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간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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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의 희생양’ 재일 민주단체 ‘한통련’
민주 조국에서도 외면받는 억울한 이야기
한통련은 어떻게 반국가단체가 되었나? 그 과정을 톺아보는 실증적 기록
조국을 사랑했지만, 조국으로부터 반세기 넘도록 외면과 박대를 당하고 있는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사람들의 이야기가 『야만의 시간』으로 우리 앞에 섰다.
저자 김종철 전 기자는 현직(한겨레 신문)에 있을 때부터 한통련 회원들이 겪는 인권침해, 반국가단체 판시의 문제점, 국내 민주화운동과 한통련의 연대활동 등을 여러 차례 특집기사로 다뤄왔다. 2022년 정년 후 그는 한통련에 대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통련은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한통련과 관련된 인사들을 심층취재하고, 재판자료, 문헌기록, 언론보도 등을 수도 없이 뒤지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을 기록했다. 5년에 걸친 저자의 전방위적 취재는 탐사보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야만의 시간』은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적 현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김대중이 납치된 1973년 결성되어 올해로 50살이 된 한통련
올해 8월, 한통련(옛 이름 한민통)은 설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반백 년 동안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했으나, 박수와 축하보다는 여전히 반국가단체라는 족쇄에 갇혀있다. 수많은 재일동포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지만, 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다. 한통련 회원들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 여권도 제대로 발급해주지 않는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온시하고, 일본에서는 차별한다.
민주화된 조국은 왜 아직도 이들을 불온과 기피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있나?
1973년 민단계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한민통 결성, 결성식을 앞두고 김대중 납치, 초대의장으로 김대중 추대, ‘김대중구출대책위원회’결성.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사건 공소장에 ‘반국가단체’로 등장. 1978년 대법원은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라는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정. 1989년 한통련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나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규정... .
저자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조작을 일삼은 정보기관과 검찰, 그리고 공소장을 그대로 베낀 법원, 취재도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를 한 언론, 반국가단체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우리를 그 시대로 이끌고 간다. 그리고 “과연 이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시선은 민주정부 출범 후 벌어진 한통련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바라보며 훨씬 날카롭고 섬세해진다. 저자가 보기에, 한통련 사람들에게 들씌어진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을 벗길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심과 2011년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법원은 모두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한통련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잘못이었다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폐기되고 말았다.
법원도, 진실화해위원회도 본질적 문제인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비껴간 것이다. 저자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한통련의 처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라고 진단한다. 이‘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이다.
민주 조국에서도 외면받는 억울한 이야기
한통련은 어떻게 반국가단체가 되었나? 그 과정을 톺아보는 실증적 기록
조국을 사랑했지만, 조국으로부터 반세기 넘도록 외면과 박대를 당하고 있는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사람들의 이야기가 『야만의 시간』으로 우리 앞에 섰다.
저자 김종철 전 기자는 현직(한겨레 신문)에 있을 때부터 한통련 회원들이 겪는 인권침해, 반국가단체 판시의 문제점, 국내 민주화운동과 한통련의 연대활동 등을 여러 차례 특집기사로 다뤄왔다. 2022년 정년 후 그는 한통련에 대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통련은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한통련과 관련된 인사들을 심층취재하고, 재판자료, 문헌기록, 언론보도 등을 수도 없이 뒤지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을 기록했다. 5년에 걸친 저자의 전방위적 취재는 탐사보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야만의 시간』은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적 현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김대중이 납치된 1973년 결성되어 올해로 50살이 된 한통련
올해 8월, 한통련(옛 이름 한민통)은 설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반백 년 동안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했으나, 박수와 축하보다는 여전히 반국가단체라는 족쇄에 갇혀있다. 수많은 재일동포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지만, 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다. 한통련 회원들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 여권도 제대로 발급해주지 않는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온시하고, 일본에서는 차별한다.
민주화된 조국은 왜 아직도 이들을 불온과 기피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있나?
