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죄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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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고대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고대륜 시인은 1939년 1월 9일 전남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에서 아버지 고금담과 어머니 배순례 사이에서 6남매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되는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그는 매일 7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거리를 걸어 등교해야 했다. 게다가 교실이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하였다.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때 도초서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3회로 졸업을 했다. 그 해 6·25 전쟁이 일어나, 목포제일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불타 버렸고 또 교사가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휴전 결사반대 궐기 대회를 시내를 돌면서 외쳐댔다. 문태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도 군사훈련도 받았다.
육군 포병 중대로 입대하여, 교육계에서 복무하다가, 제대 6개월을 남겨 두고 갑종 간부 후보생 184기에 합격하여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교육받았다. 하지만, 몸이 아파 중도에 그만두고 제대하고 말았다.
제대 후, 목포교육대학에 입학하여, 1967년에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고향, 나주, 광주, 함평 등지에서 평교사로 근무했고, 교감으로 승진하여 무안, 도초, 목포 등지에서 6년간 근무하다, 목포 신흥초등학교에서 퇴직하였다. 그사이 교육 논문을 다수 집필했다.
21살 때 중매로 무인생 동갑내기인 황명순과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퇴직 후, 광주 지방검찰청 범죄 예방 위원으로 6년간 활동하였고, 빛고을 대동 문화대학을 수료했으며,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영어, 컴퓨터, 문학, 시사랑, 헬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 《동산문학》 신인문학상 시 수상으로 문단 데뷔를 했으며, 《은발의 향기》에 참여하고 있고, 또 동산문학작가회 이사,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광주 《서석문학》 회원, 은가비 동인회 회원, 한실문예창작 방그레문학회 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계간지 《오은문학》 디카시 문학 대상, 월간지 《문학공간》 디카시 문학 대상, 녹조 근정훈장, 국민교육헌장 교육부 장관상, 제3회 환경 살리기 백일장 시 당선, 산해정문학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디카시집 『아내바라기』가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고대륜 시인의 시 세계를 나긋나긋 탐색해 보기로 하자.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는지 몰라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
길바닥이 온통 물바다
시냇물 되어
마구 굴러간다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
여우비처럼 멈추더니
햇살이 내려앉는다
도로가 말끔해지고
가로수의 잎새도 생기를 자랑한다.
- 「장대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뜨거운 폭염 뒤에 찾아온 강렬한 장대비를 통해 느끼는 시원한 해방감과 세상의 정화를 노래하고 있다. 소나기도 아니고 장대비가 내린다.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린다. 무더운 폭염 속에서 시원하게 내린다. 땡볕을 더듬던 허공의 뜨거운 촉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예민한 공중의 골목을 무너뜨리고 아득한 높이에서 지상을 향해 과감하게 낙하하는 시원한 자세가 장대비인 것이다. 장대비는 길바닥에서 몸을 뒹굴고 자동차 바퀴에 짓뭉개져도 계속하여 떨어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건물을 들이받으며 물의 대가리를 꼿꼿이 들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장대비의 출발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시적 화자에게 그 장대비는 오히려 반갑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기에 쏟아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 더위를 잠재우기에 화자는 장대비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며 장대비를 반긴다. 장대 같은 물의 대가리로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고 마음속 얘기까지 전한다. 아득한 높이에서도 두려움 없이 낙차를 즐기며 떨어지는 장대비가 세상의 거짓을 몽땅 쓸어갔으면 한다. 자신의 몸까지 던지는 장대비이기에 그깟 세상의 거짓쯤은 쓸어갈 것 같기도 하다. 쫙쫙 내리는 장대비의 속성과 잘 버무려져 있다. 시적 화자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단순히 가뭄을 해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땅 위의 오물은 물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거짓과 불신까지 모두 씻어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어, 비가 그친 뒤 햇살과 함께 찾아온 생기 넘치는 풍경은 비를 통한 정화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자연 현상을 빌려 인간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서정적으로 시적 형상화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섰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다
차창 밖 스치는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챙겨왔다
집 앞 화단에서
우리도 보고 가세요
수선화들이 소리소리 지른다
모처럼 꽃 마중으로
봄이 성큼 다가온 한나절
눈이 즐거운 나들이였다.
- 「봄이 오나 보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매서운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마침내 찾아온 봄의 생동감을 노신사의 산책길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봄은 혁명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갈아엎는다. 사방 꽃빛이고 연둣빛이다. 우쭐대는 기세도 없이 봄은 바지런을 떨며 들녘으로 산으로 세력을 뻗어나간다. 봄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노랗고 붉게 제빛을 줄기마다 매달아, 꽃이 만발하다. 봄은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기를 원하기에 봄비를 내려 주고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뿌리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봄의 그 여린 힘을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봄이 오는 길목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서고 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여유로운 노타이 차림으로 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서 반가운 봄을 만난다.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 봄에게 시적 화자는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서 봄은 그런 혁명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까. 눈보라를 이겨낸 그 의지가, 북풍을 견뎌낸 그 저력이 봄의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하는 민들레에서 시적 화자는 행복에 젖는다.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거리는 모습에 시적 화자의 시선이 멈춘다. 여린 연둣빛에는 봄을 대물림하려는 태도가 깃들어 있는지 반짝반짝 빛난다. 시적 화자는 발길을 돌려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집으로 향한다. 봄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더니 이제는 봄을 밥상까지 데리고 간다. 다정다감한 남자다. 시적 화자는 민들레와 수양버들을 의인화하여 자연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일상 속에 스며든 계절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주변의 꽃들과 교감하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설렘을 독자에게 우아하게 전달하고 있다.
국기 게양하고 둘러보니
아파트 동마다 눈에 들어오는 깃발
가뭄에 콩 나듯 서너 집뿐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
이럴 수가 있을까
태극기가 없어서
일요일인 줄만 아는 걸까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처럼
날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 「3·1절에 태극기 내걸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애국심과 민족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시 속에 담아내고 있다. 3·1 운동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조선의 독립 선언을 목적으로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비폭력 만세 운동이다.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장례가 있던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조선 전역에서 봉기하였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 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공휴일이자 국경일이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매년 3·1절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있었기에 3·1절은 더욱 귀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좋아지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3·1절은 단순한 공휴일로 다가서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지점에서 어떤 의문과 질문을 하게 된다.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만 태극기를 내건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저 밑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어떤 아픔이 느껴진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골목마다 피어나던 뜨거움이 지고 있는 듯해 쓸쓸하다. 그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개인의 생일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그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를 떠올린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는 태극기 섬이다. 1년 365일 집집이 태극기가 펄럭인다. 1919년 3월 15일 완도 만세운동을 주도한 섬이 소안도다. 소안도는 2003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열었고, 2005년에는 기념탑과 사립소안학교기념관을 세웠다. 집마다 365일 태극기를 내다 걸고 길가에 무궁화를 심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부터다. 시적 화자는 그런 소안도처럼 「날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국경일임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거의 걸려 있지 않은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보며, 현대인들이 개인적인 기념일은 챙기면서도 역사적 의의가 담긴 날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일 년 내내 국기를 게양하는 소안도의 사례를 들어, 독자들이 국가적 기념일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나라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8개월 전 갑자기 몸이 아파
서울로 치료하러 갔던 학우
뜬금없는 전화벨 소리
오늘 저녁 5시경
단골 식당 맛나에서 만나세
차 타고 내려감세
만나고 싶은 마음 굴뚝에
덜렁 약속은 했으나 걱정이 태산
아픈 임 두고 나갈 수 없는 형편
혼자 버틸 수 있게 신신당부
워커, 지팡이, 폰, 물병, 아내 곁에 두고
걱정을 보듬고 집을 나섰다
식당 들어서자
친구, 아들, 딸, 악수로 반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주셔서
아버지를 살리셨다고 칭찬이 다발이다
만날 때마다
집사람 병세를 염려했던 친구
오는 정 가는 정,
결초보은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 와 전화했더니
금세 서울로 가는 중이란다.
