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티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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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의사의 책무는 오직 사람의 생명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것
대한민국 의료계의 유례없는 성장을 이뤄낸 의사 윤대원의 철학과 신념 이야기
이 책은 선친 윤덕선의 뒤를 이어 학교법인일송학원과 한림대학교의료원을 책임 경영해온 의사 윤대원이 현재의 위상을 갖추기까지 그간의 삶을 돌아본 기록이다. 출생에서부터 학창시절, 청년기 의사 수련 과정과 활약상, 빛나는 의업을 성취한 순간, 의료인에서 경영자로의 전환, 선친 작고 후 병원과 학원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도전, 실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중소 병원과 지방대학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 일류병원 및 유명대학과의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활발한 교류를 실현하며 미래의 의료와 교육을 위한 비전을 구현해가는 지금, 그 주역이 될 후학들에게 의사의 사명과 소명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참된 의료인의 길을 가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남들이 모두 외면하니 우리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의료를 통한 사회공헌을 실천해온 윤덕선, 윤대원 부자는 2대에 걸쳐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의사의 책무는 오직 사람의 생명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것
대한민국 의료계의 유례없는 성장을 이뤄낸 의사 윤대원의 철학과 신념 이야기
이 책은 선친 윤덕선의 뒤를 이어 학교법인일송학원과 한림대학교의료원을 책임 경영해온 의사 윤대원이 현재의 위상을 갖추기까지 그간의 삶을 돌아본 기록이다. 출생에서부터 학창시절, 청년기 의사 수련 과정과 활약상, 빛나는 의업을 성취한 순간, 의료인에서 경영자로의 전환, 선친 작고 후 병원과 학원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도전, 실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중소 병원과 지방대학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 일류병원 및 유명대학과의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활발한 교류를 실현하며 미래의 의료와 교육을 위한 비전을 구현해가는 지금, 그 주역이 될 후학들에게 의사의 사명과 소명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참된 의료인의 길을 가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남들이 모두 외면하니 우리라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의료를 통한 사회공헌을 실천해온 윤덕선, 윤대원 부자는 2대에 걸쳐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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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타고난 외과 의사, 인술의 실천
윤대원은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설립자인 윤덕선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장래에 농부나 선원이 되기를 꿈꾸던 그는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가 가톨릭대학 의과대학으로 편입해 의학도가 되었다. 부친을 이어 참된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어달라는, 고모의 간곡한 설득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던 가톨릭의대에서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1969년)한 이용각 교수 등은 윤대원에게서 남다른 수술 술기를 발견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수련을 마치고 한강성심병원 외과에 부임해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선천적 기형이나 난이도 높은 수술을 집도했는데 보통 10시간 소요되는 까다로운 췌장 수술도 4시간 만에 끝내곤 했다. 이후 미국의 컬럼비아대학 외과학 교실에서 장기이식에 관한 임상과 실험을 통해 첨단의학을 섭렵한다.
귀국 후 강남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 외과를 이끌며 진료에 매진한 그는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고(1985년),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린다(1986년). 이는 근본적인 당뇨 해결책에 접근한, 의학계 발전에 있어 큰 공헌이었다.
평생 동안 '나보다는 남을 위해, 그리고 더 큰 세상을 위해' 살아온 부친과 같은 길을 걷겠노라 결심한 그는 성심자선병원이 개원했을 때는 부원장으로서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를 적극 실천했고, 한강성심병원의 순회무료진료팀에서 진료 시간을 연장해가며 환자를 돌보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수해가 발생하면 긴급의료팀으로 현장에 달려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했다. 이러한 관심은 이후 보건의료와 종합복지를 결합하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
한강성심병원원장과 한림대학교의료원장을 역임하며 병원 운영에서도 성과를 거둔 윤대원은 일송학원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해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서지만 예기치 않은 병마와 맞닥뜨린다. 이로부터 20여 년에 걸쳐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겪을 정도로 이 시련은 길고 깊었다.
더욱이 일생의 스승이자 버팀목이던 부친마저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이제 그는 병마의 고통도 이겨내야 하고, 재단과 의료원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지점에 서게 된다. 그는 '언젠가는 어차피 죽을 목숨, 최소한 발전을 시키고는 죽자'고 결연하게 다짐한다.
