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시의 몸 위를 걷다
이도화 시집
Regular price
$10.11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자연을 잇는 길 위에서’ 기억으로의 귀환
이도화 시인은 2003년부터 경기지역문화원, 문학회가 주최하는 백일장 등에서 수필 부문으로 여러 번 수상을 했다. 수필뿐 아니라 시작 활동도 열심히 하여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강, 詩의 몸 위를 걷다』가 첫 시집임에도 상당한 필력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길 위, 어느 지점에서 만난 세밀한 감각들을 재구성하여 원고지에 그 실체를 그려낸다. 詩라는 것은 소통함으로 제 기능을 발휘한다.
이도화의 첫 시집 『강, 詩의 몸 위를 걷다』는 한결같이 전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자연과 체험, 기억의 공간을 통해 삶의 아름다운 깊이를 구상화한다는 점이다. 대상에 풍부한 힘의 근원을 부여하고 있다. 원래 ‘기억’이란 주체는 적극적·창조적·조절적 기능의 일환으로 ‘기억’을 거치지 않고는 주체를 경험적으로 회복할 수 없다. 여기서 시인의 시적 ‘기억’은 현재의 사진첩 속 화석으로 있을법한 빛바랜 흑백사진 풍경을 재현하여 그때 한순간을 정서적으로 구성해내는 어떤 힘을 뜻한다. ‘체험’ 또한 시적 허구를 회복하려는 욕구와 사물 속에 각인되어 있는 공동체적 가치를 시인의 삶과 대치시키려는 열망, 즉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더 깊은 세계로 전이하려는 고뇌가 숨겨져 있어야 한다.
이도화 시인은 2003년부터 경기지역문화원, 문학회가 주최하는 백일장 등에서 수필 부문으로 여러 번 수상을 했다. 수필뿐 아니라 시작 활동도 열심히 하여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강, 詩의 몸 위를 걷다』가 첫 시집임에도 상당한 필력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길 위, 어느 지점에서 만난 세밀한 감각들을 재구성하여 원고지에 그 실체를 그려낸다. 詩라는 것은 소통함으로 제 기능을 발휘한다.
이도화의 첫 시집 『강, 詩의 몸 위를 걷다』는 한결같이 전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자연과 체험, 기억의 공간을 통해 삶의 아름다운 깊이를 구상화한다는 점이다. 대상에 풍부한 힘의 근원을 부여하고 있다. 원래 ‘기억’이란 주체는 적극적·창조적·조절적 기능의 일환으로 ‘기억’을 거치지 않고는 주체를 경험적으로 회복할 수 없다. 여기서 시인의 시적 ‘기억’은 현재의 사진첩 속 화석으로 있을법한 빛바랜 흑백사진 풍경을 재현하여 그때 한순간을 정서적으로 구성해내는 어떤 힘을 뜻한다. ‘체험’ 또한 시적 허구를 회복하려는 욕구와 사물 속에 각인되어 있는 공동체적 가치를 시인의 삶과 대치시키려는 열망, 즉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더 깊은 세계로 전이하려는 고뇌가 숨겨져 있어야 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도처에 쓰러진 어휘들, 그곳 응달의 남루한 거처에 웅크린 말들이 겨우 연명하여 불구의 세계 곳곳에 불편한 시가 있어야 했으니 그것! 웅크린 시편 아니겠는가. 이도화 시인이 오래 바라보았을 「젖은 리어카」가 "멍석처럼 둘둘 말아 폐지와 함께" 끌려가는 도정이나 이 땅 고단한 생들이 "하루를 끌고 다닌 낯선 길들의 그림자들"이야말로 웅크린 말들 거처가 아니었겠는가. 그리하여 시인의 눈이 덜미 잡힌 정경들 "우물 안 별등" 등불 속으로 들어와 뿌리내린 '말의 알갱이들'이 사는 집에서 나는 며칠 묵상을 한 셈이다. 오늘 많이 아프신 어머니 강의 소원 또한 같으시리라. "초록빛을 산란하고 있"는 강 깊은 곳에서 세계의 웅크린 말들이 봄날 나비가 되어 "강, 詩의 몸 위를 걷"길 빈다.
- 홍일선 (농부시인)
곧잘 휘청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었다.
땡볕은 사나웠고 그늘은 서늘했지만 그늘 아래 숨는 게 싫어 당당하게 걷기로 했다.
피하고 싶은 것들도 피하지 않았다.
외로움도 이 길의 운명이고, 잊히는 것도 이 길의 숙명이라면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길은 휘어지고 뒤틀어지고 끊기는 듯했으나 끊어지지 않고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갈길 멀어 늘 막막하고 아득한 길, 주저앉지 않으리라.
땀범벅이 될지라도 쉬엄쉬엄 걸어가리라.
땅 위, 땅 속 울림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자연을 잇는 길 위에서' 기억으로의 귀환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하얀 백발이 빗물로 흐르고
젖은 옷에서 피는 고단한 아지랑이는
한 생의 누더기
쓰고 있던 우산 노인에게 건네주고
돌아오는 먹먹한 발걸음에
죽순이 맺힌다
다 젖는 날이다
― 「길에서 비를 만나다」 부분
캄캄한 슬픔을 종이 한 장에 쏟아놓기까지 숱한 절망이 가슴을 관통했을 것이다. 바닥을 모르는 슬픔의 깊이에 가슴을 움켜쥐고 몇 번이나 나뒹굴었을까. 연극이 아닌 가혹한 현실에서 시인은 통곡하기도 한다.
