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리고 지금
원자력1세대들의 진솔한 경험담
이 책의 필자들은 1949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이창건), 물리학과(노재식) 입학생부터 1971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장문희), 한양대학교 원자로공학과(이익환) 입학생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원자력이 세계4강, 프랑스 일본 중국 러시아와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원전수출대국을 이루게 된 선구자들로 원자력에서 한 평생을 몸바쳐온 과학인들의 생생한 증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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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밤을 낮 삼아 연구에 몰두했던 연구원들의 공로와 함께 청계천 상인들에게도 감사하다. 1970~1980년대 이 땅에서 연구개발을 했던 사람들과 기업인들은 청계천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부품공급이 원활치 않아서 연구개발에 필요한 중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상가를 구석구석 뒤져야만 했던 기억들…. 놀라운 것은 청계천 상가에는 우리가 찾는 국적불명의 부품들이 모두 있었다는 사실이다. 청계천 상가가 그 당시 열악했던 부품시장에 가장 중요한 공급처로서, 조국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으니 공적비 하나쯤 세워주면 어떨까!
"1958년은 배고픔과 가난이 상식으로 통했던 국민소득 80달러 시절이었다. 그 당시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인 시슬러 박사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그에게 에너지 자립에 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늘 들고 다니는 에너지 박스에서 조그마한 금속 우라늄을 꺼내 보였다.
"이 속에 수십 트럭 분의 에너지가 들어 있습니다. 원자력을 하십시오."
이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우리는 기술도 인력도 예산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원자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20년쯤 걸릴 겁니다."
이 대화 이후 이듬해인 1959년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미국이 건설비의 반을 부담하여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초 원자력 연구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가난한 나라의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장학금을 만들어 2백여 명의 젊은이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냈다. 아마도 이들이 우리나라 1세대 국비유학생들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유학생들이 귀국을 하지 않아 실망도 컸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귀국해봐야 연구요건이 좋지 않았기에 그 선택을 십분 이해한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근대화에 가장 필요한 분야로 전기를 지목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없기에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1970년에 미국 웨스팅하우스로 부터 턴키방식으로 고리 1호기 원전건설을 발주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리 1호기 건설만큼 모험적이고 위험요소가 많은 프로젝트는 없었을 것이다. 국민소득이 2백 달러에 불과한 나라에서, 돈도 인력도 전무한 상태에서 건설비만 정부 1년 예산의 1/4이 투입되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여기에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1년치 정부예산으로 100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국력이다.
원자력발전소 수출은 에너지 수출국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에너지 자원빈국인 한국이 원자력으로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축인 에너지 안보를 굳건히 하고, 동시에 에너지 수입국에서 당당히 에너지 수출국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력은 자원의존형이 아닌 인간의 두뇌가 만든 하이테크 에너지로써 원자력발전소를 '마르지 않는 유전'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자력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과학기술이다.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UN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을 역설했듯이,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후손(atoms for next generation)을 위해 반드시 원자력 기술자립을 이뤄야 할 것이다.
전쟁을 치르면서 남북한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원자력발전 강국으로 발전하면서 북한의 송전 중단일로부터 57년 후인 2005년 3월 16일에 우리가 북한의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게 되었다. 단전을 당했던 우리가 거꾸로 북한에 송전을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역사 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전쟁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도입한 대한민국은 우리 민족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꽃피우고 수학과 과학적 잠재력을 발휘하여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가 되었다. 이제 세계인들은 한국을 아침이 바쁜 나라라고 부른다. - 본문중에서 -
목차
목차
소년의 분노
귀환하라. 명령이다!
팔십 년을 사는 동안
나의 고향 동막골
어머니의 숨결
양철지붕집 건너방
상처 많은 영광
술로 지킨 동창회장 자리
오페라 여행
PART 2 에디슨은 전기 마피아?
프랑스를 위대하게 만든 프랑스의 Msr. Dog을 위하여!
고향에서의 화형식
청계천에 조국 근대화의 공적비를
기술자립을 위한 프로젝트
원자력에너지로 바닷물을 민물로
PART 3 또다른 과학의 길
딸 바보와 짧은 바지 가족
따지다보니 인공지능
불쌍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김법린 박사의 당부
준수에게
저자
저자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과학기술부 장관
김재록/ 한국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응용연구 부장,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겸임교수
노윤래/ 한국원전연료 사장, 한국전력공사 원자력본부장
신재인/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이광영/ 한국일보 과학·의학 전문기자,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이익환/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IAEA 자문위원
이용수/ 동아일보 기자, 한국과학기자클럽 회장
이종훈/ 한국전력공사 사장, 한국 최초 고리1호기 건설업무
이중재/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 이사장
이창건/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 제1회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장문희/ 한국핵물질관리학회 회장, 대덕클럽회장
장인순/ 대덕원자력포럼 이사장,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 IAEA 총회의장
조 만/ 한국원자력연구원 고속로연구개발 부장,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채성기/ 한국동위원소협회 부설 동위원소교육연구원장, 국방과학연구소 실장
한영성/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과학기술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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