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새로운 시작
문명 전환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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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전환의 디딤돌,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의 새로운 시작
이 책은 디지털-메타버스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난 아날로그적인 그림이 자연생태계-사회생태계-인간생태계의 위기가 중첩되는 오늘의 문명 전환의 인지생태학적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제까지의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는 듯 〈그림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다. 미술만의 고유성을 탐구하느라 삶을 저버린 현대미술과 삶의 복잡성을 재현하느라 미술의 고유성을 간과해온 전통미술의 환원주의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과감한 선언이다. 이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 책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현대미술은 사진과 구별되는 그림만의 고유성을 평면성/추상성이라는 협소한 프레임에서 찾았다. 그러나 책은 이런 전략이 실은 20세기 자본주의적 상품화/사물화의 전략과 짝패를 이루는 〈지각의 사물화〉 과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대신 도구-손-눈의 연결을 통해 그리는 행위 자체의 인지생태학적인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한다. 동굴벽화에서 현대미술까지 그림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세계-그림의 기호학적이고 지각 생태학적인 특성에 대한 미학적 해명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몸과 뇌에 잠재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일부만을 역설계하고 있는 오늘의 인공지능 자본주의에 맞서 각자의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사회적 뇌를 매개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정치사회적인 전략이다.
이 책은 오늘의 이행기에 적합한 미학적-정치사회적 사례를 90년대 감성적 리얼리즘과 80년대 민중미술의 리얼리즘의 사례에서 찾는다. 그리고 양자를 새롭게 결합-발전시킬 방법으로 브레히트-벤야민적인 관점을 차용해 〈서사-화〉 또는 〈그림-이야기〉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분리되어 온 〈세계, 그림, 이야기, 민중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할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을 문명 전환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한 디딤돌로 삼자는 것이다.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의 새로운 시작
이 책은 디지털-메타버스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난 아날로그적인 그림이 자연생태계-사회생태계-인간생태계의 위기가 중첩되는 오늘의 문명 전환의 인지생태학적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제까지의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는 듯 〈그림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다. 미술만의 고유성을 탐구하느라 삶을 저버린 현대미술과 삶의 복잡성을 재현하느라 미술의 고유성을 간과해온 전통미술의 환원주의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과감한 선언이다. 이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해 책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현대미술은 사진과 구별되는 그림만의 고유성을 평면성/추상성이라는 협소한 프레임에서 찾았다. 그러나 책은 이런 전략이 실은 20세기 자본주의적 상품화/사물화의 전략과 짝패를 이루는 〈지각의 사물화〉 과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대신 도구-손-눈의 연결을 통해 그리는 행위 자체의 인지생태학적인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한다. 동굴벽화에서 현대미술까지 그림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세계-그림의 기호학적이고 지각 생태학적인 특성에 대한 미학적 해명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몸과 뇌에 잠재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일부만을 역설계하고 있는 오늘의 인공지능 자본주의에 맞서 각자의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사회적 뇌를 매개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정치사회적인 전략이다.
이 책은 오늘의 이행기에 적합한 미학적-정치사회적 사례를 90년대 감성적 리얼리즘과 80년대 민중미술의 리얼리즘의 사례에서 찾는다. 그리고 양자를 새롭게 결합-발전시킬 방법으로 브레히트-벤야민적인 관점을 차용해 〈서사-화〉 또는 〈그림-이야기〉라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분리되어 온 〈세계, 그림, 이야기, 민중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할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을 문명 전환의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한 디딤돌로 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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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문명사적 분기점에 선 오늘날 그림과 이야기의 새로운 결합이 지닌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가치가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하는 일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손으로 그리는 행위에 내재한 역동적인 감성적 활력과 현대미술의 권위와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을 언어의 유희를 통해 자유롭게 연결하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역량의 창조적 역할이 그것이다. 이 책은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80년대 민중미술운동 이후 많은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시도라고 역설한다.
무대 위든 극장이든 극장 바깥이든 어떤 대상을 어떤 매체로 그리는가에 좌우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
사회 체계가 안정된 시기의 예술은, 지배적인 생산관계의 재생산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고통을 카타르시스로 순화함으로써 제도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창작의 내용과 표현이 원자화된 개인들의 단성적인 독백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오늘과 같은 문명사적 '이행기의 예술'은, 시스템이 요동쳐 발생하는 공백 속에서 자유로워진 개인들을 사회적 개인들로 연결한다. 흩어진 개인들을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이로써 창작의 내용과 표현은 대화적, 다성적, 민중적인 성격을 취하게 된다.
오래 전 동굴벽화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동안 민중, 그림, 이야기, 세상은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 책은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기를 맞아 이 네 가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해 보자고 제안한다. 한때 첫발을 내딛었다가 한동안 소강상태에 머물렀던 서사-화, 그림-이야기, 이야기-그림, 세계-그림의 새로운 시작이 그것이다.
이런 방향 하에서 이 책의 1부는 다음과 같은 거시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한다. 오늘의 문명이 정말 그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다중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가?(1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2장) 오늘의 자연생태계-사회생태계-인간생태계의 위기를 지각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데 그림이 효과적이라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가?(3장) 그렇다 해도 철 지난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을 다시 소환하는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가?(4장)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은 어떤 것인가? 80년대의 '민중'과 오늘의 '민중'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아날로그적인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한 실천이 오늘의 메타버스-NFT-인공지능 시대에도 과연 유효한가?(5장)
이 이론적인 질문과 답에 입각해서 필자가 새롭게 기획한 전시회 〈그림의 새로운 시작〉(2022년 3월 16~29일)의 내용을 2부로 배치했다. 2부 1장은 26명의 출품작 사진 이미지와 각각에 대한 이야기꾼-작가 유진화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쪽의 작품 이미지와 1쪽의 이야기로 짝패를 이룬 그림-이야기인 셈이다. 이 각각의 그림-이야기는 층별로 3개 소주제를 배정한 전시장의 관람 순서, 즉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경로와 동일하게 배치했다. 2부 2장은 전체 전시회의 내용을 미술평론가 심광현이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보다 '전문적'인 해설이다. 이는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이야기라는 하나의 신(scene)이 26개로 이어진 전체 전시회를 보고 나서, 26개 신들을 11개의 시퀀스(sequence)와 3개의 막(act)으로 다시 엮어 전시회의 의미를 관객들이 반추하기 쉽게 한편의 영화 줄거리처럼 풀어낸 형식이다.
