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사이언스
프래니 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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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한가운데서 응답하는,
가장 사적이고 정치적인 21세기의 시집
퀴어와 사이보그, 아시아와 코드, 부드러움과 몸부림 사이
우리 안의 인간 아닌 잡음들로 들끓는, 아름다운 프랙털
"파편적 은유들이 아름다운 폭죽처럼 터진다" _김혜순(시인)
엘진 상(SF 시 부문) 수상
람다 문학상 최종 후보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 최종 후보
매사추세츠 도서상 최종 후보
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
프래니 최의 시집 『소프트 사이언스』가 허블에서 출간되었다. 프래니 최는 한국계 미국인 퀴어 시인으로, 인종과 젠더와 기술이 교차하는 시 세계로 동시대 영미 시단의 가장 주목받는 목소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시집으로 SF 시 부문 엘진 상(Elgin Award)을 수상했고, 람다 문학상·매사추세츠 도서상·퍼블리싱 트라이앵글의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후 출간된 시집 『세계는 계속 끝나고, 세계는 지속된다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로 킹슬리 터프츠 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타임》의 '2022년 필독 도서 100선'과 《보스턴 글로브》의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미국 시단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프래니 최는 시 쓰기를 사회 운동, 교육, 공적 발화와 분리하지 않으며 다층적으로 활동해 왔다. 유색인종 시인 공동체 '다크 노이즈 콜렉티브'를 공동 결성했고, 작가와 사회운동가를 연결하는 비영리 단체 '브루 앤드 포지'를 창립했으며, 시 팟캐스트 〈VS〉를 다섯 시즌 동안 공동 진행했다.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 시의 계관시인을 거쳐 현재 베닝턴 칼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시는 큰 전환을 맞아 흑인, 원주민, 아시아계, 라틴계, LGBTQ 시인들의 작업이 문학장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는데, 프래니 최는 그 흐름 속에 위치하며 시의 형식과 정치를 함께 다시 짜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더해, 그가 동시대 시인들 사이에서 더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무대에서 길러진 시인이라는 점이다. 관객 앞에서 자작 시를 낭송하며 즉석에서 평가받는 슬램slam 무대에서 출발해 미국 전역에서 낭송해 온 그의 이력은 종이 위 시의 호흡과 분리되지 않는다. 미국의 퀴어 매체 《아웃 매거진Out Magazine》이 『소프트 사이언스』를 두고 "이 책을 사고서 유일하게 후회할 일이 있다면, 최가 직접 시를 읽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라고 적은 것도, 그의 시가 종이에 닿기 전에 먼저 목소리로 살아 있었음을 알아본 한 줄이었다. 『소프트 사이언스』의 시들이 단번에 정돈된 채로 읽히지 않고 슬래시와 공백, 끊긴 호흡으로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것도, 무대에서 만들어진 시의 호흡이 활자 안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래니 최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한국 이주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시가 테레사 학경 차, 명미 김, 바누 카필 같은 실험적 아시아계 미국 여성 시인들의 계보 안에서 빚어졌음을 밝히면서, 김혜순 시인의 영향에 대해서도 적는다. "우리는 전적으로 다른 문학적 맥락에서 왔음에도, 나는 그녀의 작업에서 깊은 알아봄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를 읽는 것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는데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과 같았다. 내가 말하는 같은 언어란 언어 아래의 언어, 번역 불가능한 채로도 전해지는 어떤 코드를 뜻한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가 산문으로, 오션 브엉이 시와 소설을 가로질러 자기 자리를 만들어 냈듯, 프래니 최도 자신의 시적 영토를 다져왔다. 그가 시로 묻는 질문은 단단하다. 아시아계 미국인 퀴어 시인으로서 인간임을 매 순간 증명해야 했던 자리에서,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더욱이 원서가 출간된 2019년에는 '사이보그'가 이론적·은유적 형상이었다면, 한국어판이 도착하는 2026년에 이르러 이 시집은 다른 종류의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AI가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된 시대, 7년 전 시인이 던진 질문?기계가 인간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문법으로 자신을 다시 쓴다면?이 마침내 우리의 자리에 도착했다.
