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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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의 상징 물고기, 탐욕의 씨앗이 되다
- 청어와 ‘피시 데이’가 바꿔놓은 유럽과 세계의 역사
한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질문 하나.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 둘. ‘만일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 청어가 발트해에서 북해로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갑자기 바꾸지 않았다면 이후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변화로 200년 가까이 유럽 무역 시장의 패권을 장악해왔던 발트해 연안의 한자동맹 위상이 추락했다. 이후 북해 연안의 네덜란드가 청어 무역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7세기 유럽과 세계를 제패하는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다.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의 ‘단식일’과 ‘피시 데이(Fish day)’ 정책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1년의 절반을 단식일로 지정해 엄격히 지켰다. 성욕을 불러일으키고 죄를 범하게 하는 ‘뜨거운 고기’ 육류 섭취를 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단식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에서 (‘차가운 고기’) ‘생선을 적극적으로 먹는 날(피시 데이)’로 바뀌었고 유럽 전역에서 생선 수요가 급증했다. 거대한 수요는 거대한 시장을 창출하고 경제적 패권으로 이어진다. ‘피시 데이’의 맨 처음 최대 수혜자는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한자동맹’을 결성해 청어 무역을 독점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최전성기 가맹 도시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다음 수혜자는 네덜란드였는데, 이 나라는 ‘소금에 절인 청어’ 무역을 발판 삼아 유럽을 제패하고 당대 최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 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이번에 제목을 약간 바꾸고 새롭게 표지 디자인하여 개정 출간한 아이템이다.
- 청어와 ‘피시 데이’가 바꿔놓은 유럽과 세계의 역사
한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질문 하나.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하는 일 자체가 녹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 둘. ‘만일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 청어가 발트해에서 북해로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갑자기 바꾸지 않았다면 이후 중세 유럽의 세력 판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변화로 200년 가까이 유럽 무역 시장의 패권을 장악해왔던 발트해 연안의 한자동맹 위상이 추락했다. 이후 북해 연안의 네덜란드가 청어 무역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7세기 유럽과 세계를 제패하는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다.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의 ‘단식일’과 ‘피시 데이(Fish day)’ 정책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는 1년의 절반을 단식일로 지정해 엄격히 지켰다. 성욕을 불러일으키고 죄를 범하게 하는 ‘뜨거운 고기’ 육류 섭취를 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단식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에서 (‘차가운 고기’) ‘생선을 적극적으로 먹는 날(피시 데이)’로 바뀌었고 유럽 전역에서 생선 수요가 급증했다. 거대한 수요는 거대한 시장을 창출하고 경제적 패권으로 이어진다. ‘피시 데이’의 맨 처음 최대 수혜자는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한자동맹’을 결성해 청어 무역을 독점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최전성기 가맹 도시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다음 수혜자는 네덜란드였는데, 이 나라는 ‘소금에 절인 청어’ 무역을 발판 삼아 유럽을 제패하고 당대 최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 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이번에 제목을 약간 바꾸고 새롭게 표지 디자인하여 개정 출간한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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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물고기 '청어'와 '피시데이'가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 자체도 녹록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나면 과장이 심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는 아마 99퍼센트 동의하게 되지 않을까).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책을 찬찬히 읽으며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독교가 사용한 물고기 청어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벌써 흥미진진해지지 않나?
위의 논지 외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 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이번에 제목을 약간 바꾸고 새롭게 표지 디자인하여 개정 출간한 아이템이다.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도록 일 년 중 거의 절반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시행했다. 그러나 사람이 일 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먹을거리는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로 분류되어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식일은 단순히 '먹는 것이 허용된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바뀌었다. 결국 '단식일'은 '피시 데이(Fish Day)'로 자리 잡으며 엄격히 시행되었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하루 세 끼를 생선으로 해결했다고 상상해보자.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이 생선 위주의 식문화가 당시 유럽 사회 전반을 어떻게 바꿔놓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이는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고, 각지에서 어업 장려 운동이 일어났다. 복합적인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 연합 세력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신흥 패권국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 두 물고기는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한 핵심 요소였다.