- 「천릿길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오랜 투병 끝에 고향을 찾은 친구와의 애틋한 재회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도리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정友情은 친구 사이에 나누는 깊은 신뢰와 애정, 정신적 유대감을 뜻하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정서적 풍요로움을 주는 필수적인 관계이다. 친구, 동무, 동지와 함께 '벗'이라는 말이 있다. 벗을 사귀는 첫째 요건이 믿음이고 둘째 요건이 서로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접인장接人章에서 무릇 사람(벗)을 대하는 데는 마땅히 화평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다. 또 불교의 《선생자경善生子經》은 벗을 공경으로 대하는 다섯 가지 일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말하였다. 곧, "바른 마음으로 공경하며, 그 마음을 한하지 않으며, 딴마음을 먹지 않으며, 때때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은혜의 두려움을 잊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벗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 시적 화자의 우정이 이 시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 멋지다. 벗을 향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천릿길도」로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8개월 전 갑자기 몸이 아파 서울로 치료하러 갔던 학우로부터 전화가 온다. 친구와 함께 자주 갔던 단골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친구의 건강이 좋아졌는지 덩달아 시적 화자의 기분도 좋아진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는 서로의 마음을 기대며 살아간다. 상대가 아플 때는 우정의 심장을 내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지켜준다. 몸속에 신전을 지어 친구의 아픔을 위해 기도한다. 우정과 그리움으로 내일을 버틸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시적 화자의 그 마음이 친구에게 닿아 병세가 호전된, 친구와 그의 가족들은 이런 말을 한다. 「친구, 아들, 딸, 악수로 반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주셔서/ 아버지를 살리셨다고 칭찬이 다발이다.」 여기서 '벗'의 의미가 와닿는다. 한자인 '友(벗 우)'는 왼손을 나타내는 '?'자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又'자를 어우른 글자로, 손을 마주 잡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벗'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적 화자는 아픈 아내를 홀로 두고 나가야 하는 복잡한 걱정과 미안함을 뒤로한 채, 진심 어린 안부와 우정을 지켜온 벗을 만나 따스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적 화자는 단순히 소식을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는 신뢰와 보은의 가치를 강조하며, 짧은 만남 뒤에 다시 찾아오는 이별의 아쉬움을 절제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등 터지고 갈라져
진흙 땜질하고도 늠름한
아파트 지킴이
한쪽 팔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다른 팔로는 다정한 손사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처음엔 오고 가며
짠한 심정 굴뚝이었지만
이젠 당당한 활력의 전령사
허리까지 꾸부정하지만
무성한 저 푸른 솔잎이
건강한 삶 아니런가
추운 겨울 도둑눈도 쓸어 주어
안전을 염려해 주는
그 자세 그 마음 영원하리.
- 「노송을 기리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 잡은 오래된 소나무를 의인화하여,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존재가 주는 강인한 생명력과 따스한 이웃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과 가뭄에도 잘 견뎌내어 오랜 세월 동안 지조와 절개,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백 년을 넘게 천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백년송, 천년송이라는 소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을 제 안에 담아두며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하늘에 기도를 드렸던 것일까.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소나무에 기대어 마음을 위로받으며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시적 화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그런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송이 있다. 세월을 견딘 노송에서 넉넉한 품이 느껴진다. 그 느낌을 시적 화자는 「등 터지고 갈라져/ 진흙 땜질하고도 늠름한/ 아파트 지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도 마을을 지킨 천년송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사철 푸른 노송을 바라보며 아파트를 오고 가는 주민들은 희망을 노래했을 것이다. 태풍에도 눈보라에도 가뭄에도 노송은 늘 푸르게 자리를 지켰기에 주민들도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늘 푸르게 일어서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때론 노송은 「한쪽 팔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다른 팔로는 다정한 손사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인사를 건넨다. 주민들과 동급의 위치에서 노송은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노송은 식물성 인간인지도 모른다. 주민들의 얘기를 나이테에 새기며 하고픈 말은 솔잎의 목소리로 팔랑팔랑 들려주는 식물성 인간. 나이가 들어 노쇠한 노송이지만 화자는 그런 노송이 오히려 멋지다고 이렇게 표현한다. 「허리까지 꾸부정하지만/ 무성한 저 푸른 솔잎이/ 건강한 삶」이라고. 시적 대상에 대한 긍정의 관점이 눈길을 끈다. 시적 화자는 거친 껍질과 굽은 등에도 불구하고 푸른 잎을 틔워내는 나무의 모습에서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 당당한 활력을 발견하고 있다. 더불어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나무의 헌신적인 태도를 예찬하고 있다. 또한 시적 화자는 쇠락해 가는 외양 속에 감춰진 내면의 건강함을 강조하면서,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자연 존재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사람들은 가로수로 살라고
도시 거리에 발을 묻어 주었다
시민과 함께 살면서
거리의 허파 되어주고
언제 꽃이 피는 줄도 모르게
마주 보는 사랑 이야기해 주었다
가을이면 평화의 길 안내하는
황금의 숲 가슴으로 보여 주고
욕심 없이 합죽선 몽땅 나누어 주는
배려의 자세 보여 주었다
냄새나는 껍질로 왜 싸여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 가지라고 당부하면서
병충해 달라붙지 않는 나무
그렇게 오래 사는 것 보여 주고
오늘도
세월과 함께 늠름하게 서 있다.
- 「은행목」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도심 속 가로수로 살아가는 은행나무의 고결한 생애를 통해 공생과 배려의 미학을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은행나무는 2억 8천만 년 전부터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으로, 도심의 악조건에서도 견디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은행나무는 최고의 가로수 수종 중 하나이다. 은행나무는 강한 생명력, 병충해에 강한 내성, 뛰어난 공기 정화 능력, 그리고 화재 방지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매연과 분진을 잘 흡수하고, 배기가스가 많은 도로 환경에서도 잘 견디며, 껍질이 두꺼워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가로수로 살라고/ 도시 거리에 발을 묻어 주었다」 은행나무는 자신의 허파를 내어주어 「거리의 허파 되어주고」 있다. 가을이면 온통 노란 말투와 노란 표정으로 도시를 정화해 주고 있는 은행나무가 사뭇 고맙다. 은행나무는 4월경에 꽃을 피우지만, 꽃잎이 있는 화려한 꽃이 아니다. 흔히 '암꽃'으로 부르는 것은 솔방울처럼 생식기관이 노출된 구조다. '수꽃'은 작은 꼬리 모양으로 꽃가루를 날린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은행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 줄도 모르게/ 마주 보는 사랑 이야기」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는 「평화의 길 안내하는/ 황금의 숲 가슴으로 보여」 준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의 후손처럼 사람들에게 끝끝내 버티며 살아있으면 이기는 거라고 노란 말씀을 널리 널리 퍼뜨린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진다. 「냄새나는 껍질로 왜 싸여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 가지라고 당부」한다. 아픔과 궁핍과 부재와 같은 인생의 냄새나는 껍질의 시간을 잘 견뎌야 끝끝내 승리하는 거라며 에둘러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도시의 허파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나무의 헌신을 예찬하는 동시에, 고약한 열매 향기 속에 숨겨진 생존의 지혜와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모진 풍파와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내며 황금빛 평화의 길을 안내하는 은행나무의 의연한 자태를 통해,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할 이타적인 삶의 태도와 숭고한 생명력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방 이 지상엔 우리의 삶
망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엘니뇨의 극심한 가뭄이
황폐한 자연을 낳고
허리케인 같은 미친 폭풍이
일상을 쑥대밭으로 몰아가고
우-러전쟁, 중동전쟁이
비참한 주검 부르고
북한이 보낸 쓰레기 봉지
트집 잡기 위한 꼼수
이 모든 것들
무모하게 저지른 인간의 업보
공사 공멸로
어둠 세계 자초한다는 것 모르는가
아름다운 자연, 살 만한 세상 바란다면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겠지.
