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부릅뜨고 와 귀를 가리고 가다(양장본 HardCover)
백봉 김기추 거사의 삶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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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마거사, 백봉 김기추의 삶과 가르침을 담다
청년기에는 조선민중을 억압하는 일제에 저항했고, 중년에는 교육 및 바른 정치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장년(56세)에는 불교에 입문하며 무자(無字)화두를 잡고 정진 끝에 대오하여 제법(諸法)의 실상을 알게 되고 그 후 여생을 환(幻)을 실(實)로 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대중들에게 사자후를 토했던 백봉 김기추거사의 삶과 계몽의 이야기.
청년기에는 조선민중을 억압하는 일제에 저항했고, 중년에는 교육 및 바른 정치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장년(56세)에는 불교에 입문하며 무자(無字)화두를 잡고 정진 끝에 대오하여 제법(諸法)의 실상을 알게 되고 그 후 여생을 환(幻)을 실(實)로 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대중들에게 사자후를 토했던 백봉 김기추거사의 삶과 계몽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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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0년간의 조사 연구를 거쳐 탄생한 사실의 기록
이 책은 백봉거사가 태어나 입적할 때까지 그에게 일어난 일, 그가 한 말, 그리고 그가 행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입적한 지 34년이 지났기 때문에 저자는 마치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사물의 윤곽을 파악하듯이 백봉거사의 행적을 파악해야 했다. 백봉거사가 남긴 300시간이 넘는 설법을 몇 번씩 들으며 그의 설법에 들어있는 그의 행적을 모았고, 100명이 넘는 그의 제자와 가족들을 한차례 이상 인터뷰하여 그들이 아는 거사의 이야기를 모았다. 일제 강점기의 신문을 포함한 여러 신문에서 그의 행적을 파악하거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맥락을 파악했다. 또 거사의 삶을 이해하는데 단서가 되는 장소와 기록을 모두 찾아 방문 조사했다. 8년간의 조사를 마치고 원고작업에 들어가 파악된 조각들을 정리하고 맞추는데 다시 2년을 썼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상상이나 추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다.
거사에 대한 미화, 우상화, 신격화를 배제
이 책의 저자는 백봉거사의 제자다. 흔히 제자는 스승을 미화한다. 우상화하고 신격화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를 경계했다. 저자는 스승이 남의 책을 베꼈다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이 책에 공개했으며 스승이 세상에서 첩으로 인정하는 보살과 만나 함께 지낸 이야기도 가감없이 기록했다. 그는 또 거사가 보인 많은 신기한 일들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거사의 주변인물이면 모두 아는 그의 전생이야기도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사실의 기록이 되어야 하며 근거를 보일 수 없는 이야기는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불법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서 사실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스승의 말을 따르는 것이 제자된 도리이며 스승을 제대로 모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통찰하게 하는 한 운동가의 사랑이야기
이 책은 민중을 사랑했던 한 사회운동가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해 무시당하고 탄압받는 조선 민중을 보며 일제에 대항했고,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가로, 정치인으로 민중을 일깨우고 민중이 살기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했으며, 대오 후에는 아집과 욕망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미망에서 벗어나도록 실상을 알리기 위해 헌신했던 한 선각자의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통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전통적인 간화선 공부와 이 시대의 수행법으로 거사가 개발한 새말귀 공부의 지침서
거사는 '마음 공부를 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책을 읽는 수행자는 거사의 일화를 읽으며 우선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한국불교의 전통에 따라 화두를 들고 선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거사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화두공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화두공부에 진전이 없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사람이나 새롭게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거사가 제시한 이 시대의 수행방법, 즉 새말귀 수행법에 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본래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중들이 바른 지견을 갖도록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노력한 거사의 자비심에 공감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약력]
1908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부산 제2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운동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후'특급 요시찰 인물'로 일제의 감시와 방해를 받으며 지내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으로 일할 때 굶주리는 시민들을 보고 양곡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 준 것이 군정법령 위반이 되어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형무소에서 2년을 복역한 후였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 정치에 뜻을 세우고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4·19혁명으로 자유당과 함께 파산하고 도피하듯 부산을 떠났다. 서울, 인천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다 1963년 여름에 불교를 만나 '무자(無字)'화두를 받고 참구해 이듬해 1월 크게 깨달았다. 이후 인천, 서울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가 1970년 충남 유성에 보림선원을 열고 대학생 및 수좌들을 가르쳤다. 1972년 부산으로 선원을 옮긴 후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985년에 지리산 선원에서 입적했다. 저서에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백봉선시집》, 《절대성과 상대성》 등이 있다.
