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몽테뉴로 돌아가다(반양장)
레비스트로스의 처음과 마지막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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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세기를 초월해 몽테뉴의 사상을 공유하며
오늘 우리에게 인간다움과 문명의 야만성을 다시 묻는다
이 책은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민족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남긴 두 편의 미공개 대중강연을 엮은 것이다. 첫 번째는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 사회를 탐사하던 젊은 시절에 한 1937년 1월 강연이고, 두 번째는 구조주의를 유행시키고 20세기 서구 지성사의 거목이 된 노년 시절에 한 1992년 4월 강연이다. 반세기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열린 것이지만 서로 잇닿아 있다. 프랑스의 인문주의자 몽테뉴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를 연구하면서 유럽 문명의 뿌리 깊은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서구적 시각의 이분법을 교정하려 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400년 전에 이미 신대륙 발견과 그곳의 원주민 문제를 깊이 성찰했던 몽테뉴에 의지한 바 크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학적 사고의 선구자로 몽테뉴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흠모와 존경을 드러내며, 그의 길고 긴 지적 여정을 가늠하게 한다.
첫 번째 강연은 민족학이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논한다.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진화론의 주요 논리를 규탄하고 문화전파주의를 설파하던 시기를 증언해주고 있다. 두 번째 강연은 몽테뉴의 유명한 에세이 「식인종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야만’과 ‘미개’의 정의를 세 가지 방식으로 정리한다. 더불어 이 책에는 강연을 편집한 인류학자 엠마뉴엘 데보의 충실한 해설이 실려 있고, 역자는 강연을 보충하는 몽테뉴의 에세이 두 편을 새로이 번역해 추가했다.
오늘 우리에게 인간다움과 문명의 야만성을 다시 묻는다
이 책은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민족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남긴 두 편의 미공개 대중강연을 엮은 것이다. 첫 번째는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 사회를 탐사하던 젊은 시절에 한 1937년 1월 강연이고, 두 번째는 구조주의를 유행시키고 20세기 서구 지성사의 거목이 된 노년 시절에 한 1992년 4월 강연이다. 반세기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열린 것이지만 서로 잇닿아 있다. 프랑스의 인문주의자 몽테뉴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를 연구하면서 유럽 문명의 뿌리 깊은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서구적 시각의 이분법을 교정하려 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400년 전에 이미 신대륙 발견과 그곳의 원주민 문제를 깊이 성찰했던 몽테뉴에 의지한 바 크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학적 사고의 선구자로 몽테뉴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흠모와 존경을 드러내며, 그의 길고 긴 지적 여정을 가늠하게 한다.
첫 번째 강연은 민족학이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논한다.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진화론의 주요 논리를 규탄하고 문화전파주의를 설파하던 시기를 증언해주고 있다. 두 번째 강연은 몽테뉴의 유명한 에세이 「식인종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야만’과 ‘미개’의 정의를 세 가지 방식으로 정리한다. 더불어 이 책에는 강연을 편집한 인류학자 엠마뉴엘 데보의 충실한 해설이 실려 있고, 역자는 강연을 보충하는 몽테뉴의 에세이 두 편을 새로이 번역해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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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레비스트로스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인류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1935년(27세) 망명하듯 브라질(상파울루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부임)로 건너간 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분야를 바꿔 원시 상태 그대로 사는 불쌍하고 홀대받는 사람들,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 있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민족학은 혁명적인 학문인가
1937년 1월 강연은 바로 레비스트로스의 명저 『슬픈 열대』(1955)에 기록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을 현지 조사한(1935년 11월~1936년 3월) 이후 잠시 파리에 들어와 있던 시기에 열렸다. 원주민 사회를 직접 관찰하고 체험한 젊은 인류학자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듯 민족지학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밝힌다.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혁명주의자)이고 동시에 원시 그대로의 사회에서는 보수주의자가 됩니다"(54쪽). 민족지학자는 자신들이 연구하는 사회가 온전히 지켜지고 문명에 의해 최대한 덜 훼손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민족지학적 인식이 발전하면 동시에 그 사회의 혁명적(비판적) 사유도 태동한다고 보았다. 일례로 그리스의 회의주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혀 다른 문화권인 인도를 정복하던 시기에 형성됐고, 몽테뉴가 보여주듯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들의 지적 대변동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이해는 자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병행된다.
