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뼈와 플라스틱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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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부터 플라스틱까지,
인간이 쌓아 올린 기묘한 표본들을 헤치며
이 시대의 존재론적 은유가 되어 온 '인류세'를 횡단하다
먼 훗날 누군가 오늘의 지층을 파헤친다면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전 세계에서 대량소비 되는 닭의 뼈와 좀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증언하는 강력한 흔적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치킨을 먹지만 살아 있는 닭이 어떻게 식탁 위에 오르게 되는지는 보지 못하고, 매일 플라스틱을 쓰고 버리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는 잊고 산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흔적은 넘쳐 나지만 그 생산과 폐기의 과정은 감춰지는 오늘을 '범람과 은폐의 시대'라 부른다.
이 책은 닭뼈와 플라스틱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흔적에서 출발해 인간 활동이 지구의 물리·화학·생물학 시스템 자체를 뒤흔드는 시대, '인류세(Anthropocene)'를 탐사한다. 인류세는 하나의 학문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책 역시 인류세의 파국을 단순히 기후 위기의 다른 이름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인류세의 위기는 "'온실가스'라는 한 명의 용의자가 저지른 단독 범행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도 하는, 이른바 '다차원적인 곤경(predicament)'이다. 지층과 닭뼈, 플라스틱과 자본주의,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한 명의 범인도, 단 하나의 해법도 없는 인류세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따로 떼어 놓는 오래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흔적을 좇는 지질학과 지구시스템과학에서 출발해 생태학과 경제학, 법과 정치,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론까지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인류세라는 벼랑 끝 영토를 탐사한다.
인간이 쌓아 올린 기묘한 표본들을 헤치며
이 시대의 존재론적 은유가 되어 온 '인류세'를 횡단하다
먼 훗날 누군가 오늘의 지층을 파헤친다면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전 세계에서 대량소비 되는 닭의 뼈와 좀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증언하는 강력한 흔적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치킨을 먹지만 살아 있는 닭이 어떻게 식탁 위에 오르게 되는지는 보지 못하고, 매일 플라스틱을 쓰고 버리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는 잊고 산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흔적은 넘쳐 나지만 그 생산과 폐기의 과정은 감춰지는 오늘을 '범람과 은폐의 시대'라 부른다.
이 책은 닭뼈와 플라스틱이라는 익숙하고도 낯선 흔적에서 출발해 인간 활동이 지구의 물리·화학·생물학 시스템 자체를 뒤흔드는 시대, '인류세(Anthropocene)'를 탐사한다. 인류세는 하나의 학문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책 역시 인류세의 파국을 단순히 기후 위기의 다른 이름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인류세의 위기는 "'온실가스'라는 한 명의 용의자가 저지른 단독 범행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도 하는, 이른바 '다차원적인 곤경(predicament)'이다. 지층과 닭뼈, 플라스틱과 자본주의,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한 명의 범인도, 단 하나의 해법도 없는 인류세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따로 떼어 놓는 오래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흔적을 좇는 지질학과 지구시스템과학에서 출발해 생태학과 경제학, 법과 정치,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론까지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인류세라는 벼랑 끝 영토를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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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파괴적인 시대는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인간이 창조한 지질시대, 인류세의 기원을 찾아서
인류세는 언제 시작됐을까? 2000년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한 뒤, 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경계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인류세의 시작점을 정하는 일은 단순히 지질연대에 선을 긋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지금의 지구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아프리카의 빈농과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를 똑같이 '인류'라 부를 수 있을까? 지구를 파괴한 주체를 뭉뚱그려 '인류'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정작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훌륭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책은 이 질문을 붙들고 인류세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저자는 소비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팽창한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자본주의적 '화석경제'가 출발한 18세기 후반, '싸구려 자연'으로 행성적 비즈니스를 시작한 1610년의 '플렌테이션세'와 '자본세', 더 멀게는 8,000년 전 농업혁명까지 인류세의 여러 기원설을 따라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이 정답인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작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시대를 움직인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바뀌고, 따라서 인류세 언명에 대한 정치적 효과도 달라진다.