회유어(回遊魚)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회유 경로를 바꾸는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에 따르면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바로 바이킹이 고향을 떠나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었다. 13세기 초,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 인근 도시 어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해졌다.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자 발트해 연안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 뤼베크와 함부르크(Hamburg) 간 동맹이 그 시초였으며, 이는 훗날 유럽을 지배한 상업 동맹체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눈덩이처럼 성장해 수십 개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마침내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 패권을 장악했고, 그 영향력은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서 영원할 것만 같던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레 산란지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것이었다. 이 작지만 거대한 변화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였다.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 아래 존재감이 미미했던 네덜란드는 족쇄를 벗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어업 강국이자 17세기 세계 패권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부 빌럼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pickled herring)'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hegemony state)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로, 잉글랜드나 미국보다 앞서 이룩한 쾌거였다."라고 한다.)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Emmanuel Wallerstein) 등은 특정 중심국가의 생산 효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그 국가의 생산물이 다른 중심국가들보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 그 나라를 '헤게모니 국가'로 규정한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몸길이 30센티미터 남짓한 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다.
2.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베네치아 출신의 항해가 존 캐벗(John Cabot)은 헨리 7세로부터 특허를 받아 1496년 3월, 브리스틀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그가 다른 항구가 아닌 브리스틀을 출발지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브리스틀에는 '하이브라질(Hy-Brasil)'이라는 대륙이 존재하며, 브리스틀 선원들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벗은 그 전설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의 진짜 목적지는 하이브라질이 아닌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좀 더 정확히는 황금의 섬 '지팡구(日本, 일본)'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왜 '지팡구'로 향하려 했을까?
당연히 황금과 보석, 그리고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첫 항해는 실패로 끝났고, 캐벗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항해를 감행했고, 귀환 후 밀라노 공국의 외교관 라이몬도 디 손치노(Raimondo di Soncino)에게 자신의 항해담을 전했다. 아래는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다.
"존 캐벗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상륙한 지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 가다 보면 '지팡구'라는 섬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존 캐벗에 따르면 그 섬은 적도 지역에 있고 금ㆍ은 보석이 넘쳐나며 다양한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존 캐벗은 결국 '지팡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배는 북아메리카 대륙 인근의 어느 섬, 어느 항구에 닿았다. 항해 중 항로가 잘못 잡힌 탓이었다. 정확한 상륙 지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수의 학자는 뉴펀들랜드섬(Newfoundland)의 보나비스타(Bonavista) 항으로 추정한다.
결국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맨 금과 보석,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cod shoal)였다. 다음은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의 또 다른 구절이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존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고기는 다름 아닌 대구(cod)다.
존 캐벗이 이끄는 선박이 원래의 항로를 벗어나 우연히 다다른 뉴펀들랜드 연안에서 발견한 이 거대한 대구 떼는, 훗날 신항로 개척 시대의 물줄기를 돌려놓으며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현재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는 '대구상'이 걸려 있으며,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이 대구상은 1895년 의회당을 이전할 때 예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정중히 국기로 감싼 뒤 함대에 실어 수많은 사람의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 지은 의회당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후 이 대구상은 지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성스러운 대구(Sacred Cod)'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성스러운 대구'는 세 번째로 만들어진 '3대 대구상'이다. '1대 대구상'은 174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대 대구상'은 1775~1776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이 의회당을 파괴할 때 함께 사라졌다.
'2대 대구상'은 당시 상인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진 존 로(John Rowe)의 제안에 따라 설치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차와 소금물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누가 그걸 알겠는가?"
(Who knows how tea will mingle with sea water?)
이 말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명대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 수백 년 동안 대구상이 걸려 있고, '성스러운 대구'라는 존경과 찬사가 담긴 별칭까지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잉글랜드를 떠나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초기 이민자들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번영을 이루기까지 대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대구는 신생국 아메리카가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자유정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조금 생뚱맞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만일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인류가 번성하고 번영하기는커녕 생존 자체도 녹록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일 그랬다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룩해낸 찬란한 문명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렇게 말하고 나면 과장이 심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는 아마 99퍼센트 동의하게 되지 않을까).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책을 찬찬히 읽으며 위의 질문에 관한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되어 나온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이자 도구로 중세 기독교가 사용한 물고기 청어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꾼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이야기." 벌써 흥미진진해지지 않나?
위의 논지 외에도 이 책에는 바이킹이 청어의 이동 경로에 발맞추어 유럽의 많은 국가를 침략하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이야기, 15세기 말 황금 섬 지팡구를 찾아 항해하던 존 캐벗이 실수로 도달한 섬에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를 발견해 신항로 개척 시대를 촉발한 이야기, 평범한 생선 대구가 미국 독립전쟁 자유정신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된 이야기 등 흥미롭고도 통찰력 넘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2018년 5월에 출간되어 65주 연속 교보문고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였던『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2019년 8월에 출간되어 교보문고 선정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1위를 차지했던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의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이번에 제목을 약간 바꾸고 새롭게 표지 디자인하여 개정 출간한 아이템이다.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성욕이 불같이 일어나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육류를 섭취하지 못하도록 일 년 중 거의 절반을 '단식일'로 정해 엄격히 시행했다. 그러나 사람이 일 년의 절반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 단식일에도 적은 양이나마 먹을거리는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생선'이었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로 분류되어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단식일에도 생선만은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식일은 단순히 '먹는 것이 허용된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바뀌었다. 결국 '단식일'은 '피시 데이(Fish Day)'로 자리 잡으며 엄격히 시행되었다.