이 시에는 '통점'이 있다. 4연 "하얀 백발이 빗물로 흐르고 / 젖은 옷에서 피는 고단한 아지랑이는 / 한 생의 누더기"에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어쩌면 반쯤 쓰다만 분신 같은 시들을 시인은 더 걱정했는지 모른다. 절반의 시편들은 이 악물고 절뚝거리며?일어선 흔적이다. 시 곳곳에 '통점'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암처럼 어두운 복지 사각지대에 이 시대 노인들은 눈물과 핏물로 점철된 생의 무대에 날마다 올라야 한다. 「길에서 비를 만나다」는 이렇게 태어났다.
시인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인은 자신이 돌아올 길을 알고 떠나간 치어처럼, 어느 날 '기억' 속의 어머니를 연쇄적으로 호명하며, "돌아오는 먹먹한 발걸음에 / 죽순이 맺힌다 // 다 젖는 날이다"라고 미학적 시선을 담아낸다.
이 시는 흔한 일상이지만 환경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이 시대 심각한 흔적을 익숙한 감각과 보편적 어휘로 해체(과거)하고 조립(현재)하고 있다. 어쩌면 시인이 제시하는 미덕은 효과적인 인식의 지지체를 세우기 위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라진 것들을 현재로 불러오거나 연속선상에 있는 기억을 이동시켜 제한된 인식을 조립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대안으로서 '기억' 속 어머니를 불러내어 긴장감을 제안하지만 현실의 풍경은 냉정하다. 이것이 시인의 고뇌라고 본다.
해질 무렵 장사를 끝내고
넘어질듯 후들거리는 발길 재촉하는 길
똬리를 받힌 목 힘줄 툭툭 불거지고
함지박 가득 출렁이던 노을 쏟아져
등을 물들인 적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땅거미가
엄마의 몸에 기어 다니는지
스멀스멀 가려웠다고
피딱지가 군데군데 엉킨 등을
저녁마다 내밀곤 했다
우리는 껍질 속 벌레를 찾아내려고
저녁 내 벅벅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손톱 밑엔 검붉은 노을만 잔뜩 끼어 나왔다
한 겹 옷으로 입고 있던
가려운 살비듬 후드득 떨어져 쌓이고
흐릿한 맥박으로 돌리던 하루하루,
간신히 엄마 몸 돌리던 시계의 태엽 멈추어서며
핏방울이 온기를 놓아버리자
엄마의 몸에서 서둘러 땅거미 빠져나가고
가려움에서 풀려난 몸,
그믐밤처럼 깜깜했다
― 「엄마의 등」 전문
이도화의 이번 시집에는 「엄마의 시간」, 「별등과 어머니」, 「그날의 언저리」, 「장날의 애가哀歌」 등 어머니에 대한 '노동' '가난' '그리움'의 기억들이 폭 넓게 전면화하고 있으며 언어의 더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감정을 충분히 가라앉히고 내면과 실존을 향하는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시의 언어로 끌어 들인다.
'그리움'이란 대상의 부재로 생겨나는 결핍의 정서다. 시인은 어머니의 '기억'에 몰입하여 긍정적인 시선으로 어머니의 그리움을 이해할 단서를 찾는 중이다. 시는 일반적인 생각과 충돌할 때 파생되는 파열음 속에 에너지가 충분해진다. 에너지는 뜻밖에 부드러움에서 나올 때가 적지 않다.
화려한 문장이나 과장된 이미지, 그럴듯한 포즈를 잡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감동이라고 한다면 시인의 시들이 대개 그러하다. '과거'와 '현실'을 들춰내는 다양한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평범함 속에서 찾아내는 삶의 의미가 특별하다. 나지막한 어조에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이 있다. 잔물결로 번져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기억은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이다.
지극하고 곡진한 것들은 깨진 사금파리 한 조각일 수도 있지만 시각의 중심이 다르다고 해서 결코 가볍진 않을 것이다. 관념을 탈피하고 난해한 기교를 벗어나 일상에서 만난 소소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서정성은 시의 중심이 되는 축으로 작용한다. 당연한 일상에서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와 치환하는 것은 시의 씨앗이 된다.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욱 그러하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 묻어 있는 '그리움'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시의 3연 "우리는 껍질 속 벌레를 찾아내려고 / 저녁 내 벅벅 찾아보았지만 /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 손톱 밑엔 검붉은 노을만 잔뜩 끼어 나왔다"에서 자식들의 망연자실한 이미지는 독자의 목울대를 치는 '적요'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그리움'의 강가를 서성이게 한다.
