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창을 열 때마다(위컴시인전 1)
박철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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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봄의 창을 열 때마다]는 사랑과 자연에 대한 철학이 조화와 균형 속에 용해되어 있는 시집이다. 시인의 깨어있는 서정적 기질이 균일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의 계획된 질주를 허용하는 잠언이다. 인생을 좌충우돌 달려온 박철민 시인은 시집에서 살아온 만큼의 다양성과 다면적 양태를 지향하는 작업 속에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근육화된 물적 언어들을 쏟아낸다. 시집은 총 6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의 속살에는 사랑과 진실, 자연의 이해와 바람의 변주, 불교적인 세계관의 철학적 노출과 가족에 대한 연민이 시집의 횡단을 달리며 악상을 그리고 있다.
박철민 시인의 시는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재주가 단순하면서도 범상치 않다. 동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면의 글을 쓰며 신문에 칼럼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인 역할에도 충실한 그는 이순이 지나며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신춘문예를 통해 늦깎이로 문단에 나와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가 시집 [봄의 창을 열 때마다]를 통해 보여주는 자연과 사랑, 그리고 불교적인 성찰 언어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박철민 시인의 시는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재주가 단순하면서도 범상치 않다. 동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면의 글을 쓰며 신문에 칼럼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인 역할에도 충실한 그는 이순이 지나며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신춘문예를 통해 늦깎이로 문단에 나와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가 시집 [봄의 창을 열 때마다]를 통해 보여주는 자연과 사랑, 그리고 불교적인 성찰 언어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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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안개 걷힌 들판의 계절 언어
박 홍 선
문학평론가
음악의 요소인 운율과 회화의 요소인 이미지를 질료로 정서적이거나 혹은 서사적인 리듬의 가장 문학적인 문학인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인(Poet)"이라는 명사를 붙여준다. 민족과 민주로 대변되는 사회적 변형의 틀을 지나 경제 제일주의 물리적 사고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있어서의 미학은, 이른바 '무뇌아(無腦兒)적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컴퓨터로 들어간 함몰된 의식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체제의 질서에 순응하여 시인 본질인 서정적 미학을 획득해 가면서 어쩌다 발견되는 용설란으로 남던가, 아니면 지난 1980년대에 유행했던 해체시나 도시시처럼 극단의 언어해체나 유니크한 정서적 미학의 포착을 즐기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변화하는 외부 세계와의 대결과 압축을 통해서 이미지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가는 언어의 자유로운 변용은 그래서 시인만의 강렬한 특권이다.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문학사조인 수필에 정서적인 교감과 함축되고 의미화된 언어에 사물성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시인의 권력은, 국민을 상대로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는 정권의 본질과 사뭇 비슷한 데가 있다. 비록 사회적인 평가의 잣대로는 비교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입각한 사유와 상징은 시인의 권력이 우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철민의 시는 비교적 단순하다. 솔직히 말해 그리 잘 짜인 시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시는 범상치 않다. 단순하게 써지거나 무언가 모를 모호함의 언어를 보이다가도 어느새 대시인의 그것을 넘는 언어의 변주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씨의 자세가 바르거나 바르지 못한 상황에 쓰인 것일 거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詩'라고 표현하는 문학 장르를 일컬어 '고도로 숙련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함축되고 절제된 언어에 적절한 수수와 상징 그리고 단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정의할 때, 그의 시는 그 정의를 획득하는데,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철민의 시뿐만 아니라 시를 알고 만들고 정서적으로 뛰어나게 해석하는 시인들의 대다수 작품도 대부분 시적 정의에서 일탈하는 시가 많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니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철민 시인의 글에 시라는 수사를 붙여 줄 수 있는 것은 시의 속성 속에는, 다양한 의미망과 과학적이고 정서적 요법에 의한 언어 내적인 원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라는 문학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는 시의 속성처럼, 개인의 의사 진술의 언어로서 개인이 전달하려 하는 말로서의 정서 전달의 의미는 그의 시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서 개인의 짧은 내적 진술은 그 무게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중요하며, 넓은 의미에서 '시'라는 장르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섹션별로 다양하게 기획된 시집에서 박철민은 그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에 역점을 두고 살아가며 느끼는 단상과 계절의 미학, 그리고 시사적인 물음까지 넓은 인식의 공간을 헤쳐 본다. 그에게 세상과 사물을 해석하고 재단할 능력이 더 있었다면 우리는 넓은 세상 인식에서 좀 더 깊고 무거운 사유를 탐방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향기로운 관'을 가진 '지체 높은 족속'의 시가 아니라서 그저 자유롭고 유니크하거나, 반항기 서린 문학적 변용이란 의미에서만 관심의 척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부, [시간의 바람] 섹션에서는 꽃님이의 눈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뒤흔들다가도 바람과 계절의 순환에 대응하는 감정적 동물로서의 존재 확인을 보이며 비교적 충실한 자기 진술을 펼친다.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코너를 통해서는 사회성을 획득한 이 시대 중년으로서의 인생관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도 역점을 둔다. 제3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에서 시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과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밀도 있게 그리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과 실존이라는 자기 무게를 자각하는 밀도를 본다. 더불어 모든 섹션을 통해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정인(抒情人)으로서의 표피적인 대화를 그림에 맞는 화법으로 그리려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칼럼을 쓰며 소설이나 희곡 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서는 주로 정치나 역사를 다루는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맑은 소년 같은 음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그는 '바른 소리에는 젖먹이 울음 같은 맑은 꾀꼬리 소리가 들(바른 소리)'을 수 있으며 '바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나는 이제 사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것(지상만가)'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간의 틀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자유 의식은 때로 지나친 의식의 과잉이 되어 시적 자유를 박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유니크한 화법이 되어 시인의 상상력에 무한의 영양을 공급하기도 한다. 쪽동백이 피어나며 울부짖는 소리에서 '절간 마당에 법화경 구르는 소리 또 한 번 가득 차겠구나!(선운사)'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참새들의 놀이터에 놀러 온 파랑새에 놀란 새들을 보고는 '이 계절 마음 넉넉한 태양이 흐뭇하게 웃는 이유!(태양이 웃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유니크한 화법에 동의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역사성과 존재성이 드러나는 생명 요소를 포착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화법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은 제4부, [그리움이 온다]의 대표 시인 (그리움이 온다)에서는 자월도라는 섬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랑 얘기를 하나 터트리'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을 생산한 '마리 앙투와네트의 기억을 가객 김광석의 노래에 접목'시키는 파격도 선사한다. 때론 제5부, [안녕하세요?]라는 공간을 통해 안녕하세요? 하는 일상의 인사가 '어쩌면 항상 듣는 인사일 테지만'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들을수록 새로운 고마움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의 인사라는 것이 바로 '현실의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일상의 유일(唯一)한 그리움 하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6부, [마당 깊은 집]에서 시인은 가족이라는 핏줄의 공간을 찾아 유랑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근원의 그리움과 대화의 상대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연대 의식,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여전히 '어스름달 안으며/홀로 걸어가는 길/안개 속에서 노래하며/청산을 그리고 가는 그윽한 길(홀로 가는 길)'이지만, 그 길 위에는 '"거!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못 끊고 그러시나? 그러길. 손자놈들 눈치 안 보여요? 고주망태 할배가 담배까지? 아, 그러다 중풍 걸려 또 속 썩일 겨?"(마당 깊은 집)'라고 욕을 하면서 할아버지 기를 죽이다가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에잇! 또또 듣기 싫은 저 잔소리? 에잇."(마당 깊은 집)' 하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할머니가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부음 이후 '"그 모진 인생살이 고달파서 어쩔거나!"(아버지의 시간)'라고 상가(喪家)에서 한탄하면서도 ''어찌 보내 어찌 보내 불쌍해서 어찌 보내'(아버지의 시간)'라며 눈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있는 공간이 세상이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웃음 띠신/술잔 속 고운 얼굴/그리움 눈물이 되어/술잔으로 떨어지네(어머니의 잔)' 슬픔을 이겨내려 술잔을 들고 회한에 잠기고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정갈하게 바라보는 나는 '내 마음에 잎이 꽂혀 있다면/내 삶의 어느 부분을 찢어도/너의 꽃말이 돋아날 것이다(마음의 꽃)' 하며 일상에 묻어나는 삶의 편린(片鱗)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늘 유니크한 맛과 기교만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찢기고 짓무르고 흐르는 하혈보다/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천형의 유산이 더 외로웠(꽃님이의 하혈)'다며, '남지나해 절벽에 섰던 소녀의 마음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거(꽃님이의 하혈)'라고 성노예였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얘기하기도 하는 역사 전공자의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이 자연히 '스스로 고부라진 굽은 등/흰털 양지 무기질 식물'이 된 '백두옹(할미꽃)'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또한 중년이 되어도 존재감을 찾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안녕을 구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느끼는 괴리를 다룬 (어느 일상)(성찰)(마음의 꽃)(빨래)(도봉산행 지하철)(농아 할매) 같은 작품들에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나약하고 서글픈 존재들의 처세와 애환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극단적으로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존재하는 이유)(비와 몽상)(여보게!)(총구의 집)에서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위선으로 얼룩진 사회를 해체하고 싶은 언어적인 시인의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가장이 그렇듯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언제나 따듯하다.
