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주루의 굽은 길
이광희 두번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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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시인의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은 「언어 결합과 영성의 신비감」과 연계 맺어 분할·통합해도 거부감은 주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문학성과 차별화는 상이하게도 푸른 생명의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에 맞물려 있기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따뜻한 감성에 의한 신비성과 그 깊은 사유의 매혹(魅惑)은 묵언으로 응시하고 관조할 최소한 역할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이채롭게 서정성의 시학을 난해한 수사적 기법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의 역력함에 못내 가슴은 저릴 것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문학성과 차별화는 상이하게도 푸른 생명의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에 맞물려 있기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따뜻한 감성에 의한 신비성과 그 깊은 사유의 매혹(魅惑)은 묵언으로 응시하고 관조할 최소한 역할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이채롭게 서정성의 시학을 난해한 수사적 기법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의 역력함에 못내 가슴은 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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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광희 시집 평설〉
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
- 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1. 언어결합과 그 감성적 매혹
모름지기 미국의 신비평가 랜섬(John Crowe Ransom)이 "시는 자연미의 표현이며, 상상이라는 훌륭한 기능이 시의 작인(作因)임"을 피력하였듯 모처럼 이광희 시인의 제 2시집『몽주루의 굽은 길』(모던포엠, 2022.12)의 간행에 앞서「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은 「언어 결합과 영성의 신비감」과 연계 맺어 분할·통합해도 거부감은 주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문학성과 차별화는 상이하게도 푸른 생명의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에 맞물려 있기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따뜻한 감성에 의한 신비성과 그 깊은 사유의 매혹(魅惑)은 묵언으로 응시하고 관조할 최소한 역할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이채롭게 서정성의 시학을 난해한 수사적 기법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의 역력함에 못내 가슴은 저릴 것이다. 또 한편 탈진(burn-out)된 의식세계를 모순된 언희(言戱)에 함몰(陷沒)되지 아니하고 개아(個我)의 차별화된 '육성과 체취, 그리고 느낌'마저 알맞은 정신 기후로 조성한 조건은 새삼 유의미하다. 일단 논의의 실체인 이광희 시인은 울산 태생으로 월간『모던포엠』신인상으로 시단에 데뷔한 이후에 첫 시집『이광희의 아름다운 유혹』을 묶어내었으며 현재 시와달빛문학회 회장의 중임을 맡고 있다.
차제에 그 자신의 시적 작위(作爲)도 그렇거니와 간행될 시집의 결(結) 고운 편집의 구도 처리는「제1부 몽주루의 굽은 길(13편), 제2부 구름에 가린 날(13편), 제3부 주전리 바다(14편), 제4부 콩 심는 날(13편), 제5부 달콤한 후회(14편)」로 적절한 분류 후 '(굽은) 길→(기린) 날→바다→(심는) 날→후회'로 객관적인 상관 층위는 총 67편이 형식상의 자유로움이 혼용되고 직조(織造)되어 '후회'의 보기처럼 공허한 틈새에 균형감을 지켜내고 있음은 지대한 관심사(關心事)다. 특히 평설의 모두(冒頭)에서 주지할 사항이라면, 몽주루(Montgeroult)는 파리 북쪽에 자리한 프랑스 중부지역이다. 한편 폴 세잔(Paul Cezanne)의 1898년 회화작품인「몽주루의 굽은 길(Turning Road at Montgeroult)」을 대하면 일순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는 다이돌핀(didorphin) 효능을 접할 것이기에 이 같은 계기는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또 한편 그 자신이 피안의 세계를 내포한 공간대로 생명의 근원이자 동경의 세계를 향한 통로와 잇닿아 우주로 흘러가는 무한의 바다(海)를 비중 있게 형상화한 시편에서 '바다는 바다로 남으려고 몸에 소금까지 뿌리며 슬픔을 양육한다'와 같이 "살아남으라고 보낸/바다의 앙금,/사시사철 몸 안팎을 헤집어/소금꽃으로 피워낸다(우가포)"를 포함해 '바다의 언어'가 푸르다는 〈수평의 평정심〉도 그렇지만 표제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에서 시적 상상력이 확장된 언어의 그물망은 한층 더 이채롭다.
공중에 매달린 틸란드시아처럼/붙박일 곳 없는 익명의 길에서/고단한 나무의 졸음을 상상하는,/내 안의 1인실 문을 열고 나오는 풀 세잔//
일생을 홑이불처럼 깔고 갠 구름이/산 벼랑에 예고 없이 또 잠자리를 깔 때/한순간 실족해 굴러 떨어진/그 돌멩이들의 사연까진 알 수 없으나//
루즈한 붓끝에 쓸려가는 하구는/겹겹의 은빛 윤슬이 등허리 펴는 슘페터의 자리/원근법(遠近法)이 우울한 수평으로 일렁이는/몽주루의 굽은 길.//
-〈몽주루의 굽은 길〉에서
위에 인용한 폴 세잔의 회화인 〈몽주루의 굽은 길〉을 보다 구체적이고 관념적으로 형상화한 또 다른 일련의 예시인 "가슴에도 길이 나 있습니다/누군가 밟고 지나간 자리입니다(길. 1)"의 보기나 "비늘구름에 비늘 하나만 빠져도/하늘에는 상처입니다(길. 2)" 또 다른 "산에도 강에도 길은 있으나/언젠가는 그들도 손을 놓고/서로를 버릴 때가 온다.(길. 3)", "돌아가는 길에는 길 잃은 사람만/오보록이 그늘을 깔고 서 있다.(길. 4-정오의 그늘)"의 객관적 서사는 끝내 "나 역시 출렁이던 물결 그대로/마냥 가슴 적시며 서 있으련다//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를 다짐한 끝에 "피 묻은 발포 벽지가 끼어 있다/신음을 받아먹은 벽이 고요의 숨구멍을 찾는다(벽)"라는 일상의 습관을 반복하며 회귀하는 몸짓은 의연하다.