일 년의 절반 가까이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하루 세 끼를 생선으로 해결했다고 상상해보자.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이 생선 위주의 식문화가 당시 유럽 사회 전반을 어떻게 바꿔놓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가 만든 '피시 데이' 관습은 거대한 생선 수요를 창출했고, 이는 거대한 시장 형성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어업이 발달했고, 각지에서 어업 장려 운동이 일어났다. 복합적인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그 시스템을 장악한 상인 연합 세력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과 신흥 패권국 네덜란드가 등장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청어'와 '대구'가 있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 두 물고기는 유럽 국가들의 부의 원천이자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으며, 흥망성쇠를 좌우한 핵심 요소였다.
회유어(回遊魚)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회유 경로를 바꾸는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도시와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에 따르면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바로 바이킹이 고향을 떠나 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었다. 13세기 초, 발트해 연안의 도시 뤼베크(L?beck) 근해에서 어부들이 거대한 청어 떼를 발견했다. 곧 인근 도시 어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청어잡이에 나섰고, 청어 무역이 활발해졌다.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자 발트해 연안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 뤼베크와 함부르크(Hamburg) 간 동맹이 그 시초였으며, 이는 훗날 유럽을 지배한 상업 동맹체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한자동맹은 눈덩이처럼 성장해 수십 개 도시가 참여하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했다. 마침내 한자동맹은 유럽의 경제 패권을 장악했고, 그 영향력은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서 영원할 것만 같던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레 산란지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것이었다. 이 작지만 거대한 변화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였다. 그전까지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 아래 존재감이 미미했던 네덜란드는 족쇄를 벗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네덜란드가 청어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어업 강국이자 17세기 세계 패권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부 빌럼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가 개발한 '소금에 절인 청어(pickled herring)'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 해양을 지배하는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hegemony state)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로, 잉글랜드나 미국보다 앞서 이룩한 쾌거였다."라고 한다.)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Emmanuel Wallerstein) 등은 특정 중심국가의 생산 효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그 국가의 생산물이 다른 중심국가들보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 그 나라를 '헤게모니 국가'로 규정한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몸길이 30센티미터 남짓한 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다.
2.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베네치아 출신의 항해가 존 캐벗(John Cabot)은 헨리 7세로부터 특허를 받아 1496년 3월, 브리스틀에서 서쪽을 향해 출항했다. 그가 다른 항구가 아닌 브리스틀을 출발지로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브리스틀에는 '하이브라질(Hy-Brasil)'이라는 대륙이 존재하며, 브리스틀 선원들이 그곳에 도달했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벗은 그 전설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의 진짜 목적지는 하이브라질이 아닌 서쪽으로 도는 아시아 항로, 좀 더 정확히는 황금의 섬 '지팡구(日本, 일본)'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왜 '지팡구'로 향하려 했을까?
당연히 황금과 보석, 그리고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첫 항해는 실패로 끝났고, 캐벗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항해를 감행했고, 귀환 후 밀라노 공국의 외교관 라이몬도 디 손치노(Raimondo di Soncino)에게 자신의 항해담을 전했다. 아래는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다.
"존 캐벗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습니다. 상륙한 지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항해해서 가다 보면 '지팡구'라는 섬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존 캐벗에 따르면 그 섬은 적도 지역에 있고 금ㆍ은 보석이 넘쳐나며 다양한 향신료의 원산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존 캐벗은 결국 '지팡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배는 북아메리카 대륙 인근의 어느 섬, 어느 항구에 닿았다. 항해 중 항로가 잘못 잡힌 탓이었다. 정확한 상륙 지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수의 학자는 뉴펀들랜드섬(Newfoundland)의 보나비스타(Bonavista) 항으로 추정한다.
결국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맨 금과 보석, 향신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해수면이 불룩 솟아오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대구 떼(cod shoal)였다. 다음은 손치노가 밀라노 대공에게 보낸 편지의 또 다른 구절이다.