문화전파론자 시절의 레비스트로스
1937년 강연은 당시 인류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문화전파주의 논쟁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을 드러낸다. 이것은 훗날 친족과 신화를 분석하면서 구조주의로 본격 진입하기 전에, 이른바 문화전파론자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 보류 시기'를 증언한다. 그렇지만 이미 이때도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간파했다(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의 문화상대주의 편에 있었다). 이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모든 진화론적 사고와 논리를 비판함으로써 자기 사유를 진전시켰다는 말이 된다. 강연에서 그가 말한 '원시 그대로'라는 용어는 원시 부족들이 인류의 기원에 더 가깝거나 우리와 비교해서 뒤떨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명화된 우리 사회만큼 그들 역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다른 방식으로 진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일정한 질서나 규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일 같은 건 없다고 보았다.
문화 현상의 불규칙성이 민족학을 가치 있게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영역'이라는 용어로 어떤 문화적 특질이 생겨난 중심 권역을 정의하고 그것이 지리적 공간상에 퍼지고 거리에 따라 점점 사라지는 식의 정통 전파주의를, 미국 남부에서 발견된 도자기 장식의 고고학적 사례로 설명한다. 즉 중심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장식을 수반하고 주변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빈곤하고 희미한 장식의 흔적만 남는다는 것. 하지만 왜 어떤 장식은 외부로 전파되고 외부에서 채택될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는 어떤 '의도성'을 설명할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선사시대의 석기 제작술(간석기와 뗀석기) 등을 예로 들며 어떤 문화 현상이 공간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나타나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그 역시 정통 전파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그 불규칙성이야말로 민족지학 자료 체계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로서, 민족지학을 가치 있게 할 뿐 아니라 모든 문화는 저마다 내적 밀도를 지니고 외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차용 여부에 따라 한 사회의 발전과 고립의 문제가 달려 있음을 언급한다. 그 옛날 찬란한 아즈텍 문명이 소수의 스페인 침략자에 의해 붕괴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접촉과 교류가 문명의 물질적ㆍ도덕적 진보를 이루지만 전통의 파괴도 초래한다는 역설적 상황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 몽테뉴 서거 400주년 기념 강연
1992년 4월 강연은 신대륙 발견 500주년과 몽테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 그해는 레비스트로스가 평소에 각별히 생각하던 대륙과 작가를 동시에 기리는 의미가 있었다. 특별히 이 강연은 탐험가 장 드 레리(Jean de L?ry)를 조명하는 성격도 있다. 그는 몽테뉴와 동시대인으로 '남극 프랑스령'(브라질에 세워진 프랑스령 식민지)에 다녀오고 『브라질 영토 여행기』를 기록했다. 그 책은 몽테뉴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강연의 큰 주제는 몽테뉴의 에세이 「식인종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야만'과 '미개'에 대한 정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신대륙의 사회와 주민을 살펴본 뒤 다음과 같은 소견을 밝힌다.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나라에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은 전혀 없는 듯하다. 사람들 누구나 자기 풍습에 없는 것을 야만으로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실제로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풍습, 우리가 관찰한 사례 말고는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신대륙에도 역시 완전한 종교와 완전한 정치가 있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하고 비할 바 없는 풍습이 있다." 몽테뉴의 이 말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게 금언이 되고 따라야 할 길이 되었다.
몽테뉴는 이타주의의 예찬자… 구조주의의 예견자!