새파란 슬픔이 색깔이 되는
아득하게 뒤척이던 새벽이 깨어난다
망각된 비린내
절단된 조각소리 함몰되면
도마는 어금니에 생채기를 내고
푸른 살점들은 화온火溫으로 맥박이 멈춘다
기어이 도마가 칼날을 삼킬 즈음 아물지 않은 상처는
수없이 다녀간 냄새에 색을 입힌다
도마는 어머니의 한숨과 침침한 아궁이를 염장해두고
무딘 칼날의 단풍을 본다
결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엮어 햇빛에 골고루 익힌
도마는 늘 새벽이고 상처다
새들 발자국 선명한 물관이 굳어버린 강행군은
어쩌면 허공일지도 모른다
경계를 상실한 도마는 칼 시위에 몸을 뭉텅뭉텅 보시하고
치열한 격전의 잠복이 끝나면
어느 구들장에 찍힌 화인火印으로 유언을 쓸지
도마의 몸은
칼, 칼이 자해한 겉표지다
―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 전문
우리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신진대사를 한다. 이 필요성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생리적 욕구다.?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첫 단계는 먹는 욕구다. 가정에서 일차적으로 해소되는 욕구는 '어머니의 손'이다. 장소는 부엌에 있는 도마이고 그 시간은 새벽인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와 아내로서 이 욕구를 여러 겹으로 노래한다. '맹렬한 슬픔'?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냉정함과 뜨거운 삶의 열정으로?들끓는 다른 층이 있다.?시인의 내부에 누적된?이중적인 층이 이 시를 잘 구성하고 있다.
시인은?'나무'와 '불', 그리고 '절단'이라는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진술 너머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역설을 통해 새벽의 예후를 알리고 있다. 또한 무심히 버려둔 장소에서 반짝이는 기억 한 조각을 찾아낸다. 부재중인 시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시의 소재는 일상에 산재해 있고 시 쓰기는 삶을 묻는 질문과도 같다. 시인은 가장 예리한 질문을 위해 길들여진 타성을 분해하고 사고를 확장한다. 시 쓰기의 첫걸음은 대상을 관찰하고 생각을 기록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은 대부분 보이는 것들의 뒤편에 잠복해 있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문득 발견된 모티프가 새로운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때 시인이 채굴한 모티프는 소통을 위한 재료인 것이다.
고리가 촘촘하지 않으면 평면적인 이미지에서 그치고 말지만 익숙한 규정과 틀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낯선 곳의 탐색은 사라진 흔적을 채집할 수 있다. 이때 개인의 내밀한 기억은 대상과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시심의 키워드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 시 3행에서 7행 "망각된 비린내 / 절단된 조각소리 함몰되면 / 도마는 어금니에 생채기를 내고 / 푸른 살점들은 화온火溫으로 맥박이 멈춘다 / 기어이 도마는 칼날을 삼킬 즈음 아물지 않은 상처는 / 수없이 다녀간 냄새에 색을 입히고 있다"의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백미라 할 수 있고 목화처럼 희고 눈부신 기억의 중심에 도마 소리와 하얀 광목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있다.
물안개 한 아름 꺾어 시어詩語에 심어두고 합수머리 강둑에 섰다
시심詩心은
구애 삼매경에 취한 개개비 맑고 푸르른 소리
달팽이관에 이식하고
온화한 누이 닮은 꽃창포 미소
행갈이를 재촉할 때, 난 깃털처럼 가벼이
강가에 타박타박 낙관을 찍는다
강섶, 햇살에 몸 뒤척이던 안개 한 움큼
강江에 찍은 데칼코마니 약속인 듯 또 하나의 풍경이
초록빛을 산란하고 있다
물안개공원 산책로를 잠식한 꽃향기 아래로
산란기 잉어 뜨거운 몸짓이
덜 자란 부들대 뻐꾸기 울음 옮겨 놓으면
고요한 두물머리
물 폭풍은 기어이 내 심상心想을 허물고 만다
잎맥에 취한 물지기 청둥오리 아스라한 부리에 찍힌 詩 종자는
여기, 공원 한쪽에 한뎃잠을 청하고
원고지 위 시어詩語 낱낱이 물 위를 걷고 그곳 어딘가에 나는 없다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전문
이 시는 이도화의 첫 시집 표제작이다. 모티브가 된 배경은 시인이 살고 있는 경기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에 있는 물안개공원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곳을 '두물머리' 또는 '합수머리'라 한다.
이곳에는 시의 깊이가 그윽한 숲과 강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리운 것들이 모여 있고, 시의 결에는 온도가 있다. 또한 시대가 놓쳐버린 것들의 서정성 짙은 한 편의 시가 오롯이 보관되어 있다.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정경들이 도란도란 어깨를 맞대고, 낡은 기억을 불러내는 것은 보이는 것 너머에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근간과 시인이 지닌 소박한 색깔, 섬세한 감성의 촉수를 느낄 수 있다. 작은 떨림이 '행과 연'을 지탱하고 공간 전체를 작은 스토리가 차지, 물빛이 고요히 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원근을 무시하고는 붙잡을 수 없는 사진 속 피사체 같은 '자연'이 완강한 시간의 품에 숨겨진 작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돌아갈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난다. 쓸쓸함이 주는 여운으로 공간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와도 맞물린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는 "우리는 과거를 오로지 현재로부터 이해할 수 있고, 반대로 현재는 오로지 과거로부터 파악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과거는 흘러간 후 이해되고 현재는 과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연'은 늘 순차적으로 흐르는 과정이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고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경외함이다.
강물이 되려면 햇빛의 징검다리는 잠재된 슬픔을 불러내지 못한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면 몸은 결코 젖을 수 없다. 허울을 벗어버리고 슬픔으로 꿈틀대고 싶은 시인의 심연에 잠재된 심미적 감각은 한 줄기 물길로 처연하게 흐른다.