악재는 또 있었다. 최대의 국난이라 불린 'IMF 사태'까지 덮친 내우외환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선친의 마지막 유업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을 성공적으로 개원한다(1999년). IMF 이전부터 안정적으로 자산을 비축하며 내실을 다져온 덕분에 다른 병원들이 경영난으로 설립 계획을 취소, 연기하는 와중에 오히려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병마를 극복하고 열정을 불태운 그를 사람들은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라고 불렀다.
일송학원 산하의 병원과 복지관은 IMF 사태로 인한 고통을 나누기 위해 노숙자, 영세민, 결식아동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갔다. 안양복지관과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을 잇달아 개관했고, 난곡 주민을 위해 희사한 2천만 원은 '생활위기기금'이 되어 신림복지관과 새천년민주당이 참여한 'SOS 기금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경험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쳐 2006년 '긴급복지지원법' 제정에 일조한다.
■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해야 한다
현재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화상전문병원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화상치료를 시행하는 중증화상치료의 메카로 불린다. 화상은 치료가 매우 까다롭고 치료비 또한 엄청나서 치료나 재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친 윤덕선은 화상센터 개설(1986년)을 시작으로 화상환자후원회(2003년), 한림화상재단(2008년)을 만들어 화상환자들을 위한 사랑과 나눔을 부단히 실천해왔다. 윤대원 또한 그 뜻을 계승하여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무릅쓰면서도 꾸준한 투자와 관심을 놓지 않았다. '생지옥 같은 화상치료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라는 신념 때문이다. 한림화상재단은 화상환자의 치료비와 후원은 물론, 흉터와 치료 탓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소아환자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화상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강성심병원이 화상치료의 세계적 명성을 갖게 된 것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환자의 치료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의료기술 및 장비의 한계로 치료받지 못하는 해외 환자를 위해 의료봉사단을 꾸려 현지에서 무료진료를 펼쳤고, 해외 환자를 국내로 초청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특히 아시아 저소득 국가 화상지원사업에 공을 들여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8개국 화상환자를 지원해왔다.
■ 세계를 향한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
윤대원은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맞아 '마이티 한림'을 주창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 역량을 갖추고 시대 변화를 웅장하게 준비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는 2006년부터 10여 년간 매주 화요일 아침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재단과 의료원, 대학 등의 주요 보직자가 참여하는 '주간화상회의'를 주재하며 혁신을 주도했다.
마이티 한림 2기와 3기에서는 국제화에 역점을 두어 세계적인 의과대학, 병원과의 교류를 앞장서 추진했다. 특히 미국 컬럼비아대학, 코넬대학,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NYPH)과 실질적인 교류를 구현해낸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가 된 로버트 켈리 뉴욕프레스비테리언 병원장은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대담한 비전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겨 모두가 혁신에 동참하게 만들었다"며 탄복한다. 윤대원은 의료진을 미국 등에 활발하게 연수 보내고,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매년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의료원의 연구 역량을 상승시켰다.
의료 봉사와 지원에서도 서슴없이 국경을 넘었다. 쓰나미로 피해를 본 스리랑카 오지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고,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국제협력사업을 꾸준히 펼쳐나갔다. 이라크를 시작으로 베트남, 케냐, 파라과이, 라오스, 카메룬 등에 의료 지원을 지속하는 한편,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및 제프리 삭스 소장이 이끄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아프리카 등지의 빈민 퇴치를 도왔다.
