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설계도(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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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독립 출판계의 아이돌, 로버트 헌터의 세계
영국 상업 미술 전문가 사이에서 실력 찰지기로 정평이 자자한 루키 로버트 헌터가 유명 독립 출판사 노브로우를 통해 첫 작품을 출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출판계와 독자들은 가벼운 설렘과 흥미로운 시선으로 결과물을 기다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헌터가 발표할 28페이지의 짧은 책이 영국 출판계와 인쇄계를 경악에 빠뜨리라는 사실을.
수천 개의 색상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인쇄에도 정통한 그 젊은 아티스트는, 출판물 제작에 기본이 되는 4원색(파랑, 자주, 노랑, 검정)을 과감히 빼버리고, 작품에 어울리는 특별한 다섯 가지 색상(별색)을 베이스로 선택해 작업했다. 인쇄 전문가가 들으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만한, 특별한 색상 100% 작업이었다.
4원색을 사용하면 다른 색상을 쉬이 만들 수 있지만, 색이 탁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특별한 색상으로 작업하면 색감이 부드럽고 정확하지만, 다른 색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굉장히 고되다. 그래서 색을 중시하는 작가들도 ‘4원색 + 1~2개의 특별한 색상’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로버트 헌터는 이를 훌륭하게 성공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새내기 유령』. 그림책이 어쩌면 이렇게 영롱할 수 있을까? 특히 검은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운 장면조차 맑고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은 유령과 함께 춤을 추는 색의 향연에 깊이 감동하였다.
그런데 헌터의 특별함은 색상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동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반전을 선서했다. ‘인간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요?’. 헌터는 그 일을 ‘유령’이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두려운 무언가가 아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인간을 반짝반짝하게 바꿔 밤하늘 검은 천에 걸어주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해도 ‘별’은 곧 ‘죽음’과 귀결되기에, 따뜻한 동화적 시선과 현실적 사고가 만나는 지점인 엔딩에서 독자들은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마음을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새내기 유령』으로 일약 영국 독립 출판계의 아이돌로 떠오른 로버트 헌터는 2년 후 『하루의 설계도』라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하루의 설계도』는 전작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점에서 대비됐다. 특히 색상에 있어 전작은 몽환적이었지만, 새로운 작품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수놓았다.
영국 상업 미술 전문가 사이에서 실력 찰지기로 정평이 자자한 루키 로버트 헌터가 유명 독립 출판사 노브로우를 통해 첫 작품을 출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출판계와 독자들은 가벼운 설렘과 흥미로운 시선으로 결과물을 기다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헌터가 발표할 28페이지의 짧은 책이 영국 출판계와 인쇄계를 경악에 빠뜨리라는 사실을.
수천 개의 색상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인쇄에도 정통한 그 젊은 아티스트는, 출판물 제작에 기본이 되는 4원색(파랑, 자주, 노랑, 검정)을 과감히 빼버리고, 작품에 어울리는 특별한 다섯 가지 색상(별색)을 베이스로 선택해 작업했다. 인쇄 전문가가 들으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만한, 특별한 색상 100% 작업이었다.
4원색을 사용하면 다른 색상을 쉬이 만들 수 있지만, 색이 탁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특별한 색상으로 작업하면 색감이 부드럽고 정확하지만, 다른 색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굉장히 고되다. 그래서 색을 중시하는 작가들도 ‘4원색 + 1~2개의 특별한 색상’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로버트 헌터는 이를 훌륭하게 성공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새내기 유령』. 그림책이 어쩌면 이렇게 영롱할 수 있을까? 특히 검은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운 장면조차 맑고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독자들은 유령과 함께 춤을 추는 색의 향연에 깊이 감동하였다.
그런데 헌터의 특별함은 색상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동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반전을 선서했다. ‘인간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요?’. 헌터는 그 일을 ‘유령’이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두려운 무언가가 아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인간을 반짝반짝하게 바꿔 밤하늘 검은 천에 걸어주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해도 ‘별’은 곧 ‘죽음’과 귀결되기에, 따뜻한 동화적 시선과 현실적 사고가 만나는 지점인 엔딩에서 독자들은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마음을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새내기 유령』으로 일약 영국 독립 출판계의 아이돌로 떠오른 로버트 헌터는 2년 후 『하루의 설계도』라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하루의 설계도』는 전작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점에서 대비됐다. 특히 색상에 있어 전작은 몽환적이었지만, 새로운 작품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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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I. "바닷물이 발을 적시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요. 그리고 한 친구를 속여 멀리 떠나보낸 기억도요."
