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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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박정희를 겨눈 14개의 통설, 1차 사료로 검증하다
친일파 · 독립군 토벌 · 원조 빨갱이 · 인권파괴 · 여색 · 킬링필드 … 1부와 2부에 걸쳐 검증한 14개의 통설, 통념의 출처를 원문까지 거슬러 올라간 20년의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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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로동신문』ㆍ미국 CIA 보고서ㆍ프레이저 보고서 등 국내외 사료로 부정적 통설의 출처와 생성 과정 추적
- 5ㆍ16과 10월 유신, 부마사태 '킬링필드 기획설'까지 당대 기록으로 재검증
- 찬양과 비난을 넘어, 박정희를 둘러싼 왜곡과 날조의 구조를 해부한 역사 논쟁서
한 인물을 향한 판단은 언제 '상식'이 되는가.
역사 저술가 이재훈의 신간 『박정희는 역사이다』는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박정희를 둘러싼 부정적 통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출처를 하나씩 되짚고, 원문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20년간의 사료 추적을 정리했다. 북한 『로동신문』, 미국 CIA 보고서 등을 비롯한 국내외 1차 사료를 그 바탕으로 삼았다.
이 통설들을 해석하는 저자의 축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war of position)' 개념이다. 그람시는 지배적 이념이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상식'의 점령을 통해 관철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오늘의 박정희 통념 또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차지한 결과라고 진단하고, 사료의 언어로 이를 되돌리려 한다.
책은 1부와 2부에 걸쳐 모두 14개의 통설을 검증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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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자들에게 조선어와 태극기, 이순신을 가르친 교사 박정희
『박정희는 역사이다』가 가장 먼저 검증하는 것은 "박정희는 뼛속까지 친일파였다"는 주장이다.
책은 박정희가 교사로 근무했던 문경보통학교 제자들의 육성 증언을 제시한다. 제자들은 박정희가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에도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했으며, 수업시간에 태극기를 그려 보이고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퇴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증언한다. 일본의 신격화 교육에 사용되던 사진틀을 부쉈다는 증언도 소개된다.
저자는 만주군관학교 경력이라는 한 대목만을 떼어 박정희의 전 생애를 '친일'로 규정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집권 직후부터 독립운동가 국가 서훈과 독립유공자 지원을 제도화했고,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 현충사 성역화와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비롯한 민족정기 선양 사업에 오히려 더 힘을 쏟았다. 이러한 행적까지 함께 놓고 보아야 박정희의 실제 대일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소개하는 박정희의 대일관은 친일도, 감정적 반일도 아닌 '용일(用日)과 극일(克日)'이다. 일본을 활용하되 궁극적으로는 국력을 길러 일본을 넘어선다는 국가 전략이었다.
2. 박정희를 '독립군 토벌자'로 만든 것은 북한 『로동신문』이었다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 역시 이 책의 핵심 검증 대상이다.
책은 박정희에게 비판적인 진보 성향 연구자와 언론인들조차 현지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거쳐 독립군 토벌설의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사실을 소개한다. 박정희가 복무한 만주군 제8단의 활동 지역과 당시 무장세력의 실체, 박정희가 맡았던 보직과 복무 기간을 대조하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이 북한의 대남 선전에서 출발해 국내로 유입되고 확대된 과정을 추적한다. 1973년 북한 『로동신문』은 박정희를 '오카모도'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며 그를 독립군 토벌자로 몰아가는 서사의 토대를 놓았다. 이후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만주군관학교 동창생들의 익명 증언을 내세워, 박정희가 "조센징 토벌" 명령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책은 이처럼 북한의 선전 서사와 문명자의 2차 가공물이 여러 저술과 영상물을 거치며 결합돼,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허구가 역사적 사실처럼 유통됐음을 밝힌다.
3. "박정희는 '원조 빨갱이'인가"- 美 CIA 기밀문서가 종결한 낙인의 사상전
저자는 박정희의 남로당 연루 사실 자체를 감추지 않는다. 대신 연루의 경위와 활동의 실체, 체포 이후의 행적, 한국전쟁과 전후 군 경력 전체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이 주목하는 결정적 자료는 5·16 직후 백악관에 보고된 미 CIA 기밀문서다. 박정희의 과거 남로당 전력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CIA는 그를 공산주의 잠복세력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5·16 주도 세력의 동기를 애국심과 민족주의, 반공주의와 국가 재건 의지에서 찾았다. 당시 한국 지도부의 사상과 위험성을 가장 엄격하게 분석했던 미국 정보기관조차 과거의 연루 사실과 전향 이후의 사상을 분명히 구분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전향 이후 6·25전쟁에 참전해 제9사단 참모장으로 송계리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고 7 차례나 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이후 전투정보 업무와 야전 지휘관으로 복무했으며,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북한의 무력도발과 공산주의 팽창에 맞서 자주국방과 방위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책은 젊은 시절의 남로당 연루만을 떼어 박정희를 '원조 빨갱이'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후 평생에 걸친 선택과 행위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정치적 낙인이라고 지적한다.
