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종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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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근본 요지를 정리한 책. 신라 시대 원효 대사가 썼다.
7세기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이 광범위하게 번역되어 수입되던 시기였는데, 원효는 그 대승경전 대다수를 섭렵하여 각 경전의 요지를 일필휘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펴냈으니 법화경종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법화경은 소승과 대승의 경계가 되는 중요한 경전이며, 삼승을 마지막 일승으로 통일하는 대표적인 대승불전이다. 무엇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누구이신지 그 정체를 정확하게 밝힌 경전이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석존께서는 자신이 사실 29살에 성불한 것이 아니라 백천만억 나유타 겁, 무량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했음을 선언하시는데, 이는 부처님이 인간이기 이전에 이미 부처님이심을 알리신 것이었다. 원효는 이러한 법화경의 요지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래는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불타는 삼계로 뛰어든다.(佛猶大長者.以衆生爲子.入三界火宅.救諸焚燒苦. - 대승기신론소기회본)"
곧 삼계의 지존께서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탐진치 삼독으로 불타는 사바세계에 직접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원효는 이를 잘 알았으며, 그 자신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번뇌 속에서 괴로워하는 삶을 살았다. 묘법연화경 제목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가 그러한 번뇌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물에 젖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인간 석가모니 붓다가 실제 삼계의 지존이라는 선언은 충격 그 자체다. 또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세 가지 다른 불교의 가르침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도 놀랍다. 법화경 자체가 그래서 쉽지 않은데, 원효는 이를 종횡문필의 실력으로 정리해준다. 삼승이 일승으로 어떻게 이 경전에서 통일되는지 보여준다. 각종 대승불전을 일이관지하는 그의 실력이 여기 법화경종요에서도 드러난다.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이 불립문자라는 틀에 묶여 오히려 죽어가는 이 시대, 원효의 이 법화경 요약본은 신라 시대를 넘어 부처님에 대한 지혜를 전해주는 큰 단서다. 지혜를 밝히는데 중요한 등대가 되는 책이다. 법화경을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법화경의 요지를 밝혀줄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7세기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이 광범위하게 번역되어 수입되던 시기였는데, 원효는 그 대승경전 대다수를 섭렵하여 각 경전의 요지를 일필휘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펴냈으니 법화경종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법화경은 소승과 대승의 경계가 되는 중요한 경전이며, 삼승을 마지막 일승으로 통일하는 대표적인 대승불전이다. 무엇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누구이신지 그 정체를 정확하게 밝힌 경전이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석존께서는 자신이 사실 29살에 성불한 것이 아니라 백천만억 나유타 겁, 무량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했음을 선언하시는데, 이는 부처님이 인간이기 이전에 이미 부처님이심을 알리신 것이었다. 원효는 이러한 법화경의 요지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래는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불타는 삼계로 뛰어든다.(佛猶大長者.以衆生爲子.入三界火宅.救諸焚燒苦. - 대승기신론소기회본)"