1950년대를 인류세의 기점으로 삼는 '거대한 가속'은 인류세가 바로 '지금,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반면 인류세의 기원을 17~18세기 근대 자본주의나 산업자본주의의 태동기에서 찾는 시각은 '인류세 위기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은 유럽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또 이미 고대사회부터 인류가 지구의 물리적·화학적 시스템에 개입했다고 보는 '초기 인류세 가설'은 자연을 길들이고 환경을 바꾸어 온 인간의 오래된 역사까지 문제의 범위를 넓힌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로 얽혀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각이지만, 이 주장은 '현대 인류'의 책임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기원설을 교차해 살펴봄으로써, 인류세라는 개념을 인간과 자연이 맺어 온 관계의 역사를 읽는 틀로 확장한다.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린 인간!
인간-지구의 얽힘에 관한 행성적 탐구
인류세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의 '지질학적 힘'이 되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인간은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렸다. 2017년 포항에서는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단층의 방아쇠를 당겨 규모 5.4의 지진을 촉발했고, 몇몇 기후 연구는 인간이 높여 놓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수만 년 동안 반복돼 온 빙기와 간빙기의 리듬마저 뒤흔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학적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러한 '인류세적 사건'의 흔적을 따라 현장으로 들어간다. 인류세 연구자들이 새로운 지질시대의 대표 화석으로 주목한 캠벨섬의 '랜펄리 나무'는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자연의 시간 속으로 침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남극해 외딴섬의 나이테에까지 핵실험의 방사성 낙진이 '밤 스파이크(bomb spike)'로 새겨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사가 이제 지구의 나이테와 지층에 기록되는 '행성의 사건'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탐사는 인류세 지층 깊숙이 이어진다. 저자는 경기도 평택의 옛 쓰레기 매립지를 시추해 지하 12미터에 묻힌 플라스틱을 직접 끄집어내고, 3,500여 년 전 닭 가축화의 흔적이 발견된 태국 반논왓까지 찾아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새가 된 닭의 기원을 추적한다. 한때 하찮은 쓰레기와 인간이 길들인 평범한 가축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 지구의 시간을 기록하는 흔적이 되었다. 저자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지구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는지 펼쳐 보인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이름을 '지질학적으로' 연기했다."
2024년 인류세 공인안 부결의 전말
2024년, 지질학계는 인류세 공인안을 부결했다. 인류세 공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여겨지던 때였기에 뜻밖의 결론이었다. 이 책은 부결의 전말을 비중 있게 서술하며, '인류세'라는 이름이 파국을 맞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부결 과정에서는 충분한 토론 없이 표결이 빠르게 진행되고, 인류세 논의를 이끌던 연구자들이 '이해 충돌'을 이유로 심의에서 제외되는 등 절차적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면의 더 근본적인 충돌이다.
인류세실무단은 오랜 논의 끝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폭발하고 지구환경 지표가 급격히 치솟은 '거대한 가속'의 시기인 1950년대를 새로운 지질시대의 시작점으로 정해 공인을 추진했다. 그러나 수천 년에서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다뤄 온 층서학자들에게 그로부터 불과 7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대를 하나의 새로운 지질시대로 선언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72년은 너무 짧다'는 층서학의 오랜 '학문적 본능'과, 인간이 불과 수십 년 사이 지구 시스템을 질적으로 바꾸었다는 새로운 현실이 맞부딪힌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지질학이 오랫동안 그려 온 '고요한 추상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충돌로 읽는다. 인간의 개입과 무관하게 장구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자연을 관찰해 온 전통적인 지질학이, 이제 인간을 자연의 역사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시대와 마주했다는 것이다.