여기서 3개의 막은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이라는 전시회의 3개 소주제에 해당한다. 저자들은 출품 작가들의 '서사-화', 이야기꾼-작가의 그림-이야기, 전시 기획자가 몽타주한 서사지도가 관객들에게 잠재된 다양한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경험을 일깨워 코로나19를 계기로 증폭된 세 가지 생태계의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획 취지와 구성상의 특징 때문에 이 책은 복잡한 미술이론/그림-이야기/전시평론을 한 권에 묶어낸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평소에는 다른 층위에 머물던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과 생각들이 전시회를 계기로 마주친 우발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안정기의 과잉결정이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공백들과 틈새들이 열리는 과소결정의 상황인 오늘의 카오스적인 문명사적 대 이행기야말로 이러한 우발적 마주침의 실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심광현ㆍ유진화가 지은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다성적ㆍ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가 출간되었다. 책 출간과 함께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전도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삼육빌딩에서 열렸다. 책을 살피고 전시를 읽는다.
#0. 파미르 고원
이 책은 유라시아를 사슴뿔(生角)로 크게 틔우고, 장구의 궁편과 채편을 휘모리로 몰아가듯 좌뇌(左腦)와 우뇌(右腦)를 뒤흔들어 뇌들보(腦梁)의 불꽃을 일으켜야 잘 읽힌다. 유라시아를 가르는 파미르 고원이 한반도 신화의 한 수원지라는 것을 기억하자. 파미르 고원이 또한 유라시아의 뇌들보이므로. 그가 [그림-1]로 제시한 "4가지 실존양식의 좌표 속에 위치한 개인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10쪽)는 맑스(좌뇌/궁편)와 칸트(우뇌/채편)의 두 편이 어긋매끼면서 직관-판단력-감정-정동-신체가 뇌들보에서 증폭되는 구조다. 좌우가 돌돌 이어 꼬이면서 환빛(神明)의 회오리로 내리 솟구치는 꼴이랄까! 내릴 때는 생활양식/자연적 미메시스(스피노자, 프로이트)로 드러나고, 솟을 때는 통치양식/사회적 미메시스(알튀세르, 푸코)로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내림'은 공자의 유학에 가깝고, '솟음'은 노자의 도학에 가깝다. 공자의 인의예지는 사실 통치양식이 아니라 생활양식이고, 노자의 무위적 성인(聖人)은 통치학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생활양식의 보편성은 정치학으로 넓어지고, 성인의 통치학은 '스스로의 깨달음'이라는 생활수행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공자는 죽을 때까지 '(인간)사회'를 놓지 않았고, 노자 또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연(만물)'을 놓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유구조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책은 유라시아 반대편의 사유구조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과 예술을 되묻는다.
#1. 삼위일체
이 책은 삼위일체론을 제시한다. '개인 구성체의 위기', '사회구성체의 위기', '자연구성체의 위기'의 삼위기(三危機)가 하나로 몰려들어 땅구술(地球)을 극심한 혼란 속에 빠뜨렸다는 것.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로의 개념정립이 옳다며 '삼위일체 트라이앵글'을 그들이 판단한 가장 현실적인 난제로 제시한다. 이 난제를 뒤집어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그들은 삼위기 그물코에 잇대어 미학-문명사-자본-예술학-인지생태학-이야기의 그물을 짓는다. 그물과 그물코의 중층적 알고리즘에서 그들은 하나의 대안을 뽑아낸다. 그 대안은 러시아 철학자 바흐친이 역설한 '대화적-다성적-민중적' 이야기와 소설의 전통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소리나 한글 가사체(춘향전, 용담유사와 같은 이야기체 글), 굿의 본풀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은 '창조적 굿짓'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민중적 현실의 고치에서 뽑아낸 이야기가 짓고 일으키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손-그림과 입술-이야기의 사용을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 오래된 방법의 재사용 장점은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하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복잡한 기술과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13쪽)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침놀'을 향한 미학의 파고듦이다! 삼위일체를 부수고 '다시 개벽'의 세계를 열기 위한 이들의 계획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실천이 문제일 뿐!
#2. 부활
스무 살이 되던 1987년과 그 이듬해 88년,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타 올랐던 그 두 해 어디쯤에서 평론은 시작되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보고 그들의 작가론을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면서 평론의 맛을 익혔다. 때마침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번졌고 이쪽저쪽의 갈림길로 미끄러지듯 몰려가는 예술가들을 보았다. 정치에 빗대어 미술의 민주화(민중미술)와 미술의 자유화(미술시장)가 서로 맞섰다. 미술비평연구회(미비연)도 그 무렵 발족했다. 미비연은 평론의 정치성을 줏대로 내세운 최초의 비평그룹이었다. 민중미술 평론도 그 무렵 가장 첨예한 담론을 쏟아냈다. 비판적 리얼리즘, 민중적 리얼리즘, 당파적 리얼리즘이 날 선 대립각을 세웠고, 그 경향성에 따라 활동이 갈렸다. 참으로 그 시대는 이론의 시대였다. 미비연의 출현으로 한국현대미술은 본격적인 평론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들은 모더니즘 비평과 맞장뜨며 민중미술에서 미학의 정치성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하면서 '전투적 아방가르드 미술운동'(70쪽)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술을 시각예술 장르로 재정의하고,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혁명성을 넓히고자 했다. 그런 민중미학의 확장적 개념으로 대중문화의 이면을 파고든 것은 선구적 작업이었다. 당시 서울미술관 기획실장을 지낸 심광현의 평론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맑시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무기로 미비연의 맨 앞자리에서 칼 같은 글쓰기를 수행했다. 사회현실의 논점을 파고들었고, 예술정치성의 세목을 판독하면서 민중미술 진영의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는 진영 내부의 날카로운 논객이었다. 1990년의 시대령(時代嶺)을 넘을 때 그는 '90년대 미술담론'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민중미술 담론이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민중미술 15년 : 1980-1994〉(1994)전이 열리자, 문화이론가로 길을 바꾸었다. 이 책에는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12쪽)하면서 "(그림과 이야기)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13쪽) 민중미술에의 오마주가 깊게 깔려 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의 부활을 기획하는 중이다.
