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9호
마을, 돌봄, 직접민주주의
국가가 일방적·위계적으로 주도해온 복지제도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살핀다. 그리고 이로부터 배제되어온 농촌 마을과 면 단위 지역 주민들이 ‘서로돌봄’과 ‘직접민주주의/마을자치’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주도적 실천의 세부와 그 가능성 및 사회적 의미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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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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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지구를 덮친 펜데믹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선 상황은, 서양 근대가 수백 년에 걸쳐 구축해온 사회복지와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교착된 현 문명의 난맥상을 증상적으로 드러낸다. 왜 사람은, 이미 충분히 가진 자들조차도, 정부나 대선후보가 약속하는 재난지원금 액수와 복지혜택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 타인의 사회적 약사의 고통에는 둔감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라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이익)을 결정할 '그들 자신의 정치적 선택권'을 (역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자에게 넘겨주기 위해 4~5년에 한 번 부여될 뿐인 '단 한 표'의 권리를 그토록 과신하게 되었는가?
현재 지구를 지배하는 문명은 서유럽이 발명한 근대적 인간상에 기초한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남성 개인', 즉 타자(그것이 자연이든 인간이든)와의 전투(경쟁)에서 마침내 승리하는(해야 하는) 강자로서의 인간상이다. 이 폭력적 인간상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사회제도 그리고 경쟁을 부추기는 세부규칙들을 통해서, 현 지구문명은 인간·비인간의 삶의 전 영역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계로 수렴시켜진다.
'경쟁(전쟁)에서 승리하는 독립적 개인'이라는 만들어진 이미지는 빈부, 성별, 인종, 지역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무의식에 출몰한다. 이 유령 같은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닦달하고 갈라놓는 이 인간상이 서구 근대적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강화되는 '허구'임을 성찰할 때, '사람은 원자화된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사물들과의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오래된, 오랫동안 잊혔기에 다시 새로운, 삶의 문턱에 이를 수 있다.
경쟁과 승리(생존)의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돌봄은 실패한 삶의 지표가 된다. 기존 복지제도는, 이러한 근대적 인간관에 바탕해서 독립적·자율적 능력이 없거나 경쟁에서 낙오한 '루저'로 판별되는 이들에게 (사회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게다가 지금이 서비스는 공적 영역을 넘어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시혜-수혜'라는 복지제도(공)와 복지대상(사) 간의 일방적·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만물) 사이에 상상하고 실험하는 담론과 실천이 요청된다. 직접민주주의 즉 자치는 이 서로돌봄의 삶을 구현할 적절한 사회적 조건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정치적 실천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을』 9호는, 공적 복지제도와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배제되어온 농촌 마을과 면 단위 지역에서 주민들이 주도하는 서로돌봄과 직접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실천이 갖는 가능성과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 실천의 세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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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임 1에서는 '마을과 돌봄'이라는 주제 아래, 농촌 마을에서 시도되는 주민주도적 돌봄활동의 의미와 실천 조건들을 탐색한다. 김영란은, 서구 복지국가들이 구축해온 복지제도가 신자유주의와 플랫폼 경제 등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으므로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특히 농어산촌 마을복지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경쟁구도를 바탕으로 하는 상품화된 돌봄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바탕으로 마을이 주도해서 자치적·자주적 돌봄을 생성·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혁�은, 서구에서 시도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복지담론이 부딪힌 한계가 한국의 복지체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됨을 지적한다. 필자는 농촌 복지공동체 여민동락을 10년간 운영하면서 체감한, 한국 농촌 현실에 맞지 않는 서구식(대도시 중심)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실천 관정을 기술한다. 안병은은, 장애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의 태도가 높아지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삶의 거소에서 추방되다시피 별도 시설에 격리되는 세태의 대안을 농촌에서 모색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사회적 농업 확대를 위해 마을 주민과 단체들이 출자해서 만든 협동조합 행복농장에 이어, 마을 노인분들의 삶의 마지막 거소를 준비하는 이유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김정섭은, 원래 우리 전통에서 농사(농업)는 '함께하는 활동'이었음을 먼저 밝힌 뒤, 서구에서 도입된 지 10년쯤 된 '사회적 농업'의 개념과 정부정책 사업으로서의 사회적 농업의 문제점들을 정리한다. 필자는 사회적 농업이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편익이나 권리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을 끌어안는 '사회 통합'의 실천 즉 돌봄의 농업임을 강조한다.
