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마리의 꿈 여행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한 책
Regular price
$11.01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핑크 마리의 꿈 여행』 서평 中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당당깨몽!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꿈을 버리거나 잊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꿈밖의 삶을 산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행동만 하면서 사는 셈이다. 시인에게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사고하는 기능을 갖는다. 달리 말한다면 꿈을 잊고 버리는 삶은 관찰과 사유가 결여되어 있는 삶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런 삶들에 대한 꿈의 여행자 마리의 지적이 매우 따끔하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무 목적성(「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스스로 최고라고 여기는 공허한 사람들 (「최고몽자(最高夢者)」), 남을 무조건 따라하다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쏜 살 몽인(SSONSAL 夢人」),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어느 줄에 서야할지 눈치나 보고 있는 모습들(「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말을 마구 뱉으며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들(「357도 말 바꾸는 사람, 말사람(馬夢人)」)에 대한 희화적인 묘사가 통쾌하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꿈꾸는 마리의 눈에 비친 꿈 없이 사는 사람들, 그래서 역으로 꿈 몽(夢)자를 붙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시인이 시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분노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의 시인의 눈길은 지극히 맑고 명랑하게 느껴진다. 실은 그 시들을 보고 내가 놀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부정적인 것들을 향한 분노와 안타까움의 표출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맑고 명랑하게 그런 것을 희화화하고 풍자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경지를 요구한다. 우리의 시인이 그 경지에 오르다니, 놀랍고 반갑다!
- 진형준(작가, 前 홍익대 불문과 교수)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당당깨몽!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꿈을 버리거나 잊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꿈밖의 삶을 산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행동만 하면서 사는 셈이다. 시인에게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사고하는 기능을 갖는다. 달리 말한다면 꿈을 잊고 버리는 삶은 관찰과 사유가 결여되어 있는 삶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런 삶들에 대한 꿈의 여행자 마리의 지적이 매우 따끔하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무 목적성(「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스스로 최고라고 여기는 공허한 사람들 (「최고몽자(最高夢者)」), 남을 무조건 따라하다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쏜 살 몽인(SSONSAL 夢人」),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어느 줄에 서야할지 눈치나 보고 있는 모습들(「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말을 마구 뱉으며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들(「357도 말 바꾸는 사람, 말사람(馬夢人)」)에 대한 희화적인 묘사가 통쾌하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꿈꾸는 마리의 눈에 비친 꿈 없이 사는 사람들, 그래서 역으로 꿈 몽(夢)자를 붙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시인이 시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분노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의 시인의 눈길은 지극히 맑고 명랑하게 느껴진다. 실은 그 시들을 보고 내가 놀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부정적인 것들을 향한 분노와 안타까움의 표출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맑고 명랑하게 그런 것을 희화화하고 풍자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경지를 요구한다. 우리의 시인이 그 경지에 오르다니, 놀랍고 반갑다!
- 진형준(작가, 前 홍익대 불문과 교수)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마리는 따뜻한 햇살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을 때 핑크색이 보인다고 했다. 마리가 바라는 꿈은 어쩌면 핑크색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과 경험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열망과 갈등, 그리고 상처의 덩어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꿈은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마음을 그대로 현현(顯現)하는 현실을 반영한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마리에게 그러한 꿈의 상징들은 심오한 시의 모티브가 된다. - 흰빛 출판사 서평 -
시적 상상력이 영화 같은 산문시(「갑자기 튕겨 나온 마리」) /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창의적인 이야기시(「산속도(山速圖)」) / 작은 에세이와 동화,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미래를 점치는 한의원」) / 탁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밝고 건강하다.(「너의 능력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어」) / 산만한 공상력으로 멋스럽게 만든 자기구호와 자기암시(「시간은 둥둥 구름처럼 떠다닌다.」) - pjlhope님 독자평 -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 당당깨몽!