- 「위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기후 위기와 전쟁,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파괴적 실상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 2025~ 2026년 지구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이라는 기후 위기 경계선을 넘으며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비등(Boiling)' 시대로 진입했다. 전 세계적인 극심한 폭염, 대규모 홍수, 산불이 일상화되었으며, 한반도 역시 역대 최고 기온과 '한가위 폭염' 등 극한 기후를 겪고 있다. 엘니뇨(El Ni?o)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지구촌 전역의 대기 흐름을 바꿔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이상기후를 유발한다. 특히 2026년에는 10년 만의 강력한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어 기후 위기 경고가 높아지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런 이상기후 등으로 「시방 이 지상엔 우리의 삶/ 망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엘니뇨의 극심한 가뭄이/ 황폐한 자연을 낳고// 허리케인 같은 미친 폭풍이/ 일상을 쑥대밭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경고도 무서운데 지구촌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나 더 걱정하고 있다. 「우-러전쟁, 중동전쟁이/ 비참한 주검」 부르고 있어 지구의 안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쟁은 탐욕이 극에 달할 때 발생하기에 화자는 「이 모든 것들/ 무모하게 저지른 인간의 업보」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적 화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공사 공멸로/ 어둠 세계 자초한다는 것 모르는가」라고 호통친다.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자연, 살 만한 세상 바란다면/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적 화자는 인류가 직면한 재앙들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탐욕과 무모함이 불러온 업보로 규정하며, 공멸의 길로 치닫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암담한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지혜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실천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지상의 평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회복하려는 생명 존중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폭염 쏟아지는
여름 오면
산들바람이
큰 소나무 덕 보는 곳
부채 들고 올라가
바람과 함께 쉬었지
이마에 흘러내린 땀방울
시원히 씻어 주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새파란 모가 들판 가득
왼쪽으론 열목 포구 배들
뱃고동 소리로 들락날락
먼 산 너머 자물통 같은 산
가 보고 싶었던 그림산
웃통 벗어 등 대고 누워 있으면
하늘까지 온통 내 세상인걸.
- 「고향 잔등」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유년 시절의 여름날 추억이 서린 평화로운 언덕을 배경으로 고향의 풍경과 정취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기억 속 고향으로 들어간다. 「폭염 쏟아지는/ 여름 오면// 산들바람이/ 큰 소나무 덕 보는 곳// 부채 들고 올라가/ 바람과 함께 쉬」고 있다. 시는 이처럼 기억의 심층으로 들어가 켜켜이 쌓여 있는 추억의 기호들을 길어 올려야 한다. 추억을 살찌운 낭만과 감성을 덧칠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빚어야 한다. 때론 상처와 궁핍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것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자신만의 언어로 선별하여 시의 골조를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다른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상처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상처를 밀어내지 않고 들여다보면서 시적 형상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적 화자는 낭만과 풍요가 깃들었던 고향에서 어떤 그리움을 꽃피우고 있다. 한여름의 고향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방울/ 시원히 씻어 주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새파란 모가 들판 가득」하다. 아름다운 고향 풍경이다. 시적 화자가 고개를 돌리면 「왼쪽으론 열 목 포구 배들/ 뱃고동 소리로 들락날락」거린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고향의 산과 바다가 아름답다.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내다보면 「먼 산 너머 자물통 같은 산/ 가 보고 싶었던 그림산」이 보인다. 평화로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누워 들녘의 푸른 생명력과 포구의 역동적인 삶을 동시에 조망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몰입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다. 이 시는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유한한 일상을 벗어나 대자연을 소유하는 듯한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자유의지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 시를 통해 독자가 지향하는 안식처로서의 고향과 그 속에 담긴 순수한 생명력을 깊이 있게 갈망하도록 이끌고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
베란다에 꽃들과 눈마중
밤새 보고파 기다렸다는 듯
밝은 얼굴들
찌뿌드드한 마음
금세 꽃 속으로 스며들고
마음 허전하면 언제든 들려요
양화의 귓속말처럼 정겹다
괴롭고 성가실 때도
웃고 살아요
제라늄이 빙그레 보낸다
욱, 하고 화났을 때도
포근한 가슴으로 안아줄게요
고무나무가 앞장서 말한다.
- 「꽃들은 말한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매일 아침 베란다 식물들과 교감하면서 얻는 정서적 치유와 위로를 정겹게 묘사하고 있다. 꽃의 감정은 온통 밝고 긍정적인 것들로만 형성된 것 같다. 산에 꽃이 피면 벌 나비뿐만 아니라 상춘객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꽃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긍정의 감정과 더불어 꽃의 생각도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꽃잎을 한 장씩 열어젖히며 꽃빛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꽃과 일체감을 이룬 사람들의 낯빛이 환해 집집마다 꽃을 들여놓는가 보다. 요즘은 애완식물 반려 식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내 환경에 적응력이 높고 관리가 쉬워 인기가 많다. 시적 화자도 가까이에 반려 식물이 있어 「아침마다 일어나/ 베란다에 꽃들과 눈마중// 밤새 보고파 기다렸다는 듯/ 밝은 얼굴들」을 만난다. 그리운 이를 만나듯 꽃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꽃은 울긋불긋한 꽃의 입술을 열어 향기 가득한 꽃의 안부를 건넨다. 그 향기에 취해 시적 화자는 「찌뿌드드한 마음/ 금세 꽃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어미 꽃의 당부가 향기로 대물림되어 내려왔는지 꽃은 향기로 타인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며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고도의 전략 같기도 한 그 향기 덕분에 사람들은 꽃과 향기를 좋아하고 숭배한다. 그런 마음을 시적 화자는 「마음 허전하면 언제든 들려요/ 양화의 귓속말처럼 정겹다」고 표현하고 있다. 꽃에 담긴 그 다정한 위로 때문에 시적 화자는 꽃을 가까이한다. 「괴롭고 성가실 때도/ 웃고 살아요/ 제라늄이 빙그레」 보내는 위안에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시의 전반부는 꽃들이 보여 주는 밝은 생명력이 인간의 허허로운 마음을 채워 주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시의 후반부는 구체적인 식물의 이름을 빌려 분노와 괴로움을 다스리는 지혜를 건네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자연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를 통해 일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를 아름답게 강조하고 있다.
마이산 자락 돌탑
수년 지난 지금도
늠름하게 서 있다
비바람 불어도
눈보라 몰아쳐도
의연하게 서 있다
먹구름 안아 준 비움
그보다
안정을 위하여
흔들림 없이 견뎌온 당신
발부리에 채이고
버림받던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 줄이야.
- 「굄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마이산 돌탑의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인내와 존재의 가치를 유려하게 노래하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馬耳山에 위치한 마이산 탑사의 돌탑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풍에도 무너지지 않아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이산 돌탑은 1885년경 25세의 이갑용 처사가 30여 년에 걸쳐 맨손으로 80여 개의 돌탑을 쌓아 올린 것으로, 설계도 없이 오직 정성과 신념으로 완성되었다. 시멘트 같은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돌을 맞물려 쌓았음에도 태풍과 강풍을 견뎌낸다. 돌탑에는 구국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백성을 구제하고 만민의 죄를 속죄하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 염원의 마음을 시적 화자는 「먹구름 안아 준 비움/ 그보다/ 안정을 위하여/ 흔들림 없이 견뎌온 당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낱개로 흩어진 돌처럼 개인별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없다. 하지만 그 개인이 모여 한목소리로 외치면 힘이 생긴다. 마이산 돌탑에는 그와 같은 큰 힘을 만들어 혼란스러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시적 화자는 이를 「발부리에 채이고/ 버림받던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 줄」 이제야 알았다며 탄복하고 있다. 마이산 돌탑의 염원이 러우전과 중동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작금의 현실에도 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적 화자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는 돌탑의 모습을 내면의 비움과 평온을 실천하는 숭고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발치에 채이던 존재가 소중한 근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사소해 보이는 존재라도 묵묵히 시련을 견뎌낼 때 세상을 지탱하는 늠름한 숭고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밤늦게 서당 공부하고 집에 와
윗목에 쒀 놓은 메주 보자마자
몰래 손가락 수저로 파먹고 돌려놓았던 일
아침에 엄마 목소리
어젯밤 서생원이 메주를 갉아먹었네
아들은 시치미 떼고 밖으로 나갔다.