곧 삼계의 지존께서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탐진치 삼독으로 불타는 사바세계에 직접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원효는 이를 잘 알았으며, 그 자신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번뇌 속에서 괴로워하는 삶을 살았다. 묘법연화경 제목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가 그러한 번뇌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물에 젖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인간 석가모니 붓다가 실제 삼계의 지존이라는 선언은 충격 그 자체다. 또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세 가지 다른 불교의 가르침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도 놀랍다. 법화경 자체가 그래서 쉽지 않은데, 원효는 이를 종횡문필의 실력으로 정리해준다. 삼승이 일승으로 어떻게 이 경전에서 통일되는지 보여준다. 각종 대승불전을 일이관지하는 그의 실력이 여기 법화경종요에서도 드러난다.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이 불립문자라는 틀에 묶여 오히려 죽어가는 이 시대, 원효의 이 법화경 요약본은 신라 시대를 넘어 부처님에 대한 지혜를 전해주는 큰 단서다. 지혜를 밝히는데 중요한 등대가 되는 책이다. 법화경을 깊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법화경의 요지를 밝혀줄 중요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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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원효의 법화 사상
원효 대사가 살던 7세기는 동아시아 세계가 새로 재편되던 역사의 대격변기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삼국 시대가 대륙의 당나라에 의해 그 질서가 정리되면서 신라로 통일되던 시기였고, 동시에 백제가 사라지면서 일본이 독자적인 나라로 재탄생한 시기였다. 하지만 혼란스럽던 이 시기는 불교사로 보면 동아시아 불교의 교학이 집성되어 흥왕한 황금기였다. 원효 대사는 그 시절 동아시아로 건너온 대승 불교의 교학들을 거의 총망라하여 정리한 빛나는 선지식이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특히나 우리 한국의 불교도들은 원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원효의 사상에 대해 많은 재발견이 이뤄지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말법 시대에 처한 현시대의 불교도들은 그의 사상에 대해 알기 어렵다. 세계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불교는 선종 위주의 조계종에다 유물론적 세계관, 실증사학의 대승비불설이 근저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불립문자에 집착하기에 교학에 빈약하고, 지계도 느슨하다. 게다가 현대의 유물론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대승 불교의 신화적 성격을 배격하는 경향이 강하게 퍼져 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대승 경전을 신화 또는 환타지로 취급한다. 대승 불전 자체를 부처님 재세 시에 없었던 경전으로 취급하고, 그때문에 진짜 부처님의 기록을 찾는다며 남방 불교권으로 유학을 가기도 한다. 대승비불설, 이른바 대승 불전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 아니란 견해가 은연 중에 퍼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효는 당시 교학을 종횡으로 섭렵한 분명한 교종 승려였고, 법화경이나 열반경, 화엄경을 전부 부처님의 친설로 간주한 대승 신행자였다. 신화가 살아있던 시기였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의심치 않았으니 대승 불전의 내용들도 다 진실이라 믿었을 것이다. 화엄경이 용궁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 교단은 현재에는 한국에 영산불교 현지사 하나 뿐이지만, 그 시절 원효가 소를 달았던 금강삼매경 자체도 용궁에서 가져온 경전이었으니 원효나 신라인들 역시 용궁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지금 현대인들의 인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해야 한다.
더구나 당대 불교계에서는 당나라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들여온 신유식학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원효 역시 유식학에 기반하여 [대승기신론소]를 썼으며, 아뢰야식을 중요하게 간주했었다.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을 믿었으니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영혼과 윤회, 사후세계도 기본적으로 믿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물론에 입각해 윤회마저 없다고 하는 현재의 일부 불교인들과는 절대로 그 결이 같지 않다.
따라서 원효가 이해했던 대승불교는 근본적으로 현대인의 것과 다르다. 현재의 조계종,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성불 자체가 대승 사상과는 사실 잘 맞지 않는다. 달마는 내면의 본성을 보는 것이 성불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12연기의 근본 무명을 관하는 경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번뇌를 끊어도 다시 번뇌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 아라한 이하다. 화엄경의 10지 보살의 경지는 견성으로 한 번에 오를 수 없으며, 아라한은 그 보살에도 미치지 못한다. 본래의 대승 불전에서도 아라한은 분명 부처님의 지위에 미치지 못한다.
無異想者.如阿羅漢.於有餘依生死界中.一向發起?背之心.於無餘依涅槃界中.一向發起寂靜之想.如來於彼無差別想.安住第一平等捨故.