가장 사적이고 정치적인 21세기의 시집
퀴어와 사이보그, 아시아와 코드, 부드러움과 몸부림 사이
우리 안의 인간 아닌 잡음들로 들끓는, 아름다운 프랙털
"파편적 은유들이 아름다운 폭죽처럼 터진다" _김혜순(시인)
엘진 상(SF 시 부문) 수상
람다 문학상 최종 후보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 최종 후보
매사추세츠 도서상 최종 후보
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
프래니 최의 시집 『소프트 사이언스』가 허블에서 출간되었다. 프래니 최는 한국계 미국인 퀴어 시인으로, 인종과 젠더와 기술이 교차하는 시 세계로 동시대 영미 시단의 가장 주목받는 목소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시집으로 SF 시 부문 엘진 상(Elgin Award)을 수상했고, 람다 문학상·매사추세츠 도서상·퍼블리싱 트라이앵글의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후 출간된 시집 『세계는 계속 끝나고, 세계는 지속된다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로 킹슬리 터프츠 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타임》의 '2022년 필독 도서 100선'과 《보스턴 글로브》의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미국 시단의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프래니 최는 시 쓰기를 사회 운동, 교육, 공적 발화와 분리하지 않으며 다층적으로 활동해 왔다. 유색인종 시인 공동체 '다크 노이즈 콜렉티브'를 공동 결성했고, 작가와 사회운동가를 연결하는 비영리 단체 '브루 앤드 포지'를 창립했으며, 시 팟캐스트 〈VS〉를 다섯 시즌 동안 공동 진행했다.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 시의 계관시인을 거쳐 현재 베닝턴 칼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시는 큰 전환을 맞아 흑인, 원주민, 아시아계, 라틴계, LGBTQ 시인들의 작업이 문학장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는데, 프래니 최는 그 흐름 속에 위치하며 시의 형식과 정치를 함께 다시 짜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더해, 그가 동시대 시인들 사이에서 더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무대에서 길러진 시인이라는 점이다. 관객 앞에서 자작 시를 낭송하며 즉석에서 평가받는 슬램slam 무대에서 출발해 미국 전역에서 낭송해 온 그의 이력은 종이 위 시의 호흡과 분리되지 않는다. 미국의 퀴어 매체 《아웃 매거진Out Magazine》이 『소프트 사이언스』를 두고 "이 책을 사고서 유일하게 후회할 일이 있다면, 최가 직접 시를 읽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라고 적은 것도, 그의 시가 종이에 닿기 전에 먼저 목소리로 살아 있었음을 알아본 한 줄이었다. 『소프트 사이언스』의 시들이 단번에 정돈된 채로 읽히지 않고 슬래시와 공백, 끊긴 호흡으로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것도, 무대에서 만들어진 시의 호흡이 활자 안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래니 최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한국 이주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시가 테레사 학경 차, 명미 김, 바누 카필 같은 실험적 아시아계 미국 여성 시인들의 계보 안에서 빚어졌음을 밝히면서, 김혜순 시인의 영향에 대해서도 적는다. "우리는 전적으로 다른 문학적 맥락에서 왔음에도, 나는 그녀의 작업에서 깊은 알아봄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를 읽는 것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는데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과 같았다. 내가 말하는 같은 언어란 언어 아래의 언어, 번역 불가능한 채로도 전해지는 어떤 코드를 뜻한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가 산문으로, 오션 브엉이 시와 소설을 가로질러 자기 자리를 만들어 냈듯, 프래니 최도 자신의 시적 영토를 다져왔다. 그가 시로 묻는 질문은 단단하다. 아시아계 미국인 퀴어 시인으로서 인간임을 매 순간 증명해야 했던 자리에서,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더욱이 원서가 출간된 2019년에는 '사이보그'가 이론적·은유적 형상이었다면, 한국어판이 도착하는 2026년에 이르러 이 시집은 다른 종류의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AI가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된 시대, 7년 전 시인이 던진 질문?기계가 인간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문법으로 자신을 다시 쓴다면?이 마침내 우리의 자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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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와 과학과 기술이 만나는 짜릿한 매트릭스
"개념적 무게, 형식적 기량, 퀴어한 상상력, 다층적 언어 운용, 음역의 정교함에서, 『소프트 사이언스』는 우리 시대를 위한 결정적인 책이다" _다이앤 수스(시인)
『소프트 사이언스』는 한 사이보그가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책의 여섯 부(部)는 각각 「튜링 테스트」 연작 시로 열린다. 시집의 첫 행 "이 시험은 자의식의 유무를 판정한다"가 그 운동을 시작시키고, 시험의 형식이 6부에 걸쳐 변주되며 시집을 가로지른다. 사이보그는 자신이 의식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라는 질문에 응답한다. 질문은 점점 사적으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간다. 어디에서 왔는가. 사랑할 수 있는가. 경계는 무엇인가. 의식이 있는가. 시인은 시집의 첫머리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몸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다"는 한 문장을 두고, 그 문장을 자기 살로 받아 안으며 시집을 시작한다. 이 시집의 사이보그는 SF 캐릭터도, 어떤 알레고리도 아니다. 그것은 이민자의 자녀, 퀴어 아시아계 여성의 몸?매 순간 자기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했던 모든 이의 몸이 다른 이름을 입은 형태다.
