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초원의 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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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무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오래 침묵했던 김준식 작가의 소설 『바람과 초원의 딸』 제2권. 묻히거나 숨겨져 있지만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찾던 저자는 한 인물을 만난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을 여인, 혹은 려인(麗人)이다. 바람과 초원의 딸. 그녀는 고려의 착한 딸이고 정다운 연인이고 살가운 몸종이고 위대한 정복자이자 어머니였다. 우리가 이승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여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의 중앙에서 경세가의 모든 자질과 고난과 성취와 시대적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요즘 드라마로 꽤 알려진 기황후다.
저자는 기황후를 흥미위주로 다룬 것이 아닌 한 송이 작은 들꽃 같은 그녀가 대제국의 황후가 될 때까지 겪은 아픔과 기쁨과 쓸쓸함과 영광의 사실적 기록을 담아내고자 했다.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흔들리며 마침내 맨 밑바닥에 놓였던 자기 삶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린 치열한 여정을 서사와 서정을 융합시켜 정교하게 그렸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생을 산 그녀와 함께 웃고 우는 공감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소박한 나를 역사라는 큰 품에 하나로 묶어주며 동반의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저자는 기황후를 흥미위주로 다룬 것이 아닌 한 송이 작은 들꽃 같은 그녀가 대제국의 황후가 될 때까지 겪은 아픔과 기쁨과 쓸쓸함과 영광의 사실적 기록을 담아내고자 했다.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흔들리며 마침내 맨 밑바닥에 놓였던 자기 삶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린 치열한 여정을 서사와 서정을 융합시켜 정교하게 그렸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생을 산 그녀와 함께 웃고 우는 공감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소박한 나를 역사라는 큰 품에 하나로 묶어주며 동반의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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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교정보는 이를 세 번이나 울린 소설!
이 책은 몇 해 전, 무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오래 침묵했던 김준식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묻히거나 숨겨져 있지만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찾던 중 한 인물을 만난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을 여인, 혹은 려인(麗人)이다. 바람과 초원의 딸. 그녀는 고려의 착한 딸이고 정다운 연인이고 살가운 몸종이고 위대한 정복자이자 어머니였다. 우리가 이승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여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의 중앙에서 경세가의 모든 자질과 고난과 성취와 시대적 배경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다. 요즘 드라마로 꽤 알려진 기황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황후를 흥미위주로 다룬 여타 작품과는 다르다. 한송이 작은 들꽃 같은 그녀가 대제국의 황후가 될 때까지 겪은 아픔과 기쁨과 쓸쓸함과 영광의 사실적 기록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흔들리며 마침내 맨 밑바닥에 놓였던 자기 삶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린 치열한 여정을 서사와 서정을 융합시켜 정교하게 그렸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생을 산 그녀와 함께 웃고 우는 공감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소박한 나를 역사라는 큰 품에 하나로 묶어주며 동반의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1. 거대한 서사의 여리고 미약한 서정적 출발
긴 것의 끝까지
깊은 것의 바닥까지
습기에 같이 젖고
추위에 함께 떨며
가자, 우리
기쁨이 심장을 흠뻑 적실 이 길!
이는 700여년 전 페르시아인이 쓴 몽골비사의 한 구절이다. 이 짧은 텍스트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길고 깊은 여정이 담겨있다. 그가 초원의 대제국을 세우고 났을 때 기쁨이 심장을 흠뻑 적셨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800여년 전, 그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람과 햇빛과 습기에 몸을 적시며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고 또 달렸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몽골제국 창시자의 자취가 담긴 글로 첫 장을 연 이 글은 좀 긴 길이다. 이백 자 원고지로 환산해서 오천여장. 거기에 자료 준비와 집필기간이 꼬박 6년이 걸렸다니 이 역시 보기 쉬운 건 아니다. 자기 제국의 영원을 그렇게도 염원했을 징기스칸이 죽은 후 143년 만에 초원의 바람으로 사라진 대제국의 흔적만큼이나 길까.
물론 글의 길이와 집필기간이 작품성과 비례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문학작품이 안기는 깊은 감동과 여운은 짧고 강렬한 기억에 이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징기스칸이 제국 건설을 위해 달렸던 여정과는 거꾸로 몽골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 제국의 마지막 정후였던 기황후를 전기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그런 만큼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 시기에 벌어졌겠는가.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은 상통한다. 이 글은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할 때 볼 수 있던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상황, 그리고 의외적인 사건을 담아내고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적당한 분량은 작품 구성에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는 어쩌면 이 시대완 엇박자일 수 있다. 가볍고 톡톡 튀고 쿨한 짧은 글이나, 청춘의 아픔을 적당히 위로하는 글들에 손을 들어주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작가는 역사에 묻혀 있던 기황후라는 걸출한 인물을 옳게 복원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을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도 슬픈 이야기는 이런 어려운 환경아래 첫 펜대를 세우고 출발한 것이다.