"다른 생각이 없으며"라고 한 것은, 아라한은 유여의有餘依의 생사계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무여의無餘依의 열반계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적정寂靜한 생각을 내지만, 여래는 저런 차별된 생각이 없고 제일 평등함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 [본업경소本業經疏], [인과품因果品] 중에서
사실 법화경에서 석존께서는 사리불과 같이 지혜로운 자들이 세간에 가득 들어차서 무량겁을 사유한다 해도, 무상정등각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공성을 깊이 이해한 사리불도 자력으론 성불할 수 없다면, 견성이 어찌 성불이겠는가? 그렇게 호흡수행의 무용성을 분명히 하신 후에 석존께선 일대사인연을 밝히셨으니, 여래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세간에 나타나셨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자력이 아닌 타력성불을 말씀하신 것이며, 염불수행의 이유를 알려주신 것이다. 원효는 법화경의 이 일대사 인연을 일찍이 잘 알았다.
佛猶大長者.以衆生爲子.入三界火宅.救諸焚燒苦.故言救世.救世之德.正是大悲.
부처는 대장자大長者와 같아서 중생을 자식으로 여기는지라. 삼계三界의 화택火宅에 들어가 모든 불타는 고통을 구원하기 때문에 '구세救世'라 말하였으니, 이 구세의 덕이 바로 대비인 것이다.
-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一] 중에서
원효가 말하는 법화경은 단순명료하고 뚜렷하다. 곧 본디 정토에 계시는 석가모니불 세존께서는 우리 죄업 중생들을 구하시기 위해 이 예토에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원효가 전 신라를 돌아다니면서 나무아미타불과 나무관세음보살을 알린 것은, 분명히 염불을 통해 우리 죄업 중생들이 저 극락 정토에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떠한가? 거만한 증상만이 되어서 나 혼자 이미 부처가 된 것처럼 처신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은가? 무애행을 빙자하여 계율을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살고 있진 않는가?
대승육정참회에서 볼 수 있듯이 원효는 무애행으로 살기보단 지심으로 참회하며 살던 거사였다. 정토에 나길 기도하며 염불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이 [법화경종요]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승으로 들어가는 가장 첫 관문이자 소승에서 벗어나는 출구이다. 이 일대사 인연을 믿고 대승으로 들어가는 문을, 독자들은 여기 [법화경종요]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효 대사가 살던 7세기는 동아시아 세계가 새로 재편되던 역사의 대격변기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삼국 시대가 대륙의 당나라에 의해 그 질서가 정리되면서 신라로 통일되던 시기였고, 동시에 백제가 사라지면서 일본이 독자적인 나라로 재탄생한 시기였다. 하지만 혼란스럽던 이 시기는 불교사로 보면 동아시아 불교의 교학이 집성되어 흥왕한 황금기였다. 원효 대사는 그 시절 동아시아로 건너온 대승 불교의 교학들을 거의 총망라하여 정리한 빛나는 선지식이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특히나 우리 한국의 불교도들은 원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원효의 사상에 대해 많은 재발견이 이뤄지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말법 시대에 처한 현시대의 불교도들은 그의 사상에 대해 알기 어렵다. 세계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불교는 선종 위주의 조계종에다 유물론적 세계관, 실증사학의 대승비불설이 근저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불립문자에 집착하기에 교학에 빈약하고, 지계도 느슨하다. 게다가 현대의 유물론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대승 불교의 신화적 성격을 배격하는 경향이 강하게 퍼져 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대승 경전을 신화 또는 환타지로 취급한다. 대승 불전 자체를 부처님 재세 시에 없었던 경전으로 취급하고, 그때문에 진짜 부처님의 기록을 찾는다며 남방 불교권으로 유학을 가기도 한다. 대승비불설, 이른바 대승 불전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 아니란 견해가 은연 중에 퍼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효는 당시 교학을 종횡으로 섭렵한 분명한 교종 승려였고, 법화경이나 열반경, 화엄경을 전부 부처님의 친설로 간주한 대승 신행자였다. 신화가 살아있던 시기였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의심치 않았으니 대승 불전의 내용들도 다 진실이라 믿었을 것이다. 화엄경이 용궁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 교단은 현재에는 한국에 영산불교 현지사 하나 뿐이지만, 그 시절 원효가 소를 달았던 금강삼매경 자체도 용궁에서 가져온 경전이었으니 원효나 신라인들 역시 용궁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지금 현대인들의 인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해야 한다.
