넘어 우주적 스케일에서 존재론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는 '체온을 남기고 새는', '가지의 힘을 얻어 가지를 떠나는데'라는 자연적 이미지로 마무리되며, 존재의 흔적과 생명의 연속성을 표현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기氣' 사상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기는 우주 만물의 생명 에너지로, 흐름과 순환을 통해 존재가 유지되고 변한다는 개념이다.
요약하자면, 시 「스쳐가다」는 미시적 접촉에서 시작해 우주적 차원까지 확장되는 존재론적 성찰이다. '스침'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며, 각 존재가 타자와 만나며 자기 존재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간과 우주, 미시와 거시가 어우러진 이 시는 관계성과 일시성, 그리고 존재의 유한성과 무한성을 포괄하는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의 중반부에 "나도 모르게 나의 마그마 근처를 스쳐간 사람, 생의 어느 길목을 어느 시간대로 건너가고 있는지"라는 진술을 슬쩍 비춤으로써 시인은 지나간 어느 사랑을 초월적 입장에서 아련히 바라보는 견자見者의 서정도 곁들인다.
스침은 나아가 숲길과 몽상가의 스침으로 이어진다.
2.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시간, 성장, 그리고 모순적 존재
시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는, '오전', '숲길', '의자', 그리고 '몽상가'라는 시적 이미지들을 통해 시간, 존재, 사유의 관계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특히 '오전'이라는 시간대는 '깨어남'과 '가능성'의 순간으로서, 존재가 잠에서 깨어 현실과 만나기 전의 미묘한 경계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오전'이라는 시간 개념을 통해 사유하고 성장하는 존재의 모순성과 시간적 중첩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둠을 건너와 반쯤 검은 물이 든 오전이 의자 위에 앉아 있어 반 백 반 흑이네 키가 작은 아이에게 정오까지 기다려 보라고 할까 성장 호르몬은 깊은 밤 잠잘 때만 나온다는데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사색은 허물어질 거야
당신은 의자를 잡고 서서 운동을 하고 나는 의자 위에 서서 정리를 해요 싱크대 수납장의 성장판이 닫혔어요 우리는 각자의 의자를 들고 숲길로 갈까요
정오의 숲길은 의자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
아이가 프라하에서 셀카를 찍어 보냈어 도로변의 아파트가 성곽 같네 성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모르지 밀크 브라운의 밝은 머리 색깔은 국내에서 뽑은 거야 근데 눈썹만 유독 검은색이네
석양이 내린 황금 골목길에서 카프카를 만나 봐
더운 날의 변신은 힘들어
키는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 아니지
뾰족지붕 아래 릴케의 색 바랜 의자를 치워 버릴까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전문
"어둠을 건너와 반쯤 검은 물이 든 오전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는 시적 이미지는 오전이라는 시간이 빛과 어둠, 성장과 멈춤,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상태임을 암시한다. 성장 호르몬이 밤에만 분비된다는 생물학적 사실은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며,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가는 정신의 성장 가능성을 상징한다. '반 백 반 흑'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색채의 대비를 넘어서 시간과 존재의 불확실한 상태, 즉 '미완성의 완성'을 뜻한다. 또한, 백과 흑이라는 색채 대비를 통해 '빛과 어둠', '알려짐과 미지' 사이의 긴장감을 현시한다. 이는 동양철학의 음양陰陽 사상과도 맞닿아 있어, 존재의 이중성, 즉 상반되면서도 보완적인 힘들의 조화를 시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숲길'은 자연과 인간 존재가 만나는 공간이며,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에서처럼 내면의 자아 탐색과 성찰의 길로 해석될 수 있다.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깊은 층위로 들어가는 여정이며,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오솔길holzwege'을 연상시킨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Dasein를 '세계 속에 내던져진 존재'로 보고, 이 존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길'과 '걷기'로 비유한다. 또한 이 부분에서 시인은 '의자'와 '몽상가'를 등치시킨다. 의자의 정지성과 몽상의 운동성을 융합시켜 인간 존재가 가지는 사유의 무의식성을 드러내면서 오전을 인간 존재가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당신은 의자를 잡고 서서 운동을 하고 나는 의자 위에 서서 정리를 해요"라는 구절은 서로 다른 존재의 입장과 시간 경험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시간의 상대성, 개인적 성장과 정체 사이의 긴장을 표현한다. '성장판이 닫혔다'는 말은 물리적 성장뿐 아니라 심리적·정신적 변화의 끝자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정오의 숲길은 의자 안에 있을까요 밖에 있을까요"라는 구절의 '정오', '숲길', '의자'의 관계에서, 의자는 객체이고 정오와 숲길은 주체이다. '의자'는 앉아 있는 장소이자 '몽상가'라는 은유로서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을 연결한다. 