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너머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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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 *다비드 디옵 (David Diop)의 상상력이 빚어낸 마술적 서사!
* * *2021년 부커 인터내셔날 수상작가! 프랑스 공쿠르 고교생 상 수상작가!
* * *로스앤젤레스 타임지 베스트셀러상 수상 작가!
* * *유라시아의 각종 국제 공쿠르를 휩쓴 프랑스의 신예!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작별 너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먼저 "아당송과 마람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에선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인 사랑이 연상된다. 마람이 노예로 팔려 갔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돌아온 여인'으로 불렸던 점, 아당송이 막지 못한 마람의 두 번째 죽음 그리고 마람의 수호 신랑이 보아뱀이었던 점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가 등장한다.
아당송은 우연히 '돌아온 여인'에 대한 소문만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극적으로 마람을 만나게 된다. 마람은 소문만 듣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백인 아당송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아당송을 치료해주면서 신뢰하게 되고, 마람은 아당송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왜 늙은 치유사로 변장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소녀 마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당신에게 저의 정체를 드러내고 당신 앞에선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이 대목에서 마람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다시 이어갔다. "당신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백인 중에서뿐 아니라 제 종족의 남자들과 비교해서도요."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식물학자인 아당송과 아프리카의 자연 속에서 살아온 마람은 자연과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열병으로 죽을 뻔한 아당송을 치료해 준 것도 식물 치유사로 살아온 마람의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분이었다.
마람이 이 빛을 발하는 소금물을 가져다, 밤에 그녀의 오두막을 밝히는 불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나의 애틋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는 그녀가 표현하는 방식의 세계관을 갖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수호천사의
존재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고대 종교의 반인 반수의 존재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쓸모 없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같은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중간생략)
마람과 나는 또한 자연의 신비에 대해서도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의 존재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했고, 나는 자연을 꿰뚫어 보고 세세히 파악하고자 했다. 이성과 사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내가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 이성적 이유는 이것이었다.(pp.205~206)
아당송이 식물학자로서 세네갈에서 자신이 하려는 일을 설명하자, 마람은 그 일이 결국 세네갈을 죽이는 일이며 백인 노예 사냥꾼들을 돕는 거라고 반박한다.
나를 예외적인 인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나는, 세네갈 조계지에서 일하는 자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부류이며 그들과는 그저 형식적인 관계만 맺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순수하게 세네갈의 야수들과
식물군을 관찰하고 조사하러 온 것이라고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반박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기록들은 분명 조계지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사용할 거라는 걸 모르시나요.
순진한 건가요, 아님 모른 척하는 건가요?" (p.170)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애틋한 감정을 나누던 아당송과 마람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조카 마람을 죽이려 찾아온 삼촌 바바섹은 마람이 길들이던 보아뱀에게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이로 인해 마람은 다시 노예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한다. 아당송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마람이 팔려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강력한 노예제도는 마람의 죽음을 불러온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을 향해 달려간 순간 운명의 신은 마람을 죽음으로, 아당송은 삶으로 귀환시킨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유리디스의 비극처럼 '돌아온 여인' 마람은 결국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눈앞에서 마람을 잃은 아당송은 허탈한 심정으로 방황하다가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마람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유칼립투스 나뭇잎 타는 냄새를 없애려고 한 해변의 숲을 모두 태워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프랑스로 귀국해 모든 걸 잊고 식물 연구에만 매진하던 어느 날, 아당송은 어느 초대된 파티에서 마람을 닮은 초상화를 마주하게 된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페라가 한 대목이 연주되는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마치 마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지옥으로 내려온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스를 바라보지도 않자, 그를 원망하며 탄식하는 유리디스의 심정을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들 뒤편으로 나는 마들렌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상상이 불러일으킨 착란에 의해서 난, 마치 마람이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를 지옥에 던져 버리고 잊고 사는 날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람은 아직도 내게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초상화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람은 마침내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행복해하다가, 죽음이 다시 그녀를 데려가려는 순간, 오르페우스가 연기한 무관심의 이유를 깨달은 유리디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려 있던 그 시간을 나는 마람과 함께 경험했 다. 나는 그녀의 오르페우스였고, 그녀는 나의 유리디스였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글루크의 오페라와는 달 리, 난, 마람을 완전히 잃었다. (pp.338~339)
마들렌의 초상화가 의미하는 것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신화가 복선처럼 깔려있지만, 소설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있다. 18세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이 배경이고, 세네갈을 여행했던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알게 되는 세네갈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유럽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비극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대를 이어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소설 말미에 짧게 등장하는 '마들렌'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는 노예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통과 혼란을 이야기한다. '마들렌'이라는 젊은 여인은 외모는 마람과 닮았지만 마람과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온 마들렌은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아무런 기억도 없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애절한 사연도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선물도 그냥 싫고 부담스러울 뿐,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가 불운을 가져오는 것만 같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를 싫어했다. 그녀는 초상화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초상화가 자기의 남은 인생에서 왠지 불운을 가져올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초상화를 본 남자들은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거나 급기야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 했다.(p.342)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마들렌의 초상화를 본 아당송은 마치 마람이 자신을 찾아와 크게 원망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마들렌의 초상화를 보고 회한에 잠겼던 아당송은 딸 아글라에에게 마들렌이란 인물을 찾아 몇 가지 선물을 전달해 달라는 유지를 남긴다. 그런데 마들렌은 아글라에가 찾아와 건넨 선물을 기겁하며 거절한다. 아당송이 마람을 닮은 마들렌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마들렌에겐 수상쩍은 사람이 건네는 한낱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에 불과했다.
