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양산숙
역사가 숨긴 충격적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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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영웅'으로 포장된 유성룡 민낯 폭로! … 『징비록』 서사 전면 뒤집다
조선 중기, 가장 뼈아픈 국난의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문제작 『유성룡 양산숙』(매거진U, 2만5천 원)이 출간됐다. 이 책은 '난세의 명재상', '임진왜란의 영웅', '『징비록』의 저자'로 추앙받아온 "유성룡"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430여 년간 이어져온 역사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자 양성현은 단언한다. "유성룡은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개혁을 막고 전란을 키운 장본인이다!"
수십년 간의 사료 분석을 통해, "유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개혁을 거부하고 군사 대비를 방해했음"이 명백히 입증된다. 특히 김성일의 "전쟁은 없다"는 발언을 두둔, 조선이 참혹한 전란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해 인구 60%인 252만 명 희생이라는 비극적 참사의 결정적 책임을 지게 했다.
국방 최고 책임자였던 유성룡은 전쟁 발발 직후 가족부터 피신시켰고, 6만 명 전멸한 진주성 전투를 도체찰사 직분을 망각한 채 외면했다. 영의정에 오른 뒤에는 이산겸·김덕령 등 의병장들을 '역모'로 몰아 죽게 했으며, 조카사위 김홍미를 통해 이순신 파면과 사형 논의까지 주도하는 파행을 저질렀다. 전쟁 후 집필한 『징비록』과 『운암잡록』은 이 모든 비겁함과 만행을 은폐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한 '자기 미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책 『유성룡 양산숙』은 그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기축옥사(1589년 10월)의 주도자로 유성룡을 지목한다. 역병과 대가뭄으로 민생이 붕괴된 최악의 상황. 이 혼란 속에서 유성룡과 주류 동인 세력은 정여립 역모 사건을 고변·주도·확대하며 '정적 숙청'의 도구로 활용, 주류동인 권력 강화에 나섰다.
'유성룡 주도설'의 결정적 근거들은 넘쳐난다. 기축옥사 2~3개월 전, 유성룡은 고향 인동에서 권문해·유운룡 등 동인 핵심 인사들과 소위 '인동회동'을 가졌다. 이 회동의 주역인 유운룡과 권문해가 기축옥사 고변 직후 핵심 수사 책임자로 등장했다. 정철이 위관을 맡기 한달 전에 이미 주류 동인이 수사권을 장악했다. 역모 고변자와 초기 수사 책임자 모두 유성룡의 대과 동기이자 측근이었다. 인사권마저 유성룡이 쥔다.
사건 확대 역시 유성룡이 중심이 된 주류 동인의 개입으로 이뤄졌다. 1590년 3월 유성룡이 동인계 강경파 홍여순을 전라도 관찰사로 파견하고, 이어 5월 유성룡 자신이 직접 위관(옥사 수사 책임자)으로 나선 때부터다. 무차별적으로 체포·탄압이 자행된다. 이른바 '유성룡-홍여순 라인'이 작동하며 최영경·정개청 등 비주류 동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었다. 기축옥사 말기에는 서인계 인사들에 대한 줄탄핵이 이어졌고, 심지어 이발의 노모와 자식까지 압슬형으로 죽이는 참극이 벌어진다. 이는 유성룡이 송강 정철을 몰아낸 뒤 자행한 대대적인 정치 보복이었다. 송익필은 물론 역모자로 몰린 정여립 역시 희생자였는데, 정여립이 수괴로 지목된 배경에는 1583년 율곡 이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당을 조장한 거간은 유성룡"이라 비판한 일이 무관치 않다.
이 모든 정황은 "기축옥사 이후 서인이 집권했다"는 통설이 허구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건 전후 내내 동인이 권력을 장악했고, 그 중심에 유성룡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축옥사는 단순한 역모 사건이 아닌, 임진왜란 대비를 철저히 방기하게 만든 결정적 정치 참사였다.
이 책은 유성룡과 대척점에 서 있던 충민공 양산숙을 소환한다.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진짜 리더'를 불러들인 것이다. 양산숙은 젊은 시절부터 왜의 침략을 경고하고, 개혁을 주장했으며, 심지어 "유성룡을 버려야 조선이 산다!"는 직언까지 임금에게 했으나 끝내 묵살당했다.
그러나 전란이 터지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전세를 반전시키고, '의주 보고'를 통해 의병을 정규군화 하고, 임금에게 희망을 전달했다. 유성룡이 외면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명군 파병을 집접 독려하며 싸웠고, 서응로 돌아와 장렬히 순절하며 헌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의 숭고한 헌신은 유성룡의 비겁함과 극명히 대비된다.