4. 이재천 소령의 일기가 뒤집은 '킬링필드'- 자국민 300만 학살 기획설
책은 10·26과 부마사태를 둘러싸고 널리 퍼진 "박정희가 부산과 마산 시민 수백만 명을 학살하려 했다"는 주장도 검증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직접적인 반증은 부마사태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이재천 소령의 일기다. 그는 당시 계엄 실무의 정점에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부관으로, 부마사태 현장에 직접 투입된 인물이었다. 그의 일기에는 박 대통령이 계엄군에 실탄은 물론 공포탄조차 장전하지 말라고 엄명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는 박정희가 대규모 유혈 진압을 계획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부마사태 당시 계엄군에 의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실제 결과와도 정확히 부합한다.
저자는 '학살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제거했다'는 김재규의 법정 진술이 자신의 범행에 정치적·도덕적 명분을 부여하기 위한 거짓이었다고 지적한다. 그 어떤 독립된 기록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 이 자기변호 한마디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배하며 '킬링필드 학살 기획설'의 근거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5. 600만 조회수의 '김삼화 성폭행설'-1차 사료가 무너뜨린 '여색 대통령' 신화
박정희에게 덧씌워진 '여색을 탐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킨 대표적 사례가 좌파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 소리'의 '김삼화 스토리'다. 6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박정희가 신혼 1년차의 영화배우 김삼화를 강제로 안가로 불러 가정을 파탄 내고, 끝내 미국으로 내쫓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박정희의 군 복무 자료, 김삼화의 혼인 기록과 영화 출연 기록, 궁정동 안가의 운영 시기 등 당대의 1차 사료를 대조해 이 서사의 시간축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을 밝혀낸다. 김삼화가 결혼한 직후로 지목된 시기에 박정희는 6·25전쟁 전선에 있었으며, 서사의 핵심 무대로 제시된 궁정동 안가 역시 사건이 벌어졌다는 시기와 맞지 않는다.
본서는 수백만 회의 유튜브 조회 수가 역사의 진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삼화 스토리는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출처와 연대가 맞지 않는 한 사람의 전언에서 출발했으며, 자극적인 영상과 온라인 콘텐츠를 거치면서 박정희의 여성 편력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실처럼 굳어졌다. 『박정희는 역사이다』는 바로 이 유명한 서사를 1차 사료로 해체함으로써, 반복된 이야기가 어떻게 국민적 통념을 점령하는지를 보여준다.
6. '미국의 꼭두각시 박정희'-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은 전혀 달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프레이저 보고서를 근거로 박정희를 미국의 정책을 충실히 집행한 '꼭두각시'로 묘사했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 의회 보고서 원문을 직접 대조한 결과, 보고서의 실제 내용은 이러한 주장과 오히려 정반대였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미국의 원조와 자문이 한국 경제개발에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박정희 정부가 제2차 경제개발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했다고 기록한다. 이어 미국의 자문 지원 없이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을 핵심에 담은 제3·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히며, 한국의 경제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으로 박정희 정부의 단호한 경제적 지도력을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를 미국에 순응한 지도자로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익을 위해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며 독자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한 자주적 지도자의 면모를, 미국 스스로 남긴 기록이 증언한다.
7. 시바스 리갈은 사치가 아니라 처방이었다
박정희가 대중 앞에서만 막걸리를 마시는 척했을 뿐, 실제로는 값비싼 시바스 리갈을 즐겼다-이 이야기는 그의 위선과 사치를 상징하는 일화로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그러나 기록이 전하는 실상은 다르다. 청와대 식탁에서든 현장 시찰에 나섰을 때든 막걸리는 늘 박정희와 함께했으며, 그가 평소 막걸리를 즐겼다는 것은 주변 인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2009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배다리막걸리 대표는 박정희가 서거한 1979년 10월 26일 당일에도 막걸리 서 말이 청와대로 배달됐다고 증언했다. 막걸리가 대중을 향한 정치적 소품에 불과했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가 시바스 리갈을 마시게 된 배경도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십이지장궤양을 앓던 그에게 주치의 민헌기 박사는 발효주 대신 양주를 소량 마시도록 권했다. 사치가 아니라 건강상의 권고에 따른 선택이었던 셈이다. 당시 시중에는 로얄 살루트, 발렌타인 30년, 헤네시 XO 등 시바스 리갈보다 훨씬 비싼 양주도 적지 않았으므로, '최고급 사치'라는 해석과도 맞지 않는다.