시심과 시어 사이 자연과 시인의 갈등구조를 시인은 동물적 감각으로 포획하여 원고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시인은 '시심'과 '시어'의 갈등, 나아가 '자연'으로의 회귀를 극복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자연에는 은밀한 비밀의 뒤꼍이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누군가 전 생애를 끌고 지나야 했던 길에는 늘 전언이 있다
자식 걸음 위안 삼아 집을 나서던 엄마,
아버지의 구부러진 길엔 그림자가 선명하다
나 또한 어떤 짐을 지고 길을 만들어야
굽은 길을 피할 수 있을까
길의 품엔 유언이 있다
어둑한 길이 새어나온 처마 끝에 조등이 내 걸려
길을 조문하고 있다
― 「길」부분
이도화 시인의 시에는 척박한 삶을 생각하고 '기억'을 유추하는 길에 대한 많은 시편들이 있다. 길에서 달팽이의 죽음을 본다. 억울한 죽음을 보면서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생의 근원을 캐묻는 '왜'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삶의 밑바닥에 깔린 근원적인 물음의 시편들은 구조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시인은 길 위에서 '기억'을 확장시키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에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움'에 대한 단아하고 형이상학적 이미지다. "자식 걸음 위안 삼아 집을 나서던 엄마, / 아버지의 구부러진 길엔 그림자가 선명하다" 어찌 처연한 '그리움'이라 아니하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끝에는 명징한 자아를 배치시키고 있다. "나 또한 어떤 짐을 지고 길을 만들어야 / 굽은 길을 피할 수 있을까 // 길의 품엔 유언이 있다 // 어둑한 길이 새어나온 처마 끝에 조등이 내 걸려 / 길을 조문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길에서 유언을 찾고 있다.
새벽 골목길 배회하며
각각 다른 무늬들의 화려했던 시절
반으로 접어 비뚤한 시선 속에 갇힌 무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노인의 리어카는
누구도 수거해 가지 않는 새벽안개
멍석처럼 둘둘 말아 폐지와 함께 싣고 간다
― 「젖은 리어카」 부분
시인은 사회현상을 외면할 수 없다. 사회성을 요구하는 집단에서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의 오류를 검증하고, 항거하며 구조적 불합리를 찾아야 한다.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구조가 결정되는 시대에 시인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잠재적 성향도 스스로 습득한 질서와 환경을 시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내어 그 얼개를 짤 수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단서는 현재와 미래의 실마리가 된다.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관계를 시인은 작품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지극히 사적인 흔적을 인용해 개인과 사회가 당면한 관계를 주목한다. 현재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 속에는 시인이 삶 속에서 건져 올린 기억이 포진하고 있다. 긍정적 이미지의 조합은 작품 속에 균질하게 배치되어 현재의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새벽 골목길 배회하며 / 각각 다른 무늬들의 화려했던 시절 / 반으로 접어 비뚤한 시선 속에 갇힌 무게 /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시인은 기억을 차례로 배치하며 뒤편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집중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설계해주는 힘은 서로를 의지하며 작동하고 있다.
이도화 시인의 詩 골격은 완만하고 유연하지만 희로애락의 무늬가 다양하게 새겨져 있다. 내면의 심리상태에 응축된 감정은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밀접하게 이어진다. 시인은 들뜨지 않고 과장되지 않은 어조로 상처를 풀어나가는 진솔함이 있다. 부드러운 어투 속에 설득력이 있고, 낮은 소리로 감정의 과잉을 차분하게 걸러내며, 주변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 '기억과 체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자연과 늘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시되면서 의미를 이미지화 하는 자유분방한 시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정한 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리듬을 만드는 내재율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순舜 임금이 만들었다는 오현금五鉉琴은 다섯 줄로 된 옛날 거문고다. 대나무 술대로 연주를 할 때 '뜯는다'고 표현한다. '뜯는다'는 말에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뜯고 거문고의 심장을 긁는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시인은 뜯는 예리함과 심오한 가락을 연주하는 연주자다. 그렇다면 훌륭한 연주자가 훌륭한 관객을 만드는 법이 아닐까? 시의 선율에 취한 독자는 시인이 연주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게 되고, '왜?'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詩人은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길고 짧은 시편들이 마치 오현금의 장단長短을 보는 듯하다. 시인은 어떤 대상에서 근원적인 삶을 직관적으로 포착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압축함으로써 긴장감을 갖게 하고 말을 줄임으로 여러 갈래 다의적 의미를 가지게 한다. 마음이 고이기도 전에 쏟아 내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시인이 말하는 방법이다.?
― 박희호(시인)
- 홍일선 (농부시인)
곧잘 휘청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었다.
땡볕은 사나웠고 그늘은 서늘했지만 그늘 아래 숨는 게 싫어 당당하게 걷기로 했다.
피하고 싶은 것들도 피하지 않았다.
외로움도 이 길의 운명이고, 잊히는 것도 이 길의 숙명이라면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길은 휘어지고 뒤틀어지고 끊기는 듯했으나 끊어지지 않고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갈길 멀어 늘 막막하고 아득한 길, 주저앉지 않으리라.
땀범벅이 될지라도 쉬엄쉬엄 걸어가리라.
땅 위, 땅 속 울림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자연을 잇는 길 위에서' 기억으로의 귀환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하얀 백발이 빗물로 흐르고
젖은 옷에서 피는 고단한 아지랑이는
한 생의 누더기
쓰고 있던 우산 노인에게 건네주고
돌아오는 먹먹한 발걸음에
죽순이 맺힌다
다 젖는 날이다
― 「길에서 비를 만나다」 부분
캄캄한 슬픔을 종이 한 장에 쏟아놓기까지 숱한 절망이 가슴을 관통했을 것이다. 바닥을 모르는 슬픔의 깊이에 가슴을 움켜쥐고 몇 번이나 나뒹굴었을까. 연극이 아닌 가혹한 현실에서 시인은 통곡하기도 한다.
