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 다녀가셨다(리얼리스트 시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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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나비로 변신하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지 않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우리는 흔들리며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나무 같습니다. 버팀과 안간힘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닮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걷기를 소망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마법과 저주에서 풀려나려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늘 나무를 둘러싼 소리는 부산합니다. 본래 걸을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호접몽」도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요.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물아일체에 들어가는 일 말입니다.
『시마詩魔 다녀가셨다」는 물화物化, 즉 세상 만물의 변화를 담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흐름 속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변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시인은 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 그 나무입니다. “나무들의 꼭대기에서는 세상이 속살거리고 그들의 뿌리는 영원 속에서 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 안에 있는 법칙에 따라 자기 고유의 것을 채우고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 표현하는 데 온 힘으로 정진한다.”
장옥근 시인도 나무 같은 시인입니다. 숨죽여 멈춘 듯 보이지만 걷는 존재로 살아가길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예 이번 시집에서는 나비로 변신하였습니다. 장자가 제시했던 편견과 분별을 넘어선 절대적 자유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지난 시집 「가을 살청」에 자리하고 있던 모습을 지우고 사라졌습니다. 시인의 사라짐이 곧 시의 자유를 획득한 것임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삶의 굿판에 한 개 나비로 나타난 우화羽化가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줍니다. ‘푸념이나 넋두리 폭풍우 치는 밤/이야기 잘 듣는 귀(「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가 되어.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지 않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우리는 흔들리며 서 있는 존재입니다. 나무 같습니다. 버팀과 안간힘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닮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걷기를 소망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마법과 저주에서 풀려나려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늘 나무를 둘러싼 소리는 부산합니다. 본래 걸을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호접몽」도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요.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물아일체에 들어가는 일 말입니다.
『시마詩魔 다녀가셨다」는 물화物化, 즉 세상 만물의 변화를 담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흐름 속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변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시인은 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 그 나무입니다. “나무들의 꼭대기에서는 세상이 속살거리고 그들의 뿌리는 영원 속에서 쉰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 안에 있는 법칙에 따라 자기 고유의 것을 채우고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 표현하는 데 온 힘으로 정진한다.”
장옥근 시인도 나무 같은 시인입니다. 숨죽여 멈춘 듯 보이지만 걷는 존재로 살아가길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예 이번 시집에서는 나비로 변신하였습니다. 장자가 제시했던 편견과 분별을 넘어선 절대적 자유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지난 시집 「가을 살청」에 자리하고 있던 모습을 지우고 사라졌습니다. 시인의 사라짐이 곧 시의 자유를 획득한 것임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삶의 굿판에 한 개 나비로 나타난 우화羽化가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줍니다. ‘푸념이나 넋두리 폭풍우 치는 밤/이야기 잘 듣는 귀(「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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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마詩魔 다녀가셨다』는 무엇을 담았는가?
다섯 개의 현혹과 다섯 개의 매혹
시인들은 간혹 시마詩魔에 들립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에 몰입하다 생기는 신병神病과 같습니다. 시마, 즉 시 마귀에 걸려들었으니 몸이 아플 뿐 아니라 영혼도 수척합니다. 그런 가운데 시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게 합니다. 나무였던 시가 나비로 변신했으니 눈여겨볼 따름입니다. 시는 신비스럽고 성스러워야 한다고 말라르메가 말했듯 이번 시집은 나비 날갯짓에 묻어나는 소리에 매혹당하기 십상입니다.
이 현혹과 매혹의 긴장을 모두 4부로 나누어 묶었습니다. 제1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는 장옥근의 미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 존재하나 쉽게 볼 수 없는 실존의 성스러움입니다. 시마의 손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2부는 '아직 없는 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흔적입니다. 시마가 손끌고 간 타자입니다. 그가 곧 실현될 나입니다. 제3부는 '초대받지 못한 세상'을 보여 줍니다. 바로 시인이 거주하는 공간입니다. 기억으로도 남지 못할 그곳에서 시마는 나오라 이끕니다. 제4부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기원을 담습니다. 그곳에는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는 백석의 '갈매나무'같은 시적 원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현혹과 매혹을 오가는 아이러니입니다. 나무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다시 나무로 전회하는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그것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 열림이기도 합니다. 시마가 다녀간 장옥근의 시는 사람처럼 말하고, 홀로 고고하고, 삶의 이법에 기웃대고, 사물을 거침없이 부리고, 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며 마침내 교묘하게 현혹합니다. 그 순간 첫 문장처럼 매혹당합니다.
13. 시집 해설에서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짓다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1. 시마詩魔가 들렸다
무슨 상관일까. 시 쓰는 일에 몸이, 벗이, 집이, 숨이 어떻다는 걸까. 몸이 상해도, 벗이 떠나도, 집이 허물어져도, 숨이 멈출 것 같아도 시는 오는 것. 모든 일이 좋지 않고 좋아질 리 없을 것 같고 고개 저어 부정해도 시는 지어진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상像을 지우고 시만 골똘히 바라보았다. 그럴 때 시는 사람처럼 말하고, 홀로 고고하고, 삶의 이법에 기웃대고, 사물을 거침없이 부리고, 주림과 목마름 정도는 견뎌내고, 마침내 말을 교묘하게 만들어 현혹했다. 두 번째 시집 「가을 살청」을 펴내고 장옥근에게 시마詩魔가 들렸나 보다. 그는 자신이 시인인지도 모르며 시를 썼다. 시인의 사라짐을 통해 성취한 세계가 그 시집이었다. 시인 없는 빈자리에 시가 들어서길 몇 해, 시 마귀가 램프의 요정처럼 몸을 불렸다. 장옥근의 몸과 마음을 비벼 나타난 시 요정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지난 시집에서 '살청殺靑'했던 푸른 몸이다.
