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한 잎이 만드는 구성(실천 서정시선 61)
송용배 시집
송용배 시인의 시는 우리 사회와 인간 존재가 가지는 불완전과 불안전성 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바라본 이 세계는 죽음과 이별과 분단과 허기가 몰아치는 눈발 가득한 곳이다. 상처와 고통의 사간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는 이전에 유행한 현장시와 궤을 달리하면서 죽음과 이별과 고통 앞에서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며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자존의 자세를 보여 준다. 시인의 시는 불완과 불안을 서정으로 감싸 위로하면서 상처 속에서 꽃을 꺼내는 자기 구원의 미학을 천착하고 있음을 본다. 송용배 시인의 시는 우리 사회와 인간 존재가 가지는 불완전과 불안전성 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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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송용배 시인의 시 세계
복효근(시인)
아득한 옛날 제천의식에서 제의로 행해지던 원시종합예술(발라드 댄스)에서 분화되어 진화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문학이라고 설명하는 문학 기원설이 있다. 제천의식은 절대적 존재에 대한 감사, 숭배와 함께 유한한 생명체로서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간 문제의 호소에 그 근거를 두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통이 없다면 제천의식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문학도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유희본능에서 출발한 것이 문학이며 문학을 포함한 다른 예술도 그렇다고 설명하는 이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유희본능도 인간이 안고 있는 치명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 뿌리는 같다고 하겠다. 근대 이후 절대적 존재는 과학에 자리를 내주었다.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간의 문제를 절대자에게 호소하는 대신 문학은 인식과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개인을 내세웠다. 실존주의 문학과 오늘날의 사실주의 문학도 그런 의미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유한하며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로서 개인의 구원 문제가 그것이다.
송용배 시인의 시는 이렇듯이 실존적이고 현실적인 자아의 구원에 그 맥락을 잇고 있음을 본다. 다시 말하면 그의 문학의 출발이 실존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에서 출발하였다는 말이다. 시인의 시는 고통과 음울이라는 무채색 언어로 가득하다. 송용배 시인이 무채색 언어로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끝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대숲에서 수리부엉이 울자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우리는 아무도 팔순 노모에게
어두워지는 사연을 알리지 못하고
젯밥을 차렸다
눈발은 낮게 휜 어미 등을
두들기고 떨어져
새까맣게 숲이 되었다
가슴 쓸어내리는 어미 앞섶을
기어오르는 노동의 마른 젖내
한 생을 짜주고도 남긴
저 고요함 속으로 동생은
제 몸에 불을 붙였다
살기 위해 음각되는 존재란 얼마나 외로운가
나오려고 꿈틀대는 저 피켓 속 구호들
그 고백조차 총질해버리는
산발한 유령선
텔레비 뉴스
어디쯤 이 눈물을 치워 둘까
근조등 저쪽
희미한 치알 속마다
산 사람들 웃음소리
창창하다
-「대숲을 지우는 눈」
"어두워졌다"는 표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시는 하강 이미지로 채색되어있다. 눈의 흰빛마저 새까맣게 숲이 되어버린다. 가벼워야 할 눈은 이내 무겁게 "눈발은 낮게 휜 어미 등을/ 두들기고 떨어"진다. 이 어둠의 사연은 아마 동생의 죽음과 관련되는 듯하다. 문면에 그려진 내용만으로 짐작컨대 동생은 노동자로서 분신을 한 것으로 읽힌다. 아직도 여전히 자본과 노동이 대치하고 있고 수없는 노동자가 희생되는 걸 감안한다면 이 시에 그려진 시적 자아와 노모와 동생은 실제적인 혈연의 기록으로 보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동생은 그렇게 사라져갔고 노동자들은 피켓을 들고 자본의 무자비함에 대하여 부르짖는다. 그러나 텔레비전 뉴스는 아랑곳하지 않는 현실을 그렸다. 시인의 시가 개인적 고통의 배설에만 머물고 있다면 굳이 시라는 형식을 띨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인의 개인적 고통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통과 모순을 그린 것이다.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데 도드라져 햇살 속으로 드러나지 않고 음각되어버리는 것은 비극이다. 21세기 한복판에 벌어지는 자본의 만행과 음각되어 묻히는 풍경 앞에서 시인은 묻는다. "어디쯤 이 눈물을 치워 둘까" 희미한 치알 속에서 창창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시인에게 어떻게 들려왔을까. 웃음 속에 묻혀버리는 한 노동자의 비극적 생애 그리고 웃으며 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산 사람들을 보며 시인의 실존적 고뇌는 필연적으로 절망에 이어질 것이다.