- 진형준 | 작가, 前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박혜영은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의 한 명이다. 그래서 박혜영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안다. 나는 박혜영의 시들을 읽으며 박혜영의 눈빛을, 박혜영의 목소리를, 박혜영의 삶을 고스란히 떠올린다. 박혜영의 시들은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 보내는 박혜영의 눈빛이고 박혜영의 발언이며, 박혜영이 보여주는 자신의 삶이다. 나는 이렇게 온전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를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혜영의 시들은 자기 고백이며 자서전이기도 하다.
시로 쓴 자서전? 우선 그 양식이 아주 독특하다. 자서전이라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산문적으로 서술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박혜영에게는 시로 쓰는 자서전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박혜영의 삶 자체가, 박혜영이 삶을 사는 방식 자체가 산문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기 때문이다. 박혜영의 삶 자체가 시적이라는 말에 대해 오해 없기 바란다. 박혜영이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박혜영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영학도이다. 어찌 보면 시인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박혜영은 경영학을 〈인간답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난다. 경영학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효율성의 학문〉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박혜영은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내세운다. 그리고 문학을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박혜영의 정의에서 문학과 경영학은 손을 잡는다. 박혜영은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문학과 결별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박혜영은 시인의 자세로 경영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바로 〈꿈〉이다. 박혜영에게 꿈은 문학과 경영학이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혜영에게는 세상 자체가 꿈 여행이다. 『핑크 마리의 꿈 여행』은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잠시 꾸었던 꿈의 기록이 아니다. 그 여행은 꿈으로의 침잠도 아니고 꿈으로의 도피도 아니다. 그 여행은 꿈을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간 체험 바로 그것이다. 『핑크 마리의 꿈 여행』은 시인으로서 꿈을 꾸며 세상을 살았던, 아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체험 기록이며 서사시이다. 박혜영에게 꿈은 아예 생래적이다.
마리는
꿈을 보고 싶어서
꿈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꿈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꿈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마리는
꿈속을 헤매다가
꿈밖을 다니다가
꿈안을 정리했다.
꿈속, 마리는 관찰한다.
꿈밖, 마리는 행동한다.
꿈안, 마리는 생각한다.
(···)
여기가 꿈속인지,
여기가 꿈밖인지,
꿈안이 지금인지,
매일 꿈 보는
마리는 미리 알 길 없다.
살아 있는 동안에
마리는 절대 꿈을 피할 수 없다. (「매일 꿈을 보는 마리」)
마리의 삶은 아예 꿈속과 꿈밖과 꿈안의 셋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마리는 절대로 꿈을 피할 수 없다. 꿈은 마리의 운명이다. 〈여기가 꿈속인지, / 여기가 꿈밖인지, / 꿈안이 지금인지,〉라는 시구는 흡사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연상시킨다.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넘나든다. 따라서 그 꿈은 일종의 깨어 있는 꿈이며 꿈밖에서도 작용하는 꿈이다.
사실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꿈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마리만의 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꿈을 버리거나 잊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꿈밖의 삶을 산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행동만 하면서 사는 셈이다. 시인에게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사고하는 기능을 갖는다. 달리 말한다면 꿈을 잊고 버리는 삶은 관찰과 사유가 결여되어 있는 삶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런 삶들에 대한 꿈의 여행자 마리의 지적이 매우 따끔하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무 목적성(「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스스로 최고라고 여기는 공허한 사람들 (「최고몽자(最高夢者)」), 남을 무조건 따라하다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쏜 살 몽인(SSONSAL 夢人」),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어느 줄에 서야할지 눈치나 보고 있는 모습들(「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말을 마구 뱉으며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들(「357도 말 바꾸는 사람, 말사람(馬夢人)」)에 대한 희화적인 묘사가 통쾌하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몽(夢)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도 너무 재미있다. 실제로 그들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들에게 모두 꿈 몽(夢)자 타이틀을 부여했다. 나는 그 표현에서 그들의 모습을 마치 유령처럼 내 눈 앞에 떠올린다. 가장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유령처럼 보다니! 그것 역시 마리의 꿈이 발휘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지나는 길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 꿈꾸는 마리의 눈에 비친 꿈 없이 사는 사람들, 그래서 역으로 꿈 몽(夢)자를 붙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시인이 시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분노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의 시인의 눈길은 지극히 맑고 명랑하게 느껴진다. 실은 그 시들을 보고 내가 놀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부정적인 것들을 향한 분노와 안타까움의 표출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맑고 명랑하게 그런 것을 희화화하고 풍자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경지를 요구한다. 우리의 시인이 그 경지에 오르다니, 놀랍고 반갑다!
