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백 년의 외침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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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가장 귀한 성서를!
_교회 너머, 더 나은 기독교를 향한 성성(惺惺)한 외침
“혹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骨筋)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 같은 기독교로서도 혹자는 기도생활의 법열의 경지를 주창하며, 혹자는 영적 체험의 신비 세계를 역설하며, 혹자는 신학 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하나, 우리는 오직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이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 (김교신, 〈성서조선〉 1935. 4.)
기독교가 조선 땅에 들어온 지 불과 40년이 지난 즈음, 성서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외침이, 백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다시 울려 퍼진다.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
김교신의 삶을 ‘문학적 전기’로 되살리다
《김교신, 백 년의 외침》은 근현대소설 연구자이자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가, ‘한국의 기독교인 인문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정체성 속에서 맺은 첫 열매이다. 김교신의 삶을 시간순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가 남긴 텍스트-《성서조선》, 일기, 산문과 각종 기록들-를 문학적 시선으로 읽어 내어 김교신의 내면과 삶의 궤적을 입체화했다.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김교신을 ‘무교회자’로 불러왔다. 하지만 그가 거부한 것은 교회 자체가 아니라 ‘교회주의’였다. 제도와 형식에 갇힌 이들을 향해 성서의 자리, 예수 정신으로 살아내라고 했던 그의 외침은 이제 다시 한국 교회와 신앙인 안에서 공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김교신의 문제의식을 신앙적 차원에서 단선적으로 보지 않고, 교회 너머 인문주의자의 시선으로 읽어 낸다. 예를 들어, 김교신이 〈성서조선〉 「창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관부연락선 위에서 “나는 아무리 해 봤자 조선인이로구나!”라고 두 번이나 탄식한 대목에서 저자는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과 임화의 시 〈현해탄〉을 겹쳐 읽으며 식민지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소외감과 내면의 균열을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김교신, 그는 누구인가?
김교신은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나 철들 무렵부터 식민지인으로 살았다. 1919년 함흥농업학교 재학 중 만세운동에 가담했고, 이듬해 도쿄로 건너가 도쿄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1년부터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에게서 성서를 배웠다. 조선으로 돌아온 김교신은 1927년 7월 〈성서조선〉을 창간하여 1942년 3월까지 15년간 간행하는 한편, 1927년부터 1940년까지 함흥 영생여학교와 양정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2년 3월 ‘〈성서조선〉 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1944년 10월 흥남 일본질소비료공장에 들어가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1945년 4월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 다시 만나는 김교신
팔 남매의 아버지이자 교사로서 생업을 이어 가며 200명 내외의 구독자를 위해 매달 〈성서조선〉을 펴내는 일은 얼마나 수고로웠을까. 그는 한 달에 몇 번씩 밤을 새우고, 잡지를 발간하며 생기는 결손을 자신의 월급으로 메꾸어야 했다. 총독부와 인쇄소, 서점을 오가며 엄청난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자전거로 집-학교-인쇄소를 활력 있게 내달리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의 검열과 압박 속에서도 고독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시대를 마주한 언론인 김교신, 교사 김교신, 신앙인 김교신, 그리고 가장(家長) 김교신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 모든 역할 가운데 “자신의 구원과 조선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길”을 찾고자 했고, 그 길에서 “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가장 귀한 성서를 주는 일”을 사명으로 삼았다.
저자의 시선에 따라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마침내 한 질문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평생을 식민지인으로 살면서 단 하루도 검열 없는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그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교회주의에 갇혀 ‘교회 너머’를 잃어버린 오늘의 한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김교신은 다시 성서로 돌아가 예수의 정신을 살아내라고, 헛된 삶에서 벗어나 ‘실한 인생’을 살라고 선포한다. 그의 이 외침은 제도와 형식 너머의 신앙, 창조 세계와 소통하며 숨 쉬는 열린 기독교, 곧 ‘전적(全的) 기독교’로 우리를 이끈다.
_교회 너머, 더 나은 기독교를 향한 성성(惺惺)한 외침
“혹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骨筋)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 같은 기독교로서도 혹자는 기도생활의 법열의 경지를 주창하며, 혹자는 영적 체험의 신비 세계를 역설하며, 혹자는 신학 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하나, 우리는 오직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이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 (김교신, 〈성서조선〉 1935. 4.)