새파란 봄날을 당겨
들여다본다
햇살을 흔드는 바람들
몇 날이나 제대로 꽃을 봤을까?
아무리 마음을 바꿔도 되새김질하는
분단의 허기, 외로움의 허기, 미망인의 허기
허기, 허기, 허기, 허기들
어젯밤도 뱃속까지 사납게 기어오르던
허기를 꺼내 먹으며
저나 나나 밤새 외로움 한번 대보지 못하고
제각기 허우적거렸을 걸
이가 다 닳아버린 화석처럼
밤새 조이고 풀고 자해하며
흉부를 열어 토악질할 때
서로 다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헤프닝이라는 걸
알았을까?
오늘은 어제 죽어간 것들의
유령 같은 내일이라는 걸
-「허기에 대하여」
이러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절망한다. 이 화려한 자본의 세상에 시인은 '허기'에 대하여 말한다. 그 허기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분단의 허기, 외로움의 허기, 미망인의 허기"에서 보듯이 시인은 허기는 분단에서 온다, 외로움에서 온다. 미망인의 슬픔에서 온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모순이 분단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가장 큰 구조적 문제가 분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단의 현실이 가져다주는 허기는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맨 앞자리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에 매몰되어 전체와 공동체를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허기도 만만치 않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특히나 노동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이 느끼는 허기는 시인에게 각별한 허기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젯밤도 뱃속까지 사납게 기어오르던/허기를 꺼내 먹으며/저나 나나 밤새 외로움 한번 대보지 못하고/제각기 허우적거렸을" 뿐이다. 하나가 되어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투쟁하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생활전선에서 뿔뿔이 개인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그걸 "해프닝"이라고, 오늘은 다만 "어제 죽어간 것들의 유령 같은 내일"일 뿐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절망적 현실을 그렇게 시인은 허기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기와 절망을 노래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실주의 시와 노동시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러한 절망적 현실을 돌파하고자 하는 시적 방법과 방식은 같지 않다.
오늘도 아내는 귀가가 늦는다 홀로 서성이는 시계를 보다 앞치마를 둘렀다 새로 빨아 뽀송한 치마 속에서 민들레 씨방 같은 아이들과 가슴으로 하늘 품던 아내 냄새가 우두커니 나를 본다 공장 문 닫으면 어쩌냐던 아내 양파를 누이고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단추를 끄르자 신혼 첫 밤 같은 아내 웃음이 까르르 도마 위에서 옷을 벗는다 희디흰 시간들 벗을수록 작아지는 그녀의 흔적들이 수북이 쌓여갈수록 눈물도 아롱아롱 껍질을 벗는다 그놈의 사장은 이런 날이라도 일찍 오게 시간 좀 뚝 뚝 떼어 주면 안 되나 구부러진 고샅 푸르스름한 어둠을 데리고 아이는 문간에서 서성거리고 나는 식어가는 미역국 솥에 다시 불을 지피고
-「겨울 삽화」 전문
아내는 "그놈의 사장" 회사에 근무한다. 아내의 생일인데도 아내는 늦도록 귀가하지 못한다. 남편은 혼잣말로 "이런 날이라도 일찍 오게 시간 좀 뚝 뚝 떼어 주면 안 되나"하고 중얼거린다. 착취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노동자의 인권이나 복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자본을 상징하는 것이겠다. 아내는 "공장 문 닫으면 어쩌냐고 걱정을" 했다. 오직 생계가 공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늦게까지 생일에도 근무를 한다. 남편은 힘없는 '을'의 현실에 대해 저항하고 머리띠를 두르는 대신 아내의 생일상을 차리느라 양파를 깐다.
이 부분이 시인의 시적 전략을 알 수 있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다른 사실주의 경향의 시나 노동시와는 차별되는 시인만의 시적 전략인 셈이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려 문간에서 서성거리고 나는 식어가는 미역국 솥에 다시 불을 지피고" 이 부분이 그 어떤 투쟁적 구호보다 시를 시적이게 만든다. 한 가족의 애틋한 서사가 서정적으로 전개되는 이 부분이 핍진하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본다.
