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B의 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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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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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인간 세상사
우리는 원인을 모르는 걸까,
원인을 잊고 싶어 하는 걸까
"만원 전차 손잡이에 매달린 채 떠밀리고 부대끼며 짓밟히는 일은 조금이라도 성치 못한 육체와 그로 인해 신경이 쇠약해진 사람에게는 몹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야말로 만원 전차는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극심한 고통을 받아들이며 산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히려 전차 혼잡은 지금 더 잦고 심해졌다. 왜 그럴까.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이자,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던 재능 있는 이야기꾼, 20세기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체질적으로 몸이 약해서 더 그랬는지, 일상의 불편함에 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영혼을 갉아먹는 만원 전차 문제에 대해 그가 찾은 답은 맥이 빠질 만큼 간단하다. 만원 전차를 몇 대 그냥 보내고 한산한 전차를 골라 타는 것이다. 승객이 적은 전차가 올 때까지 그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단다.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다니! 21세기를 몰라서 그래! 병약한 물리학자의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 시절 한가로운 물리학자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치부하며 분을 삭이는 것이 좀 더 점잖은 방법이려나.
21세기를 사는 억울한 현대인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데라다 도라히코가 든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기다란 관 속에 수소와 산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넣은 다음 관 한쪽 끝 가까이에서 작은 전기불꽃을 일으켜 보라. 연소가 차례차례 번져가 폭발파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몰랐다 하더라도 해보면 금방 사실임을 인정하게 된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 과학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는 유언비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소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시민 스스로가 전파의 매개체가 되지 않으면 유언비어 역시 절대 폭발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뜬소문이 퍼져나가는 양상과 연소 과정은 꽤 유사하다. 앞서 수소와 산소, 폭발파가 등장하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을 진지하게 들은 터라면 이 유사성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남 탓으로 돌리곤 했던 뜬소문의 책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유언비어를 믿고 속았다며 피해자를 자처하는 바로 자신에게 거의 모든 책임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언비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빠듯한 전차로 상징되는 지금 사회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책임은 남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100년 전 물리학자의 탓? 물리학자는 그저 실제 만원 전차가 왜 발생하는지 관찰했을 뿐이다. 정류장에 앉아 오고 가는 전차의 혼잡도를 표로 기록하고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첫째, 전차의 승객 대다수는 비록 무의식일지언정 스스로 원해서 만원 전차를 골라 탄다. 둘째, 그럼으로써 그 만원 전차의 혼잡도를 더욱 높이는 데 일조한다."
결론에 필요한 것은 가만히 앉아서 관찰할 수 있는 체력과 간단한 수학,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잇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 정도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21세기 사회문제에 둘러싸여 산다고 자부하는 현대인은 여전히 억울한 표정으로 긁적인다. 사회의 고통과 그 심화에 '스스로 원해서' '일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러나 19세기도, 20세기도 난해하긴 마찬가지였다. 100년 전에 이미 문제를 알았고 이를 해결할 답을 찾았으나 어느새 잊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 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망각하는 존재다. 자연은 반복되고 인간은 망각해서 곤란한 상황은 계속된다. 이것이 데라다 도라히코가 말하는 인간계의 자연현상이다.