1973년 민단계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한민통 결성, 결성식을 앞두고 김대중 납치, 초대의장으로 김대중 추대, ‘김대중구출대책위원회’결성.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사건 공소장에 ‘반국가단체’로 등장. 1978년 대법원은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라는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정. 1989년 한통련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나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규정... .
저자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조작을 일삼은 정보기관과 검찰, 그리고 공소장을 그대로 베낀 법원, 취재도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를 한 언론, 반국가단체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우리를 그 시대로 이끌고 간다. 그리고 “과연 이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시선은 민주정부 출범 후 벌어진 한통련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바라보며 훨씬 날카롭고 섬세해진다. 저자가 보기에, 한통련 사람들에게 들씌어진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을 벗길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심과 2011년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법원은 모두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한통련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잘못이었다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폐기되고 말았다.
법원도, 진실화해위원회도 본질적 문제인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비껴간 것이다. 저자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한통련의 처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라고 진단한다. 이‘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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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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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부의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
한통련의 전신 한민통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개혁적인 재일동포들이 1973년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8월 13일로 예정된 발족식을 몇일 앞두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김대중이 납치되었다.
김대중이 납치된 다음 날인 1973년 8월 9일 도쿄에서 김대중구출대책위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동안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에 전력을 다했다. 이들 재일 민주개혁파의 열과 성을 다한 김대중 구출운동은 일본 시민사회를 동조 세력으로 끌어냈으며, 전 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김대중이 박정희에게 당했던 1차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전두환에 의한 2차 위기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민통의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211쪽)
한민통(한통련)이라는 단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전력을 쏟았고, 그 성과는 대단했다. 한민통의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어버렸다. 1977~78년 재일동포 유학생인 김정사를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한민통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여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판시를 빌미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저자는 이런 조작이 한민통과 아무런 상관없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민통을 당사자로 하는 재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재일동포 김정사도 무도한 독재정권이 휘두른 칼날에 인생의 행로가 꺾인 피해자지만, 일본에서 활발하게 한국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한민통은 집단 전체가 하루아침에 반국가단체가 됐다.(61쪽)
김정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던 한민통이 김정사의 구속과 재판을 거치면서 반국가단체가 된 것은 검찰 공소장에 슬쩍 끼워둔 단어 몇 개 때문이었다. ... "북괴 및 「재일조선총연합회」의 지령에 의거 구성되어 그 자금 지원을 받아 그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재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라는 67개 글자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공안 당국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71-72쪽)
군사독재 정권은 정권 유지에 위기가 닥치거나 권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른바 김정사 사건도 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저자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되려면 그들이 정말 정부를 자처하는지, 또 국가를 뒤엎을 계획을 하는지 등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김정사에 대한 공소장에는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는지, 대한민국 전복을 목적으로 삼는지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강령이나 규약에 대한 조사나 분석도 없이 섣불리 반국가단체로 규정함으로써 한통련의 질곡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민주정부도 외면한 한통련
한통련 회원들은 야만적인 독재정권이 자신들을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 억울했지만, 조국이 민주화만 되면 명예가 회복되고 복권이 이뤄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리고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한통련 사람들은 외면당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들의 조국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시절 2004년 손형근 의장 등 한통련 회원들에게 처음 여권을 발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사정이 달라졌다. 「여권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효기간이 턱없이 짧은 여권을 발급하거나, 손형근 의장에게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이 시행령을 손보지 않았고, 손형근 의장은 현재까지도 여권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하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통련 회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2010년 6월 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한민통 규약과 강령 등에 「국가보안법」에서 정한 반국가단체로서의 국가 변란의 목적이나 의도를 찾을 수 없고,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였다거나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국가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거나, 정부를 사칭하였거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한 내용 등의 행위 사실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한민통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부당하므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308쪽)
그러나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규정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자는 의견과 달리,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를 다룰테니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진실 규명 보고서를 채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표결에 부쳐졌고 '한통련 진실 규명 반대', 즉 각하 결정이 나왔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보고서까지 마련한 진실 규명이 외면받는 순간이었다.