더구나 당대 불교계에서는 당나라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들여온 신유식학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원효 역시 유식학에 기반하여 [대승기신론소]를 썼으며, 아뢰야식을 중요하게 간주했었다.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을 믿었으니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영혼과 윤회, 사후세계도 기본적으로 믿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물론에 입각해 윤회마저 없다고 하는 현재의 일부 불교인들과는 절대로 그 결이 같지 않다.
따라서 원효가 이해했던 대승불교는 근본적으로 현대인의 것과 다르다. 현재의 조계종,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성불 자체가 대승 사상과는 사실 잘 맞지 않는다. 달마는 내면의 본성을 보는 것이 성불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12연기의 근본 무명을 관하는 경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번뇌를 끊어도 다시 번뇌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 아라한 이하다. 화엄경의 10지 보살의 경지는 견성으로 한 번에 오를 수 없으며, 아라한은 그 보살에도 미치지 못한다. 본래의 대승 불전에서도 아라한은 분명 부처님의 지위에 미치지 못한다.
無異想者.如阿羅漢.於有餘依生死界中.一向發起?背之心.於無餘依涅槃界中.一向發起寂靜之想.如來於彼無差別想.安住第一平等捨故.
"다른 생각이 없으며"라고 한 것은, 아라한은 유여의有餘依의 생사계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무여의無餘依의 열반계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적정寂靜한 생각을 내지만, 여래는 저런 차별된 생각이 없고 제일 평등함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 [본업경소本業經疏], [인과품因果品] 중에서
사실 법화경에서 석존께서는 사리불과 같이 지혜로운 자들이 세간에 가득 들어차서 무량겁을 사유한다 해도, 무상정등각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공성을 깊이 이해한 사리불도 자력으론 성불할 수 없다면, 견성이 어찌 성불이겠는가? 그렇게 호흡수행의 무용성을 분명히 하신 후에 석존께선 일대사인연을 밝히셨으니, 여래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세간에 나타나셨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자력이 아닌 타력성불을 말씀하신 것이며, 염불수행의 이유를 알려주신 것이다. 원효는 법화경의 이 일대사 인연을 일찍이 잘 알았다.
佛猶大長者.以衆生爲子.入三界火宅.救諸焚燒苦.故言救世.救世之德.正是大悲.
부처는 대장자大長者와 같아서 중생을 자식으로 여기는지라. 삼계三界의 화택火宅에 들어가 모든 불타는 고통을 구원하기 때문에 '구세救世'라 말하였으니, 이 구세의 덕이 바로 대비인 것이다.
-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一] 중에서
원효가 말하는 법화경은 단순명료하고 뚜렷하다. 곧 본디 정토에 계시는 석가모니불 세존께서는 우리 죄업 중생들을 구하시기 위해 이 예토에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원효가 전 신라를 돌아다니면서 나무아미타불과 나무관세음보살을 알린 것은, 분명히 염불을 통해 우리 죄업 중생들이 저 극락 정토에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현대인들은 어떠한가? 거만한 증상만이 되어서 나 혼자 이미 부처가 된 것처럼 처신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은가? 무애행을 빙자하여 계율을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살고 있진 않는가?