2. 그곳엔 고려인과 고려인의 한이 있었다.
바람과 초원의 딸!
그렇다. 그녀는 바람과 초원의 딸이다. 6년 넘게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파고든 작가는 기황후를 그런 상징과 비유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를 한 사람의 자식이라고 말하기엔 뭔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고려의 착한 딸이고 정다운 연인이고 살가운 몸종이고 제국의 황후였다. 성녀이자 요부이며 위대한 정복자이자 어머니였다. 우리가 이승의 삶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여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의 중앙에서 경세가의 모든 자질과 고난과 성취와 시대적 배경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여기에 작가가 기황후를 주목한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시대의 세력에 의해 가려지고 억눌린 삶속엔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선과 악, 미와 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증오, 위대함과 소박함 등 경망스런 언어가 분절해 놓은 경계를 넘어 인간 본연의 실상을 그녀의 삶에서 엿볼 수 있을 거라는 작가적 기대였다.
작가는 그를 명료하게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결코 책상머리 상상력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원제국 말기 원사(元史)와 고려사는 물론이고 당시 페르시아인이 쓴 제국집사(帝國集史)와 몽골비사 등 사료(史料)와 관련비문을 찾아 이 글에 녹였다. 기황후의 부활이 두려운 승자에 의해 지워진 역사의 줄기를 바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기황후를 비롯한 동시대를 산 사람들을 죽음에서 불러내어 이야기를 엮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강한 의문점 하나가 떠오른다. 고려 충혜왕 2년(1332년) 보잘 것 없는 공녀로 끌려간 공녀 하나가 어떻게 대제국의 황후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당시 몽골제국의 지배계급은 혈족의 연합체 성격이 매우 강했다. 징기스칸과 이어진 혈통을 '황금씨족'이라 하여 철저히 고수했고, 제국의 정후는 옹기라트족을 위시한 전통몽골귀족 핏줄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기황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몽골제국 통치의 핵심이고 이념이었다.
그럼에도 보잘 것 없는 공녀(貢女)에서 황후라니!
이름 모를 계집아이로 끌려갔다가 대원제국의 황후가 되어 그 광활한 대륙을 휘어잡다니!
그녀가 흔히 회자되듯 인간 초월적 자질과 미모를 지녔기 때문일까, 그를 무기로 대제국을 지탱하던 법도와 관습을 일거에 뛰어 넘은 것일까? 물론 그녀에겐 하늘이 내렸다할 만큼 남다른 재기를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녀를 대제국의 황후로 밀어올린 건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 곁엔 사람이 있었다. 몽골침략 이래 수십 년 동안 원나라 황궁으로 끌려간 무수한 공녀들이 있었고, 그녀들의 한과 눈물이 있었다. 수많은 환관들이 자기 생식기를 자르며 터트린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들꽃처럼 이름 없던 한 소녀를 대제국의 황후로 밀어올린 것이다. 기황후라는 인물은 그런 고려인의 눈물과 한과 열망이 모여 마침내 초원 위에 피워 낸 거대한 꽃이었다.
그러기에 역으로, 기황후를 기황후답게 복원하려면 좀 더 많은 사료(史料)의 확보와 그를 분석해낼 노력을 담보한다. 원제국 말기 대륙의 정치 상황과 고려에서 황궁으로 끌려갔던 공녀와 환관에 대한 애정 어린 분석, 그리고 원제국의 중흥조인 쿠빌라이의 외손자로 대도 황궁에 직접 출사하여 제국 중앙정치의 한 줄기를 담당했던 충선왕의 원대한 꿈을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황후를 '요사스럽고 음탕한 후비', '대원제국을 말아먹은 고려인' 라고 평가한 중국사관(명나라)의 의도와 그 사관의 검열 하에 작성된 우리 고려사 속에 숨겨진 것들을 해석하게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 글이 소설임에도 사실(史實)에 충실했고, 책 2권 말미에 원사와 고려사, 제국집사를 바탕으로 한 원제국 말기 주요연표와 몽골제국 지명지도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3. 거대한 서사와 서정을 정교하게 융합시킨 글
작가는 이렇듯 서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의 뼈대를 세운 다음, 백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속살 같은 서정을 융합시키기 위해 심열을 기울인다. 이는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겠다는 강한 열정과 함께, 좋은 문학작품은 외부와의 관계로 비롯되는 서사나 내부의 심리에서 오는 서정을 궁극적으로 하나의 기운으로 모으는 힘이 있고, 그럴 때만이 광휘를 발한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이 글은 몽골제국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개별 인물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센 것들에 결코 비굴하지 않던 기황후의 빛나는 삶을 쫓아가다보면 온갖 사람들을 만나 함께 웃고 울게 된다.
