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에서 온 엽서(시와편견 기획시선 13)
박해영 시집
Regular price
$13.48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이 시는 상승의 이미지다. 이것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끓어올라야 하는 시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밥이 될 수도 있고 죽이 될 수도 있다. 일상의 삶에서 ‘증기를 배출’하는 것과 같이 분노하는 날도 있으며, 인고의 날도 있다. 이러한 부침의 세월을 겪어야만 진정한 ‘밥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밥은 삶의 개인적 상징이다.
어느 누구든 평탄한 삶이 있으련마는 「전기밥솥」에서 보여주는 삶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부분이다. 다만 박해영 시인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을 뿐, 이것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생활을 노래한 시다. 시상의 전개가 일상의 대화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적 삶을 미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통화」는 전화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친정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자아가 드러내는 동일한 모정의 수평적 이미지를 노래한 시다. ‘엄마의 엄마’와 ‘엄마’는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일 뿐, 진정 그들이 품고 있는 모정은 황금보다 더 귀하고 모루(anvil)보다 더 단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한 「통화」는 아내와 친정엄마 중에 누구는 높은 위치에 있고, 누구는 낮은 자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두 엄마는 등가의 개념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든 평탄한 삶이 있으련마는 「전기밥솥」에서 보여주는 삶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부분이다. 다만 박해영 시인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을 뿐, 이것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생활을 노래한 시다. 시상의 전개가 일상의 대화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적 삶을 미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통화」는 전화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친정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자아가 드러내는 동일한 모정의 수평적 이미지를 노래한 시다. ‘엄마의 엄마’와 ‘엄마’는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일 뿐, 진정 그들이 품고 있는 모정은 황금보다 더 귀하고 모루(anvil)보다 더 단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한 「통화」는 아내와 친정엄마 중에 누구는 높은 위치에 있고, 누구는 낮은 자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두 엄마는 등가의 개념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책속으로] 이어서
이 시는 상승의 이미지다. 이것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끓어올라야 하는 시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밥이 될 수도 있고 죽이 될 수도 있다. 일상의 삶에서 '증기를 배출'하는 것과 같이 분노하는 날도 있으며, 인고의 날도 있다. 이러한 부침의 세월을 겪어야만 진정한 '밥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밥은 삶의 개인적 상징이다.
어느 누구든 평탄한 삶이 있으련마는 「전기밥솥」에서 보여주는 삶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부분이다. 다만 박해영 시인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을 뿐, 이것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생활을 노래한 시다. 시상의 전개가 일상의 대화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적 삶을 미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통화」는 전화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친정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자아가 드러내는 동일한 모정의 수평적 이미지를 노래한 시다. '엄마의 엄마'와 '엄마'는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일 뿐, 진정 그들이 품고 있는 모정은 황금보다 더 귀하고 모루(anvil)보다 더 단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한 「통화」는 아내와 친정엄마 중에 누구는 높은 위치에 있고, 누구는 낮은 자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두 엄마는 등가의 개념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Ⅲ. 이동-서술적 이미지
시기 지향하는 의미, 즉 시적 대상을 이미지로 처리하게 되면 그 표현은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모든 생명체의 시작과 종말을 이동의 이미지라는 수단으로 신선하게 강조한다. 이동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두 여정」, 「집으로 가는 길2」, 「개불알꽃」, 「남향집」, 「화림동 계곡」, 「통화」, 「이사」, 「소나무 1」, 「물소리」, 「안개 그리고 신작로」, 「대금 산조2」, 「가을산」, 「하모니카」, 「명왕성에서 온 엽서」, 「달밤」, 「동행」, 「가출」 등이다. 이 중에서 이동의 이미지를 시적 장치로 서용한 작품을 예시로 삼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짐승은 죽으면
하늘로 가지 않고 산이 되어
산자락에 사람들 품고 기르라는
특명을 받나보다
온갖 짐승들이 지켜주는
산마을 굽이굽이
같은 버스를 탄 할매 할배가 정겹다
-「집으로 가는 길2」 일부
앞의 「집으로 가는 길 2」에서 '죽음', '하늘', '산', '사람', '할매', '할배' 등의 시어가 사용되었다. 이런 시어들은 '종착'의 의미를 지닌 '소멸'의 상징이다. 그러나 박해영 시인이 사유하는 '소멸'은 절대부정의 뜻이 아니라 점이다. 다시 말해서 '소멸'을 '집으로 가는 길'로 치환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외연적으로 「집으로 가는 길2」를 감상하면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단순한 풍경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는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사실적 광경내지 풍경을 서술적으로 나타내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현대가 요구하는 '감추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면서 감추라'는 시작법(詩作法)에 따라 '소멸'의 의미를 「집으로 가는 길2」에서 아름다운 죽음의 의미를 시에 육화(肉化)한 것이다
위의 「집으로 가는 길2」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 '짐승은 죽으면/하늘로 가지 않고 산이 되어'에서 이 표현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수용불가의 의미가 아니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윤회의 의미다. 불가에서 말하는 49제는 망자가 49일째가 되는 날, 새로운(좋은) 생명체로 다시 환생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일주일 단위로 일곱 번(7일×7회=49제)의 제사를 지내는 기원제의 일종이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이 소멸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유로 말미암아 '산마을 굽이굽이/같은 버스를 탄 할매ㆍ할배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마냥 '정겹다'고 표현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의 시적 사유가 매우 긍정적이고 유월의 신록 같다는 점을 들어 시집 속 시편들의 정서가 대부분 밝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 기인한다.
등이 기역자로 굽은 할매가
길을 갑니다
인도도 따로 없는 신작로를 따라
네 발 보행기를 밀며 가는
어슴푸레한 새벽길은 길고 멉니다
영감은 저승길로 가고
자식들은 고속도로 따라 떠나고
할매는 혼자 밭으로 나갑니다
꽃분이 시절 하품하며 걷던 길을
꼬부랑 할매가 되어서도 걷고 있습니다
밭에 가면 영감도 있고
밭에 가면 새끼들도 다 거기 있습니다
할매의 전 생애가 다 밭에 있습니다
하여 할매는 오늘도 밭으로 나갑니다
찬밥 한 술 뜨고
호미 한 자루 굽은 허리춤에 차고
네 발 보행기를 재촉하여 새벽길 나섭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안개 그리고 신작로」 전문
박해영 시인의 '시작'과 '종착'의 이동이미지는 「안개 그리고 신작로」에서는 극점을 이룬다. 예시의 「안개 그리고 신작로」는 총 1연 18행의 구조를 가진 시이다. 전형적인 자유형식의 시로서 전체 18행중에서 물경 11행이 이동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2행의 '길을 갑니다', 4행의 '가는', 6행의 '가고', 7행의 '떠나고', 8행의 '나갑니다', 9행과 10행의 '걷던', 11행과 12행의 '가면', 그리고 14행의 '나갑니다'와 17행의 '나섭니다'가 해당된다.