헌터는 언제나 가족과의 추억과 어린 시절에 느꼈던 단편들을 이야기의 길잡이로 삼곤 한다. 『새내기 유령』이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라면, 『하루의 설계도』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다. 그는 이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스스로도 작업하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에 젖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순진무구했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의 외조부님은 바닷가에 사셨던 모양이다. 언젠가 바닷가를 찾은 로버트 헌터는 바다를 바라보고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시계 수집가였던 외할아버지, 언제나 시계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신경 쓰시던 모습, 함께 정원을 가꾸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같이 해변을 거닐면서 물었던 어린아이의 순수한 궁금증, '파도는 왜 일어나죠?'. 성인이 된 이야기꾼 헌터는 그것이 태양을 사랑한, 태양에게 다가가고픈 지구의 몸짓이라 해석하고, 추억의 단편들과 반죽해 또 하나의 근사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프롤로그 -
무(無)에서 우주가 탄생했습니다. 신생아 우주는 자라기로 마음먹었죠.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칠흑 같은 공간에서 최초의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아홉 형제'.
그들은 차가운 우주를 고요히 표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홉 형제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주의 먼지를 이용해 저마다의 안식처를 만들었죠.
그런데 한 형제는 안식처가 완성되어도 무언가 만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술적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식물을 창조했고, 그것을 성장시켜 안식처 표면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상에 도달한 식물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어요.
복잡하고 풍성해졌죠.
이 사실은 신경처럼 연결된 뿌리를 통해 그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는 호기심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식물이 변한 이유를 알아내고자 애써 만든 안식처를 부수고 지상으로 향합니다.
지상으로 나온 그는 처음 느껴보는 밝음과 따사로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 이유가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구체 때문임을 깨닫죠. 그는 구체를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일방적인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게 되어,
안식처를 만들었던 힘을 다시금 발휘해 구체를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너무나 뜨겁고 커다란 구체가 다가오자
그가 만든 안식처와 식물들은 파멸될 위험에 놓입니다…
II. 특별한 4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색상의 향연
모바일이나 컴퓨터로 이 소개를 보고 있다면 고작 3가지 색상으로 구현된 이미지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RGB'(빨강, 녹, 파랑)이다. 종이책은 대량 생산 콘텐츠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위상에 걸맞게 4원색(CMYK)으로 색상을 구현한다. 종이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쇄 상태, 종이의 질감, 제본 방식, 이 모든 것들이 아우러진 냄새까지, 우리에게 훨씬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감각을 선서한다. 결국 웹의 이미지와 출판물의 차이는, 근사한 음식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음미하는 만큼이나 크다고 볼 수 있다. 로버트 헌터는 『하루의 설계도』에서 4원색보다 더욱 진화한 4가지의 특별한 색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팬톤 116U', '팬톤 192U', '팬톤 406U', '팬톤 헥사크롬 시안 U'을 사용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헌터의 작품은 제작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특히 특별한 색상은 대량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색상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에서는 아등바등해야 한다. 이 작업은 보통 인쇄소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정확도도 크게 떨어질뿐더러, 매번 색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지만, 헌터의 독자들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출판사를 감시하고 지적한다.
한국어판에서는 정확한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인쇄용 잉크 전문 제작소 '광명잉크'에 의뢰해 방앗간에 떡 주문하듯 컴퓨터 조색을 통해 맞췄다. 덕분에 기준 색상과 일치율 98% 이상을 끌어낼 수 있었다. 시력 6.0을 자랑하는 몽골 출신의 디자이너조차 표준 컬러와 이 책에서 사용한 색상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III. 훌륭한 작품에는 그에 맞는 제작이 필요하다.
헌터의 색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종이가 필수이다. 검은색을 쓰지 않는 로버트 헌터는 어두운 부분을 채도를 최대 레벨로 높여 쓴다. 그래서 잉크 사용량이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잉크 사용량 400%까지 구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쇄소에서는 250%도 위험하게 생각하는데, 잘못하면 인쇄용지가 물에 담근 휴지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터의 작품은 무조건 종이가 버텨줘야 한다.
원작에서는 광택이 없고 손에 닿는 까쓸한 느낌이 매력적인 '문켄 프린트 크림 페이퍼'를 사용했다. 유명 제지업체 '아르크틱 페이퍼'의 걸작이다. 문켄 페이퍼는 비도공지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지만큼 색상을 뚜렷하게 발현한다. 국산지에는 이런 종이를 찾을 수 없기에, 결국 원작과 같은 계열(수입상의 문제로)의 종이인 '문켄 퓨어 러프'를 사용했다. 종이의 장점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엄격한 친환경 글로벌 인증인 'FSC'를 획득했다는 점이 선택의 열쇠가 되었다.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의 모체인 '해바라기 프로젝트'에서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작품을 번역한 이력이 있어서이다.
