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다섯 평 검사실에서 만난 나의 피해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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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아동성폭력 공인전문검사, '부산 돌려차기 사건' 수사검사 김세희 에세이
★검찰총장표창, 법무부장관표창 수상
★이원석 前 검찰총장, 곽아람 기자, 김진주 작가 강력 추천
성폭력 전담 검사가 기록한 사건 너머의 사람들
다섯 평 검사실에서 마주한 이들의 잊지 못할 얼굴을 그리며
온 마음을 담아 전하는 진심
15년 2개월, 5,544일 동안 대한민국 검사로 살아온 전(前) 성폭력 전담 검사 김세희의 에세이. 저자는 2010년 검사로 임관하여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19,500건의 형사사건을 직접 처리했다. 그러나 그는 19,500건을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지난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대신 검사실을 떠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 피해자들과 피의자들의 안녕을 그리며, 사건을 판단하며 망설였던 순간, 끝내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을 다시 불러온다.
이 책에 담긴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 살아가는 집과 학교, 골목과 직장, 가정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그 가운데 친족 성폭력 피해자, 아동·청소년 피해자, 장애인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처럼 법의 보호가 절실하지만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중심에 선다. 상처 입고 절망에 빠진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마지막까지 듣는 사람이고자 했던 저자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억울함을 씻어주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한 시간을 고백하며, 사건 이후에도 계속될 삶까지 지키고자 했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한다.
판결문에 남지 않는 표정과 침묵,
성폭력 사건의 '법정 밖 진실'을 기록한 현장 에세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이 떠난 자리에 마음이 남아 먹먹한 가슴이 늘 무거웠다. 그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 슬픈 눈빛이 내 마음에 화살처럼 박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겐 그들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가지 마라"고 말할 자격과 능력이 없었다. (410~411쪽)
법정에 도달한 성폭력 사건은 증거와 법리의 언어가 된다. 판결문에는 범죄사실과 적용 법조가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까지 거쳐온 시간, 조사 과정에서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한 이유, 눈빛과 침묵, 앞으로 계속될 삶은 담기지 않는다. 저자는 검사로서, 사건을 통과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기록한다.
저자가 처음 만난 성소수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성 혐오가 생겼다는 피해자의 고백이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찔린 것처럼" 아팠노라 회상한다(266쪽). 저자가 가장 오래 품어온 피해자 역시 친족 성폭력 피해자였다. 의붓아버지에 대한 피해 진술을 거부한, 신출내기 검사 시절 놓쳐버린 그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며 "그래도 말이야, 너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너의 의견이랑 상관없이 화를 내주는 어른이 한 명은 있어야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지 않겠니"라고 마음을 전한다(31쪽). 이처럼 '법정 밖' 세상에는 재판 단계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위태로운 사건들이 허다하다. 많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정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양가감정,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족들의 회유 등으로 진술 자체의 어려움을 겪는다(39쪽).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자신의 피해를 법률적 언어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 자체를 의심받기도 하고, 법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70쪽). 일부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이 범죄라고 인지하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피해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한다(52쪽).
이러한 법정 밖 진실을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품고 지켜보며, 저자는 사건의 법적 처리 후에 이어질 피해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평안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한다. 기소와 불기소, 구형과 항소라는 법적 처리로는 지킬 수 없는 것들까지 지켜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와 마음을 가장 마지막까지 듣는 일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사람이 있기에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검사 김세희가 지켜낸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가해자를 향하여 "나 말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던 저자는 수사 과정에서 사건의 성폭력 정황을 밝히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김진주 작가는 사경을 헤매는 자신을 위해 분노해 준 저자에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편지를 남긴다(54쪽).