까닭에 지난 2020년『문학세계』4월호 〈기획특집〉에서 이광희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나의 문학관」 지면에서 그 자신이 "남모르는 금단(禁斷)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던 한낱 민초(民草)로서의 숨겨진 질곡의 삶에서부터 희망과 좌절, 절망에 이르는 질풍(疾風)의 삶에 이르기까지 저의 문학적 생애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눈여겨 봐주시면 감사하겠다."라는 술회(述懷)처럼 항상 비움과 방하착(放下著)의 시 심리로 겸허하되 강직한 자세로 충직한 독자 곁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서며 지친 어깨들 다독여주는 정신 작업의 종사자로서 치열한 무한경쟁으로 상대적 궁핍함에 고통받는 타자들에게 '꿈의 날개를 달아주며 심상(心傷)의 치유에 열중하는 행위'는 지극히 창조적인 영혼에 기인한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시집의 편집상 「제2부 구름에 가린 날」에 수록된 시편 중 "음계 없이 우는 바람 소리만/황갈의 비명 한 겹 내지르고/허허벌판으로 사라집니다//때늦은 이제야/바람의 말로 허공에 휘적여 놓은/슬픈 암호를 해독합니다, '이별' 뚜뚜뚜.(바람 소식)"의 보기도 그렇지만 "네모난 토굴에 구성지게 울리는/숨결 한 토막/생사의 도돌이표가 널을 뛰는 곳/모서리로 누울만한 원시인의 방 한 칸/흙벽에 외롭게 차오르는 슬픔 한 평.(칠흑의 맛)"의 정감이나 삶의 현주소의 편린(片鱗)인 시편 '궁벽한 유배지에서 보낸 밀서처럼 애정의 감염경로가 눈물이 된' "낙강과 동강이 서로 껴안고/흐느껴 우는 강/달빛도 넘지 못한 월영교에서/그댄 놓쳤지만/그리움 하나라도 잡았으니까(낙동강-그대 잘 계시는가)"를 통해 또 그렇게 감응(感應)되는 점이다.
2. 생명 기표의 적절성과 시적 관망
차제에 20세기 최고의 독일 시인으로 신비적 주제를 비중 있게 다룬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시는 체험이다."라고 지적하였듯 사유의 존재로 직립 보행하는 인간으로서 생명의 기표에 맞물린 영혼의 미세한 파동(波動)이 시적 상상력을 작동시켜주는 그 자신의 따뜻한 감성의 시편을 통해 이데아의 본질을 내포한 시어(詩語)의 한계성에서 시적 미감이 응축되어 존재감이 빛난다. 까닭에 그 자신의 시편에서 새삼 확증되듯이 '하늘에는 별, 지상에는 꽃'이라는 시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하되 칙칙한 어둠의 그늘과 불안의식을 말끔 걷어내려는 눈물겨운 정신 작업에 그 자신의 내면 인식이 명료함은 신선한 충격이다.
모름지기 예술사회학자인 하우저(Arnold Hauser)가 "작가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지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하였듯이 그나마 성숙된 개아(個我)의 정신적인 양상에 당혹감은 수용되지 아니한 점일 것이다. 따라서 삶의 공간에서 불멸의 시혼을 태우는 특정한 시인의 주체와 타는 개체의 차별성을 점차 무화시키며 융합과 상승의 역동성을 좌우하는 그 행태의 다양성은 짐짓 지켜볼 바다. 따라서 짐짓 위대한 정신 작업의 행위란 개인적인 창조 활동과 연관성을 맺지만 '특정한 자아가 현상에 대응하며 어떻게 생존하는가?'의 문제의식은 다각적인 시각에 조응함에 따라 그 명료성이 입증된다. 또 한편 최소한 그 자신이 몸소 한 사람의 지성인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생존하는 시간대와 공간에 관심을 지녀야 함은 당연한 처사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또 다른 시편인 "땅만 한 진실이 없다던 그분/논에 물을 대놓고 벼꽃같이/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시던 그분//마음의 골 따라 물 들어가네/흔들리고 출렁여도 뿌리만은 깊던,/그분 살아온 인생이/삽 한 자루의 농학 같네.(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1)"나 또는 "그저 마음이 새긴 금 따라/참회의 이랑을 내었다//눈물이랑 물길이랑/한꺼번에 빠져나갈 물꼬//임 가신 가슴 시린 봄날/흙 이불 두둑이 덮어주며(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2)"도 손금을 보듯 관심 있게 찬찬히 음미할 일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이 울먹울먹 울상인 날' 동해의 땅끝, 울산은 "얇아 터진 가슴은/짓무른 그리움을 뚝뚝 흘립니다/누굴까, 깊게 파고드는 쪽창窓밖의 그 사람.(구름에 가린 날)"의 초상(肖像)은 구름에 가리어 못내 아득할 따름이다.
어디까지나 영국의 스펜더(Spender)가 '기억력은 특정한 감각적 인상으로 시인의 천부적인 재능이며 상상력과 결부된다.'라고 지적하였듯 기억력은 단순히 정신적인 재현작업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생산된 창조적 기억의 변형으로 생명력을 지닌 예술작품이다. 비교적 각별한 전형철 평론가로부터 전해 듣기로 귀촌하여 텃밭을 가꾼다는 그 자신이 깊은 밤, 바람 앞에서도 신 앞에 드리는 절박한 기도는 '시처럼 맑은 영혼과 시에 대한 열정, 바로 끝없는 성찰'이기에 충격적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진동의 언어와 시적 환상은 또 하나의 매혹(魅惑)이다.
특히 화자인 그 자신이 생명의 본원(本源)인 바다(海)를 즐겨 대상으로 삼고, 비중 있게 시적으로 형사(形似)를 하는 문자적 양상에서 '어머니(m?re)의 마음은 바다(mer)와 같다.'라고 견주어지는 점에 비춰 "바다는 나의 어머니/늘 푸른 줄로만 알았던/서러운 가슴이다(바다)"의 보기에서나 또는 '호수와 강은 바다의 자녀이듯' "새벽이면 김을 내며 깨어나던 강/그 자리에 산모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저 홀로 생명을 잉태하고 흘러라(강물)"를 통해서 물의 신성함은 '바다=어머니'라는 함수관계의 맞물림에 의해 이처럼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 흔히 덧없는 삶이란 그 자체가 언젠가 이름 모를 낯선 항구에 닻을 내려야 할 운명적인 존재이듯 우주로 향해 열려 있는 '주전리 바다' 또한 "이제 몽돌의 피멍 위에다 대고/어떻게 살다 왔는지/묻지 않기로 하자//주름 많은 널 만나서/모난 내가 더어 잘아져야만/너그러워질 테니까.(주전리 바다)"라는 시적 변명 뒤에 "거긴 눈이 오는가/세상 사람들 발자국 찍히는가/하얗게 맑아지는 세상 사람들/눈꽃이 피었는가(남동해역南東海域)"라는 물음이 스스럼없이 제시되는 반면, '내 꿈은 어느새 당신 안에서 잠이 들었을지도 몰라도' "심장이 어깻죽지까지 뛰어오르는 동안/쏜살같이 지나가는 당신 앞에/성큼 다가서지 않으려고/더 이상 시들지 않으려고/저린 손바닥을 펴 본다(세월)"에서 지극한 자기 반응은 더없이 절대적이다.