- 「가난이 죄이련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난한 시절의 해학적인 추억을 통해 가족 간의 섬세한 사랑과 이해를 그려내고 있다. 해학(諧謔, Humor)은 일상적인 삶의 모순이나 어리석음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표현 기법으로, 대상에 대한 동정과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풍자가 대상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과 달리, 해학은 비판 대상에 대한 연민을 포함하여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황이나 인물의 특징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혹은 비틀어서 표현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인물을 다소 어리석거나 어수룩하게 묘사하여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 시의 서생원이 그와 같다. 서생원鼠生員은 쥐를 의인화하여 대접하거나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성씨 '서徐'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한자로 쥐 서鼠 자에 과거 합격자를 뜻하는 날 생生, 인원 원員 자를 쓴다. 현대 표현인 '바선생(바퀴벌레)'의 원조 격인 단어이다. 시적 화자는 「어린 시절 밤늦게 서당 공부하고 집에 와/ 윗목에 쒀 놓은 메주 보자마자/ 몰래 손가락 수저로 파먹고 돌려놓았」다. 가난한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기에 엄마 몰래 메주를 먹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이 모든 것을 묻지 않고 「어젯밤 서생원이 메주를 갉아먹었네」라는 말만 한다. 궁핍한 그 시절의 아픔과 아들의 행동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엄마. 가난한 그 시절을 그렇게 해학으로 건넌 엄마와 시적 화자가 멋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메주를 몰래 파먹은 어린 아들의 순수한 장난기가 전반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후반부는 이를 쥐의 소행으로 돌리는 어머니의 너그러운 배려가 결말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시적 화자는 아들의 허물을 직접 꾸짖지 않고 모르는 척 덮어 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통해, 결핍 속에서도 피어나는 가족 공동체의 따스한 온기와 사랑을 아름답게 시적 형상화해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온 바처럼, 고대륜 시인의 시들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 삶의 태도와 자연의 섭리를 성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국경일의 퇴색된 의미나 아픈 아내를 돌보는 고단함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의리와 감사를 발견하며, 계절의 변화와 자연물로부터 생명력과 치유의 메시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기후 위기와 전쟁 같은 거대 담론을 인간의 업보와 지혜의 필요성으로 연결 짓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소박한 추억과 베란다 꽃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평화와 의연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대륜 시인의 시들은 주변의 존재들을 깊이 있게 관찰함으로써 얻게 되는 성숙한 삶의 통찰과 따스한 위로를 이미지 구현과 상징의 활용과 낯설게 하기와 감각적 시적 형상화를 통하여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제3, 제4시집을 발간하여, 더욱 섬세한 감성의 세계, 더욱 감동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독자에게 선보이기를 소망해 본다. 여생 동안 묵묵히 사물을 관찰하고 새롭게 해석하여 이를 시적 형상화하고, 어느 시기에 시집으로 발간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늘 열심히 늘 성실하게 살아가는 고대륜 시인의 모습, 특히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헌신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고 존경스럽다.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고대륜 시인은 1939년 1월 9일 전남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에서 아버지 고금담과 어머니 배순례 사이에서 6남매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되는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그는 매일 7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거리를 걸어 등교해야 했다. 게다가 교실이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하였다.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때 도초서 국민학교로 전학하여 3회로 졸업을 했다. 그 해 6·25 전쟁이 일어나, 목포제일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불타 버렸고 또 교사가 부족하여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휴전 결사반대 궐기 대회를 시내를 돌면서 외쳐댔다. 문태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도 군사훈련도 받았다.
육군 포병 중대로 입대하여, 교육계에서 복무하다가, 제대 6개월을 남겨 두고 갑종 간부 후보생 184기에 합격하여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교육받았다. 하지만, 몸이 아파 중도에 그만두고 제대하고 말았다.
제대 후, 목포교육대학에 입학하여, 1967년에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고향, 나주, 광주, 함평 등지에서 평교사로 근무했고, 교감으로 승진하여 무안, 도초, 목포 등지에서 6년간 근무하다, 목포 신흥초등학교에서 퇴직하였다. 그사이 교육 논문을 다수 집필했다.
21살 때 중매로 무인생 동갑내기인 황명순과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퇴직 후, 광주 지방검찰청 범죄 예방 위원으로 6년간 활동하였고, 빛고을 대동 문화대학을 수료했으며,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영어, 컴퓨터, 문학, 시사랑, 헬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 《동산문학》 신인문학상 시 수상으로 문단 데뷔를 했으며, 《은발의 향기》에 참여하고 있고, 또 동산문학작가회 이사,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회원, 광주 《서석문학》 회원, 은가비 동인회 회원, 한실문예창작 방그레문학회 회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계간지 《오은문학》 디카시 문학 대상, 월간지 《문학공간》 디카시 문학 대상, 녹조 근정훈장, 국민교육헌장 교육부 장관상, 제3회 환경 살리기 백일장 시 당선, 산해정문학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디카시집 『아내바라기』가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고대륜 시인의 시 세계를 나긋나긋 탐색해 보기로 하자.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는지 몰라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
길바닥이 온통 물바다
시냇물 되어
마구 굴러간다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
여우비처럼 멈추더니
햇살이 내려앉는다
도로가 말끔해지고
가로수의 잎새도 생기를 자랑한다.
- 「장대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뜨거운 폭염 뒤에 찾아온 강렬한 장대비를 통해 느끼는 시원한 해방감과 세상의 정화를 노래하고 있다. 소나기도 아니고 장대비가 내린다.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린다. 무더운 폭염 속에서 시원하게 내린다. 땡볕을 더듬던 허공의 뜨거운 촉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예민한 공중의 골목을 무너뜨리고 아득한 높이에서 지상을 향해 과감하게 낙하하는 시원한 자세가 장대비인 것이다. 장대비는 길바닥에서 몸을 뒹굴고 자동차 바퀴에 짓뭉개져도 계속하여 떨어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건물을 들이받으며 물의 대가리를 꼿꼿이 들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장대비의 출발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먹구름 하늘이/ 천둥 번개로 요동치더니/ 억수로 쏟아진다」 시적 화자에게 그 장대비는 오히려 반갑다. 「장장 하일 폭염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하늘 원망했」기에 쏟아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 더위를 잠재우기에 화자는 장대비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마침내 옹골차게 온다/ 이왕 온 김에/ 왕창 퍼부었으면 좋겠다」며 장대비를 반긴다. 장대 같은 물의 대가리로 「길바닥의 더러운 쓰레기/ 싹 쓸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거짓 풍문도/ 죄다 떠내려가면 좋겠다」고 마음속 얘기까지 전한다. 아득한 높이에서도 두려움 없이 낙차를 즐기며 떨어지는 장대비가 세상의 거짓을 몽땅 쓸어갔으면 한다. 자신의 몸까지 던지는 장대비이기에 그깟 세상의 거짓쯤은 쓸어갈 것 같기도 하다. 쫙쫙 내리는 장대비의 속성과 잘 버무려져 있다. 시적 화자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단순히 가뭄을 해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땅 위의 오물은 물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거짓과 불신까지 모두 씻어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어, 비가 그친 뒤 햇살과 함께 찾아온 생기 넘치는 풍경은 비를 통한 정화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 주는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자연 현상을 빌려 인간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서정적으로 시적 형상화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섰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다
차창 밖 스치는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챙겨왔다
집 앞 화단에서
우리도 보고 가세요
수선화들이 소리소리 지른다
모처럼 꽃 마중으로
봄이 성큼 다가온 한나절
눈이 즐거운 나들이였다.
- 「봄이 오나 보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매서운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마침내 찾아온 봄의 생동감을 노신사의 산책길을 통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봄은 혁명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상의 모든 것을 갈아엎는다. 사방 꽃빛이고 연둣빛이다. 우쭐대는 기세도 없이 봄은 바지런을 떨며 들녘으로 산으로 세력을 뻗어나간다. 봄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노랗고 붉게 제빛을 줄기마다 매달아, 꽃이 만발하다. 봄은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기를 원하기에 봄비를 내려 주고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뿌리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봄의 그 여린 힘을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봄이 오는 길목을 화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엊그제까지 꽃샘추위 심술/ 오늘은 산뜻한 와이셔츠에/ 노타이로 팔팔 노신사 길을」 나서고 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여유로운 노타이 차림으로 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에서 반가운 봄을 만난다.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둘러앉아/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한」 봄에게 시적 화자는 반갑게 인사한다. 어디서 봄은 그런 혁명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까. 눈보라를 이겨낸 그 의지가, 북풍을 견뎌낸 그 저력이 봄의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일까. 나비인 줄 알고 손짓하는 민들레에서 시적 화자는 행복에 젖는다. 「광주천 냇가/ 연둣빛 차려입은 수양버들 아가씨들/ 긴 머리 감아 내리고 하느작하느작」거리는 모습에 시적 화자의 시선이 멈춘다. 여린 연둣빛에는 봄을 대물림하려는 태도가 깃들어 있는지 반짝반짝 빛난다. 시적 화자는 발길을 돌려 「남광주 시장에 들러/ 쑥 미나리 두어 다발/ 봄기운 넣어」 집으로 향한다. 봄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더니 이제는 봄을 밥상까지 데리고 간다. 다정다감한 남자다. 시적 화자는 민들레와 수양버들을 의인화하여 자연이 생명력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일상 속에 스며든 계절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주변의 꽃들과 교감하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설렘을 독자에게 우아하게 전달하고 있다.