이 시에는 '통점'이 있다. 4연 "하얀 백발이 빗물로 흐르고 / 젖은 옷에서 피는 고단한 아지랑이는 / 한 생의 누더기"에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어쩌면 반쯤 쓰다만 분신 같은 시들을 시인은 더 걱정했는지 모른다. 절반의 시편들은 이 악물고 절뚝거리며?일어선 흔적이다. 시 곳곳에 '통점'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암처럼 어두운 복지 사각지대에 이 시대 노인들은 눈물과 핏물로 점철된 생의 무대에 날마다 올라야 한다. 「길에서 비를 만나다」는 이렇게 태어났다.
시인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인은 자신이 돌아올 길을 알고 떠나간 치어처럼, 어느 날 '기억' 속의 어머니를 연쇄적으로 호명하며, "돌아오는 먹먹한 발걸음에 / 죽순이 맺힌다 // 다 젖는 날이다"라고 미학적 시선을 담아낸다.
이 시는 흔한 일상이지만 환경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이 시대 심각한 흔적을 익숙한 감각과 보편적 어휘로 해체(과거)하고 조립(현재)하고 있다. 어쩌면 시인이 제시하는 미덕은 효과적인 인식의 지지체를 세우기 위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라진 것들을 현재로 불러오거나 연속선상에 있는 기억을 이동시켜 제한된 인식을 조립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대안으로서 '기억' 속 어머니를 불러내어 긴장감을 제안하지만 현실의 풍경은 냉정하다. 이것이 시인의 고뇌라고 본다.
해질 무렵 장사를 끝내고
넘어질듯 후들거리는 발길 재촉하는 길
똬리를 받힌 목 힘줄 툭툭 불거지고
함지박 가득 출렁이던 노을 쏟아져
등을 물들인 적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땅거미가
엄마의 몸에 기어 다니는지
스멀스멀 가려웠다고
피딱지가 군데군데 엉킨 등을
저녁마다 내밀곤 했다
우리는 껍질 속 벌레를 찾아내려고
저녁 내 벅벅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손톱 밑엔 검붉은 노을만 잔뜩 끼어 나왔다
한 겹 옷으로 입고 있던
가려운 살비듬 후드득 떨어져 쌓이고
흐릿한 맥박으로 돌리던 하루하루,
간신히 엄마 몸 돌리던 시계의 태엽 멈추어서며
핏방울이 온기를 놓아버리자
엄마의 몸에서 서둘러 땅거미 빠져나가고
가려움에서 풀려난 몸,
그믐밤처럼 깜깜했다
― 「엄마의 등」 전문
이도화의 이번 시집에는 「엄마의 시간」, 「별등과 어머니」, 「그날의 언저리」, 「장날의 애가哀歌」 등 어머니에 대한 '노동' '가난' '그리움'의 기억들이 폭 넓게 전면화하고 있으며 언어의 더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감정을 충분히 가라앉히고 내면과 실존을 향하는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시의 언어로 끌어 들인다.
'그리움'이란 대상의 부재로 생겨나는 결핍의 정서다. 시인은 어머니의 '기억'에 몰입하여 긍정적인 시선으로 어머니의 그리움을 이해할 단서를 찾는 중이다. 시는 일반적인 생각과 충돌할 때 파생되는 파열음 속에 에너지가 충분해진다. 에너지는 뜻밖에 부드러움에서 나올 때가 적지 않다.
화려한 문장이나 과장된 이미지, 그럴듯한 포즈를 잡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감동이라고 한다면 시인의 시들이 대개 그러하다. '과거'와 '현실'을 들춰내는 다양한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평범함 속에서 찾아내는 삶의 의미가 특별하다. 나지막한 어조에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이 있다. 잔물결로 번져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기억은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이다.
지극하고 곡진한 것들은 깨진 사금파리 한 조각일 수도 있지만 시각의 중심이 다르다고 해서 결코 가볍진 않을 것이다. 관념을 탈피하고 난해한 기교를 벗어나 일상에서 만난 소소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서정성은 시의 중심이 되는 축으로 작용한다. 당연한 일상에서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와 치환하는 것은 시의 씨앗이 된다.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욱 그러하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 묻어 있는 '그리움'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시의 3연 "우리는 껍질 속 벌레를 찾아내려고 / 저녁 내 벅벅 찾아보았지만 /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 손톱 밑엔 검붉은 노을만 잔뜩 끼어 나왔다"에서 자식들의 망연자실한 이미지는 독자의 목울대를 치는 '적요'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그리움'의 강가를 서성이게 한다.