결국 10·26 만찬장에 놓인 시바스 리갈 한 병은 사치의 증거가 아니라, 건강이 강제한 말년의 사정이었다. 이 한 자락의 정황이 평생 이어진 막걸리 애호의 기록을 밀어내고 '막걸리는 연출, 시바스 리갈이 진짜'라는 통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8. '지역감정의 원흉은 박정희'라는 통념은 사실인가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일으켰다고 규정하는 통념 역시 책의 주요 검증 대상이다.
저자는 박정희 집권 이전인 1950년대의 대학신문, 잡지, 문학작품과 정치 기록에서 이미 호남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 정치적 소외가 나타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한다.
특히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가 호남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단순히 "그때는 지역감정이 없었다"는 증거로 사용하는 좌파학자들의 해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당시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한민당계 지주 정치에 대한 반감, 농민 정책에 대한 기대, 윤보선 측 색깔론의 역풍, 연좌제로 상처받은 지역사회의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책은 박정희 이전부터 존재했던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역사를 외면한 채, 지역감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박정희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9. 인권의 출발점은 생존권이다-박정희를 '인권 파괴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는가
책은 진보적 학자로 평가받는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인권론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인권의 여러 층위 가운데 생명과 삶을 지킬 권리, 곧 '생존권'을 맨 앞에 둔다. 굶주림과 질병, 전쟁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권리야말로 나머지 모든 인권을 떠받치는 토대라는 것이다.
해방과 6·25를 겪은 그 시대 한국인에게 가장 절박한 인권은 굶어 죽지 않고, 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북한의 침략 앞에서 목숨을 지키는 일이었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가 절대빈곤의 극복과 산업화, 보건·교육의 확대, 자주국방의 토대 구축으로 국민 다수의 생존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 또한 인권사의 엄연한 성취라고 본다.
당시 세계의 인권 수준 역시 오늘의 잣대와 거리가 멀었다. 미국만 해도 1965년 투표권법이 제정될 때까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투표권 행사가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고,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군 공수부대가 비무장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조차 당시에는 중대한 인권 침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의 통제가 공산권과 제3세계 전체주의 정권의 무차별적 공포정치는 물론, 당시 일부 서구 권위주의 체제와 비교해도 성격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그 통제는 사회 전체를 상시적인 공포에 몰아넣기보다, 북한과 연계되거나 체제 전복을 꾀한다고 판단된 급진 세력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0. 세계사적 비교로 다시 본 '박정희 독재'
박정희는 1961년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1979년 10·26으로 서거하기까지 18년 5개월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이 시기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절차가 제약되고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권위주의적 통제 장치가 강화된 '독재의 시대'로 비판받아 왔다. 헌법 질서와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러한 비판은 분명한 근거를 지닌다.
그러나 비상시의 강력한 대통령 권력은 박정희 시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전쟁을 거치며, 의회를 거치지 않는 행정명령을 3,726건이나 발동했고, 뉴딜 정책에 위헌 판결을 내린 연방대법원의 구성을 바꾸기 위해 대법관 증원안까지 추진했다. 프랑스의 드골 역시 제5공화국 헌법을 통해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 제16조의 비상대권을 부여하며 강력한 대통령제를 구축했다. 야권 지도자 미테랑이 이를 '영구 쿠데타'라 규정했을 만큼, 민주국가에서도 국가적 위기를 명분으로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루스벨트를 단지 민주적 견제 원리를 훼손한 권력자로만 기억하지 않으며, 프랑스인들 역시 드골을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든 독재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두 나라는 권력 집중을 비판하면서도, 대공황과 전쟁, 국가적 혼란을 돌파하고 국가를 재건한 지도력을 더 무겁게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그의 전체 역사를 규정하는 거의 유일한 잣대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그가 맞닥뜨렸던 엄중한 안보 위기와 국가 생존의 과제는 물론, 국가 건설과 산업화의 성과까지 평가에서 가려졌다.
세계사의 장기집권 사례와 비교해 보아도 박정희의 18년 역시 유례없이 긴 기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김일성(북한)은 46년, 장제스(대만)는 47년, 카스트로(쿠바)는 49년, 리콴유(싱가포르)와 수하르토(인도네시아)는 각각 31년, 체덴발(몽골)은 32년간 권력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론장은 '박정희 집권 18년'만을 떼어 내, 마치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예외적 장기독재였던 것처럼 다뤄 왔다고 본서는 지적한다.
