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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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I 발문
생명의 언어, 존재의 풍경
- 이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작품 세계
이성철
1. 정형의 미학 안에서 구현된 존재론적 상상력
이하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자연과 사람, 삶과 역사를 단일한 정서적 순환 구조 속에 입체적으로 배치한 역작이다. 이 시집이 지향하는 기본 궤적은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일상적 생활 서정의 평면적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자연의 물리적 풍경을 응시하되 그 이면에서 인간의 다층적 얼굴을 읽어내고, 미시적인 인간의 삶을 관조하되 그 배후에 도사린 시대와 역사, 나아가 윤리와 존재의 근원적 심연을 동시에 직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시집은 전통 시조가 지닌 율격의 정형성을 고스란히 담지하면서도, 당대의 현대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를 정교하게 직조해 낸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취로 읽힌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두드러진 시학적 표지는 '자연 이미지의 압도적 밀도'와 '역동성'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호출되는 주요 시어군은 바다, 바람, 하늘, 달, 꽃, 햇살, 구름, 파도, 숲, 물 등으로 구성된다.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한 형태소 분석 결과를 토대로 살펴본 시어 빈도 분석에서 명사 상위어는 '바다'(12회), '바람'(11회), '하늘'(10회), '달'(10회), '꽃'(9회) 순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통계적 지표는 시인의 상상력이 단지 자연물의 표면적 묘사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렌즈 삼아 존재론적 사유를 전개하는 매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기서 '바다'는 원초적 생명과 생성의 공간이며, '꽃'은 소멸을 통한 현현(顯現)의 상징으로, '달'은 모성과 상처, 고향과 기억을 두루 비추는 보편적 정서의 광원(光源)으로 작동한다.
품사 상위 빈도
명사 바다, 바람, 하늘, 달, 꽃
동사 오다, 가다, 들다, 보다, 지다
형용사 무겁다, 깊다, 붉다, 맑다, 고요하다
부사 홀로, 다시, 먼저, 몰래, 비로소
품사별 빈도에서 동사 계열이 '오다', '가다', '지다', '보다', '들다'를 중심으로 군집을 이루고, 부사 계열에서 '먼저', '홀로', '몰래', '다시', '비로소'가 반복된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시적 대상이 정지된 풍경(風景)이 아니라, 이동과 소멸, 생성과 변화라는 동세(動勢)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오다'와 '가다'가 길항하며 높은 빈도를 보이는 것은 이 시집의 주된 정조가 만남과 이별, 회귀와 소멸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아울러 '지다'라는 하강의 동사는 꽃이나 노을의 단순한 쇠락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의 빛과 에너지를 전소(全燒)한 뒤 다른 차원의 존재 형식으로 이행하는 숭고한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시집의 시어들은 개별 작품 안에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바다'는 '물-눈물-샘-어머니-생명'으로 연결되고, '꽃'은 '뿌리-낙화-노을-어머니'와 결합한다. 또한 '달'은 '밤-고향-역사-모성'의 의미망을 형성한다. 이러한 순환적 시어 네트워크는 개별 작품들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묶어 주며, 시집 전체를 하나의 장시(長詩)처럼 읽히게 하는 중요한 미학적 장치이다. 이러한 의미망은 작품 간 상호텍스트성을 형성하며, 개별 시조를 독립된 작품으로 읽게 할 뿐 아니라 시집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서사로 이해하게 한다.
2. 심미적 완성과 현실 풍자 양가성
시집의 1부는 '꽃의 미학'을 기저에 두고 전개된다.「꽃 쓰기」에서 시인은 '꽃'이라는 문자의 형태를 해체하여 꽃잎, 꽃받침, 뿌리의 시각적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언어적 유희를 넘어 한글의 조형성과 자연물의 생명성을 융합한 탁월한 기호학적 상상력이다. 나아가 「꽃 뿌리」는 꽃의 본질적 아우라를 지상에 만발한 현란함이 아닌, 칠흑 같은 지하에서 묵묵히 색을 밀어 올린 뿌리의 헌신적 노동에서 발굴해 낸다. 이하의 시에서 꽃은 장식적 오브제가 아니라 철저히 윤리적 실체로 격상된다.
