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당 유고(양장본 Hardcover)
이 책은 조선 영·정조 시대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의 문집이다. 책의 1부에는 임윤지당의 생애와 학문, 2부에는 《윤지당유고》 한자 원문 번역본을 실었다. 조선시대의 ‘여성’ 지식인으로서 윤지당의 글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윤지당의 탄생 300주년이 되는 2021년, 새롭게 재탄생한 《윤지당유고》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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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조금 자라서는 그만두려 해도 할 수 없었다."
남성 중심의 유교문화가 뼛속까지 가득 차 있었던 조선 시대에 학문에 몰두하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조선 영·정조 시대에 살았던 임윤지당은 자신의 수양과 심오한 학문 그리고 도덕적 실천을 훌륭한 문장으로 남겼다. 작고하기 7년 전, 평생에 걸쳐 지은 글을 손수 정리했고, 윤지당을 존경했던 남동생과 시동생이 임윤지당의 35편의 글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윤지당유고》는 인물 전기 2편, 역사인물 평론 11편, 저자 후기 2편, 성리학 논문 6편, 잠언 4편, 금석문이라 할 수 있는 명문 3편, 인물예찬 1편, 제문 3편, 저자 서문 1편, 《대학》과 《중용》 해석 각 1편, 그리고 부록으로 시동생과 남동생이 쓴 윤지당의 생애에 관한 글 각 1편, 제문 각 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윤지당이 살았던 18세기 중엽은 성리학의 고착화로 사회는 엄격한 윤리와 도덕률 속에 얽매여 있었다. 학문에 있어서도 오직 주자(朱子)의 성리학만이 유일한 진리요 정의로 공인되었고, 다른 모든 사상이 이단(異端)으로 배척되었다. 시문을 읊조리는 것은 나태하고 분방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서화는 중인계층의 극히 일부 직업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학자라면 오로지 성리학을 익히고 행동을 단속하여 양반의 법도를 체질화해야 했다. 더욱이 여성들이 시·서·화·문을 익히는 것은 분수에 넘치고 정숙치 못한 일로 간주되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의 저술은 대체로 문학적인 성격을 가진 소품이거나 가정 관리에 한정된 저술이며, 철학이나 역사 등을 연구한 학문적 저술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임윤지당은 이러한 측면에서 독보적이다.
《윤지당유고》는 대부분 형이상학적 철학과 역사를 연구한 논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을 논평하고 대학과 중용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네 편의 운문체 잠언은 문학적이면서도 강렬하여 임윤지당의 삶을 향한 의지와 올곧은 잣대를 읽을 수 있다.
登高自卑 등고자비
陟遐由近 척하유근
是曰時習 시왈시습
習成若性 습성약성"높은 데 오르자면 낮은 데서부터,
먼 길을 가자면 가까운 데서부터,
이를 두고 부지런히 익힌다 하니
습관이 본성처럼 이루어지네"
윤지당이 평생을 통하여 추구하였던 성리학은 그 핵심이 심성의 수련과 도덕적 실천에 있었고, 지식의 습득이나 문예의 연마에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윤지당의 공부 방법은 『중용』의 표현을 빌자면 지식을 습득하는 '도문학(道問學)'보다 심성을 수양하는 '존덕성(尊德性)'에 중점을 두었다. 윤지당은 방만해지기 쉬운 마음을 잘 붙잡아 안정시키고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착한 성품을 배양하려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을 공부의 요체로 삼았다.
"감히 아녀자의 분수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경전에 기록된 것과 성현의 교훈을 마음을 다해 탐구하였다."
유교적 규범이 강화되고 남존여비 사상이 심화된 18세기에 태어났으나, 심성의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되고자 정진했던 임윤지당. 드넓은 사유와 성찰을 윤지당의 육성으로 만나본다.
이 책은 1998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임윤지당(부제: 국역 윤지당유고》의 재출간이다. 1796년에 만들어진 원래의 제목 《윤지당 유고》로 수정하였다.
목차
목차
낯선 이름 임윤지당
윤지당 계보
윤지당 일화
윤지당과 성리학
『윤지당 유고』라는 책
2부 윤지당 유고
[전기] 송씨댁 부인
최씨·홍씨 모녀
[인물론] 예양을 논함
보과를 논함
미생고가 식초를 구걸한 일을 논함
안자의 즐거움을 논함
자로를 논함
가의를 논함
이릉을 논함
온교가 옷깃을 자른 일을 논함
사마온공을 논함
왕안석을 논함
악비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 회군한 일을 논함
[발문] 남편이 시작한 『시경』의 필사를 마치고
남편이 시작한 『초사』의 필사를 마치고
[논설] 이기심성설
인심도심사단칠정설
예악설
극기복례위인설
치란재득인설
오도일관설
[잠언] 마음을 다스리는 잠언
인내의 잠언
부지런히 수행하는 잠언
학문을 권하는 잠언
[명문] 거울에 새기는 명문
비수에 새기는 명문
자와 저울에 새기는 명문
[찬문] 안자의 학문 애호를 찬미함
[제문] 큰오라버니께 올린 제문
작은오라버니께 올린 제문
아들 재준에게 올린 제문
[인] 문집 초고를 베껴 지계로 보내며
[경의] 『대학』(6조)
『중용』(27조)
[부록] 언행록(19조)
유사(16조)
발문(신광우)
발문(임정주)
저자
저자
氏)로, 아버지는 함흥판관을 지낸 노은老隱 임적任適(1685-728)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호조정랑을 지낸 윤부(尹扶)의 딸이다. '윤지당'은 오빠인 조선후기 성리학자 임성주가 지어준 당호(堂號)이다. 윤지당은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과 같은 유교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였고, 성리학의 핵심인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과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을 설파하였다. 윤지당의 학문을 통해 당시 성리학의 저변 확대와 기호학파 성리학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다. 윤지당이 작고한 지 3년 후(1796년) 『윤지당 유고允摯堂遺稿』가 간행되었다.
1-18세,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와 5남2녀 형제들 사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가 배운 것은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원리와 성인에 이르기 위한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던 성리학이었습니다.
19세, 결혼을 하고 28년간 유교의 지엄한 법도를 엄격히 따랐습니다. 서적을 가까이하는 기색을 보인 적도 없었고, 일상 대화에서도 문장에 관해 말하는 일 없이 오직 그 당시 부인의 직무에만 힘썼습니다.
20대, 난산 끝에 아이를 잃고, 남편과도 사별하였습니다.
47세,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간혹 여가가 나면, 밤 깊은 후에 보자기에 싸두었던 경전을 펴놓고 낮은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남모르는 공부가 있었음을 가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61세, 양아들이 28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62세, 학문의 스승이었던 둘째 오빠가 작고하였습니다.
73세, 1793년(정조 17) 음력 5월 14일 윤지당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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