"바위 위에도 꽃은 핀다/참혹한 햇살을 치명致命처럼 받으며/유려하고 넉넉하게 꽃을 피운다/나는 바위고 너는 꽃이다/서로의 생각만으로 바람을 흔드는/벅찬 햇살에 빛나는 그윽한 마음이다(유월)"에서처럼, 살아가는 이유를 제공하는 영양의 계절은 시인에게 꿈처럼 다가온다. 또한 '윤리로 일궈낸 희망의 하루가 고마워 고운 숨을 내쉬는 자리에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풀꽃이 있다. 가슴이 환해지고 몸이 뜨거워진다. 할 말이 생길 것 같아 부르르 몸을 떤다. 비에 젖은 머리를 터는 사랑이 필요한 풀꽃의 미소가 맑고 상큼하다.(윤리의 비)'는 삼강오륜적인 자기 고백도 가능한 선언을 하게 해주며 사물의 이미지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시인은, 날카로운 무쇠 감각으로 벗기고 파헤치기를 즐기는 듯한 어조로 다음의 시에서처럼 존재하는 모든 질서에 메스를 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랑과 관용을 잃지 않는 시를 통해 얻는 세상의 구원에도 관심이 많고 따스하다.
(존재하는 이유)
*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
집은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만남은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남은 죽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은 없고 육신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비는 맞으라고 내리는 것이며
어둠은 범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밝음은 분노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중 략---
자극적이고 탈관념적인 눈을 통해 시인은 대상을 확인하고 시적 변용을 모색하기 보다는, 의미 없는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현실 세계와 시제적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류의 자기 해체 작업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비와 몽상)(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등의 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방기(放棄)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하여, 좋은 시든 부족한 밑그림이든 휴먼의 입장에서 나에게도 사랑의 아픔과 정서적 교감은 시적 언어로서 자유를 얻는다. '강물 위로 꽃잎이 간다' '세월도 꽃잎처럼 간다' '강물 위로 구름이 흐른다' '세월도 구름처럼 흐른다' (중략) '이내 견고한 손바닥으로' 그 '세월의 속살을 만지고 싶다(세월)'는 진술에서는, 가는 세월이 아쉽지만, 그 가는 세월을 어떻게든 시인의 그것으로 만들고 싶어 손바닥에 감싸 안겠다는 진술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연민이 느껴진다. 또한 '울고 있을 때마저도 행복한 너의 얼굴에 내 야윈 생의 잔뿌리를 묻어버리고 싶다(너에게)'는 성인 같은 고뇌는 그의 시 곳곳에 피어나는 바람, 비, 그리고 그리움의 갈증이 깊이의 중후함을 넘어 열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따뜻하고 끈끈한 인간적 정서의 갸륵함을 보여주는 지나치다시피 자주 발견되는 그의 소아기적 정서는 상당 부분 '시'의 총기(聰氣)를 가리지만, 윤회처럼 반복되는 정서적 삶의 근간인 것 같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이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1920년대식 모더니즘 화풍의 현란함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적 이미지의 포장, 그리고 1980년대식 해체류가 비빔밥으로 버무려진 작품들이 주류지만, 그는 그의 시를 통해 일정 부분 서정(抒情)의 미학을 얻으려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비가 내리면 그림자들의 휴식은 즐겁다' '내 온몸을 정성스레 주무르는 안마사(비와 몽상)' 같은 대목에서는 내리는 비의 서정화 되고 육화된 변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꿈꾸는 시인의 자기 고백은 비록 시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 감각이나 도치법 등의 시적 수사나 운율, 또는 메타포에서 실패했다 하여도 그 나름의 질서와 서정을 확보한 수확으로 기대된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이라는 독백도, 조바심 내지 않는 꽃과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월호의 슬픔을 보며 '천사 같은 아이들'이 '바다처럼 영원히 푸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입술로 인하여 환한 잠을 잘 수 있는 시인의 하루는 대부분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때로는 유연성도 갖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의 시를 이루는 일면에는 인간의 삶과 아픔, 그리고 평화로운 공존이 서사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때로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그리기도 한다.
[빨래]
빨래를 말리는 건 햇빛이 아니다.
햇볕이 소리 없이 건조대를 움켜쥘 때
바람은 비명보다 거친 손동작으로 젖은 솜털에 영양을 넣는다.
어느 날은 가볍게
어느 날은 무겁게
젖은 빨래의 체온을 재는
햇살과 바람의 리드미컬한 공존
빨래를 널며 하늘에 인사하고
빨래를 걷으며 바람에 경배한다.
빨랫감의 힘줄 속에 채워 있는 삶의 물기가
건조대를 움켜쥔 햇살의 농담에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인생은 빨래의 오체투지에
먼지 가득한 생애의 마침표를 찍는다.