특히 이 시에서 두드러진 이미지는 수평적 이미지로 '入'의 의미가 아니라 '出'의 의미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집으로 가는 길2」는 '出'의 의미를 가진 시로 이것은 다시 '등이 기역자로 굽은 할매가/길을'을 가는 것은 '밭에 가면 영감도 있고/밭에 가면 새끼들도 다 거기 있'는 '만남'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길을 나서는 대상이 할매와 할배가 아니다. 가령 '꽃분이 시절 하품하며 걷던 길을/꼬부랑 할매가 되어서도 걷고 있'는 이 길은 인간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박해영 시인이 단순히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정을 노래한 것이다.
먼 길을 가고 있다
귓전에 느껴지는
서로의 숨소리에
몸을 맡기며
너도 없고
나도 없는
흙으로 가는 여정
낙엽더미가 따뜻하다
-「동행」 하반부
앞의 「동행」에서도 '出'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집으로 가는 길2」가 '나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따스한 이미지의 시라면, 「동행」은 '먼 길을 가고 있다/귓전에 느껴지는/서로의 숨소리에/몸을 맡기며/너도 없고/나도 없는/흙으로 가는 여정'으로 매우 서늘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다가 결론 부분에서 '낙엽더미가 따뜻하다'는 표현으로 불안한 심리를 상쇄하는 극적(dramatic)인 반전효과를 보여준다.
시의 이미지는 시적 장지 중의 하나다. 표현된 감각에 의해 감각적으로 환기되는 영상을 말한다. 첨언하면 시적 화자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영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생긴 상(像)이라는 뜻에서 심상(心象)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설명이나 묘사에 의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사물(시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거나 감각적 수식어를 통해 사물의 영상을 직접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 있으며, 직유법이나 은유법, 의인법 등의 비유를 통해 사물의 영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 즉 시적 대상에 대해 비유를 통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또 구체적인 사물이 다른 사물, 즉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을 대신하는 상징적 표현에 의해 사물의 영상이 나타내게 하는 상징에 의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박해영 시인은 설명이나 묘사에 의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방법을 취한다. 부연하면 설명에 의해 대상을 드러내거나 의미를 강조한다. 즉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심리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가 기존의 어떤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미지와 모방적 개념의 이미지였다면, 그것에 반하여 서술적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러하듯 박해영 시인은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편들이 대체적으로 난해성을 피해간다. 이것은 독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의 원동력이 되며, 자신의 시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시의 이미지는 객관적 대상의 재현도 아니며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도 아니며 실체 그 자체여야 한다는 뚜렷한 자기 이론을 견지한다.
Ⅳ. 화해와 접촉 이미지
박해영 시인이 주로 사용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어떤 관념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이미지가 아니다. 본래적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해 동원되는 이미지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단면으로 보는 것과 같이 이미지는 이미지를 보이는 것으로 끝날 뿐이라는 것으로 다른 사물을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의 서술적 이미지는 그 시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줄 의미를 서술적으로 그려낸다. 이 같은 방법에 의해 시 쓰기가 이루어진 시들이 「여름나기」, 「접촉」, 「산길을 걷다가」, 「손전등」, 「새 바지」, 「10센티」, 「용접」, 「왔다 갔다」, 「사랑법」, 「연꽃」, 「등받이」, 「신발」 등이다.
입맞춤하니
땅이 열렸고
땅 위로 움이 돋았고
땡볕 속에서
죽을 동 살 동
시퍼렇게
견뎌내고 있다
입맞춤 한 번에
-「여름나기」 전문
박해영 시인은 '접촉'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확장시킨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요소는 '입맞춤'이다. 굳이 비유하거나 상징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문의 '입맞춤하니/땅이 열렸고/땅 위로 움이 돋았'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은 대상을 서술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입맞춤'이라는 접촉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발전된다. 「여름나기」의 '입맞춤'은 햇살이 될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고, 새로운, 그리고 환희의 세상이 열리려면 누구가의 손길이 필요하며, 그런 입맞춤이 절대적인 것이다. 꽃이 피려면 빗방울을 만나야 하고,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아름다운 율동을 보이려면 빙판이라는 장소와 접촉하여야만 예술적 가치를 현현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박해영 시인은 시적 대상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그것을 다시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동화(同化)의 방법이나 시적화자 자신을 상상적으로 대상(세계)에 투사(投射)하여 자아와 세계가 하나로 일체감을 이루도록 하는 투사(投射)의 방법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박해영 시인은 '시퍼렇게/견뎌내고 있다/입맞춤 한 번에'라는 표현처럼 외부 세계의 충격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치환하여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갖게 하는 능동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이 적용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시인이 무엇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검열에서 출발한다.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면 그로 인해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자유스럽다는 것은 곧 자신의 구속이며, 그 구속이 경직성을 낳고 그 경직성이 고착화될 때 대상을 왜곡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소위 현대의 서술형의 시는 시어를 선택의 원리보다 배열의 원리를 추구하며 쓰는 행위가 다수를 이룬다. 그러므로 문맥은 언어 선택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으며, 문맥을 형성하는 것은 언어 배열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이 취하는 시작(詩作)의 기본원리 중에 하나가 시는 낱말들이 유기적 관계로 짜인 구조이므로 문맥에 따라 시어가 선택된다는 것을 시작(詩作)의 기본으로 삼는다.
박해영 시인은 세계와 자아가 접촉을 통하여 동일화(同一化)를 이루어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시세계로 종결짓고 있다. 이렇게 시를 쓰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하면서도 높은 발상의 차원을 드러낸다. 다음의 작품에서도 박해영 시인이 모색하는 접촉의 의미를 서술적 이미지로 시의 구조를 짜는 것을 볼 수 있다.
썩은 나무 등걸을 만났다
허리가 부러져 물 위에 드리운 채
늙고 삭아가는 제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팔자 사나운 고목을 만났다
...?중략〉...
가지가 내려앉는 바람에
박새들 놀라 날아가고
속없는 풀씨들이 날아와
썩은 등걸에 푸른 잎을 피웠다
-「산길을 걷다가」 일부
접촉의 이미지는 서정시 특성의 원리 중에 동화나 투사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박해영 시인은 「산길을 걷다가」도 「여름나기」와 같이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상황을 서술적으로 드러낸다. 또 1행의 '등걸을 만났다'의 표현도, 5행의 '고목을 만났다'는 것도, 10행의 '가지가 내려앉는' 접촉도, 또 이미 앉아 있던 '박새들 놀라 날아가'는 것은 접촉의 행위라는 선행이 있어, '썩은 등걸에 푸른 잎을 피웠다'는 상생과 화해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귀결 지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편만으로도 박해영 시인의 시세계가 대립적이거나 이원화의 양상을 띠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박해영 시인은 존 듀이가 지적한 대로 자아와 세계가 각기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승화되었을 때 미적 체험이 된다는 차원으로 시를 쓴다.