여기서 개아적인 길 찾기로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일관성을 지니고 몰두하는 그 자신의 시적 행위는 감동의 회복을 관통할뿐더러 종종 신비한 은총으로 해명된다. 이처럼 분망한 삶의 일상에서 정신적 부산물로 형상화한 낯익은 시편들은 보다 엄격하게 유의미한 것으로 '적확, 격렬, 구체적, 복합적이다.' 또 한편 리듬과 형태를 갖추어 맑은 영혼의 울림을 조율하려고 저토록 본질적 고독 앞에서도 어디까지나 형식에 얽매임이나 구속됨 없이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특이하게 통연으로 처리된 그 자신의 시편에서 "나는 금을 넘어 태어났다 침 바른 문종이의 음산한 밤을, 육신의 금을 넘어서 아이가 되었다 첫울음이 사립문을 넘칠 무렵 아버지는 *긍굴을 치고 실에다 빨간 고추를 걸었다 아마 누나가 태어날 무렵에는 솔잎을 걸었으리라(금)"에서 전통적인 관습이나 금의 금기(禁忌)는 아직도 그 한계성이 지배적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상이하게도 "나는,/오래전 따뜻한 죽음으로 말아 올린/지붕 위에 다시 올라가/아직 속울음이 그치지 않은/억새 이엉을 엮어 올리려네(억새 지붕. 1)"의 보기를 통해 그처럼 명증되듯이 자유로움이 대조적인 연시 양식(樣式)인 〈새날 오는 밤〉의 시편에서 "비실비실 서 있던 나무들도 빛의 조용한 장례를 유언합니다 하지만 어른 아이 없이 빛이 들어오면 환호합니다 고요에 엎드린 푸석한 숲과 함께 밤샌 별들에게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새날 오는 밤, 파문과 고요는 해를 넘겨 아직 교섭 중입니다.(새날 오는 밤. 2)"도 그렇거니와 〈봄이 오는 역〉이나 또는 "물이 길의 끝에서 멈칫하다가/서로 헤어져 두 줄기 눈물처럼 흐르다가/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손을 잡고 흘러가는 걸 보면(모래섬)"에서와 같이 '눈물, 강, 바다'와 맞물린 물에 대한 시적 이미지는 투명하다. 모처럼 전통적인 정서와 때로는 전형적인 풍물을 다루되 '새로운 도식과 언어의 조합, 이미지의 연결, 어조의 복합성, 운율의 변화 등'을 통해 그 자신의 독자성을 끊임없이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진정성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격려를 보내는데 결단코 인색할 필요는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노을이 담을 넘어가/홍시처럼 뚝 떨어지고/사랑을 잃은 자리에/빨간 멍이 파란 멍이 들도록/그냥 놔두려는 것이다.(억새의 이별법)"에서 새삼 입증되듯 끝내 '원하는 이별을 해놓고도 돌아오는 길은 못내 더없이 서러워' 비장감이 묻어나지만 "빗나간 인연이 덜컹거리는 밤길/하염없이 서 있던 가로등도 목줄을 끊고/실밥 고른 자리/아침 햇살 돋는다.(솔기)"를 통해 '돋아나는 아침 햇살'에 의해 칙칙한 어둠의 그늘은 이처럼 말끔 씻겨내는 현상은 한결 이채롭다. 그렇다. 삶의 일상에서 타자를 적대시할 때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상호투시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대다수 정신 작업의 종사자들도 절감치 못하는 작금의 현상이다. 일반적인 정황에서 개인적인 그림자를 투시할 경우,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감사하게도 그 자신은 오랜 날 삶의 현장에서 체득하고 있다. 모처럼 깊은 밤 견고한 고독 앞에서 깊이 잠들지 못한 궁핍한 영혼을 위해 숨결도 죽여가며 "억새의 이별법이나 솔기"를 통한 타자 간의 배려에 관한 수용성은 지극히 놀랍다.
모처럼 그 자신이 극소수의 창조적인 정신 작업의 종사자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몸담은 공간과 시간대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지니고 있다. 까닭에 10여 년 전 한국을 다녀간 프란체스코 교황은 "항상 지도자란 대중 속에 머물며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되 넘어진 자의 손을 잡아주고, 삶의 좌표를 제시하는 자이다. 진정 살아있는 자만이 함께 춤추고 기뻐할 수 있다."라며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주었다. 이 같은 일면에서 그 자신이 삶의 여백을 통해 틈틈이 주위의 동료의 문인을 조건 없이 헤아리며 다독이는 사려 깊은 분별력과 공동체 인식(inter-being)으로 타자(他者)의 고뇌도 저토록 일체의 소홀함 없이 보듬어주는 소중한 역할 수행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응당 평가받아 마땅하다.
3. 자아 성찰의 일깨움과 시적 상상력
모름지기 유의미한 정신 작업은 노동을 통한 신선한 감동과 충격으로 '시적 치유의 효과가 허락되기'에「자아 성찰의 일깨움과 시적 상상력」은 시인의 자아 회복에 더없이 절실하다. 그 같은 측면에서 어두운 그늘이나 칙칙함이 말끔 씻겨나 자연 친화적인 생태가 생명외경의 모티프로 작동되는 시적 미감과 발화(發話)의 메타포(metaphor)는 그만의 한결같은 지극선(至極善)에 의해 "내년에도 벚꽃처럼/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라/눈물 나게 피어있어라.(천사의 꽃잎)"의 양상처럼 동질성이 끈질기게 관심과 매개물로 작동됨은 모처럼 심사숙고할 정황이다.