전날에는 어떤 한 여인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산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를 주면서 미셸 당송…인가? 뭐,
그런 이름을 가진 죽은 사람을 위해 이걸로 술이나 한잔 사 마시라고 했다. 그녀는 그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를
거절했다. 그녀 자신은 더 이상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거래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브누아스트-카베이 가문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pp.342~343)
마들렌은 '빨간 머리의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도 슬픈 망상이라며 웃어넘길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지만, 나 마들렌은 그들처럼 웃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오르페우스의 슬픈 망상에 울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미소 지었다.(p.344)
소설 속에서 '오르페우스'란 이름은 서로 다른 뉘앙스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주인공 아당송은 자신을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르페우스라고 생각하고 마람을 유리디스라고 감정이입하며 슬퍼한다. 그런데 또 다른 오르페우스는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의 이름이다. 노인은 소설 속에서 아당송이 어떤 마을에 들렸을 때 우연히 만났던 남자아이로 추정되는데, 이 노인 오르페우스에게 저주를 불러온 그 백인 악마가 바로 미셸 아당송이란 사실이 우연의 일치일까?
그녀의 고향 카페스테르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한 노인을 알고 있다. 그는 늙은 오르페우스였다.
우리는 그를 놀리기 위해, 그가 플렌테이션 농장에 도착했을 때 브누아스트의 아버지가 지어준 오르페우스라는
이름 대신 마쿠 라풀이라 불렀다.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할 때면, 그가 어릴 때 만난 백인 악마의 나쁜 눈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마쿠는 그가 아기였을 때, 하늘에서 아프리카 마을에 떨어진 백인의 머리카락을
심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에 그와 누이가 납치되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p.344)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시대적 아쉬움과 회한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빛나는 업적을 남긴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왜 극악무도한 노예제도에는 침묵하고 방관했는지, 유럽 열강들은 왜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들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포획했는지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미셸 아당송이란 식물학자가 남긴 여행기 한 자락으로 마술적 서사를 이루게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작별 너머》는 어쩌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 * *2021년 부커 인터내셔날 수상작가! 프랑스 공쿠르 고교생 상 수상작가!
* * *로스앤젤레스 타임지 베스트셀러상 수상 작가!
* * *유라시아의 각종 국제 공쿠르를 휩쓴 프랑스의 신예!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작별 너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먼저 "아당송과 마람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에선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적인 사랑이 연상된다. 마람이 노예로 팔려 갔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돌아온 여인'으로 불렸던 점, 아당송이 막지 못한 마람의 두 번째 죽음 그리고 마람의 수호 신랑이 보아뱀이었던 점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가 등장한다.
아당송은 우연히 '돌아온 여인'에 대한 소문만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극적으로 마람을 만나게 된다. 마람은 소문만 듣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백인 아당송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아당송을 치료해주면서 신뢰하게 되고, 마람은 아당송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왜 늙은 치유사로 변장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소녀 마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역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제가 당신에게 저의 정체를 드러내고 당신 앞에선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이 대목에서 마람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다시 이어갔다. "당신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느껴졌어요. 백인 중에서뿐 아니라 제 종족의 남자들과 비교해서도요."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식물학자인 아당송과 아프리카의 자연 속에서 살아온 마람은 자연과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막의 열병으로 죽을 뻔한 아당송을 치료해 준 것도 식물 치유사로 살아온 마람의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분이었다.