국기 게양하고 둘러보니
아파트 동마다 눈에 들어오는 깃발
가뭄에 콩 나듯 서너 집뿐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
이럴 수가 있을까
태극기가 없어서
일요일인 줄만 아는 걸까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처럼
날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 「3·1절에 태극기 내걸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애국심과 민족적 가치에 대한 성찰을 시 속에 담아내고 있다. 3·1 운동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조선의 독립 선언을 목적으로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비폭력 만세 운동이다.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계기로 고종의 장례가 있던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조선 전역에서 봉기하였다.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 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대한민국의 공휴일이자 국경일이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매년 3·1절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이 있었기에 3·1절은 더욱 귀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좋아지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3·1절은 단순한 공휴일로 다가서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지점에서 어떤 의문과 질문을 하게 된다. 「기념식 본 후 모두 달겠지/ 아니, 겨우 한두 집」만 태극기를 내건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시적 화자의 마음에서 저 밑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어떤 아픔이 느껴진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골목마다 피어나던 뜨거움이 지고 있는 듯해 쓸쓸하다. 그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큰일 났구나/ 생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경축하고 다짐할 국경일을/ 잊고 모르다니」 개인의 생일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그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일 년 내내 태극기 게양하는/ 완도 소안도」를 떠올린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는 태극기 섬이다. 1년 365일 집집이 태극기가 펄럭인다. 1919년 3월 15일 완도 만세운동을 주도한 섬이 소안도다. 소안도는 2003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열었고, 2005년에는 기념탑과 사립소안학교기념관을 세웠다. 집마다 365일 태극기를 내다 걸고 길가에 무궁화를 심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부터다. 시적 화자는 그런 소안도처럼 「날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국경일임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거의 걸려 있지 않은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보며, 현대인들이 개인적인 기념일은 챙기면서도 역사적 의의가 담긴 날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일 년 내내 국기를 게양하는 소안도의 사례를 들어, 독자들이 국가적 기념일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나라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8개월 전 갑자기 몸이 아파
서울로 치료하러 갔던 학우
뜬금없는 전화벨 소리
오늘 저녁 5시경
단골 식당 맛나에서 만나세
차 타고 내려감세
만나고 싶은 마음 굴뚝에
덜렁 약속은 했으나 걱정이 태산
아픈 임 두고 나갈 수 없는 형편
혼자 버틸 수 있게 신신당부
워커, 지팡이, 폰, 물병, 아내 곁에 두고
걱정을 보듬고 집을 나섰다
식당 들어서자
친구, 아들, 딸, 악수로 반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주셔서
아버지를 살리셨다고 칭찬이 다발이다
만날 때마다
집사람 병세를 염려했던 친구
오는 정 가는 정,
결초보은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 와 전화했더니
금세 서울로 가는 중이란다.
- 「천릿길도」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오랜 투병 끝에 고향을 찾은 친구와의 애틋한 재회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도리를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정友情은 친구 사이에 나누는 깊은 신뢰와 애정, 정신적 유대감을 뜻하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정서적 풍요로움을 주는 필수적인 관계이다. 친구, 동무, 동지와 함께 '벗'이라는 말이 있다. 벗을 사귀는 첫째 요건이 믿음이고 둘째 요건이 서로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접인장接人章에서 무릇 사람(벗)을 대하는 데는 마땅히 화평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다. 또 불교의 《선생자경善生子經》은 벗을 공경으로 대하는 다섯 가지 일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말하였다. 곧, "바른 마음으로 공경하며, 그 마음을 한하지 않으며, 딴마음을 먹지 않으며, 때때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은혜의 두려움을 잊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벗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 시적 화자의 우정이 이 시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 멋지다. 벗을 향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천릿길도」로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8개월 전 갑자기 몸이 아파 서울로 치료하러 갔던 학우로부터 전화가 온다. 친구와 함께 자주 갔던 단골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친구의 건강이 좋아졌는지 덩달아 시적 화자의 기분도 좋아진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는 서로의 마음을 기대며 살아간다. 상대가 아플 때는 우정의 심장을 내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을 지켜준다. 몸속에 신전을 지어 친구의 아픔을 위해 기도한다. 우정과 그리움으로 내일을 버틸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시적 화자의 그 마음이 친구에게 닿아 병세가 호전된, 친구와 그의 가족들은 이런 말을 한다. 「친구, 아들, 딸, 악수로 반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주셔서/ 아버지를 살리셨다고 칭찬이 다발이다.」 여기서 '벗'의 의미가 와닿는다. 한자인 '友(벗 우)'는 왼손을 나타내는 '?'자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又'자를 어우른 글자로, 손을 마주 잡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벗'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적 화자는 아픈 아내를 홀로 두고 나가야 하는 복잡한 걱정과 미안함을 뒤로한 채, 진심 어린 안부와 우정을 지켜온 벗을 만나 따스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적 화자는 단순히 소식을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는 신뢰와 보은의 가치를 강조하며, 짧은 만남 뒤에 다시 찾아오는 이별의 아쉬움을 절제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등 터지고 갈라져
진흙 땜질하고도 늠름한
아파트 지킴이
한쪽 팔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다른 팔로는 다정한 손사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처음엔 오고 가며
짠한 심정 굴뚝이었지만
이젠 당당한 활력의 전령사
허리까지 꾸부정하지만
무성한 저 푸른 솔잎이
건강한 삶 아니런가
추운 겨울 도둑눈도 쓸어 주어
안전을 염려해 주는
그 자세 그 마음 영원하리.
- 「노송을 기리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 잡은 오래된 소나무를 의인화하여,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존재가 주는 강인한 생명력과 따스한 이웃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과 가뭄에도 잘 견뎌내어 오랜 세월 동안 지조와 절개,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백 년을 넘게 천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백년송, 천년송이라는 소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을 제 안에 담아두며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하늘에 기도를 드렸던 것일까.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소나무에 기대어 마음을 위로받으며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시적 화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그런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송이 있다. 세월을 견딘 노송에서 넉넉한 품이 느껴진다. 그 느낌을 시적 화자는 「등 터지고 갈라져/ 진흙 땜질하고도 늠름한/ 아파트 지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도 마을을 지킨 천년송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사철 푸른 노송을 바라보며 아파트를 오고 가는 주민들은 희망을 노래했을 것이다. 태풍에도 눈보라에도 가뭄에도 노송은 늘 푸르게 자리를 지켰기에 주민들도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늘 푸르게 일어서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때론 노송은 「한쪽 팔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다른 팔로는 다정한 손사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세요」 인사를 건넨다. 주민들과 동급의 위치에서 노송은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노송은 식물성 인간인지도 모른다. 주민들의 얘기를 나이테에 새기며 하고픈 말은 솔잎의 목소리로 팔랑팔랑 들려주는 식물성 인간. 나이가 들어 노쇠한 노송이지만 화자는 그런 노송이 오히려 멋지다고 이렇게 표현한다. 「허리까지 꾸부정하지만/ 무성한 저 푸른 솔잎이/ 건강한 삶」이라고. 시적 대상에 대한 긍정의 관점이 눈길을 끈다. 시적 화자는 거친 껍질과 굽은 등에도 불구하고 푸른 잎을 틔워내는 나무의 모습에서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 당당한 활력을 발견하고 있다. 더불어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나무의 헌신적인 태도를 예찬하고 있다. 또한 시적 화자는 쇠락해 가는 외양 속에 감춰진 내면의 건강함을 강조하면서,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자연 존재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사람들은 가로수로 살라고
도시 거리에 발을 묻어 주었다
시민과 함께 살면서
거리의 허파 되어주고
언제 꽃이 피는 줄도 모르게
마주 보는 사랑 이야기해 주었다
가을이면 평화의 길 안내하는
황금의 숲 가슴으로 보여 주고
욕심 없이 합죽선 몽땅 나누어 주는
배려의 자세 보여 주었다
냄새나는 껍질로 왜 싸여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 가지라고 당부하면서
병충해 달라붙지 않는 나무
그렇게 오래 사는 것 보여 주고
오늘도
세월과 함께 늠름하게 서 있다.