"참새 떼 날개에 겨울 햇살 머물고/문지방 위 명태 한 마리/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겨울 산/한 쪽 귀만 열어 제 몸 다독(「시마詩魔 다녀가셨다」)"일 때 시마가 다녀갔음을 감지한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은 시마가 다녀간 후 남은 형상이며 흔적이다. 시마는 겨울 척박한 공간과 거기 거주하는 존재에 머물다 갔다. 시마는 고통 속에 머물렀으며 삶의 한쪽을 열어 다독였다. 이러한 시의 몰입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처음이며, 고려 대문장가 이규보李奎報다. 시를 짓는 데 열정에 들떠 백낙천은 좋은 시상이 떠오르면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시를 마무리했다. 이때 그를 사로잡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마귀魔鬼'에 비유했다. 이규보 역시 백낙천의 영향을 받아 시마가 들렸다고 여겨 시를 쓰느라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처럼 장옥근도 시의 이마에 맺힌 이슬 때문에 고뇌하며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시 때문에 한편 위로를 찾기도 하지만 또 한편 병이 들기도 했으리라. 백낙천과 이규보는 이 병을 물리치기 위해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쓴다. '시마를 몰아내는 글'이다. 거기에 시마의 죄상을 다섯 가지로 열거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붓만 믿고 뻐기게 만드는 죄,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죄,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묘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만드는 죄,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현혹시키는 죄다. 젠체하고, 대가연하고, 무엇이든 본 듯 눈에 선하게 꾸미고, 생활 현실은 감히 상관없다 말하고, 듣도 보지도 못한 말로 마음을 끄는 죄는 시인이면 적어도 이 중 하나에는 빠지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이 죄에 걸려들지 못한 시인을 어찌 시인이라 할까. 백낙천도, 이규보도 이 죄를 기꺼이 받아 내려는 심산이지 않았을까. 오히려 시에 대해 이들이 보인 애정이며, 시인의 숙명을 말하는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장옥근이 시마에 들렸으므로 이 시집에는 시마 죄상이 담겨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시마의 흔적이 곧 장옥근의 시성詩性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하나하나 그의 죄를 묻자.
2.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붓만 믿고 뻐기는 듯 보이는 시인들이 없지 않다. 어쩌면 실상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시인을 두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거나, 예술가적 자기만족을 지향하는 엘리트 의식이라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은 장옥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세상 인정을 구하는데 미숙하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오로지 스스로 세운 돌탑이다. 이 시적 자율성이 시의 가치를 믿게 하며 궁극적으로 시 쓰는 긍지를 엿보게 한다.
하늘로 간 사람들
어디에 닿았는지
얼굴 없이 발 없이
위쪽으로만 향할 때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
밤내 빗방울 깨지는 소리로 맺힌
처음부터 없었던
소금밭이 멀리까지 이어지는
맨발에 피 흐른다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
붉은 물감 푼 물길 속으로 사라지고
백 일 동안 피어있는 꽃
흔들리는 저녁 다시 오고
푸른 무 싹 고추 갈아 비벼놓은
풋내 나는 김치 양푼 가득
침 고이는
나는 아무래도
여기에 없는
-「아무래도 나는/여기에 없는」 전문
일찍이 김춘수의 시 「꽃」에서 감지했던 존재의 무존재성은 실존의 문제다. 호명하지 않는 사물은, 즉 인식하지 못하는 대상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인은 지금 절망에 이른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누구도 죽은 이들의 소재를 알 수 없다. 그처럼 '얼굴'도, '발'도 지워질 때 아무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시적 주체는 환지통을 앓고 있다. '깨지는 소리'와 갈라진 '소금밭'은 피 흘리는 '맨발'로 환치되는 듯하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기에 없다. '여기'는 어딘가. 믿음이 깨진 세상이다. 거기에 그는 없다. 이 사라짐은 고고하기도 하다. 아직 신의를 저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홀로 고독하려는 낭만적 흥취가 아니다. 그는 "푸른 무 싹 고추 갈아 비벼놓은/풋내 나는 김치 양푼 가득/침 고이는" 변함없는 감각 속에 있다. 자기 존재 이유가 거기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이름 부르지 않는 기억이다. 그 기억을 함께할 수 없는 곳에 시인은 없다고 부정한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시 「시마詩魔 다녀가셨다」, 「그랬구나 그렇구나」, 「초대받은 사람」, 「시구문 밖 봄맞이」, 「꽃들의 첫 문장」 등에서 장옥근이 염두에 둔 시적 가치를 알 수 있다. 내면과 언어가 일치되는 진정성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없는' 존재감. 이 존재의 아이러니는 현실과 거리 두기에 성공한 자의 자기 완결적 태도이기도 하다. 시는 거기에 있다.
3.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이 시집의 두 번째 시적 특성은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죄'에 있다. 물론 시인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매로 여기기도 한다. 혹은 그리스 테베의 여사제처럼 하늘의 뜻을 듣고 인간에게 전달하는 타고난 임무가 있다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인은 무격巫覡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전하는 이치를 알아채는 것이 그의 일이며, 이를 설파하는 것이 소임이기도 하다. 죄의 핵심은 인간 한계를 넘어 초월적 진리를 탐구해 신성 모독했기 때문이리라. 역설적으로 이 시집은 보이지 않는 진실에 가닿으려는 시인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시를 운위하며 인간 경험을 넘어선 세계의 근원, 진리를 꿰뚫어 보고자 하는 통찰력이다. 그러므로 천기를 누설하는 행위는 시의 언어로 표명한 예언자적 지성이라 할 수 있다.
경주 남산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눈 내린다
잎 지자마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자목련 꽃봉오리
굳게 닫은 입
균열은 쉽게 일어나지 않고
진 것은 진 것일 뿐
지키지 못한 봄
까치 한 마리
날개를 턴다
아파트 홈통에
물 떨어지는 소리
물 넘기는 나무
이른 봄옷에
우산 없는 사람들
그대로 젖은 눈 맞고
눈 감고 보는
멀어진 시계
-「꽃눈」 전문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하늘의 메시지다. 쉽게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훼손된 부처상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외침이거나, 종교탄압이거나, 일제의 만행 때문에 깨어지고 부서졌으리라 말하면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논리를 세울 때 하늘은 움직이지 않으며 말이 없다. 아니 수없이 말해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시인만이 이 이상한 소리 듣는 것이다. 시인이 눈여겨보는 것은 깨어진 부처의 몸이 아니라 상징의 해체다. 서울 남대문이 방화로 불타던 장면이 생생하다. 국보 1호라는 문화재의 상실보다는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국체를 지탱했다고 믿었던 어떤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종말의 징조 같았다.
정작 시인은 묵시적 예언보다는 폐허에 눈길을 둔다. 거기 내리는 눈을 지켜보고 있다. '눈' 내리는 행위가 곧 하늘의 뜻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연으로 넘어갈 수 없다.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곧 '자목련 꽃봉오리' 속 '꽃눈'으로 변신했다. 누가 보았는가. 하늘이 보았고, 시인도 보았다. 이러한 존재론적 변모는 '잎 지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장구한 폐허의 시간이 봄꽃의 순간적 자기 절멸의 시간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때 시인은 하늘의 이치를 엿보게 된 것이다.