마람이 이 빛을 발하는 소금물을 가져다, 밤에 그녀의 오두막을 밝히는 불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나의 애틋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는 그녀가 표현하는 방식의 세계관을 갖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수호천사의
존재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고대 종교의 반인 반수의 존재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쓸모 없는 것일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같은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중간생략)
마람과 나는 또한 자연의 신비에 대해서도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의 존재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려 했고, 나는 자연을 꿰뚫어 보고 세세히 파악하고자 했다. 이성과 사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내가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된 이성적 이유는 이것이었다.(pp.205~206)
아당송이 식물학자로서 세네갈에서 자신이 하려는 일을 설명하자, 마람은 그 일이 결국 세네갈을 죽이는 일이며 백인 노예 사냥꾼들을 돕는 거라고 반박한다.
나를 예외적인 인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나는, 세네갈 조계지에서 일하는 자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부류이며 그들과는 그저 형식적인 관계만 맺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순수하게 세네갈의 야수들과
식물군을 관찰하고 조사하러 온 것이라고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반박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기록들은 분명 조계지 상인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사용할 거라는 걸 모르시나요.
순진한 건가요, 아님 모른 척하는 건가요?" (p.170)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애틋한 감정을 나누던 아당송과 마람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조카 마람을 죽이려 찾아온 삼촌 바바섹은 마람이 길들이던 보아뱀에게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이로 인해 마람은 다시 노예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한다. 아당송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마람이 팔려가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강력한 노예제도는 마람의 죽음을 불러온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을 향해 달려간 순간 운명의 신은 마람을 죽음으로, 아당송은 삶으로 귀환시킨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유리디스의 비극처럼 '돌아온 여인' 마람은 결국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눈앞에서 마람을 잃은 아당송은 허탈한 심정으로 방황하다가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마람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유칼립투스 나뭇잎 타는 냄새를 없애려고 한 해변의 숲을 모두 태워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프랑스로 귀국해 모든 걸 잊고 식물 연구에만 매진하던 어느 날, 아당송은 어느 초대된 파티에서 마람을 닮은 초상화를 마주하게 된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페라가 한 대목이 연주되는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마치 마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지옥으로 내려온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스를 바라보지도 않자, 그를 원망하며 탄식하는 유리디스의 심정을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들 뒤편으로 나는 마들렌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고, 상상이 불러일으킨 착란에 의해서 난, 마치 마람이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를 지옥에 던져 버리고 잊고 사는 날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람은 아직도 내게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초상화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람은 마침내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행복해하다가, 죽음이 다시 그녀를 데려가려는 순간, 오르페우스가 연기한 무관심의 이유를 깨달은 유리디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려 있던 그 시간을 나는 마람과 함께 경험했 다. 나는 그녀의 오르페우스였고, 그녀는 나의 유리디스였다. 그러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글루크의 오페라와는 달 리, 난, 마람을 완전히 잃었다. (pp.338~339)
마들렌의 초상화가 의미하는 것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신화가 복선처럼 깔려있지만, 소설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있다. 18세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이 배경이고, 세네갈을 여행했던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알게 되는 세네갈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유럽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비극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대를 이어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소설 말미에 짧게 등장하는 '마들렌'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작가는 노예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통과 혼란을 이야기한다. '마들렌'이라는 젊은 여인은 외모는 마람과 닮았지만 마람과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온 마들렌은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고향에 대한 향수도 아무런 기억도 없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애절한 사연도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선물도 그냥 싫고 부담스러울 뿐,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가 불운을 가져오는 것만 같다.
마들렌은 자신의 초상화를 싫어했다. 그녀는 초상화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초상화가 자기의 남은 인생에서 왠지 불운을 가져올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 초상화를 본 남자들은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거나 급기야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어 했다.(p.342)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마들렌의 초상화를 본 아당송은 마치 마람이 자신을 찾아와 크게 원망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마들렌의 초상화를 보고 회한에 잠겼던 아당송은 딸 아글라에에게 마들렌이란 인물을 찾아 몇 가지 선물을 전달해 달라는 유지를 남긴다. 그런데 마들렌은 아글라에가 찾아와 건넨 선물을 기겁하며 거절한다. 아당송이 마람을 닮은 마들렌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은, 마들렌에겐 수상쩍은 사람이 건네는 한낱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에 불과했다.
