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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반전의 연속이다. 임금의 꿈을 좇다가 이 땅의 천주를 만나고, 천주를 배신하는 삼중주.” _저자 인터뷰 중에서
다산 정약용의 숨겨진 스토리, 배교로 피어났다.
그는 왜 천주를 부정해야만 했을까?
- 국내 최초의 종교 추리소설 탄생!
입양교포작가 마르크 함싱크의 조선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배교)이 나왔다.
19세기의 문을 연 조선사의 첫 페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천주교 박해였다.
저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발견한 한 폭의 흰 비단에서 기발한 스토리의 실마리를 발굴했다.
다산 정약용의 숨겨진 스토리, 배교로 피어났다.
그는 왜 천주를 부정해야만 했을까?
- 국내 최초의 종교 추리소설 탄생!
입양교포작가 마르크 함싱크의 조선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배교)이 나왔다.
19세기의 문을 연 조선사의 첫 페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천주교 박해였다.
저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발견한 한 폭의 흰 비단에서 기발한 스토리의 실마리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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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가 인터뷰
1. 정약용에 대해서는 목민심서 등 여러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쓴 배교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약용은 기존의 스토리와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조선 명탐정과 같은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든 창작물은 허구지만 정약용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좀 희화적이고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각인된 것 같다. 내가 본 정약용은 그렇지만 고뇌하는 지식인에 가깝다.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대의에 충실한 시대의 거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2. 신유박해를 둘러싼 정약용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소설 집필 동기는 무엇인가?
한국에 있을 때 서울대학교를 자주 방문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캠퍼스 구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낙성대에 모여 사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대부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전향서를 쓰고 풀려나왔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공산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사상은 자유롭다. 전향서 한 장으로 그것을 버렸다고는 볼 수 없었다.
3. 정약용의 배교도 그렇다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가짜 전향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이 소설은 글 특히 당대 문제시된 청나라 패관문학과 당송시대의 한시가 추리의 열쇠 역할을 한다. 글만이 최고,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여기는 예조판서 이만수와 거짓된 글로 자신의 참마음을 감추는 정약용은 대척점에 서 있다. 다만 시대가 진실을 밝히는 것을 억압한다면 글 쓰는 이는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글의 한계라 하겠다. 다산은 자신이 배교했고 천주학을 고발했다는 치부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변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인물, 즉 황사영이나 추사 김정희 등은 다산이 천주를 버리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타인의 시선이 맞는지 자신의 고백이 맞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본다.
4. 종교는 민감한 부분이다. 특히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나를 입양했던 벨기에의 가족들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들이었고 나도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다고 매주 미사에 나가는 열성 신자는 아니다. 다만 누가 내 종교를 묻는다면 가톨릭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다. 이 작품을 종교소설로 접근한다면 오산이라고 전하고 싶다. 번역가에게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할 때도 되도록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을 선호한다고 했다. 실제 세 분의 서평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들었다. 신앙의 고백보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종교를 소재로 추리소설을 썼다면 아마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라 하겠다. 유럽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을 들겠다. 사랑, 증오, 질투 같은 감정을 소재로 지은 추리소설은 상당하다고 들었지만 종교 소재의 추리소설은 한국에서는 좀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나 장미의 이름처럼 종교를 신앙이 아닌 문화로 인식하는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장르이다. 나 역시 움베르토 에코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학과 천주학이라는 상반된 가치관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아 추리소설을 썼다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6. 이만수가 쓴 가짜 백서와 황사영의 진짜 백서는 모두 보았는가?
황사영백서는 바티칸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읽은 바 있다. 모든 문화재는 가격 감정에서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첫째는 진본인지 여부, 둘째는 현 소장자가 적법한 과정을 통해 입수했는지 여부다. 만일 도난 문화재라면 그 소유권은 소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탈된 유태인문화재의 경우 결국 소유권은 원래 소유주의 자손에게 돌아간다. 황사영백서는 진본이며 바티칸으로 간 과정도 적법했다. 1886년 한?불 수교 당시 조선 측은 의금부에 보관 중이던 황사영백서를 한국천주교 측에 넘겼다. 아마도 박해 당시 순교한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들 사건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 같다. 그 후 문서는 교황청으로 보내졌다.