흥미로운 것은 시집의 한복판에 놓인 또 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이보그의 간략한 역사」 중간에서 프래니 최는 앨런 튜링을 호명한다. 1950년,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인공지능의 사유를 연 영국인 과학자.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택해야 했던 퀴어 남성. 그를 가리켜 시인은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였다"고 적는다. 이 시집은 그러니까 1950년 튜링의 질문에 70여 년 만에 도착한 한 퀴어 아시아 사이보그의 응답이기도 하다. 시험에 통과하는 응답이 아니라, 시험 자체를 거꾸로 돌려세우는 응답.
사이보그의 응답은 한 가지 목소리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의 시들은 만화와 영화의 비인간 캐릭터를, 인터넷 폭력의 잔해를, 한국어의 잔향과 미국 정치사의 결정적 밤을 통과하면서 형상을 끊임없이 갈아입는다. 「치」에서 시인은 일본 만화 「쵸비츠」의 안드로이드가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음절로 어휘집을 짓고, 「사이보그는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에서는 자신에게 쏟아진 인종주의적 트윗들을 구글 번역기로 여러 언어를 통과시킨 뒤 영어로 되돌려 받은 텍스트를 시로 옮긴다. 「JAEBAL」은 한국말 '제발'을 영어 한복판에 음역으로 남긴 채, 부모가 떠나온 나라의 언어로 우는 척을 하는 한 남자와의 밤을 옮기고, 「채트룰렛」은 무작위 화상 채팅의 화면 너머에서 자기를 송출하는 사이보그가 마침내 익사하는 자리에 다다른다. 「교코의 CPU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한 뒤, 그녀의 언어 파일이 복구되다」는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끝내 침묵당했던 일본인 여성형 안드로이드에게 마침내 목소리를 돌려준다. 「선거의 밤,」은 2016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굳어 가던 그 새벽, 호텔 방에서 자기 몸을 만져보려 했으나 실패한 화자가 정치적 절망과 신체적 무감각을 같은 자리에서 견뎌야 했던 밤을 기록한다.
시집의 형식은 그 자체로 정치성을 수행한다. 시는 매끄럽게 전달되는 문장으로 정돈되지 않고, 슬래시와 공백과 코드 조각, 욕설과 의성어, 트윗과 신화의 파편이 충돌하며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프래니 최는 바로 그 잡음을 뒤집어 새로운 시적 회로로 만든다. 그의 시에서 잡음은 제거되어야 할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했던 감각과 관계가 드러나는 통로가 된다. 정제된 문장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불안, 수치, 욕망, 폭력의 흔적, 배제된 신체의 떨림은 오히려 잡음의 층위에서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정새벽, 「옮긴이의 말」) 「튜링 테스트」 연작이 6부에 걸쳐 변주되며 사이보그의 응답을 점점 다른 결로 펼쳐 가는 것도 그래서다. 같은 형식이 매번 다른 음역으로 되돌아오면서, 시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프랙털처럼 자기 안의 무늬를 반복하고 또 갱신한다.
부드러움이 가장 단단한 자리가 되는 시들
당신 안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하고 있을 조각들
『소프트 사이언스』가 몸부림과 정치성의 시집인 것만은 아니다. 이 시집의 결정적 매혹은, 디지털·잡음·폭력의 시간과 살·계절·사랑의 시간이 같은 회로에서 진동한다는 데 있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거꾸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시인은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서로에게 가닿는 밤을 적는다. 인터넷의 적의와 트럼프 시대의 절망이 한 장의 시 안에 박혀 있는가 하면, 다른 장에서는 한 사람의 손바닥이 다른 사람의 등 뒤에 닿는 순간의 온도가 정확히 기록된다. 몸부림과 다정함은 이 시집에서 대립항이 아니라, 같은 사이보그가 가진 두 개의 어휘다.