밖을 향했던 꿈꾸는 시인의 눈은 이제 자신을 향한다. 제2부 「꿈에 빠진 마리」는 그 꿈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 기록들이다. 그것들은 꿈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운명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시들에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 작은 에세이 같은 시도 있으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들도 있으며 자신의 사회 경험을 묘사한 것도 있고 현실 풍자 시들도 있다. 각각의 시 한 편, 한 편이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그 꿈꾸는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그 지향점은 명확해진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잃었을지도 모를 인간적 가치들을 스스로 다짐하고 되새기는 일이다. 나는 꿈이 가진 가장 큰 기능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나는 〈꿈을 꾼다.〉라는 것을 인생에서 현실적인 큰 목표를 갖는 것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면한 현실을 보다 큰 틀에서, 혹은 보다 큰 가치 안에서 객관화시키고 상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꿈이 가진 가장 큰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돌아보아야 할 보다 더 큰 틀이란 것은 무엇일까? 결국 시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아닐까?
우리의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2부 말미에서는 〈남 속이는 거 잠깐이지만 / 자신 속이는 거 오래 남는대요. / 겉과 속이 다르고 꿈이 서로 다른데 / 어떻게 행복하겠어요?〉(「표리이몽(表裏異夢)」)라고 묻는다. 그 질문은 밖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이윽고 시인은 제3부에서 보다 큰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본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다.
큰 틀에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다보면 스스로 커지는 것이 당연한 일. 바로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나온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순간에 공존한다.
원할 때 과거 구름을,
쉴 때 현재 구름을,
꿈꿀 때 미래 구름을,
인생 앞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삶이 굳이 미래를 향하지 않아도,
삶이 굳이 과거를 살피지 않아도,
삶이 굳이 현재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시간들!
폭신하고 말랑해서 변신 가능한 시간들!
사이를 오가는 그때,
황금빛 난다.
시간은 여기저기 존재할 뿐이고
마리는 단지 시간을 선택할 뿐이다.(「시간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처럼 떠다닌다는 상상력! 시간은 황금처럼 귀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돌이라는 상상력! 이건 결코 쉬운 상상력이 아니다.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상력이다. 그런 경지에서 우리 시인은 〈인생 뭐 있나? / 꿈이라도 없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슬쩍 능청을 떤다. 오로지 꿈 때문에 가능했던 그런 경지에서 가장 귀했던 꿈, 심지어 인생조차 슬쩍, 하찮은 것인 양 내놓는다. 왜? 우리 시인에게 그 꿈은 한 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 꿈도 〈온전히 나로서 잘 살고 있는가? /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만큼 소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인이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질문을 늘 품고 있기 때문이며, 그런 질문을 늘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꿈을 항상 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은 절대로 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꿈을 꾸면 위험하기까지 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인간다운 덕목들을 지키다가는 이 세상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고, 거짓말, 속임수, 표리부동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런 사람들 틈에서 정직과 성실을 지키려다가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꼴을 당하기 쉬운 「엉망진창 세상(世想)」에 살고 있다.
나는 우리의 시인이 그 엉망진창 세상을 절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목소리 드높이지도 않고, 당당하게, 그 엉망진창에 함께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로 고맙다. 이 짧은 감상문에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3부의 시들을 읽으며 우리 시인이 그 얼마나 자부심을 지니고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러한 자부심을 갖기까지 남들이었다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을 수많은 일들을 이겨왔는지 여러분들도 함께 공감했으면 좋겠다.
