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의 꽃
이경 장편소설
이경 장편소설 『탈의 꽃』. 산 자와 죽은 자의 미소가 담긴 탈! 사랑과 목숨을 답보하며 찾아내고자 했던 세 개의 하회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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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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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잃어버린 세 개의 탈을 스승이 복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스승의 건강이 악화되자, 스승이 마을 촌장과 유지들을 설득해 해인이가 제작하는 게 좋다고 추천했던 것이다. 스승은 젊은 기운을 탈 속에 심어 놔야 한다는 이유로 해인을 데려가 마을 유지들 면전에 선보였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꺼림칙해 하는 유지들도 몇 있었지만 스승이 워낙 강경하게 추천을 하는 통에 해인이 낙점된 것이다. 탈을 제작하는 비용은 모두 마을 공동예산처리하기로 했기에 해인으로써는 기회였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엄청난 작업을 삼칠일 동안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해인은 가부장제도라는 틀에 묶여 있는 유지들의 눈에 들어 하지 않는 여자의 신분이었다. 몇몇 마을사람들이 고운 시선으로 봐줄리 없었다. 하지만 스승은 마을의 안녕이 더 시급하다며 그들까지도 모두 설득했다. 급기야 공산군에게 서울이 함락되었고, 전세가 불리하다는 풍문까지 나돌아 마을 사람모두가 스승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해인은 하회마을을 오가면서 스승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세 개의 탈 복원과 국란을 막아내는 탈을 모두 제작하는 수제자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잃어버린 세 개의 총각탈, 떡달이탈, 별채탈을 복원하는 일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삼칠일 가지고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워낙 전세가 위급하다보니 하루가 촉박했다. 해인은 그녀에게 맡겨진 임무가 막중하다는 중압감에 주눅이 들다가도 힘이 솟구쳤다. 더구나 여자가 아닌가. 전설에 의하면, 허도령이 탈을 제작할 때 부정을 탄다 해서 금줄을 쳤다. 금줄을 치고 들어앉는 순간부터 여자와 부정을 탄 사람의 범접을 막았다. 하물며 여자에게 하회탈 복원을 맡긴다는 것은 오랜 금기를 깨는 일이었다.
해인은 탈방에 들어앉아 탈 제작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인민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인심까지 흉흉해졌다. 몇몇 주민은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가기도 했고, 더 남쪽으로 행선지를 옮기기 위해 마을이 술렁거렸다.
해인은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마을 어귀, 광대들의 꽃갓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녀도 그 광대들과 함께 어울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에 참석해야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해인은 돌아서서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 동그란 두 눈, 오독하게 선 콧날, 깊게 패인 인중 아래 붉은 입술이 오목오목 조화롭지만 살빛이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 같았다. 해인은 전과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얼굴을 비비자, 바싹 마른 김처럼 얼굴이 바스락댔다. 살갗에 피어난 살 돋음이 분명 예전과 다른 파장을 일으키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다. 그녀는 쓰러지듯 눅눅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불길한 이 느낌, 뭔가 분명 일어날 것만 같은 조짐이 가슴에서 일어났다.
스승은 탈을 깎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강신을 받으라고 했다. 그 의식은 탈의 신을 몸 안에 모셔두는 일인데도 선뜻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 몸을 뒤척이다 설핏 나른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욱!'
쓴 물이 목울대를 지나 입 안 가득 고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속이 메스꺼웠다. 온몸이 버들가지처럼 축축 늘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눈만 감으면 눈꺼풀 끝에 희미한 의식이 살아 꿈틀대며, 물 위를 동동 떠다니는 부표처럼 마음이 찰랑찰랑 흔들거렸다.
해인은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으나, 흐릿한 환영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때로는 알 수 없는 활자들이 뇌리 안에 깊숙하게 차고 들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게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한 때문이라고 스승은 말했다.
'아직 덜 여물었기에 허한 것이다.'
그때, 흐릿하게 한 여자가 기웃거리며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저 밑바닥까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얼굴 가득 푸른빛이 도는 여자였다. 어디에선가 본 듯 낯이 익었다. 각시탈을 닮아있는 듯도 했다. 아, 자신을 몹시 닮아 있는 각시탈의 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지?'
해인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몸을 버둥거렸다.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위에라도 눌린 것인지, 옴짝 할 수가 없었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한곳으로 모아지고, 끝내 어른거리던 어머니 얼굴이 또다시 되살아났다.
어머니의 모습은 늘 같은 모습이었다. 그 영상은 오랜 기억이 만들어낸 파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 언제쯤 그 모습이 가슴에서 지워질까?'
해인은 두 손을 움직여 깍지를 끼고 살살 비볐다. 두 손바닥 살갗의 열기가 느껴졌다. 점점 촉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맞댄 손바닥 사이에 톱밥 알갱이가 끼어 있어 촉촉한 땀이 베어 나왔다.
그녀는 탈 깎는 일을 하는 공예가였다. 스승을 만나 탈 깎는 것을 배운 게 십 년이나 되었으니, 손바닥 지문이 없어질 때도 되었다.
탈을 깎다 보면 손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미세한 손끝의 움직임,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교한 칼날의 흔들림까지도 읽어내야 하는 손의 감각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손바닥 지문이 닳아 없어질 만큼 끌을 잡아도 손바닥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차
목차
2 대숲으로 가는 길 43
3 꽃다지 73
4 주지 한 쌍 95
5 동굴 126
6 신호등 148
7 양대꽃 173
8 신들의 얼굴 207
9 총각탈 233
저자
저자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03년, 첫 장편소설 '는개' 출간
-2007년,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출간
-2012년, 장편소설 '탈'출간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현)불교공뉴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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