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강(반걸음시인선 5)
이봉환 시집
이봉환 시집 『응강』은 〈응강〉, 〈굴〉, 〈성주〉, 〈내 귀하고 늠름하고 어여쁜〉, 〈아비 노릇〉, 〈돌각담을 쌓다〉, 〈다락방 창에 펼쳐진 염문 한 자락〉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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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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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응강』에는 울음의 얼룩이 묻어 있다. 하지만 이 얼룩은 보일락 말락 해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눈물을 옷소매로 쓰윽 훔치고 썼거나 눈물이 터지려는 즈음에 시를 썼을 것이다.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응강」에서 "어릴 적 마루청 밑 짚가리 응강 속에서 달걀을 훔친 내가 흠신 종아릴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잠들어버린"이라고 지난 일을 떠올릴 때, 이것은 단순한 회상으로도 읽히지만 지금의 울음을 과거의 이야기로 슬쩍 덮은 느낌도 준다.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면서 슬픔의 정체를 헤아려보는 시심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말한다. "그늘이나 응달이 고향에서는 응강인데 꼭 응강이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곳만은 아니었다". 이 진술은 자신의 슬픔마저 말없이 바라볼 줄 아는 힘의 표현이다.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곳"을 "서늘하고 깊고 시퍼런 물줄기"로 바꾸는 동력인 그것의 근원 또는 토대는 무엇일까?
혼자 있길 좋아하는 둥근 돌은 여전히 홀로가 좋다
이웃과 맞대려 하자 와르르 허물어져버린다
_「돌각담을 쌓다」 부분
한참을, 뒷산이 내 뒤에 배경처럼 앉아 있었고
또 한참을, 멧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곁이 되어 있었다
_「세상에서 울음이 가장 슬픈 새」 부분
이봉환 시인의 작품에는 이렇게 고독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 이유가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이 고독이 시인의 지나온 길을 더욱 단단하게 재구성하게 하고 있다. 시집에 실린 마지막 작품의 제목도 '응강'인데, 그 작품에서는 처음에 실린 '응강'과는 다르게 말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즉 시인은 "도무지 그곳 사람들이 생각나질 않네"라고 말하면서 그 또한 "등줄기 서느런 강"이라고 한다. "서느런 강"은 고독의 질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결국 고독이 서러움이나 슬픔을 서늘하고 깊은 것으로 전환시키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봉환 시인은 고독 속에 있는 듯 보이며 "이제 나는 내 시는 제어할 틈도 없이 막 나갈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은 그 상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나는"과 "내 시는" 같은 동어반복은 그 무의식을 가리키는 것만 같다.
고독의 원환
하지만 이 고독은 자폐적이지 않다. 목재소에 쌓여 있는 "비명을 지르며 토막 날" 운명의 나무들에게서 시인은 "피 맑은 향기"를 맡기도 하고(「목재소 앞을 지나다」) 살 만해지니 세상을 떠나거나, 떠날 때가 돼버린 삶 앞에서 "어둠 또한 또 다른 햇살 그늘인 당신"인 것을 긍정하기도 한다.(「무궁화호 객실에서) 아마도 이 때 시인에게 어머니의 삶이 온전히 보였던 듯하다.
특히나 우리 엄마는 거미하고도 절친이어서
안방에 집도 지으라고 허락까지 하셨다
함석 물받이의 붉은
녹들은 엄마를 향해 번져가고
걸레도 당신 가까이서 쭈글쭈글 같이 말라가고 있는 걸 보면
개미 떼랑 먼지들 쓸어내지 않고 곁에 두신 뜻
잘 알겠다 엄마는
언제 또 고양이 아들까지 낳아두셨나
_「엄마의 소원」 부분
시인의 어머니도 "살 만한께 저세상 갈 때가 돼버렸다"다는 듯이 요양소에 입소했는데, 시인은 여기서 누추해진 삶이 아니라 "일생이 내내 사생결단"이었던 장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에게 '살 만해진 삶'은 결핍이 사라졌거나 가난을 물리친 삶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선 삶에 해당된다. 즉 대긍정의 삶이 '살 만해진 삶'인 것이다. 그런 대긍정의 삶이 흘러가는 물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물은 흘러서 정말 자신에게로 가는 것인가"(「도깨비버들」)라고 말이다. 이런 물음 아닌 물음 속에는 시간과 사건이 "끊임없이 다져지고 다져진 결정"(「퇴적암 속살이 말했다)이 웅크리고 있을 터이다.