빨래는 일상이지만 빨래는 영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은 다시 시간을 낳는다. 시간은 어둠을 자유롭게 구부려 영원의 빛을 낳는 생명의 조련사이므로 메타포가 시의 구성원이라면 생명은 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박철민 시인의 시집은 비록 미완성이고, 비록 그가 달려온 길이 조화와 균형보다는 방황과 방기로 얼룩진 대륙의 거친 비포장 길이었다 해도, 깨어있는 서정적 기질은 균일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의 계획된 질주를 무색하게 한다. 좌충우돌 달려온 인생의 다양함과 다면적 양태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 속의 작업만큼, 그의 시는 앞으로도 더욱 다면화된 물적 언어들을 쏟아낸 것이다.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그의 시는, 저절로 귀가 순해지는 나이(耳順)을 지나며 잘 여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이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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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걷힌 들판의 계절 언어
문학평론가 박 홍 선
음악의 요소인 운율과 회화의 요소인 이미지를 질료로 정서적이거나 혹은 서사적인 리듬의 가장 문학적인 문학인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인(Poet)"이라는 명사를 붙여준다. 민족과 민주로 대변되는 사회적 변형의 틀을 지나 경제 제일주의 물리적 사고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있어서의 미학은, 이른바 '무뇌아(無腦兒)적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컴퓨터로 들어간 함몰된 의식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체제의 질서에 순응하여 시인 본질인 서정적 미학을 획득해 가면서 어쩌다 발견되는 용설란으로 남던가, 아니면 지난 1980년대에 유행했던 해체시나 도시시처럼 극단의 언어해체나 유니크한 정서적 미학의 포착을 즐기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변화하는 외부 세계와의 대결과 압축을 통해서 이미지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가는 언어의 자유로운 변용은 그래서 시인만의 강렬한 특권이다.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문학사조인 수필에 정서적인 교감과 함축되고 의미화된 언어에 사물성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시인의 권력은, 국민을 상대로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는 정권의 본질과 사뭇 비슷한 데가 있다. 비록 사회적인 평가의 잣대로는 비교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입각한 사유와 상징은 시인의 권력이 우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철민의 시는 비교적 단순하다. 솔직히 말해 그리 잘 짜인 시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시는 범상치 않다. 단순하게 써지거나 무언가 모를 모호함의 언어를 보이다가도 어느새 대시인의 그것을 넘는 언어의 변주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씨의 자세가 바르거나 바르지 못한 상황에 쓰인 것일 거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詩'라고 표현하는 문학 장르를 일컬어 '고도로 숙련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함축되고 절제된 언어에 적절한 수수와 상징 그리고 단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정의할 때, 그의 시는 그 정의를 획득하는데,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철민의 시뿐만 아니라 시를 알고 만들고 정서적으로 뛰어나게 해석하는 시인들의 대다수 작품도 대부분 시적 정의에서 일탈하는 시가 많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니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철민 시인의 글에 시라는 수사를 붙여 줄 수 있는 것은 시의 속성 속에는, 다양한 의미망과 과학적이고 정서적 요법에 의한 언어 내적인 원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라는 문학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는 시의 속성처럼, 개인의 의사 진술의 언어로서 개인이 전달하려 하는 말로서의 정서 전달의 의미는 그의 시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서 개인의 짧은 내적 진술은 그 무게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중요하며, 넓은 의미에서 '시'라는 장르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섹션별로 다양하게 기획된 시집에서 박철민은 그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에 역점을 두고 살아가며 느끼는 단상과 계절의 미학, 그리고 시사적인 물음까지 넓은 인식의 공간을 헤쳐 본다. 그에게 세상과 사물을 해석하고 재단할 능력이 더 있었다면 우리는 넓은 세상 인식에서 좀 더 깊고 무거운 사유를 탐방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향기로운 관'을 가진 '지체 높은 족속'의 시가 아니라서 그저 자유롭고 유니크하거나, 반항기 서린 문학적 변용이란 의미에서만 관심의 척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부, [시간의 바람] 섹션에서는 꽃님이의 눈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뒤흔들다가도 바람과 계절의 순환에 대응하는 감정적 동물로서의 존재 확인을 보이며 비교적 충실한 자기 진술을 펼친다.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코너를 통해서는 사회성을 획득한 이 시대 중년으로서의 인생관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도 역점을 둔다. 제3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에서 시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과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밀도 있게 그리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과 실존이라는 자기 무게를 자각하는 밀도를 본다. 더불어 모든 섹션을 통해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정인(抒情人)으로서의 표피적인 대화를 그림에 맞는 화법으로 그리려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칼럼을 쓰며 소설이나 희곡 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서는 주로 정치나 역사를 다루는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맑은 소년 같은 음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그는 '바른 소리에는 젖먹이 울음 같은 맑은 꾀꼬리 소리가 들(바른 소리)'을 수 있으며 '바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나는 이제 사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것(지상만가)'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간의 틀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자유 의식은 때로 지나친 의식의 과잉이 되어 시적 자유를 박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유니크한 화법이 되어 시인의 상상력에 무한의 영양을 공급하기도 한다. 쪽동백이 피어나며 울부짖는 소리에서 '절간 마당에 법화경 구르는 소리 또 한 번 가득 차겠구나!(선운사)'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참새들의 놀이터에 놀러 온 파랑새에 놀란 새들을 보고는 '이 계절 마음 넉넉한 태양이 흐뭇하게 웃는 이유!(태양이 웃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유니크한 화법에 동의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역사성과 존재성이 드러나는 생명 요소를 포착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화법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은 제4부, [그리움이 온다]의 대표 시인 (그리움이 온다)에서는 자월도라는 섬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랑 얘기를 하나 터트리'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을 생산한 '마리 앙투와네트의 기억을 가객 김광석의 노래에 접목'시키는 파격도 선사한다. 때론 제5부, [안녕하세요?]라는 공간을 통해 안녕하세요? 하는 일상의 인사가 '어쩌면 항상 듣는 인사일 테지만'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들을수록 새로운 고마움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의 인사라는 것이 바로 '현실의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일상의 유일(唯一)한 그리움 하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6부, [마당 깊은 집]에서 시인은 가족이라는 핏줄의 공간을 찾아 유랑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근원의 그리움과 대화의 상대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연대 의식,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여전히 '어스름달 안으며/홀로 걸어가는 길/안개 속에서 노래하며/청산을 그리고 가는 그윽한 길(홀로 가는 길)'이지만, 그 길 위에는 '"거!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못 끊고 그러시나? 그러길. 손자놈들 눈치 안 보여요? 고주망태 할배가 담배까지? 아, 그러다 중풍 걸려 또 속 썩일 겨?"(마당 깊은 집)'라고 욕을 하면서 할아버지 기를 죽이다가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에잇! 또또 듣기 싫은 저 잔소리? 에잇."(마당 깊은 집)' 하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할머니가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부음 이후 '"그 모진 인생살이 고달파서 어쩔거나!"(아버지의 시간)'라고 상가(喪家)에서 한탄하면서도 ''어찌 보내 어찌 보내 불쌍해서 어찌 보내'(아버지의 시간)'라며 눈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있는 공간이 세상이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웃음 띠신/술잔 속 고운 얼굴/그리움 눈물이 되어/술잔으로 떨어지네(어머니의 잔)' 슬픔을 이겨내려 술잔을 들고 회한에 잠기고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정갈하게 바라보는 나는 '내 마음에 잎이 꽂혀 있다면/내 삶의 어느 부분을 찢어도/너의 꽃말이 돋아날 것이다(마음의 꽃)' 하며 일상에 묻어나는 삶의 편린(片鱗)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늘 유니크한 맛과 기교만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찢기고 짓무르고 흐르는 하혈보다/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천형의 유산이 더 외로웠(꽃님이의 하혈)'다며, '남지나해 절벽에 섰던 소녀의 마음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거(꽃님이의 하혈)'라고 성노예였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얘기하기도 하는 역사 전공자의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이 자연히 '스스로 고부라진 굽은 등/흰털 양지 무기질 식물'이 된 '백두옹(할미꽃)'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또한 중년이 되어도 존재감을 찾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안녕을 구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느끼는 괴리를 다룬 (어느 일상)(성찰)(마음의 꽃)(빨래)(도봉산행 지하철)(농아 할매) 같은 작품들에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나약하고 서글픈 존재들의 처세와 애환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극단적으로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존재하는 이유)(비와 몽상)(여보게!)(총구의 집)에서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위선으로 얼룩진 사회를 해체하고 싶은 언어적인 시인의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가장이 그렇듯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언제나 따듯하다.