저자는 박정희 집권기 18년 전체를 동일한 강도의 독재체제로 묶는 해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군정기와 제3공화국, 유신체제는 구별되어야 하며,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조치 등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제도화된 시기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의 유신 7년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권 기간의 길이만이 아니라 그 권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됐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 유지와 세습, 사익 편취에 세월을 소진한 수많은 장기집권자와 달리,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라는 공적 목표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18년이라는 압축된 시간 안에 경제개발 전략과 수출산업, 제철과 고속도로, 중화학공업, 농촌 근대화와 자주국방의 기반을 구축하며 대한민국의 산업 골격과 성장의 엔진을 세웠다. 본서는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비판하더라도, 그 권력이 남긴 국가 건설의 성과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책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1차 사료로 다시 읽어, 독자가 알지 못했던 국면을 전달한다. 5·16에 대해서는 그 주도 세력의 동기를,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의 본국 보고가 파악한 대로,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국가 개혁 의지의 결합으로 분석하며, 당대 시민과 학생들의 환영이라는 잊힌 반응을 복원한다. 유신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감축, 미·중의 전격적 관계 개선, 북한의 연이은 무장도발이라는 안보 환경 속의 비상조치라는 성격을 짚고, 그 산업화 기여를 해외 저명 경제학자들도 인정했음을 밝힌다. 10·26에 대해서는 김재규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의인'이나 '영웅'으로 재평가하는 시도가 사건의 실체와 그의 실제 행적을 함께 외면하는 역사적 오독임을 사료로 규명한다.
저자는 여기에 박정희의 검소함과 소탈함 같은 인간적 면모를 함께 소개하고, 그를 인권유린 독재자로 비난해 온 좌파 지도자들의 위선 또한 고발한다.
무엇보다 본서의 가장 큰 차별성은 박정희를 둘러싼 개별적인 왜곡을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왜곡이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의 지배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진지전'이라는 해석 렌즈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정치와 언론, 학계와 교육, 문화 영역을 거치며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서사가 형성되고 확산돼 온 과정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특히 저자는 영화가 이 문화전쟁의 유력한 전장이었음에 주목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로 5ㆍ16에 참여하지도 않은 김재규를 '혁명동지'로 가공함으로써, 10ㆍ26 사태를 비극적 2인자의 거사로 재구성하고, 〈효자동 이발사〉는 박정희를 오래 곁에서 모시며 존경했던 실제 전속 이발사, 그 증언에 담긴 인간적 면모는 걷어 낸 채, 그를 냉혹한 독재 권력의 상징으로만 형상화했다. 저자는 대중문화의 이 같은 편향적 재현이 대중의 역사 인식을 특정 방향으로 왜곡하고 가두어 온 과정을 차분히 해부한다.
박정희는 더 이상 진영 논리에 따라 소비되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를 둘러싼 열네 가지 통념은 저마다의 기원을 가지고 태어나 수십 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상식으로 굳어졌으나, 1차 사료라는 시금석 앞에서 그 실체가 다시 검증된다. 미국이 해제한 CIA 대통령 일일보고, 북한의 로동신문, 미 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 낸 이들의 증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통념과 사실 사이의 거리는 분명해진다.
본서는 20년간 모은 기록을 그 검증의 자리에 내려놓는다. 1차 사료가 증언하는 그대로, 박정희는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역사이다.
친일파 · 독립군 토벌 · 원조 빨갱이 · 인권파괴 · 여색 · 킬링필드 … 1부와 2부에 걸쳐 검증한 14개의 통설, 통념의 출처를 원문까지 거슬러 올라간 20년의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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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로동신문』ㆍ미국 CIA 보고서ㆍ프레이저 보고서 등 국내외 사료로 부정적 통설의 출처와 생성 과정 추적
- 5ㆍ16과 10월 유신, 부마사태 '킬링필드 기획설'까지 당대 기록으로 재검증
- 찬양과 비난을 넘어, 박정희를 둘러싼 왜곡과 날조의 구조를 해부한 역사 논쟁서
한 인물을 향한 판단은 언제 '상식'이 되는가.
역사 저술가 이재훈의 신간 『박정희는 역사이다』는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박정희를 둘러싼 부정적 통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출처를 하나씩 되짚고, 원문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20년간의 사료 추적을 정리했다. 북한 『로동신문』, 미국 CIA 보고서 등을 비롯한 국내외 1차 사료를 그 바탕으로 삼았다.
이 통설들을 해석하는 저자의 축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war of position)' 개념이다. 그람시는 지배적 이념이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상식'의 점령을 통해 관철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오늘의 박정희 통념 또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차지한 결과라고 진단하고, 사료의 언어로 이를 되돌리려 한다.
책은 1부와 2부에 걸쳐 모두 14개의 통설을 검증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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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자들에게 조선어와 태극기, 이순신을 가르친 교사 박정희
『박정희는 역사이다』가 가장 먼저 검증하는 것은 "박정희는 뼛속까지 친일파였다"는 주장이다.
책은 박정희가 교사로 근무했던 문경보통학교 제자들의 육성 증언을 제시한다. 제자들은 박정희가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에도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했으며, 수업시간에 태극기를 그려 보이고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퇴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증언한다. 일본의 신격화 교육에 사용되던 사진틀을 부쉈다는 증언도 소개된다.