#3. 아시아
시각문화, 문화연구, 문화공학, 예술과 과학기술, 인지과학, 문화정치, 기술-사회 공진화, 신경과학-윤리학의 공진화, 맑스코뮤날레, 인간혁명, 사회혁명…. 예술 어귀의 안팎을 넘나들고 문화과학을 가로지르며 마르크스 이론가 심광현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이다. [표-5]의 "축적 순환 주기 및 국면변화와 상응하는 근현대 사유의 계보학"(60쪽)에 밝혀 놓았듯이 그는 자본/제국의 헤게모니에 따라 철학적 계보학을 분류한다 : 네델란드 헤게모니(1618~1789), 영국 헤게모니(1789~1929), 미국 헤게모니(1929~2008ㆍ10), 새로운 이행기(2017~ ). 각 헤게모니의 국면에서 a(이행기)의 20세기는 프로이트, 베르그송, 후설, 존듀이, 화이트헤드, 레닌, 그람시, 벤야민, 비트겐슈타인이 있고, b(실물팽창)의 20세기는 바슐라르, 하이데거, 라캉이 있으며, c(국면전환)의 20세기는 H.르페브르, G.베이트슨,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시몽동이, 그리고 d(금융팽창)의 20세기는 들뢰즈, 푸코, 데리다, 그 외 가타리, 바디우, 발리바르, 랑시에르, 네그리, 고진 등이 있다. 이 사유의 계보학에 남북중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철학자는 없다. 왜 이 대륙의 철학자는 이곳에 없는 것일까? 아시아 한반도에 발 딛고 유럽(유라시아 좌뇌)의 지식체계로 전환의 알고리즘을 짜고 있는 이 영민한 이론가는 21세기 이행기의 예술적 잠재력을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성장의 계기로 제시한 "애니미즘→신화적 인식→종교적 인식→과학적 인식→예술적 인식"에 주목한다(62쪽). 그는 "과거의 모든 이행기란 곧 인류가 유년기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단절적-불연속적인 성장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과 지구생태계 및 사회생태계의 환경 전체와 전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단계, 즉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자기 인식'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성장'과 그의 '인식 단계'로서의 '일방향 화살표(→)'는 다소 갸우뚱거림이 있다. 그가 64쪽과 65쪽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자화된 개인들이 사회적 개인들로 재탄생하고, 흩어진 개인들을 다시금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로서"를 말하는 부분과,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경향적으로 발전해 온 수많은 민중들의 대화적-다성적-해방적 목소리의 반복적인 표현으로 수렴된다(물론 이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들뢰즈가 강조했듯이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다)"라고 한 부분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예술창조의 다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에서 다소 무색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해석이 아니라 창조를 생각해 보라. 창조는 해석보다 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카오스가 아닌가(64~65쪽). 카오스-플랙탈을 오가는 그의 이론은 아주 흥미롭게도 다분히 아시아적이다. 그의 『흥한민국』(2005)은 '사유의 계보학'이 '심광현'이라는 한 한국인의 사유체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유라시아의 우뇌인 아시아는 21세기로 깊숙이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화두일 수 있다.
#4. 민중적 리얼리즘
2021년 12월 심광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민중미술계 1세대 평론가인 원동석(1938~2017), 최민(1944~2018), 박용숙(1935~2018), 김윤수(1936~2018) 선생이 작고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성완경(1944~2022) 선생의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성완경은 198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의 빗나간 궤적」을 발표하며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의 시대를 간단없이 뛰어넘는 '발언의 현실'을 도전적으로 제시했다. 미학적 실천을 밀고 간 그의 비평은 담대했다. 그는 또 미비연의 탄생을 주도했다. 그런 성완경의 부음과 심광현의 퇴직은 민중미술 비평이 '역사화'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림의 새로운 시작〉전과 같은 이름의 책을 보고 읽었다. 그런데 심광현은 이들 1세대의 비평 유산을 다시 읽기하며 '역사화'와 '현재화'를 나누지 않고 '이행기'의 관점으로 두 과제를 이어 붙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김윤수다. '김윤수 리얼리즘 미학의 재조명'(76쪽)을 위해 유고집을 촘촘히 읽는다. 그가 인용한 '예술의 건강성'에 대한 김윤수의 평론 : "건강한 예술, 예술에서의 건강성의 추구는 첫째 예술적 종합을 형상화하는 일과, 둘째 그것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리는 일,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한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80쪽) 심광현은 김윤수가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린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술이 "몽상을 따라간다"고 말했던 프로이트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해석했다(81쪽). 현실적 모순을 그리는 극복의 꿈. 여기에 심광현과 유진화가 더하려는 것은 관객과의 다성적 쌍방향 대화를 촉진하는 '민중미술의 새로운 실천'이다.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서는 '민중미술2.0'의 개화", "이야기-그림과 그림-이야기의 쌍방향 대화의 촉진", "수많은 장벽에 막힌 개인들의 무의식적 소원-성취(인간과 인간,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을 재결합하는 에로스의 소원-성취)를 다양한 미학적 형식을 통해 연결해 줄 효과적인 사회적 통로"(101쪽). 바로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중적 리얼리즘'이리라.
#5. 옹알이
이 책의 2부 1장은 작가 유진화의 그림 읽기의 이야기다(109~167쪽). 그가 이야기꾼으로 나설 때는 작가의 옷도, 평론의 의식도 내려놓았다. 그는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작품 앞에 설 때처럼 그 자신의 눈과 앎으로만 이야기를 풀었다. 예술가의 이력도, 그 이력의 내력담이 작품주제로 파고들어 줄기차게 이어가는 어떤 함의도 따지지 않았다. 문맥은 오롯이 그가 읽어낸 글의 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그러므로 어떤 글은 싱싱하고 어떤 글은 들뜨고 어떤 글은 달라붙지 않고 어떤 글은 어이없고 어떤 글은 소름 돋았다. 가령, 박은태의 〈철골-여보세요〉를 풀어서 "노란 안전모를 쓴 건설 관계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현장에서 급히 걸음을 옮기며 여보세요!를 외치고 있는 이유. 그 이유를 헤아려 보기 위해 그림의 풍경 속을 다시 더듬어 본다. 분주함 대신 정갈함. 꽉 참 대신 휑함. 현장으로부터 멀고 높은 시선. 그림자와 관. 침대와 선물 꾸러미. 그런데 이런 것들로 유추한 추리의 세상 속에서 문든 뿌연 먼지가 인다. 혹시 철골을 턱없이 모자라게 사용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끔찍하고 참혹했다. 이야기는 그림과 아귀가 딱 맞아서 울렸으므로. 그의 글들은 글마다 그 속에서 조금씩은 싱싱했고, 조금씩은 무거웠고, 조금씩은 놀라웠으며, 조금씩은 아귀가 맞아서 시원했다. 물론 이론적이거나 주제만 너무 파고들거나 지식 정보에 기댄 경우도 적잖았으나, 어쩌면 바로 그런 읽기의 방식이야말로 '비평의 옹알이'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6. 뱀발(蛇足)
책의 부제인 "문명전환과 다성적ㆍ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를 위해 좀 더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면 민중신학과 실천문학일 것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이후 교회 내부의 신학은 바깥으로 나와서 제 몫을 갖지 못한 민중들과 해우했다. 그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가 발족했다. 1975년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민중'이 누구인가를 물었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조우했다. 1960년대 후반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민족미학과 관련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1970년대 민족문학의 씨알이었고 그것은 문화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1970년대 후반 민중미술 소집단들이 숨을 고르며 결성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학습한 것은 김지하의 「현실동인 제1선언」이었다. 여기에는 고구려 벽화는 물론 고려 불화, 조선 민화에 대한 이론적 회오리가 여러 방식으로 솟아오른다. 영화적 문법과 다른 고구려 벽화, 고려불화의 몽타주론은 1980년대 걸개그림의 주 형식이 되었다. '민중 메시아'는 광주와 서울의 민중미술가들이 '신명'에 기초해 길어 올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실체였다. 당시 청년 예술가들이 깊게 탐독한 책들은 송건호 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마루쿠제의 『위대한 거부』와 『이성과 혁명』, 전미카엘의 『노동자의 길잡이』, 린다H.존스의 『제3세계의 인권운동』,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P.프레이리의 『페다고지』, N.C.C.의 『산업선교는 왜 문제시 되는가』,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브리이덴시타인의 『인간화』, 염무웅의 『민중시대의 문학』,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장일조의 『사회운동이념사』, 우인기의 『건국전야의 비화』, 김응삼의 『오늘의 민족노선』, 김윤환 외의 『한국노동문제의 구조』등이다.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이 책들은 판금도서였다. 민중미술의 첫 샘은 여러 뿌리의 물줄기가 이어 붙어서 솟구친 것이다. 깃발, 걸개, 만장, 플래카드, 벽보, 전단지, 신문, 슬라이드, 이야기그림 등 전시장 바깥의 민중미술은 현장성을 앞세웠다. 시각매체 미디어의 변화에 대응한 동시대 '바깥미학'은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고분벽화, 불화, 민화의 불연속적 시간성의 몽타주는? 집회시위의 다성적 목소리를 크게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은? 공동체 신명의 아우라를 심어낼 수 있는 미학적 실천은?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처럼 사건의 혁명성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제는?