"바위 위에도 꽃은 핀다/참혹한 햇살을 치명致命처럼 받으며/유려하고 넉넉하게 꽃을 피운다/나는 바위고 너는 꽃이다/서로의 생각만으로 바람을 흔드는/벅찬 햇살에 빛나는 그윽한 마음이다(유월)"에서처럼, 살아가는 이유를 제공하는 영양의 계절은 시인에게 꿈처럼 다가온다. 또한 '윤리로 일궈낸 희망의 하루가 고마워 고운 숨을 내쉬는 자리에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풀꽃이 있다. 가슴이 환해지고 몸이 뜨거워진다. 할 말이 생길 것 같아 부르르 몸을 떤다. 비에 젖은 머리를 터는 사랑이 필요한 풀꽃의 미소가 맑고 상큼하다.(윤리의 비)'는 삼강오륜적인 자기 고백도 가능한 선언을 하게 해주며 사물의 이미지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시인은, 날카로운 무쇠 감각으로 벗기고 파헤치기를 즐기는 듯한 어조로 다음의 시에서처럼 존재하는 모든 질서에 메스를 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랑과 관용을 잃지 않는 시를 통해 얻는 세상의 구원에도 관심이 많고 따스하다.
(존재하는 이유)
*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
집은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만남은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남은 죽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은 없고 육신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비는 맞으라고 내리는 것이며
어둠은 범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밝음은 분노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탈관념적인 눈을 통해 시인은 대상을 확인하고 시적 변용을 모색하기 보다는, 의미 없는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현실 세계와 시제적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류의 자기 해체 작업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비와 몽상)(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등의 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방기(放棄)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하여, 좋은 시든 부족한 밑그림이든 휴먼의 입장에서 나에게도 사랑의 아픔과 정서적 교감은 시적 언어로서 자유를 얻는다. '강물 위로 꽃잎이 간다' '세월도 꽃잎처럼 간다' '강물 위로 구름이 흐른다' '세월도 구름처럼 흐른다' (중략) '이내 견고한 손바닥으로' 그 '세월의 속살을 만지고 싶다(세월)'는 진술에서는, 가는 세월이 아쉽지만, 그 가는 세월을 어떻게든 시인의 그것으로 만들고 싶어 손바닥에 감싸 안겠다는 진술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연민이 느껴진다. 또한 '울고 있을 때마저도 행복한 너의 얼굴에 내 야윈 생의 잔뿌리를 묻어버리고 싶다(너에게)'는 성인 같은 고뇌는 그의 시 곳곳에 피어나는 바람, 비, 그리고 그리움의 갈증이 깊이의 중후함을 넘어 열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따뜻하고 끈끈한 인간적 정서의 갸륵함을 보여주는 지나치다시피 자주 발견되는 그의 소아기적 정서는 상당 부분 '시'의 총기(聰氣)를 가리지만, 윤회처럼 반복되는 정서적 삶의 근간인 것 같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이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1920년대식 모더니즘 화풍의 현란함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적 이미지의 포장, 그리고 1980년대식 해체류가 비빔밥으로 버무려진 작품들이 주류지만, 그는 그의 시를 통해 일정 부분 서정(抒情)의 미학을 얻으려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비가 내리면 그림자들의 휴식은 즐겁다' '내 온몸을 정성스레 주무르는 안마사(비와 몽상)' 같은 대목에서는 내리는 비의 서정화 되고 육화된 변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꿈꾸는 시인의 자기 고백은 비록 시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 감각이나 도치법 등의 시적 수사나 운율, 또는 메타포에서 실패했다 하여도 그 나름의 질서와 서정을 확보한 수확으로 기대된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이라는 독백도, 조바심 내지 않는 꽃과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월호의 슬픔을 보며 '천사 같은 아이들'이 '바다처럼 영원히 푸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입술로 인하여 환한 잠을 잘 수 있는 시인의 하루는 대부분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때로는 유연성도 갖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의 시를 이루는 일면에는 인간의 삶과 아픔, 그리고 평화로운 공존이 서사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때로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그리기도 한다.
[빨래]
빨래를 말리는 건 햇빛이 아니다.
햇볕이 소리 없이 건조대를 움켜쥘 때
바람은 비명보다 거친 손동작으로 젖은 솜털에 영양을 넣는다.
어느 날은 가볍게
어느 날은 무겁게
젖은 빨래의 체온을 재는
햇살과 바람의 리드미컬한 공존
빨래를 널며 하늘에 인사하고
빨래를 걷으며 바람에 경배한다.
빨랫감의 힘줄 속에 채워 있는 삶의 물기가
건조대를 움켜쥔 햇살의 농담에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인생은 빨래의 오체투지에
먼지 가득한 생애의 마침표를 찍는다.
빨래는 일상이지만 빨래는 영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은 다시 시간을 낳는다. 시간은 어둠을 자유롭게 구부려 영원의 빛을 낳는 생명의 조련사이므로 메타포가 시의 구성원이라면 생명은 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박철민 시인의 시집은 비록 미완성이고, 비록 그가 달려온 길이 조화와 균형보다는 방황과 방기로 얼룩진 대륙의 거친 비포장 길이었다 해도, 깨어있는 서정적 기질은 균일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의 계획된 질주를 무색하게 한다. 좌충우돌 달려온 인생의 다양함과 다면적 양태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 속의 작업만큼, 그의 시는 앞으로도 더욱 다면화된 물적 언어들을 쏟아낸 것이다.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그의 시는, 저절로 귀가 순해지는 나이(耳順)을 지나며 잘 여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이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박 홍 선
문학평론가
음악의 요소인 운율과 회화의 요소인 이미지를 질료로 정서적이거나 혹은 서사적인 리듬의 가장 문학적인 문학인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인(Poet)"이라는 명사를 붙여준다. 민족과 민주로 대변되는 사회적 변형의 틀을 지나 경제 제일주의 물리적 사고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있어서의 미학은, 이른바 '무뇌아(無腦兒)적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컴퓨터로 들어간 함몰된 의식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체제의 질서에 순응하여 시인 본질인 서정적 미학을 획득해 가면서 어쩌다 발견되는 용설란으로 남던가, 아니면 지난 1980년대에 유행했던 해체시나 도시시처럼 극단의 언어해체나 유니크한 정서적 미학의 포착을 즐기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변화하는 외부 세계와의 대결과 압축을 통해서 이미지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가는 언어의 자유로운 변용은 그래서 시인만의 강렬한 특권이다.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문학사조인 수필에 정서적인 교감과 함축되고 의미화된 언어에 사물성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시인의 권력은, 국민을 상대로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는 정권의 본질과 사뭇 비슷한 데가 있다. 비록 사회적인 평가의 잣대로는 비교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입각한 사유와 상징은 시인의 권력이 우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철민의 시는 비교적 단순하다. 솔직히 말해 그리 잘 짜인 시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시는 범상치 않다. 단순하게 써지거나 무언가 모를 모호함의 언어를 보이다가도 어느새 대시인의 그것을 넘는 언어의 변주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씨의 자세가 바르거나 바르지 못한 상황에 쓰인 것일 거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詩'라고 표현하는 문학 장르를 일컬어 '고도로 숙련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함축되고 절제된 언어에 적절한 수수와 상징 그리고 단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정의할 때, 그의 시는 그 정의를 획득하는데,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철민의 시뿐만 아니라 시를 알고 만들고 정서적으로 뛰어나게 해석하는 시인들의 대다수 작품도 대부분 시적 정의에서 일탈하는 시가 많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니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철민 시인의 글에 시라는 수사를 붙여 줄 수 있는 것은 시의 속성 속에는, 다양한 의미망과 과학적이고 정서적 요법에 의한 언어 내적인 원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라는 문학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는 시의 속성처럼, 개인의 의사 진술의 언어로서 개인이 전달하려 하는 말로서의 정서 전달의 의미는 그의 시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서 개인의 짧은 내적 진술은 그 무게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중요하며, 넓은 의미에서 '시'라는 장르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섹션별로 다양하게 기획된 시집에서 박철민은 그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에 역점을 두고 살아가며 느끼는 단상과 계절의 미학, 그리고 시사적인 물음까지 넓은 인식의 공간을 헤쳐 본다. 