확신보다 질문을 품고
타인의 삶을 판단했던 고민의 시간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사건과 상관이 없는, 어떻게 보면 또 상관이 있을 수 있는 피의자와 고소인의 삶을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 검사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피의자나 고소인의 비밀의 문에 접근하는 나를 보면서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 건가요?'라고 반문하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277쪽)
검사라고 하면 흔히 단호한 표정으로 범죄를 추궁하고 중형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을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던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펼쳐 보이는 장면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지, 처벌이 피해자를 위한 최선이 맞는지까지 끊임없이 질문했던 나날들이다. 검사는 기록을 통해 타인의 삶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당한, 혹은 저지른 범죄행위를 판단해야 한다. 저자는 그 삶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내게 온 비밀들을 내 마음속 일기장에 적으며 이를 발설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사건에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엄벌에 앞서 '두고두고 고민'하는 검사였다(278쪽).
저자는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들을 '검사'이자 '사람'으로서 마주하기 위해 고민한다. 저자는 "공부만 조금 할 줄 알던 내가 세상을 배우고 혜안을 넓힌 것은 오로지 내가 만났던 피해자들과 피의자들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405쪽). 저자에게 그들은 '피해자'나 '피의자'라는 지위로만 머물지 않는, "검사실 밖 삶의 주머니와 함께" 검사실을 방문해 세상에 대해서 들려준 제각각의 '사람들'이었다(16쪽). 한 인간의 삶이 몇 줄의 문장으로, '범죄사실'로 정리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온 이들의 내밀한 삶 앞에서, 저자는 확신보다 질문을 품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마지막까지 들으며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어루만질 뿐만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위해서는 그가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반성의 기회가 필요한 이에게는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저자는 초임 검사 시절, 여럿이 자전거를 훔쳐 특수절도죄로 송치된 얇디얇은 기록 속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휩쓸린듯한 어리숙한 낌새를 발견한다. 간단한 사건이지만 고민 끝에 "직접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안심이 될 듯"한 그 소년을 소환하고, 결국 소년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받아낸다. 이후 우연히 방문한 주유소에서 쑥스러운 듯 자신을 돕는 친절한 직원이 바로 과거의 그 소년임을 알아챈 저자는, 햇살 아래 어엿한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를 응원한다(177쪽).
'검사 김세희'에서 다시 '인간 김세희'로,
사랑했던 직업과 함께 성장하고 이별하기까지
마음 아팠던 것은, 내가 검사라는 나의 직업을 어느 순간부터 직업이 아닌 사명으로 자각하고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품은 검사의 모습을 향해 나는 조금씩 전진하며 성장했었다. 그렇게 나는 검사가 되었다. (303쪽)
이 책은 '검사 김세희'의 현장 에세이인 동시에 '인간 김세희'의 성장담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되었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검사를 소명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점은 그저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하나의 '직역'"에 불과했다(291쪽). 그런 그가 '검사'라는 명함 하나를 달랑 들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수십 년간 책상에 앉아 시험을 치르며 세상과 단절된 채" 공부만 하며 살아온 자신에게는 피의자와 고소인 사이에서 실랑이하는 것이 힘들고 버거웠다고 한다. 퇴근 후 TV 홈쇼핑 방송만 들여다보며 VVIP가 되기도 했으나, 피의자의 물건을 홈쇼핑에서 봤다는 사실을 인식한 자신을 자각하고 그만두기도 했던, '마음을 붙이지 못한 날들'을 고백한다(293쪽).
그런 저자가 어떤 '얇은 사건 기록'을 두고 선배 검사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처분이 누군가의 삶에 미칠 결과를 체감했을 때 직업은 소명이 되었다. 고등학생 피해자를 추행한 피의자에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려 했으나, 부장은 피의자가 피해자의 나이를 인식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피해자가 입었던 옷까지 제출했지만 부장과 선배 검사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피의자가 너무 나쁘지 않나요?"라고 감정이 앞선 저자에게 선배는 적용 법률과 피의자를 향한 도덕적 비난은 다른 문제라고 알려준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을 처리하는 법과 '얇은 사건'도 허투루 처리하지 않는 법을 선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며 배웠음을, 그때 "검사라는 직업이 입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마음속에 박혀와 "인생의 한 페이지를 검사로서 써 내려"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300쪽). 이후 저자는 검사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동기와 메신저로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봐"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고, 선후배 검사들과 의지하며 검찰이라는 조직 안에서 미제 사건과 야근으로 가득한 생활을 함께 버틴다.