특히 서정시를 쓰기가 어렵고 자못 어설픈 시간대에서 이순을 갓 뛰어넘은 연륜에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비록 고뇌하며 열병을 앓을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은 한 시인의 자화상과 내면의식의 합일은 못내 다행스럽다. 무엇보다 그 자신에 엄격하되 주의집중으로 창작에 몰입하는 시인과 그 만남의 소중한 연(緣)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이처럼 한 편의 시 쓰기란, 자아와 끊임없는 갈등구조의 반복적 행위이기에 한 사람의 엄숙한 시인으로 그 자신이 독자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작품에 전념하는 행위라 못내 감응(感應)이 주어진다.
어디까지나 그 자신이 의욕적으로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시집 편집구성에서「제5부 달콤한 후회」는 비교적 시집의 기승전결의 대미를 응축하여 장식하는 일면이 결부(結付)된 낌새이기에 〈달콤한 후회〉를 다시금 옮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가뭄에 먼지가 폴폴거렸다/과거와 과거 사이의 다리를 건너/하현달처럼 굽은 그녀가/종일 미싱 페달을 밟고 돌아오는 밤/어깨 위로는 재차 이슬이 더듬거린다//
나무 잎살이 맥을 끊고/한 잎 한 잎 떨어져 흩날리는 갈색의/언덕길을 넘다 보면/검은 깻묵같이 압착된/어둠이 지배하는 서쪽 나라/시린 별 하나라도 새겨질까 몰라//
-〈달콤한 후회〉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 〈달콤한 후회〉에서 '시린 별 하나라도 새겨질까 모르는' 일말의 후회가 주어져도 일련의 연작 시편인 〈곽〉의 예시와 같이 "붉은 꽃비 쌓이도록/곽을 짠다,/젖은 팔베개에 얼룩진 그리움을 짠다/속눈썹에 소금꽃 피는 봄/아! 나의 봄은 곧 죽음의 절정/그 쓰라린 계절병 묻으려고 곽을 짠다.(곽. 1)"의 보기는 '나무와 나무들이 바람에 울고 필 것은 피고 또 질 것은 져야 한다.'라는 보기처럼 너무도 엄격하고 경건한 자연의 순리(順理) 일 따름이다.
각론하고 '하늘에는 〈무르익은 달〉, 지상에는 〈모래 지붕〉과 〈코스모스〉, 마음에는 '숱한 그리움의 꽃송이인 〈혼자〉'라는 그 예시처럼' 시적 대상물이나 질료를 그 자신은 '마음은 곧 시(詩)임'을 반증하는 그 상관물의 일체를 시적 동기부여의 매개로 삼아 적절하고 역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에서 지극히 합목적적이고도 견고한 성곽(城郭)처럼 상호보완적 공존의 양상으로 분류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주어질 것이다. 짐짓 또 하나의 전제(前提)는 '시의 색깔과 경향, 그리고 남다른 시의 틀짜기'에 잇닿는 그 자신의 시적 정조(情調)는 그 자신의 일관성에서 기인한 실험과 도전정신의 관계 층위로 더없이 유의미하다.
결론적으로 그 자신의 시적 해명이나 평가에 지나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특이성을 구체적으로 도식화하지 않았으나 이광희 시인이 삶의 현장에서 감지하고 체득한 대상의 물활론(物活論)을 심층적으로 수용한 시적 행위는 한순간 고조된 긴장감 뒤에 온전한 평상심을 지켜내는 일이기에 감동의 느낌표를 찍어야 한다. 비록 '사회가 썩어 문드러져 똥 밭에 나뒹굴지라도 시인은 눈부신 시의 꽃을 피워야 한다.'라는 영국의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시인의 소임〉을 다시 삶의 여지로 확정을 짓는다. 모쪼록 상생과 통섭의 차원에서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시키듯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시대적 소임의 엄숙한 수행을 위한 큰 틀에서 '민족의 역사요, 혼인 국어를 생명의 기표로 조탁(彫琢)'하되 존귀한 생명의 꽃으로 피워내는 지속적인 창조작업을 진정성 있게 요청할 따름이다.
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
- 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1. 언어결합과 그 감성적 매혹
모름지기 미국의 신비평가 랜섬(John Crowe Ransom)이 "시는 자연미의 표현이며, 상상이라는 훌륭한 기능이 시의 작인(作因)임"을 피력하였듯 모처럼 이광희 시인의 제 2시집『몽주루의 굽은 길』(모던포엠, 2022.12)의 간행에 앞서「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은 「언어 결합과 영성의 신비감」과 연계 맺어 분할·통합해도 거부감은 주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까닭에 그 자신의 문학성과 차별화는 상이하게도 푸른 생명의 언어로 직조된 전율 같은 가슴 떨림에 맞물려 있기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따뜻한 감성에 의한 신비성과 그 깊은 사유의 매혹(魅惑)은 묵언으로 응시하고 관조할 최소한 역할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이채롭게 서정성의 시학을 난해한 수사적 기법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의 역력함에 못내 가슴은 저릴 것이다. 또 한편 탈진(burn-out)된 의식세계를 모순된 언희(言戱)에 함몰(陷沒)되지 아니하고 개아(個我)의 차별화된 '육성과 체취, 그리고 느낌'마저 알맞은 정신 기후로 조성한 조건은 새삼 유의미하다. 일단 논의의 실체인 이광희 시인은 울산 태생으로 월간『모던포엠』신인상으로 시단에 데뷔한 이후에 첫 시집『이광희의 아름다운 유혹』을 묶어내었으며 현재 시와달빛문학회 회장의 중임을 맡고 있다.