그에게 세상과 사물을 해석하고 재단할 능력이 더 있었다면 우리는 넓은 세상 인식에서 좀 더 깊고 무거운 사유를 탐방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향기로운 관'을 가진 '지체 높은 족속'의 시가 아니라서 그저 자유롭고 유니크하거나, 반항기 서린 문학적 변용이란 의미에서만 관심의 척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부, [시간의 바람] 섹션에서는 꽃님이의 눈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뒤흔들다가도 바람과 계절의 순환에 대응하는 감정적 동물로서의 존재 확인을 보이며 비교적 충실한 자기 진술을 펼친다.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코너를 통해서는 사회성을 획득한 이 시대 중년으로서의 인생관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도 역점을 둔다. 제3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에서 시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과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밀도 있게 그리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과 실존이라는 자기 무게를 자각하는 밀도를 본다. 더불어 모든 섹션을 통해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정인(抒情人)으로서의 표피적인 대화를 그림에 맞는 화법으로 그리려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칼럼을 쓰며 소설이나 희곡 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서는 주로 정치나 역사를 다루는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맑은 소년 같은 음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그는 '바른 소리에는 젖먹이 울음 같은 맑은 꾀꼬리 소리가 들(바른 소리)'을 수 있으며 '바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나는 이제 사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것(지상만가)'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간의 틀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자유 의식은 때로 지나친 의식의 과잉이 되어 시적 자유를 박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유니크한 화법이 되어 시인의 상상력에 무한의 영양을 공급하기도 한다. 쪽동백이 피어나며 울부짖는 소리에서 '절간 마당에 법화경 구르는 소리 또 한 번 가득 차겠구나!(선운사)'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참새들의 놀이터에 놀러 온 파랑새에 놀란 새들을 보고는 '이 계절 마음 넉넉한 태양이 흐뭇하게 웃는 이유!(태양이 웃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유니크한 화법에 동의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역사성과 존재성이 드러나는 생명 요소를 포착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화법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은 제4부, [그리움이 온다]의 대표 시인 (그리움이 온다)에서는 자월도라는 섬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랑 얘기를 하나 터트리'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을 생산한 '마리 앙투와네트의 기억을 가객 김광석의 노래에 접목'시키는 파격도 선사한다. 때론 제5부, [안녕하세요?]라는 공간을 통해 안녕하세요? 하는 일상의 인사가 '어쩌면 항상 듣는 인사일 테지만'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들을수록 새로운 고마움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의 인사라는 것이 바로 '현실의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일상의 유일(唯一)한 그리움 하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6부, [마당 깊은 집]에서 시인은 가족이라는 핏줄의 공간을 찾아 유랑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근원의 그리움과 대화의 상대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연대 의식,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여전히 '어스름달 안으며/홀로 걸어가는 길/안개 속에서 노래하며/청산을 그리고 가는 그윽한 길(홀로 가는 길)'이지만, 그 길 위에는 '"거!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못 끊고 그러시나? 그러길. 손자놈들 눈치 안 보여요? 고주망태 할배가 담배까지? 아, 그러다 중풍 걸려 또 속 썩일 겨?"(마당 깊은 집)'라고 욕을 하면서 할아버지 기를 죽이다가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에잇! 또또 듣기 싫은 저 잔소리? 에잇."(마당 깊은 집)' 하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할머니가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부음 이후 '"그 모진 인생살이 고달파서 어쩔거나!"(아버지의 시간)'라고 상가(喪家)에서 한탄하면서도 ''어찌 보내 어찌 보내 불쌍해서 어찌 보내'(아버지의 시간)'라며 눈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있는 공간이 세상이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웃음 띠신/술잔 속 고운 얼굴/그리움 눈물이 되어/술잔으로 떨어지네(어머니의 잔)' 슬픔을 이겨내려 술잔을 들고 회한에 잠기고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정갈하게 바라보는 나는 '내 마음에 잎이 꽂혀 있다면/내 삶의 어느 부분을 찢어도/너의 꽃말이 돋아날 것이다(마음의 꽃)' 하며 일상에 묻어나는 삶의 편린(片鱗)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늘 유니크한 맛과 기교만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찢기고 짓무르고 흐르는 하혈보다/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천형의 유산이 더 외로웠(꽃님이의 하혈)'다며, '남지나해 절벽에 섰던 소녀의 마음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거(꽃님이의 하혈)'라고 성노예였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얘기하기도 하는 역사 전공자의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이 자연히 '스스로 고부라진 굽은 등/흰털 양지 무기질 식물'이 된 '백두옹(할미꽃)'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또한 중년이 되어도 존재감을 찾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안녕을 구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느끼는 괴리를 다룬 (어느 일상)(성찰)(마음의 꽃)(빨래)(도봉산행 지하철)(농아 할매) 같은 작품들에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나약하고 서글픈 존재들의 처세와 애환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극단적으로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존재하는 이유)(비와 몽상)(여보게!)(총구의 집)에서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위선으로 얼룩진 사회를 해체하고 싶은 언어적인 시인의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가장이 그렇듯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언제나 따듯하다.
"바위 위에도 꽃은 핀다/참혹한 햇살을 치명致命처럼 받으며/유려하고 넉넉하게 꽃을 피운다/나는 바위고 너는 꽃이다/서로의 생각만으로 바람을 흔드는/벅찬 햇살에 빛나는 그윽한 마음이다(유월)"에서처럼, 살아가는 이유를 제공하는 영양의 계절은 시인에게 꿈처럼 다가온다. 또한 '윤리로 일궈낸 희망의 하루가 고마워 고운 숨을 내쉬는 자리에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풀꽃이 있다. 가슴이 환해지고 몸이 뜨거워진다. 할 말이 생길 것 같아 부르르 몸을 떤다. 비에 젖은 머리를 터는 사랑이 필요한 풀꽃의 미소가 맑고 상큼하다.(윤리의 비)'는 삼강오륜적인 자기 고백도 가능한 선언을 하게 해주며 사물의 이미지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시인은, 날카로운 무쇠 감각으로 벗기고 파헤치기를 즐기는 듯한 어조로 다음의 시에서처럼 존재하는 모든 질서에 메스를 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랑과 관용을 잃지 않는 시를 통해 얻는 세상의 구원에도 관심이 많고 따스하다.