자기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그를 자신의 내면에서 심화시켰을 때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를 지닌 기황후를 비롯하여, 본래 강인한 체력과 원기를 지니고 태어났으면서도 거듭되는 황위쟁탈의 참화에 지쳐 그를 상실하고 유유부단해진 황제 토곤테무르, 징기스칸 정복기 기마군이 지녔던 인간 야수성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바얀이라는 몽골 장수, 볼모로 황궁에 숙위를 하고 있었으면서 술을 동이 채 마시고 건들거리며 황궁의 건천문을 휘젓고 다니던 대 건달 충혜왕과 그의 쓸쓸한 죽음(작가는 이 죽음이 가장 슬펐다고 했다.) 그리고 기황후 곁에서 그림자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스로 양물을 자르고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에 맹목적으로 따르며 기황후를 호위한 사량이라는 인물과, 기황후와 함께 공녀로 끌려왔다가 우연한 사건에 연루되어 유곽으로 팔려감으로써 기황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정여은이라는 궁녀 등이 그들이다. 그 외에도 수십 명의 인물들이 각자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며 독특한 개성으로 이 이야기에 동참한다.
그 때문에 영웅을 그릴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헛된 희망에서 이글을 건져냈으며, 의도적으로 역사를 외면한 인간군의 신변잡기나, 사람이 없는 역사의 밋밋한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와 서정의 융합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독자로 하여금 부조리한 세상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사실 기황후은 대단히 서사적일 수밖에 없는 생을 산 특이한 인물이었다. 감정을 극도로 배재한 채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봐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지닌 칠정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한다. 한낱 공녀에 불과했던 그녀가 대제국의 정후가 되었다는 신화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혈육을 모두 잃는 참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까닭이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은 기황후라는 인물은 눈물과 상처로 피운 거대한 꽃이었고, 모든 이의 부러움과 질시의 세례를 동시에 받았던 초원의 여왕이었다.
그러기에 이 글의 교정을 보던 분이 세 번씩이나 우는 바람에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건지 모른다. 교정인이 특이하게 눈물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이겠지만, 이렇듯 서사와 서정의 조화로운 융합이 복받치는 감정을 이끌었음이 분명하다. 만약 이 글이 눈 밝은 독자들에게 얼마간이라도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다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이 글을 통하여 내 문학의 오랜 화두였던 서사와 서정의 융합을 보았다.'는 작가의 말이 결코 헛말로 들리지 않는다.
4. 기황후의 부활, 이 글이 드라마 속 거짓 그녀를 이길 수 있을까.
역사란, 거대하고 몰인정한 시간에 예리한 칼집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한 역사는 미망과 거짓에 싸인 우리를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는 힘이 있고, 그 속엔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행복한 눈물이 있다. 군중 속 고독이 키워낸 자의식의 무릎을 단숨에 꿇리고 역사라는 큰 품에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소박한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국가와 민족을 발견하고 동반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한다.
6년 전 어느 날 새벽, 작가는 그런 생각 끝에 기황후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변방의 나라 고려에서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갔다가 제국의 황후가 된 그녀의 자취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하지만 기황후는 자신의 알몸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저런 자료가 있었지만 좀처럼 그녀의 진면목을 온전히 만나기 어려웠다. 그녀와 정면으로 만나기 위해선 좀 비장해질 필요가 있었다. 긴 세월 사대주의에 젖은 식민사관과 한 차례 인파이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유전자화 되어있는 큰 나라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고 나를 주체로 세울 수 있는 결기가 생겼을 때 그녀를 만나야 한다. '요사스럽고 음탕한 후비', '대원제국을 말아먹은 고려인'. 이것이 기황후에 대해 내린 중국사관의 평가고, 그들의 검열 하에 작성된 고려사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기황후를 옳게 복원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역사서가 되었던 소설이 되었던 드라마가 되었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3년 전, 초고를 마친 작가가 MBC 드라마국에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시놉시스를 제출한 것도 그의 일환이었다. 물론 가급적 정사에 입각해서 드라마를 전개해야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 반 후, 아무 말 없던 MBC에서 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려왔다. 작가는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현재 기황후 드라마 제작팀이 기획의도를 차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아주 버릴 수 없었지만) 그것이 꼭 자기 작품이 아니라 해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여, 그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꿈의 원형인 대륙경영의 기세를 찾게 된다면 좋은 일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첫 방영이 끝났을 때 크게 실망한다.