차제에 그 자신의 시적 작위(作爲)도 그렇거니와 간행될 시집의 결(結) 고운 편집의 구도 처리는「제1부 몽주루의 굽은 길(13편), 제2부 구름에 가린 날(13편), 제3부 주전리 바다(14편), 제4부 콩 심는 날(13편), 제5부 달콤한 후회(14편)」로 적절한 분류 후 '(굽은) 길→(기린) 날→바다→(심는) 날→후회'로 객관적인 상관 층위는 총 67편이 형식상의 자유로움이 혼용되고 직조(織造)되어 '후회'의 보기처럼 공허한 틈새에 균형감을 지켜내고 있음은 지대한 관심사(關心事)다. 특히 평설의 모두(冒頭)에서 주지할 사항이라면, 몽주루(Montgeroult)는 파리 북쪽에 자리한 프랑스 중부지역이다. 한편 폴 세잔(Paul Cezanne)의 1898년 회화작품인「몽주루의 굽은 길(Turning Road at Montgeroult)」을 대하면 일순간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는 다이돌핀(didorphin) 효능을 접할 것이기에 이 같은 계기는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또 한편 그 자신이 피안의 세계를 내포한 공간대로 생명의 근원이자 동경의 세계를 향한 통로와 잇닿아 우주로 흘러가는 무한의 바다(海)를 비중 있게 형상화한 시편에서 '바다는 바다로 남으려고 몸에 소금까지 뿌리며 슬픔을 양육한다'와 같이 "살아남으라고 보낸/바다의 앙금,/사시사철 몸 안팎을 헤집어/소금꽃으로 피워낸다(우가포)"를 포함해 '바다의 언어'가 푸르다는 〈수평의 평정심〉도 그렇지만 표제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에서 시적 상상력이 확장된 언어의 그물망은 한층 더 이채롭다.
공중에 매달린 틸란드시아처럼/붙박일 곳 없는 익명의 길에서/고단한 나무의 졸음을 상상하는,/내 안의 1인실 문을 열고 나오는 풀 세잔//
일생을 홑이불처럼 깔고 갠 구름이/산 벼랑에 예고 없이 또 잠자리를 깔 때/한순간 실족해 굴러 떨어진/그 돌멩이들의 사연까진 알 수 없으나//
루즈한 붓끝에 쓸려가는 하구는/겹겹의 은빛 윤슬이 등허리 펴는 슘페터의 자리/원근법(遠近法)이 우울한 수평으로 일렁이는/몽주루의 굽은 길.//
-〈몽주루의 굽은 길〉에서
위에 인용한 폴 세잔의 회화인 〈몽주루의 굽은 길〉을 보다 구체적이고 관념적으로 형상화한 또 다른 일련의 예시인 "가슴에도 길이 나 있습니다/누군가 밟고 지나간 자리입니다(길. 1)"의 보기나 "비늘구름에 비늘 하나만 빠져도/하늘에는 상처입니다(길. 2)" 또 다른 "산에도 강에도 길은 있으나/언젠가는 그들도 손을 놓고/서로를 버릴 때가 온다.(길. 3)", "돌아가는 길에는 길 잃은 사람만/오보록이 그늘을 깔고 서 있다.(길. 4-정오의 그늘)"의 객관적 서사는 끝내 "나 역시 출렁이던 물결 그대로/마냥 가슴 적시며 서 있으련다//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를 다짐한 끝에 "피 묻은 발포 벽지가 끼어 있다/신음을 받아먹은 벽이 고요의 숨구멍을 찾는다(벽)"라는 일상의 습관을 반복하며 회귀하는 몸짓은 의연하다.
까닭에 지난 2020년『문학세계』4월호 〈기획특집〉에서 이광희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나의 문학관」 지면에서 그 자신이 "남모르는 금단(禁斷)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던 한낱 민초(民草)로서의 숨겨진 질곡의 삶에서부터 희망과 좌절, 절망에 이르는 질풍(疾風)의 삶에 이르기까지 저의 문학적 생애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눈여겨 봐주시면 감사하겠다."라는 술회(述懷)처럼 항상 비움과 방하착(放下著)의 시 심리로 겸허하되 강직한 자세로 충직한 독자 곁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서며 지친 어깨들 다독여주는 정신 작업의 종사자로서 치열한 무한경쟁으로 상대적 궁핍함에 고통받는 타자들에게 '꿈의 날개를 달아주며 심상(心傷)의 치유에 열중하는 행위'는 지극히 창조적인 영혼에 기인한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시집의 편집상 「제2부 구름에 가린 날」에 수록된 시편 중 "음계 없이 우는 바람 소리만/황갈의 비명 한 겹 내지르고/허허벌판으로 사라집니다//때늦은 이제야/바람의 말로 허공에 휘적여 놓은/슬픈 암호를 해독합니다, '이별' 뚜뚜뚜.(바람 소식)"의 보기도 그렇지만 "네모난 토굴에 구성지게 울리는/숨결 한 토막/생사의 도돌이표가 널을 뛰는 곳/모서리로 누울만한 원시인의 방 한 칸/흙벽에 외롭게 차오르는 슬픔 한 평.(칠흑의 맛)"의 정감이나 삶의 현주소의 편린(片鱗)인 시편 '궁벽한 유배지에서 보낸 밀서처럼 애정의 감염경로가 눈물이 된' "낙강과 동강이 서로 껴안고/흐느껴 우는 강/달빛도 넘지 못한 월영교에서/그댄 놓쳤지만/그리움 하나라도 잡았으니까(낙동강-그대 잘 계시는가)"를 통해 또 그렇게 감응(感應)되는 점이다.
2. 생명 기표의 적절성과 시적 관망
차제에 20세기 최고의 독일 시인으로 신비적 주제를 비중 있게 다룬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시는 체험이다."라고 지적하였듯 사유의 존재로 직립 보행하는 인간으로서 생명의 기표에 맞물린 영혼의 미세한 파동(波動)이 시적 상상력을 작동시켜주는 그 자신의 따뜻한 감성의 시편을 통해 이데아의 본질을 내포한 시어(詩語)의 한계성에서 시적 미감이 응축되어 존재감이 빛난다. 까닭에 그 자신의 시편에서 새삼 확증되듯이 '하늘에는 별, 지상에는 꽃'이라는 시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하되 칙칙한 어둠의 그늘과 불안의식을 말끔 걷어내려는 눈물겨운 정신 작업에 그 자신의 내면 인식이 명료함은 신선한 충격이다.