특히 「동백꽃 낙화」는 서정의 절제와 미학적 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로소 다 바래어야 꽃이 되는 꽃이여
- 「동백꽃 낙화」 변용 및 맥락 중에서
동백은 낱장으로 흩날리며 타협하는 꽃이 아니라, 절정의 순간에 제 목을 꺾어 통째로 낙화하는 결연한 꽃이다. 시인은 이 처연한 투신을 '한순간의 작별'이자 '다 바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꽃'으로 명명한다. 아름다움의 절정이 피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소멸을 감내하는 과정에 있다는 이 역설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소멸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시조 특유의 단단한 호흡 안에서 긴 여운을 남긴다.
2부는 서정의 영토를 사회적 인식과 역사적 감각으로 확장하는 장이다.「새-공중변소 낙서」는 반복되는 정치적 수사와 '새로움'이라는 기표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공허한 기만으로 기능하는지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새-'라는 접두어는 언어적 유희를 넘어 권력 담론의 허위를 드러내는 기호로 작동하며, '공중변소'라는 공간은 공적 언어가 가장 비속한 현실과 맞닿는 장소로 재맥락화된다. 이 작품은 정치적 현실을 직접 논평하기보다 언어 자체의 아이러니를 통해 시대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풍자의 밀도를 높인다.
서로가 비정상이라니 그 말만은 정상이네
- 「진영 싸움」 중에서
위 인용구에서 보듯 「진영 싸움」은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서늘한 시선으로 해부한다. "그 말만은 정상이네"라는 조소 섞인 종장의 역설은 진영 논리가 품고 있는 맹목적 자기모순을 단 한 줄로 명중시키는 촌철살인의 백미다.
또한, 「훈민정음」은 문자 창제의 과학적 원리와 천지인(天地人)의 우주론적 질서를 시조의 율격으로 변주한 지적(知的) 서정의 결정체다. 한글을 단순한 민족주의적 찬양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소리글자의 무한한 확장성과 인간 중심의 철학적 체계로 직조해 낸 점은 지성과 감성이 어떻게 시조 안에서 길항하고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글 창제 원리를 시조의 형식으로 구현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독창성이 돋보이는 성취라 할 만하다.
3. 생태학적 주체와 원초적 생명력
3부는 속초와 설악이라는 구체적 장소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다.
(봄 바다) 발정하는 바다의 유혹
(겨울 바다) 섬을 낳고 섬에 든다
- 「속초 바다」 연작 중에서
「속초 바다」 연작은 사계절의 순환을 통해 바다를 거대한 유기체로 감각한다. 봄 바다를 향해 "발정하는 바다의 유혹"이라 칭하고, 겨울 바다를 향해 "섬을 낳고 섬에 든다"고 선언하는 대목은 관습적인 풍경 묘사를 거부하는 도발적 진술이다. 이는 바다를 수동적 풍경이 아닌, 폭발적인 생식과 잉태를 주관하는 원초적 에너지원으로 인식하는 생태적 상상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어 「숲에 든다」에서 시인은 숲에 '간다(go)'고 하지 않고 '든다(enter/permeate)'고 진술한다. 주체가 대상을 관찰하러 외부에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어 마침내 숲 자체와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이루는 존재론적 합일을 보여준다.
4부는 가족애와 농경의 서사, 고향과 모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표제작인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는 이 시집의 감정적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물동이 무게만큼 출렁인 눈물방울
-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 중에서
일반적으로 노을이 안겨주는 낭만적이거나 퇴폐적인 심상과 달리, 이 시에서 노을은 아버지의 고단한 노동과 오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어머니의 치열한 저녁 끼니, 즉 '생활의 육중한 무게' 그 자체다. "물동이 무게만큼 출렁인 눈물방울"이라는 시구는 고난에 찬 모성의 생애를 시각적 무게감으로 치환한 절묘한 은유다. 발등을 적신 눈물이 이윽고 대지의 수액이 되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세상으로 흘러간다는 구조는, 개인의 슬픔이 거대한 생명의 물길로 승화되는 이 시집의 궁극적 구원 의식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이하 시조의 중요한 성취는 일상적 사물에서 철학적 상징을 길어 올리는 사물 미학에 있다. 고장 난 시계에서 아버지의 훈육과 양심의 가책을 읽어내는 「시계와 옰」, 작은 불씨 하나에서 생의 고단함과 연대의 온기를 점화하는「불 좀 빌립시다」 등은, 평범한 사물을 삶의 윤리와 시대적 기억을 매개하는 성소(聖所)로 탈바꿈시킨다.