시인이 누설하고자 했던 천기는 무얼까. '진 것은 진 것일 뿐'이라는 정언 명제다. 하늘은 이미 저질러진 사태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 말한다. 시인은 받들어 '지키지 못한 봄'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새 생명을 염원하는 '균열'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봄날 목마른 나무와 눈에 젖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기고 있다. 몸 털고 일어서는 까치처럼 하늘의 뜻을 향해 가고자 한다. 이제 시간의 기계적 이동은 의미를 잃었다. 이 사물의 논리를 벗어나기 위해 아예 외면하듯 눈감아 버린다.
이처럼 시 「자다르 태양의 인사」, 「눈 쌓인 밤에는 보이는 것이 많다」, 「오월, 깨어진 노래」, 「후조」, 「살아있는 것 자체가 욕망이라서」 등에서 장옥근은 자연, 시간, 존재, 탄생 등 본질에 대해 접근한다. 그것은 사물의 이면을 탐색하는 궁극의 깨달음이다. 일상, 자연 속에 숨은 우주의 이치, 존재의 본질 속에서 작은 변화, 계절의 미세한 틈, 생명의 기운을 읽어내는 게 그의 사명인 듯 보이지 않는 사물에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4.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묘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가 세 번째다. 정밀하고 치밀한 묘사와 재현은 시 쓰기의 덕목이다. '놀람'의 경이로움은 역시 시인의 사라짐에서 비롯한다. 시적 대상, 즉 사물의 형상을 시인의 내면 속에서 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순간, 사물의 본질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알기까지 시인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만큼 집중과 몰입 속에 오래도록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의 생몰을 지켜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후 전에 보지 못했던 사물의 현현을 보게 되니 세상이 놀랄 만한 것이다. 시인이 초현실 세계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그도 눈치챈 듯하다. '닥치는 대로'는 무잡하게 사물을 변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부딪칠 때마다 '부딪치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변용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마도 꽤 깊은 밤이었을 거에요
온몸 죄어 오는 허물
방 안 가득 벗어놓고
담장 너머 무한 어둠 속 기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사위는 고요하고 모두 잠들어
불빛도 별빛도 떨지 않았어요
목이 탔지만 우선 잠부터 잤어요
스스로 나무 동굴 속으로 들어온
직립을 포기한 벌레
처음 일어섰을 때 보이던 것들
걸어가 만나던 것들 모두
또 다른 세계
집세 대신 이파리 열매 먹지 않고
푸념이나 넋두리 폭풍우 치는 밤
이야기 잘 듣는 귀가 될게요
펄럭이는 오방색 두 손 모으는 사람들 마음도
깨어나는 새벽 눈 뜨는 색깔들
햇빛에 투명해진 잎사귀 바람 소리 빗소리
얼마나 좋을까요
새들의 입을 피한다면 날개 펄럭이는 나비가 되는 일은
-「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 전문
시인은 자기인 듯 사물의 형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한 생명의 변태다. 허물 벗은 사물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짐작해서는 안 된다. 다만 시인이 본 것은 '죄어 오고', '기는' 몸의 변화와 움직임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생생하게 보인다.
잠을 잔 후, 이 어둠의 시간을 거치고 또다시 변신한 '벌레'의 모습에 직면한다. 벌레는 '직립을 포기한' 상태다. 여기서 시인은 카프카적 형상을 묘사한다. 일어설 수 없는 자기 모순적 실존 앞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지속되는 삶의 모순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먹지 않고', '폭풍우 치는' 굶주림과 수난을 겪고 난 후 획득한 것이다. 말하기보다 들으며 기원하는 마음들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순간이다.
고치에서 벌레로 나비로 번지듯 흘러가는 사물의 변화는 낯익다. 존재의 근원적 변화로 읽히기도 하고, 자아와 정체성의 해체와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념화하면 성장과 고통의 통과의례이며 새로운 가능성의 은유다. 그런 가운데 장옥근의 형상 묘사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이곳에 도착한 것은' 나비만이 아니다. 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굿판'마다 옮겨 갔을 시인의 행보가 경이롭다. 잠자던 사물이 깨어나고 눈뜨는 광경을 함께 눈앞에서 본 듯하다.
시 「전회」, 「눈보라」, 「나무와 비」, 「뽑힌 자리」, 「검은 새 한 마리」, 「풍등」 등에서 자연, 일상, 인물, 계절, 환경 등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활발히 재현되고 있다. 이처럼 장옥근은 사물의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묘사함으로써 세계를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평범한 사물에 생생하게 숨결을 불어 넣는 일이기도 하다.
5.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네 번째 죄, 혹은 시적 특성은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만드는 것이다. 비유지만 현실의 고통과 고난을 잠시 잊고 시적 쾌감, 즉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한다. 시적으로는 '몰입'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때 우리는 예술에 매혹되고 빠져들게 되는가.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될 때 작품에 집중한다. 자기 존재의 경계가 약화되거나 잊게 될 때 상상력과 창조성은 극대화된다. 이는 미적 감동이며,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심리적 치유를 통해 몰입 후 일상의 정신적 재충전을 경험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 가닿는 길은
폭우로 불어난 물에 쓸린 풀들은
바라보면 흔들리는 소나무는
손 놓아 오래 끊어진 사람은
능소화 길게 늘어선 석양은
뿌리 힘으로 버틴 천변은
초록 대문 옛집과 맞닿아
둥근 밥상
늙지 않는 어머니가 서 있습니다
-「풍등」 전문
'풍등'을 하늘에 띄우는 마음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먼저 소망과 염원을 상징한다. 인간 현실 너머 다하지 못한 일들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뜻으로 풍등을 띄우는 것이다. 추모의 뜻도 있다. 이별 후 그리움을 하늘에 의탁함으로써 슬픔과 미련을 덜어내는 것이다. 허무와 덧없음이기도 하다. 풍등은 곧 꺼져 사라지는 일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해원解?, 즉 응어리를 푸는 위로와 치유의 뜻을 담았다.
풀과 소나무와 사람과 석양과 천변은 모두 흉터 진 사물로 동일한 자질을 지닌다. 쓸리기도, 흔들리기도, 늘어져 곧 숨을 다할 것 같기도, 안간힘을 다해 버티기도 했을 지난 세월이다. 이제 이들은 옛집에 모였다. 고통과 상처를 잠시 잊는 순간이다. 문학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귀향' 모티프다. 장옥근 시의 특장이기도 하다.