모름지기 예술사회학자인 하우저(Arnold Hauser)가 "작가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지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하였듯이 그나마 성숙된 개아(個我)의 정신적인 양상에 당혹감은 수용되지 아니한 점일 것이다. 따라서 삶의 공간에서 불멸의 시혼을 태우는 특정한 시인의 주체와 타는 개체의 차별성을 점차 무화시키며 융합과 상승의 역동성을 좌우하는 그 행태의 다양성은 짐짓 지켜볼 바다. 따라서 짐짓 위대한 정신 작업의 행위란 개인적인 창조 활동과 연관성을 맺지만 '특정한 자아가 현상에 대응하며 어떻게 생존하는가?'의 문제의식은 다각적인 시각에 조응함에 따라 그 명료성이 입증된다. 또 한편 최소한 그 자신이 몸소 한 사람의 지성인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생존하는 시간대와 공간에 관심을 지녀야 함은 당연한 처사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또 다른 시편인 "땅만 한 진실이 없다던 그분/논에 물을 대놓고 벼꽃같이/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시던 그분//마음의 골 따라 물 들어가네/흔들리고 출렁여도 뿌리만은 깊던,/그분 살아온 인생이/삽 한 자루의 농학 같네.(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1)"나 또는 "그저 마음이 새긴 금 따라/참회의 이랑을 내었다//눈물이랑 물길이랑/한꺼번에 빠져나갈 물꼬//임 가신 가슴 시린 봄날/흙 이불 두둑이 덮어주며(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2)"도 손금을 보듯 관심 있게 찬찬히 음미할 일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이 울먹울먹 울상인 날' 동해의 땅끝, 울산은 "얇아 터진 가슴은/짓무른 그리움을 뚝뚝 흘립니다/누굴까, 깊게 파고드는 쪽창窓밖의 그 사람.(구름에 가린 날)"의 초상(肖像)은 구름에 가리어 못내 아득할 따름이다.
어디까지나 영국의 스펜더(Spender)가 '기억력은 특정한 감각적 인상으로 시인의 천부적인 재능이며 상상력과 결부된다.'라고 지적하였듯 기억력은 단순히 정신적인 재현작업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생산된 창조적 기억의 변형으로 생명력을 지닌 예술작품이다. 비교적 각별한 전형철 평론가로부터 전해 듣기로 귀촌하여 텃밭을 가꾼다는 그 자신이 깊은 밤, 바람 앞에서도 신 앞에 드리는 절박한 기도는 '시처럼 맑은 영혼과 시에 대한 열정, 바로 끝없는 성찰'이기에 충격적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진동의 언어와 시적 환상은 또 하나의 매혹(魅惑)이다.
특히 화자인 그 자신이 생명의 본원(本源)인 바다(海)를 즐겨 대상으로 삼고, 비중 있게 시적으로 형사(形似)를 하는 문자적 양상에서 '어머니(m?re)의 마음은 바다(mer)와 같다.'라고 견주어지는 점에 비춰 "바다는 나의 어머니/늘 푸른 줄로만 알았던/서러운 가슴이다(바다)"의 보기에서나 또는 '호수와 강은 바다의 자녀이듯' "새벽이면 김을 내며 깨어나던 강/그 자리에 산모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서/저 홀로 생명을 잉태하고 흘러라(강물)"를 통해서 물의 신성함은 '바다=어머니'라는 함수관계의 맞물림에 의해 이처럼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 흔히 덧없는 삶이란 그 자체가 언젠가 이름 모를 낯선 항구에 닻을 내려야 할 운명적인 존재이듯 우주로 향해 열려 있는 '주전리 바다' 또한 "이제 몽돌의 피멍 위에다 대고/어떻게 살다 왔는지/묻지 않기로 하자//주름 많은 널 만나서/모난 내가 더어 잘아져야만/너그러워질 테니까.(주전리 바다)"라는 시적 변명 뒤에 "거긴 눈이 오는가/세상 사람들 발자국 찍히는가/하얗게 맑아지는 세상 사람들/눈꽃이 피었는가(남동해역南東海域)"라는 물음이 스스럼없이 제시되는 반면, '내 꿈은 어느새 당신 안에서 잠이 들었을지도 몰라도' "심장이 어깻죽지까지 뛰어오르는 동안/쏜살같이 지나가는 당신 앞에/성큼 다가서지 않으려고/더 이상 시들지 않으려고/저린 손바닥을 펴 본다(세월)"에서 지극한 자기 반응은 더없이 절대적이다.
여기서 개아적인 길 찾기로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일관성을 지니고 몰두하는 그 자신의 시적 행위는 감동의 회복을 관통할뿐더러 종종 신비한 은총으로 해명된다. 이처럼 분망한 삶의 일상에서 정신적 부산물로 형상화한 낯익은 시편들은 보다 엄격하게 유의미한 것으로 '적확, 격렬, 구체적, 복합적이다.' 또 한편 리듬과 형태를 갖추어 맑은 영혼의 울림을 조율하려고 저토록 본질적 고독 앞에서도 어디까지나 형식에 얽매임이나 구속됨 없이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특이하게 통연으로 처리된 그 자신의 시편에서 "나는 금을 넘어 태어났다 침 바른 문종이의 음산한 밤을, 육신의 금을 넘어서 아이가 되었다 첫울음이 사립문을 넘칠 무렵 아버지는 *긍굴을 치고 실에다 빨간 고추를 걸었다 아마 누나가 태어날 무렵에는 솔잎을 걸었으리라(금)"에서 전통적인 관습이나 금의 금기(禁忌)는 아직도 그 한계성이 지배적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상이하게도 "나는,/오래전 따뜻한 죽음으로 말아 올린/지붕 위에 다시 올라가/아직 속울음이 그치지 않은/억새 이엉을 엮어 올리려네(억새 지붕. 1)"의 보기를 통해 그처럼 명증되듯이 자유로움이 대조적인 연시 양식(樣式)인 〈새날 오는 밤〉의 시편에서 "비실비실 서 있던 나무들도 빛의 조용한 장례를 유언합니다 하지만 어른 아이 없이 빛이 들어오면 환호합니다 고요에 엎드린 푸석한 숲과 함께 밤샌 별들에게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새날 오는 밤, 파문과 고요는 해를 넘겨 아직 교섭 중입니다.(새날 오는 밤. 2)"도 그렇거니와 〈봄이 오는 역〉이나 또는 "물이 길의 끝에서 멈칫하다가/서로 헤어져 두 줄기 눈물처럼 흐르다가/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손을 잡고 흘러가는 걸 보면(모래섬)"에서와 같이 '눈물, 강, 바다'와 맞물린 물에 대한 시적 이미지는 투명하다. 모처럼 전통적인 정서와 때로는 전형적인 풍물을 다루되 '새로운 도식과 언어의 조합, 이미지의 연결, 어조의 복합성, 운율의 변화 등'을 통해 그 자신의 독자성을 끊임없이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진정성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격려를 보내는데 결단코 인색할 필요는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노을이 담을 넘어가/홍시처럼 뚝 떨어지고/사랑을 잃은 자리에/빨간 멍이 파란 멍이 들도록/그냥 놔두려는 것이다.(억새의 이별법)"에서 새삼 입증되듯 끝내 '원하는 이별을 해놓고도 돌아오는 길은 못내 더없이 서러워' 비장감이 묻어나지만 "빗나간 인연이 덜컹거리는 밤길/하염없이 서 있던 가로등도 목줄을 끊고/실밥 고른 자리/아침 햇살 돋는다.(솔기)"를 통해 '돋아나는 아침 햇살'에 의해 칙칙한 어둠의 그늘은 이처럼 말끔 씻겨내는 현상은 한결 이채롭다. 그렇다. 삶의 일상에서 타자를 적대시할 때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상호투시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대다수 정신 작업의 종사자들도 절감치 못하는 작금의 현상이다. 일반적인 정황에서 개인적인 그림자를 투시할 경우,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감사하게도 그 자신은 오랜 날 삶의 현장에서 체득하고 있다. 모처럼 깊은 밤 견고한 고독 앞에서 깊이 잠들지 못한 궁핍한 영혼을 위해 숨결도 죽여가며 "억새의 이별법이나 솔기"를 통한 타자 간의 배려에 관한 수용성은 지극히 놀랍다.