심하게 말하면 '기황후'를 타이틀로 한 그 드라마 속엔 기황후의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었다. 작가는 후기에서 그 좋은 예로 기황후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들었다. 어려서 대도(베이징) 황궁에 공녀로 끌려간 기황후와 고려를 이어주는 확실한 코드는 어머니였다. 그녀는 스무 살 언간에 제2황후가 되는데, 그때부터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신다. 황궁에 직접 초대하여 잔치를 열어 드렸는가 하면 해마다 자기소생 태자를 개경에 보내 하례 인사를 했다. 이는 고려사에는 물론 원사의 황후열전에서 '기황후는 한가하면 효녀경 등 고전과 역사서를 읽고 역대 황후들의 어진행동을 모범으로 삼았다. (后無事,則取 女孝經 史書,訪問歷代皇后之有賢行者爲法), 라는 기록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첫 회에 어머니를 몽골장군에게 피살된 것으로 설정해 버렸다. 그러니 다른 부분은 얼마나 더 황당무계하겠는가. 드라마 작가가 기황후에게 매료되었다 하면서 원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사나 제대로 훑어봤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 했다. 이는 역사왜곡을 넘는 수준으로 우리 역사의 소중한 인물을 다시 한 번 참혹하게 욕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비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지난 700년 동안 우리 후손의 게으름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역사적 인물이 이렇게 또 한 번 왜곡되고 있다는 비감이다. 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적이며 아프게 살다간 기황후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그런 인물을 통해 공동체적 우리를 공감하는 감동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작품에 몰입하여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십년 넘게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님께 점심 공양을 드리는 일을 제외하고 이 작품의 출간에 매달렸다. 그리곤 이렇게 작품으로 내어 놓으면서 안타깝게도 이런 유치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 글 속 기황후는 드라마 속 기황후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그리하여 그 힘으로 옳게 부활한 기황후가 우리 민족이 잃어버린 꿈의 원형을 되찾아주게 될까, 하는 ........
물론, 이 글이 수십 억 자본이 투자되었다는 방송드라마에 대항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참된 애정을 가지고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던 작가는 그를 향한 간절한 염원과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불가능한 도전에 자신의 몸을 던져놓고 있는 동안만큼은 어떤 불가능도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쪼록 이런 작가의 염원과 성심이 이 시대에 바로 읽혀 기황후에 대한 바른 평가와 함께 그를 기리는 새바람이 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추천의 말》
깊은 감동은 재미와 다르다.
아픔이 짓게 밴 가슴이 터트리는 환희다.
눈속임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내게 기황후가 고맙고 매력적인 건
그런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는데 있다.
이 긴 글을 다 쓰고 났을 때 작가가 탄성을 터트리듯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런 감동은 유라시아대륙을 품은 여인, 일개 공녀에서 대원제국의 황후가 되었다는 신화적 삶 때문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꼬박 6년이 걸린 자료 수집과 집필 기간 동안 읽은 원사, 고려사, 몽골비사 등 사료(史料)와 관련 비문, 책자 속에서 온전히 몸을 들어낸 기황후는 참으로 놀라웠다고 했다. 그녀의 삶 속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아픔과 절망이 있고, 그를 감동으로 승화시킨 초월적 의지와 야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영웅적 삶이 사람을 압도하는 대신 깊은 감동을 안겨 준다고 했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피로와 삶에 대한 환멸이 풀리고, 아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작가가 느꼈다는 그 감동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할 수 없다. 역사에 묻혀있던 인물을 옳게 복원하겠다며 스스로 유배를 떠나듯 외진 곳에서 작품에 몰입한 뒤 느낀 감동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 판단은 온전히 독자들 각자가 느껴야할 몫이다. 다만 그런 감동에 고단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의 미학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영웅을 그릴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헛된 희망에서 이글을 건져냈으며, 그러기에 기황후의 삶을 통해 가슴이 탁 트이는 감동을 맛볼 것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권하는 이유다.
이 책의 출간을 성원하는 사람들(황치준, 안미란, 장인선, 김마성, 김수녕, 김용우)
놀랍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이토록 많은 자료를 뒤적여야했다니. 작가가 기울인 노력과 정성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속엔 이 글의 수백 배에 달할 책과 사료와 자료와 그것을 찾아 나섰던 작가의 고된 발걸음이 담겨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문학적 화두였던 서정과 서사의 융합을 보았다. 잘 짜인 서사적 구조 없이 서정적 미감은 없다는 걸 역으로 확인했다.' 는 작가의 성취를 나는 이해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문헌학자로서 이 글이 수많은 사료를 녹인 글이고, 글의 길이만큼 감동 또한 짙었다는 것엔 확실히 동의한다.