입이 터지도록 눌러 담긴 쌀 포대엔 말 못 하는 윤 씨의 언어가 담뿍하다 맨살이 드러난 윤 씨의 등허리를 타고 자랐을 쌀알들이 손을 대자 현관 가득 환하다 참 곱다 이승의 바람과 이승의 노을과 이승의 생각을 먹고 자랐을 쌀알 속엔 허기진 눈빛도 욕망도 없다 천둥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윤 씨의 숨소리만 하얗게 채색된 겨울산 같다 돈을 꺼내 몇 장 건네자 손사래가 범벅이 되어 나를 밀친다 멍이 든 만원 권 지폐 몇 장이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 헐렁한 윤 씨 작업복 위에서 앙상하게 발기한 구호 몇 자가 아릿하게 목줄을 당긴다
'FTA 절대 반대'
-「윤씨의 쌀 포대」 전문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윤씨에게서 쌀 한 포대를 받는다. 쌀 포대엔 말 못하는 윤씨의 언어가 쌀로 가득하다. 입이 터지도록 눌러 담겼다. 넘치는 따뜻한 정을 표현한 것이다. 쌀이 곱기도 하다. 쌀알 속에서 허기진 눈빛도 욕망도 찾을 수 없다. 윤씨의 성정을 쌀에 이입하여 표현한 것이리라. 나는 만 원권 지폐 몇 장을 건네려 하지만 윤씨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더없이 인간적이고 따뜻한 광경이다.
그런데 윤씨가 입은 작업복의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FTA 절대 반대'. 우리 농민들의 최대 생계수단이고 환금작물인 쌀 시장마저 개방되어 농민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시인은 윤씨가 쌀을 가지고 오고 건네려던 돈을 거부한 인간적 서사 뒤에 이 엄중한 구호를 짧게 제시해 놓았다. 놓았을 뿐이다. 이 부분이 시인의 시적 전략이다. 'FTA 절대 반대'라는 구호를 전면에 걸고 투쟁하는 노동시를 넘어서는, 이 시는 가슴에 파고드는 진정성과 서정적인 힘이 있다.
생각 없이 긋는 성호처럼
생각 없이 받아먹는 밥상처럼
생각 없이 기웃거리다 보았네
아내의 손등
디딜 곳 없이 핀 검버섯을
밥술을 뜰 때마다
너무 뜨거워
와락와락
목이 메이네
용서하라
함께 울어 주지 못한
내 무딘 시간들이여
-「저녁 7시」 전문
인간은 습관과 관성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생각 없이 긋는 성호처럼/ 생각 없이 받아먹는/ 밥상처럼/생각 없이"산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 속에서 범상하지 않은 사실을 보아내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것이 시인이다. 밖을 향해 비판하고 꾸짖고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자신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들이대고 성찰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다. 어느 날 문득 아내의 손등에서 무수히 돋은 검버섯을 보게 된다. 수많은 풍상과 애환 속에 지나갔을 아내의 젊음에 회한이 밀려온다. "함께 울어 주지 못한/ 내 무딘 시간들/"이 빚 독촉하듯이 자책으로 밀려온다. "밥술을 뜰 때마다/ 너무 뜨거워/와락와락/목이 메"인다. 그리고 시인은 용서를 구한다. 연민과 사랑과 용서의 언어로 얽힌 한 편의 시다. 현실의 어둠을, 고통을 노래하되 그것을 넘어서는 출구를 시인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밤새 생각이 쌓인다
평생 함께 붙어 산
이 몸뚱이도 사랑이라고
마디마디 저리고
아픔이구나
친구가 죽었다
인식의 스위치가 꺼졌다
수의를 입은 내 몸처럼
해방된 친구의 뼈마디를
아무리 두드려도
장난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내 페이지 끝에서도
어제 묻고 온 해골이
팔짱을 끼고
시리게 생각을 두드린다
마음은 몸을 품는다는데
과연 무엇이 나냐
밤새 뒤척일 몸을 열고
꽃들이 하는 말
잘 알아 들었음 좋겠다
-「인식의 스위치」 전문
인용한 시에서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은 "인식의 스위치가 꺼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살아있는 나는 아픔이 몸뚱이를 사랑하느라 마디마디 저리고 아프다. 반면 죽은 친구는 뼈마디를 두드려도 '장난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아픔을 인식하고 인식하지 못하고의 차이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매우 단순한 정의이자 설명이다. 산 자만이 아프다. 그 아픔은 평생 떠나지 않아서 그것은 곧 사랑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죽은 자는 더 이상 사랑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아픔이 없다. 인식의 스위치가 꺼졌기 때문이다. 아픔도 사랑도 살아서의 일이다. 친구는 죽어서 장난처럼 꿈쩍하지 않는데 내 머릿속에 그 친구가 해골로 찾아와 생각을 두드린다. 이것은 인식의 스위치가 작동하고 있는 살아있는 나의 일이다. "마음은 몸을 품는다." 거꾸로 말하면 마음(인식)이 작동을 멈춘 죽은 자는 몸이 있을 수 없다. 살아서 마음(인식)이 작동하는 나는 죽은 친구도 품을 수 있다. 죽은 친구에게는 좋은 일이나 살아있는 나에게는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크다. 때론 친구의 삶까지를 내 안에 들여서 살아내야 한다.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절망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축복이다. 살아있어 인식이 작동하는 자에겐 "꽃들이 하는 말"까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시인은 소망한다. "꽃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기를 말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말이며 진실과 진리의 말을 가리킨다. 살아있는 시인이 꽃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일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이다.