앞의 「산길을 걷다가」와 「여름나기」 외에도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화해의 세계를 모색하는 시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상징이나 비유의 형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인식이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고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 점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그 한 뼘만 녹였더라면/그대 품에 안고/그대 흐르는 눈물에 입 맞출 수 있었는데'(「10센티」 일부)의 '입맞춤'의 접촉이나 '그녀를 용접하고 있다/사내의 허공에/불똥 가멸다'(「용접」 일부)에서 두 개의 사물을 하나로 만드는 '용접'의 의미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뜨거움으로 하나가 되는 화해의 시정신이며, '나무는/새가 찾아오면/푸른 가슴을 열어주고/새가 날아가면/우수수 푸른 손을 흔들어 준다'(「사랑법」 일부)에서 나뭇가지에 앉은 '접촉'의 행위에서 '날아'가는 '이탈'의 행위도 그 출발은 접촉에 있으며, 박해영 시인의 그런 화해의 시정신은 '접촉'에서 '이탈'로 이루어져도 시적화자는 '푸른 손을 흔들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등 뒤에서/내 허약한 나날들 떠받치다/낡고 병들어/어느 날 툭 떨어지고 만 등받이'(「등받이」 일부)를 통해서도 자신을 세계에 투사하는 것, 곧 감정이입에 의해서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이루도록 하는 투사와 시인이 세계를 자기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이른바 세계의 자아화를 실현하고 있다. 박해영 시인의 실제의 세계는 자아와 대립하지만 상상 속의 그것은 자아화하여 동일성의 관계에 놓이게 한다. 그래서 시세계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다.
Ⅴ. 성찰의 이미지
박해영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는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이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와 수평적 이미지, 이동에서 찾아낸 시적 의미를 서술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화해하는 접촉 이미지 등으로 자신만의 시적 이미지를 자리매김해 왔다. 앞서 언급한 이외의 많은 작품에서도 소멸을 내세운 성찰의 이미지를 견고히 했다. 그러나 지면상 한계로 성찰의 시를 시해설에 포함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생각에 후반부에서 다루고자 했다.
여러 시인들이 작품 중에 성찰의 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낮은 자세로 시를 쓰라는 시적 태도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찰의 시는 시인이 자기 잘못을 성찰하는 반성문이 아니다. 그 성찰에는 개연성과 보편성이 공존할 때 비로소 시를 읽는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개인의 직ㆍ간접적인 체험이나 그 체험 위에 시인의 상상력을 얹혀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해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에도 시인이 성찰의 모습을 보이는 시가 다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시해설에 마땅히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단에서 몇 편의 시를 예시로 삼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찰하는 시에 해당되는 시작품들을 보면 「앳동백」, 「배추의 겨울」, 「설거지 신공」, 「절3」, 「발효」, 「10센티」, 「무덤」, 「돌발 사태」, 「버무리다 버무려지다」, 「전봇대」 등이다. 물론 이외에도 성찰의 내용이 담긴 시들이 많이 있으나 특별히 대표적인 시편만을 선택하여 소개한 것이다.
아서라/그렇게 혼자/방심을 키웠다가/우짤라고 그라노//
말아라/그렇게 전부/생애를 걸었다가/우얄라꼬 그라노//
사랑은 그라는 기 아이다/니 맴 내 모르는 기 아이지만/
쬐매만 마음 주고/지긋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기다//
봐라 봐라/통으로 버림받고/투신한 /여전히 붉은 방심들을//
-「앳동백」 전문
「앳동백」에서 성찰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한층 아름답다. 더구나 성찰의 방법이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4연의 시로 1연~3연까지 지방 사투리로 감정을 전달하여 더욱 정겨운 시로 느껴진다. 그러나 4연의 결론에서는 사투리가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성찰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반전효과 중의 하나로써 '사랑'의 의미를 강렬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동백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앳동백」 2연의 '말아라/그렇게 전부/생애를 걸었다가/우얄라꼬 그라노'에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붉은 사랑을 주는 지고지순한 '앳된 동백'을 승화시키는 시인의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말아라'는 표현은 그렇게 하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를 읽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강요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저급 관여로써 완전한 효과를 얻는다. 즉 진정한 사랑은 어떤 태도로 임해야하는 지를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3연에서는 앞의 Ⅲ부에서 언급했던 서술적 이미지로 시적화자는 '사랑은 그라는 기 아이다/니 맴 내 모르는 기 아이지만/쬐매만 마음 주고/지긋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기다'라며,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3연 1행과 2행에서 '~기 아이다'라는 부정의 서술형에서 3연 4행의 '~하는 기다'라는 긍정의 서술형으로 전환하여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주문하고 있다.
박해영 시인은 「앳동백」 1연과 2연에서 '우짤라고 그라노'라는 부정의 서술형으로 '방심'과 '생애를 건' 것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4연에서 '봐라 봐라/통으로 버림받고/투신한/여전히 붉은 방심들'이라며 염려하는 자기성찰을 독자들에게 전이하거나 이입시키고 있다. 독자들은 시 속에 육화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며 감상할 때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박해영 시인은 일찍이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텃밭에 배추 몇 포기 벌서고 있다
반쯤 문드러진 두둑 위
찢어진 비닐과 함께 너덜거리며 낡아 가고 있다
이 겨울 한가운데 올 때까지 몇 번이나 얼고 녹았을까
동료들은 다 김장 배추로 절여 지거나
하다못해 배추지지미 후보로 뽑혀나갔는데
이렇게 여러 번 얼었다 녹아도
따뜻한 밥상에 올라갈 날이 올 수는 있을 런지
진작 뽑혀져 저기 어디 쯤 내던져졌던 들
지금쯤은 흙속에 누워 편안히 흙이 되어가고 있을 것을
배추벌레가 배춧잎을 갉아 먹어도
진딧물이 새까맣게 잎 사이에 끼어도
건성건성 지나치던 야속한 농부
겨울 한 데에 이렇게 오래도록 벌세우고
어디 아랫목에서 살진 엉덩이를 지지고 있는 지
배추의 겨울은 호되다
-「배추의 겨울」 전문
박해영 시인의 성찰은 「앳동백」에서 끝나지 않는다. 「배추의 겨울」에서 인간을 위해 온몸을 내주는 소외된 배추를 보고 반성하지 않는 우리들을 질타한다. '동료들은 다 김장 배추로 절여 지거나/하다못해 배추지지미 후보로 뽑혀나갔는데'라는 표현으로 추운 밭에서 벌을 서고 있는 듯한 겨울 배추를 보라며 반성을 촉구한다. 이것은 시인의 철저한 자기성찰이며, 참다운 세상을 구현하려는 시적 태도다. 성찰은 자기치유이다. 따라서 성찰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를 읽는 독자의 자기치유이다. 자기치유란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는 시선을 곱게 펴는 일이다. 즉, 꽃을 보고도 아름다운 마음을 갖지 못하거나 갑의 위치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찰의 시를 읽고 스스로 치유하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세상, 부의 양극화, 불공정한 사회,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 행동과 같은 일들이 난무하는 현 시대에서 박해영 시인의 성찰의 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AI, 또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IoT, 3D프린트 등으로 인하여 사람의 일자리에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인문적 요소를 갖춘 문학, 그 중에서 시의 기능은 중요하며, 그 중요한 시의 기능이 기계중심 사회에 적용되게 하는 일을 주도해야할 주역이 시인이다. 박해영 시인은 묵묵히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이다.