얼핏 취향이나 편리함을 요령껏 취하자고 하는 이야기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데라다 도라히코가 글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 과학에 대해 진정으로 견지해야 하는 태도다. 그는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역설하면서도 인간의 과학주의를 경계했다. 비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동시에 과학의 한계 역시 계속해서 지적했다. 그가 관찰로 얻은 과학적 사실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 쉽게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과학으로써 잘잘못을 말하면 이 역시 맹목적인 과학주의에 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인간은 빈약한 데이터로 도출한 결론을 자꾸 긍정하려 하는지, 어떤 이들에게는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어떤 이들에게는 잠꼬대처럼 들리는 건지, 그는 세상을 관찰하고 이치를 따져 차분히 들려줄 뿐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전차 혼잡을 견디며 살아가는가. 어째서 데라다 도라히코가 말한 공리적이면서도 자기 자신이 가장 이로운 방편은 실현되지 못하고 잊히고 마는지 모두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명과 애정 사이를 관찰하는
차가운 물리학자의 따스한 시선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수제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청초한 장면이 그려지는 서정성 짙은 글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이번 산문집은 그의 문학적인 면이 드러나는 작품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결되지 않는 인간 세상의 독특한 문제들에 관한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주로 엮였다. 그럼에도 물론 그가 표현하는 아름답고 문학적인 삶의 순간순간은 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고양이」 역시 그중 하나. 고양이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던 물리학자는 가족의 등쌀에 못 이겨 그의 집에 고양이는 살게 된다. 모두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의 가슴안에서 나는 그르렁그르렁 소리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물리학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그 소리가 어떤 작용으로 나는지 조용히 들어본다. 그러면서 이 작은 동물에 대한 애정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의 관찰일지에서 고양이는 너무도 사랑스럽게 뛰어논다. 원래가 그런 동물이라서겠지만, 관찰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옮겼을 뿐인 그의 글은 인간이 고양이라는 동물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길고양이 기질을 타고났는지 배변 습관 등 여러 버릇이 좋지 않은 고양이를 나무라고 돌려보내자는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도 물리학자는 '과학적'으로 대응한다. 나쁜 배변 습관은 조금만 신경 써서 버릇을 들이면 금세 고쳐질 것 같았다. 지금 고양이 집사들이 행하는 과정을 그도 차근차근 거쳐나간다. 작은 상자에 흙을 담아 두고, 흙냄새를 맡게 해주고, 고양이를 잠자리에 옮겨주고, 급할 것이 전혀 없는 한가한 실험 연구처럼 보이는 일을 하루하루 해나간다. 고양이는 곧 우아하고 새침한 어른 고양이의 면모를 갖춘다. 그는 글 말미에 고양이 생활을 되도록 충실히 기록해두고 싶다고 썼다.
세상에는 인류를 구하는 가설과 과학 실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에 관한 이 사소한 기록 역시 분명 누군가의 세상을 구하리라.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더 기록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쉰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그해에도 사라져가는 행상인의 소리를 기록해야 함을 주장한 「행상인 소리」를 써서 발표했다.
과학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로 기록한 물리학자.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은 글에서 세상은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전차 혼잡에 대해 다소 약 오르게 이야기한 "만약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논리가 아니라 현실이 이상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비틀어서, "만약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글이 아니라 현실이 아름다운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서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물리학적 이치를 발견해보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달까지 가지 않고도 고양이가 뛰어놀고 도롱이벌레가 매달린 작은 정원에서 과학의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이란 진정 무엇일까.
우리는 원인을 모르는 걸까,
원인을 잊고 싶어 하는 걸까
"만원 전차 손잡이에 매달린 채 떠밀리고 부대끼며 짓밟히는 일은 조금이라도 성치 못한 육체와 그로 인해 신경이 쇠약해진 사람에게는 몹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야말로 만원 전차는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극심한 고통을 받아들이며 산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히려 전차 혼잡은 지금 더 잦고 심해졌다. 왜 그럴까.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이자,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던 재능 있는 이야기꾼, 20세기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체질적으로 몸이 약해서 더 그랬는지, 일상의 불편함에 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영혼을 갉아먹는 만원 전차 문제에 대해 그가 찾은 답은 맥이 빠질 만큼 간단하다. 만원 전차를 몇 대 그냥 보내고 한산한 전차를 골라 타는 것이다. 승객이 적은 전차가 올 때까지 그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단다.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다니! 21세기를 몰라서 그래! 병약한 물리학자의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 시절 한가로운 물리학자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치부하며 분을 삭이는 것이 좀 더 점잖은 방법이려나.