이에 비해 이만수 백서는 아직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외교문서인 관계로 청나라 조정에 보낸 물건인데, 이후 중국 현대사가 격동을 겪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만난 소장자는 개인으로, 백서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 따라서 백서의 출처가 불투명하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전쟁배상금으로 청나라 황실 서고의 소장 문서를 받아갔다. 이 문서는 당시 일본이 넘겨받은 문건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도난당한 것이 분명하다. 가짜는 영원한 가짜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부분이라 하겠다.
7. 외부의 시각으로 바라본 조선사의 일면이 흥미롭다. 앞으로도 계속 조선사를 저술할 것인가?
잠시 손에 잡고 있던 문건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회전인 울산성전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울산성을 쌓은 왜군이 무사히 철수하기 위해 벌인 싸움인데 조선과 일본 양측은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을 유린했다. 일본이 난공불락의 성을 쌓았다면 조선은 태화강 줄기를 꺾어 일본군을 말려 죽이려고 했다. 멋진 전투가 상상은 되지만 7년 전쟁동안 강토를 유린한 왜군 측이 판정승한 전투여서 뒷맛이 찜찜하다. 과연 적군이 승리한 전투를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현재는 집필을 중단한 상태다. '마지막 전투'라는 제목과 주인공 설정만 해둔 채 원고는 책상서랍에 묵혀두고 있다.
8. 패배한 역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도 있는데 아쉽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역사란 상상이 아닌 행간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배교를 했으니 배신자라는 등식 따위는 잊어주기 바란다. 대신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봐주기 바란다. 인간이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천주교의 예를 들어보겠다. 순교자를 칭송하고 배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내 소설은 이와는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본디 배신자들이 만든 교회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지만 결국 초대 교황이 되지 않았나? 모든 죄의 근본은 바로 배신인데도 말이다. 종교소설이 아닌 한편의 인간 드라마, 추리극장으로 보고 음미해줬으면 좋겠다.
작품의 개요
그는 왜 '하늘의 천주'를 부인한 걸까?
- 가짜 백서에 얽힌, 18세기 조선의 슬픔
본분에 충직한 예조판서 이만수는 정조 붕어 이후 인산에 쓸 행장을 짓느라 고심하는 한편 어딘가에 남겼을 임금의 유훈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실마리는 침변서(임금이 가까이 두고 보는 책)에 있음을 직감하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느라 고심한다. 그때 얼굴이 짓이겨진 채 버려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오랜 친구이자 '책 읽어주는 남자' 성정주가 때마침 나타나 이만수를 도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또 이만수는 이른바 '가짜 황사영 백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던 바 그 내막은 이렇다.
1801년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숱한 신도들이 순교했다. 체포령이 내려진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의 배론[舟論]마을로 피신, 토굴에 숨어서 박해의 실상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62×38(㎝)의 흰 비단에 1행 110자씩 121행, 모두 1만 3,311자를 깨알같이 써서 옥천희에게 주어 베이징의 주교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옥천희가 체포되어 백서는 압수되고 황사영도 끝내 붙잡혔다. 백서에는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 사정, 박해의 상세한 전개 과정이 담겼으며,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방안을 제시했다. 아연한 조선 조정에서는 관련자들을 즉시 처형하고 탄압의 강도를 더했다. 그런데 청조에서 백서 사본을 보내라고 요구하자 대폭 축소된 가짜 가백서假帛書(16행 923자)를 만들어 박해의 정당성을 해명했다. 이 가백서를 이만수가 작성하게 된 것이다.
한편 형조참의 정약용은 빈민 동네에 묻어 살면서 아픈 이를 돌보는 한편 천주를 모셨는데, 신유박해를 당해 배교하여 '하늘의 천주'를 버리는 대신 '땅의 천주'를 살렸다. '땅의 천주'는 백성이다.
이만수는 친구 성정주의 도움을 받아 임금이 꿈꾼 나라, 즉 임금의 유지를 추적해냄으로써 임금의 인산 전에 행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철인군주의 시대가 저물고 역사는 퇴행했다. 그 와중에 이만수는 죄를 사서 경주로 유배되었다. 유배 길에서 이만수는 '공맹의 글'에 갇혀 정작 백성을 돌보지 못한 지난 벼슬살이를 회한했다.