4. 무거운 따뜻함, 현대시조의 진화
이하 시조 작품이 품고 있는 사유의 그물망은 크게 네 개의 축(생명, 시간, 가족, 역사·사회 네트워크)으로 교직 되어 있다. 꽃은 가족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바다는 고향의 장소성으로 환원되며, 달은 모성과 역사를 동시에 비추는 다원적 구조를 띤다.
물론, 일부 작품에서는 메시지가 다소 전면으로 돌출되면서 이미지의 여운보다 의미 전달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주석이나 부연 설명이 시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날 것 그대로의 강렬한 어휘가 돌출되는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매끄럽게 가공된 관념어의 유희를 거부하고, 흙먼지 묻은 생활의 구어적 활력과 육체성을 시조에 이식하려는 시인의 의도적 파열음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또한 조각시의 단면을 연상케 하는 찰나의 응축과 정형성의 결합은 현대시조가 나아갈 갱신의 한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를 지배하는 고유한 미학은 '무거운 따뜻함'이다. 노을의 무게를 견디고, 낙화의 뼈아픔을 수용하며, 상처 입은 역사를 직시하는 이 무거운 텍스트들은 결코 절망의 구심력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하중을 묵묵히 버텨내는 존재들의 분투가 따스한 생명력으로 치환된다.
한국 현대시조는 전통적으로 자연 서정과 생활 서정을 중심으로 전개했으나, 최근에는 생태적 감수성과 사회적 현실 인식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이러한 흐름 위에서 자연과 인간, 역사와 윤리를 하나의 시적 구조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전통과 현대, 서정과 현실,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정형적 미학 안에서 통합하려는 현대시조의 의미 있는 성취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생명의 언어, 존재의 풍경
- 이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작품 세계
이성철
1. 정형의 미학 안에서 구현된 존재론적 상상력
이하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자연과 사람, 삶과 역사를 단일한 정서적 순환 구조 속에 입체적으로 배치한 역작이다. 이 시집이 지향하는 기본 궤적은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일상적 생활 서정의 평면적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자연의 물리적 풍경을 응시하되 그 이면에서 인간의 다층적 얼굴을 읽어내고, 미시적인 인간의 삶을 관조하되 그 배후에 도사린 시대와 역사, 나아가 윤리와 존재의 근원적 심연을 동시에 직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시집은 전통 시조가 지닌 율격의 정형성을 고스란히 담지하면서도, 당대의 현대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를 정교하게 직조해 낸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취로 읽힌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두드러진 시학적 표지는 '자연 이미지의 압도적 밀도'와 '역동성'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빈번하게 호출되는 주요 시어군은 바다, 바람, 하늘, 달, 꽃, 햇살, 구름, 파도, 숲, 물 등으로 구성된다.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한 형태소 분석 결과를 토대로 살펴본 시어 빈도 분석에서 명사 상위어는 '바다'(12회), '바람'(11회), '하늘'(10회), '달'(10회), '꽃'(9회) 순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통계적 지표는 시인의 상상력이 단지 자연물의 표면적 묘사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렌즈 삼아 존재론적 사유를 전개하는 매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기서 '바다'는 원초적 생명과 생성의 공간이며, '꽃'은 소멸을 통한 현현(顯現)의 상징으로, '달'은 모성과 상처, 고향과 기억을 두루 비추는 보편적 정서의 광원(光源)으로 작동한다.