저자는 만주군관학교 경력이라는 한 대목만을 떼어 박정희의 전 생애를 '친일'로 규정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집권 직후부터 독립운동가 국가 서훈과 독립유공자 지원을 제도화했고,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 현충사 성역화와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비롯한 민족정기 선양 사업에 오히려 더 힘을 쏟았다. 이러한 행적까지 함께 놓고 보아야 박정희의 실제 대일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소개하는 박정희의 대일관은 친일도, 감정적 반일도 아닌 '용일(用日)과 극일(克日)'이다. 일본을 활용하되 궁극적으로는 국력을 길러 일본을 넘어선다는 국가 전략이었다.
2. 박정희를 '독립군 토벌자'로 만든 것은 북한 『로동신문』이었다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 역시 이 책의 핵심 검증 대상이다.
책은 박정희에게 비판적인 진보 성향 연구자와 언론인들조차 현지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거쳐 독립군 토벌설의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사실을 소개한다. 박정희가 복무한 만주군 제8단의 활동 지역과 당시 무장세력의 실체, 박정희가 맡았던 보직과 복무 기간을 대조하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이 북한의 대남 선전에서 출발해 국내로 유입되고 확대된 과정을 추적한다. 1973년 북한 『로동신문』은 박정희를 '오카모도'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며 그를 독립군 토벌자로 몰아가는 서사의 토대를 놓았다. 이후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는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만주군관학교 동창생들의 익명 증언을 내세워, 박정희가 "조센징 토벌" 명령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책은 이처럼 북한의 선전 서사와 문명자의 2차 가공물이 여러 저술과 영상물을 거치며 결합돼,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허구가 역사적 사실처럼 유통됐음을 밝힌다.
3. "박정희는 '원조 빨갱이'인가"- 美 CIA 기밀문서가 종결한 낙인의 사상전
저자는 박정희의 남로당 연루 사실 자체를 감추지 않는다. 대신 연루의 경위와 활동의 실체, 체포 이후의 행적, 한국전쟁과 전후 군 경력 전체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이 주목하는 결정적 자료는 5·16 직후 백악관에 보고된 미 CIA 기밀문서다. 박정희의 과거 남로당 전력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CIA는 그를 공산주의 잠복세력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5·16 주도 세력의 동기를 애국심과 민족주의, 반공주의와 국가 재건 의지에서 찾았다. 당시 한국 지도부의 사상과 위험성을 가장 엄격하게 분석했던 미국 정보기관조차 과거의 연루 사실과 전향 이후의 사상을 분명히 구분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전향 이후 6·25전쟁에 참전해 제9사단 참모장으로 송계리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고 7 차례나 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이후 전투정보 업무와 야전 지휘관으로 복무했으며,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북한의 무력도발과 공산주의 팽창에 맞서 자주국방과 방위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책은 젊은 시절의 남로당 연루만을 떼어 박정희를 '원조 빨갱이'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이후 평생에 걸친 선택과 행위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정치적 낙인이라고 지적한다.
4. 이재천 소령의 일기가 뒤집은 '킬링필드'- 자국민 300만 학살 기획설
책은 10·26과 부마사태를 둘러싸고 널리 퍼진 "박정희가 부산과 마산 시민 수백만 명을 학살하려 했다"는 주장도 검증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직접적인 반증은 부마사태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이재천 소령의 일기다. 그는 당시 계엄 실무의 정점에 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부관으로, 부마사태 현장에 직접 투입된 인물이었다. 그의 일기에는 박 대통령이 계엄군에 실탄은 물론 공포탄조차 장전하지 말라고 엄명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는 박정희가 대규모 유혈 진압을 계획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부마사태 당시 계엄군에 의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실제 결과와도 정확히 부합한다.
저자는 '학살을 막기 위해 대통령을 제거했다'는 김재규의 법정 진술이 자신의 범행에 정치적·도덕적 명분을 부여하기 위한 거짓이었다고 지적한다. 그 어떤 독립된 기록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 이 자기변호 한마디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배하며 '킬링필드 학살 기획설'의 근거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5. 600만 조회수의 '김삼화 성폭행설'-1차 사료가 무너뜨린 '여색 대통령' 신화
박정희에게 덧씌워진 '여색을 탐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킨 대표적 사례가 좌파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 소리'의 '김삼화 스토리'다. 6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박정희가 신혼 1년차의 영화배우 김삼화를 강제로 안가로 불러 가정을 파탄 내고, 끝내 미국으로 내쫓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박정희의 군 복무 자료, 김삼화의 혼인 기록과 영화 출연 기록, 궁정동 안가의 운영 시기 등 당대의 1차 사료를 대조해 이 서사의 시간축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을 밝혀낸다. 김삼화가 결혼한 직후로 지목된 시기에 박정희는 6·25전쟁 전선에 있었으며, 서사의 핵심 무대로 제시된 궁정동 안가 역시 사건이 벌어졌다는 시기와 맞지 않는다.