기독교가 조선 땅에 들어온 지 불과 40년이 지난 즈음, 성서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외침이, 백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다시 울려 퍼진다.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
김교신의 삶을 ‘문학적 전기’로 되살리다
《김교신, 백 년의 외침》은 근현대소설 연구자이자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가, ‘한국의 기독교인 인문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정체성 속에서 맺은 첫 열매이다. 김교신의 삶을 시간순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가 남긴 텍스트-《성서조선》, 일기, 산문과 각종 기록들-를 문학적 시선으로 읽어 내어 김교신의 내면과 삶의 궤적을 입체화했다.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김교신을 ‘무교회자’로 불러왔다. 하지만 그가 거부한 것은 교회 자체가 아니라 ‘교회주의’였다. 제도와 형식에 갇힌 이들을 향해 성서의 자리, 예수 정신으로 살아내라고 했던 그의 외침은 이제 다시 한국 교회와 신앙인 안에서 공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김교신의 문제의식을 신앙적 차원에서 단선적으로 보지 않고, 교회 너머 인문주의자의 시선으로 읽어 낸다. 예를 들어, 김교신이 〈성서조선〉 「창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관부연락선 위에서 “나는 아무리 해 봤자 조선인이로구나!”라고 두 번이나 탄식한 대목에서 저자는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과 임화의 시 〈현해탄〉을 겹쳐 읽으며 식민지 조선인이 겪어야 했던 소외감과 내면의 균열을 세밀하게 포착해 낸다.
김교신, 그는 누구인가?
김교신은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나 철들 무렵부터 식민지인으로 살았다. 1919년 함흥농업학교 재학 중 만세운동에 가담했고, 이듬해 도쿄로 건너가 도쿄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1년부터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에게서 성서를 배웠다. 조선으로 돌아온 김교신은 1927년 7월 〈성서조선〉을 창간하여 1942년 3월까지 15년간 간행하는 한편, 1927년부터 1940년까지 함흥 영생여학교와 양정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2년 3월 ‘〈성서조선〉 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1944년 10월 흥남 일본질소비료공장에 들어가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1945년 4월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 다시 만나는 김교신
팔 남매의 아버지이자 교사로서 생업을 이어 가며 200명 내외의 구독자를 위해 매달 〈성서조선〉을 펴내는 일은 얼마나 수고로웠을까. 그는 한 달에 몇 번씩 밤을 새우고, 잡지를 발간하며 생기는 결손을 자신의 월급으로 메꾸어야 했다. 총독부와 인쇄소, 서점을 오가며 엄청난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자전거로 집-학교-인쇄소를 활력 있게 내달리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의 검열과 압박 속에서도 고독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시대를 마주한 언론인 김교신, 교사 김교신, 신앙인 김교신, 그리고 가장(家長) 김교신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 모든 역할 가운데 “자신의 구원과 조선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길”을 찾고자 했고, 그 길에서 “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가장 귀한 성서를 주는 일”을 사명으로 삼았다.
저자의 시선에 따라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마침내 한 질문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평생을 식민지인으로 살면서 단 하루도 검열 없는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그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교회주의에 갇혀 ‘교회 너머’를 잃어버린 오늘의 한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김교신은 다시 성서로 돌아가 예수의 정신을 살아내라고, 헛된 삶에서 벗어나 ‘실한 인생’을 살라고 선포한다. 그의 이 외침은 제도와 형식 너머의 신앙, 창조 세계와 소통하며 숨 쉬는 열린 기독교, 곧 ‘전적(全的) 기독교’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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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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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 근현대소설을 연구해 온 국문학자로서, 이번 책은 전혀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서문에도 간단히 썼지만, 이런 글을 쓰게 된 데는 2021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 방문교수로 가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문학 전공이다보니 외국에 오래 체류한 게 처음이었는데, 제 학문과 신앙의 토대를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VIEW는 신앙과 지성 사이에 칸막이를 두지 않고 터놓고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한국의 기독교 인문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어요. 그 무렵 VIEW 도서실에서 〈성서조선〉을 처음 읽었는데, 한국의 기독교 인문학자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 학술서와 대중서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독특한 서술 구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신 이유와 집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 〈성서조선〉 창간사를 읽을 때부터 제게는 〈성서조선〉과 거기 담긴 김교신의 삶과 사상이 입체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제가 한국근대소설을 전공했기 때문일 텐데요. 창간사에서 김교신이 관부연락선 위에서 '나는 아무리 해봤자 조선인이로구나!'라고 두 번이나 탄식하던 그 장면이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과 겹쳐지고 임화의 시 〈현해탄〉과 겹쳐지면서 아주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느낌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김교신의 삶을 되살려 쓰되, 그 시대가 그에게 부과한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떠안고 살았는지, 그 내면의 희망과 절망이 어떠했는지를 섬세하게 되살리려 했습니다.