'김정사는 한청 소속 지도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침투한 자로서 한청은 반한단체일 뿐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구속영장 신청 시 고충이 많았다'고 보안사 스스로 『대공30년사』에서 고백했을 정도(75쪽)였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한민통(한통련)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로 교묘하게 몰아간 것은 정보부와 검찰이었으나, 이를 법적으로 승인하고 굳힌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1978년 김정사 사건에서 어이없게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을 뿐 아니라, 이후 여러 재판에서도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규정을 아무 의심 없이 수용했다. 잘못 꿰인 첫 단추를 바로잡을 기회가 두 차례 있었지만, 두 번 다 한민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321쪽)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뿐 아니라, 법원이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이를 일관되게 회피해버린 법원의'게으름'이나 '비겁함'을 꼬집고 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은 법원으로서는 잘못된 자신의 과거와 직면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한통련의 이적성 여부를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할 기회였지만, 법원은 이를 피해갔다. ...이번에는 김대중이 1987년 특별사면을 이미 받았다면서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회피한 것이다. (330-331쪽)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도 법원은 한민통(한통련)이 반국가단체인지 여부는 아예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임계성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1978년 서울고법이 임계성을 만나 김정사를 간첩 혐의 유죄로 선관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한민통의 반국가단체 규정 자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334쪽)
머나먼 명예 회복
재일동포 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때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후 한통련 사람들은 지난 45년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내에서는 많은 것이 바로잡혔다. 형극의 길을 걸었던 국내의 민주인사는 명예 회복과 함께 유무형의 보상을 받았다. ...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던 한통련 사람은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커녕 독재정권이 억지로 덧씌운 반국가단체라는 족쇄를 찬 채 각종 차별과 박대를 아직도 받고 있다.(341쪽)
재심을 통해 속속 무죄로 드러나고 있는 재일동포 양심수와 달리 한통련 사람들은 재심청구도 할 수 없는 특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저자가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책무에 무게를 두는 지점이다.
한통련은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 끼워 넣어져 반국가단체가 됐을 뿐 자신들이 직접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반국가단체 규정을 벗어나려고 재심을 하고 싶어도 청구할 자격이 없어 법적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이에 이들은 과거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 1기와 2기에 잇따라 진정서를 냈다. 자신들에게 씌워진 반국가단체 규정이 잘못이었음을 권위 있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혀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의 진실화해위원회(1기)는 막판에 정치 논리로 한통련에 대한 진실 규명을 거부했다. 현재의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이 사안을 살펴보고 있지만, 한통련은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341쪽-342쪽)
한통련 사건은 야만적인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다.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한 이들에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반국가단체라는 붉은 딱지를 붙인 것은 독재 시절 한국 정부였으나, 지금까지 그들을 각종 차별 속에 방치해두고 있는 것은 민주화된 한국 사회다. 이 '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할 일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애썼던 그들에게 독재자들이 씌운 오명을 벗겨주는 일이다. 정치적 또는 법적으로 굳이 규정한다면 이들은 반정부 활동가였을 뿐이다.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단체에 반국가단체라는 굴레를 씌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은 과도하고 명백한 잘못이지 않은가(343쪽)
한통련의 전신 한민통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개혁적인 재일동포들이 1973년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8월 13일로 예정된 발족식을 몇일 앞두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김대중이 납치되었다.