레비스트로스의 강연 속에는 몽테뉴의 가장 잘 알려진 면모가 드러나 있다. 즉 그는 이타주의(alt?rit?)의 예찬자이고, 우리와 다른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원주민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이고, 그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 덕분에 우리의 세계도 더 풍요로워졌으므로 그들은 우리의 존중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가 요약한 이런 몽테뉴의 시각은 인류의 분할과 분열을 전제로 하며, 이는 한편 고전적인 전파주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원시주의에 대한 예찬이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옹호든, 1937년 강연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 속에 몽테뉴의 존재가 은밀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92년의 강연은 몽테뉴의 영향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알려준다. 레비스트로스는 몽테뉴가 모든 종류의 개량주의를 경계했음을 상기시킨다. 몽테뉴는 한 사회는 수많은 부분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를 이루는데, 만약 그 가운데 하나를 바꾸면 그 나머지도 연이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몽테뉴는 현대 인류학의 기능주의를, 심지어 구조주의를 내다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민족학은 혁명적인 학문인가
1937년 1월 강연은 바로 레비스트로스의 명저 『슬픈 열대』(1955)에 기록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을 현지 조사한(1935년 11월~1936년 3월) 이후 잠시 파리에 들어와 있던 시기에 열렸다. 원주민 사회를 직접 관찰하고 체험한 젊은 인류학자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듯 민족지학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밝힌다.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혁명주의자)이고 동시에 원시 그대로의 사회에서는 보수주의자가 됩니다"(54쪽). 민족지학자는 자신들이 연구하는 사회가 온전히 지켜지고 문명에 의해 최대한 덜 훼손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민족지학적 인식이 발전하면 동시에 그 사회의 혁명적(비판적) 사유도 태동한다고 보았다. 일례로 그리스의 회의주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혀 다른 문화권인 인도를 정복하던 시기에 형성됐고, 몽테뉴가 보여주듯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들의 지적 대변동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이해는 자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병행된다.
문화전파론자 시절의 레비스트로스
1937년 강연은 당시 인류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문화전파주의 논쟁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을 드러낸다. 이것은 훗날 친족과 신화를 분석하면서 구조주의로 본격 진입하기 전에, 이른바 문화전파론자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 보류 시기'를 증언한다. 그렇지만 이미 이때도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간파했다(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의 문화상대주의 편에 있었다). 이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모든 진화론적 사고와 논리를 비판함으로써 자기 사유를 진전시켰다는 말이 된다. 강연에서 그가 말한 '원시 그대로'라는 용어는 원시 부족들이 인류의 기원에 더 가깝거나 우리와 비교해서 뒤떨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명화된 우리 사회만큼 그들 역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다른 방식으로 진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일정한 질서나 규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일 같은 건 없다고 보았다.
문화 현상의 불규칙성이 민족학을 가치 있게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영역'이라는 용어로 어떤 문화적 특질이 생겨난 중심 권역을 정의하고 그것이 지리적 공간상에 퍼지고 거리에 따라 점점 사라지는 식의 정통 전파주의를, 미국 남부에서 발견된 도자기 장식의 고고학적 사례로 설명한다. 즉 중심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장식을 수반하고 주변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빈곤하고 희미한 장식의 흔적만 남는다는 것. 하지만 왜 어떤 장식은 외부로 전파되고 외부에서 채택될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는 어떤 '의도성'을 설명할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선사시대의 석기 제작술(간석기와 뗀석기) 등을 예로 들며 어떤 문화 현상이 공간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나타나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그 역시 정통 전파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그 불규칙성이야말로 민족지학 자료 체계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로서, 민족지학을 가치 있게 할 뿐 아니라 모든 문화는 저마다 내적 밀도를 지니고 외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차용 여부에 따라 한 사회의 발전과 고립의 문제가 달려 있음을 언급한다. 그 옛날 찬란한 아즈텍 문명이 소수의 스페인 침략자에 의해 붕괴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접촉과 교류가 문명의 물질적ㆍ도덕적 진보를 이루지만 전통의 파괴도 초래한다는 역설적 상황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 몽테뉴 서거 400주년 기념 강연
1992년 4월 강연은 신대륙 발견 500주년과 몽테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 그해는 레비스트로스가 평소에 각별히 생각하던 대륙과 작가를 동시에 기리는 의미가 있었다. 특별히 이 강연은 탐험가 장 드 레리(Jean de L?ry)를 조명하는 성격도 있다. 그는 몽테뉴와 동시대인으로 '남극 프랑스령'(브라질에 세워진 프랑스령 식민지)에 다녀오고 『브라질 영토 여행기』를 기록했다. 그 책은 몽테뉴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강연의 큰 주제는 몽테뉴의 에세이 「식인종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야만'과 '미개'에 대한 정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신대륙의 사회와 주민을 살펴본 뒤 다음과 같은 소견을 밝힌다.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나라에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은 전혀 없는 듯하다. 사람들 누구나 자기 풍습에 없는 것을 야만으로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실제로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풍습, 우리가 관찰한 사례 말고는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신대륙에도 역시 완전한 종교와 완전한 정치가 있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하고 비할 바 없는 풍습이 있다." 몽테뉴의 이 말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게 금언이 되고 따라야 할 길이 되었다.