본서는 수백만 회의 유튜브 조회 수가 역사의 진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삼화 스토리는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출처와 연대가 맞지 않는 한 사람의 전언에서 출발했으며, 자극적인 영상과 온라인 콘텐츠를 거치면서 박정희의 여성 편력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실처럼 굳어졌다. 『박정희는 역사이다』는 바로 이 유명한 서사를 1차 사료로 해체함으로써, 반복된 이야기가 어떻게 국민적 통념을 점령하는지를 보여준다.
6. '미국의 꼭두각시 박정희'-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은 전혀 달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프레이저 보고서를 근거로 박정희를 미국의 정책을 충실히 집행한 '꼭두각시'로 묘사했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 의회 보고서 원문을 직접 대조한 결과, 보고서의 실제 내용은 이러한 주장과 오히려 정반대였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미국의 원조와 자문이 한국 경제개발에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박정희 정부가 제2차 경제개발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했다고 기록한다. 이어 미국의 자문 지원 없이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을 핵심에 담은 제3·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히며, 한국의 경제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으로 박정희 정부의 단호한 경제적 지도력을 명시한다.
결론적으로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를 미국에 순응한 지도자로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익을 위해 미국과의 갈등도 불사하며 독자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한 자주적 지도자의 면모를, 미국 스스로 남긴 기록이 증언한다.
7. 시바스 리갈은 사치가 아니라 처방이었다
박정희가 대중 앞에서만 막걸리를 마시는 척했을 뿐, 실제로는 값비싼 시바스 리갈을 즐겼다-이 이야기는 그의 위선과 사치를 상징하는 일화로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그러나 기록이 전하는 실상은 다르다. 청와대 식탁에서든 현장 시찰에 나섰을 때든 막걸리는 늘 박정희와 함께했으며, 그가 평소 막걸리를 즐겼다는 것은 주변 인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2009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배다리막걸리 대표는 박정희가 서거한 1979년 10월 26일 당일에도 막걸리 서 말이 청와대로 배달됐다고 증언했다. 막걸리가 대중을 향한 정치적 소품에 불과했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가 시바스 리갈을 마시게 된 배경도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십이지장궤양을 앓던 그에게 주치의 민헌기 박사는 발효주 대신 양주를 소량 마시도록 권했다. 사치가 아니라 건강상의 권고에 따른 선택이었던 셈이다. 당시 시중에는 로얄 살루트, 발렌타인 30년, 헤네시 XO 등 시바스 리갈보다 훨씬 비싼 양주도 적지 않았으므로, '최고급 사치'라는 해석과도 맞지 않는다.
결국 10·26 만찬장에 놓인 시바스 리갈 한 병은 사치의 증거가 아니라, 건강이 강제한 말년의 사정이었다. 이 한 자락의 정황이 평생 이어진 막걸리 애호의 기록을 밀어내고 '막걸리는 연출, 시바스 리갈이 진짜'라는 통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8. '지역감정의 원흉은 박정희'라는 통념은 사실인가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일으켰다고 규정하는 통념 역시 책의 주요 검증 대상이다.
저자는 박정희 집권 이전인 1950년대의 대학신문, 잡지, 문학작품과 정치 기록에서 이미 호남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 정치적 소외가 나타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한다.
특히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가 호남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단순히 "그때는 지역감정이 없었다"는 증거로 사용하는 좌파학자들의 해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당시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한민당계 지주 정치에 대한 반감, 농민 정책에 대한 기대, 윤보선 측 색깔론의 역풍, 연좌제로 상처받은 지역사회의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책은 박정희 이전부터 존재했던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역사를 외면한 채, 지역감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박정희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9. 인권의 출발점은 생존권이다-박정희를 '인권 파괴 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는가
책은 진보적 학자로 평가받는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의 인권론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인권의 여러 층위 가운데 생명과 삶을 지킬 권리, 곧 '생존권'을 맨 앞에 둔다. 굶주림과 질병, 전쟁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권리야말로 나머지 모든 인권을 떠받치는 토대라는 것이다.
해방과 6·25를 겪은 그 시대 한국인에게 가장 절박한 인권은 굶어 죽지 않고, 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북한의 침략 앞에서 목숨을 지키는 일이었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가 절대빈곤의 극복과 산업화, 보건·교육의 확대, 자주국방의 토대 구축으로 국민 다수의 생존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 또한 인권사의 엄연한 성취라고 본다.