저자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서려면,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과 유성룡이 『징비록』으로 만든 왜곡 서사를 동시에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축소했고, 유성룡 서사는 진실을 뒤틀었다. 그 결과 조선을 무너뜨린 책임자들이 면죄부를 받았고, 진정한 교훈은 사라졌다. 『유성룡 양산숙』은 이 왜곡의 벽을 허물고, 잊힌 영웅의 이름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펴냈다.
"『징비록』이 감춘 것은 무엇이며? 또 우리는 왜 양산숙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하며, 오늘날 '진짜 리더는 누구였는지?'을 묻고 있다.
조선 중기, 가장 뼈아픈 국난의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문제작 『유성룡 양산숙』(매거진U, 2만5천 원)이 출간됐다. 이 책은 '난세의 명재상', '임진왜란의 영웅', '『징비록』의 저자'로 추앙받아온 "유성룡"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430여 년간 이어져온 역사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자 양성현은 단언한다. "유성룡은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개혁을 막고 전란을 키운 장본인이다!"
수십년 간의 사료 분석을 통해, "유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개혁을 거부하고 군사 대비를 방해했음"이 명백히 입증된다. 특히 김성일의 "전쟁은 없다"는 발언을 두둔, 조선이 참혹한 전란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해 인구 60%인 252만 명 희생이라는 비극적 참사의 결정적 책임을 지게 했다.
국방 최고 책임자였던 유성룡은 전쟁 발발 직후 가족부터 피신시켰고, 6만 명 전멸한 진주성 전투를 도체찰사 직분을 망각한 채 외면했다. 영의정에 오른 뒤에는 이산겸·김덕령 등 의병장들을 '역모'로 몰아 죽게 했으며, 조카사위 김홍미를 통해 이순신 파면과 사형 논의까지 주도하는 파행을 저질렀다. 전쟁 후 집필한 『징비록』과 『운암잡록』은 이 모든 비겁함과 만행을 은폐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한 '자기 미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책 『유성룡 양산숙』은 그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기축옥사(1589년 10월)의 주도자로 유성룡을 지목한다. 역병과 대가뭄으로 민생이 붕괴된 최악의 상황. 이 혼란 속에서 유성룡과 주류 동인 세력은 정여립 역모 사건을 고변·주도·확대하며 '정적 숙청'의 도구로 활용, 주류동인 권력 강화에 나섰다.
'유성룡 주도설'의 결정적 근거들은 넘쳐난다. 기축옥사 2~3개월 전, 유성룡은 고향 인동에서 권문해·유운룡 등 동인 핵심 인사들과 소위 '인동회동'을 가졌다. 이 회동의 주역인 유운룡과 권문해가 기축옥사 고변 직후 핵심 수사 책임자로 등장했다. 정철이 위관을 맡기 한달 전에 이미 주류 동인이 수사권을 장악했다. 역모 고변자와 초기 수사 책임자 모두 유성룡의 대과 동기이자 측근이었다. 인사권마저 유성룡이 쥔다.
사건 확대 역시 유성룡이 중심이 된 주류 동인의 개입으로 이뤄졌다. 1590년 3월 유성룡이 동인계 강경파 홍여순을 전라도 관찰사로 파견하고, 이어 5월 유성룡 자신이 직접 위관(옥사 수사 책임자)으로 나선 때부터다. 무차별적으로 체포·탄압이 자행된다. 이른바 '유성룡-홍여순 라인'이 작동하며 최영경·정개청 등 비주류 동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었다. 기축옥사 말기에는 서인계 인사들에 대한 줄탄핵이 이어졌고, 심지어 이발의 노모와 자식까지 압슬형으로 죽이는 참극이 벌어진다. 이는 유성룡이 송강 정철을 몰아낸 뒤 자행한 대대적인 정치 보복이었다. 송익필은 물론 역모자로 몰린 정여립 역시 희생자였는데, 정여립이 수괴로 지목된 배경에는 1583년 율곡 이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당을 조장한 거간은 유성룡"이라 비판한 일이 무관치 않다.
이 모든 정황은 "기축옥사 이후 서인이 집권했다"는 통설이 허구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건 전후 내내 동인이 권력을 장악했고, 그 중심에 유성룡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축옥사는 단순한 역모 사건이 아닌, 임진왜란 대비를 철저히 방기하게 만든 결정적 정치 참사였다.
이 책은 유성룡과 대척점에 서 있던 충민공 양산숙을 소환한다.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진짜 리더'를 불러들인 것이다. 양산숙은 젊은 시절부터 왜의 침략을 경고하고, 개혁을 주장했으며, 심지어 "유성룡을 버려야 조선이 산다!"는 직언까지 임금에게 했으나 끝내 묵살당했다.
