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필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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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이 졸업 기념 77부 한정판 시집으로 남기고자 했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속의 유시 19편을 담은 필사시집
모든 시를 읽을 시간이 없는 독자, 핵심만을 읽고 쓰고 싶은 독자를 위한 필사노트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세계인이 기억하고 공감하는 시를 남긴 시인이다. 혹독한 일제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던 청년 윤동주는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어 1945년 2월 16일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자 청년으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서시」,「십자가」,「별 헤는 밤」등의 시를 통해 맑고 순결한 영혼이 지상에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일제 치하, 한글이 철저히 금지되었던 시기에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 하는 마음으로 굳건히 한글로 시를 써 내려간 윤동주. 자신을 성찰하며 신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의 시는 각 시대마다 청년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여전히 그의 시는 우리 사회의 마음을 비추는 우물이자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모든 시를 읽을 시간이 없는 독자, 핵심만을 읽고 쓰고 싶은 독자를 위한 필사노트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세계인이 기억하고 공감하는 시를 남긴 시인이다. 혹독한 일제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던 청년 윤동주는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어 1945년 2월 16일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자 청년으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서시」,「십자가」,「별 헤는 밤」등의 시를 통해 맑고 순결한 영혼이 지상에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일제 치하, 한글이 철저히 금지되었던 시기에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 하는 마음으로 굳건히 한글로 시를 써 내려간 윤동주. 자신을 성찰하며 신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의 시는 각 시대마다 청년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여전히 그의 시는 우리 사회의 마음을 비추는 우물이자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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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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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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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 자화상 / 소년 / 눈 오는 지도 / 돌아와 보는 밤 / 병원 / 새로운 길 / 간판 없는 거리 / 태초(太初)의 아침 / 또 태초(太初)의 아침 / 새벽이 올 때까지 / 무서운 시간 / 십자가 / 바람이 불어 / 슬픈 족속 / 눈 감고 간다 / 또 다른 고향 / 길 / 별 헤는 밤/ 시인 윤동주
저자
저자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대랍자소학교,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나 신사 참배 거부 문제로 이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한 학기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학원에 편입, 중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38년 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에서의 4년은 윤동주에게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눈뜨는 과정이었고, 거기에 맞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과정이었다. 그는 졸업을 앞둔 1941년에 그때까지 써 놓은 시 중에서 18편을 뽑고 여기에「서시」를 붙여『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다. 이 자선 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고자 하였는데, 당시 일제의 검열을 걱정한 주변의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원고 3부를 손수 작성하여 1부는 자신이 갖고,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각각 1부씩 증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낯선 이국 땅에서 결국 향수병에 시달렸고 단짝인 고종사촌 송몽규가 있는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입학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도시샤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안정된 유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43년 봄,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윤동주는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송몽규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그 후 1년 뒤인 1945년 2월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윤동주의 유시는 해방 후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벗이었던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와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 시집 등 31편의 시를 모아 1948년 1월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인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출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대랍자소학교,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그러나 신사 참배 거부 문제로 이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한 학기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학원에 편입, 중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1938년 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에서의 4년은 윤동주에게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눈뜨는 과정이었고, 거기에 맞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과정이었다. 그는 졸업을 앞둔 1941년에 그때까지 써 놓은 시 중에서 18편을 뽑고 여기에「서시」를 붙여『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다. 이 자선 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고자 하였는데, 당시 일제의 검열을 걱정한 주변의 만류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원고 3부를 손수 작성하여 1부는 자신이 갖고,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각각 1부씩 증정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낯선 이국 땅에서 결국 향수병에 시달렸고 단짝인 고종사촌 송몽규가 있는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입학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도시샤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안정된 유학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43년 봄,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윤동주는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하였다는 죄목으로 송몽규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그 후 1년 뒤인 1945년 2월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윤동주의 유시는 해방 후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벗이었던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와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 시집 등 31편의 시를 모아 1948년 1월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인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출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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