평생 동안 국내외를 넘나든 의료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의료 지원 활동은 물질로 생각하면 불가능하다. 한 번도 돈이 손실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고, 훨씬 좋은 세상을 위해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운명의 주인공이고 도전자
2020년을 전후해 윤대원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부쩍 강조했다. 평소 자신이 강조한 휴머니티는 '무한한 인간애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부족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미래를 통찰하는 경영자의 모습뿐 아니라 삶을 관조하며 자유를 꿈꾸는 철학자나 성직자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2020년 스웨덴의 웁살라대학교는 윤대원에게 린네 메달 금메달을 수여했다. '린네 메달'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리는 칼 폰 린네의 탄생 300주년을 기려 제정되었고 2007년 이후 매년 과학에서 우수한 업적을 거둔 인물에게 수여되는, 세계적인 권위의 상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미셸 마이어,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금메달을 수상했고 동양인으로서는 윤대원이 첫 사례다. 웁살라대학교는 한림대학교의료원과 웁살라대학교의 공동심포지엄을 이끌며 한국과 유럽의 의학 연구 기반을 확장해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발전시킨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윤대원이 평생 스스로에게 다짐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직'이었다. 그는 정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정직해질수록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의사이자 교육자, 경영자로 '짧은 인생 멋지게, 자유롭게, 그냥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도전은 그러나 2024년 6월 25일로 마감되었다. 인류의 행복과 인간애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시대의 강력한 응전자'로서 살아온 윤대원은 후학들이 의사의 사명과 소명의식을 실천하는 참된 의료인의 길을 가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 이 책은 그의 염원을 담은 마지막 회고록이다.
"바야흐로 통섭의 시간이다. 의료는 의학을 넘어 자연과학, 생물학, (로봇)공학, 인문학, 종교, 사회과학, 예술 등과 과감히 융합해야 한다. 융합과 통섭은 더 큰 개방, 더 큰 개혁, 더 큰 공존의 자세로 혁신하기를 요구한다.
혁신의 시간 앞에서는 기존의 관성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Unity)이다. 오늘날 인류가 초래한 분열과 양극화, 불균형, 포퓰리즘, 거짓과 진실의 혼선 그리고 기후 위기에 맞서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믿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인간, 동식물과 자연, 지구 행성의 구성원 모두가 공존하는 조화의 공간, 항상(恒常)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감과 믿음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그리고 행동할 시간이다." -윤대원
윤대원은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설립자인 윤덕선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장래에 농부나 선원이 되기를 꿈꾸던 그는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가 가톨릭대학 의과대학으로 편입해 의학도가 되었다. 부친을 이어 참된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어달라는, 고모의 간곡한 설득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던 가톨릭의대에서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1969년)한 이용각 교수 등은 윤대원에게서 남다른 수술 술기를 발견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수련을 마치고 한강성심병원 외과에 부임해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선천적 기형이나 난이도 높은 수술을 집도했는데 보통 10시간 소요되는 까다로운 췌장 수술도 4시간 만에 끝내곤 했다. 이후 미국의 컬럼비아대학 외과학 교실에서 장기이식에 관한 임상과 실험을 통해 첨단의학을 섭렵한다.
귀국 후 강남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 외과를 이끌며 진료에 매진한 그는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고(1985년),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린다(1986년). 이는 근본적인 당뇨 해결책에 접근한, 의학계 발전에 있어 큰 공헌이었다.
평생 동안 '나보다는 남을 위해, 그리고 더 큰 세상을 위해' 살아온 부친과 같은 길을 걷겠노라 결심한 그는 성심자선병원이 개원했을 때는 부원장으로서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를 적극 실천했고, 한강성심병원의 순회무료진료팀에서 진료 시간을 연장해가며 환자를 돌보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수해가 발생하면 긴급의료팀으로 현장에 달려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했다. 이러한 관심은 이후 보건의료와 종합복지를 결합하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
한강성심병원원장과 한림대학교의료원장을 역임하며 병원 운영에서도 성과를 거둔 윤대원은 일송학원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해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서지만 예기치 않은 병마와 맞닥뜨린다. 이로부터 20여 년에 걸쳐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겪을 정도로 이 시련은 길고 깊었다.
더욱이 일생의 스승이자 버팀목이던 부친마저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이제 그는 병마의 고통도 이겨내야 하고, 재단과 의료원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지점에 서게 된다. 그는 '언젠가는 어차피 죽을 목숨, 최소한 발전을 시키고는 죽자'고 결연하게 다짐한다.