김대중이 납치된 다음 날인 1973년 8월 9일 도쿄에서 김대중구출대책위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동안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에 전력을 다했다. 이들 재일 민주개혁파의 열과 성을 다한 김대중 구출운동은 일본 시민사회를 동조 세력으로 끌어냈으며, 전 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김대중이 박정희에게 당했던 1차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전두환에 의한 2차 위기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민통의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211쪽)
한민통(한통련)이라는 단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전력을 쏟았고, 그 성과는 대단했다. 한민통의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어버렸다. 1977~78년 재일동포 유학생인 김정사를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한민통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여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판시를 빌미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저자는 이런 조작이 한민통과 아무런 상관없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민통을 당사자로 하는 재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재일동포 김정사도 무도한 독재정권이 휘두른 칼날에 인생의 행로가 꺾인 피해자지만, 일본에서 활발하게 한국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한민통은 집단 전체가 하루아침에 반국가단체가 됐다.(61쪽)
김정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던 한민통이 김정사의 구속과 재판을 거치면서 반국가단체가 된 것은 검찰 공소장에 슬쩍 끼워둔 단어 몇 개 때문이었다. ... "북괴 및 「재일조선총연합회」의 지령에 의거 구성되어 그 자금 지원을 받아 그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재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라는 67개 글자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공안 당국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71-72쪽)
군사독재 정권은 정권 유지에 위기가 닥치거나 권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른바 김정사 사건도 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저자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되려면 그들이 정말 정부를 자처하는지, 또 국가를 뒤엎을 계획을 하는지 등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김정사에 대한 공소장에는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는지, 대한민국 전복을 목적으로 삼는지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강령이나 규약에 대한 조사나 분석도 없이 섣불리 반국가단체로 규정함으로써 한통련의 질곡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민주정부도 외면한 한통련
한통련 회원들은 야만적인 독재정권이 자신들을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 억울했지만, 조국이 민주화만 되면 명예가 회복되고 복권이 이뤄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리고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한통련 사람들은 외면당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들의 조국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시절 2004년 손형근 의장 등 한통련 회원들에게 처음 여권을 발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사정이 달라졌다. 「여권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효기간이 턱없이 짧은 여권을 발급하거나, 손형근 의장에게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이 시행령을 손보지 않았고, 손형근 의장은 현재까지도 여권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하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통련 회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2010년 6월 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한민통 규약과 강령 등에 「국가보안법」에서 정한 반국가단체로서의 국가 변란의 목적이나 의도를 찾을 수 없고,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였다거나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국가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거나, 정부를 사칭하였거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한 내용 등의 행위 사실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한민통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부당하므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308쪽)
그러나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규정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자는 의견과 달리,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를 다룰테니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진실 규명 보고서를 채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표결에 부쳐졌고 '한통련 진실 규명 반대', 즉 각하 결정이 나왔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보고서까지 마련한 진실 규명이 외면받는 순간이었다.
'김정사는 한청 소속 지도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침투한 자로서 한청은 반한단체일 뿐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구속영장 신청 시 고충이 많았다'고 보안사 스스로 『대공30년사』에서 고백했을 정도(75쪽)였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한민통(한통련)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로 교묘하게 몰아간 것은 정보부와 검찰이었으나, 이를 법적으로 승인하고 굳힌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1978년 김정사 사건에서 어이없게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을 뿐 아니라, 이후 여러 재판에서도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규정을 아무 의심 없이 수용했다. 잘못 꿰인 첫 단추를 바로잡을 기회가 두 차례 있었지만, 두 번 다 한민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321쪽)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뿐 아니라, 법원이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이를 일관되게 회피해버린 법원의'게으름'이나 '비겁함'을 꼬집고 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은 법원으로서는 잘못된 자신의 과거와 직면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한통련의 이적성 여부를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할 기회였지만, 법원은 이를 피해갔다. ...이번에는 김대중이 1987년 특별사면을 이미 받았다면서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회피한 것이다. (330-331쪽)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도 법원은 한민통(한통련)이 반국가단체인지 여부는 아예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임계성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1978년 서울고법이 임계성을 만나 김정사를 간첩 혐의 유죄로 선관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한민통의 반국가단체 규정 자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334쪽)
머나먼 명예 회복
재일동포 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때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후 한통련 사람들은 지난 45년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내에서는 많은 것이 바로잡혔다. 형극의 길을 걸었던 국내의 민주인사는 명예 회복과 함께 유무형의 보상을 받았다. ...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던 한통련 사람은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커녕 독재정권이 억지로 덧씌운 반국가단체라는 족쇄를 찬 채 각종 차별과 박대를 아직도 받고 있다.(341쪽)
재심을 통해 속속 무죄로 드러나고 있는 재일동포 양심수와 달리 한통련 사람들은 재심청구도 할 수 없는 특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저자가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책무에 무게를 두는 지점이다.