(존재하는 이유)
*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
집은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만남은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남은 죽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은 없고 육신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비는 맞으라고 내리는 것이며
어둠은 범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밝음은 분노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중 략---
자극적이고 탈관념적인 눈을 통해 시인은 대상을 확인하고 시적 변용을 모색하기 보다는, 의미 없는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현실 세계와 시제적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류의 자기 해체 작업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비와 몽상)(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등의 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방기(放棄)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하여, 좋은 시든 부족한 밑그림이든 휴먼의 입장에서 나에게도 사랑의 아픔과 정서적 교감은 시적 언어로서 자유를 얻는다. '강물 위로 꽃잎이 간다' '세월도 꽃잎처럼 간다' '강물 위로 구름이 흐른다' '세월도 구름처럼 흐른다' (중략) '이내 견고한 손바닥으로' 그 '세월의 속살을 만지고 싶다(세월)'는 진술에서는, 가는 세월이 아쉽지만, 그 가는 세월을 어떻게든 시인의 그것으로 만들고 싶어 손바닥에 감싸 안겠다는 진술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연민이 느껴진다. 또한 '울고 있을 때마저도 행복한 너의 얼굴에 내 야윈 생의 잔뿌리를 묻어버리고 싶다(너에게)'는 성인 같은 고뇌는 그의 시 곳곳에 피어나는 바람, 비, 그리고 그리움의 갈증이 깊이의 중후함을 넘어 열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따뜻하고 끈끈한 인간적 정서의 갸륵함을 보여주는 지나치다시피 자주 발견되는 그의 소아기적 정서는 상당 부분 '시'의 총기(聰氣)를 가리지만, 윤회처럼 반복되는 정서적 삶의 근간인 것 같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이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1920년대식 모더니즘 화풍의 현란함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적 이미지의 포장, 그리고 1980년대식 해체류가 비빔밥으로 버무려진 작품들이 주류지만, 그는 그의 시를 통해 일정 부분 서정(抒情)의 미학을 얻으려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비가 내리면 그림자들의 휴식은 즐겁다' '내 온몸을 정성스레 주무르는 안마사(비와 몽상)' 같은 대목에서는 내리는 비의 서정화 되고 육화된 변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꿈꾸는 시인의 자기 고백은 비록 시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 감각이나 도치법 등의 시적 수사나 운율, 또는 메타포에서 실패했다 하여도 그 나름의 질서와 서정을 확보한 수확으로 기대된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이라는 독백도, 조바심 내지 않는 꽃과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월호의 슬픔을 보며 '천사 같은 아이들'이 '바다처럼 영원히 푸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입술로 인하여 환한 잠을 잘 수 있는 시인의 하루는 대부분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때로는 유연성도 갖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의 시를 이루는 일면에는 인간의 삶과 아픔, 그리고 평화로운 공존이 서사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때로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그리기도 한다.
[빨래]
빨래를 말리는 건 햇빛이 아니다.
햇볕이 소리 없이 건조대를 움켜쥘 때
바람은 비명보다 거친 손동작으로 젖은 솜털에 영양을 넣는다.
어느 날은 가볍게
어느 날은 무겁게
젖은 빨래의 체온을 재는
햇살과 바람의 리드미컬한 공존
빨래를 널며 하늘에 인사하고
빨래를 걷으며 바람에 경배한다.
빨랫감의 힘줄 속에 채워 있는 삶의 물기가
건조대를 움켜쥔 햇살의 농담에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인생은 빨래의 오체투지에
먼지 가득한 생애의 마침표를 찍는다.
빨래는 일상이지만 빨래는 영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은 다시 시간을 낳는다. 시간은 어둠을 자유롭게 구부려 영원의 빛을 낳는 생명의 조련사이므로 메타포가 시의 구성원이라면 생명은 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박철민 시인의 시집은 비록 미완성이고, 비록 그가 달려온 길이 조화와 균형보다는 방황과 방기로 얼룩진 대륙의 거친 비포장 길이었다 해도, 깨어있는 서정적 기질은 균일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의 계획된 질주를 무색하게 한다. 좌충우돌 달려온 인생의 다양함과 다면적 양태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 속의 작업만큼, 그의 시는 앞으로도 더욱 다면화된 물적 언어들을 쏟아낸 것이다.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그의 시는, 저절로 귀가 순해지는 나이(耳順)을 지나며 잘 여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이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추천사
안개 걷힌 들판의 계절 언어
문학평론가 박 홍 선
음악의 요소인 운율과 회화의 요소인 이미지를 질료로 정서적이거나 혹은 서사적인 리듬의 가장 문학적인 문학인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인(Poet)"이라는 명사를 붙여준다. 민족과 민주로 대변되는 사회적 변형의 틀을 지나 경제 제일주의 물리적 사고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세계에 있어서의 미학은, 이른바 '무뇌아(無腦兒)적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컴퓨터로 들어간 함몰된 의식의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체제의 질서에 순응하여 시인 본질인 서정적 미학을 획득해 가면서 어쩌다 발견되는 용설란으로 남던가, 아니면 지난 1980년대에 유행했던 해체시나 도시시처럼 극단의 언어해체나 유니크한 정서적 미학의 포착을 즐기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변화하는 외부 세계와의 대결과 압축을 통해서 이미지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가는 언어의 자유로운 변용은 그래서 시인만의 강렬한 특권이다.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문학사조인 수필에 정서적인 교감과 함축되고 의미화된 언어에 사물성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시인의 권력은, 국민을 상대로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는 정권의 본질과 사뭇 비슷한 데가 있다. 비록 사회적인 평가의 잣대로는 비교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입각한 사유와 상징은 시인의 권력이 우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철민의 시는 비교적 단순하다. 솔직히 말해 그리 잘 짜인 시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 시는 범상치 않다. 단순하게 써지거나 무언가 모를 모호함의 언어를 보이다가도 어느새 대시인의 그것을 넘는 언어의 변주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씨의 자세가 바르거나 바르지 못한 상황에 쓰인 것일 거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詩'라고 표현하는 문학 장르를 일컬어 '고도로 숙련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함축되고 절제된 언어에 적절한 수수와 상징 그리고 단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정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정의할 때, 그의 시는 그 정의를 획득하는데, 대부분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박철민의 시뿐만 아니라 시를 알고 만들고 정서적으로 뛰어나게 해석하는 시인들의 대다수 작품도 대부분 시적 정의에서 일탈하는 시가 많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니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철민 시인의 글에 시라는 수사를 붙여 줄 수 있는 것은 시의 속성 속에는, 다양한 의미망과 과학적이고 정서적 요법에 의한 언어 내적인 원리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라는 문학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중요시하지 않는 시의 속성처럼, 개인의 의사 진술의 언어로서 개인이 전달하려 하는 말로서의 정서 전달의 의미는 그의 시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서 개인의 짧은 내적 진술은 그 무게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중요하며, 넓은 의미에서 '시'라는 장르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섹션별로 다양하게 기획된 시집에서 박철민은 그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에 역점을 두고 살아가며 느끼는 단상과 계절의 미학, 그리고 시사적인 물음까지 넓은 인식의 공간을 헤쳐 본다. 