그러나 여성 검사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저자는 월요일 새벽 집을 나서면 금요일 밤에야 출근지에서 돌아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아도 즉시 갈 수 없었다. 육아시간을 사용하던 어느 날에는 결재가 반려되자 아이를 데리고 다시 검찰청으로 향한다. "마른 입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며 일을 마치고 나온 저자에게 아이가 묻는다.
"엄마 뭐 했어?"
"잘못한 것 고쳤어."
"에이, 한 번에 잘하지 그랬어."
그날 저자는 "검사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것 같은 묘한 불쾌감과 서글픔"을 떨치지 못한다(336쪽). 좋은 검사이자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여성들이 자신을 몰아세우며 버티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다고 말한다(340쪽). 결국 2024년 8월 어느 월요일 새벽 출근 기차에서 처음으로 떠올린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영원한 퇴근'이라는 결심에 다다른다. "내가 검사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만큼 검사라는 직업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갑자기 사시나무처럼 외로워"진 것이다(397쪽). '책임감이라는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사는 생활, 아이와 떨어져 보낸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는 마침내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인 사직을 고한다. 그러나 "검사로서 아낌없이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검사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미련 없이 그 시절을 내 마음속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고,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성장했으며, 직업을 떠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음을 담담히 밝힌다(407쪽).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지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을 통해 평범한 한 여성이 검사라는 이름으로 나서 주어진 일을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뇌하던 나날들을 고백하고 싶다. 내가 일선에서 사건을 처리하며 느꼈던 고민을 세상에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다. (410쪽)
저자의 책임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사실 책상을 떠나와서도 여전히 그 책상에서 마주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있는 저자는 이제는 변호사로서, 새롭게 사람의 곁에 서서 기억 속 피의자와 피해자들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법은 모든 피해를 원상회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법을 집행하는 '인간'의 태도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누군가의 말을 믿고, 함께 분노하고, 혼자 싸우게 두지 않는 행위는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연대'를 만든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저자가 "가해자를, 그리고 범죄를 단죄하는 칼잡이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생명을 살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고 세상에 당당히 나올 수 있도록 한 '활인검(活人劍)'의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탁월한 피해자》를 쓴 곽아람 기자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을 그의 발언, 피해자를 지키고 불의에 지지 않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법정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상처 입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마주한 낭떠러지에서 '법'으로써 그들이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는 다리를 놓고자 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고, 원칙과 인간다움을 모두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평범한 검사로서 평범한 국민들의 사건을 맡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고백은, 제도라는 창을 통해서는 다 헤아리지 못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곱씹게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씨앗이 되어 우리가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검찰총장표창, 법무부장관표창 수상
★이원석 前 검찰총장, 곽아람 기자, 김진주 작가 강력 추천
성폭력 전담 검사가 기록한 사건 너머의 사람들
다섯 평 검사실에서 마주한 이들의 잊지 못할 얼굴을 그리며
온 마음을 담아 전하는 진심
15년 2개월, 5,544일 동안 대한민국 검사로 살아온 전(前) 성폭력 전담 검사 김세희의 에세이. 저자는 2010년 검사로 임관하여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19,500건의 형사사건을 직접 처리했다. 그러나 그는 19,500건을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지난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대신 검사실을 떠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 피해자들과 피의자들의 안녕을 그리며, 사건을 판단하며 망설였던 순간, 끝내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을 다시 불러온다.
이 책에 담긴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 살아가는 집과 학교, 골목과 직장, 가정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그 가운데 친족 성폭력 피해자, 아동·청소년 피해자, 장애인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처럼 법의 보호가 절실하지만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중심에 선다. 상처 입고 절망에 빠진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마지막까지 듣는 사람이고자 했던 저자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억울함을 씻어주기 위해 분투했던 치열한 시간을 고백하며, 사건 이후에도 계속될 삶까지 지키고자 했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한다.