* 김교신을 다룬 연구와 저술은 이미 여러 권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김교신'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김교신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나안 교인' 현상이나 평신도 교회를 향한 움직임에서 보듯,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 너머'를 모색하는 일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교신은 '교회 너머'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문제는 김교신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입니다. 이 책은 인문학의 언어로 쓴 책입니다. 교회의 언어로 김교신을 말하게 되면 암암리에 김교신을 교회의 문제틀 안으로 끌어들여 김교신의 무교회가 지닌 문제성을 소거합니다. 김교신을 말하려면 경계의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저는 오십 년간 교인으로 살았고 지금도 교인이지만 한편으로 무교회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가 서 있는 경계의 자리에서 쓴 것입니다. 제 생각에 김교신이 서 있었던 무교회의 자리도 이런 곳이었습니다. 경계에서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김교신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김교신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김교신의 문제성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 방대한 사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책에서는 김교신을 어떤 관점으로 조명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라기보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요, 신사참배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김교신이 황국신민서사를 실으면서까지 〈성서조선〉을 간행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고민이 컸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한다는 것이 도리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인문학자로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 그 시대의 상황을 다룬 여러 분야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인류가 공유하는 지혜의 전통에 기대어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김교신도 그 시대의 아들이었고 그래서 많은 한계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마주한 과제 앞에서 그걸 회피하지 않고 예수를 따라 살고자 했던 양심적인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김교신아카데미에서 김교신에 관한 강의를 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 〈성서조선〉 초기 동인이었던 정상훈 선생의 후손과 연결되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한 점, 그리고 그동안 소실된 줄 알았던 〈어린이〉 잡지에 실린 김교신의 글 〈우리 조선반도〉를 읽게 된 점은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말 또는 당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쓴 지금 저는 김교신 선생을 아주 가까운 신앙의 선생이자 선배로 느낍니다. 독자들께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김교신 선생을 그렇게 가깝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침이나 저녁 편안한 시간에 보리차 한 잔 마시면서 신앙에 대해, 삶에 대해 찬찬히 말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호통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아파해 주는 좋은 선생이자 선배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았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하고 글쓴 이로서 이런 선생, 이런 선배 한 분 있다는 것, 참 든든한 일이잖아요. 이 든든함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졌으면 합니다.
* 근현대소설을 연구해 온 국문학자로서, 이번 책은 전혀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서문에도 간단히 썼지만, 이런 글을 쓰게 된 데는 2021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 방문교수로 가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문학 전공이다보니 외국에 오래 체류한 게 처음이었는데, 제 학문과 신앙의 토대를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VIEW는 신앙과 지성 사이에 칸막이를 두지 않고 터놓고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한국의 기독교 인문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어요. 그 무렵 VIEW 도서실에서 〈성서조선〉을 처음 읽었는데, 한국의 기독교 인문학자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 학술서와 대중서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독특한 서술 구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신 이유와 집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 〈성서조선〉 창간사를 읽을 때부터 제게는 〈성서조선〉과 거기 담긴 김교신의 삶과 사상이 입체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제가 한국근대소설을 전공했기 때문일 텐데요. 창간사에서 김교신이 관부연락선 위에서 '나는 아무리 해봤자 조선인이로구나!'라고 두 번이나 탄식하던 그 장면이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과 겹쳐지고 임화의 시 〈현해탄〉과 겹쳐지면서 아주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느낌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김교신의 삶을 되살려 쓰되, 그 시대가 그에게 부과한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떠안고 살았는지, 그 내면의 희망과 절망이 어떠했는지를 섬세하게 되살리려 했습니다.