송기호 (문헌정보학 교수)
이 책은 몇 해 전, 무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오래 침묵했던 김준식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묻히거나 숨겨져 있지만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찾던 중 한 인물을 만난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을 여인, 혹은 려인(麗人)이다. 바람과 초원의 딸. 그녀는 고려의 착한 딸이고 정다운 연인이고 살가운 몸종이고 위대한 정복자이자 어머니였다. 우리가 이승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여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의 중앙에서 경세가의 모든 자질과 고난과 성취와 시대적 배경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다. 요즘 드라마로 꽤 알려진 기황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황후를 흥미위주로 다룬 여타 작품과는 다르다. 한송이 작은 들꽃 같은 그녀가 대제국의 황후가 될 때까지 겪은 아픔과 기쁨과 쓸쓸함과 영광의 사실적 기록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흔들리며 마침내 맨 밑바닥에 놓였던 자기 삶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린 치열한 여정을 서사와 서정을 융합시켜 정교하게 그렸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생을 산 그녀와 함께 웃고 우는 공감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소박한 나를 역사라는 큰 품에 하나로 묶어주며 동반의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1. 거대한 서사의 여리고 미약한 서정적 출발
긴 것의 끝까지
깊은 것의 바닥까지
습기에 같이 젖고
추위에 함께 떨며
가자, 우리
기쁨이 심장을 흠뻑 적실 이 길!
이는 700여년 전 페르시아인이 쓴 몽골비사의 한 구절이다. 이 짧은 텍스트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길고 깊은 여정이 담겨있다. 그가 초원의 대제국을 세우고 났을 때 기쁨이 심장을 흠뻑 적셨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800여년 전, 그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람과 햇빛과 습기에 몸을 적시며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고 또 달렸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몽골제국 창시자의 자취가 담긴 글로 첫 장을 연 이 글은 좀 긴 길이다. 이백 자 원고지로 환산해서 오천여장. 거기에 자료 준비와 집필기간이 꼬박 6년이 걸렸다니 이 역시 보기 쉬운 건 아니다. 자기 제국의 영원을 그렇게도 염원했을 징기스칸이 죽은 후 143년 만에 초원의 바람으로 사라진 대제국의 흔적만큼이나 길까.
물론 글의 길이와 집필기간이 작품성과 비례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문학작품이 안기는 깊은 감동과 여운은 짧고 강렬한 기억에 이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징기스칸이 제국 건설을 위해 달렸던 여정과는 거꾸로 몽골제국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 제국의 마지막 정후였던 기황후를 전기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그런 만큼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 시기에 벌어졌겠는가.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은 상통한다. 이 글은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을 건설할 때 볼 수 있던 다양한 인물과 복잡한 상황, 그리고 의외적인 사건을 담아내고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적당한 분량은 작품 구성에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는 어쩌면 이 시대완 엇박자일 수 있다. 가볍고 톡톡 튀고 쿨한 짧은 글이나, 청춘의 아픔을 적당히 위로하는 글들에 손을 들어주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작가는 역사에 묻혀 있던 기황후라는 걸출한 인물을 옳게 복원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을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도 슬픈 이야기는 이런 어려운 환경아래 첫 펜대를 세우고 출발한 것이다.
2. 그곳엔 고려인과 고려인의 한이 있었다.
바람과 초원의 딸!
그렇다. 그녀는 바람과 초원의 딸이다. 6년 넘게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파고든 작가는 기황후를 그런 상징과 비유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를 한 사람의 자식이라고 말하기엔 뭔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고려의 착한 딸이고 정다운 연인이고 살가운 몸종이고 제국의 황후였다. 성녀이자 요부이며 위대한 정복자이자 어머니였다. 우리가 이승의 삶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질곡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여인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제국의 중앙에서 경세가의 모든 자질과 고난과 성취와 시대적 배경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었다.
여기에 작가가 기황후를 주목한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시대의 세력에 의해 가려지고 억눌린 삶속엔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선과 악, 미와 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증오, 위대함과 소박함 등 경망스런 언어가 분절해 놓은 경계를 넘어 인간 본연의 실상을 그녀의 삶에서 엿볼 수 있을 거라는 작가적 기대였다.
작가는 그를 명료하게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결코 책상머리 상상력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원제국 말기 원사(元史)와 고려사는 물론이고 당시 페르시아인이 쓴 제국집사(帝國集史)와 몽골비사 등 사료(史料)와 관련비문을 찾아 이 글에 녹였다. 기황후의 부활이 두려운 승자에 의해 지워진 역사의 줄기를 바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기황후를 비롯한 동시대를 산 사람들을 죽음에서 불러내어 이야기를 엮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강한 의문점 하나가 떠오른다. 고려 충혜왕 2년(1332년) 보잘 것 없는 공녀로 끌려간 공녀 하나가 어떻게 대제국의 황후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당시 몽골제국의 지배계급은 혈족의 연합체 성격이 매우 강했다. 징기스칸과 이어진 혈통을 '황금씨족'이라 하여 철저히 고수했고, 제국의 정후는 옹기라트족을 위시한 전통몽골귀족 핏줄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기황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몽골제국 통치의 핵심이고 이념이었다.
그럼에도 보잘 것 없는 공녀(貢女)에서 황후라니!
이름 모를 계집아이로 끌려갔다가 대원제국의 황후가 되어 그 광활한 대륙을 휘어잡다니!
