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가 다녀간 새벽(시의 시간들 미래시선 4)
정태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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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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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서의 시 그러나 다시 기억을 넘어가는 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에너지가 질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모하지만 이 사실을 시에게로 적용해보면 시의 매력은 경험의 무게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경험의 무게 속에는 세월의 연륜과 깊이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선 일단 시적 표현의 문제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그 경험의 무게는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경험의 무게는 결국 기억의 부피와 밀도의 지속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기억의 부피와 밀도(강도)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가 다시 문제가 된다. 기억은 단순히 경험을 통해 습득한 정보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 그리움이나 애착의 정도를 따져야 한다는 의문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서 그 기억이 단순한 양의 정도라면 인간은 이미 그 저장 능력에서 인공지능(AI)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개별 인간의 경험은 상당량이 망각으로 유실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류가 경험한 모든 지적 경험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측면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기억을 포함한 인간의 지적 능력 면에서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말았다. 기억이 단순히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보의 양에 관한 대답이라면 인간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의 상대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서둘러 절망하기엔 이르다. 현대의 뇌과학은 인간의 뇌와 기억과 감정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인간의 감정이 기억을 강화하고, 기억이 감정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 단순한 정보의 저장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개입된 문제라는 사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인공지능과의 변별점을 시사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감정을 지닌 AI가 등장할지는 모르나 아직 감정은 인공지능의 영역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 지적 결과물인 동시에 정서적 결과물이란 사실은 시인으로선 천만다행이다. 이 순간만큼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인 동시에 불완전한 감정의 동물이란 사실이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시인의 유년 시절 경험과 그 기억을 소환하고 있는 정태중의 시집 『전어가 다녀간 새벽』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시집의 전체적인 중심은 1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시 속에 시심이 고도로 고양된 시편이 있다. '시안詩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는데, 한 권의 시집 속에서도 전체의 내용을 압도하거나 대표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어서 1부에 보여진 시들을 중점적으로 살피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음을 밝힌다.
"열일곱 해였던가 여럿이 모여 어느 집 담장에 한 폭 수채화를 그렸을 때 누군가의 그림 속에선 울창한 숲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올랐다
보성 소싸움 장날 선 씨네 우사를 열여 제끼고 나온 수소 같은 종팔이였다."
- 「오줌발」 전문
1
시집의 첫 장에 배치한 「오줌발」을 읽는 순간 독자들을 열 일곱 청춘들이 담장에 대고 뿜어내는 힘찬 '오줌발' 속으로 빨려들게 하였다. 사춘기를 지나 음모가 무성해지고 물건이 굵어지기 시작한 청춘들이 뿜어대는 오줌의 비릿한 지린내와 담벼락에 부딪히는 힘찬 물소리, 그리고 그것들이 담벼락을 화폭 삼아 펼쳐 보이는 추상의 그림 한 폭. 독자들은 후각과 청각과 시각이 동원된 그 오줌발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재주가 없을 것 같다.