21세기를 사는 억울한 현대인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데라다 도라히코가 든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기다란 관 속에 수소와 산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넣은 다음 관 한쪽 끝 가까이에서 작은 전기불꽃을 일으켜 보라. 연소가 차례차례 번져가 폭발파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몰랐다 하더라도 해보면 금방 사실임을 인정하게 된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 과학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는 유언비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소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시민 스스로가 전파의 매개체가 되지 않으면 유언비어 역시 절대 폭발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뜬소문이 퍼져나가는 양상과 연소 과정은 꽤 유사하다. 앞서 수소와 산소, 폭발파가 등장하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을 진지하게 들은 터라면 이 유사성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남 탓으로 돌리곤 했던 뜬소문의 책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유언비어를 믿고 속았다며 피해자를 자처하는 바로 자신에게 거의 모든 책임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언비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한 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빠듯한 전차로 상징되는 지금 사회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책임은 남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100년 전 물리학자의 탓? 물리학자는 그저 실제 만원 전차가 왜 발생하는지 관찰했을 뿐이다. 정류장에 앉아 오고 가는 전차의 혼잡도를 표로 기록하고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첫째, 전차의 승객 대다수는 비록 무의식일지언정 스스로 원해서 만원 전차를 골라 탄다. 둘째, 그럼으로써 그 만원 전차의 혼잡도를 더욱 높이는 데 일조한다."
결론에 필요한 것은 가만히 앉아서 관찰할 수 있는 체력과 간단한 수학,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잇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 정도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21세기 사회문제에 둘러싸여 산다고 자부하는 현대인은 여전히 억울한 표정으로 긁적인다. 사회의 고통과 그 심화에 '스스로 원해서' '일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러나 19세기도, 20세기도 난해하긴 마찬가지였다. 100년 전에 이미 문제를 알았고 이를 해결할 답을 찾았으나 어느새 잊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 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망각하는 존재다. 자연은 반복되고 인간은 망각해서 곤란한 상황은 계속된다. 이것이 데라다 도라히코가 말하는 인간계의 자연현상이다.
얼핏 취향이나 편리함을 요령껏 취하자고 하는 이야기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데라다 도라히코가 글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 과학에 대해 진정으로 견지해야 하는 태도다. 그는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역설하면서도 인간의 과학주의를 경계했다. 비과학적인 사고와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동시에 과학의 한계 역시 계속해서 지적했다. 그가 관찰로 얻은 과학적 사실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 쉽게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과학으로써 잘잘못을 말하면 이 역시 맹목적인 과학주의에 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인간은 빈약한 데이터로 도출한 결론을 자꾸 긍정하려 하는지, 어떤 이들에게는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어떤 이들에게는 잠꼬대처럼 들리는 건지, 그는 세상을 관찰하고 이치를 따져 차분히 들려줄 뿐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전차 혼잡을 견디며 살아가는가. 어째서 데라다 도라히코가 말한 공리적이면서도 자기 자신이 가장 이로운 방편은 실현되지 못하고 잊히고 마는지 모두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생명과 애정 사이를 관찰하는
차가운 물리학자의 따스한 시선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수제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청초한 장면이 그려지는 서정성 짙은 글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이번 산문집은 그의 문학적인 면이 드러나는 작품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결되지 않는 인간 세상의 독특한 문제들에 관한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주로 엮였다. 그럼에도 물론 그가 표현하는 아름답고 문학적인 삶의 순간순간은 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고양이」 역시 그중 하나. 고양이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던 물리학자는 가족의 등쌀에 못 이겨 그의 집에 고양이는 살게 된다. 모두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의 가슴안에서 나는 그르렁그르렁 소리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물리학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그 소리가 어떤 작용으로 나는지 조용히 들어본다. 그러면서 이 작은 동물에 대한 애정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의 관찰일지에서 고양이는 너무도 사랑스럽게 뛰어논다. 원래가 그런 동물이라서겠지만, 관찰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옮겼을 뿐인 그의 글은 인간이 고양이라는 동물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길고양이 기질을 타고났는지 배변 습관 등 여러 버릇이 좋지 않은 고양이를 나무라고 돌려보내자는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도 물리학자는 '과학적'으로 대응한다. 나쁜 배변 습관은 조금만 신경 써서 버릇을 들이면 금세 고쳐질 것 같았다. 지금 고양이 집사들이 행하는 과정을 그도 차근차근 거쳐나간다. 작은 상자에 흙을 담아 두고, 흙냄새를 맡게 해주고, 고양이를 잠자리에 옮겨주고, 급할 것이 전혀 없는 한가한 실험 연구처럼 보이는 일을 하루하루 해나간다. 고양이는 곧 우아하고 새침한 어른 고양이의 면모를 갖춘다. 그는 글 말미에 고양이 생활을 되도록 충실히 기록해두고 싶다고 썼다.