그릇을 비우는 게
다는 아니다.
...?중략〉...
다른 이의 그릇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시간에
니 그릇 한 번 더 살피시라는
신공 연마가
석 달 열흘째 계속이다
-「설거지 신공」 일부
비우는 일은 무소유를 의미한다. 이런 공(空)의 행위는 '손을 내려 밑에 둔다'는 뜻의 방하착(releasing the attachments)이 선결과제이다. 그 어떤 것이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서는 비울 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방하착을 시로 승화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토록 힘든 일을 박해영 시인은 시로 실천하고 있다. 나아가 「설거지 신공」을 잘 읽어보면 더 놀라움이 발견된다. 무소유의 실천 그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연마'의 실천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거지 신공」에서 '무소유'와 '연마'는 같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박해영 시인이 '공(空)의 연마'를 주문하는 것이다.
방하착을 위해서는 성인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거나 또 읽거나 사경하거나 사유하여 보다 다른 차원으로 자신을 끌어 올리면 사소한 일련의 일들을 스스로 내려놓게 된다. 따라서 「설거지 신공」은 이런 역할을 주도하는 시이다.
풀에게
절을 하고
풀을 뽑는다
양파에게
절을 하고
풀을 뽑는다
-「절3」 전반부
앞의 「절3」은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시다. 풀 한 포기라도 귀히 여기는 박해영 시인이다.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등가(等價)로 보는 시적 태도야 말로 경이의 그 자체이다.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자연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 기후변화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우리들에게 향하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설날 어른에게 세배를 하지 않는 작금의 시대에 시인은 '풀에게/절을 하고/풀을 뽑는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경이롭고 경의하다. 이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임팩트(impact)로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박해영 시인의 성찰의 태도는 「앳동백」, 「배추의 겨울」, 「설거지 신공」, 「절3」에서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빠져나갈 곳 없는 시간 속에서/우리들의 배설물까지도 버무려/탄성을 지를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발효」 일부)는 표현에서도 성찰의 사유가 보이거니와 '난 뼛속까지 얼어있는 줄 알았거든/원래 칡은 겨울에 캐는 것이라는 칡꾼/10센티면 문제없다는 칡꾼의 말씀에/쓰디쓴 소주 한잔 털어 넣는다/미안하다 정말'(「10센티」 일부)의 시(詩)도 같은 맥락의 시로 분류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집 앞 감나무/이층짜리 둥지가 없어졌다/...?중략〉...//간난이 할매도/까치네 집도 다 없어졌다//...?중략〉.../까치 한 쌍이/망연자실 앉아 있다'(「돌발 사태」 일부)에서도 폭력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소외된 자들을 위해 박해영 시인은 시 쓰기를 통해 자기반성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작고 힘없는 놈에게/잔뜩 짐을 지우고/힘센 분은/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는'(「전봇대」 일부) 등에서도 진정한 성찰과 반성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Ⅵ. 서정의 담론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박해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을 살펴보았다. 67편의 시가 독백의 형식을 빌려 진솔한 자기고백의 진술서이다. 그 고백은 일상의 삶속에서 건져 올린 다양한 삶의 무늬다. 때로는 삶의 아우성을 순수한 서정의 담론으로 그리기도 했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존방식을 결이 고은 언어로 승화시킨 시집이다. 즉 난삽한 표현을 배제하여 시를 이해하는데 큰 고민을 요구하지 않는다. 약한 자에게 응원하는 격려의 메시지도 남다르며, 상승적 이미지로 계층적 구조의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반어나 은유로 비판했다.
세계와 자아가 하나가 되는 '투사'나 '동화'의 동일화 원리를 근저로 하는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일원적인 시적 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세계와 자아가 하나가 됨으로써 대립적 관계에서 동일화의 관계로 진척되어, 시는 따뜻할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서경적 순수서정시를 추구해온 것이다. 심상(image, 心象)은 시인의 마음에 생긴 상(像)이다. 박해영 시인이 순수서정시를 추구한다는 것은 시인의 사유가 순수하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시인의 오감을 통해 발생한다. 그러므로 박해영 시인이 일상의 환경이 순수성을 가진 대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박해영 시인은 순수서정시로 화해의 길을 시도하며, 철저한 자기 성찰의 시를 써왔다. 이별의 사랑이 난무하는 지금의 상황을 '앳된 동백꽃'을 앞세워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사랑에 대해 염려는 성찰의 이미지로 발전시켜, 시인의 감정이 온전하게 독자에게 이입될 수 있도록 진술한 부분이 돋보인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과 자연과 인간이 상호 등가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시적 태도에 우리들은 특별한 응원과 공감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박해영 시인은 비우기의 시세계로 향하는 의식의 뿌리가 깊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방하착의 사유가 자신의 시를 건강하게 단련시킨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남향집」도 무소유의 시정신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시다. 「절 3」과 「설거지 신공」에서도 무소유의 의미와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러준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어렵다. 무소유는 산 속 암자에 묻혀 수행하는 스님들의 몫으로만 생각하는 세속의 우리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독특히 해내는 시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순수한 자연을 인간의 발밑에 두지 않고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유도 그렇고,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시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불행과 가까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적 진술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사유도, 모두 박해영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결 지을 수 있다. 다양하게 소재를 선택하고 그 소재를 인간의 삶과 연결하는 숭고한 시정신을 가진 시인으로 결론을 내리면 시해설을 마친다.
이 시는 상승의 이미지다. 이것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끓어올라야 하는 시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밥이 될 수도 있고 죽이 될 수도 있다. 일상의 삶에서 '증기를 배출'하는 것과 같이 분노하는 날도 있으며, 인고의 날도 있다. 이러한 부침의 세월을 겪어야만 진정한 '밥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밥은 삶의 개인적 상징이다.
