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었던 곳
정찬 장편소설
Regular price
$20.22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꿈으로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인간에 대한 믿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간직했던 그들
그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도저한 감동
하지만 우리는 과연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잊을 수 없는 오월의 상흔
타인의 고통과 함께 머물렀던 '그들'의 자취
5ㆍ18 정신을 뼛속 깊이 되새기는 문학적 묘비명!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은 소설가 정찬은 5·18민주화운동을 총체적 시각에서 그린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을 내놓았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민들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죽음으로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 이정표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캄캄한 역사의 밤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 민주 시민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웠다. 평화학과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그들이 있었던 곳』의 인물들이 현재성을 가진다고 말한 것은 그런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이 작품은 24년 전 출간됐던 장편 『광야』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바뀐 내용에 맞게 새로운 제목(『그들이 있었던 곳』)을 달았다. 특히 작가는 12·3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갔던 사람들을 보면서 5ㆍ18의 경험이 현재화되는 신비를 느껴 『그들이 있었던 곳』을 쓰게 되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소설가 정지아는 "광주항쟁을 제대로 다룬 작가는 드물다. 한 세대 뒤인 한강 작가가 긴 침묵을 깨트렸고, 한국문학의 숙원이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한반도의 역사와 실핏줄처럼 연결된 광주민주화운동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왜 시작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갔으며, 어떻게 끝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독자들은 『그들이 있었던 곳』을 통해 5월 광주의 전체 모습을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영혼의 상처와 만나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비극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도저한 열정에 큰 감동을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5·18정신은 불의에 대한 주권자 시민의 저항 정신, 공동체의 연대, 민주주의 열망과 수호 의지이다. 정찬 작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이 5·18정신이 새겨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간직했던 그들
그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도저한 감동
하지만 우리는 과연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걸까?
잊을 수 없는 오월의 상흔
타인의 고통과 함께 머물렀던 '그들'의 자취
5ㆍ18 정신을 뼛속 깊이 되새기는 문학적 묘비명!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은 소설가 정찬은 5·18민주화운동을 총체적 시각에서 그린 장편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을 내놓았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민들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죽음으로 저항하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그 이정표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캄캄한 역사의 밤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 민주 시민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웠다. 평화학과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그들이 있었던 곳』의 인물들이 현재성을 가진다고 말한 것은 그런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이 작품은 24년 전 출간됐던 장편 『광야』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바뀐 내용에 맞게 새로운 제목(『그들이 있었던 곳』)을 달았다. 특히 작가는 12·3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갔던 사람들을 보면서 5ㆍ18의 경험이 현재화되는 신비를 느껴 『그들이 있었던 곳』을 쓰게 되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소설가 정지아는 "광주항쟁을 제대로 다룬 작가는 드물다. 한 세대 뒤인 한강 작가가 긴 침묵을 깨트렸고, 한국문학의 숙원이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있었던 곳』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광주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한반도의 역사와 실핏줄처럼 연결된 광주민주화운동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왜 시작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갔으며, 어떻게 끝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독자들은 『그들이 있었던 곳』을 통해 5월 광주의 전체 모습을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광주 시민들이 겪었던 영혼의 상처와 만나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비극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도저한 열정에 큰 감동을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5·18정신은 불의에 대한 주권자 시민의 저항 정신, 공동체의 연대, 민주주의 열망과 수호 의지이다. 