모처럼 그 자신이 극소수의 창조적인 정신 작업의 종사자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몸담은 공간과 시간대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지니고 있다. 까닭에 10여 년 전 한국을 다녀간 프란체스코 교황은 "항상 지도자란 대중 속에 머물며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되 넘어진 자의 손을 잡아주고, 삶의 좌표를 제시하는 자이다. 진정 살아있는 자만이 함께 춤추고 기뻐할 수 있다."라며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주었다. 이 같은 일면에서 그 자신이 삶의 여백을 통해 틈틈이 주위의 동료의 문인을 조건 없이 헤아리며 다독이는 사려 깊은 분별력과 공동체 인식(inter-being)으로 타자(他者)의 고뇌도 저토록 일체의 소홀함 없이 보듬어주는 소중한 역할 수행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응당 평가받아 마땅하다.
3. 자아 성찰의 일깨움과 시적 상상력
모름지기 유의미한 정신 작업은 노동을 통한 신선한 감동과 충격으로 '시적 치유의 효과가 허락되기'에「자아 성찰의 일깨움과 시적 상상력」은 시인의 자아 회복에 더없이 절실하다. 그 같은 측면에서 어두운 그늘이나 칙칙함이 말끔 씻겨나 자연 친화적인 생태가 생명외경의 모티프로 작동되는 시적 미감과 발화(發話)의 메타포(metaphor)는 그만의 한결같은 지극선(至極善)에 의해 "내년에도 벚꽃처럼/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라/눈물 나게 피어있어라.(천사의 꽃잎)"의 양상처럼 동질성이 끈질기게 관심과 매개물로 작동됨은 모처럼 심사숙고할 정황이다.
특히 서정시를 쓰기가 어렵고 자못 어설픈 시간대에서 이순을 갓 뛰어넘은 연륜에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비록 고뇌하며 열병을 앓을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은 한 시인의 자화상과 내면의식의 합일은 못내 다행스럽다. 무엇보다 그 자신에 엄격하되 주의집중으로 창작에 몰입하는 시인과 그 만남의 소중한 연(緣)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이처럼 한 편의 시 쓰기란, 자아와 끊임없는 갈등구조의 반복적 행위이기에 한 사람의 엄숙한 시인으로 그 자신이 독자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작품에 전념하는 행위라 못내 감응(感應)이 주어진다.
어디까지나 그 자신이 의욕적으로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시집 편집구성에서「제5부 달콤한 후회」는 비교적 시집의 기승전결의 대미를 응축하여 장식하는 일면이 결부(結付)된 낌새이기에 〈달콤한 후회〉를 다시금 옮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랜 가뭄에 먼지가 폴폴거렸다/과거와 과거 사이의 다리를 건너/하현달처럼 굽은 그녀가/종일 미싱 페달을 밟고 돌아오는 밤/어깨 위로는 재차 이슬이 더듬거린다//
나무 잎살이 맥을 끊고/한 잎 한 잎 떨어져 흩날리는 갈색의/언덕길을 넘다 보면/검은 깻묵같이 압착된/어둠이 지배하는 서쪽 나라/시린 별 하나라도 새겨질까 몰라//
-〈달콤한 후회〉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 〈달콤한 후회〉에서 '시린 별 하나라도 새겨질까 모르는' 일말의 후회가 주어져도 일련의 연작 시편인 〈곽〉의 예시와 같이 "붉은 꽃비 쌓이도록/곽을 짠다,/젖은 팔베개에 얼룩진 그리움을 짠다/속눈썹에 소금꽃 피는 봄/아! 나의 봄은 곧 죽음의 절정/그 쓰라린 계절병 묻으려고 곽을 짠다.(곽. 1)"의 보기는 '나무와 나무들이 바람에 울고 필 것은 피고 또 질 것은 져야 한다.'라는 보기처럼 너무도 엄격하고 경건한 자연의 순리(順理) 일 따름이다.
각론하고 '하늘에는 〈무르익은 달〉, 지상에는 〈모래 지붕〉과 〈코스모스〉, 마음에는 '숱한 그리움의 꽃송이인 〈혼자〉'라는 그 예시처럼' 시적 대상물이나 질료를 그 자신은 '마음은 곧 시(詩)임'을 반증하는 그 상관물의 일체를 시적 동기부여의 매개로 삼아 적절하고 역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에서 지극히 합목적적이고도 견고한 성곽(城郭)처럼 상호보완적 공존의 양상으로 분류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주어질 것이다. 짐짓 또 하나의 전제(前提)는 '시의 색깔과 경향, 그리고 남다른 시의 틀짜기'에 잇닿는 그 자신의 시적 정조(情調)는 그 자신의 일관성에서 기인한 실험과 도전정신의 관계 층위로 더없이 유의미하다.