심광현과 유진화의 책과 전시는 이제야말로 민중미술을 다시 읽기하면서 새로 질문하고 새로 모색하고 새로 역사화해야 한다고 따진다. 그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위대한 미술이 먼지에 쌓여 잊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까? 미술시장의 급성장과 K-미술의 급부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지나쳐 온 민중미술에 대해 다시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 미술에 우리 미술의 '동시대성'이 웅숭깊게 뿌리박혀 있을지 모르잖은가!
최진욱 / 화가?
이 책은 한 화가의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30여 년 전에, 좁은 무대만을 문제삼는 모더니즘과 넓은 바깥세상만을 문제 삼는 리얼리즘에 의문을 품으며, 극장 자체와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겠노라고 '그림의 시작'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동안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양극화로 인한 사회생태계의 위기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인간생태계의 분열마저 겪으며 떠밀려 나가기만 했다. 이러한 문명의 이행기에는 역사지리적 환경 변화에 대한 인지생태학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변증법을 살펴봐야 한다고 저자는 자세한 설명과 다이어그램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명의 이행기야말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며, 현재 '과학의 세기'라고 지칭하는 20세기, 21세기 다음으로 '예술적 자기인식'의 세기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실증적 사례와 이론을 통해 전하면서, 지금이 '그림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라고 강조한다.
? 미술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미술시장(아트페어 미술)이 극도로 상업주의에 물들어 '일러스트 페어'와 다를 바 없다고 한탄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 일목요연한 설명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해주고 있다.(39-40쪽) 그것을 읽으면서 이 책은 미술대학에서 교재로 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에서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굳이 실기 시간의 앞부분을 할애해 강독했는데, 그림이 감각과 연결되는 부분을 해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술 이론서들은 저널리즘적인 미술사와 더불어 작가와 저자 개인의 미학적 태도가 전부인데 반해, '감각의 논리'는 실제 그림의 이론서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미술전반의 향방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겐 이미 40년 전에 '민중미술'이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있었다. 민중미술의 주 특징인 그림-이야기가 대안적인 문명 전환의 주요한 실천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이런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꾼 유진화가 연결자로서 등장한다. 이미 2020년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2021년 『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에서 가정주부이자, 필자의 아내로서-'암묵지'의 참가자로서-무겁고, 맵싸한 글맛을 선사했던 유진화는 작가 26명의 작품 하나 하나에 이번에는 유려한 문장으로 뜻 깊은- 최초의 관객 참여자로서 -'미술담론'에 참여한다.
? 예술의 상품화가 가속화 되면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전반에서 인간의 창작 기능의 상당 부분이 배제되기 시작하고 있다."(63쪽)고 책에 나오는데, 나는 '배제'라는 단어가 특히 눈에 꽂혔다. 현재 작가들은 전시를 하든, 안 하든, 실제로 배제 되는 경험을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고있다. 작가 자신이 배제 되든, 작품이 배제 되든 말할 나위없이 씁쓸한 경험이다. 8-90년대 혁혁한 민중미술 비평가였다가, 한예종 영상이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계의 가장 진보적인 학자로 맹활약을 해온 심광현은 한번도 문화현장을 떠난 적이 없지만, 25년 만에 다시 미술평론가로 돌아온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역사 지리-인지생태학과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배제의 굴레를 쓰고 있는 현대미술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가 크다. 나는 최근에 개인전에 출품할 그림들을 끝내고, 담담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은 후, 새로 작은 그림 하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림의 제목이 〈먼 곳으로부터〉이다. 이 그림을 시작하며 여태까지 사로잡혀 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개념적 회화'를 넘어 심광현이 노상 강조하고 있었던-이 책에서도 줄곧 얘기하는-'생태적 회화'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적 시공간을 가로 질러 역사지리-생태적 깨달음의 바람을 가슴으로 맞는 그런 기분을 주었는데, 20여 년 전, 경복궁 근정전 앞에 관광객과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인 가운데, 나의 어린 두 딸이 눈앞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무대 위든 극장이든 극장 바깥이든 어떤 대상을 어떤 매체로 그리는가에 좌우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
사회 체계가 안정된 시기의 예술은, 지배적인 생산관계의 재생산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고통을 카타르시스로 순화함으로써 제도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창작의 내용과 표현이 원자화된 개인들의 단성적인 독백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오늘과 같은 문명사적 '이행기의 예술'은, 시스템이 요동쳐 발생하는 공백 속에서 자유로워진 개인들을 사회적 개인들로 연결한다. 흩어진 개인들을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이로써 창작의 내용과 표현은 대화적, 다성적, 민중적인 성격을 취하게 된다.
오래 전 동굴벽화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동안 민중, 그림, 이야기, 세상은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 책은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기를 맞아 이 네 가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해 보자고 제안한다. 한때 첫발을 내딛었다가 한동안 소강상태에 머물렀던 서사-화, 그림-이야기, 이야기-그림, 세계-그림의 새로운 시작이 그것이다.