- 「은행목」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도심 속 가로수로 살아가는 은행나무의 고결한 생애를 통해 공생과 배려의 미학을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은행나무는 2억 8천만 년 전부터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으로, 도심의 악조건에서도 견디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은행나무는 최고의 가로수 수종 중 하나이다. 은행나무는 강한 생명력, 병충해에 강한 내성, 뛰어난 공기 정화 능력, 그리고 화재 방지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매연과 분진을 잘 흡수하고, 배기가스가 많은 도로 환경에서도 잘 견디며, 껍질이 두꺼워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가로수로 살라고/ 도시 거리에 발을 묻어 주었다」 은행나무는 자신의 허파를 내어주어 「거리의 허파 되어주고」 있다. 가을이면 온통 노란 말투와 노란 표정으로 도시를 정화해 주고 있는 은행나무가 사뭇 고맙다. 은행나무는 4월경에 꽃을 피우지만, 꽃잎이 있는 화려한 꽃이 아니다. 흔히 '암꽃'으로 부르는 것은 솔방울처럼 생식기관이 노출된 구조다. '수꽃'은 작은 꼬리 모양으로 꽃가루를 날린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은행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 줄도 모르게/ 마주 보는 사랑 이야기」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은행나무는 「평화의 길 안내하는/ 황금의 숲 가슴으로 보여」 준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의 후손처럼 사람들에게 끝끝내 버티며 살아있으면 이기는 거라고 노란 말씀을 널리 널리 퍼뜨린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진다. 「냄새나는 껍질로 왜 싸여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 가지라고 당부」한다. 아픔과 궁핍과 부재와 같은 인생의 냄새나는 껍질의 시간을 잘 견뎌야 끝끝내 승리하는 거라며 에둘러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도시의 허파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나무의 헌신을 예찬하는 동시에, 고약한 열매 향기 속에 숨겨진 생존의 지혜와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모진 풍파와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내며 황금빛 평화의 길을 안내하는 은행나무의 의연한 자태를 통해,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할 이타적인 삶의 태도와 숭고한 생명력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방 이 지상엔 우리의 삶
망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엘니뇨의 극심한 가뭄이
황폐한 자연을 낳고
허리케인 같은 미친 폭풍이
일상을 쑥대밭으로 몰아가고
우-러전쟁, 중동전쟁이
비참한 주검 부르고
북한이 보낸 쓰레기 봉지
트집 잡기 위한 꼼수
이 모든 것들
무모하게 저지른 인간의 업보
공사 공멸로
어둠 세계 자초한다는 것 모르는가
아름다운 자연, 살 만한 세상 바란다면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겠지.
- 「위기」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기후 위기와 전쟁,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파괴적 실상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 2025~ 2026년 지구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이라는 기후 위기 경계선을 넘으며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비등(Boiling)' 시대로 진입했다. 전 세계적인 극심한 폭염, 대규모 홍수, 산불이 일상화되었으며, 한반도 역시 역대 최고 기온과 '한가위 폭염' 등 극한 기후를 겪고 있다. 엘니뇨(El Ni?o)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지구촌 전역의 대기 흐름을 바꿔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이상기후를 유발한다. 특히 2026년에는 10년 만의 강력한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어 기후 위기 경고가 높아지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런 이상기후 등으로 「시방 이 지상엔 우리의 삶/ 망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엘니뇨의 극심한 가뭄이/ 황폐한 자연을 낳고// 허리케인 같은 미친 폭풍이/ 일상을 쑥대밭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경고도 무서운데 지구촌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나 더 걱정하고 있다. 「우-러전쟁, 중동전쟁이/ 비참한 주검」 부르고 있어 지구의 안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쟁은 탐욕이 극에 달할 때 발생하기에 화자는 「이 모든 것들/ 무모하게 저지른 인간의 업보」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적 화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공사 공멸로/ 어둠 세계 자초한다는 것 모르는가」라고 호통친다.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자연, 살 만한 세상 바란다면/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적 화자는 인류가 직면한 재앙들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탐욕과 무모함이 불러온 업보로 규정하며, 공멸의 길로 치닫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암담한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지혜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실천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지상의 평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회복하려는 생명 존중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폭염 쏟아지는
여름 오면
산들바람이
큰 소나무 덕 보는 곳
부채 들고 올라가
바람과 함께 쉬었지
이마에 흘러내린 땀방울
시원히 씻어 주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새파란 모가 들판 가득
왼쪽으론 열목 포구 배들
뱃고동 소리로 들락날락
먼 산 너머 자물통 같은 산
가 보고 싶었던 그림산
웃통 벗어 등 대고 누워 있으면
하늘까지 온통 내 세상인걸.
- 「고향 잔등」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유년 시절의 여름날 추억이 서린 평화로운 언덕을 배경으로 고향의 풍경과 정취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기억 속 고향으로 들어간다. 「폭염 쏟아지는/ 여름 오면// 산들바람이/ 큰 소나무 덕 보는 곳// 부채 들고 올라가/ 바람과 함께 쉬」고 있다. 시는 이처럼 기억의 심층으로 들어가 켜켜이 쌓여 있는 추억의 기호들을 길어 올려야 한다. 추억을 살찌운 낭만과 감성을 덧칠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빚어야 한다. 때론 상처와 궁핍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것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자신만의 언어로 선별하여 시의 골조를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다른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상처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상처를 밀어내지 않고 들여다보면서 시적 형상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적 화자는 낭만과 풍요가 깃들었던 고향에서 어떤 그리움을 꽃피우고 있다. 한여름의 고향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방울/ 시원히 씻어 주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새파란 모가 들판 가득」하다. 아름다운 고향 풍경이다. 시적 화자가 고개를 돌리면 「왼쪽으론 열 목 포구 배들/ 뱃고동 소리로 들락날락」거린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고향의 산과 바다가 아름답다.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내다보면 「먼 산 너머 자물통 같은 산/ 가 보고 싶었던 그림산」이 보인다. 평화로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누워 들녘의 푸른 생명력과 포구의 역동적인 삶을 동시에 조망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몰입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다. 이 시는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유한한 일상을 벗어나 대자연을 소유하는 듯한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자유의지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 시를 통해 독자가 지향하는 안식처로서의 고향과 그 속에 담긴 순수한 생명력을 깊이 있게 갈망하도록 이끌고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
베란다에 꽃들과 눈마중
밤새 보고파 기다렸다는 듯
밝은 얼굴들
찌뿌드드한 마음
금세 꽃 속으로 스며들고
마음 허전하면 언제든 들려요
양화의 귓속말처럼 정겹다
괴롭고 성가실 때도
웃고 살아요
제라늄이 빙그레 보낸다
욱, 하고 화났을 때도
포근한 가슴으로 안아줄게요
고무나무가 앞장서 말한다.
- 「꽃들은 말한다」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매일 아침 베란다 식물들과 교감하면서 얻는 정서적 치유와 위로를 정겹게 묘사하고 있다. 꽃의 감정은 온통 밝고 긍정적인 것들로만 형성된 것 같다. 산에 꽃이 피면 벌 나비뿐만 아니라 상춘객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꽃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긍정의 감정과 더불어 꽃의 생각도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꽃잎을 한 장씩 열어젖히며 꽃빛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꽃과 일체감을 이룬 사람들의 낯빛이 환해 집집마다 꽃을 들여놓는가 보다. 요즘은 애완식물 반려 식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내 환경에 적응력이 높고 관리가 쉬워 인기가 많다. 시적 화자도 가까이에 반려 식물이 있어 「아침마다 일어나/ 베란다에 꽃들과 눈마중// 밤새 보고파 기다렸다는 듯/ 밝은 얼굴들」을 만난다. 그리운 이를 만나듯 꽃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꽃은 울긋불긋한 꽃의 입술을 열어 향기 가득한 꽃의 안부를 건넨다. 그 향기에 취해 시적 화자는 「찌뿌드드한 마음/ 금세 꽃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어미 꽃의 당부가 향기로 대물림되어 내려왔는지 꽃은 향기로 타인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며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고도의 전략 같기도 한 그 향기 덕분에 사람들은 꽃과 향기를 좋아하고 숭배한다. 그런 마음을 시적 화자는 「마음 허전하면 언제든 들려요/ 양화의 귓속말처럼 정겹다」고 표현하고 있다. 꽃에 담긴 그 다정한 위로 때문에 시적 화자는 꽃을 가까이한다. 「괴롭고 성가실 때도/ 웃고 살아요/ 제라늄이 빙그레」 보내는 위안에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시의 전반부는 꽃들이 보여 주는 밝은 생명력이 인간의 허허로운 마음을 채워 주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시의 후반부는 구체적인 식물의 이름을 빌려 분노와 괴로움을 다스리는 지혜를 건네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자연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를 통해 일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를 아름답게 강조하고 있다.