종팔이의 수소 같은 거시기가 자꾸 떠오르는 이 시에서 '자지 그라피티' 속의 '울창한 숲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올랐다'라는 문장의 힘 또한 세차 보인다. 근처 숲에서 실제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을 수도 있고, 담벼락에 번진 수채화가 날아가는 새 모양을 그렸을 수도 있으나 이 구절은 단순히 그러한 사실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자지의 꿈, 자지의 비상이랄까. 굳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구가 유치한 수컷들의 장난 한 장면을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봇대나 담벼락, 웬만한 도시의 골목에서도 수컷들이 그렸던 '좆도화' 내지 '자지 그라피티'가 현현되었음이다. 이 시의 오줌발 속에는 서정주의 '화사花蛇'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원초적 관능과 화염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줄 풀린 날이면 임자 만난 듯 닥치는 대로 동네 암컷들을 혀 빠지게 다 상대하느라 밤늦게 지쳐 돌아오는 정복이네 개 말복이(「분발」), 레깅스를 입고 궁둥이를 실룩대며 원미산을 오르는 가시내들(「원미산 진달래길」), 얼룩말 뒤태 같은 미끈한 다리가 있는 (「연주 미용실 69번 채널」), 일없이 정류장을 서성이며 분홍 꽃 팬티를 떠올리고 있는 어떤 인물 등. 시골 장터의 각설이 타령 같고, 소리꾼 같고, 전기수 같고, 엿장수 가위 소리 같고, 빈대떡 장수의 호객 소리 같기도 한 정태중의 시 속에는, 발정 난 개와 젊은 사내들이 휘젓고 다니는 고향 시골 마을이나 장터의 모습이 비릿하고도 정겹게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서시의 "오줌발" 속으로 끌려 들어간 이 시집의 처음 시들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하는 사실은 고유명사인 사람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종팔이, 정복이, 연주, 노춘이, 정문이, 광팔이, 봉자, 상필이, 애숙이, 순임이, 말순이, 석이, 순이, 상태 등 고향 친구일 것으로 추정되는 친숙한 이름들이 끊임없이 호명되어 시 속에 등장하고 있다.
애숙이 그년이
애당초 백일홍만 아니었으면
해당화 그 깊은 속내로 피었을 텐데
짠내 나는 강진 마량포에
속 비어버린 굴 껍데기처럼 달빛이나 품고
달 뜨는 월출산 아리랑 곡조에
술타령은 비켜 갔을 것인데
누가 알랴
짠 내 나는 속내를
그 애 목소리 저녁을 흠뻑 담아
달그락달그락 시렁 종지에 물 채우듯 들릴 것인데
순임이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어서
마량 앞바다가 파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순이 커피잔에 흐린 얼굴 기웃거리다
쓰디쓴 말 삼킨다
우짜든가 건강해라 잉
꽃은 지면서도 피는 것잉께
- 「백일홍 서사」 부분
고유명사인 각각의 이름에는 그 이름에 얽힌 일화나 서사가 없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일화나 그 사람 자체의 서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이름에는 경험의 무게와 시간의 무게가 실려있기 마련이다.
「백일홍 서사」에서 화자는 추석 무렵 고향이나 그 언저리에서 옛 친구임이 분명한 순임이와 말순이를 만난 화자가 애숙이를 떠올리고 있는 표정을 읽는 게 유쾌하였다. 백일홍이 뭘 어쨌길래 해당화로나 피고, ' 속 비어버린 굴 껍데기처럼 달빛이나 품고' 끝났을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이 미완의 서사는 그렇기 때문에 산문이 되지 않고 시가 되었다. 오래된 이름들을 불러와 적당히 목소리를 내보이다가 모른 척 뒤로 빠져서 시치미 떼는 방식은 단편소설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법이기도 하였는데,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첫 부분의 시들이 선택한 기법으로 보인다.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공포와 불안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인간은 다소 힘들었을지언정 자신의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은 한 인간이 평생을 걸쳐 힘든 현실이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과 의 공간(고향)과 그들과 함께 겪은 사건은 쉽게 잊을 수 없다. 따라서 정태중 시인의 지금까지 읽어 내려온 시에서 호명하고 있는 이름들과 거기에 얽힌 서사들은 심각할 법한 이야기조차 유머가 넘치고 마침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기도 하였다.
2
다음으로 정태중의 시에서 시적인 효능감을 더해주었던 장점은 방언의 적절한 배치와 구사에서 엿볼 수 있다. 별로 특별하지 않았던 표현이 방언으로 대체되었던 순간 시적 표현의 효과가 뜻밖에도 증폭되는 경우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언능 좀 와바라 노춘아
쥐눈맹키로 몽실한 개나리가 피었단 마다
오두산 아래 사는 봉자 가슴 맹키로 봉긋 허단마다
아래짝 마을서는 매화가 다투어 핀다든디
꽃이파랑 아래로 여럿 자빠져 부럿드란다
올 적에 막걸리 댓 통 사 와라 잉
맹숭맹숭 볼란게는 잔 폭폭허고 안 그냐
취기라도 쪼까 올라야 헐 것 같은거시
암만해도 그런단 마다
천불 든 가심 달랠러믄
꽃물에라도 조까 식혀야 허지 안컸냐
안그냐 잉.