[책속으로 이어서]
『대한불교』 7월 9일자 1면에 부산 지국이 낸 '불교강연회 안내' 광고가 실렸다. 부산지국 주최로 백봉 거사를 모시고 7월 12일부터 현대예식장과 영도도서관에서 15일간 법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한 쪽에 실린 광고지만 1면의 광고는 눈길을 끌만했다.반민주정치인으로 몰래 부산을 떠나야 했던 김기추는 이렇게 그의 법회광고가 신문에 실리는 백봉 거사가 되어 돌아왔다. 마가다국왕의 대접을 받는 위대한 붓다가 되어 가비라성을 방문하는 싯달타처럼 그는 태산괄목래의 기세로 고향에 돌아왔다.(228쪽)
《절대성과 상대성》이 발행된 후 백봉은 이 책을 강의교재로 썼다. 1975년, 1976년의 여름 정진법회와 대구법회에서 이를 강의했다. 백봉은 설법의 횟수, 청중의 설법 수용능력을 감안해 강의내용을 기획했는데 《절대성과 상대성》은 초급자를 위한 교재였다. 대체로 평일 법문은 부산에 살며 지속적으로 그의 설법을 들어 온 학인들이 참석했으므로 《유마경》, 《선문염송》 등 난이도가 높은 교재를 채택했다. 주말법회는 청중의 구성이 평일보다 더 다양했으므로 널리 알려진 《금강경》을 가능하면 쉽게 설하려고 노력했고 틈틈이 '절대성과 상대성'의 개념, 육신은 자체성이 없음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가 이 육신을 끌고 다님을 가르쳤다. 외부의 초대를 받아 하는 강의는 기초부터 시작했다. 한 번의 설법으로 끝나는 법회도 있지만 대개는 한 주일, 보름 등 이어진 강의가 많았는데 단발의 법회든 이어진 법회든 그는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강의를 구성했고 '절대성과 상대성'의 개념에서 시작해 점차 난이도를 높여 나갔다. 여름 겨울의 정진법회는 전국에서 학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백봉의 설법을 처음 듣거나, 오랜만에 듣는 학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초급과정부터 시작했다. 《절대성과 상대성》은 그렇게 법회를 시작하는 좋은 교재였다. 《절대성과 상대성》 강의를 듣고 이 육신이 무상하며 자성이 없음을 알고, 이 육신을 끌고 다니는 절대의 자리, 즉 허공과 같이 텅 비었으나 슬기가 있는 이 자리를 이해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육신을 끌고 다니는 놈, 그것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그래서 찾으려야 찾을 수 없고, 전해 주려도 전해 줄 수가 없다. 마치 허공과 같다. 그 빈 자리가 보고, 그 빈 자리가 들으며, 그 빈 자리가 밥을 먹는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삶을 굴려라.삶을 굴리되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성성惺惺하게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거사불교로서, 생활불교로서 생업을 행하며 깨어있는 것이다. 그 방법을 체계화하고 이름붙인 것이 '새말귀'다. 그의 수행방법론은 새말귀로 체계화되었다.(293~294쪽)
백봉은 혜암에 대해서 말을 아낀 듯하다. 혜암은 백봉보다 석 달 먼저 입적했는데 백봉은 그가 입적하기 전 "무상無相 무공無空 무비공無非空" 그러고는 "더 이상 할 말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으며 "존경스럽다.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참으로 웅변중의 웅변이다."라고 칭찬했는데 그것이 필자가 발견한 유일한 평가다. '비움과소통' 출판사에서 발행한 《공겁인》의 황정원 편에 '혜암 스님이 견성했느냐?'는 황정원의 질문에 백봉이 '견성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오류였다. 혜암이 아니고 내소사의 해안海眼이었다. 필자의 무지로 혜암으로 적은 것이다.(324쪽)
백봉은 선문염송의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중단하지 않았다. 힘을 다해 원고를 썼다. 1984년 여름을 보내며 그는 지리산에서의 회향을 생각했고 드디어 짐을 내려놓았다. 짬이 날 때, 쓰고 싶을 때 펜을 잡았다. 죽다 살아난 후 그는 시봉을 드는 홍승동에게 말했다."이제 쓰지 않을 것이다."15권 중반, 제594화 불자拂子를 마친 후였다.(355쪽)
백봉은 왜 지리산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열반을 보이시려는 붓다께 왜 이곳에서 입멸하고자 하느냐고 아난이 묻듯 백봉에게 물은 사람은 없었을까? 있었다.