"홀로세라는 옛 이름으로는 지금의 파국을 진단하고 대응할 수 없다."인류세 부결 이후, 다시 인류세를 생각하다
결국 '인류세'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인류세라는 개념을 훨씬 강하게 붙들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류세는 기후변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지구 시스템의 복합적인 위기를 한눈에 바라보게 한다. "온실가스 농도라는 숫자를 넘어, 미세플라스틱의 확산, 종의 멸종, 화학적 오염 그리고 생명체 간의 연결망 붕괴라는 위기의 복잡성을 총체적으로 직시"하게 하는 이름이 바로 인류세인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질문의 방향도 달라진다.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입증하는 데서 나아가, 이미 생태적 한계에 다다른 행성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4부는 그 출발점으로 '행성적 관점'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바라본 '푸른 구슬' 지구, 인간이 만든 폐쇄 생태계 실험 '바이오스피어2', 지구를 생명과 환경이 서로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가이아 이론', 인류가 넘지 말아야 할 생태적 한계를 제시한 '행성적 경계', 그 한계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모색하는 '도넛 경제학'을 차례로 살피며, 지구를 인간의 삶을 받쳐 주는 배경이 아니라 생명과 대기, 토양과 바다가 서로 의존하며 움직이는 유한한 시스템으로 다시 보게 한다. 이제 질문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행성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번영할 것인가로 옮겨 간다.
그러나 지구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 5부는 다시 '인류'라는 말 속에 뭉뚱그려진 책임의 차이를 꺼내 놓는다. 누가 더 많이 파괴했고 누가 그 피해를 먼저 감당하는지,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동물·숲과 땅·바다 등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후소송과 국제 기후정치, '사물의 의회'까지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인류세는 환경 위기를 설명하는 과학적 개념에서 책임의 배분과 공동체의 범위를 다시 묻는 정치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위기의 증후를 포착하는 데 구심점이 되어 온 '인류세'는 이제 개인들의 철학과 윤리의 문제로까지 내려왔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류세는 "행성의 다수파인 비인간 동물과 생태 약자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실천적 경로를 묻는 정치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파국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넘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이 책은 바로 그 불편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인간이 창조한 지질시대, 인류세의 기원을 찾아서
인류세는 언제 시작됐을까? 2000년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한 뒤, 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경계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인류세의 시작점을 정하는 일은 단순히 지질연대에 선을 긋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지금의 지구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아프리카의 빈농과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를 똑같이 '인류'라 부를 수 있을까? 지구를 파괴한 주체를 뭉뚱그려 '인류'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정작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훌륭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책은 이 질문을 붙들고 인류세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저자는 소비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팽창한 1950년대의 '거대한 가속', 자본주의적 '화석경제'가 출발한 18세기 후반, '싸구려 자연'으로 행성적 비즈니스를 시작한 1610년의 '플렌테이션세'와 '자본세', 더 멀게는 8,000년 전 농업혁명까지 인류세의 여러 기원설을 따라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점이 정답인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작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시대를 움직인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바뀌고, 따라서 인류세 언명에 대한 정치적 효과도 달라진다.
1950년대를 인류세의 기점으로 삼는 '거대한 가속'은 인류세가 바로 '지금,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반면 인류세의 기원을 17~18세기 근대 자본주의나 산업자본주의의 태동기에서 찾는 시각은 '인류세 위기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은 유럽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또 이미 고대사회부터 인류가 지구의 물리적·화학적 시스템에 개입했다고 보는 '초기 인류세 가설'은 자연을 길들이고 환경을 바꾸어 온 인간의 오래된 역사까지 문제의 범위를 넓힌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서로 얽혀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각이지만, 이 주장은 '현대 인류'의 책임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기원설을 교차해 살펴봄으로써, 인류세라는 개념을 인간과 자연이 맺어 온 관계의 역사를 읽는 틀로 확장한다.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린 인간!
인간-지구의 얽힘에 관한 행성적 탐구
인류세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의 '지질학적 힘'이 되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인간은 지진을 만들고, 빙하기의 문을 닫아 버렸다. 2017년 포항에서는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단층의 방아쇠를 당겨 규모 5.4의 지진을 촉발했고, 몇몇 기후 연구는 인간이 높여 놓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수만 년 동안 반복돼 온 빙기와 간빙기의 리듬마저 뒤흔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학적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러한 '인류세적 사건'의 흔적을 따라 현장으로 들어간다. 인류세 연구자들이 새로운 지질시대의 대표 화석으로 주목한 캠벨섬의 '랜펄리 나무'는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자연의 시간 속으로 침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남극해 외딴섬의 나이테에까지 핵실험의 방사성 낙진이 '밤 스파이크(bomb spike)'로 새겨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사가 이제 지구의 나이테와 지층에 기록되는 '행성의 사건'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탐사는 인류세 지층 깊숙이 이어진다. 저자는 경기도 평택의 옛 쓰레기 매립지를 시추해 지하 12미터에 묻힌 플라스틱을 직접 끄집어내고, 3,500여 년 전 닭 가축화의 흔적이 발견된 태국 반논왓까지 찾아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새가 된 닭의 기원을 추적한다. 한때 하찮은 쓰레기와 인간이 길들인 평범한 가축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 지구의 시간을 기록하는 흔적이 되었다. 저자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지구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는지 펼쳐 보인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이름을 '지질학적으로' 연기했다."