- 「봄꽃 피는 아침 6」 전문
빨리 좀 와바라 노춘아
쥐눈만큼 몽실한 개나리가 피었단다
오두산 아래 사는 봉자 가슴만큼 봉긋하단다
아래쪽 마을서는 매화가 다투어 핀다던데
꽃잎파리 아래로 여럿 자빠져 버렸단다
올 적에 막걸리 댓 통 사와라 응
맨송맨송 보려니 좀 폭폭하고 안 그러냐
취기라도 좀 올라야 할 것 같은 것이
암만해도 그렇단다
천불 든 가슴 달래려면
꽃물이라도 좀 식혀야 하지 않겠냐
안 그러냐 응.
- 「봄꽃 피는 아침」 전문
필자가 서투르게나마 표준어로 바꿔놓은 아래쪽의 시는 시인이 사투리로 쓴 원래 시와 느낌부터 다르다. 비슷한 의미의 말이라도 특정 지역의 방언 속에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유별난 정서가 살아있다. 그래서 그 경험과 서사를 담고 있는 방언이야말로 감정 기억의 핵심 요소로 자리한다. 특정 지역의 방언은 표준어와는 다른 낯섦 자체가 시적 표현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하지만, 방언 속에는 오랫동안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지역공동체의 기억으로도 녹아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표준어라고 규정해 놓은 인위적 규범 언어와는 다른 경험의 색깔을 지닌다.
3
그가 유년과 고향 정서와의 또 다른 지점에서 체득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시를 더 살펴보는 것으로 이 시집의 미래를 안내하여 보려고 한다.
물비늘 굳은 은빛이 누워 있다전하지 못한 안부의 말부고 문자는 싸늘한 새벽 공기에 황망한 전어처럼 헤엄쳐 와서몇 해 전넓고도 넓은 서울의 푸른 바다 귀퉁이에서자정 넘도록 수다를 피운 노천 포차에고향의 비린내와 껄껄대었던 모습 스쳐서는구절초 활짝 피는 계절이
은빛 수정의 물결을 일렁여 놓고 가면
사라지는 것들의 밤은 화려해야 했으므로조등은 우리들의 얼굴로 더 밝아야 했다웃음은 아픔을 감추기에 좋은 계획이라며수북이 쌓인 국화 송이 뒤에서 환하게 웃는은빛 물결 위로 새벽이 온다 삼가,새벽은 오고 그의 은빛도 한 줌 재가 되고 보면천국까지 전할 수 없는 서로의 안부의 말들이물비늘을 반짝이며 멀어져 갔다.
- 「전어가 다녀간 새벽」 전문
표제 시이기도 한 "전어가 다녀간 새벽"의 서사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향의 비린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의 진술 방식은 앞에서 살핀 시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전개된다. 시에서 나타난 "전어"는 단순한 물고기의 이름이 아니다. "새벽에 헤엄쳐 온 누군가의 부고"에서 정태중은 자신만의 전어를 소환한다. "물비늘 굳은 은빛이 누워있다"는 돌연한 바라봄이 시적 은유와 함께 표현의 확장을 꾀하는 듯 보인다. 다소 일률적인 서정적 자아를 통한 시들에서도 빠져나와 정태중이 지양해 보는 시적 방법론의 하나임을 내보이고 있다.
그는 아래와 같은 목소리를 통해 시 속으로 몰고 온 "전어"의 바라봄을 마무리 한다.