어느 누구든 평탄한 삶이 있으련마는 「전기밥솥」에서 보여주는 삶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부분이다. 다만 박해영 시인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을 뿐, 이것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생활을 노래한 시다. 시상의 전개가 일상의 대화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적 삶을 미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통화」는 전화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친정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자아가 드러내는 동일한 모정의 수평적 이미지를 노래한 시다. '엄마의 엄마'와 '엄마'는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일 뿐, 진정 그들이 품고 있는 모정은 황금보다 더 귀하고 모루(anvil)보다 더 단단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한 「통화」는 아내와 친정엄마 중에 누구는 높은 위치에 있고, 누구는 낮은 자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두 엄마는 등가의 개념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Ⅲ. 이동-서술적 이미지
시기 지향하는 의미, 즉 시적 대상을 이미지로 처리하게 되면 그 표현은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모든 생명체의 시작과 종말을 이동의 이미지라는 수단으로 신선하게 강조한다. 이동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두 여정」, 「집으로 가는 길2」, 「개불알꽃」, 「남향집」, 「화림동 계곡」, 「통화」, 「이사」, 「소나무 1」, 「물소리」, 「안개 그리고 신작로」, 「대금 산조2」, 「가을산」, 「하모니카」, 「명왕성에서 온 엽서」, 「달밤」, 「동행」, 「가출」 등이다. 이 중에서 이동의 이미지를 시적 장치로 서용한 작품을 예시로 삼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짐승은 죽으면
하늘로 가지 않고 산이 되어
산자락에 사람들 품고 기르라는
특명을 받나보다
온갖 짐승들이 지켜주는
산마을 굽이굽이
같은 버스를 탄 할매 할배가 정겹다
-「집으로 가는 길2」 일부
앞의 「집으로 가는 길 2」에서 '죽음', '하늘', '산', '사람', '할매', '할배' 등의 시어가 사용되었다. 이런 시어들은 '종착'의 의미를 지닌 '소멸'의 상징이다. 그러나 박해영 시인이 사유하는 '소멸'은 절대부정의 뜻이 아니라 점이다. 다시 말해서 '소멸'을 '집으로 가는 길'로 치환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외연적으로 「집으로 가는 길2」를 감상하면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단순한 풍경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는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사실적 광경내지 풍경을 서술적으로 나타내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현대가 요구하는 '감추면서 드러내고, 드러내면서 감추라'는 시작법(詩作法)에 따라 '소멸'의 의미를 「집으로 가는 길2」에서 아름다운 죽음의 의미를 시에 육화(肉化)한 것이다
위의 「집으로 가는 길2」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 '짐승은 죽으면/하늘로 가지 않고 산이 되어'에서 이 표현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수용불가의 의미가 아니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윤회의 의미다. 불가에서 말하는 49제는 망자가 49일째가 되는 날, 새로운(좋은) 생명체로 다시 환생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일주일 단위로 일곱 번(7일×7회=49제)의 제사를 지내는 기원제의 일종이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이 소멸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긍정적 사유로 말미암아 '산마을 굽이굽이/같은 버스를 탄 할매ㆍ할배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마냥 '정겹다'고 표현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의 시적 사유가 매우 긍정적이고 유월의 신록 같다는 점을 들어 시집 속 시편들의 정서가 대부분 밝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 기인한다.
등이 기역자로 굽은 할매가
길을 갑니다
인도도 따로 없는 신작로를 따라
네 발 보행기를 밀며 가는
어슴푸레한 새벽길은 길고 멉니다
영감은 저승길로 가고
자식들은 고속도로 따라 떠나고
할매는 혼자 밭으로 나갑니다
꽃분이 시절 하품하며 걷던 길을
꼬부랑 할매가 되어서도 걷고 있습니다
밭에 가면 영감도 있고
밭에 가면 새끼들도 다 거기 있습니다
할매의 전 생애가 다 밭에 있습니다
하여 할매는 오늘도 밭으로 나갑니다
찬밥 한 술 뜨고
호미 한 자루 굽은 허리춤에 차고
네 발 보행기를 재촉하여 새벽길 나섭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안개 그리고 신작로」 전문
박해영 시인의 '시작'과 '종착'의 이동이미지는 「안개 그리고 신작로」에서는 극점을 이룬다. 예시의 「안개 그리고 신작로」는 총 1연 18행의 구조를 가진 시이다. 전형적인 자유형식의 시로서 전체 18행중에서 물경 11행이 이동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2행의 '길을 갑니다', 4행의 '가는', 6행의 '가고', 7행의 '떠나고', 8행의 '나갑니다', 9행과 10행의 '걷던', 11행과 12행의 '가면', 그리고 14행의 '나갑니다'와 17행의 '나섭니다'가 해당된다.
특히 이 시에서 두드러진 이미지는 수평적 이미지로 '入'의 의미가 아니라 '出'의 의미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집으로 가는 길2」는 '出'의 의미를 가진 시로 이것은 다시 '등이 기역자로 굽은 할매가/길을'을 가는 것은 '밭에 가면 영감도 있고/밭에 가면 새끼들도 다 거기 있'는 '만남'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길을 나서는 대상이 할매와 할배가 아니다. 가령 '꽃분이 시절 하품하며 걷던 길을/꼬부랑 할매가 되어서도 걷고 있'는 이 길은 인간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박해영 시인이 단순히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정을 노래한 것이다.
먼 길을 가고 있다
귓전에 느껴지는
서로의 숨소리에
몸을 맡기며
너도 없고
나도 없는
흙으로 가는 여정
낙엽더미가 따뜻하다
-「동행」 하반부
앞의 「동행」에서도 '出'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집으로 가는 길2」가 '나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따스한 이미지의 시라면, 「동행」은 '먼 길을 가고 있다/귓전에 느껴지는/서로의 숨소리에/몸을 맡기며/너도 없고/나도 없는/흙으로 가는 여정'으로 매우 서늘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다가 결론 부분에서 '낙엽더미가 따뜻하다'는 표현으로 불안한 심리를 상쇄하는 극적(dramatic)인 반전효과를 보여준다.
시의 이미지는 시적 장지 중의 하나다. 표현된 감각에 의해 감각적으로 환기되는 영상을 말한다. 첨언하면 시적 화자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시적 대상에 대한 감각적 영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생긴 상(像)이라는 뜻에서 심상(心象)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설명이나 묘사에 의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사물(시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거나 감각적 수식어를 통해 사물의 영상을 직접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 있으며, 직유법이나 은유법, 의인법 등의 비유를 통해 사물의 영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 즉 시적 대상에 대해 비유를 통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또 구체적인 사물이 다른 사물, 즉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을 대신하는 상징적 표현에 의해 사물의 영상이 나타내게 하는 상징에 의해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박해영 시인은 설명이나 묘사에 의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방법을 취한다. 부연하면 설명에 의해 대상을 드러내거나 의미를 강조한다. 즉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심리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가 기존의 어떤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미지와 모방적 개념의 이미지였다면, 그것에 반하여 서술적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러하듯 박해영 시인은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편들이 대체적으로 난해성을 피해간다. 이것은 독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의 원동력이 되며, 자신의 시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은 시의 이미지는 객관적 대상의 재현도 아니며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도 아니며 실체 그 자체여야 한다는 뚜렷한 자기 이론을 견지한다.