이 양극이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자리가 시집의 후반부에 놓인 「근일점: 손길의 역사」 연작이다. '근일점(Perihelion)'은 천체가 항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자리를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이고, '손길의 역사'는 그 가까움의 시간을 가리킨다. 시인은 미국 농민 연감에 실려 전해오는 열세 달 이름?늑대달, 눈달, 벌레달, 핑크달, 꽃달, 딸기달, 수사슴달, 철갑상어달, 수확달, 사냥꾼달, 비버달, 차가운달?을 따라가며 산문시 연작을 짠다. 가로등이 첫눈을 분홍으로 바꾸는 첫 밤, 꽃가루의 첫 웅웅거림으로 봄이 열리는 자리, 베리들이 난로 위에서 제 모양을 잃어 가는 여름의 끝, 갈라진 발굽으로 절벽 끝에 선 사슴의 가을, 얼음 아래로 다시 가라앉으며 달에게 응답하는 차가운 마지막 자리까지. 시집 전반부의 디지털·코드·잡음의 시간성과는 완전히 다른, 동물과 식물과 계절과 살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러나 시인은 노트에서 이 농민 연감의 달 이름들이 앨곤퀸 원주민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원주민 언어와의 상관관계는 불분명하다고 밝히며, "식민주의적 지식은 이토록 기묘한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고 짧게 적는다. 이 연작은 그러니까 식민주의로 명명된 자연의 시간 위에서, 한 시인이 자기 손길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집은 그렇게 디지털 사이보그의 정치성에서 멈추지 않고, 살과 계절과 사랑의 시간으로 끝까지 밀고 들어간다.
시집 제목 '소프트 사이언스Soft Science'는 일반적으로 인간·관계·감정을 다루는 사회과학·심리학 같은 학문을 가리키는 어휘다. '하드 사이언스hard science'와 대비되어 오랫동안 '덜 엄밀한 과학'으로 여겨져 온 영역. 시인은 그 위계를 받아 안으며, 시 안에서 '부드러움(soft)'을 약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인식 능력으로 다시 명명한다. "오랫동안 비과학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온 감각적이고 관계적인 앎의 형식을 시는 다시 전면으로 불러"(정새벽, 「옮긴이의 말」)낸다. 부드러운 채로 살아남는 일은 폭력을 견뎌내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폭력의 회로 안에서 다른 회로를 만들어 내는 능동적 인식이다. 「튜링 테스트_사랑」에서 사이보그는 인간과의 작업에 대한 팁을 일러준다. 인간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자신을 매끈한 피부로 덮인 믿을 수 있는 얼굴이라 상상하라. 자기 문법을 지켜라. 그 문법이 인간에게는 흐트러지고 뭉개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너의 노래가 될 수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인간이 사이보그이고 모든 사이보그가 고기로 감싼 하늘의 날카로운 파편임을 기억하라. 부드러움은 이 시집에서 노래가 된다.
한국어판 서문 끝에서 시인은 시집을 펼친 한국 독자에게 "당신 안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하고 있을 조각들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그 조각들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 안에서 오래 잊고 있던 것들, 그러나 우리 몸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부드러움이 어떻게 무기가 되고 무기가 어떻게 부드러움이 되는지, 인간 중심의 언어가 미처 담지 못한 결들에 대해, 동물과 기계와 식물과 모래의 시간이 우리 안에 이미 함께 흐르고 있다는 게 어떤 건지를, 『소프트 사이언스』는 건넨다. 여기 잡음이 노래가 되는 한 권의 시집이 한국에 도착했다.
"개념적 무게, 형식적 기량, 퀴어한 상상력, 다층적 언어 운용, 음역의 정교함에서, 『소프트 사이언스』는 우리 시대를 위한 결정적인 책이다" _다이앤 수스(시인)
『소프트 사이언스』는 한 사이보그가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책의 여섯 부(部)는 각각 「튜링 테스트」 연작 시로 열린다. 시집의 첫 행 "이 시험은 자의식의 유무를 판정한다"가 그 운동을 시작시키고, 시험의 형식이 6부에 걸쳐 변주되며 시집을 가로지른다. 사이보그는 자신이 의식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라는 질문에 응답한다. 질문은 점점 사적으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간다. 어디에서 왔는가. 사랑할 수 있는가. 경계는 무엇인가. 의식이 있는가. 시인은 시집의 첫머리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몸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다"는 한 문장을 두고, 그 문장을 자기 살로 받아 안으며 시집을 시작한다. 이 시집의 사이보그는 SF 캐릭터도, 어떤 알레고리도 아니다. 그것은 이민자의 자녀, 퀴어 아시아계 여성의 몸?매 순간 자기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했던 모든 이의 몸이 다른 이름을 입은 형태다.