2024년 인류세 공인안 부결의 전말
2024년, 지질학계는 인류세 공인안을 부결했다. 인류세 공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여겨지던 때였기에 뜻밖의 결론이었다. 이 책은 부결의 전말을 비중 있게 서술하며, '인류세'라는 이름이 파국을 맞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부결 과정에서는 충분한 토론 없이 표결이 빠르게 진행되고, 인류세 논의를 이끌던 연구자들이 '이해 충돌'을 이유로 심의에서 제외되는 등 절차적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면의 더 근본적인 충돌이다.
인류세실무단은 오랜 논의 끝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폭발하고 지구환경 지표가 급격히 치솟은 '거대한 가속'의 시기인 1950년대를 새로운 지질시대의 시작점으로 정해 공인을 추진했다. 그러나 수천 년에서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다뤄 온 층서학자들에게 그로부터 불과 7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대를 하나의 새로운 지질시대로 선언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72년은 너무 짧다'는 층서학의 오랜 '학문적 본능'과, 인간이 불과 수십 년 사이 지구 시스템을 질적으로 바꾸었다는 새로운 현실이 맞부딪힌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지질학이 오랫동안 그려 온 '고요한 추상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충돌로 읽는다. 인간의 개입과 무관하게 장구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자연을 관찰해 온 전통적인 지질학이, 이제 인간을 자연의 역사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시대와 마주했다는 것이다.
"홀로세라는 옛 이름으로는 지금의 파국을 진단하고 대응할 수 없다."인류세 부결 이후, 다시 인류세를 생각하다
결국 '인류세'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인류세라는 개념을 훨씬 강하게 붙들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류세는 기후변화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지구 시스템의 복합적인 위기를 한눈에 바라보게 한다. "온실가스 농도라는 숫자를 넘어, 미세플라스틱의 확산, 종의 멸종, 화학적 오염 그리고 생명체 간의 연결망 붕괴라는 위기의 복잡성을 총체적으로 직시"하게 하는 이름이 바로 인류세인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질문의 방향도 달라진다.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입증하는 데서 나아가, 이미 생태적 한계에 다다른 행성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4부는 그 출발점으로 '행성적 관점'을 제시한다. 우주에서 바라본 '푸른 구슬' 지구, 인간이 만든 폐쇄 생태계 실험 '바이오스피어2', 지구를 생명과 환경이 서로 조절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가이아 이론', 인류가 넘지 말아야 할 생태적 한계를 제시한 '행성적 경계', 그 한계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모색하는 '도넛 경제학'을 차례로 살피며, 지구를 인간의 삶을 받쳐 주는 배경이 아니라 생명과 대기, 토양과 바다가 서로 의존하며 움직이는 유한한 시스템으로 다시 보게 한다. 이제 질문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행성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번영할 것인가로 옮겨 간다.
