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빌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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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작가가 꽃피운 ‘바람장미’의 노래
아홉 명의 작가가 꽃피운 저마다 다른 빛깔의 ‘바람장미’ 서른세 송이를 묶은 미니픽션 작품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이 나왔다. 20여 년 전부터 뜻을 함께해 온 소설 동인들이 지금까지 고집해 온 단편소설에서 탈피해 시대의 바람과 변화에 발맞춰 짧은소설들로 꾸민 작품집이다.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들 동인이 그동안 낸 책으로는 《그와 함께 산다는 것》, 《롤러코스터》, 《사람의 마음, 귀신의 마음》,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 등이 있다.
먼저 표제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은 2006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배명희 작가의 작품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젊은 남자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주인공이 그 남자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게 된 뜻밖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자신을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주인공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와 달리 그와의 시간이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말이 없어도 편안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과 ‘시간을 빌리는 사람’이라는 구도가 낯설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화마저 돈으로 사야 하는 관계의 소외, 관계의 실종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2023년 연작장편 《건달바 지대평》으로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구자명 작가의 미니픽션 〈비루와 남루 사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돈의 변주곡이다. 사흘 후 갚겠다며 돈을 빌려간 뒤 약속을 계속 어기는 대학 선배의 한없이 누추해져 버린 모습과 비정한 사채업자처럼 돼버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주인공 ‘숙’은 속으로 외친다. ‘비루와 남루 사이… 우리 각자의 삶은 어디쯤입니까.’
화가이자 미니픽션 및 철학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제5회 윤동주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도 등단한 김의규 작가의 미니픽션 네 편 중 두 편의 주인공은 동물이다. 〈나〉는 바퀴벌레, 〈사랑농장〉은 개다. ‘나’는 말한다. “이제 출현한 지 10만 년밖에 안 된 인간과 3억 5천만 년 된 우리 사이에 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감히 알겠는가? 해충이라고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제9회 불꽃문학상을 수상한 김저운 작가의 〈엔의 그네〉는 다문화 교육 강사의 눈으로 본 이주 여성 ‘엔’의 처절한 생존을 그린다. ‘나’는 다문화 가정 교육에도 잘 참여하지 않고 대화를 해보려 해도 틈을 주지 않는 엔을 보고 속으로는 은근히 무시하고, ‘왜 저들은 저토록 무기력하고 무덤덤할까?’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가난과 사회적 냉대, 그리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스스로 무디어지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음을 깨닫는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김혁 작가의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는 대학 시절 유명한 민주투사였던 G 씨가 언제부턴가 반대 진영에 몸담더니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면서 온갖 요직을 도맡으며 권력을 향유하다가 국제세미나 참석차 출국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마약 탐지견의 수색에 걸려 곤경을 치르게 되는 과정을 위트 있게 그리고 있다.
소설로 등단했지만 동화 작가로 더 유명한 송언 작가의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는 문화센터에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 수강생을 중장년의 아줌마들과 노년의 할머니들이 처음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품듯 보살펴 주다가 어리숙한 숙맥임이 드러나자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타박하더니, 공부를 잘해 서울대 나오고 외교부 5급 공무원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2024년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의 트라우마를 다룬 장편소설 《롱빈의 시간》을 출간한 정의연 작가의 〈고수〉는 지리멸렬한 삶을 못 견뎌 하며 과연 더 버텨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삶의 마지막 예식을 치르고 돌이 든 배낭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는 남자와 여자를 발견하고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최서윤 작가의 〈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은 아는 것도 많고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마음도 많았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추억의 남항진 바다를 찾아가는 친구들의 여행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한상준 작가의 〈‘바다’를 품다〉는 12·3 비상계엄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10대에 목격한 5·18로 인해 트라우마가 있는 훈영이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에 난입한 군인들을 보고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그를 사랑하는 ‘나’는 12·3 비상계엄의 충격과 소설을 포기했던 회한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는 훈영을 바다를 품듯 위로한다.
이처럼 《시간을 빌리는 사람》에는 각기 다른 소재와 빛깔의 짧은소설 서른세 편이 실려 있다. 길이는 짧지만 우리의 복잡다단한 삶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들을 읽다 보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곱씹게 될 것이다.
아홉 명의 작가가 꽃피운 저마다 다른 빛깔의 ‘바람장미’ 서른세 송이를 묶은 미니픽션 작품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이 나왔다. 20여 년 전부터 뜻을 함께해 온 소설 동인들이 지금까지 고집해 온 단편소설에서 탈피해 시대의 바람과 변화에 발맞춰 짧은소설들로 꾸민 작품집이다.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들 동인이 그동안 낸 책으로는 《그와 함께 산다는 것》, 《롤러코스터》, 《사람의 마음, 귀신의 마음》,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 등이 있다.