악재는 또 있었다. 최대의 국난이라 불린 'IMF 사태'까지 덮친 내우외환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선친의 마지막 유업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을 성공적으로 개원한다(1999년). IMF 이전부터 안정적으로 자산을 비축하며 내실을 다져온 덕분에 다른 병원들이 경영난으로 설립 계획을 취소, 연기하는 와중에 오히려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병마를 극복하고 열정을 불태운 그를 사람들은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라고 불렀다.
일송학원 산하의 병원과 복지관은 IMF 사태로 인한 고통을 나누기 위해 노숙자, 영세민, 결식아동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갔다. 안양복지관과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을 잇달아 개관했고, 난곡 주민을 위해 희사한 2천만 원은 '생활위기기금'이 되어 신림복지관과 새천년민주당이 참여한 'SOS 기금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경험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쳐 2006년 '긴급복지지원법' 제정에 일조한다.
■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해야 한다
현재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화상전문병원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화상치료를 시행하는 중증화상치료의 메카로 불린다. 화상은 치료가 매우 까다롭고 치료비 또한 엄청나서 치료나 재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친 윤덕선은 화상센터 개설(1986년)을 시작으로 화상환자후원회(2003년), 한림화상재단(2008년)을 만들어 화상환자들을 위한 사랑과 나눔을 부단히 실천해왔다. 윤대원 또한 그 뜻을 계승하여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무릅쓰면서도 꾸준한 투자와 관심을 놓지 않았다. '생지옥 같은 화상치료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라는 신념 때문이다. 한림화상재단은 화상환자의 치료비와 후원은 물론, 흉터와 치료 탓에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소아환자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화상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강성심병원이 화상치료의 세계적 명성을 갖게 된 것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환자의 치료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의료기술 및 장비의 한계로 치료받지 못하는 해외 환자를 위해 의료봉사단을 꾸려 현지에서 무료진료를 펼쳤고, 해외 환자를 국내로 초청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특히 아시아 저소득 국가 화상지원사업에 공을 들여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8개국 화상환자를 지원해왔다.
■ 세계를 향한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
윤대원은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맞아 '마이티 한림'을 주창했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 역량을 갖추고 시대 변화를 웅장하게 준비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는 2006년부터 10여 년간 매주 화요일 아침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재단과 의료원, 대학 등의 주요 보직자가 참여하는 '주간화상회의'를 주재하며 혁신을 주도했다.
마이티 한림 2기와 3기에서는 국제화에 역점을 두어 세계적인 의과대학, 병원과의 교류를 앞장서 추진했다. 특히 미국 컬럼비아대학, 코넬대학,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NYPH)과 실질적인 교류를 구현해낸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가 된 로버트 켈리 뉴욕프레스비테리언 병원장은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대담한 비전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겨 모두가 혁신에 동참하게 만들었다"며 탄복한다. 윤대원은 의료진을 미국 등에 활발하게 연수 보내고,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매년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의료원의 연구 역량을 상승시켰다.
의료 봉사와 지원에서도 서슴없이 국경을 넘었다. 쓰나미로 피해를 본 스리랑카 오지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고,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과 함께 국제협력사업을 꾸준히 펼쳐나갔다. 이라크를 시작으로 베트남, 케냐, 파라과이, 라오스, 카메룬 등에 의료 지원을 지속하는 한편,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및 제프리 삭스 소장이 이끄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아프리카 등지의 빈민 퇴치를 도왔다.