정찬 작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이 5·18정신이 새겨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꿈으로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웠다. 혁명의 시간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 눈부신 시간은 너무 짧았다. _226쪽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름에 가린 저녁 하늘은 거무스레했다. 축축한 바람이 흐린 빛에 싸인 도시를 훑고 지나갔다. 도시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그런 도시의 모습이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보여 어떤 마술로 도시 전체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유령들이 황혼도 저녁 별도 잃어버린 하늘 아래서 소리 없이 배회하는 듯했다. 깨어진 가로등과 부서진 공중전화 박스들은 그런 느낌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 훼손은커녕 오히려 짙게 했다. 강선우는 상념을 쫓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헬멧에서 빗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_34쪽
머리가 깨어져 피범벅이 된 남자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옷도 피범벅이었다. 깨어지고 부서진 차들 사이에 부상자들이 즐비했다. 저문 하늘의 잔광은 그들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피 흘리는 그들의 몸은 검붉은 물감으로 덧칠한 그림의 일부처럼 보였다. 길바닥에 고인 핏물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그 속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소리도 움직임도 지워져 있었다. _46쪽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정부 상태에서 수만의 인파가 사나흘 동안 밤낮을 휩쓸고 다녔는데도 비정치적 범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름과 차량을 징발한 것이나, 식품 회사 대리점에서 다량의 빵을 가져간 것은 시위를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방화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과 10여 곳의 파출소가 불탄 것은 정치적 행위의 표출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비정치적 범법 행위였다. 정치적 범법 행위는 비정치적 범법 행위를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무정부적 상황이 파괴 욕구와 범죄 충동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로서는 대단히 불길한 현상이었다. _62쪽
여섯 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한 청년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시위대는 물론이고 건물에서 시위대를 내려다보는 이들의 시선이 청년들에게 집중되었다. 청년들은 도청 광장으로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길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그들의 몸짓과 펄럭이는 태극기는 텅 빈 길 위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생명으로 충만한 세계였다. 생명의 원천은 자유였다. 투명한 자유가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춤을 추었다. 죽음과 맞닿은 춤이었다.
타타타타앙.
귀를 찢는 총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청년이 동시에 쓰러졌다. 놀라움과 탄식 속에 시민들이 달려나와 그들을 옮겼다. 춤의 공간이 비기가 무섭게 청년들이 또 뛰어나와 피 묻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_74쪽
창가에 선 박태민은 바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깨끗했다. 격렬했던 전쟁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전쟁이 할퀸 거리를 청소하는 작은 손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도청으로 진격하던 시민군 속에 중학생들이 있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무기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그들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형의 원수를 갚겠다며 총을 달라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참극을 어린 영혼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눈을 감았다. 어둠의 군단이 보였다. 도시를 유린하는 군홧발 소리는 날카롭고 음산했다. 해방광주는, 이 유일한 빛의 나라는 어린 영혼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그들에게.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셨다. 절해고도이기에 더욱 눈부신 해방광주의 햇살이었다. _114쪽
"우리에게 계엄군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해방광주의 시간을 탈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결코 탈취당할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진실이 만들고 있었고 앞으로도 만들 시간입니다. 진실은 인간의 혼을 가장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그 움직임이 만드는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릅니다. 공수특전단의 무참한 폭력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진실은 시민들의 혼을 흔들어 죽음을 넘어서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 비통하게도 우리는 해방광주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등불입니다. 죽음이라는 불꽃을 통해." _210쪽
"신부님이 저지른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지요?"
"칼을 든 자를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갑옷을 입고서도 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분은 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도청으로 가는 것은 벌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도청이 그리스도의 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집이야말로 사제가 가야 할 곳이죠."