귀향은 잃었던 '나'를 되찾거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여행이다. 도시 혹은 타지에서 겪는 방황, 소외, 상실 이후 다시 고향에 돌아오는 행위는 곧 자아 성찰과 정체성의 회복을 상징한다. '한 사람에게 가닿는 길'이다. 길은 '둥근 밥상'을 거쳐 '어머니'에게 동심원을 그리듯 축소된다. 귀소성의 응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비극성이 드러난다. 성취되지 않는 귀향, 즉 돌아갈 수 없는 아픔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갈매나무'처럼 '늙지 않는 어머니'가 고향 집에 서 있으니 말이다. '풍등'은 곧 꺼져 사라질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옛 기억을 반추하며 한순간 우리는 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몰입이 심화할수록 시인은 고통이나 결핍,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고, 시의 세계 속에 몰입하여 삶의 아픔을 잠시 넘어선다. 몰입의 심화는 시인 자신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위로와 해방감을 주는 힘이 된다. 이러한 양상은 이 시집 4부 시에 담겼다.
6.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시마를 통해 바라본 이 시집의 특성은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현혹시키는 죄'에 마지막 가닿는다. 이는 시적 언어의 변이와 그 효과로 나타나는 마술적 끌림이다. 낯선 언어 조합, 상상적·환상적 이미지, 말의 해체와 변형이 돋보이는 시들에서 만날 수 있다. 시적 언어 변이는 시인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비틀거나 변형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ㆍ이미지ㆍ리듬을 만드는 언어적 실험을 뜻한다. 주로 문법 파괴, 어순 전환, 의미 확장, 독특한 단어 선택, 은유, 환유와 중의성 등을 쓴다. 그 효과는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다의성을 기할 수 있으며, 시적 정서를 강화해 개성을 드러낸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운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할 줄 아는 아이
울음소리
모든 소리 삼켜 버리는
제 몸 뒤집는 파도
모허 절벽에 말을 버린다
-「누멘numen」 전문
누멘numen은 신이나 영적 힘, 초월성과 신비의 상징이다.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함과 경외, 영감, 공간의 생명성을 표현한다. 이 시에서 누멘 요소는 상상적·환상적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이 이 시에서 담아내려는 아우라는 무엇일까. 벤야민에 따르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울림이라 했는데, 무엇을 두고 신성함을 체험한 것일까. 특히 인물, 장소, 언어, 장면이 지닌 유일무이한 현존감을 살펴본다면 '아이, 모허 절벽, 말, 말을 버린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신성함은 '밑도 끝도 없이' 우는 데 있다. 우는데 맥락이 없으며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을 모르지 않다는 데 있다.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우는 것이다. 시인은 이 경계 없음. 무제한성, 비논리성을 왜 누멘의 양상으로 삼았을까. 그것은 '파도'와 연결해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리는' 파도의 압도적 존재감에서 누멘을 확인할 수 있다.
파도의 강력한 흡수와 압도는 '침묵의 강요'라 할 수 있다. 절대적 침묵과 고요의 강요는 공포와 비현실적 정서를 자아낸다. 이는 은폐, 망각, 소멸의 이미지와 연결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 확장에서 시의 누멘, 즉 신성성은 제한 없는 말에서 비롯하지만 역설적으로 침묵을 내장하고 있다는 데서 아우라가 있다.
말의 운영자로서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노자는 '무위' 즉 인위를 모르는 아이를 도의 표본으로 인식했다. 아이는 인위적으로 계산하거나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상태는 아이의 순수함, 자연스러움으로 이미지화 할 수 있다. '모허 절벽Cliffs of Moher'은 「헤리포터」 등 영화 속에서 부흥과 숭고, 자연의 장엄함, 죽음과 영원의 경계 등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그 거대한 장소에서 침묵하고자 한다. 장옥근 시의 마술적 끌림이다.
시 「이미지 메이킹」, 「화엄사 흑매화」, 「영원의 벼랑」 등은 낯선 언어 조합, 상상적·환상적 이미지, 말의 해체와 변형이 돋보이는 시들이다. 여기에는 분명 왜곡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언어의 변이는 말의 추락이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장옥근의 언어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이처럼 난해한 것은 누멘이 신성함과 부조리함을 동시에 지니는 까닭과 동일하다.
7. 시마가 다녀간 자리
시마는 시인을 병들게 하며 동시에 시를 시답게 만드는 시적 에너지다. 시마가 다녀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을까. 남은 흔적이 시집으로 묶였다. 시적 집중과 몰입이 주재하고 있다. 그동안 장옥근은 자기 현실에 대해 깊은 연민을 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경계를 넘어 조금은 자유를 얻었다고 할까. 시마가 다녀간 끝이다. 무엇보다도 시인의 배제와 사라짐을 더욱 체감하고 있다. 그만큼 시의 현대성에 가 닿은 것이다.
이 시집은 구시마문驅詩魔文이기도 하고, 영시마문迎詩魔文이기도 하다. 즉 '시마를 몰아내는 시'이기도 하고 '시마를 맞이하는 시'이기도 하다. 무엇이 경계며 무한인지 알 수 없는 누멘을 보여 준다. 이 신성함은 숭고함이다. 신비하여 영감을 주는 힘이지만 시인의 자아를 무너뜨리는 낯선 에너지로도 작용한다.
루돌프 오토의 '거룩한 이중 구조'라 할 수 있다. '신비롭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경외감'인 누미노제Numinose다. 누미노제 경험은 인간이 신성한 존재 앞에 섰을 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두려움과 전율을 동반하면서도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매혹과 신비로움을 느낀다. 시마는 누멘이다.
잎 지는 소매 끝
영영 사라진 얼굴
보지 못한 내 얼굴
멈추는 한 발
-「꽃들의 첫 문장」에서
인간은 자신을 볼 수 없다. 늘 무엇엔가 비추어진 모습이다. 거울의 가역반응처럼 전도되거나 왜곡됐을 뿐 자기를 체감할 수 없다. 있으면서도 볼 수 없는 실존 앞에 허무할 뿐이다. 이 절망 끝에서, 모든 사라지는 존재에서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보게 된다. 그처럼 장옥근 시의 첫 문장은 타자의 얼굴로 시작한다. 거기 피어난 꽃들은 '아직 없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 시마 다녀 가셨다.