"삼가,/ 새벽은 오고 그의 은빛도 한 줌 재가 되고 보면/ 천국까지 전할 수 없는 서로의 안부의 말들이/ 물비늘을 반짝이며 멀어져 갔다.' 그렇게 그의 시 속에서의 전어 한 마리는 이처럼 통회의 심정을 거쳐서 그를 다녀간 셈이다.
칼끝 스쳐간 한 계절
곧봄이다.
- 「피습」 전문
이 시집에서 가장 말이 아껴진 시 한 편이다. 말을 아껴서 인용한 게 아니라, 단 3행의 시로 완결된 촌철살인의 이 시 역시 정태중의 또 다른 가능성의 자리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가장 적은 말로 가장 깊거나 너른 언어의 지평에 도달해야 한다는 시의 운명을 떠올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정태중의 "여행 시"로 불러도 되는, 어딘가를 나다니면서 마주친 시들이 시집의 말미에 상당히 많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여행이나 그 경험을 통해 작품을 쓰는 일은 의외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나 작가로서의 개별적인 능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선 여기에선 체험의 강도나 양과 질의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겠다. 평소 별다른 관심이나 사전 조사 등의 인식 없이 막연한 애정이나 그리움에 기대보는 감상 만으론 독자의 감동을 끌어 내기에 역부족이 되지 않겠는가. 역사적 공간이든 일상적 사건이건 그에 대한 깊은 이해나 성찰이 없이는, 그것들은 단지 시의 소재로만 소용될 위험성이 크다. 많은 시인들의 대표작들이 자신의 고향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서사와 관련된 것일 경우가 많다는 사실 또한 이를 강하게 입증하는 대목이다. 정태중 역시 여기에서 크게 자유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새벽이 차가운 가을을 읽는다 푸른 능선이 아프다며 붉어지다가 홀몸으로 남은 나무를 본다앙상한 뼈마디마다 제멋대로 휘어서는 한세상 굽이쳐 왔을 시간 앞에 늦게나마 짧은 연서를 쓴다 사랑했느냐고 묻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 황량한 가슴의 뻐근한 통증이 올라오고미련이 남았느냐고 묻는 낙엽의 뼈에는 시리게 맑은 하늘의 하루가 고여있다 조각구름 모아당신의 얼굴 그리며 추억을 써보았는데 아무것도 새겨놓지 못하고 떠나가는 겨울 철새들도 있었다 나는 등 푸른 물고기 떼 속의 이름 없는 하나이거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쓸모없는 바람으로 가을이라는 쓸쓸한 계절을 읽는다.
- 「가을을 읽는다」 전문
마지막 인용시를 자리에 놓으며, 정태중 시의 바라봄이 "가을을 읽는" 정도의 자세나 구도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 어쩌면 쓸모없는 바람으로 가을을 읽는 마음이 시를 구하거나 대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덧붙여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은 붕괴와 붕가붕가, 코로나와 코비나, 접촉과 접속, 도아뱀과 도마뱀, 외로움과 설레임, 헤이즐넛과 해질녘, 당산과 당신, 대부도와 부도 식으로 단어의 유사한 발음이나 표기를 이용한 언어유희(FUN)가 보이는데, 이는 시의 재미를 더해주는 반전의 묘미와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시의 질적인 면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나마 제기하고 가기로 한다.
정태중의 시집 『전어가 다녀간 새벽』의 시들은 비교적 밀도가 높은 시들이 많았으며, 특히 「오줌발」은 한 시집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한 편만을 읽고 시집을 덮더라도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정태중 시인의 기억 너머의 시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펼쳐보일 다음 시집의 시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위대한 비평가는 위대한 작품을 반드시 오독한다'라는 로트레아몽의 말을 핑계 삼아 졸고를 마치기로 한다.