그에게 세상과 사물을 해석하고 재단할 능력이 더 있었다면 우리는 넓은 세상 인식에서 좀 더 깊고 무거운 사유를 탐방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향기로운 관'을 가진 '지체 높은 족속'의 시가 아니라서 그저 자유롭고 유니크하거나, 반항기 서린 문학적 변용이란 의미에서만 관심의 척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부, [시간의 바람] 섹션에서는 꽃님이의 눈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뒤흔들다가도 바람과 계절의 순환에 대응하는 감정적 동물로서의 존재 확인을 보이며 비교적 충실한 자기 진술을 펼친다.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코너를 통해서는 사회성을 획득한 이 시대 중년으로서의 인생관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에도 역점을 둔다. 제3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에서 시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과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을 밀도 있게 그리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과 실존이라는 자기 무게를 자각하는 밀도를 본다. 더불어 모든 섹션을 통해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정인(抒情人)으로서의 표피적인 대화를 그림에 맞는 화법으로 그리려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칼럼을 쓰며 소설이나 희곡 드라마 등 다른 분야에서는 주로 정치나 역사를 다루는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맑은 소년 같은 음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그는 '바른 소리에는 젖먹이 울음 같은 맑은 꾀꼬리 소리가 들(바른 소리)'을 수 있으며 '바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나는 이제 사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것(지상만가)'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간의 틀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자유 의식은 때로 지나친 의식의 과잉이 되어 시적 자유를 박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유니크한 화법이 되어 시인의 상상력에 무한의 영양을 공급하기도 한다. 쪽동백이 피어나며 울부짖는 소리에서 '절간 마당에 법화경 구르는 소리 또 한 번 가득 차겠구나!(선운사)'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참새들의 놀이터에 놀러 온 파랑새에 놀란 새들을 보고는 '이 계절 마음 넉넉한 태양이 흐뭇하게 웃는 이유!(태양이 웃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유니크한 화법에 동의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
인간의 역사성과 존재성이 드러나는 생명 요소를 포착하면서도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화법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은 제4부, [그리움이 온다]의 대표 시인 (그리움이 온다)에서는 자월도라는 섬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랑 얘기를 하나 터트리'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을 생산한 '마리 앙투와네트의 기억을 가객 김광석의 노래에 접목'시키는 파격도 선사한다. 때론 제5부, [안녕하세요?]라는 공간을 통해 안녕하세요? 하는 일상의 인사가 '어쩌면 항상 듣는 인사일 테지만' 생각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들을수록 새로운 고마움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의 인사라는 것이 바로 '현실의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일상의 유일(唯一)한 그리움 하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6부, [마당 깊은 집]에서 시인은 가족이라는 핏줄의 공간을 찾아 유랑하는 모습을 통해 결국 근원의 그리움과 대화의 상대는 좁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 연대 의식,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여전히 '어스름달 안으며/홀로 걸어가는 길/안개 속에서 노래하며/청산을 그리고 가는 그윽한 길(홀로 가는 길)'이지만, 그 길 위에는 '"거!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못 끊고 그러시나? 그러길. 손자놈들 눈치 안 보여요? 고주망태 할배가 담배까지? 아, 그러다 중풍 걸려 또 속 썩일 겨?"(마당 깊은 집)'라고 욕을 하면서 할아버지 기를 죽이다가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에잇! 또또 듣기 싫은 저 잔소리? 에잇."(마당 깊은 집)' 하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을 줄 아는 할머니가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부음 이후 '"그 모진 인생살이 고달파서 어쩔거나!"(아버지의 시간)'라고 상가(喪家)에서 한탄하면서도 ''어찌 보내 어찌 보내 불쌍해서 어찌 보내'(아버지의 시간)'라며 눈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있는 공간이 세상이다. 그 안에서 어머니는 '말없이 웃음 띠신/술잔 속 고운 얼굴/그리움 눈물이 되어/술잔으로 떨어지네(어머니의 잔)' 슬픔을 이겨내려 술잔을 들고 회한에 잠기고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정갈하게 바라보는 나는 '내 마음에 잎이 꽂혀 있다면/내 삶의 어느 부분을 찢어도/너의 꽃말이 돋아날 것이다(마음의 꽃)' 하며 일상에 묻어나는 삶의 편린(片鱗)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늘 유니크한 맛과 기교만이 선행되는 것은 아니다. '찢기고 짓무르고 흐르는 하혈보다/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천형의 유산이 더 외로웠(꽃님이의 하혈)'다며, '남지나해 절벽에 섰던 소녀의 마음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거(꽃님이의 하혈)'라고 성노예였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얘기하기도 하는 역사 전공자의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시인이 자연히 '스스로 고부라진 굽은 등/흰털 양지 무기질 식물'이 된 '백두옹(할미꽃)'을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또한 중년이 되어도 존재감을 찾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안녕을 구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느끼는 괴리를 다룬 (어느 일상)(성찰)(마음의 꽃)(빨래)(도봉산행 지하철)(농아 할매) 같은 작품들에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나약하고 서글픈 존재들의 처세와 애환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극단적으로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존재하는 이유)(비와 몽상)(여보게!)(총구의 집)에서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위선으로 얼룩진 사회를 해체하고 싶은 언어적인 시인의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가장이 그렇듯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언제나 따듯하다.
"바위 위에도 꽃은 핀다/참혹한 햇살을 치명致命처럼 받으며/유려하고 넉넉하게 꽃을 피운다/나는 바위고 너는 꽃이다/서로의 생각만으로 바람을 흔드는/벅찬 햇살에 빛나는 그윽한 마음이다(유월)"에서처럼, 살아가는 이유를 제공하는 영양의 계절은 시인에게 꿈처럼 다가온다. 또한 '윤리로 일궈낸 희망의 하루가 고마워 고운 숨을 내쉬는 자리에 비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풀꽃이 있다. 가슴이 환해지고 몸이 뜨거워진다. 할 말이 생길 것 같아 부르르 몸을 떤다. 비에 젖은 머리를 터는 사랑이 필요한 풀꽃의 미소가 맑고 상큼하다.(윤리의 비)'는 삼강오륜적인 자기 고백도 가능한 선언을 하게 해주며 사물의 이미지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시인은, 날카로운 무쇠 감각으로 벗기고 파헤치기를 즐기는 듯한 어조로 다음의 시에서처럼 존재하는 모든 질서에 메스를 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랑과 관용을 잃지 않는 시를 통해 얻는 세상의 구원에도 관심이 많고 따스하다.