이런 방향 하에서 이 책의 1부는 다음과 같은 거시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한다. 오늘의 문명이 정말 그렇게 위험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다중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가?(1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2장) 오늘의 자연생태계-사회생태계-인간생태계의 위기를 지각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데 그림이 효과적이라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가?(3장) 그렇다 해도 철 지난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을 다시 소환하는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가?(4장)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 미학은 어떤 것인가? 80년대의 '민중'과 오늘의 '민중'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아날로그적인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한 실천이 오늘의 메타버스-NFT-인공지능 시대에도 과연 유효한가?(5장)
이 이론적인 질문과 답에 입각해서 필자가 새롭게 기획한 전시회 〈그림의 새로운 시작〉(2022년 3월 16~29일)의 내용을 2부로 배치했다. 2부 1장은 26명의 출품작 사진 이미지와 각각에 대한 이야기꾼-작가 유진화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쪽의 작품 이미지와 1쪽의 이야기로 짝패를 이룬 그림-이야기인 셈이다. 이 각각의 그림-이야기는 층별로 3개 소주제를 배정한 전시장의 관람 순서, 즉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경로와 동일하게 배치했다. 2부 2장은 전체 전시회의 내용을 미술평론가 심광현이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보다 '전문적'인 해설이다. 이는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이야기라는 하나의 신(scene)이 26개로 이어진 전체 전시회를 보고 나서, 26개 신들을 11개의 시퀀스(sequence)와 3개의 막(act)으로 다시 엮어 전시회의 의미를 관객들이 반추하기 쉽게 한편의 영화 줄거리처럼 풀어낸 형식이다.
여기서 3개의 막은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이라는 전시회의 3개 소주제에 해당한다. 저자들은 출품 작가들의 '서사-화', 이야기꾼-작가의 그림-이야기, 전시 기획자가 몽타주한 서사지도가 관객들에게 잠재된 다양한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경험을 일깨워 코로나19를 계기로 증폭된 세 가지 생태계의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획 취지와 구성상의 특징 때문에 이 책은 복잡한 미술이론/그림-이야기/전시평론을 한 권에 묶어낸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평소에는 다른 층위에 머물던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과 생각들이 전시회를 계기로 마주친 우발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안정기의 과잉결정이 무너져 내리면서 수많은 공백들과 틈새들이 열리는 과소결정의 상황인 오늘의 카오스적인 문명사적 대 이행기야말로 이러한 우발적 마주침의 실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심광현ㆍ유진화가 지은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다성적ㆍ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가 출간되었다. 책 출간과 함께 〈그림의 새로운 시작-문명 전환과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전도 3월 1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삼육빌딩에서 열렸다. 책을 살피고 전시를 읽는다.
#0. 파미르 고원
이 책은 유라시아를 사슴뿔(生角)로 크게 틔우고, 장구의 궁편과 채편을 휘모리로 몰아가듯 좌뇌(左腦)와 우뇌(右腦)를 뒤흔들어 뇌들보(腦梁)의 불꽃을 일으켜야 잘 읽힌다. 유라시아를 가르는 파미르 고원이 한반도 신화의 한 수원지라는 것을 기억하자. 파미르 고원이 또한 유라시아의 뇌들보이므로. 그가 [그림-1]로 제시한 "4가지 실존양식의 좌표 속에 위치한 개인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10쪽)는 맑스(좌뇌/궁편)와 칸트(우뇌/채편)의 두 편이 어긋매끼면서 직관-판단력-감정-정동-신체가 뇌들보에서 증폭되는 구조다. 좌우가 돌돌 이어 꼬이면서 환빛(神明)의 회오리로 내리 솟구치는 꼴이랄까! 내릴 때는 생활양식/자연적 미메시스(스피노자, 프로이트)로 드러나고, 솟을 때는 통치양식/사회적 미메시스(알튀세르, 푸코)로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내림'은 공자의 유학에 가깝고, '솟음'은 노자의 도학에 가깝다. 공자의 인의예지는 사실 통치양식이 아니라 생활양식이고, 노자의 무위적 성인(聖人)은 통치학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생활양식의 보편성은 정치학으로 넓어지고, 성인의 통치학은 '스스로의 깨달음'이라는 생활수행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공자는 죽을 때까지 '(인간)사회'를 놓지 않았고, 노자 또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연(만물)'을 놓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유구조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책은 유라시아 반대편의 사유구조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과 예술을 되묻는다.
#1. 삼위일체
이 책은 삼위일체론을 제시한다. '개인 구성체의 위기', '사회구성체의 위기', '자연구성체의 위기'의 삼위기(三危機)가 하나로 몰려들어 땅구술(地球)을 극심한 혼란 속에 빠뜨렸다는 것.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로의 개념정립이 옳다며 '삼위일체 트라이앵글'을 그들이 판단한 가장 현실적인 난제로 제시한다. 이 난제를 뒤집어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그들은 삼위기 그물코에 잇대어 미학-문명사-자본-예술학-인지생태학-이야기의 그물을 짓는다. 그물과 그물코의 중층적 알고리즘에서 그들은 하나의 대안을 뽑아낸다. 그 대안은 러시아 철학자 바흐친이 역설한 '대화적-다성적-민중적' 이야기와 소설의 전통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소리나 한글 가사체(춘향전, 용담유사와 같은 이야기체 글), 굿의 본풀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은 '창조적 굿짓'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민중적 현실의 고치에서 뽑아낸 이야기가 짓고 일으키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손-그림과 입술-이야기의 사용을 재결합하는 것이다. 이 오래된 방법의 재사용 장점은 그림과 이야기를 결합하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복잡한 기술과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13쪽)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침놀'을 향한 미학의 파고듦이다! 삼위일체를 부수고 '다시 개벽'의 세계를 열기 위한 이들의 계획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실천이 문제일 뿐!