─ 이동재(시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에너지가 질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무모하지만 이 사실을 시에게로 적용해보면 시의 매력은 경험의 무게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경험의 무게 속에는 세월의 연륜과 깊이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선 일단 시적 표현의 문제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그 경험의 무게는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경험의 무게는 결국 기억의 부피와 밀도의 지속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기억의 부피와 밀도(강도)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가 다시 문제가 된다. 기억은 단순히 경험을 통해 습득한 정보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 그리움이나 애착의 정도를 따져야 한다는 의문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서 그 기억이 단순한 양의 정도라면 인간은 이미 그 저장 능력에서 인공지능(AI)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개별 인간의 경험은 상당량이 망각으로 유실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류가 경험한 모든 지적 경험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측면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기억을 포함한 인간의 지적 능력 면에서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말았다. 기억이 단순히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보의 양에 관한 대답이라면 인간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의 상대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서둘러 절망하기엔 이르다. 현대의 뇌과학은 인간의 뇌와 기억과 감정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인간의 감정이 기억을 강화하고, 기억이 감정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 단순한 정보의 저장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개입된 문제라는 사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인공지능과의 변별점을 시사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감정을 지닌 AI가 등장할지는 모르나 아직 감정은 인공지능의 영역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 지적 결과물인 동시에 정서적 결과물이란 사실은 시인으로선 천만다행이다. 이 순간만큼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인 동시에 불완전한 감정의 동물이란 사실이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시인의 유년 시절 경험과 그 기억을 소환하고 있는 정태중의 시집 『전어가 다녀간 새벽』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시집의 전체적인 중심은 1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시 속에 시심이 고도로 고양된 시편이 있다. '시안詩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는데, 한 권의 시집 속에서도 전체의 내용을 압도하거나 대표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어서 1부에 보여진 시들을 중점적으로 살피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음을 밝힌다.
"열일곱 해였던가 여럿이 모여 어느 집 담장에 한 폭 수채화를 그렸을 때 누군가의 그림 속에선 울창한 숲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올랐다
보성 소싸움 장날 선 씨네 우사를 열여 제끼고 나온 수소 같은 종팔이였다."
- 「오줌발」 전문
1
시집의 첫 장에 배치한 「오줌발」을 읽는 순간 독자들을 열 일곱 청춘들이 담장에 대고 뿜어내는 힘찬 '오줌발' 속으로 빨려들게 하였다. 사춘기를 지나 음모가 무성해지고 물건이 굵어지기 시작한 청춘들이 뿜어대는 오줌의 비릿한 지린내와 담벼락에 부딪히는 힘찬 물소리, 그리고 그것들이 담벼락을 화폭 삼아 펼쳐 보이는 추상의 그림 한 폭. 독자들은 후각과 청각과 시각이 동원된 그 오줌발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재주가 없을 것 같다.
종팔이의 수소 같은 거시기가 자꾸 떠오르는 이 시에서 '자지 그라피티' 속의 '울창한 숲 위로 새 한 마리 날아올랐다'라는 문장의 힘 또한 세차 보인다. 근처 숲에서 실제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을 수도 있고, 담벼락에 번진 수채화가 날아가는 새 모양을 그렸을 수도 있으나 이 구절은 단순히 그러한 사실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자지의 꿈, 자지의 비상이랄까. 굳이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구가 유치한 수컷들의 장난 한 장면을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봇대나 담벼락, 웬만한 도시의 골목에서도 수컷들이 그렸던 '좆도화' 내지 '자지 그라피티'가 현현되었음이다. 이 시의 오줌발 속에는 서정주의 '화사花蛇'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원초적 관능과 화염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줄 풀린 날이면 임자 만난 듯 닥치는 대로 동네 암컷들을 혀 빠지게 다 상대하느라 밤늦게 지쳐 돌아오는 정복이네 개 말복이(「분발」), 레깅스를 입고 궁둥이를 실룩대며 원미산을 오르는 가시내들(「원미산 진달래길」), 얼룩말 뒤태 같은 미끈한 다리가 있는 (「연주 미용실 69번 채널」), 일없이 정류장을 서성이며 분홍 꽃 팬티를 떠올리고 있는 어떤 인물 등. 시골 장터의 각설이 타령 같고, 소리꾼 같고, 전기수 같고, 엿장수 가위 소리 같고, 빈대떡 장수의 호객 소리 같기도 한 정태중의 시 속에는, 발정 난 개와 젊은 사내들이 휘젓고 다니는 고향 시골 마을이나 장터의 모습이 비릿하고도 정겹게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서시의 "오줌발" 속으로 끌려 들어간 이 시집의 처음 시들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하는 사실은 고유명사인 사람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종팔이, 정복이, 연주, 노춘이, 정문이, 광팔이, 봉자, 상필이, 애숙이, 순임이, 말순이, 석이, 순이, 상태 등 고향 친구일 것으로 추정되는 친숙한 이름들이 끊임없이 호명되어 시 속에 등장하고 있다.