평생 동안 국내외를 넘나든 의료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의료 지원 활동은 물질로 생각하면 불가능하다. 한 번도 돈이 손실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고, 훨씬 좋은 세상을 위해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운명의 주인공이고 도전자
2020년을 전후해 윤대원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부쩍 강조했다. 평소 자신이 강조한 휴머니티는 '무한한 인간애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부족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미래를 통찰하는 경영자의 모습뿐 아니라 삶을 관조하며 자유를 꿈꾸는 철학자나 성직자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2020년 스웨덴의 웁살라대학교는 윤대원에게 린네 메달 금메달을 수여했다. '린네 메달'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리는 칼 폰 린네의 탄생 300주년을 기려 제정되었고 2007년 이후 매년 과학에서 우수한 업적을 거둔 인물에게 수여되는, 세계적인 권위의 상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미셸 마이어,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금메달을 수상했고 동양인으로서는 윤대원이 첫 사례다. 웁살라대학교는 한림대학교의료원과 웁살라대학교의 공동심포지엄을 이끌며 한국과 유럽의 의학 연구 기반을 확장해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발전시킨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윤대원이 평생 스스로에게 다짐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직'이었다. 그는 정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정직해질수록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의사이자 교육자, 경영자로 '짧은 인생 멋지게, 자유롭게, 그냥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도전은 그러나 2024년 6월 25일로 마감되었다. 인류의 행복과 인간애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시대의 강력한 응전자'로서 살아온 윤대원은 후학들이 의사의 사명과 소명의식을 실천하는 참된 의료인의 길을 가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 이 책은 그의 염원을 담은 마지막 회고록이다.
"바야흐로 통섭의 시간이다. 의료는 의학을 넘어 자연과학, 생물학, (로봇)공학, 인문학, 종교, 사회과학, 예술 등과 과감히 융합해야 한다. 융합과 통섭은 더 큰 개방, 더 큰 개혁, 더 큰 공존의 자세로 혁신하기를 요구한다.
혁신의 시간 앞에서는 기존의 관성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Unity)이다. 오늘날 인류가 초래한 분열과 양극화, 불균형, 포퓰리즘, 거짓과 진실의 혼선 그리고 기후 위기에 맞서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믿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인간, 동식물과 자연, 지구 행성의 구성원 모두가 공존하는 조화의 공간, 항상(恒常)의 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감과 믿음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그리고 행동할 시간이다." -윤대원
목차
목차
[들어가며] 생명의 최전선에 선 의사의 숙명
1장.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눈뜨다
전란 속의 어린 시절
생물 채집단으로 활약한 중등 시절
한국사의 격동기와 함께한 고등 시절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동된 신앙
2장. 덕적도의 명의
농부에서 의학도로_의사가 될 운명
살벌한 의대에서 살아남기_오기와 암기로 따라잡다
척박한 환경에서의 고군분투_인턴 시절
덕적도의 명의가 되다
외과 의사로 가는 길_레지던트 시절의 밀착 수업
3장. 의사 윤대원
천부적인 외과 의사 윤대원
선진 의료를 경험하다_컬럼비아대학의 외과학 교실
맨해튼에서의 좌충우돌 생활기
나는 외과 과장이다_패기와 열정의 시간
정확한 판단과 실력은 경험에서 나온다
레지던트의 사고도 수습해야 하고
이식 수술에서 이룬 쾌거_신장이식, 췌장이식 수술의 성공
인술의 실천_나보다는 남을 위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4장. 시련과 응전
심근종양의 진단
간염의 발병, 간암 진단, 간이식까지
노사분쟁, 그리고 파업
일송학원 제2대 이사장 취임
자유롭고 당당한 삶의 열쇠, 정직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 일송가족의 날
거목, 쓰러지다
일송을 회고하며_오직 인술의 길을 열다
5장. 대한민국 최상을 향해_한림대학교의료원과 대학의 도약
악재를 넘어 도약으로_한림대성심병원 개원
궂은일은 더욱 단단하고 치밀하게_화상전문응급의료센터
첨단 장비의 경쟁, 현대식 병원의 실현_동탄성심병원
약자를 살피며, 고통을 분담하며_복지관 사업
명문 사학을 향한 도전
지도자를 찾아서_김중수 총장을 모시기까지