"그들은 그 바다에 물고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합니다. 물고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걸 잡기 위해 그물을 칠 필요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에 가라앉도록 돌을 매달아 내린 바구니로도 양껏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존 캐벗의 동료인 잉글랜드인들은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잉글랜드에 아이슬란드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스톡피시라고 부르는 생선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고기는 다름 아닌 대구(cod)다.
존 캐벗이 이끄는 선박이 원래의 항로를 벗어나 우연히 다다른 뉴펀들랜드 연안에서 발견한 이 거대한 대구 떼는, 훗날 신항로 개척 시대의 물줄기를 돌려놓으며 세계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현재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는 '대구상'이 걸려 있으며,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다고 한다.
이 대구상은 1895년 의회당을 이전할 때 예전에 걸려 있던 것을 정중히 국기로 감싼 뒤 함대에 실어 수많은 사람의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새로 지은 의회당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후 이 대구상은 지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성스러운 대구(Sacred Cod)'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성스러운 대구'는 세 번째로 만들어진 '3대 대구상'이다. '1대 대구상'은 174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2대 대구상'은 1775~1776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이 의회당을 파괴할 때 함께 사라졌다.
'2대 대구상'은 당시 상인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이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에 연루된 인물로 알려진 존 로(John Rowe)의 제안에 따라 설치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차와 소금물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누가 그걸 알겠는가?"
(Who knows how tea will mingle with sea water?)
이 말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명대사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매사추세츠주 의회당에 수백 년 동안 대구상이 걸려 있고, '성스러운 대구'라는 존경과 찬사가 담긴 별칭까지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잉글랜드를 떠나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초기 이민자들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번영을 이루기까지 대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대구는 신생국 아메리카가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자유정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목차
목차
서문_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유럽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고?
제1장_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꾼 작지만 위대한 물고기, 청어 이야기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다고?
2. 청어를 매개로 한자동맹 중심지로 떠오른 독일 도시 뤼베크
3. 빌럼 벤켈소어의 '소금에 절인 청어'가 세계사를 바꾸다
4. 청어전투에서 '소금에 절인 청어'로
열 배 많은 프랑스군을 격파한 잉글랜드군
5. 작은 어촌마을 암스테르담을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게 한 '소금에 절인 청어'
6. 청어와 대구는 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부정적인 물고기 역할'을 전담했나
제2장_ 청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다
7. 엘리자베스 1세는 왜 그토록 '해양주권론'에 집착했을까
8. 청어로 부를 쌓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동아시아로 진출하다
9. 네덜란드와 청어 어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잉글랜드
10. 찰스 1세의 야심 찬 어업 육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
11. 세 차례의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으로 번진 '청어잡이' 불화
12. 셰익스피어 시대의 잉글랜드인은 왜 청어를 천대했을까
제3장_ 신항로 개척시대를 열어준 주인공,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3. 말린 대구 '스톡피시'가 없었다면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선
바이킹의 아메리카대륙 발견도 없었다
14. 신항로 개척시대를 가능케 한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5. 네덜란드와의 '청어 경쟁'에서 밀린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 해역의 대구에 눈독 들인 이유
16.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17.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영지로 선언한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집착한 이유
18. 필그림 파더스들은 왜 대구가 풍부한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도 한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을까
19. '뉴잉글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 존 스미스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20.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1609년 신대륙에서의 '시벤처호 해난사고'
21. 셰익스피어는 왜 잉글랜드 평민과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을
'말린 대구'에 비유했을까
22. 노예무역을 발전시킨 싸구려 대구, '웨스트 인디즈'
제4장_ 식민지 미국이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강대국이 된 원동력, 대구
2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24. 뉴잉글랜드에서 분탕질치는 잉글랜드 어민들
25. 잉글랜드의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재배가
'소금에 절인 대구'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 이유
26. 대구 어장을 지키기 위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주ㆍ
잉글랜드 정부라는 거대 권력에 맞선 뉴잉글랜드 어민들의 끈질긴 투쟁
27. 뉴잉글랜드 대구 어부의 정치의식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제5장_ 청어와 대구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나
28. 중세 기독교는 왜 극단적으로 식욕을 금기시하고 억압했을까
29. 초기 기독교가 '뜨거운 고기' 육류를 금하고
'차가운 고기' 생선 섭취를 권장한 까닭
30. 단식일의 변화: 육식을 금하는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31. '청어'와 '대구'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
경제 시스템을 좌우할 수 있었던 이유
32. 신분과 생활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단식일의 다양한 생선들
33. 피시 데이 쇠퇴가 잉글랜드 어업 쇠퇴로,
어업 쇠퇴가 국방력(해군력) 쇠퇴로
제6장_ 물고기는 어떻게 기독교에 스며들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
34.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까
35. 고대 페니키아의 신관들이 금기로 여겨졌던 물고기를 먹은 진짜 이유
36. 베드로를 독실한 신자로 변화시킨 기적의 물고기
37. 기독교는 어떻게 '아가페'와 '에로스'가 혼재한
물고기라는 상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맺음말_ '피시 앤드 칩스'가 이 책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
참고문헌
제1장_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꾼 작지만 위대한 물고기, 청어 이야기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다고?