시인은 '의자 위에 앉은' '정오'와 '숲길'이라는 두 공간을 병치해서 사유하는 정신적 존재(인간)의 복합적 층위를 드러낸다. '의자'는 정지와 고요, 사유의 공간을 의미한다.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은 '움직임'에서 '멈춤'으로, '외부'에서 '내부'로의 전환이다. 몽상가는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 잠기는 존재로, 이는 데카르트Ren? Descartes 이후 '근대 주체'의 내면적 성찰과 닿아 있다. 몽상은 현실의 구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사유의 상태이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적 경험'에서 몸과 의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정오는 곧 몽상과 사유의 절정으로서의 정오가 된다.
'프라하에서 셀카를 찍은 아이'라는 구체적 이미지와 '카프카' '릴케'와 같은 소설가나 시인을 호출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시인의 지적 상상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탐구함을 보여 준다. 결국 이 시는 시간이라는 개념 아래서 성장과 변화, 그리고 존재의 이중적 양상을 설파하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성장판', '키 작은 아이', '릴케의 의자' 등은 성장과 변화, 그리고 존재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키가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 호르몬이 밤에만 분비된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시간성과 한계를 암시하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생명력entelechy' 개념과 공명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는 '시간'과 '공간', '움직임'과 '멈춤', '현실'과 '몽상'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며, 존재의 근원적 상태와 사유의 본질을 다층적으로 성찰하는 시이다. 이는 서양 철학과 동양적 사유가 만나 조화롭게 공존하는 철학적 미학을 구현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사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본질에 대한 사유의 성찰로 이행하여 마침내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3.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관계의 선, 소통의 물결
시 「라인」은, '선line'이라는 공간적·시간적 경계와 흐름을 매개로 하여 존재와 관계, 변화와 지속에 관한 깊은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 '라인'은 단순한 직선이나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삶과 인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존재의 궤적, 그리고 그 궤적들이 얽히고설키는 관계의 장場을 의미한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
시선의 끝에서 숨은 꽃이 피는 물결선이 출렁인다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자존심은 직선의 경도硬度로 어제의 얼굴을 고집하지만
흔들리는 직선이 마침내 둥글게 편해지는 지점에서
당신은 가상선으로 말하고 나는 물결무늬 흐름으로 속에 들인다
엽서가 왔다
태양이 우리에게로 오는 길
화상을 피해 마침내 길을 나서는 우리의 길가에
곱게 물든 낙엽처럼 나뒹구는 가상선은 아름다웠다
빨랫줄이 하늘을 가르며 빙의를 털어내던 날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의 외형선은 수척했다
사람 사이에도
얼음 어는 시간이 있어 모서리선에는 날카로운 날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수면처럼 깊이 손을 잡는다
악수는 선이 선을 잡고 선이 선을 쓰다듬는 의식
춤추는 빨랫줄을 밟고 그네처럼 차오르는 약속
당신 부근에 선 내 마음이 중심선이 된다
내 앞에 선 아름다운 당신 가슴으로 난 하염없는 길
먼 눈길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
─「라인」 전문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었을까/시선의 끝에서 숨은 꽃이 피는 물결선이 출렁인다"는 구절은 '선'이라는 형상을 단순한 공간적 경계가 아닌 감정과 관계를 잇는 다차원적 매개체로 확장시킨다. 시인은 '자존심'이라는 경직된 직선을 '물결무늬 흐름'으로 부드럽게 변화시키며, 고집스러운 마음의 고정성을 유연하게 해체한다. '가상선' '외형선' '모서리선' 등 다양한 선의 개념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조화를 은유한다. 여기서 '직선'과 '물결선'은 각각 존재론적 안정성과 유동성을 상징한다. '직선'은 전통적으로 명확하고 고정된 경계, 자아의 견고한 정체성을 나타내지만, 흔들리고 둥글게 변하는 '물결선'은 고정된 자아가 아닌 유연한 존재를 암시한다. 반면 '물결무늬 흐름'은 변화와 운동, 즉 현상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유동성'을 상징하며,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그리고 메를로-퐁티의 철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고정된 본질이 아닌 변화 속에서의 자기 전개를 강조했고, 베르그송은 시간과 삶을 '지속dur?e'으로서, 연속적이고 흐르는 운동으로 이해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과 몸이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고정되지 않은 '선'을 그린다고 보았다.