흥미로운 것은 시집의 한복판에 놓인 또 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이보그의 간략한 역사」 중간에서 프래니 최는 앨런 튜링을 호명한다. 1950년,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인공지능의 사유를 연 영국인 과학자.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택해야 했던 퀴어 남성. 그를 가리켜 시인은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였다"고 적는다. 이 시집은 그러니까 1950년 튜링의 질문에 70여 년 만에 도착한 한 퀴어 아시아 사이보그의 응답이기도 하다. 시험에 통과하는 응답이 아니라, 시험 자체를 거꾸로 돌려세우는 응답.
사이보그의 응답은 한 가지 목소리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의 시들은 만화와 영화의 비인간 캐릭터를, 인터넷 폭력의 잔해를, 한국어의 잔향과 미국 정치사의 결정적 밤을 통과하면서 형상을 끊임없이 갈아입는다. 「치」에서 시인은 일본 만화 「쵸비츠」의 안드로이드가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음절로 어휘집을 짓고, 「사이보그는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에서는 자신에게 쏟아진 인종주의적 트윗들을 구글 번역기로 여러 언어를 통과시킨 뒤 영어로 되돌려 받은 텍스트를 시로 옮긴다. 「JAEBAL」은 한국말 '제발'을 영어 한복판에 음역으로 남긴 채, 부모가 떠나온 나라의 언어로 우는 척을 하는 한 남자와의 밤을 옮기고, 「채트룰렛」은 무작위 화상 채팅의 화면 너머에서 자기를 송출하는 사이보그가 마침내 익사하는 자리에 다다른다. 「교코의 CPU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한 뒤, 그녀의 언어 파일이 복구되다」는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끝내 침묵당했던 일본인 여성형 안드로이드에게 마침내 목소리를 돌려준다. 「선거의 밤,」은 2016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굳어 가던 그 새벽, 호텔 방에서 자기 몸을 만져보려 했으나 실패한 화자가 정치적 절망과 신체적 무감각을 같은 자리에서 견뎌야 했던 밤을 기록한다.
시집의 형식은 그 자체로 정치성을 수행한다. 시는 매끄럽게 전달되는 문장으로 정돈되지 않고, 슬래시와 공백과 코드 조각, 욕설과 의성어, 트윗과 신화의 파편이 충돌하며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프래니 최는 바로 그 잡음을 뒤집어 새로운 시적 회로로 만든다. 그의 시에서 잡음은 제거되어야 할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했던 감각과 관계가 드러나는 통로가 된다. 정제된 문장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불안, 수치, 욕망, 폭력의 흔적, 배제된 신체의 떨림은 오히려 잡음의 층위에서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정새벽, 「옮긴이의 말」) 「튜링 테스트」 연작이 6부에 걸쳐 변주되며 사이보그의 응답을 점점 다른 결로 펼쳐 가는 것도 그래서다. 같은 형식이 매번 다른 음역으로 되돌아오면서, 시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프랙털처럼 자기 안의 무늬를 반복하고 또 갱신한다.
부드러움이 가장 단단한 자리가 되는 시들
당신 안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하고 있을 조각들
『소프트 사이언스』가 몸부림과 정치성의 시집인 것만은 아니다. 이 시집의 결정적 매혹은, 디지털·잡음·폭력의 시간과 살·계절·사랑의 시간이 같은 회로에서 진동한다는 데 있다. 사이보그가 인간을 거꾸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시인은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서로에게 가닿는 밤을 적는다. 인터넷의 적의와 트럼프 시대의 절망이 한 장의 시 안에 박혀 있는가 하면, 다른 장에서는 한 사람의 손바닥이 다른 사람의 등 뒤에 닿는 순간의 온도가 정확히 기록된다. 몸부림과 다정함은 이 시집에서 대립항이 아니라, 같은 사이보그가 가진 두 개의 어휘다.