당시 세계의 인권 수준 역시 오늘의 잣대와 거리가 멀었다. 미국만 해도 1965년 투표권법이 제정될 때까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투표권 행사가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고,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군 공수부대가 비무장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조차 당시에는 중대한 인권 침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의 통제가 공산권과 제3세계 전체주의 정권의 무차별적 공포정치는 물론, 당시 일부 서구 권위주의 체제와 비교해도 성격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그 통제는 사회 전체를 상시적인 공포에 몰아넣기보다, 북한과 연계되거나 체제 전복을 꾀한다고 판단된 급진 세력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0. 세계사적 비교로 다시 본 '박정희 독재'
박정희는 1961년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1979년 10·26으로 서거하기까지 18년 5개월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이 시기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절차가 제약되고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권위주의적 통제 장치가 강화된 '독재의 시대'로 비판받아 왔다. 헌법 질서와 절차적 민주주의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러한 비판은 분명한 근거를 지닌다.
그러나 비상시의 강력한 대통령 권력은 박정희 시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전쟁을 거치며, 의회를 거치지 않는 행정명령을 3,726건이나 발동했고, 뉴딜 정책에 위헌 판결을 내린 연방대법원의 구성을 바꾸기 위해 대법관 증원안까지 추진했다. 프랑스의 드골 역시 제5공화국 헌법을 통해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 제16조의 비상대권을 부여하며 강력한 대통령제를 구축했다. 야권 지도자 미테랑이 이를 '영구 쿠데타'라 규정했을 만큼, 민주국가에서도 국가적 위기를 명분으로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루스벨트를 단지 민주적 견제 원리를 훼손한 권력자로만 기억하지 않으며, 프랑스인들 역시 드골을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든 독재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두 나라는 권력 집중을 비판하면서도, 대공황과 전쟁, 국가적 혼란을 돌파하고 국가를 재건한 지도력을 더 무겁게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그의 전체 역사를 규정하는 거의 유일한 잣대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그가 맞닥뜨렸던 엄중한 안보 위기와 국가 생존의 과제는 물론, 국가 건설과 산업화의 성과까지 평가에서 가려졌다.
세계사의 장기집권 사례와 비교해 보아도 박정희의 18년 역시 유례없이 긴 기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김일성(북한)은 46년, 장제스(대만)는 47년, 카스트로(쿠바)는 49년, 리콴유(싱가포르)와 수하르토(인도네시아)는 각각 31년, 체덴발(몽골)은 32년간 권력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론장은 '박정희 집권 18년'만을 떼어 내, 마치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예외적 장기독재였던 것처럼 다뤄 왔다고 본서는 지적한다.
저자는 박정희 집권기 18년 전체를 동일한 강도의 독재체제로 묶는 해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군정기와 제3공화국, 유신체제는 구별되어야 하며,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조치 등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제도화된 시기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의 유신 7년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권 기간의 길이만이 아니라 그 권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됐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 유지와 세습, 사익 편취에 세월을 소진한 수많은 장기집권자와 달리,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라는 공적 목표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그는 18년이라는 압축된 시간 안에 경제개발 전략과 수출산업, 제철과 고속도로, 중화학공업, 농촌 근대화와 자주국방의 기반을 구축하며 대한민국의 산업 골격과 성장의 엔진을 세웠다. 본서는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비판하더라도, 그 권력이 남긴 국가 건설의 성과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책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1차 사료로 다시 읽어, 독자가 알지 못했던 국면을 전달한다. 5·16에 대해서는 그 주도 세력의 동기를,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의 본국 보고가 파악한 대로,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국가 개혁 의지의 결합으로 분석하며, 당대 시민과 학생들의 환영이라는 잊힌 반응을 복원한다. 유신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감축, 미·중의 전격적 관계 개선, 북한의 연이은 무장도발이라는 안보 환경 속의 비상조치라는 성격을 짚고, 그 산업화 기여를 해외 저명 경제학자들도 인정했음을 밝힌다. 10·26에 대해서는 김재규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의인'이나 '영웅'으로 재평가하는 시도가 사건의 실체와 그의 실제 행적을 함께 외면하는 역사적 오독임을 사료로 규명한다.
저자는 여기에 박정희의 검소함과 소탈함 같은 인간적 면모를 함께 소개하고, 그를 인권유린 독재자로 비난해 온 좌파 지도자들의 위선 또한 고발한다.
무엇보다 본서의 가장 큰 차별성은 박정희를 둘러싼 개별적인 왜곡을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왜곡이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의 지배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진지전'이라는 해석 렌즈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정치와 언론, 학계와 교육, 문화 영역을 거치며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서사가 형성되고 확산돼 온 과정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특히 저자는 영화가 이 문화전쟁의 유력한 전장이었음에 주목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로 5ㆍ16에 참여하지도 않은 김재규를 '혁명동지'로 가공함으로써, 10ㆍ26 사태를 비극적 2인자의 거사로 재구성하고, 〈효자동 이발사〉는 박정희를 오래 곁에서 모시며 존경했던 실제 전속 이발사, 그 증언에 담긴 인간적 면모는 걷어 낸 채, 그를 냉혹한 독재 권력의 상징으로만 형상화했다. 저자는 대중문화의 이 같은 편향적 재현이 대중의 역사 인식을 특정 방향으로 왜곡하고 가두어 온 과정을 차분히 해부한다.