시에서 '가상선virtual line'과 '외형선outline'은 존재가 물리적 실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경험과 관계 속에서 의미를 띠는 선으로, 들뢰즈의 '가상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가상성은 현실과는 달리 잠재적 가능성과 생성의 장이며, 존재의 다층적 차원을 보여준다.
특히 '악수'는 선이 선을 '잡고 쓰다듬는 의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시적 관계론과 철학적 의례론에 뿌리를 둔다. 서로 다른 '선'들이 만나 손을 맞잡고, 서로를 인정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행위는 하버마스J?rgen Habermas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 혹은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라인'은 단절된 개인들의 경계가 아니라, 상호 작용하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관계의 현장'인 것이다.
관계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순간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고 변화하는 움직임이다. '빨랫줄이 춤추고 그네처럼 차오르는 약속'은 이러한 소통과 신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이 시는 또한 '내 마음이 중심선이 된다'는 선언을 통해 주체가 관계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자세를 제시한다. 결국 「라인」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자아와 세계를 넘어서,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비추는 존재의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모습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다. 그러니까 선Line은 존재와 비존재, 주체와 타자, 나와 너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자 흐름임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삶의 흐름과 관계성, 그리고 존재의 복합적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통찰을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꽃 피는 라인을 읽으며 꽃 지는 부호를 발음한다." '직선의 자존심'이 가진 날카로운 날을, '선이 선을 쓰다듬는 의식'인 악수를 통하여, 타자 중심의 외형선과 가상선의 길을 내고, 마침내 아름다운 상대에게로 나의 사랑의 눈길이 정착하는 것이다.
정착하는 사랑의 눈길은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가 철썩이는 물가를 멀리 바라본다.
4.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경계의 사유, 삶과 죽음의 교차로
시 「물가를 걷다」는, '길'과 '물가'라는 시적 공간을 통해 존재의 경계, 변화, 그리고 인간 실존의 고독과 연대에 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경계는 삶과 죽음, 안정과 불안정, 고립과 연대의 경계이다. 시인은 길이 끝나는 벼랑과 그 아래 흐르는 물을 통하여 삶의 한계와 그 너머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 즉 '존재의 두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길이 끝나는 곳에 벼랑이 있었고 벼랑 아래 물이 흘러 다시 길이 열렸다
배는 여전히 건너편 먼 육지에 정박해 있다
새벽에 누가 또 이곳을 지나간 것인가
물기슭에 자국을 남기며 가장 낮은 곳을 걸어간 족적이 지금은 벽에 걸려 있다
무늬 돌이 구들장처럼 쌓여 있는 허공의 책들이 검게 물결 진다
벼랑 끝을 걷다가 떨어지는 사람의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앙상한 갈비뼈는 희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물가에서 하얀 피리를 불고 있다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
물결의 젖은 손에 붙들린 피리 소리가 해안을 철썩이고 있다
순결이란 그런 것,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일촉즉발로 장전된 침묵
안내도 없이 하늘 아래 외로움이 물가를 걷는다
걷는 모습이 달빛 같아 애월涯月이다
─「물가涯를 걷다」 전문
"길이 끝나는 곳에 벼랑이 있었고 벼랑 아래 물이 흘러 다시 길이 열렸다"라는 구절은 존재의 한계와 그 너머를 상징한다. 그 너머 흐르는 것은 또 다른 길이다. 벼랑은 죽음 혹은 절망의 이미지이지만,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새로움과 희망, 그리고 지속성을 의미한다. 죽음과 삶은 흘러서 순환하고 희망과 절망 또한 흘러서 순환한다.