Ⅳ. 화해와 접촉 이미지
박해영 시인이 주로 사용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어떤 관념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이미지가 아니다. 본래적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해 동원되는 이미지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단면으로 보는 것과 같이 이미지는 이미지를 보이는 것으로 끝날 뿐이라는 것으로 다른 사물을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의 서술적 이미지는 그 시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줄 의미를 서술적으로 그려낸다. 이 같은 방법에 의해 시 쓰기가 이루어진 시들이 「여름나기」, 「접촉」, 「산길을 걷다가」, 「손전등」, 「새 바지」, 「10센티」, 「용접」, 「왔다 갔다」, 「사랑법」, 「연꽃」, 「등받이」, 「신발」 등이다.
입맞춤하니
땅이 열렸고
땅 위로 움이 돋았고
땡볕 속에서
죽을 동 살 동
시퍼렇게
견뎌내고 있다
입맞춤 한 번에
-「여름나기」 전문
박해영 시인은 '접촉'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확장시킨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요소는 '입맞춤'이다. 굳이 비유하거나 상징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문의 '입맞춤하니/땅이 열렸고/땅 위로 움이 돋았'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은 대상을 서술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입맞춤'이라는 접촉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발전된다. 「여름나기」의 '입맞춤'은 햇살이 될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고, 새로운, 그리고 환희의 세상이 열리려면 누구가의 손길이 필요하며, 그런 입맞춤이 절대적인 것이다. 꽃이 피려면 빗방울을 만나야 하고,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아름다운 율동을 보이려면 빙판이라는 장소와 접촉하여야만 예술적 가치를 현현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박해영 시인은 시적 대상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그것을 다시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동화(同化)의 방법이나 시적화자 자신을 상상적으로 대상(세계)에 투사(投射)하여 자아와 세계가 하나로 일체감을 이루도록 하는 투사(投射)의 방법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박해영 시인은 '시퍼렇게/견뎌내고 있다/입맞춤 한 번에'라는 표현처럼 외부 세계의 충격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치환하여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갖게 하는 능동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이처럼 박해영 시인이 적용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시인이 무엇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검열에서 출발한다.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면 그로 인해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자유스럽다는 것은 곧 자신의 구속이며, 그 구속이 경직성을 낳고 그 경직성이 고착화될 때 대상을 왜곡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소위 현대의 서술형의 시는 시어를 선택의 원리보다 배열의 원리를 추구하며 쓰는 행위가 다수를 이룬다. 그러므로 문맥은 언어 선택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으며, 문맥을 형성하는 것은 언어 배열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박해영 시인이 취하는 시작(詩作)의 기본원리 중에 하나가 시는 낱말들이 유기적 관계로 짜인 구조이므로 문맥에 따라 시어가 선택된다는 것을 시작(詩作)의 기본으로 삼는다.
박해영 시인은 세계와 자아가 접촉을 통하여 동일화(同一化)를 이루어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시세계로 종결짓고 있다. 이렇게 시를 쓰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하면서도 높은 발상의 차원을 드러낸다. 다음의 작품에서도 박해영 시인이 모색하는 접촉의 의미를 서술적 이미지로 시의 구조를 짜는 것을 볼 수 있다.
썩은 나무 등걸을 만났다
허리가 부러져 물 위에 드리운 채
늙고 삭아가는 제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하는
팔자 사나운 고목을 만났다
...?중략〉...
가지가 내려앉는 바람에
박새들 놀라 날아가고
속없는 풀씨들이 날아와
썩은 등걸에 푸른 잎을 피웠다
-「산길을 걷다가」 일부
접촉의 이미지는 서정시 특성의 원리 중에 동화나 투사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박해영 시인은 「산길을 걷다가」도 「여름나기」와 같이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상황을 서술적으로 드러낸다. 또 1행의 '등걸을 만났다'의 표현도, 5행의 '고목을 만났다'는 것도, 10행의 '가지가 내려앉는' 접촉도, 또 이미 앉아 있던 '박새들 놀라 날아가'는 것은 접촉의 행위라는 선행이 있어, '썩은 등걸에 푸른 잎을 피웠다'는 상생과 화해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귀결 지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편만으로도 박해영 시인의 시세계가 대립적이거나 이원화의 양상을 띠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박해영 시인은 존 듀이가 지적한 대로 자아와 세계가 각기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승화되었을 때 미적 체험이 된다는 차원으로 시를 쓴다.
앞의 「산길을 걷다가」와 「여름나기」 외에도 접촉의 이미지를 통해 화해의 세계를 모색하는 시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상징이나 비유의 형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인식이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고 서술적 이미지를 사용한 점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그 한 뼘만 녹였더라면/그대 품에 안고/그대 흐르는 눈물에 입 맞출 수 있었는데'(「10센티」 일부)의 '입맞춤'의 접촉이나 '그녀를 용접하고 있다/사내의 허공에/불똥 가멸다'(「용접」 일부)에서 두 개의 사물을 하나로 만드는 '용접'의 의미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뜨거움으로 하나가 되는 화해의 시정신이며, '나무는/새가 찾아오면/푸른 가슴을 열어주고/새가 날아가면/우수수 푸른 손을 흔들어 준다'(「사랑법」 일부)에서 나뭇가지에 앉은 '접촉'의 행위에서 '날아'가는 '이탈'의 행위도 그 출발은 접촉에 있으며, 박해영 시인의 그런 화해의 시정신은 '접촉'에서 '이탈'로 이루어져도 시적화자는 '푸른 손을 흔들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등 뒤에서/내 허약한 나날들 떠받치다/낡고 병들어/어느 날 툭 떨어지고 만 등받이'(「등받이」 일부)를 통해서도 자신을 세계에 투사하는 것, 곧 감정이입에 의해서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이루도록 하는 투사와 시인이 세계를 자기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이른바 세계의 자아화를 실현하고 있다. 박해영 시인의 실제의 세계는 자아와 대립하지만 상상 속의 그것은 자아화하여 동일성의 관계에 놓이게 한다. 그래서 시세계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다.
Ⅴ. 성찰의 이미지
박해영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는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이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와 수평적 이미지, 이동에서 찾아낸 시적 의미를 서술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화해하는 접촉 이미지 등으로 자신만의 시적 이미지를 자리매김해 왔다. 앞서 언급한 이외의 많은 작품에서도 소멸을 내세운 성찰의 이미지를 견고히 했다. 그러나 지면상 한계로 성찰의 시를 시해설에 포함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생각에 후반부에서 다루고자 했다.