그녀가 흔히 회자되듯 인간 초월적 자질과 미모를 지녔기 때문일까, 그를 무기로 대제국을 지탱하던 법도와 관습을 일거에 뛰어 넘은 것일까? 물론 그녀에겐 하늘이 내렸다할 만큼 남다른 재기를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녀를 대제국의 황후로 밀어올린 건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 곁엔 사람이 있었다. 몽골침략 이래 수십 년 동안 원나라 황궁으로 끌려간 무수한 공녀들이 있었고, 그녀들의 한과 눈물이 있었다. 수많은 환관들이 자기 생식기를 자르며 터트린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들꽃처럼 이름 없던 한 소녀를 대제국의 황후로 밀어올린 것이다. 기황후라는 인물은 그런 고려인의 눈물과 한과 열망이 모여 마침내 초원 위에 피워 낸 거대한 꽃이었다.
그러기에 역으로, 기황후를 기황후답게 복원하려면 좀 더 많은 사료(史料)의 확보와 그를 분석해낼 노력을 담보한다. 원제국 말기 대륙의 정치 상황과 고려에서 황궁으로 끌려갔던 공녀와 환관에 대한 애정 어린 분석, 그리고 원제국의 중흥조인 쿠빌라이의 외손자로 대도 황궁에 직접 출사하여 제국 중앙정치의 한 줄기를 담당했던 충선왕의 원대한 꿈을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황후를 '요사스럽고 음탕한 후비', '대원제국을 말아먹은 고려인' 라고 평가한 중국사관(명나라)의 의도와 그 사관의 검열 하에 작성된 우리 고려사 속에 숨겨진 것들을 해석하게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 글이 소설임에도 사실(史實)에 충실했고, 책 2권 말미에 원사와 고려사, 제국집사를 바탕으로 한 원제국 말기 주요연표와 몽골제국 지명지도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3. 거대한 서사와 서정을 정교하게 융합시킨 글
작가는 이렇듯 서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의 뼈대를 세운 다음, 백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속살 같은 서정을 융합시키기 위해 심열을 기울인다. 이는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겠다는 강한 열정과 함께, 좋은 문학작품은 외부와의 관계로 비롯되는 서사나 내부의 심리에서 오는 서정을 궁극적으로 하나의 기운으로 모으는 힘이 있고, 그럴 때만이 광휘를 발한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이 글은 몽골제국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개별 인물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센 것들에 결코 비굴하지 않던 기황후의 빛나는 삶을 쫓아가다보면 온갖 사람들을 만나 함께 웃고 울게 된다.
자기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그를 자신의 내면에서 심화시켰을 때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를 지닌 기황후를 비롯하여, 본래 강인한 체력과 원기를 지니고 태어났으면서도 거듭되는 황위쟁탈의 참화에 지쳐 그를 상실하고 유유부단해진 황제 토곤테무르, 징기스칸 정복기 기마군이 지녔던 인간 야수성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바얀이라는 몽골 장수, 볼모로 황궁에 숙위를 하고 있었으면서 술을 동이 채 마시고 건들거리며 황궁의 건천문을 휘젓고 다니던 대 건달 충혜왕과 그의 쓸쓸한 죽음(작가는 이 죽음이 가장 슬펐다고 했다.) 그리고 기황후 곁에서 그림자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스로 양물을 자르고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에 맹목적으로 따르며 기황후를 호위한 사량이라는 인물과, 기황후와 함께 공녀로 끌려왔다가 우연한 사건에 연루되어 유곽으로 팔려감으로써 기황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정여은이라는 궁녀 등이 그들이다. 그 외에도 수십 명의 인물들이 각자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며 독특한 개성으로 이 이야기에 동참한다.
그 때문에 영웅을 그릴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헛된 희망에서 이글을 건져냈으며, 의도적으로 역사를 외면한 인간군의 신변잡기나, 사람이 없는 역사의 밋밋한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와 서정의 융합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독자로 하여금 부조리한 세상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사실 기황후은 대단히 서사적일 수밖에 없는 생을 산 특이한 인물이었다. 감정을 극도로 배재한 채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봐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지닌 칠정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한다. 한낱 공녀에 불과했던 그녀가 대제국의 정후가 되었다는 신화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혈육을 모두 잃는 참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까닭이다. 영원히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은 기황후라는 인물은 눈물과 상처로 피운 거대한 꽃이었고, 모든 이의 부러움과 질시의 세례를 동시에 받았던 초원의 여왕이었다.
그러기에 이 글의 교정을 보던 분이 세 번씩이나 우는 바람에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건지 모른다. 교정인이 특이하게 눈물이 많은 것도 한 이유이겠지만, 이렇듯 서사와 서정의 조화로운 융합이 복받치는 감정을 이끌었음이 분명하다. 만약 이 글이 눈 밝은 독자들에게 얼마간이라도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다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이 글을 통하여 내 문학의 오랜 화두였던 서사와 서정의 융합을 보았다.'는 작가의 말이 결코 헛말로 들리지 않는다.