다섯 개의 현혹과 다섯 개의 매혹
시인들은 간혹 시마詩魔에 들립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에 몰입하다 생기는 신병神病과 같습니다. 시마, 즉 시 마귀에 걸려들었으니 몸이 아플 뿐 아니라 영혼도 수척합니다. 그런 가운데 시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게 합니다. 나무였던 시가 나비로 변신했으니 눈여겨볼 따름입니다. 시는 신비스럽고 성스러워야 한다고 말라르메가 말했듯 이번 시집은 나비 날갯짓에 묻어나는 소리에 매혹당하기 십상입니다.
이 현혹과 매혹의 긴장을 모두 4부로 나누어 묶었습니다. 제1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는 장옥근의 미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 존재하나 쉽게 볼 수 없는 실존의 성스러움입니다. 시마의 손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2부는 '아직 없는 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흔적입니다. 시마가 손끌고 간 타자입니다. 그가 곧 실현될 나입니다. 제3부는 '초대받지 못한 세상'을 보여 줍니다. 바로 시인이 거주하는 공간입니다. 기억으로도 남지 못할 그곳에서 시마는 나오라 이끕니다. 제4부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기원을 담습니다. 그곳에는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는 백석의 '갈매나무'같은 시적 원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현혹과 매혹을 오가는 아이러니입니다. 나무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다시 나무로 전회하는 가능성을 열어놓습니다. 그것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 열림이기도 합니다. 시마가 다녀간 장옥근의 시는 사람처럼 말하고, 홀로 고고하고, 삶의 이법에 기웃대고, 사물을 거침없이 부리고, 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며 마침내 교묘하게 현혹합니다. 그 순간 첫 문장처럼 매혹당합니다.
13. 시집 해설에서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짓다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1. 시마詩魔가 들렸다
무슨 상관일까. 시 쓰는 일에 몸이, 벗이, 집이, 숨이 어떻다는 걸까. 몸이 상해도, 벗이 떠나도, 집이 허물어져도, 숨이 멈출 것 같아도 시는 오는 것. 모든 일이 좋지 않고 좋아질 리 없을 것 같고 고개 저어 부정해도 시는 지어진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상像을 지우고 시만 골똘히 바라보았다. 그럴 때 시는 사람처럼 말하고, 홀로 고고하고, 삶의 이법에 기웃대고, 사물을 거침없이 부리고, 주림과 목마름 정도는 견뎌내고, 마침내 말을 교묘하게 만들어 현혹했다. 두 번째 시집 「가을 살청」을 펴내고 장옥근에게 시마詩魔가 들렸나 보다. 그는 자신이 시인인지도 모르며 시를 썼다. 시인의 사라짐을 통해 성취한 세계가 그 시집이었다. 시인 없는 빈자리에 시가 들어서길 몇 해, 시 마귀가 램프의 요정처럼 몸을 불렸다. 장옥근의 몸과 마음을 비벼 나타난 시 요정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지난 시집에서 '살청殺靑'했던 푸른 몸이다.
"참새 떼 날개에 겨울 햇살 머물고/문지방 위 명태 한 마리/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겨울 산/한 쪽 귀만 열어 제 몸 다독(「시마詩魔 다녀가셨다」)"일 때 시마가 다녀갔음을 감지한다. 그러므로 이번 시집은 시마가 다녀간 후 남은 형상이며 흔적이다. 시마는 겨울 척박한 공간과 거기 거주하는 존재에 머물다 갔다. 시마는 고통 속에 머물렀으며 삶의 한쪽을 열어 다독였다. 이러한 시의 몰입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처음이며, 고려 대문장가 이규보李奎報다. 시를 짓는 데 열정에 들떠 백낙천은 좋은 시상이 떠오르면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시를 마무리했다. 이때 그를 사로잡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마귀魔鬼'에 비유했다. 이규보 역시 백낙천의 영향을 받아 시마가 들렸다고 여겨 시를 쓰느라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처럼 장옥근도 시의 이마에 맺힌 이슬 때문에 고뇌하며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시 때문에 한편 위로를 찾기도 하지만 또 한편 병이 들기도 했으리라. 백낙천과 이규보는 이 병을 물리치기 위해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쓴다. '시마를 몰아내는 글'이다. 거기에 시마의 죄상을 다섯 가지로 열거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붓만 믿고 뻐기게 만드는 죄,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죄,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묘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만드는 죄,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현혹시키는 죄다. 젠체하고, 대가연하고, 무엇이든 본 듯 눈에 선하게 꾸미고, 생활 현실은 감히 상관없다 말하고, 듣도 보지도 못한 말로 마음을 끄는 죄는 시인이면 적어도 이 중 하나에는 빠지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이 죄에 걸려들지 못한 시인을 어찌 시인이라 할까. 백낙천도, 이규보도 이 죄를 기꺼이 받아 내려는 심산이지 않았을까. 오히려 시에 대해 이들이 보인 애정이며, 시인의 숙명을 말하는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장옥근이 시마에 들렸으므로 이 시집에는 시마 죄상이 담겨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시마의 흔적이 곧 장옥근의 시성詩性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하나하나 그의 죄를 묻자.
2.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붓만 믿고 뻐기는 듯 보이는 시인들이 없지 않다. 어쩌면 실상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시인을 두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거나, 예술가적 자기만족을 지향하는 엘리트 의식이라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은 장옥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세상 인정을 구하는데 미숙하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오로지 스스로 세운 돌탑이다. 이 시적 자율성이 시의 가치를 믿게 하며 궁극적으로 시 쓰는 긍지를 엿보게 한다.
하늘로 간 사람들
어디에 닿았는지
얼굴 없이 발 없이
위쪽으로만 향할 때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
밤내 빗방울 깨지는 소리로 맺힌
처음부터 없었던
소금밭이 멀리까지 이어지는
맨발에 피 흐른다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
붉은 물감 푼 물길 속으로 사라지고
백 일 동안 피어있는 꽃
흔들리는 저녁 다시 오고
푸른 무 싹 고추 갈아 비벼놓은
풋내 나는 김치 양푼 가득
침 고이는
나는 아무래도
여기에 없는
-「아무래도 나는/여기에 없는」 전문
일찍이 김춘수의 시 「꽃」에서 감지했던 존재의 무존재성은 실존의 문제다. 호명하지 않는 사물은, 즉 인식하지 못하는 대상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인은 지금 절망에 이른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누구도 죽은 이들의 소재를 알 수 없다. 그처럼 '얼굴'도, '발'도 지워질 때 아무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시적 주체는 환지통을 앓고 있다. '깨지는 소리'와 갈라진 '소금밭'은 피 흘리는 '맨발'로 환치되는 듯하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기에 없다. '여기'는 어딘가. 믿음이 깨진 세상이다. 거기에 그는 없다. 이 사라짐은 고고하기도 하다. 아직 신의를 저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홀로 고독하려는 낭만적 흥취가 아니다. 그는 "푸른 무 싹 고추 갈아 비벼놓은/풋내 나는 김치 양푼 가득/침 고이는" 변함없는 감각 속에 있다. 자기 존재 이유가 거기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이름 부르지 않는 기억이다. 그 기억을 함께할 수 없는 곳에 시인은 없다고 부정한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시 「시마詩魔 다녀가셨다」, 「그랬구나 그렇구나」, 「초대받은 사람」, 「시구문 밖 봄맞이」, 「꽃들의 첫 문장」 등에서 장옥근이 염두에 둔 시적 가치를 알 수 있다. 내면과 언어가 일치되는 진정성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없는' 존재감. 이 존재의 아이러니는 현실과 거리 두기에 성공한 자의 자기 완결적 태도이기도 하다. 시는 거기에 있다.