여러 시인들이 작품 중에 성찰의 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낮은 자세로 시를 쓰라는 시적 태도에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찰의 시는 시인이 자기 잘못을 성찰하는 반성문이 아니다. 그 성찰에는 개연성과 보편성이 공존할 때 비로소 시를 읽는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개인의 직ㆍ간접적인 체험이나 그 체험 위에 시인의 상상력을 얹혀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해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에도 시인이 성찰의 모습을 보이는 시가 다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시해설에 마땅히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단에서 몇 편의 시를 예시로 삼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찰하는 시에 해당되는 시작품들을 보면 「앳동백」, 「배추의 겨울」, 「설거지 신공」, 「절3」, 「발효」, 「10센티」, 「무덤」, 「돌발 사태」, 「버무리다 버무려지다」, 「전봇대」 등이다. 물론 이외에도 성찰의 내용이 담긴 시들이 많이 있으나 특별히 대표적인 시편만을 선택하여 소개한 것이다.
아서라/그렇게 혼자/방심을 키웠다가/우짤라고 그라노//
말아라/그렇게 전부/생애를 걸었다가/우얄라꼬 그라노//
사랑은 그라는 기 아이다/니 맴 내 모르는 기 아이지만/
쬐매만 마음 주고/지긋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기다//
봐라 봐라/통으로 버림받고/투신한 /여전히 붉은 방심들을//
-「앳동백」 전문
「앳동백」에서 성찰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한층 아름답다. 더구나 성찰의 방법이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4연의 시로 1연~3연까지 지방 사투리로 감정을 전달하여 더욱 정겨운 시로 느껴진다. 그러나 4연의 결론에서는 사투리가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성찰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반전효과 중의 하나로써 '사랑'의 의미를 강렬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동백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앳동백」 2연의 '말아라/그렇게 전부/생애를 걸었다가/우얄라꼬 그라노'에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붉은 사랑을 주는 지고지순한 '앳된 동백'을 승화시키는 시인의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말아라'는 표현은 그렇게 하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를 읽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강요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저급 관여로써 완전한 효과를 얻는다. 즉 진정한 사랑은 어떤 태도로 임해야하는 지를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3연에서는 앞의 Ⅲ부에서 언급했던 서술적 이미지로 시적화자는 '사랑은 그라는 기 아이다/니 맴 내 모르는 기 아이지만/쬐매만 마음 주고/지긋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기다'라며,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3연 1행과 2행에서 '~기 아이다'라는 부정의 서술형에서 3연 4행의 '~하는 기다'라는 긍정의 서술형으로 전환하여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주문하고 있다.
박해영 시인은 「앳동백」 1연과 2연에서 '우짤라고 그라노'라는 부정의 서술형으로 '방심'과 '생애를 건' 것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 4연에서 '봐라 봐라/통으로 버림받고/투신한/여전히 붉은 방심들'이라며 염려하는 자기성찰을 독자들에게 전이하거나 이입시키고 있다. 독자들은 시 속에 육화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며 감상할 때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박해영 시인은 일찍이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텃밭에 배추 몇 포기 벌서고 있다
반쯤 문드러진 두둑 위
찢어진 비닐과 함께 너덜거리며 낡아 가고 있다
이 겨울 한가운데 올 때까지 몇 번이나 얼고 녹았을까
동료들은 다 김장 배추로 절여 지거나
하다못해 배추지지미 후보로 뽑혀나갔는데
이렇게 여러 번 얼었다 녹아도
따뜻한 밥상에 올라갈 날이 올 수는 있을 런지
진작 뽑혀져 저기 어디 쯤 내던져졌던 들
지금쯤은 흙속에 누워 편안히 흙이 되어가고 있을 것을
배추벌레가 배춧잎을 갉아 먹어도
진딧물이 새까맣게 잎 사이에 끼어도
건성건성 지나치던 야속한 농부
겨울 한 데에 이렇게 오래도록 벌세우고
어디 아랫목에서 살진 엉덩이를 지지고 있는 지
배추의 겨울은 호되다
-「배추의 겨울」 전문
박해영 시인의 성찰은 「앳동백」에서 끝나지 않는다. 「배추의 겨울」에서 인간을 위해 온몸을 내주는 소외된 배추를 보고 반성하지 않는 우리들을 질타한다. '동료들은 다 김장 배추로 절여 지거나/하다못해 배추지지미 후보로 뽑혀나갔는데'라는 표현으로 추운 밭에서 벌을 서고 있는 듯한 겨울 배추를 보라며 반성을 촉구한다. 이것은 시인의 철저한 자기성찰이며, 참다운 세상을 구현하려는 시적 태도다. 성찰은 자기치유이다. 따라서 성찰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를 읽는 독자의 자기치유이다. 자기치유란 세상을 삐뚤게 바라보는 시선을 곱게 펴는 일이다. 즉, 꽃을 보고도 아름다운 마음을 갖지 못하거나 갑의 위치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찰의 시를 읽고 스스로 치유하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세상, 부의 양극화, 불공정한 사회,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 행동과 같은 일들이 난무하는 현 시대에서 박해영 시인의 성찰의 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AI, 또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IoT, 3D프린트 등으로 인하여 사람의 일자리에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인문적 요소를 갖춘 문학, 그 중에서 시의 기능은 중요하며, 그 중요한 시의 기능이 기계중심 사회에 적용되게 하는 일을 주도해야할 주역이 시인이다. 박해영 시인은 묵묵히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이다.
그릇을 비우는 게
다는 아니다.
...?중략〉...
다른 이의 그릇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시간에
니 그릇 한 번 더 살피시라는
신공 연마가
석 달 열흘째 계속이다
-「설거지 신공」 일부
비우는 일은 무소유를 의미한다. 이런 공(空)의 행위는 '손을 내려 밑에 둔다'는 뜻의 방하착(releasing the attachments)이 선결과제이다. 그 어떤 것이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서는 비울 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방하착을 시로 승화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토록 힘든 일을 박해영 시인은 시로 실천하고 있다. 나아가 「설거지 신공」을 잘 읽어보면 더 놀라움이 발견된다. 무소유의 실천 그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연마'의 실천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거지 신공」에서 '무소유'와 '연마'는 같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박해영 시인이 '공(空)의 연마'를 주문하는 것이다.
방하착을 위해서는 성인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거나 또 읽거나 사경하거나 사유하여 보다 다른 차원으로 자신을 끌어 올리면 사소한 일련의 일들을 스스로 내려놓게 된다. 따라서 「설거지 신공」은 이런 역할을 주도하는 시이다.