내가 파계사 배도원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선생님에 대해 묻는 거야. 서로 아는 처지거든. 그래서 "지리산에 들어가시려고 한다." 대답했지. 그랬더니 스님이 성을 내시는 거야. "아니, 산중에 있다가도 시중으로 나와야 될 판인데 지금 산중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소리냐?" 그래서 선생님께 가서 배도원 스님 말을 전했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는 지리산에서 죽게 되어 있네!" 그리 대답하셨어. 그게 다야.- 황정원, 2015.3.10, 동래
(385쪽)
그가 남천동에서 한 선시 강의의 녹음은 11월 18일로 끝이 난다. 설법을 시작하며 백봉은 아침에 짐들이 일부 갔고 매일 조금씩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가 시작된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 부산의 마지막 설법으로 여겨진다.
여러분, 상승설법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를 만나야 돼요. 사람을 만나야 돼요. 처소를 만나야 돼요. 그 세 가지 인연이 원숙해야 만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인연중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내가 부산에 올 때는 '태산괄목래(泰山刮目來)' 하며 왔습니다. 나만 그러냐? 여러분도 이 세상에 올 때는 '태산괄목래'로 왔습니다. 어머니의 배에서 나올 때는 '태산괄목래'입니다. 허허허. 내가 산청으로 가는 것은 녹수가 엄이거라. 녹수가 귀를 막고 가는 거나 한가집니다. 그래서 살짝 갑니다. 일체 번거롭게 하지 않고. 나만 그러냐? 여러분도 가실 때에는 녹수엄이거라.- 백봉, 1984.11.18, 남천동
(401쪽)
5월 9일 백봉은 입주 학인을 모아 놓고 그의 선시 「서래의西來意」를 강의하면서 '일체를 수용하라'고 말했다. 그 시는 '무궁無窮'이란 글로 시작한다.無窮世界又無盡 다함없는 세계라서 또한다함 없는거이用去用來幾多年 쓰며가고 쓰며올새 얼마나한 세월인고買得靑山橫綠水 사서얻은 청산에는 녹수마저 놓였으니帆胎西意自歸矣 조사뜻을 담뿍실은 돛대배가 절로오네.산청선원의 살림은 궁窮했다. 그는 그날 설법에서 부산에서의 삶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풍족했는가를 말하고 산청에서 풍족한 것은 물이라고, 선원 뜰에서 그냥 흘러가는 물이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 용거용래用去用來와 청산녹수靑山綠水를 말하며 수용하라고 강조했다.(413쪽)
몇 시간 후 그는 다시 법당에 들어섰다. 법당에는 다과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철야정진의 마지막 날 자정이 넘어 열리는 다과회는 정진 참석자들이 다과를 즐기며, 때로는 막걸리를 마시며 정진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였고 그때까지 백봉이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아마 누워 잠을 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생의 마지막 밤이 아닌가?'가서 그들과 함께 하자!'그는 마치 자신의 가슴에 그들의 모습을 새기듯이 참석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을 것이다.(441쪽)이로써 20세기, 지구에서, 백봉 김기추라는 이름의 씀이用는 그 막을 내렸다.'이번에 지구에 와서 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 이제 지구에 다시 오지 않겠다. 우리 도솔천에서 만나자.'입적하던 날 그가 다과회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이제 그를 만나려면 도솔천에 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지구에 있지만 지금도 그와 함께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다시 이 지구에 육신을 나투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지구에 의지해 삶을 굴리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다.(447쪽)
이 책은 백봉거사가 태어나 입적할 때까지 그에게 일어난 일, 그가 한 말, 그리고 그가 행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입적한 지 34년이 지났기 때문에 저자는 마치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사물의 윤곽을 파악하듯이 백봉거사의 행적을 파악해야 했다. 백봉거사가 남긴 300시간이 넘는 설법을 몇 번씩 들으며 그의 설법에 들어있는 그의 행적을 모았고, 100명이 넘는 그의 제자와 가족들을 한차례 이상 인터뷰하여 그들이 아는 거사의 이야기를 모았다. 일제 강점기의 신문을 포함한 여러 신문에서 그의 행적을 파악하거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맥락을 파악했다. 또 거사의 삶을 이해하는데 단서가 되는 장소와 기록을 모두 찾아 방문 조사했다. 8년간의 조사를 마치고 원고작업에 들어가 파악된 조각들을 정리하고 맞추는데 다시 2년을 썼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상상이나 추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다.