새파란 슬픔이 색깔이 되는
아득하게 뒤척이던 새벽이 깨어난다
망각된 비린내
절단된 조각소리 함몰되면
도마는 어금니에 생채기를 내고
푸른 살점들은 화온火溫으로 맥박이 멈춘다
기어이 도마가 칼날을 삼킬 즈음 아물지 않은 상처는
수없이 다녀간 냄새에 색을 입힌다
도마는 어머니의 한숨과 침침한 아궁이를 염장해두고
무딘 칼날의 단풍을 본다
결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엮어 햇빛에 골고루 익힌
도마는 늘 새벽이고 상처다
새들 발자국 선명한 물관이 굳어버린 강행군은
어쩌면 허공일지도 모른다
경계를 상실한 도마는 칼 시위에 몸을 뭉텅뭉텅 보시하고
치열한 격전의 잠복이 끝나면
어느 구들장에 찍힌 화인火印으로 유언을 쓸지
도마의 몸은
칼, 칼이 자해한 겉표지다
―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 전문
우리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신진대사를 한다. 이 필요성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생리적 욕구다.?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첫 단계는 먹는 욕구다. 가정에서 일차적으로 해소되는 욕구는 '어머니의 손'이다. 장소는 부엌에 있는 도마이고 그 시간은 새벽인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와 아내로서 이 욕구를 여러 겹으로 노래한다. '맹렬한 슬픔'?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냉정함과 뜨거운 삶의 열정으로?들끓는 다른 층이 있다.?시인의 내부에 누적된?이중적인 층이 이 시를 잘 구성하고 있다.
시인은?'나무'와 '불', 그리고 '절단'이라는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진술 너머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역설을 통해 새벽의 예후를 알리고 있다. 또한 무심히 버려둔 장소에서 반짝이는 기억 한 조각을 찾아낸다. 부재중인 시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시의 소재는 일상에 산재해 있고 시 쓰기는 삶을 묻는 질문과도 같다. 시인은 가장 예리한 질문을 위해 길들여진 타성을 분해하고 사고를 확장한다. 시 쓰기의 첫걸음은 대상을 관찰하고 생각을 기록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은 대부분 보이는 것들의 뒤편에 잠복해 있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문득 발견된 모티프가 새로운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때 시인이 채굴한 모티프는 소통을 위한 재료인 것이다.
고리가 촘촘하지 않으면 평면적인 이미지에서 그치고 말지만 익숙한 규정과 틀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낯선 곳의 탐색은 사라진 흔적을 채집할 수 있다. 이때 개인의 내밀한 기억은 대상과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시심의 키워드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 시 3행에서 7행 "망각된 비린내 / 절단된 조각소리 함몰되면 / 도마는 어금니에 생채기를 내고 / 푸른 살점들은 화온火溫으로 맥박이 멈춘다 / 기어이 도마는 칼날을 삼킬 즈음 아물지 않은 상처는 / 수없이 다녀간 냄새에 색을 입히고 있다"의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백미라 할 수 있고 목화처럼 희고 눈부신 기억의 중심에 도마 소리와 하얀 광목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있다.
물안개 한 아름 꺾어 시어詩語에 심어두고 합수머리 강둑에 섰다
시심詩心은
구애 삼매경에 취한 개개비 맑고 푸르른 소리
달팽이관에 이식하고
온화한 누이 닮은 꽃창포 미소
행갈이를 재촉할 때, 난 깃털처럼 가벼이
강가에 타박타박 낙관을 찍는다
강섶, 햇살에 몸 뒤척이던 안개 한 움큼
강江에 찍은 데칼코마니 약속인 듯 또 하나의 풍경이
초록빛을 산란하고 있다
물안개공원 산책로를 잠식한 꽃향기 아래로
산란기 잉어 뜨거운 몸짓이
덜 자란 부들대 뻐꾸기 울음 옮겨 놓으면
고요한 두물머리
물 폭풍은 기어이 내 심상心想을 허물고 만다
잎맥에 취한 물지기 청둥오리 아스라한 부리에 찍힌 詩 종자는
여기, 공원 한쪽에 한뎃잠을 청하고
원고지 위 시어詩語 낱낱이 물 위를 걷고 그곳 어딘가에 나는 없다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전문
이 시는 이도화의 첫 시집 표제작이다. 모티브가 된 배경은 시인이 살고 있는 경기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에 있는 물안개공원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곳을 '두물머리' 또는 '합수머리'라 한다.
이곳에는 시의 깊이가 그윽한 숲과 강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리운 것들이 모여 있고, 시의 결에는 온도가 있다. 또한 시대가 놓쳐버린 것들의 서정성 짙은 한 편의 시가 오롯이 보관되어 있다.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정경들이 도란도란 어깨를 맞대고, 낡은 기억을 불러내는 것은 보이는 것 너머에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근간과 시인이 지닌 소박한 색깔, 섬세한 감성의 촉수를 느낄 수 있다. 작은 떨림이 '행과 연'을 지탱하고 공간 전체를 작은 스토리가 차지, 물빛이 고요히 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원근을 무시하고는 붙잡을 수 없는 사진 속 피사체 같은 '자연'이 완강한 시간의 품에 숨겨진 작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상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돌아갈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난다. 쓸쓸함이 주는 여운으로 공간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와도 맞물린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는 "우리는 과거를 오로지 현재로부터 이해할 수 있고, 반대로 현재는 오로지 과거로부터 파악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과거는 흘러간 후 이해되고 현재는 과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연'은 늘 순차적으로 흐르는 과정이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고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경외함이다.
강물이 되려면 햇빛의 징검다리는 잠재된 슬픔을 불러내지 못한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면 몸은 결코 젖을 수 없다. 허울을 벗어버리고 슬픔으로 꿈틀대고 싶은 시인의 심연에 잠재된 심미적 감각은 한 줄기 물길로 처연하게 흐른다.