스밈에서는 박진숙은 죽곡면 마을에서 교육-문화-돌봄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자치공동체 관계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온 마을 주민의 주도적 실천 내용을 전한다. 금창영은 농촌과 농민의 현실은 무시한 채 이들을 도구화하는 기후위기재생에너지 담론과 정책에 대한 농민의 소감을 피력한다. 김이선은 도시 청년들이 농촌 이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최근 현상에 주목하면서 도시 청년과 농촌 이주 청년들에게 농촌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로 표상되는지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벼림에서는 트임 1의 주제를 보다 생생하게 세공한다. 구자인·정민철·김정섭·신소희가 참석한 이번 좌담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돌봄 서비스를 양적으로 확충하면 되는데, 왜 지역사회와 마을주민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둘러싼 농촌 현장의 목소리와 실천적 모색의 다층적 세부를 담았다.
지상전시는 2021년 말에 열린 임고은의 6회의 워크숍 중 일부로 기획·제작된 공동작업물 『우회집: 달-두꺼비의 정원들』 중 '탈성장'과 '기술'을 다룬 일부 작품을 발췌해서 실었다. 아름다운 그림과 세계 각 지역 실천이론가들의 글에서 선별한 발췌문의 조합은 마을 독자들께 반가운 만남이 될 것이다.
트임 2에서는 트임 1의 주제와 원리적 실천적으로 연결되는 '직접민주주의와 마을자치' 문제를 다룬다. 황종규는 국가와 대도시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는 요즈음 정치적 국면에서, 작은 마을에서 실행되는 '얼굴을 아는 자치'로서의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필자는 서두에서 농촌 면 단위 마을자치와 직접민주주의의 문제를 한국 지방자치사적 맥락에서 개관하는데, 독자들이 한국 마을자치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승수는 기후위기와 먹거리주권 등의 지구적 현안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의 농촌 면읍 단위 자치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선결 문제들을 제시한다. 이번영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이 홍성군과 홍동면 일대에서 주도한 면 자치 운동 세부를 지역사 자료들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기술한다. 박종관은 10년간 농촌 이장직을 수행하면서 마을자치를 위해 실천한 활동의 세부와 중요 항목들을 소개한다.
마을살이를 위한 개념어사전에서 유대칠은, 재난을 비롯한 예측 불가능한 파국적 상황에 대응하는 역량이나 측면에서 최근 많이 논의되는 '회복력' 개념을 철학적 실천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망한다. 서평에서 장정일은, 돌봄의 정치적 중요성을 다루는 에바 페더 키테이의 『돌봄: 사랑의 노동』과 조안 C. 트론토의 『돌봄민주주의』를 통해 이번 호의 큰 주제들이기도 한 '돌봄, 사랑, 노동, 민주주의, 평등'을 하나의 맥락에서 꿰면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근본적 인간 조건을 부각시킨다. 오준호는, 최근 뜨거운 정치사회적 쟁점은 '이대남' 현상을 아즈마 히로키의 근작 『관광객의 철학』과 연결시켜 매체론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어낸다. 독자들이 한국 청년세대와 급진전되는 최근의 기술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참조할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을』 9호 발간에 동참해주신 모든 필자와 좌담자, 그리고 마을학회 일소공도 『마을』을 지지하고 후원해주시는 학회 회원과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박영선
목차
목차
오래된-새로운 삶의 문턱│박영선
트임│마을과 돌봄
마을복지-서로돌봄의 이상과 현실│김영란
지역사회와 노인돌봄│권혁범
삶의 마지막 거소를 짓다│안병은
왜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고자 하는가│김정섭
스밈│농촌으로부터
죽곡면 마을자치공동체 이야기│박진숙
농민이 바라보는 기후위기│금창영
청년에게 농촌은 무엇인가│김이선벼림│농업·농촌·농민 연속좌담 8
마을과 돌봄│구자인·정민철·김정섭·신소희
지상전시 2
실재하는 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
-『우화집: 달-두꺼비의 정원들』│임고은, 귀네비어 고은 임 체이스, 김단비, 이한범
트임 2│직접민주주의와 마을자치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농촌 면 자치
-한국 지방자치사의 맥락에서│황종규
마을과 면읍, 직접민주주의와 선거│하승수
독립운동 지도자들, 면 자치에 참여하다│이번영
농촌 마을에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행정리 이장의 경험과 성찰│박종관
연재│마을살이를 위한 개념어사전 3│회복력
제모습으로 제자리에 돌아가려는 힘│유대칠
서평│책 너머 삶을 읽다
돌봄을 '보이게' 하기│장정일
에바 페더 커테이, 『돌봄: 사랑의 노동』(박영사, 2016)
조안 C. 트론토, 『돌봄 민주주의』(박영사, 2021)
이대남을 위한 변명│오준호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리시올, 2020)
저자
저자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oolocal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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