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륜 조흥동 자서전(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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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륜 조흥동 춤 80년 기념 자서전 출간!
원로 무용가가 바라본 한국 춤의 ‘리얼한’ 현대사!
ㆍ 힘 있게 내딛는 외씨버선, 날개처럼 휘날리는 도포 자락. 원로 춤꾼 조흥동의 ‘한량무’엔 고고한 선비의 기개가 서려 있다.
ㆍ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겸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 조흥동의 춤 인생 80년을 기념하는 자서전이 출간됐다.
ㆍ 조흥동 명무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국내 현대 무용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살아 숨쉬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무용계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민들의 삶도 생생한 목소리로 녹아있다.
ㆍ 지금은 남성춤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의 학창시절엔 ‘춤추는 남자’라는 천대와 놀림이 만연했다. 네 명의 누이 뒤로 태어난 외아들은, 춤을 춘다면 뒤로 넘어가실 부모님 모습이 두려워 공부하러 가는 척 무용연구소에 다녔다고 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체육무용과에 몰래 입학하기까지 했다.
ㆍ 내성적인 성격에 엉뚱함은 충만했다. 인민군이 내려와 마을을 뒤질 땐 ‘빨갱이’라 불리는 그들의 얼굴색이 자신과 같다는 것이 참 이상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6·25 전쟁 당시였는데, 다니던 초등학교는 미군의 막사로 비워주고 이곳 저곳의 나무 아래서 수업을 들었다. 요란한 비행기 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가 울리면 풍비박산이 되어 숨었다가 경보가 해제되면 모여들어 수업을 이어갔다.
ㆍ 당시만해도 해외 공연을 갈 땐 출연진 여권을 예술단 단장이 한곳에 모아서 보관했다. 해외를 오가는 일이 그만큼 통제되던 시절이라 얼굴을 확인할 때만 자기 여권을 만져볼 수 있었다.
ㆍ 그 외 국립무용단 늦깍이 단원으로 입단해 예술감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경기도무용단 역사상 최장 기간 예술감독을 지내다 예술원 회원이 된 비화 등을 담았다. 명무의 일생과 평범한 노인의 삶이 함께 녹아있다.
원로 무용가가 바라본 한국 춤의 ‘리얼한’ 현대사!
ㆍ 힘 있게 내딛는 외씨버선, 날개처럼 휘날리는 도포 자락. 원로 춤꾼 조흥동의 ‘한량무’엔 고고한 선비의 기개가 서려 있다.
ㆍ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겸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 조흥동의 춤 인생 80년을 기념하는 자서전이 출간됐다.
ㆍ 조흥동 명무의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국내 현대 무용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살아 숨쉬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무용계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민들의 삶도 생생한 목소리로 녹아있다.
ㆍ 지금은 남성춤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의 학창시절엔 ‘춤추는 남자’라는 천대와 놀림이 만연했다. 네 명의 누이 뒤로 태어난 외아들은, 춤을 춘다면 뒤로 넘어가실 부모님 모습이 두려워 공부하러 가는 척 무용연구소에 다녔다고 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체육무용과에 몰래 입학하기까지 했다.
ㆍ 내성적인 성격에 엉뚱함은 충만했다. 인민군이 내려와 마을을 뒤질 땐 ‘빨갱이’라 불리는 그들의 얼굴색이 자신과 같다는 것이 참 이상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6·25 전쟁 당시였는데, 다니던 초등학교는 미군의 막사로 비워주고 이곳 저곳의 나무 아래서 수업을 들었다. 요란한 비행기 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가 울리면 풍비박산이 되어 숨었다가 경보가 해제되면 모여들어 수업을 이어갔다.
ㆍ 당시만해도 해외 공연을 갈 땐 출연진 여권을 예술단 단장이 한곳에 모아서 보관했다. 해외를 오가는 일이 그만큼 통제되던 시절이라 얼굴을 확인할 때만 자기 여권을 만져볼 수 있었다.