#2. 부활
스무 살이 되던 1987년과 그 이듬해 88년,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타 올랐던 그 두 해 어디쯤에서 평론은 시작되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보고 그들의 작가론을 읽고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면서 평론의 맛을 익혔다. 때마침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번졌고 이쪽저쪽의 갈림길로 미끄러지듯 몰려가는 예술가들을 보았다. 정치에 빗대어 미술의 민주화(민중미술)와 미술의 자유화(미술시장)가 서로 맞섰다. 미술비평연구회(미비연)도 그 무렵 발족했다. 미비연은 평론의 정치성을 줏대로 내세운 최초의 비평그룹이었다. 민중미술 평론도 그 무렵 가장 첨예한 담론을 쏟아냈다. 비판적 리얼리즘, 민중적 리얼리즘, 당파적 리얼리즘이 날 선 대립각을 세웠고, 그 경향성에 따라 활동이 갈렸다. 참으로 그 시대는 이론의 시대였다. 미비연의 출현으로 한국현대미술은 본격적인 평론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들은 모더니즘 비평과 맞장뜨며 민중미술에서 미학의 정치성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하면서 '전투적 아방가르드 미술운동'(70쪽)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술을 시각예술 장르로 재정의하고, 문화이론의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혁명성을 넓히고자 했다. 그런 민중미학의 확장적 개념으로 대중문화의 이면을 파고든 것은 선구적 작업이었다. 당시 서울미술관 기획실장을 지낸 심광현의 평론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맑시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무기로 미비연의 맨 앞자리에서 칼 같은 글쓰기를 수행했다. 사회현실의 논점을 파고들었고, 예술정치성의 세목을 판독하면서 민중미술 진영의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따져 물었다. 그는 진영 내부의 날카로운 논객이었다. 1990년의 시대령(時代嶺)을 넘을 때 그는 '90년대 미술담론'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민중미술 담론이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민중미술 15년 : 1980-1994〉(1994)전이 열리자, 문화이론가로 길을 바꾸었다. 이 책에는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12쪽)하면서 "(그림과 이야기)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13쪽) 민중미술에의 오마주가 깊게 깔려 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의 부활을 기획하는 중이다.
#3. 아시아
시각문화, 문화연구, 문화공학, 예술과 과학기술, 인지과학, 문화정치, 기술-사회 공진화, 신경과학-윤리학의 공진화, 맑스코뮤날레, 인간혁명, 사회혁명…. 예술 어귀의 안팎을 넘나들고 문화과학을 가로지르며 마르크스 이론가 심광현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이다. [표-5]의 "축적 순환 주기 및 국면변화와 상응하는 근현대 사유의 계보학"(60쪽)에 밝혀 놓았듯이 그는 자본/제국의 헤게모니에 따라 철학적 계보학을 분류한다 : 네델란드 헤게모니(1618~1789), 영국 헤게모니(1789~1929), 미국 헤게모니(1929~2008ㆍ10), 새로운 이행기(2017~ ). 각 헤게모니의 국면에서 a(이행기)의 20세기는 프로이트, 베르그송, 후설, 존듀이, 화이트헤드, 레닌, 그람시, 벤야민, 비트겐슈타인이 있고, b(실물팽창)의 20세기는 바슐라르, 하이데거, 라캉이 있으며, c(국면전환)의 20세기는 H.르페브르, G.베이트슨,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알튀세르, 시몽동이, 그리고 d(금융팽창)의 20세기는 들뢰즈, 푸코, 데리다, 그 외 가타리, 바디우, 발리바르, 랑시에르, 네그리, 고진 등이 있다. 이 사유의 계보학에 남북중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철학자는 없다. 왜 이 대륙의 철학자는 이곳에 없는 것일까? 아시아 한반도에 발 딛고 유럽(유라시아 좌뇌)의 지식체계로 전환의 알고리즘을 짜고 있는 이 영민한 이론가는 21세기 이행기의 예술적 잠재력을 프로이트가 『토템과 터부』에서 성장의 계기로 제시한 "애니미즘→신화적 인식→종교적 인식→과학적 인식→예술적 인식"에 주목한다(62쪽). 그는 "과거의 모든 이행기란 곧 인류가 유년기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단절적-불연속적인 성장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과 지구생태계 및 사회생태계의 환경 전체와 전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단계, 즉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자기 인식'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성장'과 그의 '인식 단계'로서의 '일방향 화살표(→)'는 다소 갸우뚱거림이 있다. 그가 64쪽과 65쪽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자화된 개인들이 사회적 개인들로 재탄생하고, 흩어진 개인들을 다시금 역동적인 링크로 연결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로서"를 말하는 부분과,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경향적으로 발전해 온 수많은 민중들의 대화적-다성적-해방적 목소리의 반복적인 표현으로 수렴된다(물론 이 반복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들뢰즈가 강조했듯이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다)"라고 한 부분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예술창조의 다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에서 다소 무색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해석이 아니라 창조를 생각해 보라. 창조는 해석보다 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카오스가 아닌가(64~65쪽). 카오스-플랙탈을 오가는 그의 이론은 아주 흥미롭게도 다분히 아시아적이다. 그의 『흥한민국』(2005)은 '사유의 계보학'이 '심광현'이라는 한 한국인의 사유체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유라시아의 우뇌인 아시아는 21세기로 깊숙이 이행하기 위한 하나의 화두일 수 있다.
#4. 민중적 리얼리즘
2021년 12월 심광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민중미술계 1세대 평론가인 원동석(1938~2017), 최민(1944~2018), 박용숙(1935~2018), 김윤수(1936~2018) 선생이 작고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성완경(1944~2022) 선생의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성완경은 1980년대 초반 「한국 현대미술의 빗나간 궤적」을 발표하며 1970년대 백색 모노크롬의 시대를 간단없이 뛰어넘는 '발언의 현실'을 도전적으로 제시했다. 미학적 실천을 밀고 간 그의 비평은 담대했다. 그는 또 미비연의 탄생을 주도했다. 그런 성완경의 부음과 심광현의 퇴직은 민중미술 비평이 '역사화'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림의 새로운 시작〉전과 같은 이름의 책을 보고 읽었다. 그런데 심광현은 이들 1세대의 비평 유산을 다시 읽기하며 '역사화'와 '현재화'를 나누지 않고 '이행기'의 관점으로 두 과제를 이어 붙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김윤수다. '김윤수 리얼리즘 미학의 재조명'(76쪽)을 위해 유고집을 촘촘히 읽는다. 그가 인용한 '예술의 건강성'에 대한 김윤수의 평론 : "건강한 예술, 예술에서의 건강성의 추구는 첫째 예술적 종합을 형상화하는 일과, 둘째 그것을 저해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리는 일,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한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80쪽) 심광현은 김윤수가 "현실적 모순들을 그 극복의 꿈과 함께 그린다"고 강조함으로써 예술이 "몽상을 따라간다"고 말했던 프로이트를 훌쩍 뛰어 넘는다고 해석했다(81쪽). 현실적 모순을 그리는 극복의 꿈. 여기에 심광현과 유진화가 더하려는 것은 관객과의 다성적 쌍방향 대화를 촉진하는 '민중미술의 새로운 실천'이다.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서는 '민중미술2.0'의 개화", "이야기-그림과 그림-이야기의 쌍방향 대화의 촉진", "수많은 장벽에 막힌 개인들의 무의식적 소원-성취(인간과 인간,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을 재결합하는 에로스의 소원-성취)를 다양한 미학적 형식을 통해 연결해 줄 효과적인 사회적 통로"(101쪽). 바로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중적 리얼리즘'이리라.