애숙이 그년이
애당초 백일홍만 아니었으면
해당화 그 깊은 속내로 피었을 텐데
짠내 나는 강진 마량포에
속 비어버린 굴 껍데기처럼 달빛이나 품고
달 뜨는 월출산 아리랑 곡조에
술타령은 비켜 갔을 것인데
누가 알랴
짠 내 나는 속내를
그 애 목소리 저녁을 흠뻑 담아
달그락달그락 시렁 종지에 물 채우듯 들릴 것인데
순임이 맑은 목소리가 끼어들어서
마량 앞바다가 파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순이 커피잔에 흐린 얼굴 기웃거리다
쓰디쓴 말 삼킨다
우짜든가 건강해라 잉
꽃은 지면서도 피는 것잉께
- 「백일홍 서사」 부분
고유명사인 각각의 이름에는 그 이름에 얽힌 일화나 서사가 없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일화나 그 사람 자체의 서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이름에는 경험의 무게와 시간의 무게가 실려있기 마련이다.
「백일홍 서사」에서 화자는 추석 무렵 고향이나 그 언저리에서 옛 친구임이 분명한 순임이와 말순이를 만난 화자가 애숙이를 떠올리고 있는 표정을 읽는 게 유쾌하였다. 백일홍이 뭘 어쨌길래 해당화로나 피고, ' 속 비어버린 굴 껍데기처럼 달빛이나 품고' 끝났을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이 미완의 서사는 그렇기 때문에 산문이 되지 않고 시가 되었다. 오래된 이름들을 불러와 적당히 목소리를 내보이다가 모른 척 뒤로 빠져서 시치미 떼는 방식은 단편소설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법이기도 하였는데,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첫 부분의 시들이 선택한 기법으로 보인다.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공포와 불안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인간은 다소 힘들었을지언정 자신의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은 한 인간이 평생을 걸쳐 힘든 현실이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유년 시절이나 성장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과 의 공간(고향)과 그들과 함께 겪은 사건은 쉽게 잊을 수 없다. 따라서 정태중 시인의 지금까지 읽어 내려온 시에서 호명하고 있는 이름들과 거기에 얽힌 서사들은 심각할 법한 이야기조차 유머가 넘치고 마침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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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정태중의 시에서 시적인 효능감을 더해주었던 장점은 방언의 적절한 배치와 구사에서 엿볼 수 있다. 별로 특별하지 않았던 표현이 방언으로 대체되었던 순간 시적 표현의 효과가 뜻밖에도 증폭되는 경우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언능 좀 와바라 노춘아
쥐눈맹키로 몽실한 개나리가 피었단 마다
오두산 아래 사는 봉자 가슴 맹키로 봉긋 허단마다
아래짝 마을서는 매화가 다투어 핀다든디
꽃이파랑 아래로 여럿 자빠져 부럿드란다
올 적에 막걸리 댓 통 사 와라 잉
맹숭맹숭 볼란게는 잔 폭폭허고 안 그냐
취기라도 쪼까 올라야 헐 것 같은거시
암만해도 그런단 마다
천불 든 가심 달랠러믄
꽃물에라도 조까 식혀야 허지 안컸냐
안그냐 잉.