ㆍ 그 외 국립무용단 늦깍이 단원으로 입단해 예술감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경기도무용단 역사상 최장 기간 예술감독을 지내다 예술원 회원이 된 비화 등을 담았다. 명무의 일생과 평범한 노인의 삶이 함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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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1장. 춤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어린 시절의 기억: 6.25 전쟁과 춤
경동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과 군 생활
2장. '엘리트 남성 무용가'로 주목을 받다
동남아 순회공연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 후의 무용 발표회
결혼과 사당동 예술인마을 입성
연구소 개설과 후진 양성
최초의 동인단체 학림회
한국남성무용단 창단 그리고 조흥동류 한량무 '회상'
가지 않은 무용평론가의 길
3장. 국립무용단 그리고 초기의 대작
입단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맥(脈)'
지도위원이 되다: '젊은 날의 초상', '대(代)', '신(神)'
국립무용단 최초의 상임안무가: '흙의 울음', '강강술래'
초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으로: '환', '무천의 아침' 그리고 '남성 태평무'
장충동 단장실 그리고 작은딸과의 이별
4장.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춤의 해를 이끌며
세기말·세기초의 무용계와 무용행정가의 삶
5장. 경기도무용단 그리고 후기의 대작
서울예술단 이후 경기도무용단으로: '김삿갓', '비나리98'
경기도무용단 예술감독으로 15년, 그 기점에서: '황진이', '연인'
호평 그리고 예술감독 재임: '꿈, 꿈이었으니', '봉수당진찬례와 우리춤의 맥'
장기 순회공연의 새 역사를 쓰다: '태권무무 달하', '천년의 유산'
6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로
은관문화훈장 그리고: '향연', '무원'
춤 80년 집약한 '조흥동 춤의 세계'
부록
무용인 조흥동 어머니 김음성 여사 -김태선 편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1999) 중에서
고전정신이 살아있는 조흥동의 춤판 -서연호, 『댄스포럼』(2021년 4월호)
월륜 조흥동 약력
월륜 조흥동 연보
어린 시절의 기억: 6.25 전쟁과 춤
경동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과 군 생활
2장. '엘리트 남성 무용가'로 주목을 받다
동남아 순회공연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 후의 무용 발표회
결혼과 사당동 예술인마을 입성
연구소 개설과 후진 양성
최초의 동인단체 학림회
한국남성무용단 창단 그리고 조흥동류 한량무 '회상'
가지 않은 무용평론가의 길
3장. 국립무용단 그리고 초기의 대작
입단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맥(脈)'
지도위원이 되다: '젊은 날의 초상', '대(代)', '신(神)'
국립무용단 최초의 상임안무가: '흙의 울음', '강강술래'
초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으로: '환', '무천의 아침' 그리고 '남성 태평무'
장충동 단장실 그리고 작은딸과의 이별
4장.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춤의 해를 이끌며
세기말·세기초의 무용계와 무용행정가의 삶
5장. 경기도무용단 그리고 후기의 대작
서울예술단 이후 경기도무용단으로: '김삿갓', '비나리98'
경기도무용단 예술감독으로 15년, 그 기점에서: '황진이', '연인'
호평 그리고 예술감독 재임: '꿈, 꿈이었으니', '봉수당진찬례와 우리춤의 맥'
장기 순회공연의 새 역사를 쓰다: '태권무무 달하', '천년의 유산'
6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로
은관문화훈장 그리고: '향연', '무원'
춤 80년 집약한 '조흥동 춤의 세계'
부록
무용인 조흥동 어머니 김음성 여사 -김태선 편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1999) 중에서
고전정신이 살아있는 조흥동의 춤판 -서연호, 『댄스포럼』(2021년 4월호)
월륜 조흥동 약력
월륜 조흥동 연보
저자
저자
조흥동
趙興東, 1941-)
조흥동은 음력 1941년 4월 21일 경기도 이천시 효양산 남쪽 기슭 아래 초가집에서 부친 조태환, 모친 김음성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씨 집성촌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천석꾼 집안이다. 조흥동은 어릴 적부터 누님의 치마저고리를 꺼내입고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경기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며 지냈다. 그의 끼를 알아본 동네 아저씨들에게 춤을 배워 걸립패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아홉 살. 열네 살에 서울 유학길에 올라서는 부모님 몰래 정식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수많은 한국춤의 대가들을 사사했다.
조흥동은 국립무용단 초대 상임안무자(1990-1992)를 거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및 단장(1993-1994)을 지냈다.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1997-1998), 경기도무용단 최장기 예술감독(2000-2014)을 역임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1991-2005)이 되어 14년간 행정가 역할을 병행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문화상'(1992), '옥관문화훈장'(2002), '이천시 문화상'(2003), '은관문화훈장'(2014)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2003-현재),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보유자(2014-현재)로서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조흥동은 음력 1941년 4월 21일 경기도 이천시 효양산 남쪽 기슭 아래 초가집에서 부친 조태환, 모친 김음성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씨 집성촌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천석꾼 집안이다. 조흥동은 어릴 적부터 누님의 치마저고리를 꺼내입고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경기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며 지냈다. 그의 끼를 알아본 동네 아저씨들에게 춤을 배워 걸립패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아홉 살. 열네 살에 서울 유학길에 올라서는 부모님 몰래 정식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수많은 한국춤의 대가들을 사사했다.
조흥동은 국립무용단 초대 상임안무자(1990-1992)를 거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및 단장(1993-1994)을 지냈다.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1997-1998), 경기도무용단 최장기 예술감독(2000-2014)을 역임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1991-2005)이 되어 14년간 행정가 역할을 병행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문화상'(1992), '옥관문화훈장'(2002), '이천시 문화상'(2003), '은관문화훈장'(2014)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2003-현재),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보유자(2014-현재)로서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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