거사에 대한 미화, 우상화, 신격화를 배제
이 책의 저자는 백봉거사의 제자다. 흔히 제자는 스승을 미화한다. 우상화하고 신격화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를 경계했다. 저자는 스승이 남의 책을 베꼈다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이 책에 공개했으며 스승이 세상에서 첩으로 인정하는 보살과 만나 함께 지낸 이야기도 가감없이 기록했다. 그는 또 거사가 보인 많은 신기한 일들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거사의 주변인물이면 모두 아는 그의 전생이야기도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사실의 기록이 되어야 하며 근거를 보일 수 없는 이야기는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불법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서 사실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스승의 말을 따르는 것이 제자된 도리이며 스승을 제대로 모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통찰하게 하는 한 운동가의 사랑이야기
이 책은 민중을 사랑했던 한 사회운동가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해 무시당하고 탄압받는 조선 민중을 보며 일제에 대항했고,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가로, 정치인으로 민중을 일깨우고 민중이 살기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했으며, 대오 후에는 아집과 욕망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미망에서 벗어나도록 실상을 알리기 위해 헌신했던 한 선각자의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통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전통적인 간화선 공부와 이 시대의 수행법으로 거사가 개발한 새말귀 공부의 지침서
거사는 '마음 공부를 하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책을 읽는 수행자는 거사의 일화를 읽으며 우선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한국불교의 전통에 따라 화두를 들고 선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거사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화두공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화두공부에 진전이 없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사람이나 새롭게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거사가 제시한 이 시대의 수행방법, 즉 새말귀 수행법에 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본래의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중들이 바른 지견을 갖도록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노력한 거사의 자비심에 공감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거사 약력]
1908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부산 제2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민족운동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후'특급 요시찰 인물'로 일제의 감시와 방해를 받으며 지내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간사장으로 일할 때 굶주리는 시민들을 보고 양곡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 준 것이 군정법령 위반이 되어 5년형을 언도받았다.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형무소에서 2년을 복역한 후였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다 정치에 뜻을 세우고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4·19혁명으로 자유당과 함께 파산하고 도피하듯 부산을 떠났다. 서울, 인천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다 1963년 여름에 불교를 만나 '무자(無字)'화두를 받고 참구해 이듬해 1월 크게 깨달았다. 이후 인천, 서울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가 1970년 충남 유성에 보림선원을 열고 대학생 및 수좌들을 가르쳤다. 1972년 부산으로 선원을 옮긴 후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985년에 지리산 선원에서 입적했다. 저서에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백봉선시집》, 《절대성과 상대성》 등이 있다.
[책속으로 이어서]
『대한불교』 7월 9일자 1면에 부산 지국이 낸 '불교강연회 안내' 광고가 실렸다. 부산지국 주최로 백봉 거사를 모시고 7월 12일부터 현대예식장과 영도도서관에서 15일간 법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한 쪽에 실린 광고지만 1면의 광고는 눈길을 끌만했다.반민주정치인으로 몰래 부산을 떠나야 했던 김기추는 이렇게 그의 법회광고가 신문에 실리는 백봉 거사가 되어 돌아왔다. 마가다국왕의 대접을 받는 위대한 붓다가 되어 가비라성을 방문하는 싯달타처럼 그는 태산괄목래의 기세로 고향에 돌아왔다.(228쪽)
《절대성과 상대성》이 발행된 후 백봉은 이 책을 강의교재로 썼다. 1975년, 1976년의 여름 정진법회와 대구법회에서 이를 강의했다. 백봉은 설법의 횟수, 청중의 설법 수용능력을 감안해 강의내용을 기획했는데 《절대성과 상대성》은 초급자를 위한 교재였다. 대체로 평일 법문은 부산에 살며 지속적으로 그의 설법을 들어 온 학인들이 참석했으므로 《유마경》, 《선문염송》 등 난이도가 높은 교재를 채택했다. 주말법회는 청중의 구성이 평일보다 더 다양했으므로 널리 알려진 《금강경》을 가능하면 쉽게 설하려고 노력했고 틈틈이 '절대성과 상대성'의 개념, 육신은 자체성이 없음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가 이 육신을 끌고 다님을 가르쳤다. 외부의 초대를 받아 하는 강의는 기초부터 시작했다. 한 번의 설법으로 끝나는 법회도 있지만 대개는 한 주일, 보름 등 이어진 강의가 많았는데 단발의 법회든 이어진 법회든 그는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강의를 구성했고 '절대성과 상대성'의 개념에서 시작해 점차 난이도를 높여 나갔다. 