2. 청어를 매개로 한자동맹 중심지로 떠오른 독일 도시 뤼베크
3. 빌럼 벤켈소어의 '소금에 절인 청어'가 세계사를 바꾸다
4. 청어전투에서 '소금에 절인 청어'로
열 배 많은 프랑스군을 격파한 잉글랜드군
5. 작은 어촌마을 암스테르담을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게 한 '소금에 절인 청어'
6. 청어와 대구는 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부정적인 물고기 역할'을 전담했나
제2장_ 청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운명을 바꾸다
7. 엘리자베스 1세는 왜 그토록 '해양주권론'에 집착했을까
8. 청어로 부를 쌓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동아시아로 진출하다
9. 네덜란드와 청어 어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잉글랜드
10. 찰스 1세의 야심 찬 어업 육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
11. 세 차례의 잉글랜드-네덜란드 전쟁으로 번진 '청어잡이' 불화
12. 셰익스피어 시대의 잉글랜드인은 왜 청어를 천대했을까
제3장_ 신항로 개척시대를 열어준 주인공,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3. 말린 대구 '스톡피시'가 없었다면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선
바이킹의 아메리카대륙 발견도 없었다
14. 신항로 개척시대를 가능케 한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15. 네덜란드와의 '청어 경쟁'에서 밀린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 해역의 대구에 눈독 들인 이유
16. 북아메리카에서 존 캐벗이 발견한 '대구 떼'가
신항로 개척시대의 역사를 바꾸다
17. 존 캐벗이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영지로 선언한 이후에도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집착한 이유
18. 필그림 파더스들은 왜 대구가 풍부한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도 한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을까
19. '뉴잉글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 존 스미스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20.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1609년 신대륙에서의 '시벤처호 해난사고'
21. 셰익스피어는 왜 잉글랜드 평민과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을
'말린 대구'에 비유했을까
22. 노예무역을 발전시킨 싸구려 대구, '웨스트 인디즈'
제4장_ 식민지 미국이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강대국이 된 원동력, 대구
23. 미국 독립혁명 당시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구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
24. 뉴잉글랜드에서 분탕질치는 잉글랜드 어민들
25. 잉글랜드의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재배가
'소금에 절인 대구'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 이유
26. 대구 어장을 지키기 위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주ㆍ
잉글랜드 정부라는 거대 권력에 맞선 뉴잉글랜드 어민들의 끈질긴 투쟁
27. 뉴잉글랜드 대구 어부의 정치의식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제5장_ 청어와 대구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나
28. 중세 기독교는 왜 극단적으로 식욕을 금기시하고 억압했을까
29. 초기 기독교가 '뜨거운 고기' 육류를 금하고
'차가운 고기' 생선 섭취를 권장한 까닭
30. 단식일의 변화: 육식을 금하는 날에서 적극적으로 생선을 먹는 날로
31. '청어'와 '대구'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
경제 시스템을 좌우할 수 있었던 이유
32. 신분과 생활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단식일의 다양한 생선들
33. 피시 데이 쇠퇴가 잉글랜드 어업 쇠퇴로,
어업 쇠퇴가 국방력(해군력) 쇠퇴로
제6장_ 물고기는 어떻게 기독교에 스며들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
34.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까
35. 고대 페니키아의 신관들이 금기로 여겨졌던 물고기를 먹은 진짜 이유
36. 베드로를 독실한 신자로 변화시킨 기적의 물고기
37. 기독교는 어떻게 '아가페'와 '에로스'가 혼재한
물고기라는 상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까
맺음말_ '피시 앤드 칩스'가 이 책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
참고문헌
저자
저자
오치 도시유키
1962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대학원 문학 연구과 영문학 전공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지바공업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전공은 셰익스피어와 미국 사회다. 저서에 『미국 최신 히트 상품&트렌드』『영어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등이 있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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