인쇄는 하이델베르그사의 '스피드마스터 XL 106'에서 CIP3 옵션으로 찍었다. CIP3란 편집 데이터와 인쇄가 디지털로 통합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의도한 색상을 구현하기 훨씬 수월하다. 사실 CIP3는 많은 인쇄소에서 도입하고 있다. 문제는 로버트 헌터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매일 구글 검색을 통해 CIP3를 도입한 인쇄소 리스트를 만들고, 한국 하이델베르그사에 전화해 납품처 리스트를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답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얻었다. 선한 마음씨와 따뜻한 작품 만들기로 유명한 『다시 봄 그리고 벤』의 박민하 작가와의 우연한 통화 중에 그녀는 "어? 우리 CIP3로 인쇄했어요!"라고 알려주었고, 덕분에 '상지사피앤비'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제본은 유명 제본사 '신안제책사'에서 천양장으로 제작해 판화적인 느낌의 표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IV. 한국어판의 특별함 : 초판 표지 사용과 개정판 포스터 수록
『하루의 설계도』의 표지는 총 3개이다. 영국 초판은 노란색, 프랑스어판은 파란색, 그리고 개정판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표지를 사용했다. 한국어판은 초판의 노란색을 사용했다. 지금 노란 표지는 아마존UK에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기에 로버트 헌터의 팬들이 구매하기 부담될 것 같아서이다. 이에 한국에 큰 호감을 갖고 있는 로버트 헌터는 개정판 표지를 포스터로 만들어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에디시옹 장물랭'에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포스터 역시 작품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색상으로 인쇄했다. 포스터는 포장 된 서적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V. 한 권의 책에 쏟는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독자의 정성
로버트 헌터 작품의 특징은, 작가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출판사는 그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떠받들고, 독자는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고 감시한다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네트워크가 기능할 수 있는 까닭은, 헌터의 작품은 수십 번 꺼내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에, 그래서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신간 찍어내기에 급급해진 출판계는 한 권 한 권에 애정이 줄어들었다. 사회적으로도 책은 하나의 콘텐츠로 전락해 '소비'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헌터의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린시절을 향수하게 만드는 것처럼, 인간과 책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책으로부터 채움을 받고, 그 대신 아껴주며, 둘의 관계는 사랑으로 얽히는. 그래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물질이 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헌터는 언제나 가족과의 추억과 어린 시절에 느꼈던 단편들을 이야기의 길잡이로 삼곤 한다. 『새내기 유령』이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라면, 『하루의 설계도』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다. 그는 이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스스로도 작업하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에 젖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순진무구했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의 외조부님은 바닷가에 사셨던 모양이다. 언젠가 바닷가를 찾은 로버트 헌터는 바다를 바라보고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시계 수집가였던 외할아버지, 언제나 시계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신경 쓰시던 모습, 함께 정원을 가꾸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같이 해변을 거닐면서 물었던 어린아이의 순수한 궁금증, '파도는 왜 일어나죠?'. 성인이 된 이야기꾼 헌터는 그것이 태양을 사랑한, 태양에게 다가가고픈 지구의 몸짓이라 해석하고, 추억의 단편들과 반죽해 또 하나의 근사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프롤로그 -
무(無)에서 우주가 탄생했습니다. 신생아 우주는 자라기로 마음먹었죠.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칠흑 같은 공간에서 최초의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아홉 형제'.
그들은 차가운 우주를 고요히 표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홉 형제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주의 먼지를 이용해 저마다의 안식처를 만들었죠.
그런데 한 형제는 안식처가 완성되어도 무언가 만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술적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식물을 창조했고, 그것을 성장시켜 안식처 표면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상에 도달한 식물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어요.
복잡하고 풍성해졌죠.
이 사실은 신경처럼 연결된 뿌리를 통해 그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는 호기심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식물이 변한 이유를 알아내고자 애써 만든 안식처를 부수고 지상으로 향합니다.
지상으로 나온 그는 처음 느껴보는 밝음과 따사로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 이유가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구체 때문임을 깨닫죠. 그는 구체를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일방적인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게 되어,
안식처를 만들었던 힘을 다시금 발휘해 구체를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너무나 뜨겁고 커다란 구체가 다가오자
그가 만든 안식처와 식물들은 파멸될 위험에 놓입니다…
II. 특별한 4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색상의 향연
모바일이나 컴퓨터로 이 소개를 보고 있다면 고작 3가지 색상으로 구현된 이미지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RGB'(빨강, 녹, 파랑)이다. 종이책은 대량 생산 콘텐츠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위상에 걸맞게 4원색(CMYK)으로 색상을 구현한다. 종이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쇄 상태, 종이의 질감, 제본 방식, 이 모든 것들이 아우러진 냄새까지, 우리에게 훨씬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감각을 선서한다. 결국 웹의 이미지와 출판물의 차이는, 근사한 음식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음미하는 만큼이나 크다고 볼 수 있다. 로버트 헌터는 『하루의 설계도』에서 4원색보다 더욱 진화한 4가지의 특별한 색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팬톤 116U', '팬톤 192U', '팬톤 406U', '팬톤 헥사크롬 시안 U'을 사용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헌터의 작품은 제작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특히 특별한 색상은 대량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색상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에서는 아등바등해야 한다. 이 작업은 보통 인쇄소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정확도도 크게 떨어질뿐더러, 매번 색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지만, 헌터의 독자들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출판사를 감시하고 지적한다.