#5. 옹알이
이 책의 2부 1장은 작가 유진화의 그림 읽기의 이야기다(109~167쪽). 그가 이야기꾼으로 나설 때는 작가의 옷도, 평론의 의식도 내려놓았다. 그는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작품 앞에 설 때처럼 그 자신의 눈과 앎으로만 이야기를 풀었다. 예술가의 이력도, 그 이력의 내력담이 작품주제로 파고들어 줄기차게 이어가는 어떤 함의도 따지지 않았다. 문맥은 오롯이 그가 읽어낸 글의 줄기를 따라 이어졌다. 그러므로 어떤 글은 싱싱하고 어떤 글은 들뜨고 어떤 글은 달라붙지 않고 어떤 글은 어이없고 어떤 글은 소름 돋았다. 가령, 박은태의 〈철골-여보세요〉를 풀어서 "노란 안전모를 쓴 건설 관계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현장에서 급히 걸음을 옮기며 여보세요!를 외치고 있는 이유. 그 이유를 헤아려 보기 위해 그림의 풍경 속을 다시 더듬어 본다. 분주함 대신 정갈함. 꽉 참 대신 휑함. 현장으로부터 멀고 높은 시선. 그림자와 관. 침대와 선물 꾸러미. 그런데 이런 것들로 유추한 추리의 세상 속에서 문든 뿌연 먼지가 인다. 혹시 철골을 턱없이 모자라게 사용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끔찍하고 참혹했다. 이야기는 그림과 아귀가 딱 맞아서 울렸으므로. 그의 글들은 글마다 그 속에서 조금씩은 싱싱했고, 조금씩은 무거웠고, 조금씩은 놀라웠으며, 조금씩은 아귀가 맞아서 시원했다. 물론 이론적이거나 주제만 너무 파고들거나 지식 정보에 기댄 경우도 적잖았으나, 어쩌면 바로 그런 읽기의 방식이야말로 '비평의 옹알이'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6. 뱀발(蛇足)
책의 부제인 "문명전환과 다성적ㆍ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를 위해 좀 더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면 민중신학과 실천문학일 것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이후 교회 내부의 신학은 바깥으로 나와서 제 몫을 갖지 못한 민중들과 해우했다. 그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가 발족했다. 1975년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민중'이 누구인가를 물었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조우했다. 1960년대 후반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민족미학과 관련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1970년대 민족문학의 씨알이었고 그것은 문화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1970년대 후반 민중미술 소집단들이 숨을 고르며 결성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학습한 것은 김지하의 「현실동인 제1선언」이었다. 여기에는 고구려 벽화는 물론 고려 불화, 조선 민화에 대한 이론적 회오리가 여러 방식으로 솟아오른다. 영화적 문법과 다른 고구려 벽화, 고려불화의 몽타주론은 1980년대 걸개그림의 주 형식이 되었다. '민중 메시아'는 광주와 서울의 민중미술가들이 '신명'에 기초해 길어 올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실체였다. 당시 청년 예술가들이 깊게 탐독한 책들은 송건호 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마루쿠제의 『위대한 거부』와 『이성과 혁명』, 전미카엘의 『노동자의 길잡이』, 린다H.존스의 『제3세계의 인권운동』,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P.프레이리의 『페다고지』, N.C.C.의 『산업선교는 왜 문제시 되는가』,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브리이덴시타인의 『인간화』, 염무웅의 『민중시대의 문학』,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장일조의 『사회운동이념사』, 우인기의 『건국전야의 비화』, 김응삼의 『오늘의 민족노선』, 김윤환 외의 『한국노동문제의 구조』등이다.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이 책들은 판금도서였다. 민중미술의 첫 샘은 여러 뿌리의 물줄기가 이어 붙어서 솟구친 것이다. 깃발, 걸개, 만장, 플래카드, 벽보, 전단지, 신문, 슬라이드, 이야기그림 등 전시장 바깥의 민중미술은 현장성을 앞세웠다. 시각매체 미디어의 변화에 대응한 동시대 '바깥미학'은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고분벽화, 불화, 민화의 불연속적 시간성의 몽타주는? 집회시위의 다성적 목소리를 크게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은? 공동체 신명의 아우라를 심어낼 수 있는 미학적 실천은?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처럼 사건의 혁명성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제는?
심광현과 유진화의 책과 전시는 이제야말로 민중미술을 다시 읽기하면서 새로 질문하고 새로 모색하고 새로 역사화해야 한다고 따진다. 그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위대한 미술이 먼지에 쌓여 잊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까? 미술시장의 급성장과 K-미술의 급부상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지나쳐 온 민중미술에 대해 다시 말해야 한다. 어쩌면 그 미술에 우리 미술의 '동시대성'이 웅숭깊게 뿌리박혀 있을지 모르잖은가!
최진욱 / 화가?
이 책은 한 화가의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30여 년 전에, 좁은 무대만을 문제삼는 모더니즘과 넓은 바깥세상만을 문제 삼는 리얼리즘에 의문을 품으며, 극장 자체와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겠노라고 '그림의 시작'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동안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양극화로 인한 사회생태계의 위기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인간생태계의 분열마저 겪으며 떠밀려 나가기만 했다. 이러한 문명의 이행기에는 역사지리적 환경 변화에 대한 인지생태학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변증법을 살펴봐야 한다고 저자는 자세한 설명과 다이어그램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명의 이행기야말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정치, 사회,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며, 현재 '과학의 세기'라고 지칭하는 20세기, 21세기 다음으로 '예술적 자기인식'의 세기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실증적 사례와 이론을 통해 전하면서, 지금이 '그림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라고 강조한다.
? 미술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미술시장(아트페어 미술)이 극도로 상업주의에 물들어 '일러스트 페어'와 다를 바 없다고 한탄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 일목요연한 설명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해주고 있다.(39-40쪽) 그것을 읽으면서 이 책은 미술대학에서 교재로 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에서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굳이 실기 시간의 앞부분을 할애해 강독했는데, 그림이 감각과 연결되는 부분을 해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술 이론서들은 저널리즘적인 미술사와 더불어 작가와 저자 개인의 미학적 태도가 전부인데 반해, '감각의 논리'는 실제 그림의 이론서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미술전반의 향방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겐 이미 40년 전에 '민중미술'이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있었다. 민중미술의 주 특징인 그림-이야기가 대안적인 문명 전환의 주요한 실천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이런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꾼 유진화가 연결자로서 등장한다. 이미 2020년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2021년 『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에서 가정주부이자, 필자의 아내로서-'암묵지'의 참가자로서-무겁고, 맵싸한 글맛을 선사했던 유진화는 작가 26명의 작품 하나 하나에 이번에는 유려한 문장으로 뜻 깊은- 최초의 관객 참여자로서 -'미술담론'에 참여한다.