4. 기황후의 부활, 이 글이 드라마 속 거짓 그녀를 이길 수 있을까.
역사란, 거대하고 몰인정한 시간에 예리한 칼집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한 역사는 미망과 거짓에 싸인 우리를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는 힘이 있고, 그 속엔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행복한 눈물이 있다. 군중 속 고독이 키워낸 자의식의 무릎을 단숨에 꿇리고 역사라는 큰 품에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소박한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국가와 민족을 발견하고 동반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한다.
6년 전 어느 날 새벽, 작가는 그런 생각 끝에 기황후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변방의 나라 고려에서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갔다가 제국의 황후가 된 그녀의 자취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하지만 기황후는 자신의 알몸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저런 자료가 있었지만 좀처럼 그녀의 진면목을 온전히 만나기 어려웠다. 그녀와 정면으로 만나기 위해선 좀 비장해질 필요가 있었다. 긴 세월 사대주의에 젖은 식민사관과 한 차례 인파이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유전자화 되어있는 큰 나라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고 나를 주체로 세울 수 있는 결기가 생겼을 때 그녀를 만나야 한다. '요사스럽고 음탕한 후비', '대원제국을 말아먹은 고려인'. 이것이 기황후에 대해 내린 중국사관의 평가고, 그들의 검열 하에 작성된 고려사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기황후를 옳게 복원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역사서가 되었던 소설이 되었던 드라마가 되었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3년 전, 초고를 마친 작가가 MBC 드라마국에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시놉시스를 제출한 것도 그의 일환이었다. 물론 가급적 정사에 입각해서 드라마를 전개해야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 반 후, 아무 말 없던 MBC에서 드라마 제작 소식이 들려왔다. 작가는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현재 기황후 드라마 제작팀이 기획의도를 차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아주 버릴 수 없었지만) 그것이 꼭 자기 작품이 아니라 해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여, 그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꿈의 원형인 대륙경영의 기세를 찾게 된다면 좋은 일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첫 방영이 끝났을 때 크게 실망한다.
심하게 말하면 '기황후'를 타이틀로 한 그 드라마 속엔 기황후의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었다. 작가는 후기에서 그 좋은 예로 기황후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들었다. 어려서 대도(베이징) 황궁에 공녀로 끌려간 기황후와 고려를 이어주는 확실한 코드는 어머니였다. 그녀는 스무 살 언간에 제2황후가 되는데, 그때부터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신다. 황궁에 직접 초대하여 잔치를 열어 드렸는가 하면 해마다 자기소생 태자를 개경에 보내 하례 인사를 했다. 이는 고려사에는 물론 원사의 황후열전에서 '기황후는 한가하면 효녀경 등 고전과 역사서를 읽고 역대 황후들의 어진행동을 모범으로 삼았다. (后無事,則取 女孝經 史書,訪問歷代皇后之有賢行者爲法), 라는 기록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첫 회에 어머니를 몽골장군에게 피살된 것으로 설정해 버렸다. 그러니 다른 부분은 얼마나 더 황당무계하겠는가. 드라마 작가가 기황후에게 매료되었다 하면서 원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사나 제대로 훑어봤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라 했다. 이는 역사왜곡을 넘는 수준으로 우리 역사의 소중한 인물을 다시 한 번 참혹하게 욕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비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지난 700년 동안 우리 후손의 게으름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역사적 인물이 이렇게 또 한 번 왜곡되고 있다는 비감이다. 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적이며 아프게 살다간 기황후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그런 인물을 통해 공동체적 우리를 공감하는 감동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작품에 몰입하여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십년 넘게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님께 점심 공양을 드리는 일을 제외하고 이 작품의 출간에 매달렸다. 그리곤 이렇게 작품으로 내어 놓으면서 안타깝게도 이런 유치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 글 속 기황후는 드라마 속 기황후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그리하여 그 힘으로 옳게 부활한 기황후가 우리 민족이 잃어버린 꿈의 원형을 되찾아주게 될까, 하는 ........
물론, 이 글이 수십 억 자본이 투자되었다는 방송드라마에 대항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참된 애정을 가지고 기황후를 옳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던 작가는 그를 향한 간절한 염원과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불가능한 도전에 자신의 몸을 던져놓고 있는 동안만큼은 어떤 불가능도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쪼록 이런 작가의 염원과 성심이 이 시대에 바로 읽혀 기황후에 대한 바른 평가와 함께 그를 기리는 새바람이 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추천의 말》
깊은 감동은 재미와 다르다.
아픔이 짓게 밴 가슴이 터트리는 환희다.