철학적으로 '길'은 존재론적 여정, 즉 인간이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인간 존재는 항상 어떤 길 위에 서 있으며, 그 길은 '죽음이라는 한계'와 마주하는 '유한성'의 공간이다. 시 속 벼랑은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 존재의 한계를 상징하며,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시간'과 '변화'의 메타포이다.
물은 현상학과 동양철학에서 중요한 존재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며 고정되지 않는 '유동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헤겔과 베르그송의 시간 철학, 그리고 노자의 '도'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자는 '물'을 '도'의 본질적 은유로 삼아 자연스러운 흐름과 무위無爲를 강조한다. 「물가를 걷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지를 탐구한다.
배는 강을 건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여전히 건너편 먼 육지에 정박해 있"는 배는 길은 열렸지만 길을 걸어갈 수단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존이 삶의 현장에서 자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애로와 난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또, "새벽에 누가 또 이곳을 지나간 것인가"라고 물으며 흘러간 인물들의 족적을 책으로 표상하여 '무늬 돌이 구들장처럼 쌓여 있는 허공'에서 '검게 물결 진다'고 한다. 그들은 '벼랑 끝을 걷다가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절벽에는 희고 '앙상한 갈비뼈'가 걸려 있다고 한다. 순결한 실존적 삶의 치열성과 절박성, 마멸과 잔존이 이보다 더 감각적으로 묘사될 수 있겠는가.
나아가 '흰옷 입은 여인'이 물가에서 '하얀 피리'를 부는 장면을 통해 시인은 순결과 침묵, 그리고 '일촉즉발'의 긴장을 연출한다. '하얀 피리'와 '갈비뼈'의 이미지는 존재의 연약함과 순결성, 그리고 생명력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피리 소리는 '침묵'과 '소리'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여, 레비나스의 '타자성' 철학을 또한 연상시킨다. 타자는 나와 완전히 구별되면서도 나의 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존재로, 시 속 여인의 피리는 고독하면서도 타자를 향한 소통의 가능성을 나타낸다. 피리는 갈비뼈를 깎아 만든 소리를 낸다. 이것은 고통과 희생,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상징이다. 물결 소리는 해안과의 접촉, 즉 경계와 접촉의 긴장감을 은유한다. 그것들은 "일촉즉발로 장전된 침묵"으로서의 순결이다.
"안내도 없이 하늘 아래 외로움이 물가를 걷는다"는 구절은 존재론적 고독과 불확실성, 삶의 근원적 불안을 드러낸다. 시적 화자는 달빛 같은 '애월'을 걸으며 존재의 한계와 그 너머를 묵상한다. 이 시는 끝과 시작, 죽음과 삶, 고립과 연대가 교차하는 존재의 복합적 모순을 이와 같이 깊이 사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는 '애월涯月'이라는 표현으로 '길가'와 '달'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존재의 고독과 동시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는 실존철학에서 '순간적 계시Kairos'와도 닿아, 한순간의 체험 속에서 삶의 의미와 초월성을 경험하는 인간의 모습을 함축한다.
요컨대, 「물가를 걷다」는 존재의 한계와 변화, 그리고 고독과 연대라는 실존적 주제를 물의 흐름과 길의 상징을 통해 섬세하게 사유하며, 동서양 철학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통찰을 시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물가를 걷는 시인은 마침내 소통의 입구로서의 창문과 창문을 통해서 다가오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눈부신 창문을 넘어서 오는 바로 당신은 아름답다.