- 「봄꽃 피는 아침 6」 전문
빨리 좀 와바라 노춘아
쥐눈만큼 몽실한 개나리가 피었단다
오두산 아래 사는 봉자 가슴만큼 봉긋하단다
아래쪽 마을서는 매화가 다투어 핀다던데
꽃잎파리 아래로 여럿 자빠져 버렸단다
올 적에 막걸리 댓 통 사와라 응
맨송맨송 보려니 좀 폭폭하고 안 그러냐
취기라도 좀 올라야 할 것 같은 것이
암만해도 그렇단다
천불 든 가슴 달래려면
꽃물이라도 좀 식혀야 하지 않겠냐
안 그러냐 응.
- 「봄꽃 피는 아침」 전문
필자가 서투르게나마 표준어로 바꿔놓은 아래쪽의 시는 시인이 사투리로 쓴 원래 시와 느낌부터 다르다. 비슷한 의미의 말이라도 특정 지역의 방언 속에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유별난 정서가 살아있다. 그래서 그 경험과 서사를 담고 있는 방언이야말로 감정 기억의 핵심 요소로 자리한다. 특정 지역의 방언은 표준어와는 다른 낯섦 자체가 시적 표현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하지만, 방언 속에는 오랫동안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지역공동체의 기억으로도 녹아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표준어라고 규정해 놓은 인위적 규범 언어와는 다른 경험의 색깔을 지닌다.
3
그가 유년과 고향 정서와의 또 다른 지점에서 체득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시를 더 살펴보는 것으로 이 시집의 미래를 안내하여 보려고 한다.
물비늘 굳은 은빛이 누워 있다전하지 못한 안부의 말부고 문자는 싸늘한 새벽 공기에 황망한 전어처럼 헤엄쳐 와서몇 해 전넓고도 넓은 서울의 푸른 바다 귀퉁이에서자정 넘도록 수다를 피운 노천 포차에고향의 비린내와 껄껄대었던 모습 스쳐서는구절초 활짝 피는 계절이
은빛 수정의 물결을 일렁여 놓고 가면
사라지는 것들의 밤은 화려해야 했으므로조등은 우리들의 얼굴로 더 밝아야 했다웃음은 아픔을 감추기에 좋은 계획이라며수북이 쌓인 국화 송이 뒤에서 환하게 웃는은빛 물결 위로 새벽이 온다 삼가,새벽은 오고 그의 은빛도 한 줌 재가 되고 보면천국까지 전할 수 없는 서로의 안부의 말들이물비늘을 반짝이며 멀어져 갔다.
- 「전어가 다녀간 새벽」 전문
표제 시이기도 한 "전어가 다녀간 새벽"의 서사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향의 비린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의 진술 방식은 앞에서 살핀 시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전개된다. 시에서 나타난 "전어"는 단순한 물고기의 이름이 아니다. "새벽에 헤엄쳐 온 누군가의 부고"에서 정태중은 자신만의 전어를 소환한다. "물비늘 굳은 은빛이 누워있다"는 돌연한 바라봄이 시적 은유와 함께 표현의 확장을 꾀하는 듯 보인다. 다소 일률적인 서정적 자아를 통한 시들에서도 빠져나와 정태중이 지양해 보는 시적 방법론의 하나임을 내보이고 있다.
그는 아래와 같은 목소리를 통해 시 속으로 몰고 온 "전어"의 바라봄을 마무리 한다.
"삼가,/ 새벽은 오고 그의 은빛도 한 줌 재가 되고 보면/ 천국까지 전할 수 없는 서로의 안부의 말들이/ 물비늘을 반짝이며 멀어져 갔다.' 그렇게 그의 시 속에서의 전어 한 마리는 이처럼 통회의 심정을 거쳐서 그를 다녀간 셈이다.
칼끝 스쳐간 한 계절
곧봄이다.