여름 겨울의 정진법회는 전국에서 학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백봉의 설법을 처음 듣거나, 오랜만에 듣는 학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초급과정부터 시작했다. 《절대성과 상대성》은 그렇게 법회를 시작하는 좋은 교재였다. 《절대성과 상대성》 강의를 듣고 이 육신이 무상하며 자성이 없음을 알고, 이 육신을 끌고 다니는 절대의 자리, 즉 허공과 같이 텅 비었으나 슬기가 있는 이 자리를 이해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육신을 끌고 다니는 놈, 그것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그래서 찾으려야 찾을 수 없고, 전해 주려도 전해 줄 수가 없다. 마치 허공과 같다. 그 빈 자리가 보고, 그 빈 자리가 들으며, 그 빈 자리가 밥을 먹는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삶을 굴려라.삶을 굴리되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성성惺惺하게 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거사불교로서, 생활불교로서 생업을 행하며 깨어있는 것이다. 그 방법을 체계화하고 이름붙인 것이 '새말귀'다. 그의 수행방법론은 새말귀로 체계화되었다.(293~294쪽)
백봉은 혜암에 대해서 말을 아낀 듯하다. 혜암은 백봉보다 석 달 먼저 입적했는데 백봉은 그가 입적하기 전 "무상無相 무공無空 무비공無非空" 그러고는 "더 이상 할 말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으며 "존경스럽다.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참으로 웅변중의 웅변이다."라고 칭찬했는데 그것이 필자가 발견한 유일한 평가다. '비움과소통' 출판사에서 발행한 《공겁인》의 황정원 편에 '혜암 스님이 견성했느냐?'는 황정원의 질문에 백봉이 '견성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오류였다. 혜암이 아니고 내소사의 해안海眼이었다. 필자의 무지로 혜암으로 적은 것이다.(324쪽)
백봉은 선문염송의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중단하지 않았다. 힘을 다해 원고를 썼다. 1984년 여름을 보내며 그는 지리산에서의 회향을 생각했고 드디어 짐을 내려놓았다. 짬이 날 때, 쓰고 싶을 때 펜을 잡았다. 죽다 살아난 후 그는 시봉을 드는 홍승동에게 말했다."이제 쓰지 않을 것이다."15권 중반, 제594화 불자拂子를 마친 후였다.(355쪽)
백봉은 왜 지리산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열반을 보이시려는 붓다께 왜 이곳에서 입멸하고자 하느냐고 아난이 묻듯 백봉에게 물은 사람은 없었을까? 있었다.
내가 파계사 배도원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선생님에 대해 묻는 거야. 서로 아는 처지거든. 그래서 "지리산에 들어가시려고 한다." 대답했지. 그랬더니 스님이 성을 내시는 거야. "아니, 산중에 있다가도 시중으로 나와야 될 판인데 지금 산중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소리냐?" 그래서 선생님께 가서 배도원 스님 말을 전했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는 지리산에서 죽게 되어 있네!" 그리 대답하셨어. 그게 다야.- 황정원, 2015.3.10, 동래
(385쪽)
그가 남천동에서 한 선시 강의의 녹음은 11월 18일로 끝이 난다. 설법을 시작하며 백봉은 아침에 짐들이 일부 갔고 매일 조금씩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가 시작된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 부산의 마지막 설법으로 여겨진다.
여러분, 상승설법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를 만나야 돼요. 사람을 만나야 돼요. 처소를 만나야 돼요. 그 세 가지 인연이 원숙해야 만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인연중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내가 부산에 올 때는 '태산괄목래(泰山刮目來)' 하며 왔습니다. 나만 그러냐? 여러분도 이 세상에 올 때는 '태산괄목래'로 왔습니다. 어머니의 배에서 나올 때는 '태산괄목래'입니다. 허허허. 내가 산청으로 가는 것은 녹수가 엄이거라. 녹수가 귀를 막고 가는 거나 한가집니다. 그래서 살짝 갑니다. 일체 번거롭게 하지 않고. 나만 그러냐? 여러분도 가실 때에는 녹수엄이거라.- 백봉, 1984.11.18, 남천동
(401쪽)
5월 9일 백봉은 입주 학인을 모아 놓고 그의 선시 「서래의西來意」를 강의하면서 '일체를 수용하라'고 말했다. 그 시는 '무궁無窮'이란 글로 시작한다.無窮世界又無盡 다함없는 세계라서 또한다함 없는거이用去用來幾多年 쓰며가고 쓰며올새 얼마나한 세월인고買得靑山橫綠水 사서얻은 청산에는 녹수마저 놓였으니帆胎西意自歸矣 조사뜻을 담뿍실은 돛대배가 절로오네.산청선원의 살림은 궁窮했다. 그는 그날 설법에서 부산에서의 삶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풍족했는가를 말하고 산청에서 풍족한 것은 물이라고, 선원 뜰에서 그냥 흘러가는 물이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 용거용래用去用來와 청산녹수靑山綠水를 말하며 수용하라고 강조했다.(413쪽)
몇 시간 후 그는 다시 법당에 들어섰다. 법당에는 다과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철야정진의 마지막 날 자정이 넘어 열리는 다과회는 정진 참석자들이 다과를 즐기며, 때로는 막걸리를 마시며 정진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였고 그때까지 백봉이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아마 누워 잠을 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생의 마지막 밤이 아닌가?'가서 그들과 함께 하자!'그는 마치 자신의 가슴에 그들의 모습을 새기듯이 참석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을 것이다.(441쪽)이로써 20세기, 지구에서, 백봉 김기추라는 이름의 씀이用는 그 막을 내렸다.'이번에 지구에 와서 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 이제 지구에 다시 오지 않겠다. 우리 도솔천에서 만나자.'입적하던 날 그가 다과회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이제 그를 만나려면 도솔천에 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지구에 있지만 지금도 그와 함께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젠가 다시 이 지구에 육신을 나투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지구에 의지해 삶을 굴리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다.(447쪽)
목차
목차
머리말 … 0041.