시심과 시어 사이 자연과 시인의 갈등구조를 시인은 동물적 감각으로 포획하여 원고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시인은 '시심'과 '시어'의 갈등, 나아가 '자연'으로의 회귀를 극복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자연에는 은밀한 비밀의 뒤꼍이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누군가 전 생애를 끌고 지나야 했던 길에는 늘 전언이 있다
자식 걸음 위안 삼아 집을 나서던 엄마,
아버지의 구부러진 길엔 그림자가 선명하다
나 또한 어떤 짐을 지고 길을 만들어야
굽은 길을 피할 수 있을까
길의 품엔 유언이 있다
어둑한 길이 새어나온 처마 끝에 조등이 내 걸려
길을 조문하고 있다
― 「길」부분
이도화 시인의 시에는 척박한 삶을 생각하고 '기억'을 유추하는 길에 대한 많은 시편들이 있다. 길에서 달팽이의 죽음을 본다. 억울한 죽음을 보면서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생의 근원을 캐묻는 '왜'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삶의 밑바닥에 깔린 근원적인 물음의 시편들은 구조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시인은 길 위에서 '기억'을 확장시키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에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움'에 대한 단아하고 형이상학적 이미지다. "자식 걸음 위안 삼아 집을 나서던 엄마, / 아버지의 구부러진 길엔 그림자가 선명하다" 어찌 처연한 '그리움'이라 아니하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끝에는 명징한 자아를 배치시키고 있다. "나 또한 어떤 짐을 지고 길을 만들어야 / 굽은 길을 피할 수 있을까 // 길의 품엔 유언이 있다 // 어둑한 길이 새어나온 처마 끝에 조등이 내 걸려 / 길을 조문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길에서 유언을 찾고 있다.
새벽 골목길 배회하며
각각 다른 무늬들의 화려했던 시절
반으로 접어 비뚤한 시선 속에 갇힌 무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노인의 리어카는
누구도 수거해 가지 않는 새벽안개
멍석처럼 둘둘 말아 폐지와 함께 싣고 간다
― 「젖은 리어카」 부분
시인은 사회현상을 외면할 수 없다. 사회성을 요구하는 집단에서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의 오류를 검증하고, 항거하며 구조적 불합리를 찾아야 한다.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구조가 결정되는 시대에 시인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잠재적 성향도 스스로 습득한 질서와 환경을 시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내어 그 얼개를 짤 수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단서는 현재와 미래의 실마리가 된다.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관계를 시인은 작품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지극히 사적인 흔적을 인용해 개인과 사회가 당면한 관계를 주목한다. 현재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 속에는 시인이 삶 속에서 건져 올린 기억이 포진하고 있다. 긍정적 이미지의 조합은 작품 속에 균질하게 배치되어 현재의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새벽 골목길 배회하며 / 각각 다른 무늬들의 화려했던 시절 / 반으로 접어 비뚤한 시선 속에 갇힌 무게 /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시인은 기억을 차례로 배치하며 뒤편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집중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설계해주는 힘은 서로를 의지하며 작동하고 있다.
이도화 시인의 詩 골격은 완만하고 유연하지만 희로애락의 무늬가 다양하게 새겨져 있다. 내면의 심리상태에 응축된 감정은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밀접하게 이어진다. 시인은 들뜨지 않고 과장되지 않은 어조로 상처를 풀어나가는 진솔함이 있다. 부드러운 어투 속에 설득력이 있고, 낮은 소리로 감정의 과잉을 차분하게 걸러내며, 주변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 '기억과 체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자연과 늘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시되면서 의미를 이미지화 하는 자유분방한 시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정한 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리듬을 만드는 내재율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순舜 임금이 만들었다는 오현금五鉉琴은 다섯 줄로 된 옛날 거문고다. 대나무 술대로 연주를 할 때 '뜯는다'고 표현한다. '뜯는다'는 말에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뜯고 거문고의 심장을 긁는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시인은 뜯는 예리함과 심오한 가락을 연주하는 연주자다. 그렇다면 훌륭한 연주자가 훌륭한 관객을 만드는 법이 아닐까? 시의 선율에 취한 독자는 시인이 연주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게 되고, '왜?'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詩人은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길고 짧은 시편들이 마치 오현금의 장단長短을 보는 듯하다. 시인은 어떤 대상에서 근원적인 삶을 직관적으로 포착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압축함으로써 긴장감을 갖게 하고 말을 줄임으로 여러 갈래 다의적 의미를 가지게 한다. 마음이 고이기도 전에 쏟아 내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시인이 말하는 방법이다.?