이 양극이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자리가 시집의 후반부에 놓인 「근일점: 손길의 역사」 연작이다. '근일점(Perihelion)'은 천체가 항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자리를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이고, '손길의 역사'는 그 가까움의 시간을 가리킨다. 시인은 미국 농민 연감에 실려 전해오는 열세 달 이름?늑대달, 눈달, 벌레달, 핑크달, 꽃달, 딸기달, 수사슴달, 철갑상어달, 수확달, 사냥꾼달, 비버달, 차가운달?을 따라가며 산문시 연작을 짠다. 가로등이 첫눈을 분홍으로 바꾸는 첫 밤, 꽃가루의 첫 웅웅거림으로 봄이 열리는 자리, 베리들이 난로 위에서 제 모양을 잃어 가는 여름의 끝, 갈라진 발굽으로 절벽 끝에 선 사슴의 가을, 얼음 아래로 다시 가라앉으며 달에게 응답하는 차가운 마지막 자리까지. 시집 전반부의 디지털·코드·잡음의 시간성과는 완전히 다른, 동물과 식물과 계절과 살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러나 시인은 노트에서 이 농민 연감의 달 이름들이 앨곤퀸 원주민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원주민 언어와의 상관관계는 불분명하다고 밝히며, "식민주의적 지식은 이토록 기묘한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고 짧게 적는다. 이 연작은 그러니까 식민주의로 명명된 자연의 시간 위에서, 한 시인이 자기 손길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집은 그렇게 디지털 사이보그의 정치성에서 멈추지 않고, 살과 계절과 사랑의 시간으로 끝까지 밀고 들어간다.
시집 제목 '소프트 사이언스Soft Science'는 일반적으로 인간·관계·감정을 다루는 사회과학·심리학 같은 학문을 가리키는 어휘다. '하드 사이언스hard science'와 대비되어 오랫동안 '덜 엄밀한 과학'으로 여겨져 온 영역. 시인은 그 위계를 받아 안으며, 시 안에서 '부드러움(soft)'을 약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인식 능력으로 다시 명명한다. "오랫동안 비과학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온 감각적이고 관계적인 앎의 형식을 시는 다시 전면으로 불러"(정새벽, 「옮긴이의 말」)낸다. 부드러운 채로 살아남는 일은 폭력을 견뎌내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폭력의 회로 안에서 다른 회로를 만들어 내는 능동적 인식이다. 「튜링 테스트_사랑」에서 사이보그는 인간과의 작업에 대한 팁을 일러준다. 인간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자신을 매끈한 피부로 덮인 믿을 수 있는 얼굴이라 상상하라. 자기 문법을 지켜라. 그 문법이 인간에게는 흐트러지고 뭉개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너의 노래가 될 수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인간이 사이보그이고 모든 사이보그가 고기로 감싼 하늘의 날카로운 파편임을 기억하라. 부드러움은 이 시집에서 노래가 된다.
한국어판 서문 끝에서 시인은 시집을 펼친 한국 독자에게 "당신 안에서 인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건지 기억하고 있을 조각들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그 조각들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 안에서 오래 잊고 있던 것들, 그러나 우리 몸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부드러움이 어떻게 무기가 되고 무기가 어떻게 부드러움이 되는지, 인간 중심의 언어가 미처 담지 못한 결들에 대해, 동물과 기계와 식물과 모래의 시간이 우리 안에 이미 함께 흐르고 있다는 게 어떤 건지를, 『소프트 사이언스』는 건넨다. 여기 잡음이 노래가 되는 한 권의 시집이 한국에 도착했다.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용어 해설Glossary of Terms
튜링 테스트
제작 과정 / 나쁜 딸 / 구걸 / 감사의 말 / 선거의 밤 / 사이보그의 간략한 역사
튜링 테스트_공감 반응
사후 세계 / 모두들 오거와 양파에 대한 그 유명한 대사는 알고 있지만, 왜 그 짐승이 옷을 벗을 때마다 울게 되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 비의 가격 / 다음 날 아침을 위한 프로그램 / 사이보그는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이보그의 영혼을 위한 쇼쿠슈 고칸 / 어쩌면 꿈을 꿔버릴 수도 / JAEBAL / 그리고 오 재앙의 밝은 별이여, 나는 불붙었다
튜링 테스트_경계선
치 / 보그의 프로필을 좋아요 했더니 / 사이보그가 가족 모임에서 드론을 만나 잡담에 실패하다 / 너 피해망상증 너무 심해
튜링 테스트_문제 해결