눈을 부릅뜨고 오다 … 011
한의원의 큰아들로 출생하다·011 / 학교에 입학하다·016 / 교명 개명에 따른 소요의 전말·019 / 1년 만에 상업학교를 그만두다·022 / 정영모를 만나 부산 청년동맹 가입을 권유받다·026 / 형무소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청년동맹활동·028 / 공산주의 사상을 만나다·033 / 결국 감옥에 가다·035 / 사상범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오니·040 / 만주로 떠나다·044 / 체포되어 헌병대 유치장에 구금되다·047 / 관동군사령부의 요직에 임명되다·052 / 항일운동 외에는 할일이 없다·054 / 항일의식을 갖게 된 계기·057
2. 하늘을 날려 하나 날개가 꺾이다 … 061
해방이 된 땅에서 다시 감옥에 가다·061 / 소금공장을 운영하다·065 / 보도연맹 간사장이 되다·065 / 학교를 세우다·068 / 아들을 얻다·069 / 국회의원을 꿈꾸다·071 / 자유당에 입당하다·072 / 자유당과 함께 침몰하다·075
3. 불교를 만나다 … 077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다·077 / 불교를 만나 발심하다·079 / 법을 찾아 절에 가다·081 / 무자화두를 참구하다·083 / 화두를 버리려 하다·086 / 그림의 달과 저 하늘의 달이 원리가 다르지 않다, 하나다·087 / 심우사에서 정진하다·089 / 대오를 하다·093 / 무거무래역무주의 뜻을 알다·100
4. 금강경 강송을 쓰다 … 103
전준렬의 도움을 받다·103 / 밤을 새워 33개의 시를 짓다·107 / 금강경 강송을 쓰다·112 / 남의 글, 내 글이 없다?·117 / 나는 경사도, 법사도 아니다·119 / 동생이 금강경 책을 불사르려 하다·123 / 금강경 강송을 완성하다·124
5. 정릉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 … 127
강혜를 만나다·127 / 이수열을 만나다·130 / 금곡에서 첫 정진법회를 열다·132 / 도농, 그리고 최 대원경·138 / 보림회의 와해·145 / 도농에서 2차 정진법회를 열다·148 / 안성 청룡사에서 3차 정진법회를 열다·150
6. 선시집을 내다 … 157
시집이 출간되다·157 / 일심송·162 / 벽오동·163 / 보림선·165 / 보림삼관·168 / 종송(오도송)·170 / 개정판을 내다·171
7. 유마경 강론을 쓰다 … 173
《유마경 강론》이 출간되다·173 / 법은 묻고 청하는 일에서 시작된다·176 /유마경 강론의 산실, 도농리·178 / 통윤의 유마경 직소·180 / 이야깃거리가 되는 곳에서 입을 열다·183 / 천리마에 날개를 달다·184 / 유마경 서문, 인생선언·185 / 천녀의 폭탄선언에 감동하다·187 / 2판, 3판을 내다·189
8. 충청도에서 힘을 키우다 … 191
계룡산 신도안에 자리를 잡다·191 / 대전고 학생들이 대거 참석한 1969년 겨울 정진법회·193 / 대전 심광사로 거처를 옮기다·196 / 대전고 학생들의 시봉을 받다·199 / 화봉 유엽을 만나다·201 / 청담과 대의가 출가를 권유하다·205 / 대전불교학생회에 불법을 강의하다·210 / 유성 죽동에 보림선원을 열다·213 / 1970년 겨울 정진법회·216 / 송광사에 가다·219 /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하다·221
9. 사직동에서 꽃을 피우다 … 227
부산 영도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227 / 부산 거사림이 결성되다·230 / 송도 바닷가에서 겨울을 보내다·233 / 남부민동에서 봄을 보내다·235 / 사직동에 보림선원을 열다·237 / 진용선을 필두로 인가가 이어지다·240 / 절대성과 상대성을 쓰다·245 / 대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동도사 정진법회·251 /일송 정영모가 인가받다·252 / 보림학보를 발간하다·256 / 학인이 입주하다·259 / 동광 혜두를 만나다·262 / 금강대에서 겨울 정진법회를 열다·266 /공덕패를 만들다·267 / 금정사에서 금강경 법회를 열다·269 / 사직동을 떠나다·270
10. 거사선풍은 남쪽으로부터 … 273