그러나 전란이 터지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전세를 반전시키고, '의주 보고'를 통해 의병을 정규군화 하고, 임금에게 희망을 전달했다. 유성룡이 외면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명군 파병을 집접 독려하며 싸웠고, 서응로 돌아와 장렬히 순절하며 헌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의 숭고한 헌신은 유성룡의 비겁함과 극명히 대비된다.
저자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서려면,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과 유성룡이 『징비록』으로 만든 왜곡 서사를 동시에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민사관은 역사를 축소했고, 유성룡 서사는 진실을 뒤틀었다. 그 결과 조선을 무너뜨린 책임자들이 면죄부를 받았고, 진정한 교훈은 사라졌다. 『유성룡 양산숙』은 이 왜곡의 벽을 허물고, 잊힌 영웅의 이름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펴냈다.
"『징비록』이 감춘 것은 무엇이며? 또 우리는 왜 양산숙을 기억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하며, 오늘날 '진짜 리더는 누구였는지?'을 묻고 있다.
목차
목차
서문 _ 역사 다시쓰다! 진짜 징비(懲毖)의 이름으로…
역사 연표
차례
임진왜란 전후 주요 역사 일정
표: 서애 유성룡 임진왜란 전후 행적
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 연보
표: 전란을 맞아 유성룡 동인 측 & 양산숙 서인 측이 보인 행적 비교
최악의 군주 선조와 백성의 고통
최악의 군주 선조, 그리고 그의 최측근
1592 조선은 지옥이 되었다; 역사가 만든 참극
1591 임진왜란, 예고된 참사였지만 외면했다
1555 위기의 시대, 양산숙이 전쟁을 대비한 이유
1587년 손죽도, 양산숙이 본 전쟁의 징조
1587 양산숙, 왜 사신 통해 조선의 위기 직감하다
봉쇄당한 개혁
1589 양산숙과 유생 50여 명은 왜 상소 했을까?
1590 유성룡이 보낸 전라도 관찰사 홍여순
1569 양명학 배척한 유성룡, 애초부터 개혁반대
1575 당쟁의 시작은 개혁에 대한 반발이었다
1579 더욱 심해지는 동인들의 공세
1573 유성룡, 젊은 선비들의 언로를 틀어막다!
1582 10만 양병 반대한 자는 유성룡이었다!
1583 노비 면천 놓고 갈등
1583 그들은 왜?
파행
1589 정철은 주도자가 아니었다-기축옥사의 진실
1589 유성룡-한준-최황에 쏠린 의문들
1589 기축옥사의 주도자는 오히려 유성룡?
1590 최영경 죽음과 숨은 방조자
1591 곧 전쟁인데, 대대적인 서인 탄압
1591 송강 정철 제거로 시작된 동인의 폭주
임진년, 희망의 싹
1592 유성룡의 방관 vs 양산숙의 결단
1592 전쟁 대비 막은 책임자들 처벌하라!
1592 임진왜란 - 양산숙, 가장 먼저 깃발 들다
1592 한양으로 가는 양산숙
1592 전쟁의 흐름을 바꾸다 … 양산숙의 의주 보고
1592 소 잃고서야 외양간 찾은 유성룡
1592 두 왕자 포로로 잡히다
1593 한양 수복과 포로 협상
진주에서의 슬픔
1593 진주성에서
1593 양산숙, 명나라 총병 유정을 만나다
1593 전투가 시작됐다
1593 혹시 유성룡 보셨어요?
1593 무너진 성, 처절한 죽음
1593 유성룡의 두 얼굴…왜장과 내통?
오독 오판
1593, 유성룡 복귀 직후… 정철 탄핵에 올인
1594 유성룡, 전쟁 중 1년 내내 죽은 정철 탄핵
유성룡, "남 탓" 민낯… 『운암잡록』에 담긴 이중성
1594 무서운 정치…유성룡 의병들을 죽이다
1596 또 의병장 김덕령과 김언욱을 죽이다
1597 이순신까지 … 유성룡의 치명적 오판
1594 의병에 충격적인 막말 … 유성룡의 민낯
누가 영웅인가?
1597 진주성의 숨겨진 영웅, 양산숙!