품사 상위 빈도
명사 바다, 바람, 하늘, 달, 꽃
동사 오다, 가다, 들다, 보다, 지다
형용사 무겁다, 깊다, 붉다, 맑다, 고요하다
부사 홀로, 다시, 먼저, 몰래, 비로소
품사별 빈도에서 동사 계열이 '오다', '가다', '지다', '보다', '들다'를 중심으로 군집을 이루고, 부사 계열에서 '먼저', '홀로', '몰래', '다시', '비로소'가 반복된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시적 대상이 정지된 풍경(風景)이 아니라, 이동과 소멸, 생성과 변화라는 동세(動勢)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오다'와 '가다'가 길항하며 높은 빈도를 보이는 것은 이 시집의 주된 정조가 만남과 이별, 회귀와 소멸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아울러 '지다'라는 하강의 동사는 꽃이나 노을의 단순한 쇠락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의 빛과 에너지를 전소(全燒)한 뒤 다른 차원의 존재 형식으로 이행하는 숭고한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시집의 시어들은 개별 작품 안에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바다'는 '물-눈물-샘-어머니-생명'으로 연결되고, '꽃'은 '뿌리-낙화-노을-어머니'와 결합한다. 또한 '달'은 '밤-고향-역사-모성'의 의미망을 형성한다. 이러한 순환적 시어 네트워크는 개별 작품들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묶어 주며, 시집 전체를 하나의 장시(長詩)처럼 읽히게 하는 중요한 미학적 장치이다. 이러한 의미망은 작품 간 상호텍스트성을 형성하며, 개별 시조를 독립된 작품으로 읽게 할 뿐 아니라 시집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서사로 이해하게 한다.
2. 심미적 완성과 현실 풍자 양가성
시집의 1부는 '꽃의 미학'을 기저에 두고 전개된다.「꽃 쓰기」에서 시인은 '꽃'이라는 문자의 형태를 해체하여 꽃잎, 꽃받침, 뿌리의 시각적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언어적 유희를 넘어 한글의 조형성과 자연물의 생명성을 융합한 탁월한 기호학적 상상력이다. 나아가 「꽃 뿌리」는 꽃의 본질적 아우라를 지상에 만발한 현란함이 아닌, 칠흑 같은 지하에서 묵묵히 색을 밀어 올린 뿌리의 헌신적 노동에서 발굴해 낸다. 이하의 시에서 꽃은 장식적 오브제가 아니라 철저히 윤리적 실체로 격상된다.
특히 「동백꽃 낙화」는 서정의 절제와 미학적 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로소 다 바래어야 꽃이 되는 꽃이여
- 「동백꽃 낙화」 변용 및 맥락 중에서
동백은 낱장으로 흩날리며 타협하는 꽃이 아니라, 절정의 순간에 제 목을 꺾어 통째로 낙화하는 결연한 꽃이다. 시인은 이 처연한 투신을 '한순간의 작별'이자 '다 바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꽃'으로 명명한다. 아름다움의 절정이 피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소멸을 감내하는 과정에 있다는 이 역설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소멸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시조 특유의 단단한 호흡 안에서 긴 여운을 남긴다.
2부는 서정의 영토를 사회적 인식과 역사적 감각으로 확장하는 장이다.「새-공중변소 낙서」는 반복되는 정치적 수사와 '새로움'이라는 기표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공허한 기만으로 기능하는지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새-'라는 접두어는 언어적 유희를 넘어 권력 담론의 허위를 드러내는 기호로 작동하며, '공중변소'라는 공간은 공적 언어가 가장 비속한 현실과 맞닿는 장소로 재맥락화된다. 이 작품은 정치적 현실을 직접 논평하기보다 언어 자체의 아이러니를 통해 시대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풍자의 밀도를 높인다.
서로가 비정상이라니 그 말만은 정상이네
- 「진영 싸움」 중에서
위 인용구에서 보듯 「진영 싸움」은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서늘한 시선으로 해부한다. "그 말만은 정상이네"라는 조소 섞인 종장의 역설은 진영 논리가 품고 있는 맹목적 자기모순을 단 한 줄로 명중시키는 촌철살인의 백미다.