광안리에 보림선원을 열다·273 / 입문 한 달여의 학인을 인가하다·278 / 병원에 입원하다·280 / 학인 둘을 짝지우다·282 / 남천동으로 선원을 옮기다·285 / 불상을 모시다·291 / 새말귀를 정립하다·293 / 이어지는 인가, 그리고 혼란·302 / 미담 주인공의 재를 지내주다·310 / 학인 둘을 중매하다·311 / 무위당 이원세가 입주하다·313 / 거사선풍은 남방으로부터·317 / 혜암을 만나다·321 / 능엄경을 강의하다·324
11. 선문염송 요론을 쓰다 … 328
선문염송의 번역과 강론에 뜻을 세우다·328 / 선문염송 요론 제1권을 간행하다·331 / 선문염송을 강의하다·334 / 4·8절 행사를 크게 하다·335 / 경봉을 만나다·336 / 전강과의 인연·339 / 서울에서의 법회, 그리고 강혜에 대한 기대·342 / 새말귀로 학인들을 가르치다·345 / 자화상을 그려라·347 / 선문염송 요론 집필을 멈추다·351 / 인가가 뜸해지다·355 / 백봉의 일상·357 / 가난하고 검소한 살림·361 / 경 공부에 대한 경계·365 / 나들이·369 / 백봉의 주례사·371 / 백봉의 49재 법문·375
12. 귀를 가리고 가다 … 381
선원건립을 추진하다·381 / 보림회의 균열과 백봉의 탄식·384 / 후계자가 나오기를 소원하다·390 / 산청 보림선원을 짓다·394 / 선시를 강의하다·398 /산청으로 선원을 옮기다·401 / 산청에서 첫 정진법회를 열다·405 / 공적함을 즐기다·407 / 일체를 수용하라.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된다·412 / 원고를 불태우다·415 / 선시 강의를 하다·416 / 4·8절을 맞아 소원성취의 탑을 선물하다·417 / 공작과 함께 지내다·420 / 어려운 살림·422 / 가을이 되면 저 산을 막 뛰어다닐 거다·424 / 유마탑을 세우다·427 / 기를 만들다·435 / 마지막 정진법회를 열다·437 / 씀이를 거두다·442
찾아보기 … 448
눈을 부릅뜨고 오다 … 011
한의원의 큰아들로 출생하다·011 / 학교에 입학하다·016 / 교명 개명에 따른 소요의 전말·019 / 1년 만에 상업학교를 그만두다·022 / 정영모를 만나 부산 청년동맹 가입을 권유받다·026 / 형무소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청년동맹활동·028 / 공산주의 사상을 만나다·033 / 결국 감옥에 가다·035 / 사상범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오니·040 / 만주로 떠나다·044 / 체포되어 헌병대 유치장에 구금되다·047 / 관동군사령부의 요직에 임명되다·052 / 항일운동 외에는 할일이 없다·054 / 항일의식을 갖게 된 계기·057
2. 하늘을 날려 하나 날개가 꺾이다 … 061
해방이 된 땅에서 다시 감옥에 가다·061 / 소금공장을 운영하다·065 / 보도연맹 간사장이 되다·065 / 학교를 세우다·068 / 아들을 얻다·069 / 국회의원을 꿈꾸다·071 / 자유당에 입당하다·072 / 자유당과 함께 침몰하다·075
3. 불교를 만나다 … 077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다·077 / 불교를 만나 발심하다·079 / 법을 찾아 절에 가다·081 / 무자화두를 참구하다·083 / 화두를 버리려 하다·086 / 그림의 달과 저 하늘의 달이 원리가 다르지 않다, 하나다·087 / 심우사에서 정진하다·089 / 대오를 하다·093 / 무거무래역무주의 뜻을 알다·100
4. 금강경 강송을 쓰다 … 103
전준렬의 도움을 받다·103 / 밤을 새워 33개의 시를 짓다·107 / 금강경 강송을 쓰다·112 / 남의 글, 내 글이 없다?·117 / 나는 경사도, 법사도 아니다·119 / 동생이 금강경 책을 불사르려 하다·123 / 금강경 강송을 완성하다·124
5. 정릉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 … 127
강혜를 만나다·127 / 이수열을 만나다·130 / 금곡에서 첫 정진법회를 열다·132 / 도농, 그리고 최 대원경·138 / 보림회의 와해·145 / 도농에서 2차 정진법회를 열다·148 / 안성 청룡사에서 3차 정진법회를 열다·150
6. 선시집을 내다 … 157
시집이 출간되다·157 / 일심송·162 / 벽오동·163 / 보림선·165 / 보림삼관·168 / 종송(오도송)·170 / 개정판을 내다·171
7. 유마경 강론을 쓰다 … 173
《유마경 강론》이 출간되다·173 / 법은 묻고 청하는 일에서 시작된다·176 /유마경 강론의 산실, 도농리·178 / 통윤의 유마경 직소·180 / 이야깃거리가 되는 곳에서 입을 열다·183 / 천리마에 날개를 달다·184 / 유마경 서문, 인생선언·185 / 천녀의 폭탄선언에 감동하다·187 / 2판, 3판을 내다·189