한국어판에서는 정확한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인쇄용 잉크 전문 제작소 '광명잉크'에 의뢰해 방앗간에 떡 주문하듯 컴퓨터 조색을 통해 맞췄다. 덕분에 기준 색상과 일치율 98% 이상을 끌어낼 수 있었다. 시력 6.0을 자랑하는 몽골 출신의 디자이너조차 표준 컬러와 이 책에서 사용한 색상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III. 훌륭한 작품에는 그에 맞는 제작이 필요하다.
헌터의 색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종이가 필수이다. 검은색을 쓰지 않는 로버트 헌터는 어두운 부분을 채도를 최대 레벨로 높여 쓴다. 그래서 잉크 사용량이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잉크 사용량 400%까지 구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쇄소에서는 250%도 위험하게 생각하는데, 잘못하면 인쇄용지가 물에 담근 휴지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터의 작품은 무조건 종이가 버텨줘야 한다.
원작에서는 광택이 없고 손에 닿는 까쓸한 느낌이 매력적인 '문켄 프린트 크림 페이퍼'를 사용했다. 유명 제지업체 '아르크틱 페이퍼'의 걸작이다. 문켄 페이퍼는 비도공지임에도 불구하고 고급지만큼 색상을 뚜렷하게 발현한다. 국산지에는 이런 종이를 찾을 수 없기에, 결국 원작과 같은 계열(수입상의 문제로)의 종이인 '문켄 퓨어 러프'를 사용했다. 종이의 장점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엄격한 친환경 글로벌 인증인 'FSC'를 획득했다는 점이 선택의 열쇠가 되었다.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의 모체인 '해바라기 프로젝트'에서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작품을 번역한 이력이 있어서이다.
인쇄는 하이델베르그사의 '스피드마스터 XL 106'에서 CIP3 옵션으로 찍었다. CIP3란 편집 데이터와 인쇄가 디지털로 통합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의도한 색상을 구현하기 훨씬 수월하다. 사실 CIP3는 많은 인쇄소에서 도입하고 있다. 문제는 로버트 헌터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매일 구글 검색을 통해 CIP3를 도입한 인쇄소 리스트를 만들고, 한국 하이델베르그사에 전화해 납품처 리스트를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답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얻었다. 선한 마음씨와 따뜻한 작품 만들기로 유명한 『다시 봄 그리고 벤』의 박민하 작가와의 우연한 통화 중에 그녀는 "어? 우리 CIP3로 인쇄했어요!"라고 알려주었고, 덕분에 '상지사피앤비'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제본은 유명 제본사 '신안제책사'에서 천양장으로 제작해 판화적인 느낌의 표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IV. 한국어판의 특별함 : 초판 표지 사용과 개정판 포스터 수록
『하루의 설계도』의 표지는 총 3개이다. 영국 초판은 노란색, 프랑스어판은 파란색, 그리고 개정판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표지를 사용했다. 한국어판은 초판의 노란색을 사용했다. 지금 노란 표지는 아마존UK에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기에 로버트 헌터의 팬들이 구매하기 부담될 것 같아서이다. 이에 한국에 큰 호감을 갖고 있는 로버트 헌터는 개정판 표지를 포스터로 만들어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에디시옹 장물랭'에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포스터 역시 작품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색상으로 인쇄했다. 포스터는 포장 된 서적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V. 한 권의 책에 쏟는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독자의 정성
로버트 헌터 작품의 특징은, 작가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출판사는 그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떠받들고, 독자는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고 감시한다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네트워크가 기능할 수 있는 까닭은, 헌터의 작품은 수십 번 꺼내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기에, 그래서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신간 찍어내기에 급급해진 출판계는 한 권 한 권에 애정이 줄어들었다. 사회적으로도 책은 하나의 콘텐츠로 전락해 '소비'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헌터의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린시절을 향수하게 만드는 것처럼, 인간과 책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책으로부터 채움을 받고, 그 대신 아껴주며, 둘의 관계는 사랑으로 얽히는. 그래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물질이 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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