― 박희호(시인)
목차
목차
시인의 말 ― 4
1부 ― 봄, 이건 NG야
봄, 이건 NG야 ― 12
공사 중 ― 14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 ― 16
천 원의 필연 ― 18
친정 동네 구멍가게 ― 20
하루치 신발의 무게 ― 22
일용직 ― 24
시간을 얼리다 ― 26
별등과 어머니 ― 28
말의 알갱이들 ― 30
여행 ― 32
오징어도 울음이 있었다 ― 34
가을 오선지 ― 36
달빛 ― 38
빨래하던 날 ― 39
시래기가 익다 ― 40
소리가 깜깜하다 ― 42
시간을 빌려드립니다 ― 44
젖은 리어카 ― 46
2부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 48
새벽 인력시장 ― 50
동창생 ― 52
워낭과 동행 ― 54
하늘, 갈대를 느리게 읽다 ― 56
누에와 詩 ― 58
빨래와 주름 ― 60
엄마의 등 ― 62
아버지의 길 ― 64
빨래에도 나이테가 있다 ― 66
닭발의 기억 ― 68
오후 여섯 시 ― 70
꽃 무덤 ― 72
시작詩作 여행 ― 74
10월의 마지막 ― 76
비 내리는 곰배령 ― 78
눈目에 대한 기억 ― 80
소나기 ― 82
3부 ― 인문학을 스케치하다
인문학을 스케치하다 ― 84
소문이 무성하다 ― 86
아궁이에 몸 풀다 ― 88
마당 이발소 ― 90
지붕 없는 해우소 ― 92
분리수거 ― 94
길에서 비를 만나다 ― 96
어느 일요일 ― 98
어떤 길 ― 100
엄마의 시간 ― 102
한파경보에 대한 단상 ― 104
빈 둥지 ― 106
직선의 기억 ― 108
장날의 애가哀歌 ― 110
된장찌개 끓이는 저녁 ― 113
바람을 돌리는 언덕 ― 114
저녁 무렵 ― 116
동백터널 ― 118
눈꽃상여 ― 120
4부 ― 젖은 주소에 지문이 가득하다
젖은 주소에 지문이 가득하다 ― 124
시월 안개 ― 126
구멍 뚫린 우산 ― 128
태백 가는 길 ― 130
그날의 언저리 ― 132
월정사 선재길 ― 134
풍경소리 ― 136
길 ― 138
경계주의보 ― 140
배꼽 ― 142
겨울 아침에 ― 144
상고대 ― 146
묘목상 봄 ― 148
하루살이버섯 ― 150
울음이 빛나는 밤 ― 152
산국 ― 154
그 해 강릉은 ― 156
발문 '자연을 잇는 길 위에서' 기억으로의 귀환 ― 159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박희호)
1부 ― 봄, 이건 NG야
봄, 이건 NG야 ― 12
공사 중 ― 14
도마가 새벽을 깨운다 ― 16
천 원의 필연 ― 18
친정 동네 구멍가게 ― 20
하루치 신발의 무게 ― 22
일용직 ― 24
시간을 얼리다 ― 26
별등과 어머니 ― 28
말의 알갱이들 ― 30
여행 ― 32
오징어도 울음이 있었다 ― 34
가을 오선지 ― 36
달빛 ― 38
빨래하던 날 ― 39
시래기가 익다 ― 40
소리가 깜깜하다 ― 42
시간을 빌려드립니다 ― 44
젖은 리어카 ― 46
2부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 48
새벽 인력시장 ― 50
동창생 ― 52
워낭과 동행 ― 54
하늘, 갈대를 느리게 읽다 ― 56
누에와 詩 ― 58
빨래와 주름 ― 60
엄마의 등 ― 62
아버지의 길 ― 64
빨래에도 나이테가 있다 ― 66
닭발의 기억 ― 68
오후 여섯 시 ― 70
꽃 무덤 ― 72
시작詩作 여행 ― 74
10월의 마지막 ― 76
비 내리는 곰배령 ― 78
눈目에 대한 기억 ― 80
소나기 ― 82
3부 ― 인문학을 스케치하다
인문학을 스케치하다 ― 84
소문이 무성하다 ― 86
아궁이에 몸 풀다 ― 88
마당 이발소 ― 90
지붕 없는 해우소 ― 92
분리수거 ― 94
길에서 비를 만나다 ― 96
어느 일요일 ― 98
어떤 길 ― 100
엄마의 시간 ― 102
한파경보에 대한 단상 ― 104
빈 둥지 ― 106
직선의 기억 ― 108
장날의 애가哀歌 ― 110
된장찌개 끓이는 저녁 ― 113
바람을 돌리는 언덕 ― 114
저녁 무렵 ― 116
동백터널 ― 118
눈꽃상여 ― 120
4부 ― 젖은 주소에 지문이 가득하다
젖은 주소에 지문이 가득하다 ― 124
시월 안개 ― 126
구멍 뚫린 우산 ― 128
태백 가는 길 ― 130
그날의 언저리 ― 132
월정사 선재길 ― 134
풍경소리 ― 136
길 ― 138
경계주의보 ― 140
배꼽 ― 142
겨울 아침에 ― 144
상고대 ― 146
묘목상 봄 ― 148
하루살이버섯 ― 150
울음이 빛나는 밤 ― 152
산국 ― 154
그 해 강릉은 ― 156
발문 '자연을 잇는 길 위에서' 기억으로의 귀환 ― 159
― 강, 詩의 몸 위를 걷다 (박희호)
저자
저자
이도화
2003년 동강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경기도 문화원 주최 경기도 백일장 수필 부문 차상
경기도 문인협회 주최 백일장 시 부문 장원
하남시기예경진대회 문학 부문 최우수상
경기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2006년 문예사조 수필 부문 신인상
2017년 한국문학 시 부문 신인상
너른고을문학 회원
울림시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경기도 문화원 주최 경기도 백일장 수필 부문 차상
경기도 문인협회 주최 백일장 시 부문 장원
하남시기예경진대회 문학 부문 최우수상
경기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2006년 문예사조 수필 부문 신인상
2017년 한국문학 시 부문 신인상
너른고을문학 회원
울림시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