풀에게
절을 하고
풀을 뽑는다
양파에게
절을 하고
풀을 뽑는다
-「절3」 전반부
앞의 「절3」은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시다. 풀 한 포기라도 귀히 여기는 박해영 시인이다.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등가(等價)로 보는 시적 태도야 말로 경이의 그 자체이다.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자연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 기후변화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우리들에게 향하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설날 어른에게 세배를 하지 않는 작금의 시대에 시인은 '풀에게/절을 하고/풀을 뽑는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경이롭고 경의하다. 이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임팩트(impact)로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
박해영 시인의 성찰의 태도는 「앳동백」, 「배추의 겨울」, 「설거지 신공」, 「절3」에서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빠져나갈 곳 없는 시간 속에서/우리들의 배설물까지도 버무려/탄성을 지를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발효」 일부)는 표현에서도 성찰의 사유가 보이거니와 '난 뼛속까지 얼어있는 줄 알았거든/원래 칡은 겨울에 캐는 것이라는 칡꾼/10센티면 문제없다는 칡꾼의 말씀에/쓰디쓴 소주 한잔 털어 넣는다/미안하다 정말'(「10센티」 일부)의 시(詩)도 같은 맥락의 시로 분류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집 앞 감나무/이층짜리 둥지가 없어졌다/...?중략〉...//간난이 할매도/까치네 집도 다 없어졌다//...?중략〉.../까치 한 쌍이/망연자실 앉아 있다'(「돌발 사태」 일부)에서도 폭력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소외된 자들을 위해 박해영 시인은 시 쓰기를 통해 자기반성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작고 힘없는 놈에게/잔뜩 짐을 지우고/힘센 분은/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는'(「전봇대」 일부) 등에서도 진정한 성찰과 반성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Ⅵ. 서정의 담론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박해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왕성에서 온 엽서』을 살펴보았다. 67편의 시가 독백의 형식을 빌려 진솔한 자기고백의 진술서이다. 그 고백은 일상의 삶속에서 건져 올린 다양한 삶의 무늬다. 때로는 삶의 아우성을 순수한 서정의 담론으로 그리기도 했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존방식을 결이 고은 언어로 승화시킨 시집이다. 즉 난삽한 표현을 배제하여 시를 이해하는데 큰 고민을 요구하지 않는다. 약한 자에게 응원하는 격려의 메시지도 남다르며, 상승적 이미지로 계층적 구조의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반어나 은유로 비판했다.
세계와 자아가 하나가 되는 '투사'나 '동화'의 동일화 원리를 근저로 하는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일원적인 시적 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세계와 자아가 하나가 됨으로써 대립적 관계에서 동일화의 관계로 진척되어, 시는 따뜻할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서경적 순수서정시를 추구해온 것이다. 심상(image, 心象)은 시인의 마음에 생긴 상(像)이다. 박해영 시인이 순수서정시를 추구한다는 것은 시인의 사유가 순수하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시인의 오감을 통해 발생한다. 그러므로 박해영 시인이 일상의 환경이 순수성을 가진 대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박해영 시인은 순수서정시로 화해의 길을 시도하며, 철저한 자기 성찰의 시를 써왔다. 이별의 사랑이 난무하는 지금의 상황을 '앳된 동백꽃'을 앞세워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사랑에 대해 염려는 성찰의 이미지로 발전시켜, 시인의 감정이 온전하게 독자에게 이입될 수 있도록 진술한 부분이 돋보인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과 자연과 인간이 상호 등가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시적 태도에 우리들은 특별한 응원과 공감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박해영 시인은 비우기의 시세계로 향하는 의식의 뿌리가 깊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방하착의 사유가 자신의 시를 건강하게 단련시킨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남향집」도 무소유의 시정신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시다. 「절 3」과 「설거지 신공」에서도 무소유의 의미와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러준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어렵다. 무소유는 산 속 암자에 묻혀 수행하는 스님들의 몫으로만 생각하는 세속의 우리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독특히 해내는 시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순수한 자연을 인간의 발밑에 두지 않고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유도 그렇고,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시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불행과 가까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적 진술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사유도, 모두 박해영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결 지을 수 있다. 다양하게 소재를 선택하고 그 소재를 인간의 삶과 연결하는 숭고한 시정신을 가진 시인으로 결론을 내리면 시해설을 마친다.
목차
목차
제1부
남향집
봄
무단 침입
개불알꽃
변신
복동이의 봄날
앳동백
여름나기
비 오는 풍경
집으로 가는 길 2
춤
어떤 생애
두 여정
가을의 선문답
산길을 걷다가
배추의 겨울
제2부
고추를 따며
화림동 계곡
겨울눈
시래기 삶기
도마
전기밥솥
압력밥솥
통화
이사
숟가락 사랑
거울
손전등
새 바지
설거지 신공
절 3
발효
10센티
제3부
용접
왔다 갔다
증언
사랑법
물
연꽃
등받이
소나무 1
새드 무비
물소리
대설주의보
안개 그리고 신작로
무덤
까치설날
돌발 사태
아침의 스크랩
야옹과 멍멍
소나무 2
제4부
마당
버무리다 버무려지다
대금산조 2
가을산
하늘
사과네 집
전봇대
하모니카
명왕성에서 온 엽서
달밤
동행
가출
이별
신발
돌멩이
손주와 운동장
해설
〈시인·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학 교수 심은섭〉 시해설
남향집
봄
무단 침입
개불알꽃
변신
복동이의 봄날
앳동백
여름나기
비 오는 풍경
집으로 가는 길 2
춤
어떤 생애
두 여정
가을의 선문답
산길을 걷다가
배추의 겨울
제2부
고추를 따며
화림동 계곡
겨울눈
시래기 삶기
도마
전기밥솥
압력밥솥
통화
이사
숟가락 사랑
거울
손전등
새 바지
설거지 신공
절 3
발효
10센티
제3부
용접
왔다 갔다
증언
사랑법
물
연꽃
등받이
소나무 1
새드 무비
물소리
대설주의보
안개 그리고 신작로
무덤
까치설날
돌발 사태
아침의 스크랩
야옹과 멍멍
소나무 2
제4부
마당
버무리다 버무려지다
대금산조 2
가을산
하늘
사과네 집
전봇대
하모니카
명왕성에서 온 엽서
달밤
동행
가출
이별
신발
돌멩이
손주와 운동장
해설
〈시인·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학 교수 심은섭〉 시해설
저자
저자
박해영
· 1990년 《현대문학》 등단
· 시집 『슈뢰딩거의 고양이』,『명왕성에서 온 엽서』 외
· 광남고등학교 교장 역임
· 교원문학회 부회장 역임
· 계간지《시와함께》 운영위원, 현대시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 현재 경상남도 함양에서 농부 수업 중
· 시집 『슈뢰딩거의 고양이』,『명왕성에서 온 엽서』 외
· 광남고등학교 교장 역임
· 교원문학회 부회장 역임
· 계간지《시와함께》 운영위원, 현대시회,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 현재 경상남도 함양에서 농부 수업 중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