6장. 세계를 향한 마이티 한림
국제사회로 진출_NYPH의 협력병원, 코이카 협력 사업
마이티 한림을 향한 파트너십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마이티 한림 4.0, 글로벌 플레이어의 비전
ECO 한림의 환경 경영
글로컬대학, 다시 도약의 길로
7장. 윤대원이 걸어온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주춧돌 정신을 되새기며
병원 순위에 관한 생각
내가 꿈꾸는 일류병원_메시지가 중요하다
원로의사의 바람
성심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다
아시아 최초의 린네 메달 수상
통섭의 시대를 향한 비전
[맺는글] 젊은 의사 후배들에게
1장. 생명에 대한 경외심에 눈뜨다
전란 속의 어린 시절
생물 채집단으로 활약한 중등 시절
한국사의 격동기와 함께한 고등 시절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동된 신앙
2장. 덕적도의 명의
농부에서 의학도로_의사가 될 운명
살벌한 의대에서 살아남기_오기와 암기로 따라잡다
척박한 환경에서의 고군분투_인턴 시절
덕적도의 명의가 되다
외과 의사로 가는 길_레지던트 시절의 밀착 수업
3장. 의사 윤대원
천부적인 외과 의사 윤대원
선진 의료를 경험하다_컬럼비아대학의 외과학 교실
맨해튼에서의 좌충우돌 생활기
나는 외과 과장이다_패기와 열정의 시간
정확한 판단과 실력은 경험에서 나온다
레지던트의 사고도 수습해야 하고
이식 수술에서 이룬 쾌거_신장이식, 췌장이식 수술의 성공
인술의 실천_나보다는 남을 위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4장. 시련과 응전
심근종양의 진단
간염의 발병, 간암 진단, 간이식까지
노사분쟁, 그리고 파업
일송학원 제2대 이사장 취임
자유롭고 당당한 삶의 열쇠, 정직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 일송가족의 날
거목, 쓰러지다
일송을 회고하며_오직 인술의 길을 열다
5장. 대한민국 최상을 향해_한림대학교의료원과 대학의 도약
악재를 넘어 도약으로_한림대성심병원 개원
궂은일은 더욱 단단하고 치밀하게_화상전문응급의료센터
첨단 장비의 경쟁, 현대식 병원의 실현_동탄성심병원
약자를 살피며, 고통을 분담하며_복지관 사업
명문 사학을 향한 도전
지도자를 찾아서_김중수 총장을 모시기까지
6장. 세계를 향한 마이티 한림
국제사회로 진출_NYPH의 협력병원, 코이카 협력 사업
마이티 한림을 향한 파트너십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마이티 한림 4.0, 글로벌 플레이어의 비전
ECO 한림의 환경 경영
글로컬대학, 다시 도약의 길로
7장. 윤대원이 걸어온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주춧돌 정신을 되새기며
병원 순위에 관한 생각
내가 꿈꾸는 일류병원_메시지가 중요하다
원로의사의 바람
성심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다
아시아 최초의 린네 메달 수상
통섭의 시대를 향한 비전
[맺는글] 젊은 의사 후배들에게
저자
저자
윤대원
(1945~2024)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설립자 윤덕선의 맏이로 태어났다. 가톨릭 의과대학 수련 과정 동안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을 성공시킨 이용각 교수 등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집중적인 밀착 교육을 받은 윤대원은 외과 의사로서 타고난 술기를 발휘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외과학교실에서 장기이식과 첨단의학을 섭렵하고 돌아와 강남성심병원, 한강섬심병원 외과를 이끌며 1987년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의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강성심병원장과 한림대학교의료원장을 거치며 의술 보급에 매진하고 경영철학을 다지던 1989년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여 한림대학교의료원, 복지관,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를 이끌었다. 이때 닥친 병마는 20여 년간 그를 괴롭히며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가져온다. 더욱이 일생의 스승이자 버팀목이던 선친마저 작고하고, 이후 IMF라는 초유의 악재까지 덮쳤음에도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 이어 동탄성심병원의 성공적 개원을 이끌어냄으로써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라고 불렸다. 이로써 학교법인일송학원 산하 한림대학교의료원은 5개 대학병원(한림대학교성심병원,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을 갖춘 대규모 기관으로 성장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의료사회복지 확대에도 특히 집중했다. 성심자선병원 시절 영세민 무료진료를 시작으로 1991년부터 한국노인보건 의료센터, 성심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등을 설립 및 개관했다. 또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화성시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을 20년 이상 위탁운영해왔다.