결론적으로 그 자신의 시적 해명이나 평가에 지나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특이성을 구체적으로 도식화하지 않았으나 이광희 시인이 삶의 현장에서 감지하고 체득한 대상의 물활론(物活論)을 심층적으로 수용한 시적 행위는 한순간 고조된 긴장감 뒤에 온전한 평상심을 지켜내는 일이기에 감동의 느낌표를 찍어야 한다. 비록 '사회가 썩어 문드러져 똥 밭에 나뒹굴지라도 시인은 눈부신 시의 꽃을 피워야 한다.'라는 영국의 사회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시인의 소임〉을 다시 삶의 여지로 확정을 짓는다. 모쪼록 상생과 통섭의 차원에서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시키듯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시대적 소임의 엄숙한 수행을 위한 큰 틀에서 '민족의 역사요, 혼인 국어를 생명의 기표로 조탁(彫琢)'하되 존귀한 생명의 꽃으로 피워내는 지속적인 창조작업을 진정성 있게 요청할 따름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 3
제 1 부
몽주루의 굽은 길
우가포 ● 10
누운 나무 ● 12
수평의 평정심 ● 14
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 ● 15
잎갈나무 ● 16
몽주루의 굽은 길 ● 18
길. 1 ● 20
길. 2 ● 21
길. 3 ● 23
길. 4 - 정오의 그늘 ● 24
벽 ● 25
갈대. 1 ● 27
갈대. 2 ● 28
제 2 부
구름에 가린 날
돋보기 ● 30
친구 빚 ● 32
바람 소식 ● 34
구름에 가린 날 ● 35
칠흑의 맛 ● 36
낙동강 - 그대 잘 계시는가 ● 38
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1 ● 40
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2 ● 41
산은 마침내 거울이 되어 - 백기완 선생 영전에 ● 42
당신께 커피 한 잔 보냅니다 ● 44
비 맛 ● 46
바다 ● 47
강물 ● 48
제 3 부
주전리 바다
주전리 바다 ● 52
꽃자리 ● 53
축산항 산조散調 ● 54
남동해역南東海域 ● 56
낙엽이 초록에게 ● 58
쪽파 파종 ● 60
세월 ● 62
달. 1 ● 64
달. 2 ● 66
봄비 젖는 홍매화 ● 67
금 ● 68
억새 지붕. 1 ● 70
억새 지붕. 2 ● 72
침몰 ● 74
제 4 부
콩 심는 날
새날 오는 밤. 1 ● 76
새날 오는 밤. 2 ● 77
새날 오는 밤. 3 ● 78
바늘귀 ● 80
봄이 오는 역 ● 82
콩 심는 날 ● 84
미포항 ● 85
모래섬 ● 86
새해 ● 88
억새의 이별법 ● 90
활자 ● 92
솔기 ● 94
높이 나는 새 ● 96
제 5 부
달콤한 후회
명함 ● 98
할아버지 ● 99
재봉틀 ● 100
달콤한 후회 ● 102
고추잠자리 ● 104
곽. 1 ● 106
곽. 2 ● 108
곽. 3 ● 110
모래 ● 111
천사의 꽃잎 ● 112
모래 지붕 ● 114
무르익은 달 ● 116
코스모스 ● 118
혼자 ● 119
l 시집평설
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
- 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 ● 121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제 1 부
몽주루의 굽은 길
우가포 ● 10
누운 나무 ● 12
수평의 평정심 ● 14
나, 아직 여기에 있으련다 ● 15
잎갈나무 ● 16
몽주루의 굽은 길 ● 18
길. 1 ● 20
길. 2 ● 21
길. 3 ● 23
길. 4 - 정오의 그늘 ● 24
벽 ● 25
갈대. 1 ● 27
갈대. 2 ● 28
제 2 부
구름에 가린 날
돋보기 ● 30
친구 빚 ● 32
바람 소식 ● 34
구름에 가린 날 ● 35
칠흑의 맛 ● 36
낙동강 - 그대 잘 계시는가 ● 38
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1 ● 40
삽 한 자루의 농학農學. 2 ● 41
산은 마침내 거울이 되어 - 백기완 선생 영전에 ● 42
당신께 커피 한 잔 보냅니다 ● 44
비 맛 ● 46
바다 ● 47
강물 ● 48
제 3 부
주전리 바다
주전리 바다 ● 52
꽃자리 ● 53
축산항 산조散調 ● 54
남동해역南東海域 ● 56
낙엽이 초록에게 ● 58
쪽파 파종 ● 60
세월 ● 62
달. 1 ● 64
달. 2 ● 66
봄비 젖는 홍매화 ● 67
금 ● 68
억새 지붕. 1 ● 70
억새 지붕. 2 ● 72
침몰 ● 74
제 4 부
콩 심는 날
새날 오는 밤. 1 ● 76
새날 오는 밤. 2 ● 77
새날 오는 밤. 3 ● 78
바늘귀 ● 80
봄이 오는 역 ● 82
콩 심는 날 ● 84
미포항 ● 85
모래섬 ● 86
새해 ● 88
억새의 이별법 ● 90
활자 ● 92
솔기 ● 94
높이 나는 새 ● 96
제 5 부
달콤한 후회
명함 ● 98
할아버지 ● 99
재봉틀 ● 100
달콤한 후회 ● 102
고추잠자리 ● 104
곽. 1 ● 106
곽. 2 ● 108
곽. 3 ● 110
모래 ● 111
천사의 꽃잎 ● 112
모래 지붕 ● 114
무르익은 달 ● 116
코스모스 ● 118
혼자 ● 119
l 시집평설
시적 경이로움과 자아 성찰의 교감(交感)
- 이광희 시인, 『몽주루의 굽은 길』과 통시적 고찰 ● 121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저자
저자
이광희
울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
월간 《모던포엠》신인문학상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시와달빛문학작가회 회장
울산북구문학회 회원
울산고래문학회 회원
《문학세계》문화예술 대상
올해를 빛낸 시인 선정(2019~2021)
[시집]
《이광희의 아름다운 유혹》
《몽주루의 굽은 길》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
월간 《모던포엠》신인문학상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시와달빛문학작가회 회장
울산북구문학회 회원
울산고래문학회 회원
《문학세계》문화예술 대상
올해를 빛낸 시인 선정(2019~2021)
[시집]
《이광희의 아름다운 유혹》
《몽주루의 굽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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