바위는 경도가 정점에 이른 언제부턴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조금 푸석거렸는데, 가슴이며 팔다리를 꽉 움켜잡고 있던 돌의 장력이 정점을 막 지날 때 슬쩍, 제 가슴 한구석에 씨앗을 하나 받아들였던 것 그건 저를 쪼개고 부수어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의 시작이었고,
_「사랑의 고통」 부분
"끊임없이 다져지고 다져진 결정"은 위 작품에 와서는 다시 쪼개지고 부수어진다. 결정(結晶)이 되고 다시 부수어지는 반복을 받아들이는 것이 긍정의 궁극적 지평이지만, 여기에 이르는 과정은 사실 고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도 자아 바깥은 사물과 사건을 인식할 줄 아는 힘센 고독 없이는 말이다. 이번 시집에서 이봉환 시인이 거기까지 가 있는지는 조금 불명확하다. 시집의 마지막의 작품이 첫 번째 작품과 같은 제목인 '응강'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응강'에서 다시 "서느런 강"이 등장하는 것을 봐서는 아직도 고독의 원환 안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시는 그 고독의 원환을 다시 만들면서 탄생하는 것 아닐까? 그 원환에서 벗어나면 시마저 떠나게 되는 것 아닐까?
목차
목차
응강ㆍ10
굴ㆍ12
성주城主ㆍ14
내 귀하고 늠름하고 어여쁜ㆍ16
아비 노릇ㆍ18
돌각담을 쌓다ㆍ20
다락방 창에 펼쳐진 염문 한 자락ㆍ22
김 할머니와 중고 유모차ㆍ24
세상에서 울음이 가장 슬픈 새ㆍ26
상준 형ㆍ28
농담 반 진담 반ㆍ30
유달산ㆍ32
목재소 앞을 지나다ㆍ34
백양사 가는 길ㆍ36
무궁화호 객실에서ㆍ38
말의 저편ㆍ40
엄마의 소원ㆍ42
추석 대목 장날 이러고들 있을 것이다ㆍ44
엄마가 날 부르신다ㆍ46
사생결단ㆍ48
요양원 음악회ㆍ50
치매야 정말 고맙다ㆍ52
환생ㆍ54
엄마 생각ㆍ56
오, 어머니ㆍ58
오동꽃 나팔을 부는 여자ㆍ60
햇살 아래 강물 곁에서ㆍ62
세상 사람들은ㆍ64
도깨비버들ㆍ66
퇴적암 속살이 말했다ㆍ68
첫 사과 빛ㆍ70
꽃 속에 대한 궁금함ㆍ72
푸름푸름 웃음ㆍ74
무궁화 잎ㆍ76
어느 날 가만히 잎맥을 들여다보라ㆍ78
햇살 속의 슬픔ㆍ80
잠자리 생각ㆍ82
빗방울의 추억ㆍ84
신금리 구절초ㆍ86
구절초에게ㆍ88
구월ㆍ90
홀아비꽃대ㆍ92
바람이 하는 일ㆍ94
장마를 기다림ㆍ96
이끼ㆍ98
큰까치수영을 처음 보았을 때ㆍ100
간지락나무ㆍ102
자꾸 뒷짐을 지게 된다ㆍ104
안개 낀 칠산 앞바다의 저녁 불빛ㆍ106
헛기침ㆍ108
그 쪽방ㆍ110
사랑의 고통ㆍ112
3월의 눈ㆍ114
꽃 구멍ㆍ116
날 사랑하는 당신의 속눈썹?등줄실잠자리의 사랑ㆍ118
응강ㆍ120
해설
다시 떠날 일이 생각난 듯 잠시 머뭇거리는 잠자리처럼 | 김영춘ㆍ122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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