한참을 쓸쓸했을
이별이란 말
아직 몸 어딘가에 있을
고양이 발톱자국이거나
꽃잎에 살짝 밟혀 말라가는 가을길
봉쇄되는 시간 같은 것 아닐까
아파하지 마
우린 그저 상상 속 미련 같은 거잖아
그저 살짝 찔린 살 위로 돋아나는
작은 핏물 같은 거
그냥 곁에 살짝 내려 앉은
눈물 같은 것
네가 떠난 후
몸 어디에선가 꿈틀거리던
뜨거운 샤워소리
생식기에 버려지는
비릿한 미련의 신호음을
들었어
그래서 가끔은
창가에 든 달빛을
어항에 담아 두고
도망가지 못하게
열대어처럼 잡아 두고
토닥토닥 말을 건냈다
괜찮아 괜찮아
지워지는 것이
어찌 사랑 뿐이겠니
아파하지마
- 「아파하지 마3」 전문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엿본 데 이어 이별에 대한 시인의 시적 정의를 알 수 있다. 시인은 한참을 쓸쓸했을 테지만 이별은 "아직 몸 어딘가에 있을/고양이 발톱자국이거나/ 꽃잎에 살짝 밟혀 말라가는 가을길/ 봉쇄되는 시간 같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죽음도 이별의 한 형태일 테니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이별도 죽음도 과거형이다. 그것을 가지고 집착하거나 견디지 못할 정도의 슬픔과 절망에 놓여있지는 말자는 주문이다. 그리하여 이별을 '고양이 발톱자국'에 비유한다. '꽃잎에 말라가는 가을 같은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사소한 것일 수 있으며 다만 가을이 되어 시드는 꽃잎의 시간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저 상상 속 미련 같은 거"라고 말한다. 다소 단순하고 냉소적인 정의 같지만 과거 이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주저앉지 말고 '지금 여기'를 호흡하며 살아야 한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시인은 이별을 "그저 살짝 찔린 살 위로 돋아나는/ 작은 핏물 같은 거/ 그냥 곁에 살짝 내려앉은/ 눈물 같은 것"으로 재차 정의한다. 그리고 주문한다. "아파하지" 말라고. 자칫 심각한 절망 속으로 실족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다.
죽음에 대한 그리고 이별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직설화법으로 받아들이자면 그렇다. 그러나 이렇듯 죽음에 대한, 이별에 대한 다소 차가운 의미 부여는 반어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 얼마나 참담하고 고통스러우면 시인은 애써 그것들을 무덤덤하게 혹은 냉혹하게, 건조하게 바라보고자 했을까? 그리고 거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 현실에 살아있고 싶었을까? 그것은 죽음과 이별로 대변되는 고통에서 자신을 건져내는 방어기제로 택한 시적 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지워지는 것이 사랑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모든 게 지워질 거라는 생각으로 이별의 시간을 넘어서자는 자기 위로다. 희망의 씨앗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아주머니 허리를 잡고 도는 훌라후프가 어디 돌고 싶어서 돌아가남유 공장에서 받은 퇴직금 200만 원도 세금으로 뽑아간다며 자기 짜른 세상 속을 빤히 보고 말하는 뚱띵이 아줌마가 똥 빠져라 돌리니께 돌아가지유 그렇다고 아줌니 세상 불공평하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시유 살아 있으니께 살아 있승께 그렇게 훌라후프라도 돌리잖여유 저기 흉한 바람 속 겨울나무도 죽지 않고 살라니께 자꾸만 제 속을 돌리고 있잖여유
- 「훌라후프」 전문
시인은 정신적 사치나 허위의식이나 관념의 유희, 잉여적인 감정놀음에 회의적이다. "살다보면/ 외로움도/ 일상이다" 「아파하지 마1」 고 말하는 시인은 어찌 보면 이별도 외로움도 밥 먹고 잠자고 일어나듯 일상에 불과하니 엄살 부리지 말자고 주문한다. 스스로에게 담담하고 의연한 자존의 자세를 다짐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절망도 일종의 관념적 허영이라고 본다. 엄정한 생존, 살아있음이 먼저다. 죽음도 인식의 스위치가 꺼진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이별도 고양이가 할퀸 상처일 뿐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죽음과 이별의 의미 없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기보다는, 현재적인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 초점이 놓여있다고 하겠다.