또한, 「훈민정음」은 문자 창제의 과학적 원리와 천지인(天地人)의 우주론적 질서를 시조의 율격으로 변주한 지적(知的) 서정의 결정체다. 한글을 단순한 민족주의적 찬양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소리글자의 무한한 확장성과 인간 중심의 철학적 체계로 직조해 낸 점은 지성과 감성이 어떻게 시조 안에서 길항하고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글 창제 원리를 시조의 형식으로 구현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독창성이 돋보이는 성취라 할 만하다.
3. 생태학적 주체와 원초적 생명력
3부는 속초와 설악이라는 구체적 장소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다.
(봄 바다) 발정하는 바다의 유혹
(겨울 바다) 섬을 낳고 섬에 든다
- 「속초 바다」 연작 중에서
「속초 바다」 연작은 사계절의 순환을 통해 바다를 거대한 유기체로 감각한다. 봄 바다를 향해 "발정하는 바다의 유혹"이라 칭하고, 겨울 바다를 향해 "섬을 낳고 섬에 든다"고 선언하는 대목은 관습적인 풍경 묘사를 거부하는 도발적 진술이다. 이는 바다를 수동적 풍경이 아닌, 폭발적인 생식과 잉태를 주관하는 원초적 에너지원으로 인식하는 생태적 상상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어 「숲에 든다」에서 시인은 숲에 '간다(go)'고 하지 않고 '든다(enter/permeate)'고 진술한다. 주체가 대상을 관찰하러 외부에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어 마침내 숲 자체와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이루는 존재론적 합일을 보여준다.
4부는 가족애와 농경의 서사, 고향과 모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표제작인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는 이 시집의 감정적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물동이 무게만큼 출렁인 눈물방울
-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 중에서
일반적으로 노을이 안겨주는 낭만적이거나 퇴폐적인 심상과 달리, 이 시에서 노을은 아버지의 고단한 노동과 오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어머니의 치열한 저녁 끼니, 즉 '생활의 육중한 무게' 그 자체다. "물동이 무게만큼 출렁인 눈물방울"이라는 시구는 고난에 찬 모성의 생애를 시각적 무게감으로 치환한 절묘한 은유다. 발등을 적신 눈물이 이윽고 대지의 수액이 되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세상으로 흘러간다는 구조는, 개인의 슬픔이 거대한 생명의 물길로 승화되는 이 시집의 궁극적 구원 의식과 맞닿아 있다.
아울러 이하 시조의 중요한 성취는 일상적 사물에서 철학적 상징을 길어 올리는 사물 미학에 있다. 고장 난 시계에서 아버지의 훈육과 양심의 가책을 읽어내는 「시계와 옰」, 작은 불씨 하나에서 생의 고단함과 연대의 온기를 점화하는「불 좀 빌립시다」 등은, 평범한 사물을 삶의 윤리와 시대적 기억을 매개하는 성소(聖所)로 탈바꿈시킨다.
4. 무거운 따뜻함, 현대시조의 진화
이하 시조 작품이 품고 있는 사유의 그물망은 크게 네 개의 축(생명, 시간, 가족, 역사·사회 네트워크)으로 교직 되어 있다. 꽃은 가족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바다는 고향의 장소성으로 환원되며, 달은 모성과 역사를 동시에 비추는 다원적 구조를 띤다.
물론, 일부 작품에서는 메시지가 다소 전면으로 돌출되면서 이미지의 여운보다 의미 전달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주석이나 부연 설명이 시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날 것 그대로의 강렬한 어휘가 돌출되는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매끄럽게 가공된 관념어의 유희를 거부하고, 흙먼지 묻은 생활의 구어적 활력과 육체성을 시조에 이식하려는 시인의 의도적 파열음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또한 조각시의 단면을 연상케 하는 찰나의 응축과 정형성의 결합은 현대시조가 나아갈 갱신의 한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의 노을은 무겁다』를 지배하는 고유한 미학은 '무거운 따뜻함'이다. 노을의 무게를 견디고, 낙화의 뼈아픔을 수용하며, 상처 입은 역사를 직시하는 이 무거운 텍스트들은 결코 절망의 구심력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하중을 묵묵히 버텨내는 존재들의 분투가 따스한 생명력으로 치환된다.