1597 누가 나라를 지켰나? 양산숙 vs 유성룡
역사 연표
차례
임진왜란 전후 주요 역사 일정
표: 서애 유성룡 임진왜란 전후 행적
표: 충민공 양산숙 의병장 연보
표: 전란을 맞아 유성룡 동인 측 & 양산숙 서인 측이 보인 행적 비교
최악의 군주 선조와 백성의 고통
최악의 군주 선조, 그리고 그의 최측근
1592 조선은 지옥이 되었다; 역사가 만든 참극
1591 임진왜란, 예고된 참사였지만 외면했다
1555 위기의 시대, 양산숙이 전쟁을 대비한 이유
1587년 손죽도, 양산숙이 본 전쟁의 징조
1587 양산숙, 왜 사신 통해 조선의 위기 직감하다
봉쇄당한 개혁
1589 양산숙과 유생 50여 명은 왜 상소 했을까?
1590 유성룡이 보낸 전라도 관찰사 홍여순
1569 양명학 배척한 유성룡, 애초부터 개혁반대
1575 당쟁의 시작은 개혁에 대한 반발이었다
1579 더욱 심해지는 동인들의 공세
1573 유성룡, 젊은 선비들의 언로를 틀어막다!
1582 10만 양병 반대한 자는 유성룡이었다!
1583 노비 면천 놓고 갈등
1583 그들은 왜?
파행
1589 정철은 주도자가 아니었다-기축옥사의 진실
1589 유성룡-한준-최황에 쏠린 의문들
1589 기축옥사의 주도자는 오히려 유성룡?
1590 최영경 죽음과 숨은 방조자
1591 곧 전쟁인데, 대대적인 서인 탄압
1591 송강 정철 제거로 시작된 동인의 폭주
임진년, 희망의 싹
1592 유성룡의 방관 vs 양산숙의 결단
1592 전쟁 대비 막은 책임자들 처벌하라!
1592 임진왜란 - 양산숙, 가장 먼저 깃발 들다
1592 한양으로 가는 양산숙
1592 전쟁의 흐름을 바꾸다 … 양산숙의 의주 보고
1592 소 잃고서야 외양간 찾은 유성룡
1592 두 왕자 포로로 잡히다
1593 한양 수복과 포로 협상
진주에서의 슬픔
1593 진주성에서
1593 양산숙, 명나라 총병 유정을 만나다
1593 전투가 시작됐다
1593 혹시 유성룡 보셨어요?
1593 무너진 성, 처절한 죽음
1593 유성룡의 두 얼굴…왜장과 내통?
오독 오판
1593, 유성룡 복귀 직후… 정철 탄핵에 올인
1594 유성룡, 전쟁 중 1년 내내 죽은 정철 탄핵
유성룡, "남 탓" 민낯… 『운암잡록』에 담긴 이중성
1594 무서운 정치…유성룡 의병들을 죽이다
1596 또 의병장 김덕령과 김언욱을 죽이다
1597 이순신까지 … 유성룡의 치명적 오판
1594 의병에 충격적인 막말 … 유성룡의 민낯
누가 영웅인가?
1597 진주성의 숨겨진 영웅, 양산숙!
1597 누가 나라를 지켰나? 양산숙 vs 유성룡
저자
저자
양성현
양성현은 고려대 경영대 경영학과를 나와 내일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역사이야기, 인물 이야기를 쓰고 있다. 간간이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의미를 찾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보는 임진왜란』, 『실사구시』 등의 책을 통해 임진왜란과 실학의 역사를 찾아 나섰다. 줄곧 의병의 역사와 실학의 역사를 따라간 것이다. 이번에 낸 책 〈유성룡 기축옥사〉는 그동안 알려진 기축옥사와 다른 이야기다. 430여 년 동안 주류 세력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기축옥사 이야기의 진실을 파헤친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기록들을 찾아 봤고, 쓰고 또 썼다. 양성현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 박동량, 그리고 역사 대중화를 이끌어온 이이화 선생의 역할을 모델로 삼고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뉴미디어에 새로운 역사관을 말하는 '디지털-의병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저서 『징비록』, 『다시보는 임진왜란』, 『사암 박순』, 『실사구시』, 『흥학관』, 『무산 고제환, 세도정치에 맞서다』, 『한양도성 가는 길』, 『보성 義이야기』,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 『매간당고택』, 『이진래고택』, 『영암 구림마을 종가여행』, 『양림동 걷다』, 『앙코르와트 4박6일』 등
저서 『징비록』, 『다시보는 임진왜란』, 『사암 박순』, 『실사구시』, 『흥학관』, 『무산 고제환, 세도정치에 맞서다』, 『한양도성 가는 길』, 『보성 義이야기』,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 『매간당고택』, 『이진래고택』, 『영암 구림마을 종가여행』, 『양림동 걷다』, 『앙코르와트 4박6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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