몽테뉴는 이타주의의 예찬자… 구조주의의 예견자!
레비스트로스의 강연 속에는 몽테뉴의 가장 잘 알려진 면모가 드러나 있다. 즉 그는 이타주의(alt?rit?)의 예찬자이고, 우리와 다른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원주민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이고, 그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 덕분에 우리의 세계도 더 풍요로워졌으므로 그들은 우리의 존중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가 요약한 이런 몽테뉴의 시각은 인류의 분할과 분열을 전제로 하며, 이는 한편 고전적인 전파주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원시주의에 대한 예찬이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옹호든, 1937년 강연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 속에 몽테뉴의 존재가 은밀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92년의 강연은 몽테뉴의 영향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알려준다. 레비스트로스는 몽테뉴가 모든 종류의 개량주의를 경계했음을 상기시킨다. 몽테뉴는 한 사회는 수많은 부분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를 이루는데, 만약 그 가운데 하나를 바꾸면 그 나머지도 연이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몽테뉴는 현대 인류학의 기능주의를, 심지어 구조주의를 내다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해설|레비스트로스 사상 속의 몽테뉴
첫 번째 강연 ----- 1937년 1월 29일
혁명적 학문으로서의 민족지학
두 번째 강연 ----- 1992년 4월 9일
다시 몽테뉴로 돌아가다
몽테뉴 더 읽어보기
식인종에 대하여
마차들에 대하여
옮긴이의 덧붙임|서구 문명의 오만에 균열을 내다
레비스트로스 연보
첫 번째 강연 ----- 1937년 1월 29일
혁명적 학문으로서의 민족지학
두 번째 강연 ----- 1992년 4월 9일
다시 몽테뉴로 돌아가다
몽테뉴 더 읽어보기
식인종에 대하여
마차들에 대하여
옮긴이의 덧붙임|서구 문명의 오만에 균열을 내다
레비스트로스 연보
저자
저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Claude L?vi-Strauss, 1908~2009)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랐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31년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무렵, 로버트 로위의 『원시 사회』를 읽고 인류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도교수였던 셀레스탱 부글레의 추천을 받아 1935년 브라질 상파울루대학의 사회학 교수가 되어 1939년까지 머물며 남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를 현장 조사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대중적 명성을 안겨준 『슬픈 열대』(1955)의 토대가 됐다. 나치 점령기인 1941년에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특히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과의 만남은 구조주의 인류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박사학위 논문 『친족 관계의 기본구조』(1949)를 출간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이후 구조주의를 선도하며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인류박물관 부관장(1945~50), 파리고등연구원 종교학 분과 책임자(1950~74),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교수(1959~1982)를 지냈고, 197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됐다. 2009년 10월 30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인종과 역사』(1952), 『구조인류학』(1958), 『오늘날의 토테미즘』(1962), 『야생의 사고』(1962), 『신화론』(전 4권, 1964~1971), 『멀리서 본 시선』(1983) 등이 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랐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31년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무렵, 로버트 로위의 『원시 사회』를 읽고 인류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도교수였던 셀레스탱 부글레의 추천을 받아 1935년 브라질 상파울루대학의 사회학 교수가 되어 1939년까지 머물며 남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를 현장 조사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대중적 명성을 안겨준 『슬픈 열대』(1955)의 토대가 됐다. 나치 점령기인 1941년에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특히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과의 만남은 구조주의 인류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박사학위 논문 『친족 관계의 기본구조』(1949)를 출간해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이후 구조주의를 선도하며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인류박물관 부관장(1945~50), 파리고등연구원 종교학 분과 책임자(1950~74),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교수(1959~1982)를 지냈고, 197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됐다. 2009년 10월 30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인종과 역사』(1952), 『구조인류학』(1958), 『오늘날의 토테미즘』(1962), 『야생의 사고』(1962), 『신화론』(전 4권, 1964~1971), 『멀리서 본 시선』(198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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