시적 상상력이 영화 같은 산문시(「갑자기 튕겨 나온 마리」) /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창의적인 이야기시(「산속도(山速圖)」) / 작은 에세이와 동화,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미래를 점치는 한의원」) / 탁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밝고 건강하다.(「너의 능력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어」) / 산만한 공상력으로 멋스럽게 만든 자기구호와 자기암시(「시간은 둥둥 구름처럼 떠다닌다.」) - pjlhope님 독자평 -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 당당깨몽!
- 진형준 | 작가, 前 홍익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박혜영은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의 한 명이다. 그래서 박혜영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안다. 나는 박혜영의 시들을 읽으며 박혜영의 눈빛을, 박혜영의 목소리를, 박혜영의 삶을 고스란히 떠올린다. 박혜영의 시들은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 보내는 박혜영의 눈빛이고 박혜영의 발언이며, 박혜영이 보여주는 자신의 삶이다. 나는 이렇게 온전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를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혜영의 시들은 자기 고백이며 자서전이기도 하다.
시로 쓴 자서전? 우선 그 양식이 아주 독특하다. 자서전이라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산문적으로 서술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박혜영에게는 시로 쓰는 자서전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박혜영의 삶 자체가, 박혜영이 삶을 사는 방식 자체가 산문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기 때문이다. 박혜영의 삶 자체가 시적이라는 말에 대해 오해 없기 바란다. 박혜영이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박혜영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영학도이다. 어찌 보면 시인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박혜영은 경영학을 〈인간답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난다. 경영학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효율성의 학문〉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박혜영은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내세운다. 그리고 문학을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박혜영의 정의에서 문학과 경영학은 손을 잡는다. 박혜영은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문학과 결별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박혜영은 시인의 자세로 경영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바로 〈꿈〉이다. 박혜영에게 꿈은 문학과 경영학이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혜영에게는 세상 자체가 꿈 여행이다. 『핑크 마리의 꿈 여행』은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잠시 꾸었던 꿈의 기록이 아니다. 그 여행은 꿈으로의 침잠도 아니고 꿈으로의 도피도 아니다. 그 여행은 꿈을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간 체험 바로 그것이다. 『핑크 마리의 꿈 여행』은 시인으로서 꿈을 꾸며 세상을 살았던, 아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체험 기록이며 서사시이다. 박혜영에게 꿈은 아예 생래적이다.
마리는
꿈을 보고 싶어서
꿈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꿈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꿈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마리는
꿈속을 헤매다가
꿈밖을 다니다가
꿈안을 정리했다.
꿈속, 마리는 관찰한다.
꿈밖, 마리는 행동한다.
꿈안, 마리는 생각한다.
(···)
여기가 꿈속인지,
여기가 꿈밖인지,
꿈안이 지금인지,
매일 꿈 보는
마리는 미리 알 길 없다.
살아 있는 동안에
마리는 절대 꿈을 피할 수 없다. (「매일 꿈을 보는 마리」)
마리의 삶은 아예 꿈속과 꿈밖과 꿈안의 셋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마리는 절대로 꿈을 피할 수 없다. 꿈은 마리의 운명이다. 〈여기가 꿈속인지, / 여기가 꿈밖인지, / 꿈안이 지금인지,〉라는 시구는 흡사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연상시킨다.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넘나든다. 따라서 그 꿈은 일종의 깨어 있는 꿈이며 꿈밖에서도 작용하는 꿈이다.