- 「피습」 전문
이 시집에서 가장 말이 아껴진 시 한 편이다. 말을 아껴서 인용한 게 아니라, 단 3행의 시로 완결된 촌철살인의 이 시 역시 정태중의 또 다른 가능성의 자리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가장 적은 말로 가장 깊거나 너른 언어의 지평에 도달해야 한다는 시의 운명을 떠올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3
정태중의 "여행 시"로 불러도 되는, 어딘가를 나다니면서 마주친 시들이 시집의 말미에 상당히 많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여행이나 그 경험을 통해 작품을 쓰는 일은 의외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나 작가로서의 개별적인 능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선 여기에선 체험의 강도나 양과 질의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겠다. 평소 별다른 관심이나 사전 조사 등의 인식 없이 막연한 애정이나 그리움에 기대보는 감상 만으론 독자의 감동을 끌어 내기에 역부족이 되지 않겠는가. 역사적 공간이든 일상적 사건이건 그에 대한 깊은 이해나 성찰이 없이는, 그것들은 단지 시의 소재로만 소용될 위험성이 크다. 많은 시인들의 대표작들이 자신의 고향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서사와 관련된 것일 경우가 많다는 사실 또한 이를 강하게 입증하는 대목이다. 정태중 역시 여기에서 크게 자유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새벽이 차가운 가을을 읽는다 푸른 능선이 아프다며 붉어지다가 홀몸으로 남은 나무를 본다앙상한 뼈마디마다 제멋대로 휘어서는 한세상 굽이쳐 왔을 시간 앞에 늦게나마 짧은 연서를 쓴다 사랑했느냐고 묻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 황량한 가슴의 뻐근한 통증이 올라오고미련이 남았느냐고 묻는 낙엽의 뼈에는 시리게 맑은 하늘의 하루가 고여있다 조각구름 모아당신의 얼굴 그리며 추억을 써보았는데 아무것도 새겨놓지 못하고 떠나가는 겨울 철새들도 있었다 나는 등 푸른 물고기 떼 속의 이름 없는 하나이거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쓸모없는 바람으로 가을이라는 쓸쓸한 계절을 읽는다.
- 「가을을 읽는다」 전문
마지막 인용시를 자리에 놓으며, 정태중 시의 바라봄이 "가을을 읽는" 정도의 자세나 구도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 어쩌면 쓸모없는 바람으로 가을을 읽는 마음이 시를 구하거나 대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덧붙여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한 가지 특징은 붕괴와 붕가붕가, 코로나와 코비나, 접촉과 접속, 도아뱀과 도마뱀, 외로움과 설레임, 헤이즐넛과 해질녘, 당산과 당신, 대부도와 부도 식으로 단어의 유사한 발음이나 표기를 이용한 언어유희(FUN)가 보이는데, 이는 시의 재미를 더해주는 반전의 묘미와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시의 질적인 면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나마 제기하고 가기로 한다.
정태중의 시집 『전어가 다녀간 새벽』의 시들은 비교적 밀도가 높은 시들이 많았으며, 특히 「오줌발」은 한 시집의 대표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한 편만을 읽고 시집을 덮더라도 전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정태중 시인의 기억 너머의 시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펼쳐보일 다음 시집의 시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위대한 비평가는 위대한 작품을 반드시 오독한다'라는 로트레아몽의 말을 핑계 삼아 졸고를 마치기로 한다.
─ 이동재(시인)
목차
목차
저자
저자
정태중 전남 함평 출생 (경기 시흥 거주)
2006년 《대한문학세계》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이방인의 사계 그리고 사랑 (2016년)
굼벵이 놓아주기 (2021년)
그 쓸쓸한 저녁 아래서 (2022년)
전어가 다녀간 새벽 (2026년)
2006년 《대한문학세계》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이방인의 사계 그리고 사랑 (2016년)
굼벵이 놓아주기 (2021년)
그 쓸쓸한 저녁 아래서 (2022년)
전어가 다녀간 새벽 (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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