5.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소통의 입구와 비소유의 아름다움
표제시인 「눈부신 창문」은 시집의 전체적 사유를 응축한 작품이다. 이 시는 존재론적 사유와 현상학적 인식론, 그리고 관계론적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한 철학적 배경 위에 세워져 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눈부신 창문』은 단순한 물리적 창문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세계를 인식하고 타자와 소통하는 경계이자 매개체로서의 '창문'을 상징한다. 이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인식론과 연결된다.
물 흐르듯 당신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당신은 밝음으로 거기 있고
나는 조금씩 어둠을 밀어냅니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강가의 버드나무가 싹눈을 먼저 틔웁니다 보이지 않는 부활의 시간을 향해 창문이 먼저 달려갑니다 시간이 보이면 시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미래는 있지만 서로 다른 미래입니다
창문의 결은 물결 같습니다
바람에 밀리며 방향을 바꿉니다
나는 산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학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맞은 거리만큼 보면서 본 만큼만 알겠습니다
물결을 흘려보내며 제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창문은
나를 당신에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내게로 데려오는 입구입니다
골목길 남의 집 담장 위에 줄장미가 푸지게 피었습니다 핏빛 붉은 꽃잎에 숨이 멎습니다 아찔한 현기증으로 뒤뚱거리면서도
나는 당신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가지게 됨을 압니다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
물 흐르듯 당신을 데려와야 합니다
마음에 여백을 만들면
당신이 내게 걸어 들어와 눈부신 창문이 됩니다
─「눈부신 창문」 전문
시인은 '창문'을 '나'와 '너', 내면과 외부 세계를 잇는 통로, 즉 소통의 입구로 상징화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지각이 단순한 대상 인식이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는 창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창문은 '투명한 경계'로서, 자아와 타자,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지만 동시에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김인숙 시인이 '눈부신 창문'을 통해 드러내려는 바 역시 이와 같다. 창문은 빛과 어둠,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지만, 동시에 그 너머를 들여다보게 하며, 내면과 외부 세계의 흐름을 매개한다.
이 시의 구조는 창 안-창문-창밖의 세 가지 단계로 파악된다. 당신은 창밖에 있고 나는 창 안에 있다. 창밖은 밝고 창 안은 어둡다. 제 자리에 서 있는 창문이 양자의 중간 위치에서 양자를 매개한다. 이리하여 창밖=밝음=당신=아름다움=부활의 시간으로 등치된다.
또한 '눈부신'이라는 형용사는 현상학적 '현시Erscheinung'를 함축한다. 이는 빛남을 통해 사물이 드러나고, 의미가 발생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시인은 창문을 통해 '당신'과 '나'가 서로에게 다가서고, 서로의 존재를 밝히는 '현시의 장'을 펼친다. 여기서 '눈부심'은 지식이나 인식의 순간뿐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타자와의 소통과 관계 형성의 순간을 상징한다.
"물 흐르듯 당신에게 다가가야 합니다/당신은 밝음으로 거기 있고/나는 조금씩 어둠을 밀어냅니다"라는 이 구절은 소통과 관계 맺기의 섬세함을 표현한다. '밝음'과 '어둠'이라는 대립적 이미지가 당신과 나의 조화로 교차하면서, 존재의 차이와 거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가까워짐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산만하지 않을 것입니다/박학하지 않을 것입니다/알맞은 거리만큼 보면서 본 만큼만 알겠습니다/물결을 흘려보내며 제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라는 구절, 여기서 시인은 집중과 절제를 이야기한다. 관조자의 정관靜觀을 이야기한다. 욕심을 버리고 한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봄으로써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소유하려는 집착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제시한다.
시인이 규정하기를, 창문은 '나'를 '당신'에게 보내는 통로가 아니라, '당신을 내게 데려오는 입구', 그러니까 '당신'을 '나'에게 연결하는 통로다. 이는 관계와 소통의 쌍방향성을 시적 언어로 구현한 것이면서 적극적인 나의 현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창문은 곧 당신을 나에게 들이는 나의 열린 마음이 된다. 그러나 제 자리에 서 있다.