3.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이 시집의 두 번째 시적 특성은 '하늘의 이치를 엿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죄'에 있다. 물론 시인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매로 여기기도 한다. 혹은 그리스 테베의 여사제처럼 하늘의 뜻을 듣고 인간에게 전달하는 타고난 임무가 있다고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인은 무격巫覡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전하는 이치를 알아채는 것이 그의 일이며, 이를 설파하는 것이 소임이기도 하다. 죄의 핵심은 인간 한계를 넘어 초월적 진리를 탐구해 신성 모독했기 때문이리라. 역설적으로 이 시집은 보이지 않는 진실에 가닿으려는 시인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시를 운위하며 인간 경험을 넘어선 세계의 근원, 진리를 꿰뚫어 보고자 하는 통찰력이다. 그러므로 천기를 누설하는 행위는 시의 언어로 표명한 예언자적 지성이라 할 수 있다.
경주 남산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눈 내린다
잎 지자마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자목련 꽃봉오리
굳게 닫은 입
균열은 쉽게 일어나지 않고
진 것은 진 것일 뿐
지키지 못한 봄
까치 한 마리
날개를 턴다
아파트 홈통에
물 떨어지는 소리
물 넘기는 나무
이른 봄옷에
우산 없는 사람들
그대로 젖은 눈 맞고
눈 감고 보는
멀어진 시계
-「꽃눈」 전문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하늘의 메시지다. 쉽게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훼손된 부처상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외침이거나, 종교탄압이거나, 일제의 만행 때문에 깨어지고 부서졌으리라 말하면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논리를 세울 때 하늘은 움직이지 않으며 말이 없다. 아니 수없이 말해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시인만이 이 이상한 소리 듣는 것이다. 시인이 눈여겨보는 것은 깨어진 부처의 몸이 아니라 상징의 해체다. 서울 남대문이 방화로 불타던 장면이 생생하다. 국보 1호라는 문화재의 상실보다는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국체를 지탱했다고 믿었던 어떤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종말의 징조 같았다.
정작 시인은 묵시적 예언보다는 폐허에 눈길을 둔다. 거기 내리는 눈을 지켜보고 있다. '눈' 내리는 행위가 곧 하늘의 뜻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연으로 넘어갈 수 없다. '목 잘린 부처님 어깨 위에' 내리는 '눈'은 곧 '자목련 꽃봉오리' 속 '꽃눈'으로 변신했다. 누가 보았는가. 하늘이 보았고, 시인도 보았다. 이러한 존재론적 변모는 '잎 지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장구한 폐허의 시간이 봄꽃의 순간적 자기 절멸의 시간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때 시인은 하늘의 이치를 엿보게 된 것이다.
시인이 누설하고자 했던 천기는 무얼까. '진 것은 진 것일 뿐'이라는 정언 명제다. 하늘은 이미 저질러진 사태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 말한다. 시인은 받들어 '지키지 못한 봄'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새 생명을 염원하는 '균열'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봄날 목마른 나무와 눈에 젖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기고 있다. 몸 털고 일어서는 까치처럼 하늘의 뜻을 향해 가고자 한다. 이제 시간의 기계적 이동은 의미를 잃었다. 이 사물의 논리를 벗어나기 위해 아예 외면하듯 눈감아 버린다.
이처럼 시 「자다르 태양의 인사」, 「눈 쌓인 밤에는 보이는 것이 많다」, 「오월, 깨어진 노래」, 「후조」, 「살아있는 것 자체가 욕망이라서」 등에서 장옥근은 자연, 시간, 존재, 탄생 등 본질에 대해 접근한다. 그것은 사물의 이면을 탐색하는 궁극의 깨달음이다. 일상, 자연 속에 숨은 우주의 이치, 존재의 본질 속에서 작은 변화, 계절의 미세한 틈, 생명의 기운을 읽어내는 게 그의 사명인 듯 보이지 않는 사물에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4.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만물의 형상을 닥치는 대로 묘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죄가 세 번째다. 정밀하고 치밀한 묘사와 재현은 시 쓰기의 덕목이다. '놀람'의 경이로움은 역시 시인의 사라짐에서 비롯한다. 시적 대상, 즉 사물의 형상을 시인의 내면 속에서 추상적으로 재구성하는 순간, 사물의 본질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알기까지 시인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만큼 집중과 몰입 속에 오래도록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의 생몰을 지켜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후 전에 보지 못했던 사물의 현현을 보게 되니 세상이 놀랄 만한 것이다. 시인이 초현실 세계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그도 눈치챈 듯하다. '닥치는 대로'는 무잡하게 사물을 변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부딪칠 때마다 '부딪치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변용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마도 꽤 깊은 밤이었을 거에요
온몸 죄어 오는 허물
방 안 가득 벗어놓고
담장 너머 무한 어둠 속 기어
이곳에 도착한 것은
사위는 고요하고 모두 잠들어
불빛도 별빛도 떨지 않았어요
목이 탔지만 우선 잠부터 잤어요
스스로 나무 동굴 속으로 들어온
직립을 포기한 벌레
처음 일어섰을 때 보이던 것들
걸어가 만나던 것들 모두
또 다른 세계
집세 대신 이파리 열매 먹지 않고
푸념이나 넋두리 폭풍우 치는 밤
이야기 잘 듣는 귀가 될게요
펄럭이는 오방색 두 손 모으는 사람들 마음도
깨어나는 새벽 눈 뜨는 색깔들
햇빛에 투명해진 잎사귀 바람 소리 빗소리
얼마나 좋을까요
새들의 입을 피한다면 날개 펄럭이는 나비가 되는 일은
-「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 전문
시인은 자기인 듯 사물의 형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한 생명의 변태다. 허물 벗은 사물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짐작해서는 안 된다. 다만 시인이 본 것은 '죄어 오고', '기는' 몸의 변화와 움직임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생생하게 보인다.