1. 정약용에 대해서는 목민심서 등 여러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쓴 배교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약용은 기존의 스토리와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조선 명탐정과 같은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든 창작물은 허구지만 정약용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좀 희화적이고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각인된 것 같다. 내가 본 정약용은 그렇지만 고뇌하는 지식인에 가깝다.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대의에 충실한 시대의 거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2. 신유박해를 둘러싼 정약용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소설 집필 동기는 무엇인가?
한국에 있을 때 서울대학교를 자주 방문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캠퍼스 구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낙성대에 모여 사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대부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전향서를 쓰고 풀려나왔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공산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사상은 자유롭다. 전향서 한 장으로 그것을 버렸다고는 볼 수 없었다.
3. 정약용의 배교도 그렇다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가짜 전향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이 소설은 글 특히 당대 문제시된 청나라 패관문학과 당송시대의 한시가 추리의 열쇠 역할을 한다. 글만이 최고,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여기는 예조판서 이만수와 거짓된 글로 자신의 참마음을 감추는 정약용은 대척점에 서 있다. 다만 시대가 진실을 밝히는 것을 억압한다면 글 쓰는 이는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글의 한계라 하겠다. 다산은 자신이 배교했고 천주학을 고발했다는 치부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변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인물, 즉 황사영이나 추사 김정희 등은 다산이 천주를 버리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타인의 시선이 맞는지 자신의 고백이 맞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본다.
4. 종교는 민감한 부분이다. 특히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나를 입양했던 벨기에의 가족들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들이었고 나도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다고 매주 미사에 나가는 열성 신자는 아니다. 다만 누가 내 종교를 묻는다면 가톨릭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다. 이 작품을 종교소설로 접근한다면 오산이라고 전하고 싶다. 번역가에게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할 때도 되도록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을 선호한다고 했다. 실제 세 분의 서평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들었다. 신앙의 고백보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종교를 소재로 추리소설을 썼다면 아마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라 하겠다. 유럽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을 들겠다. 사랑, 증오, 질투 같은 감정을 소재로 지은 추리소설은 상당하다고 들었지만 종교 소재의 추리소설은 한국에서는 좀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나 장미의 이름처럼 종교를 신앙이 아닌 문화로 인식하는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장르이다. 나 역시 움베르토 에코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학과 천주학이라는 상반된 가치관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아 추리소설을 썼다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6. 이만수가 쓴 가짜 백서와 황사영의 진짜 백서는 모두 보았는가?
황사영백서는 바티칸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읽은 바 있다. 모든 문화재는 가격 감정에서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첫째는 진본인지 여부, 둘째는 현 소장자가 적법한 과정을 통해 입수했는지 여부다. 만일 도난 문화재라면 그 소유권은 소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탈된 유태인문화재의 경우 결국 소유권은 원래 소유주의 자손에게 돌아간다. 황사영백서는 진본이며 바티칸으로 간 과정도 적법했다. 1886년 한?불 수교 당시 조선 측은 의금부에 보관 중이던 황사영백서를 한국천주교 측에 넘겼다. 아마도 박해 당시 순교한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들 사건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 같다. 그 후 문서는 교황청으로 보내졌다.
이에 비해 이만수 백서는 아직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외교문서인 관계로 청나라 조정에 보낸 물건인데, 이후 중국 현대사가 격동을 겪으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만난 소장자는 개인으로, 백서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 따라서 백서의 출처가 불투명하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전쟁배상금으로 청나라 황실 서고의 소장 문서를 받아갔다. 이 문서는 당시 일본이 넘겨받은 문건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도난당한 것이 분명하다. 가짜는 영원한 가짜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부분이라 하겠다.
7. 외부의 시각으로 바라본 조선사의 일면이 흥미롭다. 앞으로도 계속 조선사를 저술할 것인가?
잠시 손에 잡고 있던 문건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대규모 회전인 울산성전투와 관련된 내용이다. 울산성을 쌓은 왜군이 무사히 철수하기 위해 벌인 싸움인데 조선과 일본 양측은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을 유린했다. 일본이 난공불락의 성을 쌓았다면 조선은 태화강 줄기를 꺾어 일본군을 말려 죽이려고 했다. 멋진 전투가 상상은 되지만 7년 전쟁동안 강토를 유린한 왜군 측이 판정승한 전투여서 뒷맛이 찜찜하다. 과연 적군이 승리한 전투를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현재는 집필을 중단한 상태다. '마지막 전투'라는 제목과 주인공 설정만 해둔 채 원고는 책상서랍에 묵혀두고 있다.