? 예술의 상품화가 가속화 되면서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전반에서 인간의 창작 기능의 상당 부분이 배제되기 시작하고 있다."(63쪽)고 책에 나오는데, 나는 '배제'라는 단어가 특히 눈에 꽂혔다. 현재 작가들은 전시를 하든, 안 하든, 실제로 배제 되는 경험을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고있다. 작가 자신이 배제 되든, 작품이 배제 되든 말할 나위없이 씁쓸한 경험이다. 8-90년대 혁혁한 민중미술 비평가였다가, 한예종 영상이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계의 가장 진보적인 학자로 맹활약을 해온 심광현은 한번도 문화현장을 떠난 적이 없지만, 25년 만에 다시 미술평론가로 돌아온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역사 지리-인지생태학과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배제의 굴레를 쓰고 있는 현대미술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가 크다. 나는 최근에 개인전에 출품할 그림들을 끝내고, 담담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은 후, 새로 작은 그림 하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림의 제목이 〈먼 곳으로부터〉이다. 이 그림을 시작하며 여태까지 사로잡혀 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개념적 회화'를 넘어 심광현이 노상 강조하고 있었던-이 책에서도 줄곧 얘기하는-'생태적 회화'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적 시공간을 가로 질러 역사지리-생태적 깨달음의 바람을 가슴으로 맞는 그런 기분을 주었는데, 20여 년 전, 경복궁 근정전 앞에 관광객과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인 가운데, 나의 어린 두 딸이 눈앞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1부 이론 : 문명 전환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
1장 문명 전환의 향방, 사물화 대 인격화
2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장 지각의 생태학과 미적 미메시스
4장 안정기의 예술과 이행기의 예술
5장 민중미술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
2부 전시 :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 전제 :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 기획 과정의 난점과 의의
1장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
1층 :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최진욱, 〈괴물, 언어, 재난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 중 오른쪽〉
김경주, 〈새들은 무등의 새벽을 깨우고〉
유연복, 〈고래의 꿈〉
이명복, 〈곶자왈(제주의 숲)〉
박진화, 〈어느 날〉
이종구, 〈감자밭-해남 농부들〉
2층 :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박영균, 〈오후4시의 완벽한 여름햇빛〉
박은태, 〈철골-여보세요〉
이윤엽, 〈밤에 출근하는 사람〉
김태헌, 〈'주차방해물' 연작〉
황세준, 〈무대〉
김지원, 〈맨드라미〉와 〈인물화〉
민정기, 〈구보의 이발2〉와 〈구보의 이발3〉
이선일, 〈그 너머의 풍경II〉
신학철, 〈젊은 날〉
정정엽, 〈방탄할메〉
3층 :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
김영진, 〈승자독식〉
주재환, 〈유전무죄 무전유죄〉
김천일, 〈용광로〉
김정헌, 〈산업화의 꿈〉과 〈산업화의 말로에 나는 소리〉
이태호, 〈종을 6번 울려주세요-무명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한 비〉
김재홍, 〈거인의 잠-장막〉
임옥상, 〈4·3레퀴엠〉
박흥순, 〈쇠똥구리〉
박불똥, 〈돈월이비해피〉
에필로그
심광현, 〈천년의 은행나무〉, 〈느티나무 숲(화양)〉, 〈폭우 속의 인왕산〉, 〈방학동의 아침〉
2장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의 서사지도
나가며
미주
작가약력
참고문헌
1부 이론 : 문명 전환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
1장 문명 전환의 향방, 사물화 대 인격화
2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장 지각의 생태학과 미적 미메시스
4장 안정기의 예술과 이행기의 예술
5장 민중미술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
2부 전시 :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 전제 :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 기획 과정의 난점과 의의
1장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
1층 :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최진욱, 〈괴물, 언어, 재난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 중 오른쪽〉
김경주, 〈새들은 무등의 새벽을 깨우고〉
유연복, 〈고래의 꿈〉
이명복, 〈곶자왈(제주의 숲)〉
박진화, 〈어느 날〉
이종구, 〈감자밭-해남 농부들〉
2층 :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박영균, 〈오후4시의 완벽한 여름햇빛〉
박은태, 〈철골-여보세요〉
이윤엽, 〈밤에 출근하는 사람〉
김태헌, 〈'주차방해물' 연작〉
황세준, 〈무대〉
김지원, 〈맨드라미〉와 〈인물화〉
민정기, 〈구보의 이발2〉와 〈구보의 이발3〉
이선일, 〈그 너머의 풍경II〉
신학철, 〈젊은 날〉
정정엽, 〈방탄할메〉
3층 :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
김영진, 〈승자독식〉
주재환, 〈유전무죄 무전유죄〉
김천일, 〈용광로〉
김정헌, 〈산업화의 꿈〉과 〈산업화의 말로에 나는 소리〉
이태호, 〈종을 6번 울려주세요-무명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한 비〉
김재홍, 〈거인의 잠-장막〉
임옥상, 〈4·3레퀴엠〉
박흥순, 〈쇠똥구리〉
박불똥, 〈돈월이비해피〉
에필로그
심광현, 〈천년의 은행나무〉, 〈느티나무 숲(화양)〉, 〈폭우 속의 인왕산〉, 〈방학동의 아침〉
2장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의 서사지도
나가며
미주
작가약력
참고문헌
저자
저자
심광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명예교수.『문화/과학』 편집인 및 한국문화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미술평론 및 전시기획 경력으로 서울미술관 기획실장, 상산환경조형연구소 소장, 미술비평연구회 창립, 민족미술협의회 평론분과장/편집실장 및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편집실장, 서울 600주년 기념전 〈한양에서 서울로〉 전시디렉터, 부산민주공원 상설전시관 전시디렉터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 『대중의 철학이 된 영화』(2021),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2020),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2014),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2009), 『흥한민국』(2005), 『프랙탈』(2005) 등 다수가 있다. 시각예술 관련 주요 논문으로「기술-사회 공진화의 기초, 신경과학-윤리학 공진화의 촉매제로서의 예술」(2018), 『혁명기 예술의 과제 : 1920년대 초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사례를 중심으로』(2015), 「인지과학과 이미지의 문화정치」(2013), 「시공간의 변증법과 도시의 산책자」(2010), 「제3공간의 출현과 예술과 과학기술 통섭의 철학적 전망」(2008), 「시각과 이미지의 논리」(2000), 「시각이미지, 공간, 문화공학」(1998), 「시각문화와 문화연구 : 시각/이미지/공간의 탈육화와 육화」(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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