판결문에 남지 않는 표정과 침묵,
성폭력 사건의 '법정 밖 진실'을 기록한 현장 에세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면 그들이 떠난 자리에 마음이 남아 먹먹한 가슴이 늘 무거웠다. 그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 슬픈 눈빛이 내 마음에 화살처럼 박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겐 그들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가지 마라"고 말할 자격과 능력이 없었다. (410~411쪽)
법정에 도달한 성폭력 사건은 증거와 법리의 언어가 된다. 판결문에는 범죄사실과 적용 법조가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까지 거쳐온 시간, 조사 과정에서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한 이유, 눈빛과 침묵, 앞으로 계속될 삶은 담기지 않는다. 저자는 검사로서, 사건을 통과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기록한다.
저자가 처음 만난 성소수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성 혐오가 생겼다는 피해자의 고백이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찔린 것처럼" 아팠노라 회상한다(266쪽). 저자가 가장 오래 품어온 피해자 역시 친족 성폭력 피해자였다. 의붓아버지에 대한 피해 진술을 거부한, 신출내기 검사 시절 놓쳐버린 그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며 "그래도 말이야, 너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너의 의견이랑 상관없이 화를 내주는 어른이 한 명은 있어야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지 않겠니"라고 마음을 전한다(31쪽). 이처럼 '법정 밖' 세상에는 재판 단계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위태로운 사건들이 허다하다. 많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정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양가감정,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족들의 회유 등으로 진술 자체의 어려움을 겪는다(39쪽).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자신의 피해를 법률적 언어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 자체를 의심받기도 하고, 법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70쪽). 일부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이 범죄라고 인지하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피해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한다(52쪽).
이러한 법정 밖 진실을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품고 지켜보며, 저자는 사건의 법적 처리 후에 이어질 피해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평안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한다. 기소와 불기소, 구형과 항소라는 법적 처리로는 지킬 수 없는 것들까지 지켜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와 마음을 가장 마지막까지 듣는 일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사람이 있기에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검사 김세희가 지켜낸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가해자를 향하여 "나 말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쳤던 저자는 수사 과정에서 사건의 성폭력 정황을 밝히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김진주 작가는 사경을 헤매는 자신을 위해 분노해 준 저자에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편지를 남긴다(54쪽).
확신보다 질문을 품고
타인의 삶을 판단했던 고민의 시간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사건과 상관이 없는, 어떻게 보면 또 상관이 있을 수 있는 피의자와 고소인의 삶을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 검사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피의자나 고소인의 비밀의 문에 접근하는 나를 보면서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 건가요?'라고 반문하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277쪽)
검사라고 하면 흔히 단호한 표정으로 범죄를 추궁하고 중형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을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던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펼쳐 보이는 장면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하는지, 처벌이 피해자를 위한 최선이 맞는지까지 끊임없이 질문했던 나날들이다. 검사는 기록을 통해 타인의 삶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당한, 혹은 저지른 범죄행위를 판단해야 한다. 저자는 그 삶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내게 온 비밀들을 내 마음속 일기장에 적으며 이를 발설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사건에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엄벌에 앞서 '두고두고 고민'하는 검사였다(278쪽).
저자는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들을 '검사'이자 '사람'으로서 마주하기 위해 고민한다. 저자는 "공부만 조금 할 줄 알던 내가 세상을 배우고 혜안을 넓힌 것은 오로지 내가 만났던 피해자들과 피의자들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405쪽). 저자에게 그들은 '피해자'나 '피의자'라는 지위로만 머물지 않는, "검사실 밖 삶의 주머니와 함께" 검사실을 방문해 세상에 대해서 들려준 제각각의 '사람들'이었다(16쪽). 한 인간의 삶이 몇 줄의 문장으로, '범죄사실'로 정리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온 이들의 내밀한 삶 앞에서, 저자는 확신보다 질문을 품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마지막까지 들으며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어루만질 뿐만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위해서는 그가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반성의 기회가 필요한 이에게는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저자는 초임 검사 시절, 여럿이 자전거를 훔쳐 특수절도죄로 송치된 얇디얇은 기록 속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휩쓸린듯한 어리숙한 낌새를 발견한다. 간단한 사건이지만 고민 끝에 "직접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안심이 될 듯"한 그 소년을 소환하고, 결국 소년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받아낸다. 이후 우연히 방문한 주유소에서 쑥스러운 듯 자신을 돕는 친절한 직원이 바로 과거의 그 소년임을 알아챈 저자는, 햇살 아래 어엿한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를 응원한다(177쪽).