* 김교신을 다룬 연구와 저술은 이미 여러 권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김교신'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김교신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나안 교인' 현상이나 평신도 교회를 향한 움직임에서 보듯,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 너머'를 모색하는 일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교신은 '교회 너머'를 찾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줍니다.
문제는 김교신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입니다. 이 책은 인문학의 언어로 쓴 책입니다. 교회의 언어로 김교신을 말하게 되면 암암리에 김교신을 교회의 문제틀 안으로 끌어들여 김교신의 무교회가 지닌 문제성을 소거합니다. 김교신을 말하려면 경계의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저는 오십 년간 교인으로 살았고 지금도 교인이지만 한편으로 무교회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가 서 있는 경계의 자리에서 쓴 것입니다. 제 생각에 김교신이 서 있었던 무교회의 자리도 이런 곳이었습니다. 경계에서 보아야만 비로소 보이는 김교신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김교신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김교신의 문제성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 방대한 사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번 책에서는 김교신을 어떤 관점으로 조명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라기보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요, 신사참배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김교신이 황국신민서사를 실으면서까지 〈성서조선〉을 간행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고민이 컸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한다는 것이 도리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인문학자로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 그 시대의 상황을 다룬 여러 분야의 문헌을 참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인류가 공유하는 지혜의 전통에 기대어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김교신도 그 시대의 아들이었고 그래서 많은 한계를 안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마주한 과제 앞에서 그걸 회피하지 않고 예수를 따라 살고자 했던 양심적인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김교신아카데미에서 김교신에 관한 강의를 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 〈성서조선〉 초기 동인이었던 정상훈 선생의 후손과 연결되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한 점, 그리고 그동안 소실된 줄 알았던 〈어린이〉 잡지에 실린 김교신의 글 〈우리 조선반도〉를 읽게 된 점은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말 또는 당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쓴 지금 저는 김교신 선생을 아주 가까운 신앙의 선생이자 선배로 느낍니다. 독자들께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김교신 선생을 그렇게 가깝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침이나 저녁 편안한 시간에 보리차 한 잔 마시면서 신앙에 대해, 삶에 대해 찬찬히 말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호통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아파해 주는 좋은 선생이자 선배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았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하고 글쓴 이로서 이런 선생, 이런 선배 한 분 있다는 것, 참 든든한 일이잖아요. 이 든든함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졌으면 합니다.
목차
목차
서문
1장 식민지 무교회자의 탄생
2장 단독으로 서다
3장 우치무라 간조 논쟁
4장 복스럽도다, 가난한 사람들!
5장 조선반도의 사명
6장 포플러의 사상
7장 소록도에서 온 편지
8장 북한 산록의 자전거꾼
9장 무교회, 전적 기독교
10장 심히 강대한 괴물 앞에서
11장 정진 또 정진
12장 부활의 봄을 노래하다
나가는 글
1장 식민지 무교회자의 탄생
2장 단독으로 서다
3장 우치무라 간조 논쟁
4장 복스럽도다, 가난한 사람들!
5장 조선반도의 사명
6장 포플러의 사상
7장 소록도에서 온 편지
8장 북한 산록의 자전거꾼
9장 무교회, 전적 기독교
10장 심히 강대한 괴물 앞에서
11장 정진 또 정진
12장 부활의 봄을 노래하다
나가는 글
저자
저자
류동규
한국 근현대소설 연구자로 현재 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1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방문교수로 지내면서 '한국의 기독교인 인문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였고, 이를 삶과 공부의 화두로 삼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의 첫 결과물이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와 김교신아카데미의 운영위원을 맡아 김교신을 공부하고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으며, 김교신의 하루하루의 삶을 담은 《김교신의 일일일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오십 년을 기독교인으로 사는 동안 교회에서의 자리는 조금씩 바뀌어 지금은 '교회 내 무교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발달 장애를 안고 태어난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낮은 자리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와 김교신아카데미의 운영위원을 맡아 김교신을 공부하고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으며, 김교신의 하루하루의 삶을 담은 《김교신의 일일일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오십 년을 기독교인으로 사는 동안 교회에서의 자리는 조금씩 바뀌어 지금은 '교회 내 무교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발달 장애를 안고 태어난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낮은 자리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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