전날에는 어떤 한 여인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산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 하나를 주면서 미셸 당송…인가? 뭐,
그런 이름을 가진 죽은 사람을 위해 이걸로 술이나 한잔 사 마시라고 했다. 그녀는 그 싸구려 목걸이와 금화를
거절했다. 그녀 자신은 더 이상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거래는 이미 끝난지 오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브누아스트-카베이 가문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pp.342~343)
마들렌은 '빨간 머리의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도 슬픈 망상이라며 웃어넘길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지만, 나 마들렌은 그들처럼 웃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오르페우스의 슬픈 망상에 울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미소 지었다.(p.344)
소설 속에서 '오르페우스'란 이름은 서로 다른 뉘앙스로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주인공 아당송은 자신을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오르페우스라고 생각하고 마람을 유리디스라고 감정이입하며 슬퍼한다. 그런데 또 다른 오르페우스는 "백인 악마 때문에 노예로 납치"됐다고 넋두리하는 노인의 이름이다. 노인은 소설 속에서 아당송이 어떤 마을에 들렸을 때 우연히 만났던 남자아이로 추정되는데, 이 노인 오르페우스에게 저주를 불러온 그 백인 악마가 바로 미셸 아당송이란 사실이 우연의 일치일까?
그녀의 고향 카페스테르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한 노인을 알고 있다. 그는 늙은 오르페우스였다.
우리는 그를 놀리기 위해, 그가 플렌테이션 농장에 도착했을 때 브누아스트의 아버지가 지어준 오르페우스라는
이름 대신 마쿠 라풀이라 불렀다.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할 때면, 그가 어릴 때 만난 백인 악마의 나쁜 눈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마쿠는 그가 아기였을 때, 하늘에서 아프리카 마을에 떨어진 백인의 머리카락을
심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에 그와 누이가 납치되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p.344)
《작별 너머》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시대적 아쉬움과 회한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빛나는 업적을 남긴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왜 극악무도한 노예제도에는 침묵하고 방관했는지, 유럽 열강들은 왜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들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포획했는지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미셸 아당송이란 식물학자가 남긴 여행기 한 자락으로 마술적 서사를 이루게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작별 너머》는 어쩌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목차
목차
1부_ 무궁화꽃의 비밀_11
2부_ 미셸 아당송_73
3부_ 마람_73
4부_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_275
옮긴이의 말
2부_ 미셸 아당송_73
3부_ 마람_73
4부_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문_275
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다비드 디옵
(David Diop)
파리 출생, 불문학자, 소설가
1966년 파리에서 태어난 다비드 디옵은 세네갈에서 성장했다. 세네갈에서 청소년기를 거친 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1998년부터 18세기 불문학 학자로서 활동해왔다. 현재 남불의 포(PAU)대학에서 문학교수로 재직중이다. 2018년 출간한 《영혼의 형제 Fr?re d'?me》(Seuil 출판사)로 프랑스 공쿠르 고교생 상과 유라시아의 각종 국제 공쿠르 상을 휩쓸었으며, 2021년엔 미국의 시인 안나 모스코바키스의 번역으로 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하였다. 부커상 수상작은 우리나라에 2022년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이외에 지은 책으로 《1889, 보편적 매력》 (L'Harmattan 출판사, 2012)이 있다.
파리 출생, 불문학자, 소설가
1966년 파리에서 태어난 다비드 디옵은 세네갈에서 성장했다. 세네갈에서 청소년기를 거친 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1998년부터 18세기 불문학 학자로서 활동해왔다. 현재 남불의 포(PAU)대학에서 문학교수로 재직중이다. 2018년 출간한 《영혼의 형제 Fr?re d'?me》(Seuil 출판사)로 프랑스 공쿠르 고교생 상과 유라시아의 각종 국제 공쿠르 상을 휩쓸었으며, 2021년엔 미국의 시인 안나 모스코바키스의 번역으로 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하였다. 부커상 수상작은 우리나라에 2022년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이외에 지은 책으로 《1889, 보편적 매력》 (L'Harmattan 출판사, 201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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