"나는 당신을 가지지 않음으로써/온전히 가지게 됨을 압니다"는 '비소유의 소유'라는 역설을 말하는 시적 진술이다. '비소유의 아름다움'은 소유를 넘어선 존재론적 태도로서, 관계와 삶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을 반영한다. 또한 "내게로 오지 않아도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구절은 소유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미학적 명제이기도 하다. 이는 '서로 다른 미래'를 가진 개별 존재들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철학적 입장이면서 동시에 '미적 소유의 법칙'이라는 미학 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미적 소유의 법칙'이란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 그의 『미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다. '미적 소유'는 '물질적 소유'나 '법률적 소유'와는 다르다. 물질적 소유는 특정인이 가지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다. 법률적 소유는 소유권을 법률에서 인정하는 소유이다. 이와는 달리 미적인 대상은 한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 같이 가질 수 있으며 법률적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이 미적 가치를 알고 그것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제로 보면서 즐길(감상할) 때, 바로 그때 미적 대상(예술 작품)의 진정한 소유자는 바로 그 사람(감상자)이 된다는 것이 '미적 소유의 법칙'이다. 바로 이러한 법칙을 시인은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입니다"라는 시구로 표현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김인숙은 동양철학적 관점과 서양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비소유의 아름다움'은 불교적 무아無我 사상과도 통한다. 내 것이 아니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아름다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가진다는 사유는 존재의 비집착과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이는 존재론적 자유와 윤리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탐구하는 현대의 철학적 논의와도 맥이 닿는다.
마지막으로, 창문은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관계적 주체성의 메타포로서 작동한다. 창문을 통해 '서로 다른 미래'를 가진 개별 존재들이 동시에 공존하며 상호 작용하는 세계를 시인은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공간은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의 핵심 개념과도 연결된다. 존재는 단절된 '나'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세계 내 존재'로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한다.
* 사유의 창문을 열다
시인 김인숙의 시집, 『눈부신 창문』은 존재의 경계, 인식의 투명성, 그리고 관계의 개방성을 사유하며, 인간이 세계와 맺는 다층적 관계의 미묘함과 아름다움을 철학적으로 조명한 역저이다. 여기서 삶과 우주, 존재와 관계,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이것들을 아우르는 사유 안에서 융합하여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개념이 된다.
이 시집은 우주 탐사선과 스침, 일상의 의자와 몽상가, 숲길과 물가와 창문이라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존재의 심층적 의미를 탐색한다. 시인은 '용기'와 '부력', '선'과 '경계', '소통'과 '단절', '사랑'과 '모순', '삶'과 '죽음'이라는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인간 존재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깊이 성찰한다.
단순한 서정시집이 아니라 사유와 명상을 요구하는 이 시집을 통해서 독자는 자신의 삶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부신 창문'을 하나씩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시집 속에 녹아든 것이 철학의 뼈만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서정의 뼈'를 발라낼 수도 있고, '자연의 뼈'나 '사랑의 뼈' 또는 '연민의 뼈'나 '사회적 현실의 뼈'도 발라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것들이 뒤엉켜 만들어 낸 낯선 혼종의 뼈도 탐색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뼈를 더듬어내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목차