시인은 지금, 공장에서 받은 퇴직금 200만 원도 세금을 떼어가는 세상,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아줌니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살아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훌라후프 돌리는 아주 사소한 일도 살아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의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다. 시인은 겨울나무가 나이테를 휘감고 더 단단해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흉한 바람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려는 의지를 보라는 말이다.
그것은 뚱띵이 아줌마에게만 하는 말이기보다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시인, 그리고 동시대인에 내미는 희망의 처방전인 것이다.
갓 핀 꽃잎이 눈발에 도열해 있다
봄바람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환절기엔 미천한 것들은 목숨을 미리 당겨
가불하듯 꽃을 피운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꽃잎을 세어 보면
동학 때 죽은 할애비 등짝 같기도 하고
눈물 맺힌 전사자의 군번줄 같기도 하고
일전에 용산서 불타 죽은 바람 같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어쩔 것이냐
자꾸 흔들려야지
꽃잎이 눈발에 붙어사는 이유는
그 가혹한 바람 때문이 아니라
계절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눌리고 멍이 드는 빈 잎
그래도 어쩔 것이냐
입 속에 피는 구멍 메꾸듯
달달이 밀려오는 할부금 연체하듯
할딱할딱
흔들려야지
- 「어쩔 것이냐」 전문
아이엠에프 시대보다 더한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엄혹한 시대이다. 아직 봄바람이 도착하기 전이다. 눈발 속에 꽃들이 성급하게 피고 있다. 시인은 "환절기엔 미천한 것들은 목숨을 미리 당겨/ 가불하듯 꽃을 피운다"고 한다. 동학농민전쟁 때, 한국전쟁 때, 용산 참사 때 희생된 넋처럼 바라보지 말자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 꽃들을 부질없다, 철없다, 무모하다, 혹은 불쌍하다고 말하지 말기를 주문하는 것이다. 그 꽃들이 피어남으로 해서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이다. '흔들림'으로 상징되는 그 꽃들의 철없음, 무모함, 방황과 몸부림 끝에 봄은 온다.
이 고통의 시간을 시인은 '환절기'로 본다. 서둘러 피는 꽃잎은 "눌리고 멍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그런 꽃잎의 흔들림이 봄을 불러온다면 우리도 "달달이 밀려오는 할부금 연체하듯/ 할딱할딱/ 흔들려야지" 별 수 없다. 그 끝에 기다리던 계절이 오기 때문이다. 그 '흔들림'은 생존을 위한 부단한 각성의 노력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송용배 시인의 시는 우리 사회와 인간존재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과 불안전성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바라본 이 세계는 죽음과 이별과 분단과 허기와 몰아치는 눈발 가득한 곳이다.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다. 시인이 그 고통의 무채색 세상과 맞서는 방식은 의외로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며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적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었다. 이전에 유행한 현장시와는 궤를 달리하면서 죽음과 이별과 고통 앞에서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는 자존의 자세를 보여준다. 시인의 시는 불완과 불안을 서정으로 감싸면서 위로하고 위무하며 상처 속에서 꽃을 꺼내는 자기 구원의 미학을 천착하고 있음을 본다.
목차
목차
겨울삽화
꽃샘추위
삶
서랍 속 세상
아버지의 식탁
아이스크림
윤씨의 쌀 포대
이순의 벽화 1
치자꽃 향기
훌라후프
2부 무인도
DMZ꽃
미련에 대한 명상
봄동
설화
세한도
싶어요
아파하지 마 1
야화
인식의 스위치
일상 털기
3부 살구꽃에 얹힌 담
가을 시금치
각인
밥술 뜨기
봄의 끝
오월
시간의 변두리
언어유희 -통곡의 벽-
팽목항
저녁 7시
하관
4부 생각 훔치기
겨울판화
꽃 지는 자리
꿈의 에세이
대숲을 지우는 눈
대청호 -가래울에서-
생각 훔치기
이순의 벽화
쪽방
폭탄세일
허기에 대하여
5부 숲의 탱고
꽃의 역설
마시멜로 온유
복수초 한 잎이 만드는 구성
빨간 피터
사랑하는 일
상처에 돋는 달콤한 시
숲의 탱고
자본의 해탈
채석강에서
코로나블루
6부 폭설 주의보
그래도 가끔은
꽃잎
달궁달궁 달궁이야
봄날은 간다
상처에 돋는 달콤한 시
아파하지 마2
아파하지 마3
어쩔 것이냐
폭설 주의보
하루 살기
저자
저자
2004년 격월간《시사사》 등단
시집 『복수초 한 잎이 만드는 구성』
'예촌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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