(존재하는 이유)
*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
집은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만남은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남은 죽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은 없고 육신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비는 맞으라고 내리는 것이며
어둠은 범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밝음은 분노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탈관념적인 눈을 통해 시인은 대상을 확인하고 시적 변용을 모색하기 보다는, 의미 없는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현실 세계와 시제적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류의 자기 해체 작업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비와 몽상)(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등의 작품은 그가 추구하는 내면적 방기(放棄)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하여, 좋은 시든 부족한 밑그림이든 휴먼의 입장에서 나에게도 사랑의 아픔과 정서적 교감은 시적 언어로서 자유를 얻는다. '강물 위로 꽃잎이 간다' '세월도 꽃잎처럼 간다' '강물 위로 구름이 흐른다' '세월도 구름처럼 흐른다' (중략) '이내 견고한 손바닥으로' 그 '세월의 속살을 만지고 싶다(세월)'는 진술에서는, 가는 세월이 아쉽지만, 그 가는 세월을 어떻게든 시인의 그것으로 만들고 싶어 손바닥에 감싸 안겠다는 진술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연민이 느껴진다. 또한 '울고 있을 때마저도 행복한 너의 얼굴에 내 야윈 생의 잔뿌리를 묻어버리고 싶다(너에게)'는 성인 같은 고뇌는 그의 시 곳곳에 피어나는 바람, 비, 그리고 그리움의 갈증이 깊이의 중후함을 넘어 열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따뜻하고 끈끈한 인간적 정서의 갸륵함을 보여주는 지나치다시피 자주 발견되는 그의 소아기적 정서는 상당 부분 '시'의 총기(聰氣)를 가리지만, 윤회처럼 반복되는 정서적 삶의 근간인 것 같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이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1920년대식 모더니즘 화풍의 현란함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적 이미지의 포장, 그리고 1980년대식 해체류가 비빔밥으로 버무려진 작품들이 주류지만, 그는 그의 시를 통해 일정 부분 서정(抒情)의 미학을 얻으려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비가 내리면 그림자들의 휴식은 즐겁다' '내 온몸을 정성스레 주무르는 안마사(비와 몽상)' 같은 대목에서는 내리는 비의 서정화 되고 육화된 변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꿈꾸는 시인의 자기 고백은 비록 시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언어 감각이나 도치법 등의 시적 수사나 운율, 또는 메타포에서 실패했다 하여도 그 나름의 질서와 서정을 확보한 수확으로 기대된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산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이라는 독백도, 조바심 내지 않는 꽃과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월호의 슬픔을 보며 '천사 같은 아이들'이 '바다처럼 영원히 푸르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입술로 인하여 환한 잠을 잘 수 있는 시인의 하루는 대부분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때로는 유연성도 갖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의 시를 이루는 일면에는 인간의 삶과 아픔, 그리고 평화로운 공존이 서사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때로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그리기도 한다.
[빨래]
빨래를 말리는 건 햇빛이 아니다.
햇볕이 소리 없이 건조대를 움켜쥘 때
바람은 비명보다 거친 손동작으로 젖은 솜털에 영양을 넣는다.
어느 날은 가볍게
어느 날은 무겁게
젖은 빨래의 체온을 재는
햇살과 바람의 리드미컬한 공존
빨래를 널며 하늘에 인사하고
빨래를 걷으며 바람에 경배한다.
빨랫감의 힘줄 속에 채워 있는 삶의 물기가
건조대를 움켜쥔 햇살의 농담에 기지개를 켠다.
오늘도 인생은 빨래의 오체투지에
먼지 가득한 생애의 마침표를 찍는다.
빨래는 일상이지만 빨래는 영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은 다시 시간을 낳는다. 시간은 어둠을 자유롭게 구부려 영원의 빛을 낳는 생명의 조련사이므로 메타포가 시의 구성원이라면 생명은 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박철민 시인의 시집은 비록 미완성이고, 비록 그가 달려온 길이 조화와 균형보다는 방황과 방기로 얼룩진 대륙의 거친 비포장 길이었다 해도, 깨어있는 서정적 기질은 균일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의 계획된 질주를 무색하게 한다. 좌충우돌 달려온 인생의 다양함과 다면적 양태를 지향하는 그의 사회 속의 작업만큼, 그의 시는 앞으로도 더욱 다면화된 물적 언어들을 쏟아낸 것이다. 때로는 유니크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독하면서도 세상을 패러디하는 그의 시는, 저절로 귀가 순해지는 나이(耳順)을 지나며 잘 여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이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가열 찬 실험정신과 문학적 열정으로 자신만의 서정과 유니크, 그리고 패러독스(Paradox)하며 무게 있는 메시지의 세계를 여는 시적 변용을 끊임없이 성취해 내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시간의 바람
바른 소리
나와 당신의 하루
꽃님이의 하혈
농아 할매
너에게
지상만가
4월을 걷다
봄, 사람을 사랑하라
꽃샘 추위
사랑과 자유를 위한 변명
들판에서
그리움은 나의 힘
어느 해 겨울, 제주
세월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비와 몽상
무송
존재하는 이유
빨래
심해어
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선운사
촛불
비천
부석사
고사목
빈손
총구의 집
빨래 2
제3부,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
홀로 가는 길
둘레길에 핀 겨울
별빛 경관
가을이 온다
태풍이 지나는 자리
생명의 환희
태양이 웃는 이유
낯선 마을에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
제4부, 그리움이 온다
그리움이 온다
우리, 사랑할까요?
바다가 사랑인가요?
열꽃
윤리의 비
대합창
마을회관 앞에서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봄, 오다
아침소리
제5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반도
소리
화장품 방
성찰
신新! 찬기파랑가
은어 낚시 통신
여보게!
유월
첫눈
제6부, 마당 깊은 집
만남
마음의 꽃
흥국사에서
마당 깊은 집
서귀포에서
아버지의 시간
어머니의 잔
동행
생불
할미꽃
봄의 창을 열 때마다
바람의 눈물
[시평] 안개 걷힌 들판의 계절 언어 박홍선(문학평론가)
제1부, 시간의 바람
바른 소리
나와 당신의 하루
꽃님이의 하혈
농아 할매
너에게
지상만가
4월을 걷다
봄, 사람을 사랑하라
꽃샘 추위
사랑과 자유를 위한 변명
들판에서
그리움은 나의 힘
어느 해 겨울, 제주
세월
제2부, 존재 속의 기억
비와 몽상
무송
존재하는 이유
빨래
심해어
바람은 사랑의 미래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선운사
촛불
비천
부석사
고사목
빈손
총구의 집
빨래 2
제3부,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
홀로 가는 길
둘레길에 핀 겨울
별빛 경관
가을이 온다
태풍이 지나는 자리
생명의 환희
태양이 웃는 이유
낯선 마을에서
이른 여름을 이해하는 법
제4부, 그리움이 온다
그리움이 온다
우리, 사랑할까요?
바다가 사랑인가요?
열꽃
윤리의 비
대합창
마을회관 앞에서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봄, 오다
아침소리
제5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반도
소리
화장품 방
성찰
신新! 찬기파랑가
은어 낚시 통신
여보게!
유월
첫눈
제6부, 마당 깊은 집
만남
마음의 꽃
흥국사에서
마당 깊은 집
서귀포에서
아버지의 시간
어머니의 잔
동행
생불
할미꽃
봄의 창을 열 때마다
바람의 눈물
[시평] 안개 걷힌 들판의 계절 언어 박홍선(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박철민
시인 박철민은 1964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하고 인천에서 성장하였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문상객담』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가톨릭대 국사학과에서 수학했고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다. 동화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글을 쓰며 지방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아르코단막극제 희곡상, 인천항구연극제 대상, 경남콘텐츠진흥재단 공모전 우수상 및 경북일보 호미문학상 가작 등을 수상했으며, 작품집으로는 정치우화소설집 『대권천하』 실명창작소설 『천 개의 우산』 공동희곡집 『2008 신춘문예 희곡집』 등이 있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 「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 「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산과 강 그리고 들판과 바다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도 친하게 지낼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박철민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서정적인 사람이다. 천연기념물을 보았을 때의 진기함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윤리의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다독거리는 순결한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여린 마음을 갖다 보니 탁상용 태양력이 한 해 한 해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울컥,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꿈은 꾸다 보면 이뤄지는 거 「심해어」'라고 어린애처럼 믿는 사람이다. '고요한 밤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에서 절대로 '만장의 하관만으로도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 「몽상의 시」'며 자위하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안개꽃을 닮은 강남대로에서 거친 꿈이나마 꾸고 싶은 자신을 고백하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산과 강 그리고 들판과 바다에서 그리워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어둠의 기억들은 모두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도 친하게 지낼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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