잠을 잔 후, 이 어둠의 시간을 거치고 또다시 변신한 '벌레'의 모습에 직면한다. 벌레는 '직립을 포기한' 상태다. 여기서 시인은 카프카적 형상을 묘사한다. 일어설 수 없는 자기 모순적 실존 앞에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지속되는 삶의 모순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먹지 않고', '폭풍우 치는' 굶주림과 수난을 겪고 난 후 획득한 것이다. 말하기보다 들으며 기원하는 마음들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순간이다.
고치에서 벌레로 나비로 번지듯 흘러가는 사물의 변화는 낯익다. 존재의 근원적 변화로 읽히기도 하고, 자아와 정체성의 해체와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념화하면 성장과 고통의 통과의례이며 새로운 가능성의 은유다. 그런 가운데 장옥근의 형상 묘사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이곳에 도착한 것은' 나비만이 아니다. 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굿판'마다 옮겨 갔을 시인의 행보가 경이롭다. 잠자던 사물이 깨어나고 눈뜨는 광경을 함께 눈앞에서 본 듯하다.
시 「전회」, 「눈보라」, 「나무와 비」, 「뽑힌 자리」, 「검은 새 한 마리」, 「풍등」 등에서 자연, 일상, 인물, 계절, 환경 등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활발히 재현되고 있다. 이처럼 장옥근은 사물의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묘사함으로써 세계를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평범한 사물에 생생하게 숨결을 불어 넣는 일이기도 하다.
5.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네 번째 죄, 혹은 시적 특성은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도 잊게 만드는 것이다. 비유지만 현실의 고통과 고난을 잠시 잊고 시적 쾌감, 즉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한다. 시적으로는 '몰입'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때 우리는 예술에 매혹되고 빠져들게 되는가.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될 때 작품에 집중한다. 자기 존재의 경계가 약화되거나 잊게 될 때 상상력과 창조성은 극대화된다. 이는 미적 감동이며,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심리적 치유를 통해 몰입 후 일상의 정신적 재충전을 경험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 가닿는 길은
폭우로 불어난 물에 쓸린 풀들은
바라보면 흔들리는 소나무는
손 놓아 오래 끊어진 사람은
능소화 길게 늘어선 석양은
뿌리 힘으로 버틴 천변은
초록 대문 옛집과 맞닿아
둥근 밥상
늙지 않는 어머니가 서 있습니다
-「풍등」 전문
'풍등'을 하늘에 띄우는 마음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먼저 소망과 염원을 상징한다. 인간 현실 너머 다하지 못한 일들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뜻으로 풍등을 띄우는 것이다. 추모의 뜻도 있다. 이별 후 그리움을 하늘에 의탁함으로써 슬픔과 미련을 덜어내는 것이다. 허무와 덧없음이기도 하다. 풍등은 곧 꺼져 사라지는 일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시는 해원解?, 즉 응어리를 푸는 위로와 치유의 뜻을 담았다.
풀과 소나무와 사람과 석양과 천변은 모두 흉터 진 사물로 동일한 자질을 지닌다. 쓸리기도, 흔들리기도, 늘어져 곧 숨을 다할 것 같기도, 안간힘을 다해 버티기도 했을 지난 세월이다. 이제 이들은 옛집에 모였다. 고통과 상처를 잠시 잊는 순간이다. 문학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귀향' 모티프다. 장옥근 시의 특장이기도 하다.
귀향은 잃었던 '나'를 되찾거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여행이다. 도시 혹은 타지에서 겪는 방황, 소외, 상실 이후 다시 고향에 돌아오는 행위는 곧 자아 성찰과 정체성의 회복을 상징한다. '한 사람에게 가닿는 길'이다. 길은 '둥근 밥상'을 거쳐 '어머니'에게 동심원을 그리듯 축소된다. 귀소성의 응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비극성이 드러난다. 성취되지 않는 귀향, 즉 돌아갈 수 없는 아픔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갈매나무'처럼 '늙지 않는 어머니'가 고향 집에 서 있으니 말이다. '풍등'은 곧 꺼져 사라질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옛 기억을 반추하며 한순간 우리는 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몰입이 심화할수록 시인은 고통이나 결핍,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고, 시의 세계 속에 몰입하여 삶의 아픔을 잠시 넘어선다. 몰입의 심화는 시인 자신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위로와 해방감을 주는 힘이 된다. 이러한 양상은 이 시집 4부 시에 담겼다.
6.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시마를 통해 바라본 이 시집의 특성은 '말을 괴상하고 요사스럽게 만들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현혹시키는 죄'에 마지막 가닿는다. 이는 시적 언어의 변이와 그 효과로 나타나는 마술적 끌림이다. 낯선 언어 조합, 상상적·환상적 이미지, 말의 해체와 변형이 돋보이는 시들에서 만날 수 있다. 시적 언어 변이는 시인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비틀거나 변형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ㆍ이미지ㆍ리듬을 만드는 언어적 실험을 뜻한다. 주로 문법 파괴, 어순 전환, 의미 확장, 독특한 단어 선택, 은유, 환유와 중의성 등을 쓴다. 그 효과는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다의성을 기할 수 있으며, 시적 정서를 강화해 개성을 드러낸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운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할 줄 아는 아이
울음소리
모든 소리 삼켜 버리는
제 몸 뒤집는 파도
모허 절벽에 말을 버린다
-「누멘numen」 전문
누멘numen은 신이나 영적 힘, 초월성과 신비의 상징이다.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함과 경외, 영감, 공간의 생명성을 표현한다. 이 시에서 누멘 요소는 상상적·환상적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이 이 시에서 담아내려는 아우라는 무엇일까. 벤야민에 따르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울림이라 했는데, 무엇을 두고 신성함을 체험한 것일까. 특히 인물, 장소, 언어, 장면이 지닌 유일무이한 현존감을 살펴본다면 '아이, 모허 절벽, 말, 말을 버린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신성함은 '밑도 끝도 없이' 우는 데 있다. 우는데 맥락이 없으며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말을 모르지 않다는 데 있다. 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우는 것이다. 시인은 이 경계 없음. 무제한성, 비논리성을 왜 누멘의 양상으로 삼았을까. 그것은 '파도'와 연결해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리는' 파도의 압도적 존재감에서 누멘을 확인할 수 있다.