눈속임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큰 기쁨이다.
내게 기황후가 고맙고 매력적인 건
그런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는데 있다.
이 긴 글을 다 쓰고 났을 때 작가가 탄성을 터트리듯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런 감동은 유라시아대륙을 품은 여인, 일개 공녀에서 대원제국의 황후가 되었다는 신화적 삶 때문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꼬박 6년이 걸린 자료 수집과 집필 기간 동안 읽은 원사, 고려사, 몽골비사 등 사료(史料)와 관련 비문, 책자 속에서 온전히 몸을 들어낸 기황후는 참으로 놀라웠다고 했다. 그녀의 삶 속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아픔과 절망이 있고, 그를 감동으로 승화시킨 초월적 의지와 야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영웅적 삶이 사람을 압도하는 대신 깊은 감동을 안겨 준다고 했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피로와 삶에 대한 환멸이 풀리고, 아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작가가 느꼈다는 그 감동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가늠할 수 없다. 역사에 묻혀있던 인물을 옳게 복원하겠다며 스스로 유배를 떠나듯 외진 곳에서 작품에 몰입한 뒤 느낀 감동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 판단은 온전히 독자들 각자가 느껴야할 몫이다. 다만 그런 감동에 고단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의 미학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영웅을 그릴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헛된 희망에서 이글을 건져냈으며, 그러기에 기황후의 삶을 통해 가슴이 탁 트이는 감동을 맛볼 것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권하는 이유다.
이 책의 출간을 성원하는 사람들(황치준, 안미란, 장인선, 김마성, 김수녕, 김용우)
놀랍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이토록 많은 자료를 뒤적여야했다니. 작가가 기울인 노력과 정성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속엔 이 글의 수백 배에 달할 책과 사료와 자료와 그것을 찾아 나섰던 작가의 고된 발걸음이 담겨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문학적 화두였던 서정과 서사의 융합을 보았다. 잘 짜인 서사적 구조 없이 서정적 미감은 없다는 걸 역으로 확인했다.' 는 작가의 성취를 나는 이해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문헌학자로서 이 글이 수많은 사료를 녹인 글이고, 글의 길이만큼 감동 또한 짙었다는 것엔 확실히 동의한다.
송기호 (문헌정보학 교수)
목차
목차
제5장 끝없는 사랑을 위하여
제6장 울제이 쿠투 카톤(아름답고 복 있는 황후)
제7장 바람과 초원의 딸이 되어
제8장 황하를 굽어보며
원제국 말기 주요연표
몽골제국 지도지명
제6장 울제이 쿠투 카톤(아름답고 복 있는 황후)
제7장 바람과 초원의 딸이 되어
제8장 황하를 굽어보며
원제국 말기 주요연표
몽골제국 지도지명
저자
저자
김준식
저자 김준식은 몇 해 전 여름, 무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오래 침묵했다. 그는 자기를 실패한 문학가라고 말한다. 자꾸만 사람을 외롭고 비굴하게 만드는 세상에 졌다고 했다. 베스트셀러까지 낸 작가로서 하기 쉽지 않는 말이다. 그는 충남 연기에서 낳고 자라, 안양을 거쳐 1987년 경희대학교를 졸업한다. 공대생으로 유일하게 국문과 소설창작을 수강할 때 문학을 하라는 황순원교수의 권고를 마다하고 졸업 후 건설현장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여공으로 짧은 생을 마친 친누이에 대한 마음의 빗 때문이었는데, 한 노동자의 장례를 치뤄주고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하여 몇 년을 보냈다. 이렇듯 문학과 세속적인 삶이 충동할 때 그는 늘 삶 쪽을 선택했다. 누추해 보이지만 그곳에 문학의 원형이 있고 그를 피해 다니고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장편소설,《하늘이 높으면 끌어내려라. 상하》을 출간하면서 본격 글쓰기를 시작한 그가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 작품 활동을 멈춘 것도 그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중증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월간에세이, 문화제청, 현대카드사보 등에 짧은 글을 쓰는 것으로 문학 열정을 달랬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 삶과 고뇌는 그의 문학을 단단하게 만든다. 다정다감하고 유려한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구조의 완결성을 이루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이 작품으로 그를 명료하게 확인시킨다. 그는 서정과 서사의 융합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몽골제국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다루면서도 개별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센 것들에 결코 비굴하지 않던 기황후의 빛나는 삶을 쫓아가다보면 온갖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우는 책읽기의 큰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감동 끝에 부조리한 세상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그래서 실패한 문학가라는 그의 말이 실은 늦된 만큼 아주 드물게 좋은 작가의 새 출발이라는 은유로 읽힌다. 그의 작품으로는 《사랑하는 당신에게》《소은씨와 초록빛 자전거》《비익조》《약속》를 포함한 장편소설 8권과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등 공저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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