사실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꿈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마리만의 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꿈을 버리거나 잊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꿈밖의 삶을 산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행동만 하면서 사는 셈이다. 시인에게 꿈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사고하는 기능을 갖는다. 달리 말한다면 꿈을 잊고 버리는 삶은 관찰과 사유가 결여되어 있는 삶이라고 보아도 된다. 그런 삶들에 대한 꿈의 여행자 마리의 지적이 매우 따끔하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무 목적성(「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스스로 최고라고 여기는 공허한 사람들 (「최고몽자(最高夢者)」), 남을 무조건 따라하다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쏜 살 몽인(SSONSAL 夢人」),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어느 줄에 서야할지 눈치나 보고 있는 모습들(「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말을 마구 뱉으며 편의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들(「357도 말 바꾸는 사람, 말사람(馬夢人)」)에 대한 희화적인 묘사가 통쾌하고 신선하며 재미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몽(夢)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도 너무 재미있다. 실제로 그들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들에게 모두 꿈 몽(夢)자 타이틀을 부여했다. 나는 그 표현에서 그들의 모습을 마치 유령처럼 내 눈 앞에 떠올린다. 가장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유령처럼 보다니! 그것 역시 마리의 꿈이 발휘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지나는 길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 꿈꾸는 마리의 눈에 비친 꿈 없이 사는 사람들, 그래서 역으로 꿈 몽(夢)자를 붙여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시인이 시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분노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니며, 체념도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의 시인의 눈길은 지극히 맑고 명랑하게 느껴진다. 실은 그 시들을 보고 내가 놀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부정적인 것들을 향한 분노와 안타까움의 표출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맑고 명랑하게 그런 것을 희화화하고 풍자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경지를 요구한다. 우리의 시인이 그 경지에 오르다니, 놀랍고 반갑다!
밖을 향했던 꿈꾸는 시인의 눈은 이제 자신을 향한다. 제2부 「꿈에 빠진 마리」는 그 꿈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 기록들이다. 그것들은 꿈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운명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시들에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 작은 에세이 같은 시도 있으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들도 있으며 자신의 사회 경험을 묘사한 것도 있고 현실 풍자 시들도 있다. 각각의 시 한 편, 한 편이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그 꿈꾸는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그 지향점은 명확해진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잃었을지도 모를 인간적 가치들을 스스로 다짐하고 되새기는 일이다. 나는 꿈이 가진 가장 큰 기능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나는 〈꿈을 꾼다.〉라는 것을 인생에서 현실적인 큰 목표를 갖는 것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면한 현실을 보다 큰 틀에서, 혹은 보다 큰 가치 안에서 객관화시키고 상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꿈이 가진 가장 큰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돌아보아야 할 보다 더 큰 틀이란 것은 무엇일까? 결국 시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아닐까?
우리의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2부 말미에서는 〈남 속이는 거 잠깐이지만 / 자신 속이는 거 오래 남는대요. / 겉과 속이 다르고 꿈이 서로 다른데 / 어떻게 행복하겠어요?〉(「표리이몽(表裏異夢)」)라고 묻는다. 그 질문은 밖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이윽고 시인은 제3부에서 보다 큰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본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다.
큰 틀에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다보면 스스로 커지는 것이 당연한 일. 바로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나온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순간에 공존한다.
원할 때 과거 구름을,
쉴 때 현재 구름을,
꿈꿀 때 미래 구름을,
인생 앞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삶이 굳이 미래를 향하지 않아도,
삶이 굳이 과거를 살피지 않아도,
삶이 굳이 현재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시간들!
폭신하고 말랑해서 변신 가능한 시간들!
사이를 오가는 그때,
황금빛 난다.
시간은 여기저기 존재할 뿐이고
마리는 단지 시간을 선택할 뿐이다.(「시간은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처럼 떠다닌다는 상상력! 시간은 황금처럼 귀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돌이라는 상상력! 이건 결코 쉬운 상상력이 아니다.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상력이다. 그런 경지에서 우리 시인은 〈인생 뭐 있나? / 꿈이라도 없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슬쩍 능청을 떤다. 오로지 꿈 때문에 가능했던 그런 경지에서 가장 귀했던 꿈, 심지어 인생조차 슬쩍, 하찮은 것인 양 내놓는다. 왜? 우리 시인에게 그 꿈은 한 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 꿈도 〈온전히 나로서 잘 살고 있는가? /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만큼 소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인이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질문을 늘 품고 있기 때문이며, 그런 질문을 늘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꿈을 항상 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은 절대로 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꿈을 꾸면 위험하기까지 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인간다운 덕목들을 지키다가는 이 세상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고, 거짓말, 속임수, 표리부동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런 사람들 틈에서 정직과 성실을 지키려다가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꼴을 당하기 쉬운 「엉망진창 세상(世想)」에 살고 있다.