"이해가 안 되는군요." _222쪽
전투 초기 시민군은 적극적으로 사격했다. 계엄군 특공조가 어둠에 몸을 은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둠을 향해 무작정 총을 쏜 것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지고 특공조가 건물로 접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표적의 실체가 눈에 보이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시민군 가운데 총을 처음 만져본 이들이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총기 조작에 능숙한 군 제대자도 사람을 표적으로 하는 사격에 낯설었다. 한 생명을 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시민군 사령관 역할을 했던 박남선조차 접근하는 계엄군을 조준까지 했으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승리를 믿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계엄군을 죽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침몰하는 해방광주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_240쪽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름에 가린 저녁 하늘은 거무스레했다. 축축한 바람이 흐린 빛에 싸인 도시를 훑고 지나갔다. 도시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그런 도시의 모습이 대단히 비현실적으로 보여 어떤 마술로 도시 전체가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유령들이 황혼도 저녁 별도 잃어버린 하늘 아래서 소리 없이 배회하는 듯했다. 깨어진 가로등과 부서진 공중전화 박스들은 그런 느낌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 훼손은커녕 오히려 짙게 했다. 강선우는 상념을 쫓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헬멧에서 빗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_34쪽
머리가 깨어져 피범벅이 된 남자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옷도 피범벅이었다. 깨어지고 부서진 차들 사이에 부상자들이 즐비했다. 저문 하늘의 잔광은 그들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피 흘리는 그들의 몸은 검붉은 물감으로 덧칠한 그림의 일부처럼 보였다. 길바닥에 고인 핏물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그 속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소리도 움직임도 지워져 있었다. _46쪽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정부 상태에서 수만의 인파가 사나흘 동안 밤낮을 휩쓸고 다녔는데도 비정치적 범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름과 차량을 징발한 것이나, 식품 회사 대리점에서 다량의 빵을 가져간 것은 시위를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방화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과 10여 곳의 파출소가 불탄 것은 정치적 행위의 표출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비정치적 범법 행위였다. 정치적 범법 행위는 비정치적 범법 행위를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무정부적 상황이 파괴 욕구와 범죄 충동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로서는 대단히 불길한 현상이었다. _62쪽
여섯 명의 청년들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한 청년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시위대는 물론이고 건물에서 시위대를 내려다보는 이들의 시선이 청년들에게 집중되었다. 청년들은 도청 광장으로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길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그들의 몸짓과 펄럭이는 태극기는 텅 빈 길 위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생명으로 충만한 세계였다. 생명의 원천은 자유였다. 투명한 자유가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춤을 추었다. 죽음과 맞닿은 춤이었다.
타타타타앙.
귀를 찢는 총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청년이 동시에 쓰러졌다. 놀라움과 탄식 속에 시민들이 달려나와 그들을 옮겼다. 춤의 공간이 비기가 무섭게 청년들이 또 뛰어나와 피 묻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_74쪽
창가에 선 박태민은 바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깨끗했다. 격렬했던 전쟁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전쟁이 할퀸 거리를 청소하는 작은 손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도청으로 진격하던 시민군 속에 중학생들이 있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무기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그들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형의 원수를 갚겠다며 총을 달라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참극을 어린 영혼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눈을 감았다. 어둠의 군단이 보였다. 도시를 유린하는 군홧발 소리는 날카롭고 음산했다. 해방광주는, 이 유일한 빛의 나라는 어린 영혼들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그들에게.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셨다. 절해고도이기에 더욱 눈부신 해방광주의 햇살이었다. _114쪽
"우리에게 계엄군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해방광주의 시간을 탈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결코 탈취당할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진실이 만들고 있었고 앞으로도 만들 시간입니다. 진실은 인간의 혼을 가장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그 움직임이 만드는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다릅니다. 공수특전단의 무참한 폭력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진실은 시민들의 혼을 흔들어 죽음을 넘어서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 비통하게도 우리는 해방광주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의 등불입니다. 죽음이라는 불꽃을 통해." _210쪽
"신부님이 저지른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지요?"
"칼을 든 자를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갑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갑옷을 입고서도 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분은 저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벌을 받으려 하십니까?"
"도청으로 가는 것은 벌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도청이 그리스도의 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집이야말로 사제가 가야 할 곳이죠."
"이해가 안 되는군요." _222쪽
전투 초기 시민군은 적극적으로 사격했다. 계엄군 특공조가 어둠에 몸을 은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둠을 향해 무작정 총을 쏜 것이었다. 방어선이 무너지고 특공조가 건물로 접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표적의 실체가 눈에 보이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시민군 가운데 총을 처음 만져본 이들이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총기 조작에 능숙한 군 제대자도 사람을 표적으로 하는 사격에 낯설었다. 한 생명을 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시민군 사령관 역할을 했던 박남선조차 접근하는 계엄군을 조준까지 했으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승리를 믿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계엄군을 죽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총을 든 것은 침몰하는 해방광주와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_240쪽
목차
목차
작가의 말
운명
해방광주
역사의 영혼
주요 참고도서
운명
해방광주
역사의 영혼
주요 참고도서
저자
저자
정찬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새의 시선』,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빌라도의 예수』 『광야』 『유랑자』 『길, 저쪽』 『골짜기에 잠든 자』 『발 없는 새』 와 산문집 『슬픔의 힘을 믿는다』가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