8. 충청도에서 힘을 키우다 … 191
계룡산 신도안에 자리를 잡다·191 / 대전고 학생들이 대거 참석한 1969년 겨울 정진법회·193 / 대전 심광사로 거처를 옮기다·196 / 대전고 학생들의 시봉을 받다·199 / 화봉 유엽을 만나다·201 / 청담과 대의가 출가를 권유하다·205 / 대전불교학생회에 불법을 강의하다·210 / 유성 죽동에 보림선원을 열다·213 / 1970년 겨울 정진법회·216 / 송광사에 가다·219 /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하다·221
9. 사직동에서 꽃을 피우다 … 227
부산 영도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다·227 / 부산 거사림이 결성되다·230 / 송도 바닷가에서 겨울을 보내다·233 / 남부민동에서 봄을 보내다·235 / 사직동에 보림선원을 열다·237 / 진용선을 필두로 인가가 이어지다·240 / 절대성과 상대성을 쓰다·245 / 대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동도사 정진법회·251 /일송 정영모가 인가받다·252 / 보림학보를 발간하다·256 / 학인이 입주하다·259 / 동광 혜두를 만나다·262 / 금강대에서 겨울 정진법회를 열다·266 /공덕패를 만들다·267 / 금정사에서 금강경 법회를 열다·269 / 사직동을 떠나다·270
10. 거사선풍은 남쪽으로부터 … 273
광안리에 보림선원을 열다·273 / 입문 한 달여의 학인을 인가하다·278 / 병원에 입원하다·280 / 학인 둘을 짝지우다·282 / 남천동으로 선원을 옮기다·285 / 불상을 모시다·291 / 새말귀를 정립하다·293 / 이어지는 인가, 그리고 혼란·302 / 미담 주인공의 재를 지내주다·310 / 학인 둘을 중매하다·311 / 무위당 이원세가 입주하다·313 / 거사선풍은 남방으로부터·317 / 혜암을 만나다·321 / 능엄경을 강의하다·324
11. 선문염송 요론을 쓰다 … 328
선문염송의 번역과 강론에 뜻을 세우다·328 / 선문염송 요론 제1권을 간행하다·331 / 선문염송을 강의하다·334 / 4·8절 행사를 크게 하다·335 / 경봉을 만나다·336 / 전강과의 인연·339 / 서울에서의 법회, 그리고 강혜에 대한 기대·342 / 새말귀로 학인들을 가르치다·345 / 자화상을 그려라·347 / 선문염송 요론 집필을 멈추다·351 / 인가가 뜸해지다·355 / 백봉의 일상·357 / 가난하고 검소한 살림·361 / 경 공부에 대한 경계·365 / 나들이·369 / 백봉의 주례사·371 / 백봉의 49재 법문·375
12. 귀를 가리고 가다 … 381
선원건립을 추진하다·381 / 보림회의 균열과 백봉의 탄식·384 / 후계자가 나오기를 소원하다·390 / 산청 보림선원을 짓다·394 / 선시를 강의하다·398 /산청으로 선원을 옮기다·401 / 산청에서 첫 정진법회를 열다·405 / 공적함을 즐기다·407 / 일체를 수용하라.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된다·412 / 원고를 불태우다·415 / 선시 강의를 하다·416 / 4·8절을 맞아 소원성취의 탑을 선물하다·417 / 공작과 함께 지내다·420 / 어려운 살림·422 / 가을이 되면 저 산을 막 뛰어다닐 거다·424 / 유마탑을 세우다·427 / 기를 만들다·435 / 마지막 정진법회를 열다·437 / 씀이를 거두다·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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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최운초
스물아홉에 백봉 거사를 만나 입문했고 이듬해 선원에 입주해 직접 사사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우주항공공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영컨설턴트로 일했으며 《성과주의의 혁신》 《이너게임》 《공겁인1,2》 등 저서와 역서 8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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