'검사 김세희'에서 다시 '인간 김세희'로,
사랑했던 직업과 함께 성장하고 이별하기까지
마음 아팠던 것은, 내가 검사라는 나의 직업을 어느 순간부터 직업이 아닌 사명으로 자각하고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품은 검사의 모습을 향해 나는 조금씩 전진하며 성장했었다. 그렇게 나는 검사가 되었다. (303쪽)
이 책은 '검사 김세희'의 현장 에세이인 동시에 '인간 김세희'의 성장담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되었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검사를 소명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점은 그저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하나의 '직역'"에 불과했다(291쪽). 그런 그가 '검사'라는 명함 하나를 달랑 들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수십 년간 책상에 앉아 시험을 치르며 세상과 단절된 채" 공부만 하며 살아온 자신에게는 피의자와 고소인 사이에서 실랑이하는 것이 힘들고 버거웠다고 한다. 퇴근 후 TV 홈쇼핑 방송만 들여다보며 VVIP가 되기도 했으나, 피의자의 물건을 홈쇼핑에서 봤다는 사실을 인식한 자신을 자각하고 그만두기도 했던, '마음을 붙이지 못한 날들'을 고백한다(293쪽).
그런 저자가 어떤 '얇은 사건 기록'을 두고 선배 검사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처분이 누군가의 삶에 미칠 결과를 체감했을 때 직업은 소명이 되었다. 고등학생 피해자를 추행한 피의자에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려 했으나, 부장은 피의자가 피해자의 나이를 인식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피해자가 입었던 옷까지 제출했지만 부장과 선배 검사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피의자가 너무 나쁘지 않나요?"라고 감정이 앞선 저자에게 선배는 적용 법률과 피의자를 향한 도덕적 비난은 다른 문제라고 알려준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을 처리하는 법과 '얇은 사건'도 허투루 처리하지 않는 법을 선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며 배웠음을, 그때 "검사라는 직업이 입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마음속에 박혀와 "인생의 한 페이지를 검사로서 써 내려"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300쪽). 이후 저자는 검사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동기와 메신저로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봐"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고, 선후배 검사들과 의지하며 검찰이라는 조직 안에서 미제 사건과 야근으로 가득한 생활을 함께 버틴다.
그러나 여성 검사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저자는 월요일 새벽 집을 나서면 금요일 밤에야 출근지에서 돌아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아도 즉시 갈 수 없었다. 육아시간을 사용하던 어느 날에는 결재가 반려되자 아이를 데리고 다시 검찰청으로 향한다. "마른 입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며 일을 마치고 나온 저자에게 아이가 묻는다.
"엄마 뭐 했어?"
"잘못한 것 고쳤어."
"에이, 한 번에 잘하지 그랬어."