에피네프린 송가 / 사이보그, 나치가 다른 나치들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영상을 보다 / 아침이면 나는 스크롤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들어 간다 / 누군가 의식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다 즐거운 법이다 / 채트룰렛
튜링 테스트_사랑
고독 / 근일점: 손길의 역사
튜링 테스트_무게
양자 이론 입문 / 교코의 CPU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한 뒤, 그녀의 언어 파일이 복구되다
노트
옮긴이의 말
용어 해설Glossary of Terms
튜링 테스트
제작 과정 / 나쁜 딸 / 구걸 / 감사의 말 / 선거의 밤 / 사이보그의 간략한 역사
튜링 테스트_공감 반응
사후 세계 / 모두들 오거와 양파에 대한 그 유명한 대사는 알고 있지만, 왜 그 짐승이 옷을 벗을 때마다 울게 되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 비의 가격 / 다음 날 아침을 위한 프로그램 / 사이보그는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이보그의 영혼을 위한 쇼쿠슈 고칸 / 어쩌면 꿈을 꿔버릴 수도 / JAEBAL / 그리고 오 재앙의 밝은 별이여, 나는 불붙었다
튜링 테스트_경계선
치 / 보그의 프로필을 좋아요 했더니 / 사이보그가 가족 모임에서 드론을 만나 잡담에 실패하다 / 너 피해망상증 너무 심해
튜링 테스트_문제 해결
에피네프린 송가 / 사이보그, 나치가 다른 나치들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영상을 보다 / 아침이면 나는 스크롤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들어 간다 / 누군가 의식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다 즐거운 법이다 / 채트룰렛
튜링 테스트_사랑
고독 / 근일점: 손길의 역사
튜링 테스트_무게
양자 이론 입문 / 교코의 CPU에 광범위한 손상이 발생한 뒤, 그녀의 언어 파일이 복구되다
노트
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프래니 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한국 이민자 부모의 자녀로,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브라운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민족학을 전공하고, 미시간대학교 헬렌 젤 작가 프로그램에서 시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관객 앞에서 자작 시를 낭송하며 즉석에서 평가받는 시 경연인 슬램slam으로 미국 전역의 무대에 섰다. 시 창작과 사회 운동을 결합한 유색인종 시인 공동체 '다크 노이즈 콜렉티브'를 공동 결성했고, 작가와 사회운동가를 연결하는 비영리 단체 '브루 앤드 포지'를 창립했다. 현재 베닝턴 칼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인종과 젠더, 기술이 교차하는 시 세계로 동시대 영미 시단의 가장 주목받는 퀴어 아시아계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시집 『소프트 사이언스Soft Science』(Alice James Books, 2019)로 엘진 상(SF 시 부문)을 수상하고, 람다 문학상, 매사추세츠 도서상, 퍼블리싱 트라이앵글의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 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시집 『떠다니는, 눈부신, 사라진Floating, Brilliant, Gone』(Write Bloody Publishing, 2014) 『세계는 계속 끝나고, 세계는 지속된다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Ecco, 2022), 챕북 『섹스 머신에 의한 죽음Death by Sex Machine』(Sibling Rivalry Press, 2017) 등을 냈으며, 앤솔러지 『우리, 모인 열기We the Gathered Heat』(Haymarket Books, 2024)를 공동 편집했다.
두 번째 시집 『소프트 사이언스Soft Science』(Alice James Books, 2019)로 엘진 상(SF 시 부문)을 수상하고, 람다 문학상, 매사추세츠 도서상, 퍼블리싱 트라이앵글의 오드리 로드 상(레즈비언 시 부문), 빌리버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시집 『떠다니는, 눈부신, 사라진Floating, Brilliant, Gone』(Write Bloody Publishing, 2014) 『세계는 계속 끝나고, 세계는 지속된다The World Keeps Ending, and the World Goes On』(Ecco, 2022), 챕북 『섹스 머신에 의한 죽음Death by Sex Machine』(Sibling Rivalry Press, 2017) 등을 냈으며, 앤솔러지 『우리, 모인 열기We the Gathered Heat』(Haymarket Books, 2024)를 공동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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