박정희는 더 이상 진영 논리에 따라 소비되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를 둘러싼 열네 가지 통념은 저마다의 기원을 가지고 태어나 수십 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상식으로 굳어졌으나, 1차 사료라는 시금석 앞에서 그 실체가 다시 검증된다. 미국이 해제한 CIA 대통령 일일보고, 북한의 로동신문, 미 의회의 프레이저 보고서,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 낸 이들의 증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통념과 사실 사이의 거리는 분명해진다.
본서는 20년간 모은 기록을 그 검증의 자리에 내려놓는다. 1차 사료가 증언하는 그대로, 박정희는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역사이다.
목차
목차
제1부 역사 해체의 진지전정당성과 업적을 겨냥한 7개의 핵심 프레임
서장(序章). 보이지 않는 전쟁 _ 11
01. 친일파 낙인 _ 20
02. 독립군 토벌설 _ 42
03. 5·16 _ 61
04. 10월 유신 _ 89
05. 김재규와 10·26 _ 123
06. 한강의 기적 _ 173
07. 프레이저 보고서의 진실 _ 202
제2부 인물 악마화의 심리전도덕성과 감정을 파고든 7개의 낙인 프레임
도입. 인물 악마화의 심리전 _ 237
01. 지역감정 _ 248
02. 원조 빨갱이 _ 269
03. 인권파괴 대통령 _ 299
04. 여색을 탐한 대통령 _ 319
05. 막걸리와 시바스 리갈 _ 347
06. 독재자 박정희 _ 370
07. 민족 DNA론 _ 401
■ 에필로그 _ 418
■ Thanks to. _ 420
서장(序章). 보이지 않는 전쟁 _ 11
01. 친일파 낙인 _ 20
02. 독립군 토벌설 _ 42
03. 5·16 _ 61
04. 10월 유신 _ 89
05. 김재규와 10·26 _ 123
06. 한강의 기적 _ 173
07. 프레이저 보고서의 진실 _ 202
제2부 인물 악마화의 심리전도덕성과 감정을 파고든 7개의 낙인 프레임
도입. 인물 악마화의 심리전 _ 237
01. 지역감정 _ 248
02. 원조 빨갱이 _ 269
03. 인권파괴 대통령 _ 299
04. 여색을 탐한 대통령 _ 319
05. 막걸리와 시바스 리갈 _ 347
06. 독재자 박정희 _ 370
07. 민족 DNA론 _ 401
■ 에필로그 _ 418
■ Thanks to. _ 420
저자
저자
이재훈 저자와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는 박정희가 나고 자란 경북 선산(善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박정희의 5·16혁명 동지가 설립한 유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 시절 역시 선산에서 가까운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카투사로 복무했다.
이 책의 집필은 가야산 산행 중 우연히 들른 매점의 노(老)주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박 대통령의 부산군수사령부 시절 부관이었던 그는 박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전했고, 이는 저자가 박정희라는 인물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년간 관련 사료와 회고, 증언을 수집·대조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통념적 비판 상당수가 엄밀한 검증이 아니라 정치적·시대적 편향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다. 이 책은 감정과 관념의 프레임을 넘어, 확인 가능한 사실과 축적된 자료 위에서 박정희라는 역사적 실체를 다시 바라보려는 탐구의 결실이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전(前) 세계한인재단 역사분과 위원장(2015~2023)EBS[한국교육방송공사] 강사(2014~2019)경상대, 아주대, 연세대, 충남대 등에서 강의
현(現) (사)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2023~)대한민국 역사 바로알기 연구원 부원장(2020~)
이 책의 집필은 가야산 산행 중 우연히 들른 매점의 노(老)주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박 대통령의 부산군수사령부 시절 부관이었던 그는 박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전했고, 이는 저자가 박정희라는 인물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년간 관련 사료와 회고, 증언을 수집·대조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통념적 비판 상당수가 엄밀한 검증이 아니라 정치적·시대적 편향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다. 이 책은 감정과 관념의 프레임을 넘어, 확인 가능한 사실과 축적된 자료 위에서 박정희라는 역사적 실체를 다시 바라보려는 탐구의 결실이다.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전(前) 세계한인재단 역사분과 위원장(2015~2023)EBS[한국교육방송공사] 강사(2014~2019)경상대, 아주대, 연세대, 충남대 등에서 강의
현(現) (사) 한미동맹협의회 역사위원장(2023~)대한민국 역사 바로알기 연구원 부원장(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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