나는 우리의 시인이 그 엉망진창 세상을 절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목소리 드높이지도 않고, 당당하게, 그 엉망진창에 함께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로 고맙다. 이 짧은 감상문에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제3부의 시들을 읽으며 우리 시인이 그 얼마나 자부심을 지니고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러한 자부심을 갖기까지 남들이었다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을 수많은 일들을 이겨왔는지 여러분들도 함께 공감했으면 좋겠다.
목차
목차
제1부
매일 꿈을 보는 마리 9
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12
갑자기 튕겨 나온 마리 16
여름밤에 온 흰 코끼리 20
최고몽자(最高夢者) 24
촛불, 도깨비불 26
쏜살몽인(SSONSAL夢人) 30
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34
357도 말 바꾸는 말사람(馬夢人) 40
제2부
꿈에 빠진 MARIE 47
산속도(産速圖), 산 내려오는 풍경 48
미래를 점치는 한의원 54
너의 능력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어 58
가방과 지갑 그리고, 지팡이와 모자 62
현타몽(現time夢) 66
검은 섬, 돌산 68
엉망진창 세상(世想) 74
표리이몽(表裏異夢) 78
제3부
꿈도 품격이 있지 83
해夢달夢 85
할머니와 동전 두 냥 88
동그라미와 네모, 동네 안경 94
시간은 둥둥 구름처럼 떠다닌다 96
당신은 진정 꿈꾸고 있는가 100
나의 이름은 102
서평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당당깨몽! 진형준 109
작가의 말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꿈 여행 121
매일 꿈을 보는 마리 9
유리 빌딩을 달리는 차들 12
갑자기 튕겨 나온 마리 16
여름밤에 온 흰 코끼리 20
최고몽자(最高夢者) 24
촛불, 도깨비불 26
쏜살몽인(SSONSAL夢人) 30
선 위에 선 몽인(線夢人) 34
357도 말 바꾸는 말사람(馬夢人) 40
제2부
꿈에 빠진 MARIE 47
산속도(産速圖), 산 내려오는 풍경 48
미래를 점치는 한의원 54
너의 능력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어 58
가방과 지갑 그리고, 지팡이와 모자 62
현타몽(現time夢) 66
검은 섬, 돌산 68
엉망진창 세상(世想) 74
표리이몽(表裏異夢) 78
제3부
꿈도 품격이 있지 83
해夢달夢 85
할머니와 동전 두 냥 88
동그라미와 네모, 동네 안경 94
시간은 둥둥 구름처럼 떠다닌다 96
당신은 진정 꿈꾸고 있는가 100
나의 이름은 102
서평 신선통쾌·재미명랑·풍자맑음,당당깨몽! 진형준 109
작가의 말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꿈 여행 121
저자
저자
박혜영
박혜영은 1975년 광양(光陽)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와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업가정신에 관한 책 『얼러트니스』(2019)와 꿈과 상상력에 관한 책 『핑크 마리의 꿈 여행』(2020)을 썼다. 2020년 한양대 경영학부(에리카)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혜영은 문학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경영학은 인간답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한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문학과 경영학이 꿈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듯, 작가는 시인이자 경영학자로서 생생하게 꿈꾸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박혜영은 문학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경영학은 인간답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한다.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문학과 경영학이 꿈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듯, 작가는 시인이자 경영학자로서 생생하게 꿈꾸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