8. 패배한 역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도 있는데 아쉽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역사란 상상이 아닌 행간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배교를 했으니 배신자라는 등식 따위는 잊어주기 바란다. 대신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봐주기 바란다. 인간이란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천주교의 예를 들어보겠다. 순교자를 칭송하고 배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내 소설은 이와는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본디 배신자들이 만든 교회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했지만 결국 초대 교황이 되지 않았나? 모든 죄의 근본은 바로 배신인데도 말이다. 종교소설이 아닌 한편의 인간 드라마, 추리극장으로 보고 음미해줬으면 좋겠다.
작품의 개요
그는 왜 '하늘의 천주'를 부인한 걸까?
- 가짜 백서에 얽힌, 18세기 조선의 슬픔
본분에 충직한 예조판서 이만수는 정조 붕어 이후 인산에 쓸 행장을 짓느라 고심하는 한편 어딘가에 남겼을 임금의 유훈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실마리는 침변서(임금이 가까이 두고 보는 책)에 있음을 직감하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느라 고심한다. 그때 얼굴이 짓이겨진 채 버려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오랜 친구이자 '책 읽어주는 남자' 성정주가 때마침 나타나 이만수를 도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또 이만수는 이른바 '가짜 황사영 백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던 바 그 내막은 이렇다.
1801년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숱한 신도들이 순교했다. 체포령이 내려진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의 배론[舟論]마을로 피신, 토굴에 숨어서 박해의 실상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62×38(㎝)의 흰 비단에 1행 110자씩 121행, 모두 1만 3,311자를 깨알같이 써서 옥천희에게 주어 베이징의 주교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나 옥천희가 체포되어 백서는 압수되고 황사영도 끝내 붙잡혔다. 백서에는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 사정, 박해의 상세한 전개 과정이 담겼으며,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획득할 방안을 제시했다. 아연한 조선 조정에서는 관련자들을 즉시 처형하고 탄압의 강도를 더했다. 그런데 청조에서 백서 사본을 보내라고 요구하자 대폭 축소된 가짜 가백서假帛書(16행 923자)를 만들어 박해의 정당성을 해명했다. 이 가백서를 이만수가 작성하게 된 것이다.
한편 형조참의 정약용은 빈민 동네에 묻어 살면서 아픈 이를 돌보는 한편 천주를 모셨는데, 신유박해를 당해 배교하여 '하늘의 천주'를 버리는 대신 '땅의 천주'를 살렸다. '땅의 천주'는 백성이다.
이만수는 친구 성정주의 도움을 받아 임금이 꿈꾼 나라, 즉 임금의 유지를 추적해냄으로써 임금의 인산 전에 행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철인군주의 시대가 저물고 역사는 퇴행했다. 그 와중에 이만수는 죄를 사서 경주로 유배되었다. 유배 길에서 이만수는 '공맹의 글'에 갇혀 정작 백성을 돌보지 못한 지난 벼슬살이를 회한했다.
목차
목차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붉은 도포
책 읽어 주는 남자
얼굴 없는 시신
가짜 궁녀
청년의 눈물
가귤
침변서
죽은 임금의 나라
임금이 꿈꾼 나라
호랑이 가죽을 쓴 사람
서고의 두 사내
청년의 몸부림
얼어붙은 아버지
하늘의 천주, 땅의 천주
돼지고기
살과 피
쌍룡의 여의주
임금의 유지
약망
한 줌 흙으로 돌아가리라
고해성사
옮긴이의 말
붉은 도포
책 읽어 주는 남자
얼굴 없는 시신
가짜 궁녀
청년의 눈물
가귤
침변서
죽은 임금의 나라
임금이 꿈꾼 나라
호랑이 가죽을 쓴 사람
서고의 두 사내
청년의 몸부림
얼어붙은 아버지
하늘의 천주, 땅의 천주
돼지고기
살과 피
쌍룡의 여의주
임금의 유지
약망
한 줌 흙으로 돌아가리라
고해성사
저자
저자
마르크 함싱크
저자 마르크 함싱크는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나 7세 때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아시아-아프리카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하얼빈대학 중의학과에서 수학했다.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현대 언어는 물론 그리스어, 라틴어, 한문 등의 고대 언어를 포함한 13개 언어에 능통하다.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선천성모성결핍증환자라고 진단했다. 현재 영국계 보험회사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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