목차
스쳐가다 ______ 12
백색 왜성 ______ 14
지음知音 ______ 16
비명悲鳴 ______ 18
땅에 쓰는 심서心書 ______ 20
달을 켜면 ______ 22
물양귀비 ______ 24
꽃그늘 ______ 26
망각 낙화 ______ 28
할까 말까 ______ 30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______ 32
땅 위 ______ 34
땅 아래 ______ 36
바람의 자식들 ______ 38
방울새를 헹구면 ______ 40
Ⅱ
라인 ______ 42
물가涯를 걷다 ______ 44
눈부신 창문 ______ 46
수차가 있는 풍경 ______ 49
수레국화 ______ 50
집자集字 ______ 52
윤슬 ______ 54
꽃그늘 아래 정오 ______ 56
우물 속의 달 ______ 58
홍시 ______ 60
어떤 판화 ______ 62
조용한 핑크문 ______ 64
파필破筆 ______ 65
햇빛 줄다리기 ______ 66
가온다 원근법 ______ 68
Ⅲ
젓가락의 가언 추론 ______ 72
시를 만진다 ______ 74
우리 어디서 흘러왔을까 ______ 76
바라봄에 대하여 ______ 78
암전暗轉 ______ 80
관觀 ______ 82
몰골 ______ 84
좌표 ______ 86
살충론殺蟲論 ______ 88
몽괘 ______ 90
오래된 창 ______ 92
물의 마을 ______ 94
옷방 ______ 96
모래 폭풍 ______ 98
블록체인 ______ 99
Ⅳ
순록의 태풍 ______ 104
거리 두기 ______ 106
코로나 블루 ______ 108
어쩌다가 ______ 110
환기換氣 ______ 112
옆집의 옆집 ______ 114
소환 ______ 116
수심愁心 ______ 118
갈등 ______ 119
갇힌 시간 ______ 120
천상 미소 ______ 122
게르 ______ 124
적묵積墨 ______ 127
플롬 산악 열차 ______ 128
액정 호수 ______ 131
│해설│김주완(시인, 철학박사)
시 속에 녹아든 철학의 뼈 ______ 135
백색 왜성 ______ 14
지음知音 ______ 16
비명悲鳴 ______ 18
땅에 쓰는 심서心書 ______ 20
달을 켜면 ______ 22
물양귀비 ______ 24
꽃그늘 ______ 26
망각 낙화 ______ 28
할까 말까 ______ 30
오전은 숲길, 의자는 몽상가 ______ 32
땅 위 ______ 34
땅 아래 ______ 36
바람의 자식들 ______ 38
방울새를 헹구면 ______ 40
Ⅱ
라인 ______ 42
물가涯를 걷다 ______ 44
눈부신 창문 ______ 46
수차가 있는 풍경 ______ 49
수레국화 ______ 50
집자集字 ______ 52
윤슬 ______ 54
꽃그늘 아래 정오 ______ 56
우물 속의 달 ______ 58
홍시 ______ 60
어떤 판화 ______ 62
조용한 핑크문 ______ 64
파필破筆 ______ 65
햇빛 줄다리기 ______ 66
가온다 원근법 ______ 68
Ⅲ
젓가락의 가언 추론 ______ 72
시를 만진다 ______ 74
우리 어디서 흘러왔을까 ______ 76
바라봄에 대하여 ______ 78
암전暗轉 ______ 80
관觀 ______ 82
몰골 ______ 84
좌표 ______ 86
살충론殺蟲論 ______ 88
몽괘 ______ 90
오래된 창 ______ 92
물의 마을 ______ 94
옷방 ______ 96
모래 폭풍 ______ 98
블록체인 ______ 99
Ⅳ
순록의 태풍 ______ 104
거리 두기 ______ 106
코로나 블루 ______ 108
어쩌다가 ______ 110
환기換氣 ______ 112
옆집의 옆집 ______ 114
소환 ______ 116
수심愁心 ______ 118
갈등 ______ 119
갇힌 시간 ______ 120
천상 미소 ______ 122
게르 ______ 124
적묵積墨 ______ 127
플롬 산악 열차 ______ 128
액정 호수 ______ 131
│해설│김주완(시인, 철학박사)
시 속에 녹아든 철학의 뼈 ______ 135
저자
저자
김인숙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꼬리』(2011), 『소금을 꾸러 갔다』(2014),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2016),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2023)이 있고, 논문 「구상 시인의 생애와 왜관 낙동강」(2022)이 있다. 제21회 신라문학상 대상(2009), 제18회 한국문학예술상(2015), 농어촌문학상 대상(2015), 제1회 경북작가상(2015), 제30회 경상북도문학상(2016), 제8회 석정촛불시문학상(2021)을 수상했다. 예천곤충생태원에 2016년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세운 시비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협 회원, 경북문협 회원,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 낙동강문학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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