마이산 자락 돌탑
수년 지난 지금도
늠름하게 서 있다
비바람 불어도
눈보라 몰아쳐도
의연하게 서 있다
먹구름 안아 준 비움
그보다
안정을 위하여
흔들림 없이 견뎌온 당신
발부리에 채이고
버림받던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 줄이야.
- 「굄돌」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마이산 돌탑의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인내와 존재의 가치를 유려하게 노래하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馬耳山에 위치한 마이산 탑사의 돌탑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풍에도 무너지지 않아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이산 돌탑은 1885년경 25세의 이갑용 처사가 30여 년에 걸쳐 맨손으로 80여 개의 돌탑을 쌓아 올린 것으로, 설계도 없이 오직 정성과 신념으로 완성되었다. 시멘트 같은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돌을 맞물려 쌓았음에도 태풍과 강풍을 견뎌낸다. 돌탑에는 구국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백성을 구제하고 만민의 죄를 속죄하겠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 염원의 마음을 시적 화자는 「먹구름 안아 준 비움/ 그보다/ 안정을 위하여/ 흔들림 없이 견뎌온 당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낱개로 흩어진 돌처럼 개인별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없다. 하지만 그 개인이 모여 한목소리로 외치면 힘이 생긴다. 마이산 돌탑에는 그와 같은 큰 힘을 만들어 혼란스러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시적 화자는 이를 「발부리에 채이고/ 버림받던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 줄」 이제야 알았다며 탄복하고 있다. 마이산 돌탑의 염원이 러우전과 중동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작금의 현실에도 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적 화자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는 돌탑의 모습을 내면의 비움과 평온을 실천하는 숭고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발치에 채이던 존재가 소중한 근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사소해 보이는 존재라도 묵묵히 시련을 견뎌낼 때 세상을 지탱하는 늠름한 숭고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밤늦게 서당 공부하고 집에 와
윗목에 쒀 놓은 메주 보자마자
몰래 손가락 수저로 파먹고 돌려놓았던 일
아침에 엄마 목소리
어젯밤 서생원이 메주를 갉아먹었네
아들은 시치미 떼고 밖으로 나갔다.
- 「가난이 죄이련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가난한 시절의 해학적인 추억을 통해 가족 간의 섬세한 사랑과 이해를 그려내고 있다. 해학(諧謔, Humor)은 일상적인 삶의 모순이나 어리석음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표현 기법으로, 대상에 대한 동정과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풍자가 대상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과 달리, 해학은 비판 대상에 대한 연민을 포함하여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황이나 인물의 특징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혹은 비틀어서 표현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인물을 다소 어리석거나 어수룩하게 묘사하여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 시의 서생원이 그와 같다. 서생원鼠生員은 쥐를 의인화하여 대접하거나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성씨 '서徐'를 쓰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한자로 쥐 서鼠 자에 과거 합격자를 뜻하는 날 생生, 인원 원員 자를 쓴다. 현대 표현인 '바선생(바퀴벌레)'의 원조 격인 단어이다. 시적 화자는 「어린 시절 밤늦게 서당 공부하고 집에 와/ 윗목에 쒀 놓은 메주 보자마자/ 몰래 손가락 수저로 파먹고 돌려놓았」다. 가난한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귀했기에 엄마 몰래 메주를 먹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이 모든 것을 묻지 않고 「어젯밤 서생원이 메주를 갉아먹었네」라는 말만 한다. 궁핍한 그 시절의 아픔과 아들의 행동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엄마. 가난한 그 시절을 그렇게 해학으로 건넌 엄마와 시적 화자가 멋지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메주를 몰래 파먹은 어린 아들의 순수한 장난기가 전반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후반부는 이를 쥐의 소행으로 돌리는 어머니의 너그러운 배려가 결말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시적 화자는 아들의 허물을 직접 꾸짖지 않고 모르는 척 덮어 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통해, 결핍 속에서도 피어나는 가족 공동체의 따스한 온기와 사랑을 아름답게 시적 형상화해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온 바처럼, 고대륜 시인의 시들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 삶의 태도와 자연의 섭리를 성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국경일의 퇴색된 의미나 아픈 아내를 돌보는 고단함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의리와 감사를 발견하며, 계절의 변화와 자연물로부터 생명력과 치유의 메시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기후 위기와 전쟁 같은 거대 담론을 인간의 업보와 지혜의 필요성으로 연결 짓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소박한 추억과 베란다 꽃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평화와 의연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대륜 시인의 시들은 주변의 존재들을 깊이 있게 관찰함으로써 얻게 되는 성숙한 삶의 통찰과 따스한 위로를 이미지 구현과 상징의 활용과 낯설게 하기와 감각적 시적 형상화를 통하여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제3, 제4시집을 발간하여, 더욱 섬세한 감성의 세계, 더욱 감동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독자에게 선보이기를 소망해 본다. 여생 동안 묵묵히 사물을 관찰하고 새롭게 해석하여 이를 시적 형상화하고, 어느 시기에 시집으로 발간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늘 열심히 늘 성실하게 살아가는 고대륜 시인의 모습, 특히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헌신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고 존경스럽다.