한국 현대시조는 전통적으로 자연 서정과 생활 서정을 중심으로 전개했으나, 최근에는 생태적 감수성과 사회적 현실 인식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는 이러한 흐름 위에서 자연과 인간, 역사와 윤리를 하나의 시적 구조 안에 통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전통과 현대, 서정과 현실,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정형적 미학 안에서 통합하려는 현대시조의 의미 있는 성취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 2
제 1 부 꽃 쓰기
벚꽃 ● 12
꽃 쓰기 ● 14
매실 꽃 ● 15
감씨 ● 16
꽃 이름이 봄맞이꽃이라는 꽃 ● 18
꽃무릇 ● 19
달과 연꽃 ● 21
꽃 뿌리 ● 22
능소화 덩굴 아래에서 ● 23
동백꽃 낙화 ● 24
라일락에게 ● 25
백양사 고불매 ● 26
목련이 지누나 ● 27
제 2 부 낙서
새-공중변소 낙서 ● 30
신장 결석 ● 31
일몰(노인과 바다) ● 33
요즘 처서 ● 34
부딪는 것들 ● 35
쉬운 질문 ● 36
진영 싸움 ● 37
차의 정신 - 순청온공 ● 39
북한 이탈 주민 ● 41
선생님 ● 42
새해 새아침은 ● 43
훈민정음 ● 44
시계와 옰 ● 45
8월의 유리창 청소 ● 46
찌르기 ● 47
뤼순의 마지막 보름달 ● 49
불 좀 빌립시다 ● 50
다시 6.25. 임진각에서 ● 51
에밀레종 ● 52
관성慣性 ● 54
남산 은행나무길 ● 55
도반 ● 56
이상李箱의 날개를 위하여 ● 57
제 3 부 속초 바다
속초 바다, 봄 ● 60
속초 바다, 여름 ● 62
속초 바다, 가을 ● 63
속초 바다, 겨울 ● 64
구곡담에서 ● 65
숲에 든다 ● 67
반딧불이 ● 68
포구 당집 ● 69
제주 곶자왈 ● 70
병풍산 울산바위 ● 73
쉿, 영랑호 비밀 ● 74
비선대 ● 75
비룡폭포飛龍瀑布 ● 76
달빛 찻자리 ● 77
차를 우리며 - 산학다원에서 ● 78
노을 편지 ● 79
10월이 남긴 메시지 ● 80
비 오는 날의 사무실 ● 81
불멍하다가 ● 82
청호동 아바이마을 ● 83
금강金剛에 들어 알겠네 ● 84
제 4 부 내성천
봄비 ● 86
한가위 저녁 ● 87
뻐꾸기 울음마다 ● 88
첫사랑 ● 89
초가을 금광리 ● 90
시래기를 엮으며 ● 91
할배의 장날 ● 92
권주가 ● 93
폐가 - 금수산 화전火田터에서 ● 94
내성천 달빛 ● 95
소백산 화엄華嚴 부석사浮石寺 ● 96
행복한 수채화 ● 97
신新농가월령가 - 귀농하는 벗에게 ● 98
역사하심은 ● 101
저놈의 달 ● 103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 104
발 문
생명의 언어, 존재의 풍경
- 이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작품 세계 - 이성철 ● 108
제 1 부 꽃 쓰기
벚꽃 ● 12
꽃 쓰기 ● 14
매실 꽃 ● 15
감씨 ● 16
꽃 이름이 봄맞이꽃이라는 꽃 ● 18
꽃무릇 ● 19
달과 연꽃 ● 21
꽃 뿌리 ● 22
능소화 덩굴 아래에서 ● 23
동백꽃 낙화 ● 24
라일락에게 ● 25
백양사 고불매 ● 26
목련이 지누나 ● 27
제 2 부 낙서
새-공중변소 낙서 ● 30
신장 결석 ● 31
일몰(노인과 바다) ● 33
요즘 처서 ● 34
부딪는 것들 ● 35
쉬운 질문 ● 36
진영 싸움 ● 37
차의 정신 - 순청온공 ● 39
북한 이탈 주민 ● 41
선생님 ● 42
새해 새아침은 ● 43
훈민정음 ● 44
시계와 옰 ● 45
8월의 유리창 청소 ● 46
찌르기 ● 47
뤼순의 마지막 보름달 ● 49
불 좀 빌립시다 ● 50
다시 6.25. 임진각에서 ● 51
에밀레종 ● 52
관성慣性 ● 54
남산 은행나무길 ● 55
도반 ● 56
이상李箱의 날개를 위하여 ● 57
제 3 부 속초 바다
속초 바다, 봄 ● 60