세상에는 인류를 구하는 가설과 과학 실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에 관한 이 사소한 기록 역시 분명 누군가의 세상을 구하리라.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더 기록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쉰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그해에도 사라져가는 행상인의 소리를 기록해야 함을 주장한 「행상인 소리」를 써서 발표했다.
과학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로 기록한 물리학자.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은 글에서 세상은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전차 혼잡에 대해 다소 약 오르게 이야기한 "만약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논리가 아니라 현실이 이상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비틀어서, "만약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글이 아니라 현실이 아름다운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서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물리학적 이치를 발견해보자. 데라다 도라히코는 달까지 가지 않고도 고양이가 뛰어놀고 도롱이벌레가 매달린 작은 정원에서 과학의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이란 진정 무엇일까.
목차
목차
전차 B의 혼잡
유언비어
관점과 거리
벌이 경단을 만드는 이야기
고양이
쇄골
어느 탐정 사건
물리학과 감각
과학자와 예술가
앎과 의심
도깨비불 하나
도롱이벌레와 거미
쓰나미와 인간
커피 철학 서설
행상인 소리
기록광 시대
지팡이
별사탕
쥣빛 재생지
모기장 연구
병원의 새벽 소리
빨강
저자 연보
역자 후기
유언비어
관점과 거리
벌이 경단을 만드는 이야기
고양이
쇄골
어느 탐정 사건
물리학과 감각
과학자와 예술가
앎과 의심
도깨비불 하나
도롱이벌레와 거미
쓰나미와 인간
커피 철학 서설
행상인 소리
기록광 시대
지팡이
별사탕
쥣빛 재생지
모기장 연구
병원의 새벽 소리
빨강
저자 연보
역자 후기
저자
저자
데라다 도라히코
寺田寅彦
187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현미경으로 과학적 호기심을 키웠고, 고등학교 때 영어 교사였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문학에 눈을 떴다. 도쿄대학 이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소세키의 소개로 문인들과 교류하며 수필가로도 활약했다. 특히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의문을 찾아내 물리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고찰한 글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1935년 전이성 뼈종양으로 쉰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연과 동물, 사회와 사람을 관찰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글 쓰는 과학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등장인물인 괴짜 물리학자 '간게쓰' 군의 실제 모델.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를 묻는다면 대다수 일본인은 데라다 도라히코라고 답한다. 최초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묻는다면 이 또한 그라고 답할 것이다. 훌륭한 과학자도 많고 뛰어난 문필가도 많지만, 데라다 도라히코처럼 두 영역에서 빛난 이는 드물다.
187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현미경으로 과학적 호기심을 키웠고, 고등학교 때 영어 교사였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문학에 눈을 떴다. 도쿄대학 이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소세키의 소개로 문인들과 교류하며 수필가로도 활약했다. 특히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의문을 찾아내 물리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고찰한 글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1935년 전이성 뼈종양으로 쉰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마와 싸우면서도 자연과 동물, 사회와 사람을 관찰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글 쓰는 과학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 등장인물인 괴짜 물리학자 '간게쓰' 군의 실제 모델.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를 묻는다면 대다수 일본인은 데라다 도라히코라고 답한다. 최초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묻는다면 이 또한 그라고 답할 것이다. 훌륭한 과학자도 많고 뛰어난 문필가도 많지만, 데라다 도라히코처럼 두 영역에서 빛난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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