파도의 강력한 흡수와 압도는 '침묵의 강요'라 할 수 있다. 절대적 침묵과 고요의 강요는 공포와 비현실적 정서를 자아낸다. 이는 은폐, 망각, 소멸의 이미지와 연결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 확장에서 시의 누멘, 즉 신성성은 제한 없는 말에서 비롯하지만 역설적으로 침묵을 내장하고 있다는 데서 아우라가 있다.
말의 운영자로서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노자는 '무위' 즉 인위를 모르는 아이를 도의 표본으로 인식했다. 아이는 인위적으로 계산하거나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상태는 아이의 순수함, 자연스러움으로 이미지화 할 수 있다. '모허 절벽Cliffs of Moher'은 「헤리포터」 등 영화 속에서 부흥과 숭고, 자연의 장엄함, 죽음과 영원의 경계 등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그 거대한 장소에서 침묵하고자 한다. 장옥근 시의 마술적 끌림이다.
시 「이미지 메이킹」, 「화엄사 흑매화」, 「영원의 벼랑」 등은 낯선 언어 조합, 상상적·환상적 이미지, 말의 해체와 변형이 돋보이는 시들이다. 여기에는 분명 왜곡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언어의 변이는 말의 추락이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장옥근의 언어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이처럼 난해한 것은 누멘이 신성함과 부조리함을 동시에 지니는 까닭과 동일하다.
7. 시마가 다녀간 자리
시마는 시인을 병들게 하며 동시에 시를 시답게 만드는 시적 에너지다. 시마가 다녀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을까. 남은 흔적이 시집으로 묶였다. 시적 집중과 몰입이 주재하고 있다. 그동안 장옥근은 자기 현실에 대해 깊은 연민을 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경계를 넘어 조금은 자유를 얻었다고 할까. 시마가 다녀간 끝이다. 무엇보다도 시인의 배제와 사라짐을 더욱 체감하고 있다. 그만큼 시의 현대성에 가 닿은 것이다.
이 시집은 구시마문驅詩魔文이기도 하고, 영시마문迎詩魔文이기도 하다. 즉 '시마를 몰아내는 시'이기도 하고 '시마를 맞이하는 시'이기도 하다. 무엇이 경계며 무한인지 알 수 없는 누멘을 보여 준다. 이 신성함은 숭고함이다. 신비하여 영감을 주는 힘이지만 시인의 자아를 무너뜨리는 낯선 에너지로도 작용한다.
루돌프 오토의 '거룩한 이중 구조'라 할 수 있다. '신비롭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경외감'인 누미노제Numinose다. 누미노제 경험은 인간이 신성한 존재 앞에 섰을 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두려움과 전율을 동반하면서도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매혹과 신비로움을 느낀다. 시마는 누멘이다.
잎 지는 소매 끝
영영 사라진 얼굴
보지 못한 내 얼굴
멈추는 한 발
-「꽃들의 첫 문장」에서
인간은 자신을 볼 수 없다. 늘 무엇엔가 비추어진 모습이다. 거울의 가역반응처럼 전도되거나 왜곡됐을 뿐 자기를 체감할 수 없다. 있으면서도 볼 수 없는 실존 앞에 허무할 뿐이다. 이 절망 끝에서, 모든 사라지는 존재에서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보게 된다. 그처럼 장옥근 시의 첫 문장은 타자의 얼굴로 시작한다. 거기 피어난 꽃들은 '아직 없는 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 시마 다녀 가셨다.
목차
목차
제1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
꽃눈
시마詩魔 다녀가셨다
전회轉回
고립
농부 작가의 말
그래도 그곳에 숨어 있는 별
자다르 태양의 인사
나무와 비
눈 쌓인 밤에는 보이는 것이 많다
성전聖殿
눈보라
누멘numen
어깨너머
화엄사 흑매화
제2부 아직 없는 나
꽃들의 첫 문장
후조
걸어가는 사람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십일월, 떨어지는 비
오월, 깨어진 노래
바닥
살아있는 것 자체가 욕망이라서
시구문 밖 봄맞이
그럴 수 있지
솟대
옛사람이 있는 산 너머
아무래도 나는/여기에 없는
그랬구나 그렇구나
모어
범람
제3부 초대받지 못한 세상
가출습벽
초대받은 사람
이미지 메이킹
뽑힌 자리
검은 새 한 마리
겨울 별자리
못 본 척 전태일
옛 그린파크에서
무거운 책가방
덫
두부 장수 김 씨
9분 17초
배짱이
혼자일까
제4부 지워지지 않는 기억
풍등
어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원의 벼랑
원형구
용두 저수지
주홍 글씨
고부 초등학교
그들의 세컨 하우스
연곡사
봉정암 가는 길
그날 그곳에서
주름진 택배
받지 못한 편지
추석 성묫길
유령게처럼
여백
해설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짓다(이민호)
굿판을 날아다니는 제비꼬리나비
꽃눈
시마詩魔 다녀가셨다
전회轉回
고립
농부 작가의 말
그래도 그곳에 숨어 있는 별
자다르 태양의 인사
나무와 비
눈 쌓인 밤에는 보이는 것이 많다
성전聖殿
눈보라
누멘numen
어깨너머
화엄사 흑매화
제2부 아직 없는 나
꽃들의 첫 문장
후조
걸어가는 사람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십일월, 떨어지는 비
오월, 깨어진 노래
바닥
살아있는 것 자체가 욕망이라서
시구문 밖 봄맞이
그럴 수 있지
솟대
옛사람이 있는 산 너머
아무래도 나는/여기에 없는
그랬구나 그렇구나
모어
범람
제3부 초대받지 못한 세상
가출습벽
초대받은 사람
이미지 메이킹
뽑힌 자리
검은 새 한 마리
겨울 별자리
못 본 척 전태일
옛 그린파크에서
무거운 책가방
덫
두부 장수 김 씨
9분 17초
배짱이
혼자일까
제4부 지워지지 않는 기억
풍등
어떤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원의 벼랑
원형구
용두 저수지
주홍 글씨
고부 초등학교
그들의 세컨 하우스
연곡사
봉정암 가는 길
그날 그곳에서
주름진 택배
받지 못한 편지
추석 성묫길
유령게처럼
여백
해설 구시마문驅詩魔文을 짓다(이민호)
저자
저자
장옥근
2013년 『시와 경계』로 등단하여 시집 『눈 많은 그늘 나비처럼』, 「가을 살청」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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