그러나 지구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지막 5부는 다시 '인류'라는 말 속에 뭉뚱그려진 책임의 차이를 꺼내 놓는다. 누가 더 많이 파괴했고 누가 그 피해를 먼저 감당하는지,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동물·숲과 땅·바다 등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후소송과 국제 기후정치, '사물의 의회'까지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 인류세는 환경 위기를 설명하는 과학적 개념에서 책임의 배분과 공동체의 범위를 다시 묻는 정치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위기의 증후를 포착하는 데 구심점이 되어 온 '인류세'는 이제 개인들의 철학과 윤리의 문제로까지 내려왔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류세는 "행성의 다수파인 비인간 동물과 생태 약자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실천적 경로를 묻는 정치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파국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넘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 이 책은 바로 그 불편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목차
목차
머리말 | 범람과 은폐의 시대
프롤로그 | 인간, 지진을 만들다
1부 인류세, 시작되다
1장 인류세의 우연한 탄생?_새로운 시작 혹은 인류를 향한 경고
2장 거대한 가속_폭주 뒤에 만난 새로운 영토
3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① 플랜테이션과 '싸구려 자연'의 탄생
4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② 8,000년 전 시작된 '오래된 야만'
2부 인간의 일, 지구의 일
5장 가장 외로운 나무가 들려주는 말_잃어버린 빙하기와 신생대 최대의 온난화 사건
6장 흙의 착취, 생명의 연결은 어떻게 끊겼는가_농업과 기후 위기의 치킨게임
7장 흑두루미 고난과 개척의 역사_생물 다양성 감소와 인수공통감염병 그리고 제6의 파국
3부 닭뼈와 플라스틱
8장 인류세 부결 사건의 전말_왜 지질학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나?
9장 Fake Plastic Tree_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10장 내일의 치킨 행성_대가속 생물종이 점령하다
4부 우리에게는 행성적 관점이 필요하다
11장 우주선 지구호와 바이오스피어2_유한함 위에서 무한히 살아가기 위해
12장 가이아와 공생자 행성_생물이 공생하는 인류세의 뉴노멀
13장 행성적 경계와 도넛 경제학_안전한 작동 영역에 머물려면
5부 인류라는 말로 퉁칠 수 없는 것
14장 너무나도 중요한 0.47퍼센트의 책임_'기후 소송'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15장 국제 기후 정치와 죄수의 딜레마_모두의 문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게임
16장 우리는 지구를 길들일 수 있는가?_가이아 2.0에서 만난 윤리적 난관
17장 사물의 의회가 개원했습니다_비인간을 위한 민주주의
에필로그 | 미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프롤로그 | 인간, 지진을 만들다
1부 인류세, 시작되다
1장 인류세의 우연한 탄생?_새로운 시작 혹은 인류를 향한 경고
2장 거대한 가속_폭주 뒤에 만난 새로운 영토
3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① 플랜테이션과 '싸구려 자연'의 탄생
4장 인류세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시각_② 8,000년 전 시작된 '오래된 야만'
2부 인간의 일, 지구의 일
5장 가장 외로운 나무가 들려주는 말_잃어버린 빙하기와 신생대 최대의 온난화 사건
6장 흙의 착취, 생명의 연결은 어떻게 끊겼는가_농업과 기후 위기의 치킨게임
7장 흑두루미 고난과 개척의 역사_생물 다양성 감소와 인수공통감염병 그리고 제6의 파국
3부 닭뼈와 플라스틱
8장 인류세 부결 사건의 전말_왜 지질학자들은 반대표를 던졌나?
9장 Fake Plastic Tree_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10장 내일의 치킨 행성_대가속 생물종이 점령하다
4부 우리에게는 행성적 관점이 필요하다
11장 우주선 지구호와 바이오스피어2_유한함 위에서 무한히 살아가기 위해
12장 가이아와 공생자 행성_생물이 공생하는 인류세의 뉴노멀
13장 행성적 경계와 도넛 경제학_안전한 작동 영역에 머물려면
5부 인류라는 말로 퉁칠 수 없는 것
14장 너무나도 중요한 0.47퍼센트의 책임_'기후 소송'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15장 국제 기후 정치와 죄수의 딜레마_모두의 문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게임
16장 우리는 지구를 길들일 수 있는가?_가이아 2.0에서 만난 윤리적 난관
17장 사물의 의회가 개원했습니다_비인간을 위한 민주주의
에필로그 | 미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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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환경 저널리스트이자 성공회대 외래 교수. 영국 브리스틀대학교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했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북극과 남극, 적도를 오가며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인간과 동물을 기록한 '지구 종단 3부작' 시리즈, 그리고 수족관에 갇혀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고향 바다로 돌아가게 한 기사를 쓴 것을 인생 최고의 보람으로 여긴다. 『북극곰은 걷고 싶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동물권력』, 『다정한 거인』 등을 썼다. 2023년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저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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