대승육정참회에서 볼 수 있듯이 원효는 무애행으로 살기보단 지심으로 참회하며 살던 거사였다. 정토에 나길 기도하며 염불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이 [법화경종요] 역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승으로 들어가는 가장 첫 관문이자 소승에서 벗어나는 출구이다. 이 일대사 인연을 믿고 대승으로 들어가는 문을, 독자들은 여기 [법화경종요]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제1. 큰 뜻을 서술함
제2. 경의 종지를 설명함
제3. 작용을 밝힘
제4. 경전의 이름을 해석함
제5. 가르침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밝힘
특별 부록
1. 원효의 법화 사상
2. 원효의 일생
3. 법화경 약찬게
제1. 큰 뜻을 서술함
제2. 경의 종지를 설명함
제3. 작용을 밝힘
제4. 경전의 이름을 해석함
제5. 가르침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밝힘
특별 부록
1. 원효의 법화 사상
2. 원효의 일생
3. 법화경 약찬게
저자
저자
원효대사
*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
7세기 신라 시대의 승려. 속가의 성은 설씨이고, 동해 상주사람이다. 내말 담날의 아들로 진평왕 39년(617) 압량군 불지촌(佛地村,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사라수(娑羅樹; 석가모니불께서 열반하신 자리의 나무 이름)아래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출가하여 삼학(三學; 계정혜戒定慧 세 가지 학문)에 정통하였는데, 특정한 스승을 따르지 않고 두루 돌아다니며 수학하였다.
650년 당의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려고 의상과 함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요동에서 고구려에게 첩자로 몰려 실패하였다. 661년에 재차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한 유학을 시도하였다. 배를 타러 당항성(唐項城,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으로 가던 어느 날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토굴에서 유숙하였는데, 밤에 바가지에 고인 물을 시원하게 마신 것이 아침에 깨어서 보니 해골 바가지의 썩은 물이었다. 구역질을 하다가 일체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을 깨닫고 대오하게 된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만법유식의 이치를 깨달은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남게 된다. 반면 의상은 당나라 유학을 지속하여 이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그 뒤 분황사에 머물면서 〈화엄경소〉의 저술에 힘쓰다가,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이후에는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칭하면서 신라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가는 곳마다 '나무아미타불'과 '나무관세음보살' 염불을 전하여 온 신라에 염불 수행을 보급하였다. 염불을 통해 불교를 잘 모르는 민중들도 정토에 날 수 있음을 일깨웠으니, 교학에도 깊은 동시에 민중 교화에도 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년에는 경주 고선사에 머무르다가 686년 혈사에서 7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염불을 전파하는 동시에 불경 연구에도 힘써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100여종 240여권의 저술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일부만 전한다. 현재 전하는 저술은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이장의二障義〉, 〈판비량론判比量論〉,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등이다.
7세기 신라 시대의 승려. 속가의 성은 설씨이고, 동해 상주사람이다. 내말 담날의 아들로 진평왕 39년(617) 압량군 불지촌(佛地村,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에서 사라수(娑羅樹; 석가모니불께서 열반하신 자리의 나무 이름)아래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출가하여 삼학(三學; 계정혜戒定慧 세 가지 학문)에 정통하였는데, 특정한 스승을 따르지 않고 두루 돌아다니며 수학하였다.
650년 당의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들여온 신유식(新唯識)을 배우려고 의상과 함께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요동에서 고구려에게 첩자로 몰려 실패하였다. 661년에 재차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한 유학을 시도하였다. 배를 타러 당항성(唐項城,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으로 가던 어느 날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토굴에서 유숙하였는데, 밤에 바가지에 고인 물을 시원하게 마신 것이 아침에 깨어서 보니 해골 바가지의 썩은 물이었다. 구역질을 하다가 일체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을 깨닫고 대오하게 된다.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만법유식의 이치를 깨달은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남게 된다. 반면 의상은 당나라 유학을 지속하여 이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그 뒤 분황사에 머물면서 〈화엄경소〉의 저술에 힘쓰다가,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이후에는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칭하면서 신라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가는 곳마다 '나무아미타불'과 '나무관세음보살' 염불을 전하여 온 신라에 염불 수행을 보급하였다. 염불을 통해 불교를 잘 모르는 민중들도 정토에 날 수 있음을 일깨웠으니, 교학에도 깊은 동시에 민중 교화에도 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만년에는 경주 고선사에 머무르다가 686년 혈사에서 7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염불을 전파하는 동시에 불경 연구에도 힘써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100여종 240여권의 저술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일부만 전한다. 현재 전하는 저술은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이장의二障義〉, 〈판비량론判比量論〉,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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