또한 선대의 뜻을 이어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을 국내 화상 치료의 메카로 만들었다. "생지옥 같은 화상 치료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해야 한다"면서 적자를 무릅쓰고 꾸준히 투자와 관심을 쏟았다. 화상환자 사회복지를 위한 한림화상재단을 설립했고, 화상병원학교를 만들어 치료비 후원은 물론, 소아 환자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윤대원은 인류의 행복과 인간애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편 '시대의 강력한 응전자'로서 행동할 것을 독려했다. 미래 비전으로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을 선포하고 최고의 진료, 연구, 교육기관으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세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세계화 시대를 선도하고 혁신하기 위해 미국 컬럼비아의과대학, 코넬의과대학,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조지워싱턴의과대학, UCLA, 일본 나가사키대학, 이탈리아 파도바대학,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등과 긴밀한 의료학술 파트너십을 실현했다. 현재 학교법인일송학원은 각종 의료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미래 의료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윤대원은 2020년 스웨덴 웁살라대학교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린네 골드메달'을 수상했다. 스웨덴과 학술교류의 물꼬를 트고 양국의 의학 발전과 국제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음을 인정받은 수상이었다. 일생 동안 대한민국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정직과 인간애를 기반으로 사회복지와 의술 보급에 힘썼던 윤대원은 2024년 6월 25일 영면했다.
대한민국은 국가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학교법인일송학원의 설립자 윤덕선의 맏이로 태어났다. 가톨릭 의과대학 수련 과정 동안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을 성공시킨 이용각 교수 등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집중적인 밀착 교육을 받은 윤대원은 외과 의사로서 타고난 술기를 발휘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외과학교실에서 장기이식과 첨단의학을 섭렵하고 돌아와 강남성심병원, 한강섬심병원 외과를 이끌며 1987년 국내 최초로 췌장이식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의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강성심병원장과 한림대학교의료원장을 거치며 의술 보급에 매진하고 경영철학을 다지던 1989년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여 한림대학교의료원, 복지관,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를 이끌었다. 이때 닥친 병마는 20여 년간 그를 괴롭히며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가져온다. 더욱이 일생의 스승이자 버팀목이던 선친마저 작고하고, 이후 IMF라는 초유의 악재까지 덮쳤음에도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 이어 동탄성심병원의 성공적 개원을 이끌어냄으로써 '사경에서 탈출한 불사조'라고 불렸다. 이로써 학교법인일송학원 산하 한림대학교의료원은 5개 대학병원(한림대학교성심병원,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을 갖춘 대규모 기관으로 성장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의료사회복지 확대에도 특히 집중했다. 성심자선병원 시절 영세민 무료진료를 시작으로 1991년부터 한국노인보건 의료센터, 성심복지관(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양복지관 등을 설립 및 개관했다. 또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화성시 나래울종합사회복지관, 동탄노인복지관 등을 20년 이상 위탁운영해왔다.
또한 선대의 뜻을 이어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을 국내 화상 치료의 메카로 만들었다. "생지옥 같은 화상 치료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해야 한다"면서 적자를 무릅쓰고 꾸준히 투자와 관심을 쏟았다. 화상환자 사회복지를 위한 한림화상재단을 설립했고, 화상병원학교를 만들어 치료비 후원은 물론, 소아 환자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윤대원은 인류의 행복과 인간애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편 '시대의 강력한 응전자'로서 행동할 것을 독려했다. 미래 비전으로 '마이티 한림Mighty Hallym'을 선포하고 최고의 진료, 연구, 교육기관으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세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세계화 시대를 선도하고 혁신하기 위해 미국 컬럼비아의과대학, 코넬의과대학,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조지워싱턴의과대학, UCLA, 일본 나가사키대학, 이탈리아 파도바대학,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등과 긴밀한 의료학술 파트너십을 실현했다. 현재 학교법인일송학원은 각종 의료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을 이용한 미래 의료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윤대원은 2020년 스웨덴 웁살라대학교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린네 골드메달'을 수상했다. 스웨덴과 학술교류의 물꼬를 트고 양국의 의학 발전과 국제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음을 인정받은 수상이었다. 일생 동안 대한민국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정직과 인간애를 기반으로 사회복지와 의술 보급에 힘썼던 윤대원은 2024년 6월 25일 영면했다.
대한민국은 국가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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