속초 바다, 여름 ● 62
속초 바다, 가을 ● 63
속초 바다, 겨울 ● 64
구곡담에서 ● 65
숲에 든다 ● 67
반딧불이 ● 68
포구 당집 ● 69
제주 곶자왈 ● 70
병풍산 울산바위 ● 73
쉿, 영랑호 비밀 ● 74
비선대 ● 75
비룡폭포飛龍瀑布 ● 76
달빛 찻자리 ● 77
차를 우리며 - 산학다원에서 ● 78
노을 편지 ● 79
10월이 남긴 메시지 ● 80
비 오는 날의 사무실 ● 81
불멍하다가 ● 82
청호동 아바이마을 ● 83
금강金剛에 들어 알겠네 ● 84
제 4 부 내성천
봄비 ● 86
한가위 저녁 ● 87
뻐꾸기 울음마다 ● 88
첫사랑 ● 89
초가을 금광리 ● 90
시래기를 엮으며 ● 91
할배의 장날 ● 92
권주가 ● 93
폐가 - 금수산 화전火田터에서 ● 94
내성천 달빛 ● 95
소백산 화엄華嚴 부석사浮石寺 ● 96
행복한 수채화 ● 97
신新농가월령가 - 귀농하는 벗에게 ● 98
역사하심은 ● 101
저놈의 달 ● 103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 104
발 문
생명의 언어, 존재의 풍경
- 이하 시조집 『어머니 노을은 무겁다』 작품 세계 - 이성철 ● 108
저자
저자
이하 李夏, 본명 이만식
건국대와 고려대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고교 시절 『하늘하나 구름하나』 동인지를 내고 『학원』지 소설 분야에 입상했다. 대학 시절 건대학보사 '올해의 시' 선정 이후 『월간문학』(1996)에 시조 『오늘의문학』(1995) 시 부문 신인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유심〉, 〈시안〉, 〈모던포엠〉 등에 100여 작품을 발표하고, 짧은 시형인 조각시 장르를 창시하여 첫 조각시집을 선보였으며, 세종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한말연구학회, 한국문인협회(시조), 한국작가회의(시), 한국시조협회 등의 회원이며 현재 경동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하며 2026. 8월 정년퇴임을 한다.
【저서】 『89억 명이 탄생시킨 존재』(2008, 시산문집), 『이상 시의 어휘 양상과 공기관계 네트워크 연구』(2013, 전문서), 『하늘도 그늘이 필요해』(2015, 조각시집), 『스무 살의 사랑은 창을 닮는다』(2017, 시집), 『지식인의 글쓰기』(2022, 세종우수도서,공저) 등 17권
건국대와 고려대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고교 시절 『하늘하나 구름하나』 동인지를 내고 『학원』지 소설 분야에 입상했다. 대학 시절 건대학보사 '올해의 시' 선정 이후 『월간문학』(1996)에 시조 『오늘의문학』(1995) 시 부문 신인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유심〉, 〈시안〉, 〈모던포엠〉 등에 100여 작품을 발표하고, 짧은 시형인 조각시 장르를 창시하여 첫 조각시집을 선보였으며, 세종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한말연구학회, 한국문인협회(시조), 한국작가회의(시), 한국시조협회 등의 회원이며 현재 경동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하며 2026. 8월 정년퇴임을 한다.
【저서】 『89억 명이 탄생시킨 존재』(2008, 시산문집), 『이상 시의 어휘 양상과 공기관계 네트워크 연구』(2013, 전문서), 『하늘도 그늘이 필요해』(2015, 조각시집), 『스무 살의 사랑은 창을 닮는다』(2017, 시집), 『지식인의 글쓰기』(2022, 세종우수도서,공저) 등 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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