먼저 표제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은 2006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배명희 작가의 작품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젊은 남자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주인공이 그 남자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게 된 뜻밖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자신을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면서 주인공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와 달리 그와의 시간이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말이 없어도 편안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과 ‘시간을 빌리는 사람’이라는 구도가 낯설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화마저 돈으로 사야 하는 관계의 소외, 관계의 실종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2023년 연작장편 《건달바 지대평》으로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구자명 작가의 미니픽션 〈비루와 남루 사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돈의 변주곡이다. 사흘 후 갚겠다며 돈을 빌려간 뒤 약속을 계속 어기는 대학 선배의 한없이 누추해져 버린 모습과 비정한 사채업자처럼 돼버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주인공 ‘숙’은 속으로 외친다. ‘비루와 남루 사이… 우리 각자의 삶은 어디쯤입니까.’
화가이자 미니픽션 및 철학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제5회 윤동주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도 등단한 김의규 작가의 미니픽션 네 편 중 두 편의 주인공은 동물이다. 〈나〉는 바퀴벌레, 〈사랑농장〉은 개다. ‘나’는 말한다. “이제 출현한 지 10만 년밖에 안 된 인간과 3억 5천만 년 된 우리 사이에 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감히 알겠는가? 해충이라고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제9회 불꽃문학상을 수상한 김저운 작가의 〈엔의 그네〉는 다문화 교육 강사의 눈으로 본 이주 여성 ‘엔’의 처절한 생존을 그린다. ‘나’는 다문화 가정 교육에도 잘 참여하지 않고 대화를 해보려 해도 틈을 주지 않는 엔을 보고 속으로는 은근히 무시하고, ‘왜 저들은 저토록 무기력하고 무덤덤할까?’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가난과 사회적 냉대, 그리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스스로 무디어지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음을 깨닫는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김혁 작가의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는 대학 시절 유명한 민주투사였던 G 씨가 언제부턴가 반대 진영에 몸담더니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면서 온갖 요직을 도맡으며 권력을 향유하다가 국제세미나 참석차 출국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마약 탐지견의 수색에 걸려 곤경을 치르게 되는 과정을 위트 있게 그리고 있다.
소설로 등단했지만 동화 작가로 더 유명한 송언 작가의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는 문화센터에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 수강생을 중장년의 아줌마들과 노년의 할머니들이 처음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품듯 보살펴 주다가 어리숙한 숙맥임이 드러나자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타박하더니, 공부를 잘해 서울대 나오고 외교부 5급 공무원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2024년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의 트라우마를 다룬 장편소설 《롱빈의 시간》을 출간한 정의연 작가의 〈고수〉는 지리멸렬한 삶을 못 견뎌 하며 과연 더 버텨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삶의 마지막 예식을 치르고 돌이 든 배낭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는 남자와 여자를 발견하고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최서윤 작가의 〈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은 아는 것도 많고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마음도 많았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추억의 남항진 바다를 찾아가는 친구들의 여행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한상준 작가의 〈‘바다’를 품다〉는 12·3 비상계엄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10대에 목격한 5·18로 인해 트라우마가 있는 훈영이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에 난입한 군인들을 보고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그를 사랑하는 ‘나’는 12·3 비상계엄의 충격과 소설을 포기했던 회한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는 훈영을 바다를 품듯 위로한다.
이처럼 《시간을 빌리는 사람》에는 각기 다른 소재와 빛깔의 짧은소설 서른세 편이 실려 있다. 길이는 짧지만 우리의 복잡다단한 삶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들을 읽다 보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곱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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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여는 글
구자명
누가 그 사랑을 모르시나요|모자|봄은 온다|비루와 남루 사이
김의규
나|늙은 어린왕자|사랑농장|서로에게 그림자일 뿐
김저운
갈 수 없는 나라|엔의 그네|유민(流民)
김 혁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아버지의 어긋난 해방|옛날의 금잔디|제라늄 여인|하트 오브 골드(Heart of Gold)
배명희
시간을 빌리는 사람|개새끼|아내의 바다
송 언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노란색 카트의 운명|시인의 아내
정의연
터럭 다리|고수|작별 연습|산속의 시인
최서윤
삼마치의 전설|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첫사랑의 맛|침묵의 얼굴
한상준
'바다'를 품다|밤길, 눈길|설핏, 꽃처럼 피어났다
구자명
누가 그 사랑을 모르시나요|모자|봄은 온다|비루와 남루 사이
김의규
나|늙은 어린왕자|사랑농장|서로에게 그림자일 뿐
김저운
갈 수 없는 나라|엔의 그네|유민(流民)
김 혁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아버지의 어긋난 해방|옛날의 금잔디|제라늄 여인|하트 오브 골드(Heart of Gold)
배명희
시간을 빌리는 사람|개새끼|아내의 바다
송 언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노란색 카트의 운명|시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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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럭 다리|고수|작별 연습|산속의 시인
최서윤
삼마치의 전설|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첫사랑의 맛|침묵의 얼굴
한상준
'바다'를 품다|밤길, 눈길|설핏, 꽃처럼 피어났다
저자
저자
구자명
1997년 계간 《작가세계》를 통해 단편 〈뿔〉로 등단. 소설집 《건달》, 《날아라 선녀》, 연작장편 《건달바 지대평》, 짧은소설집 《진눈깨비》, 에세이집 《바늘구멍으로 걸어간 낙타》, 《기억과 망각 사이》. 한국가톨릭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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