그날 저자는 "검사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것 같은 묘한 불쾌감과 서글픔"을 떨치지 못한다(336쪽). 좋은 검사이자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여성들이 자신을 몰아세우며 버티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자신도 그렇게 살았다고 말한다(340쪽). 결국 2024년 8월 어느 월요일 새벽 출근 기차에서 처음으로 떠올린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영원한 퇴근'이라는 결심에 다다른다. "내가 검사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만큼 검사라는 직업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갑자기 사시나무처럼 외로워"진 것이다(397쪽). '책임감이라는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사는 생활, 아이와 떨어져 보낸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는 마침내 "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인 사직을 고한다. 그러나 "검사로서 아낌없이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검사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미련 없이 그 시절을 내 마음속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고,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성장했으며, 직업을 떠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음을 담담히 밝힌다(407쪽).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지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을 통해 평범한 한 여성이 검사라는 이름으로 나서 주어진 일을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뇌하던 나날들을 고백하고 싶다. 내가 일선에서 사건을 처리하며 느꼈던 고민을 세상에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다. (410쪽)
저자의 책임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사실 책상을 떠나와서도 여전히 그 책상에서 마주한 얼굴들을 기억하고 있는 저자는 이제는 변호사로서, 새롭게 사람의 곁에 서서 기억 속 피의자와 피해자들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법은 모든 피해를 원상회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법을 집행하는 '인간'의 태도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누군가의 말을 믿고, 함께 분노하고, 혼자 싸우게 두지 않는 행위는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연대'를 만든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저자가 "가해자를, 그리고 범죄를 단죄하는 칼잡이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생명을 살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고 세상에 당당히 나올 수 있도록 한 '활인검(活人劍)'의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탁월한 피해자》를 쓴 곽아람 기자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을 그의 발언, 피해자를 지키고 불의에 지지 않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 법정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상처 입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마주한 낭떠러지에서 '법'으로써 그들이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는 다리를 놓고자 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고, 원칙과 인간다움을 모두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평범한 검사로서 평범한 국민들의 사건을 맡아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고백은, 제도라는 창을 통해서는 다 헤아리지 못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곱씹게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씨앗이 되어 우리가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목차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1 성폭력 사건들의 진실
엄마의 행복을 걱정하는 딸들 ? 되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딸들 ? 지킬 앤 하이드 ?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나 ? 놀이터의 그 아이 ? 그날의 분위기 ? 술은 죄가 없다 ? 나쁜 어른들과 얼음 ? 사랑의 끝, 시작되는 공포 ? 판도라의 상자, 휴대전화 ? 성폭력 고소 사건의 진실 ? 왜 웃으면서 살아요?
2 사건 너머 마주한 얼굴들
사랑한다면 변제 ? 자전거 도둑 ? 여미새와 어미새 ? 하얀 가루의 유혹 ? 디스코 팡팡 ? 가출 패밀리 ? 우리 아이는 죄가 없어요 ? 한 칼에 담긴 증오 ? 나는 거짓말을 잘해요 ? 주민등록번호 1의 비밀 ? 드릴 말씀이 있어요 ? 마지막 승부
3 검찰청 사람들
나는 왜 검사가 되었나 ? 인간 김세희 vs 검사 김세희 ? 검사들의 하루 ? 여검사들은 어떻게 사는가 ? 검사들의 회식 ? 검사들의 인사이동 ? 검사들의 메신저 ?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직원들 ? 로또 같은 부장님 ? 내가 사직원을 제출하던 날
에필로그: 다시 인간 김세희
프롤로그
1 성폭력 사건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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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다시 인간 김세희
저자
저자
김세희 전 성폭력 전담 검사. 피해자의 목소리를 가장 마지막까지 듣는 한 사람이고자 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이들과 절망에 빠진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던 15년의 현장을 담고 있다.
김해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3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2010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관하여 대구지검, 김천지청, 서울남부지검, 부산지검,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2015년 대검찰청으로부터 아동성폭력 공인전문검사(2급) 인증을 받았고,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며 피해자 보호에 힘썼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수사에서는 생사를 다투던 피해자를 위해 성폭력 정황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 2020년 검찰총장표창, 2024년 법무부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영국 퀸메리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를 끝으로 2025년 4월 검찰에서 퇴직했다. 현재는 변호사로서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이들을 향한 마음은 지금도 잊지 않는다.
김해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39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2010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관하여 대구지검, 김천지청, 서울남부지검, 부산지검,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2015년 대검찰청으로부터 아동성폭력 공인전문검사(2급) 인증을 받았고,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며 피해자 보호에 힘썼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수사에서는 생사를 다투던 피해자를 위해 성폭력 정황을 밝히는 데 앞장섰다. 2020년 검찰총장표창, 2024년 법무부장관표창을 수상했다. 영국 퀸메리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를 끝으로 2025년 4월 검찰에서 퇴직했다. 현재는 변호사로서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이들을 향한 마음은 지금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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