목차
목차
머리말_ 작가의 말(저자 고대륜) 05
축 시_ 고대륜 시인(교수 박덕은) 06
제1부
꽃들은 말한다
꽃들은 말한다 16
고비 17
기다림 18
베개의 말 19
오늘도 좋은 아침 20
쇠제비갈매기 21
위풍당당 아줌마 22
3·1절에 태극기 내걸고 24
대한大寒 25
세상에 이런 일이 26
손녀의 사랑 27
베란다 제라늄 28
왜 이러세요 29
외손녀 집들이 30
대나무 비계의 하소연 31
천릿길도 32
쌍둥이 스펀지 베개 34
환희 몰고 온 저 달처럼 35
베풂 36
잊지 못하네 37
오늘 만날까 38
한글, 피어나다 39
노송을 기리다 40
저 높은 곳을 향하여 41
당신 따르리 42
자나 깨나 당신 43
아내와 함께 44
장대비 46
아버지의 추억 47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2부
산다는 건
산다는 건 50
사연이 뭐길래 51
딴전 벌이다가 52
기적 53
고요 내려앉은 새벽 54
낮은 삶 55
어처구니없는 선거 56
모란 57
좋은 아침 58
오판 60
명심불망 61
봄이 오나 보다 62
위기·1 63
위기·2 64
존댓말 65
그날처럼 66
보고 싶어요 67
향수 68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69
눈이 내린다 70
너 때문이야 71
코앞 임계점 72
초등학교 동창생들 73
은행목 74
처방전 어디 없을까 75
화장의 의미 76
어머니 77
헐뚝한 인생 78
거미의 지혜 79
제3부
가난이 죄이련가
가난이 죄이련가 82
하마터면·1 83
하마터면·2 84
지킴이 85
신문 86
큰일 날 뻔했다 87
엄마 그리워 88
일어나라 89
어디쯤 왔나 90
마음의 창 91
고향 잔등 92
그리움 93
숙명 94
4남매 꽃 95
스승의 날에 96
무궁화 유감 98
마음먹기에 달렸다 99
어제와 오늘 100
아내가 걸었으면 102
유리벽 103
봄이 온다 104
울 어머니 105
두 다리로 서는 이유 106
단비·1 107
단비·2 108
굄돌 109
세배 받으며 110
소낙비 111
문지기 후손은 말한다 112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4부
당신의 버팀목 되어
당신의 버팀목 되어 114
어젯밤 115
새벽 4시 딱 116
자목련 117
당신이 거동할 때 118
튤립 119
혹시라도 120
사랑 121
정말 기쁜 날 122
산소 123
제라늄 124
눈이 왔다 125
Evezary 126
원단에 해님 나르샤 127
꾀꼬리 128
봄비 기다리며 129
쥐똥나무꽃 130
매미 131
갈대 132
덕 133
포기란 없다 134
매가 날고 있다 136
버리자 137
중학생 학도병 이야기 138
감사합니다 140
청바지 141
봄비·1 142
봄비·2 143
들국화 144
제5부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 아래서 146
느티나무 형제 147
느티나무 148
고맙소 149
징후 150
후회 151
질서 무너지면 152
무궁화 153
모닥불 154
한글 유감 155
그대 156
헌법을 달았다 157
근심 걱정 158
아침에 우는 새 159
서해대교 160
전쟁만은 안 돼 162
동원령 164
한글날에 165
아직도 166
산불 167
월드컵 16강 진출 168
임은 어디에 169
가뭄·1 170
가뭄·2 171
여보 지팡이 172
기회를 잡아라 173
인생 174
동행 175
천둥 번개 치는 날 176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6부
사색의 바람
사색의 바람 178
숲의 말 179
현충일 추념식 유감 180
거울 속 아버지 181
깨복쟁이 친구야 182
오호 통재라 183
나들이 184
거미 185
서설瑞雪 186
만추의 밤 187
왜 울음이 나는 걸까 188
시간표 190
문패 192
자주국방 193
한 걸음 한 걸음 194
당신만은 196
연꽃을 보며 197
위안·1 198
위안·2 199
의지 200
봄 201
5·18 42주년에 부쳐 202
어처구니 203
회상 204
그리운 가을 205
어이할꼬 206
그 어머니에 그 딸 208
허리 아픈 와송臥松 210
새해 아침 211
평 설_ 고대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213
- 시인 박덕은(문학박사, 문학평론가, 前전남대 교수)
축 시_ 고대륜 시인(교수 박덕은) 06
제1부
꽃들은 말한다
꽃들은 말한다 16
고비 17
기다림 18
베개의 말 19
오늘도 좋은 아침 20
쇠제비갈매기 21
위풍당당 아줌마 22
3·1절에 태극기 내걸고 24
대한大寒 25
세상에 이런 일이 26
손녀의 사랑 27
베란다 제라늄 28
왜 이러세요 29
외손녀 집들이 30
대나무 비계의 하소연 31
천릿길도 32
쌍둥이 스펀지 베개 34
환희 몰고 온 저 달처럼 35
베풂 36
잊지 못하네 37
오늘 만날까 38
한글, 피어나다 39
노송을 기리다 40
저 높은 곳을 향하여 41
당신 따르리 42
자나 깨나 당신 43
아내와 함께 44
장대비 46
아버지의 추억 47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2부
산다는 건
산다는 건 50
사연이 뭐길래 51
딴전 벌이다가 52
기적 53
고요 내려앉은 새벽 54
낮은 삶 55
어처구니없는 선거 56
모란 57
좋은 아침 58
오판 60
명심불망 61
봄이 오나 보다 62
위기·1 63
위기·2 64
존댓말 65
그날처럼 66
보고 싶어요 67
향수 68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69
눈이 내린다 70
너 때문이야 71
코앞 임계점 72
초등학교 동창생들 73
은행목 74
처방전 어디 없을까 75
화장의 의미 76
어머니 77
헐뚝한 인생 78
거미의 지혜 79
제3부
가난이 죄이련가
가난이 죄이련가 82
하마터면·1 83
하마터면·2 84
지킴이 85
신문 86
큰일 날 뻔했다 87
엄마 그리워 88
일어나라 89
어디쯤 왔나 90
마음의 창 91
고향 잔등 92
그리움 93
숙명 94
4남매 꽃 95
스승의 날에 96
무궁화 유감 98
마음먹기에 달렸다 99
어제와 오늘 100
아내가 걸었으면 102
유리벽 103
봄이 온다 104
울 어머니 105
두 다리로 서는 이유 106
단비·1 107
단비·2 108
굄돌 109
세배 받으며 110
소낙비 111
문지기 후손은 말한다 112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4부
당신의 버팀목 되어
당신의 버팀목 되어 114
어젯밤 115
새벽 4시 딱 116
자목련 117
당신이 거동할 때 118
튤립 119
혹시라도 120
사랑 121
정말 기쁜 날 122
산소 123
제라늄 124
눈이 왔다 125
Evezary 126
원단에 해님 나르샤 127
꾀꼬리 128
봄비 기다리며 129
쥐똥나무꽃 130
매미 131
갈대 132
덕 133
포기란 없다 134
매가 날고 있다 136
버리자 137
중학생 학도병 이야기 138
감사합니다 140
청바지 141
봄비·1 142
봄비·2 143
들국화 144
제5부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 아래서 146
느티나무 형제 147
느티나무 148
고맙소 149
징후 150
후회 151
질서 무너지면 152
무궁화 153
모닥불 154
한글 유감 155
그대 156
헌법을 달았다 157
근심 걱정 158
아침에 우는 새 159
서해대교 160
전쟁만은 안 돼 162
동원령 164
한글날에 165
아직도 166
산불 167
월드컵 16강 진출 168
임은 어디에 169
가뭄·1 170
가뭄·2 171
여보 지팡이 172
기회를 잡아라 173
인생 174
동행 175
천둥 번개 치는 날 176
고대륜 제2시집 가난이 죄이련가
제6부
사색의 바람
사색의 바람 178
숲의 말 179
현충일 추념식 유감 180
거울 속 아버지 181
깨복쟁이 친구야 182
오호 통재라 183
나들이 184
거미 185
서설瑞雪 186
만추의 밤 187
왜 울음이 나는 걸까 188
시간표 190
문패 192
자주국방 193
한 걸음 한 걸음 194
당신만은 196
연꽃을 보며 197
위안·1 198
위안·2 199
의지 200
봄 201
5·18 42주년에 부쳐 202
어처구니 203
회상 204
그리운 가을 205
어이할꼬 206
그 어머니에 그 딸 208
허리 아픈 와송臥松 210
새해 아침 211
평 설_ 고대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213
- 시인 박덕은(문학박사, 문학평론가, 前전남대 교수)
저자
저자
고대륜 - 아호 : 오봉(五峯)
- 출생 : 신안 도초
- 학력 : 목포교육대학 졸업(1967)
- 경력 : 목포 신흥초등학교 교장 퇴임(2000)
┃작품활동 및 수상┃
- 등단 : 계간 《동산문학》 신인상(2018)
- 이력 :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서석문학, 한실문예창작 회원, 동산문학작가회 이사
- 수상 : 제1회 환경백일장 우수상(광주시인협회, 2008), 문학공간 디카시문학상 대상(2022), 오은문학 제3회 디카시문학상 대상(2022)
┃저서┃
- 디카시집 『아내바라기』(2022)
- 자서전 『바르게 살어리랏다』(2024)
- 시집 『가난이 죄이련가』(2026)
주 소 : (우61673) 광주광역시 남구 용대로 131, 206동 1006호(방림동, 라인효친아파트)
Mobile : 010-3613-0003
- 출생 : 신안 도초
- 학력 : 목포교육대학 졸업(1967)
- 경력 : 목포 신흥초등학교 교장 퇴임(2000)
┃작품활동 및 수상┃
- 등단 : 계간 《동산문학》 신인상(2018)
- 이력 :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서석문학, 한실문예창작 회원, 동산문학작가회 이사
- 수상 : 제1회 환경백일장 우수상(광주시인협회, 2008), 문학공간 디카시문학상 대상(2022), 오은문학 제3회 디카시문학상 대상(2022)
┃저서┃
- 디카시집 『아내바라기』(2022)
- 자서전 『바르게 살어리랏다』(2024)
- 시집 『가난이 죄이련가』(2026)
주 소 : (우61673) 광주광역시 남구 용대로 131, 206동 1006호(방림동, 라인효친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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