한통련은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 끼워 넣어져 반국가단체가 됐을 뿐 자신들이 직접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반국가단체 규정을 벗어나려고 재심을 하고 싶어도 청구할 자격이 없어 법적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이에 이들은 과거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 1기와 2기에 잇따라 진정서를 냈다. 자신들에게 씌워진 반국가단체 규정이 잘못이었음을 권위 있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혀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의 진실화해위원회(1기)는 막판에 정치 논리로 한통련에 대한 진실 규명을 거부했다. 현재의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이 사안을 살펴보고 있지만, 한통련은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341쪽-342쪽)
한통련 사건은 야만적인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다.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한 이들에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반국가단체라는 붉은 딱지를 붙인 것은 독재 시절 한국 정부였으나, 지금까지 그들을 각종 차별 속에 방치해두고 있는 것은 민주화된 한국 사회다. 이 '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할 일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애썼던 그들에게 독재자들이 씌운 오명을 벗겨주는 일이다. 정치적 또는 법적으로 굳이 규정한다면 이들은 반정부 활동가였을 뿐이다.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단체에 반국가단체라는 굴레를 씌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은 과도하고 명백한 잘못이지 않은가(343쪽)
목차
목차
들어가는 글
1. 반세기 넘는 차별과 박해
"당신들은 자유 입국 안 돼" 13
"국가유공자 보상금도 안 돼" 33
"한통련 회원과는 거래 안 돼" 45
2.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
김정사 간첩 사건 조작의 비밀 61
정보부의 조작 카드, 영사증명서와 윤효동 91
'DJ 내란음모' 각본 재판의 희생양 121
3. 개혁파의 홀로서기와 찬란한 투쟁
베트콩파의 탄생 143
김대중과의 만남과 한민통 183
눈부신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208
반외세 자주의 통일운동 238
4. 머나먼 명예 회복
한통련대책위의 행동하는 양심들 265
이명박 진실화해위원회의 배반 300
법원, 비겁하거나 게으르거나 321
나가는 글 340
주 344
참고문헌 361
찾아보기 366
1. 반세기 넘는 차별과 박해
"당신들은 자유 입국 안 돼" 13
"국가유공자 보상금도 안 돼" 33
"한통련 회원과는 거래 안 돼" 45
2.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
김정사 간첩 사건 조작의 비밀 61
정보부의 조작 카드, 영사증명서와 윤효동 91
'DJ 내란음모' 각본 재판의 희생양 121
3. 개혁파의 홀로서기와 찬란한 투쟁
베트콩파의 탄생 143
김대중과의 만남과 한민통 183
눈부신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208
반외세 자주의 통일운동 238
4. 머나먼 명예 회복
한통련대책위의 행동하는 양심들 265
이명박 진실화해위원회의 배반 300
법원, 비겁하거나 게으르거나 321
나가는 글 340
주 344
참고문헌 361
찾아보기 366
저자
저자
김종철
김종철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 1989년 《CBS》기자로 출발해 《한겨레》신문에서 논설위원, 정치부장, 신문부문장, 선임기자 등으로 일했다. 정치 분야를 주로 담당하던 기자 시절부터 역사와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2022년 정년을 마친 뒤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여전히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는 한통련에 대해 대한민국 역사로서의 재일동포사를 복원한다는 마음으로 『야만의 시간』을 집필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각별한 당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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