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
“나는 이 책이 ‘죽은 시인들의 정원’에 놓이는 조화(造花)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이 지난 세기 초 러시아를 휩쓸었던 문학적 열광과 영광과 치욕에 대한 앙상한 회고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누추할지언정, 세월과 위도의 간극을 넘어서 오늘 우리의 문학적 생로병사에 사소한 참조물이 될 수 있기를. 그것으로 페테르부르크에서의 길고 어두웠던 배회를 가능한 한 건조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어느 훗날, 강철로 만든 한 권의 책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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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들이 있다. 이미 말해졌더라도, 다시 한 번 말해지기 위해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이장욱 작가의 단단한 산문이자 문학연구자로서의 기록이기도 한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이 '시간의흐름'에서 개정 재출간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20세기?러시아의?주요?시인과?이론가를?소개한다. 다만, 일반적인?문학사적?상식을 전달하는 게?아니라,?몇몇?특정?관심사를?중심으로?지난?세기?초의?시인과?이론을?재검토한다. 특히, 몇몇 주관적 의견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판단의 영역을 부각하며, 미적 사유의 구조나, 은유와 환유가 서로 섞이고 모호해지는 과정, 말과 사물 혹은 언어와 리얼리티의 관계 등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은 '리얼리티'를?출발점으로?삼는다.
1부 '시인과 혁명'은, 마야콥스키에서?예세닌까지?러시아?시인들의?문학과?죽음을?살핌으로써 20세기 초 러시아 시의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낸다.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인 블로크, 아흐마토바, 마야콥스키는 각각 상징주의, 아크메이즘, 미래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지점은 학파보다는 블로크가 어떻게 상징주의에서 멀어져갔는지, 아흐마토바의 언어가 어느 지점에서 아크메이즘의 미적 모토에서 벗어났는지에 가깝다. 2부 '시학과 미학'에선, '낯설게 하기' '시적 대화주의' '제3의 비유(메타볼)', '맥락의 예술' 등을 다룬다.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다시 살피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바흐친의 기본적 입장을 전제로 시 장르와 그의 이론의 관계를 살피며, 은유에서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차이에 대해 다룬다. 또한, '커뮤니케이션?모형과?비유론'에서는 우리가 보내는 하루의 일상 가운데 어떤 것이 '본질'이고 어떤 것이 '비본질'인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건성과 언어 우주'에서는 로트만 미학의 출발점을 엿보며, '미학의 혁명과 혁명의 미학'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말한다. '탈신화, 혹은 맥락의 예술'에서는 '오브제'를 지배하는 인간의 정신성, 인간의 감정, 인간의 인간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술의 예술성까지를 '헛것'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미적 노력인 개념주의에 대해서 파고든다.
시와 이론, 이론과 삶이 만나는 지점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과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은밀한 활기는 우리를 일종의 정신적인 모험으로 이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한국문학의 모더니티의 한 극한에 서 있는 작가 이장욱이 바라봐왔고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모더니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늘 혁명을 꿈꾸듯, 이 책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집시의 시집, 러시안 랩소디, 그리고 강철로 만든 책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2002년 여름에서 2005년 봄 사이에 쓰였고, 이 글들은 다시 2019년 봄에서 2019년 여름 사이에 몇몇 오류와 오식을 교정하고 일부 문장을 손보며 고쳐 쓰였다. 여러 봄과 여름 사이에서 러시아의 눈 내리는 겨울은 시적이면서도 명징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차분한 문장으로 책 속에 쌓였다.
"책에 눈을 두고 있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그 시기로부터 벌써 100여 년이 흐른 뒤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또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것들과 다른 것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_개정판 서문 중에서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점과 주제들은 여전히 작금의 미적 전위와 정치의 관계, 미학적 진리의 관계 등과 연결하여 읽어야 할 내용들이다. 20세기 이래 끊임없이 변주되어온 유구한 주제인 지난 세기 초의 형식주의,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론적 반향들, 1930년대 루카치, 브레히트, 블로흐 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표현주의 논쟁, 1950-1960년대 상황주의 및 68혁명과 관련된 논의 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날 한국문학의 주제와도 이어져 있다. 하이데거 이래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현대 철학자들이 미학과 진리의 관계를 둘러싸고 전개한 논전 역시 마찬가지다.
흐려진 태양과 바래진 풀과 날리는 눈발과 얼어붙은 운하의 물속에서 건져 올린 러시아의 시와 미학은 혁명이란 보편성의 옷을 걸치고 모더니즘이란 모종의 길을 따라 걸으며 조용한 우리의 일상을 눈 뜨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할까? 혁명이나 모더니즘의 마음으로 읽어야 할까? 외로움조차 사라진 마음으로 읽어야 할까? 혼자 동물원을 거니는 오후처럼 읽어야 할까? 어떤 사실 속에서 태어난 의욕처럼 읽어야 할까? 어떻게 읽든 그건 읽는 저마다의 마음이겠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내듯이, 살아 있는 풍경들을 머릿속에 그리듯이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목차
목차
초판 서문
제1장 시인과 혁명
집시의 시집●블로크와 상징주의
강철로 만든 책●마야콥스키와 미래주의
사랑의 환유●아흐마토바와 아크메이즘
러시안 랩소디●예세닌
영원의 인상주의●파스테르나크
생각하는 사물들●브로드스키
제2장 시학과 미학
'낯설게 하기'의 미학과 정치학●러시아 형식주의
커뮤니케이션 모형과 비유론● 야콥슨
'조건성'과 언어 우주●로트만
시적 대화주의●바흐친
미학의 혁명과 혁명의 미학●사회주의 리얼리즘
제3의 비유●엡슈테인
탈신화, 혹은 맥락의 예술●모스크바 개념주의
후주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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