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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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해설 - 시인 권오영
거미와 청진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 그러므로 모르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곳. 시는 '없음'에서 '있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곳에서 탄생한다. 시는 귀결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의 시작' 속에서 시는 태어나고 자란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된다면, 그 질문에 이어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사라졌을까, 아니면, 아직 내 속에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시는 근원에 대한, 다시 말하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그 막막하고 낯선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시적 질문은 사물에 대한 느낌과 생각으로 싹이 트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타고 보니 급행열차였지
이 열차는 어떤 철로를 달릴까?
설레며 궁금도 했었지
자연이 주는 선물은 천태만상
차창밖에 스쳐 가는 자연을
감상조차 못 하게 달렸고
자연이 주는 명소도 그냥 지나고
굽은 길을 지날 때
내 몸은 굽은 대로 흔들려 중심을 잃었고
순간순간 긴장하기도 했었지
스쳐 가는 길 위에 아픔도 있네
산허리를 감싸 안은 구부러진 철길
내 몸은 좌우로 흔들리고
곧은 철길이 다가오겠지 - 윤을온, 「인생열차」 부분
언어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매체이다. 시인 윤을온은 '지나간다'라는 자의식이 '지나가는' 밖을 응시하는 자리에 앉아있다. 시선이 고요하다. 시인의 자의식이 없었다면 풍경을 표현하는 것에 그쳤을지 모를 '열차'에 대한 사유가 신선하다. 그 사유는 들떠있지 않다. "이 열차는 어떤 철로를 달리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되는 시의 출발점은 낯선 곳으로, 홀연히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차창 밖에 스쳐 가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처음'인 열차 안, 어느 좌석의 창가에서 시인은 '휘어진 길'과 '곧은 길'을 동시에 본다.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 시작되는 "어떤 철로를 달리고 있을까?"는 '중심'과 '긴장' 사이를 횡단하고 있다. 시인의 믿음은 '곧은 길'에 귀착된다.
'굽을 대로 굽은' 길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시인의 올곧음은, 자본의 시대가 낳은 폭주 시대 열차 안에서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사대부 조상의 형식을 갖춘 묘
양지바른 묘비를 의지하며 핀 할미꽃
신비하며 살짝 만져보니
회색빛 솜털 옷을 입고 속옷은 자주색
노란색으로 씨방을 갖고
굽은 허리로 꽃씨를 날린다
(중략)
삶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해결해 주는
요양보호사님이 있기에 너를 사랑할 수 있어
오늘 밤 비석의 주인과 하루에 사연을
속삭이겠지
잘자, 안녕, 할미꽃 - 윤을온, 「할미꽃」 부분
언어는 다른 예술의 질료보다 그것의 총체를 훨씬 선명하게 드러낸다. 먼 바다 수평선 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끄집어 서서히 당겨오는 느낌으로, 그 막막한 바다의 수평선 위로 배 한 척이 올라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시라면, 윤을온 시인의 '할미꽃'이 그렇다. 정제미가 느껴지는 시적 울림 속에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수사학이 없이 표현된 이미지가 주는 생동감이 현란하지 않다. "회색빛 솜털 옷을 입고"에서 시인이 보는 '시적 발견'은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태초인 대지와 하늘과 맞닿은 죽음, 즉 '조상의 묘'사이에서 숙연해지게 만드는 '굽은 허리'의 할미꽃에 자신의 삶을 투사시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정갈하다. 시의 씨앗이 발아되는 시저 지점에 들어앉은 '씨방'을 바라라보는 시인은 이제 속삭인다. "잘자, 안녕, 할미꽃"이라고.
밤새 내린 이슬비는 거미집에 입주한 것을
축하하듯 은방울 방울방울 영롱한 빛을
내며 바람에 살랑인다
다음날 치마에 매달린 거미줄에 아기 거미
탄생하고 어미 거미는 힘겹게 움직인다
모성애인 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며칠 후 아기 거미 사라지고 어미 거미 가운데
매달린 채 거미줄도 몇 줄기 끊어지고 헌 집이 됐다
거미가 헌 옷 벗고 새 옷 입고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 - 윤을온, 「거미」 부분
시는 자신과의 싸움이 클수록 농밀해진다. 시 속에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을수록 시적 울림은 커진다. 좋은 글은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인생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슬비는 거미줄에 입주한 것을"에서 세상과의 소통로를 열어준다. "방울방울 영롱한 빛"이 한 삶의 인생을 축하해 주듯이 안과 밖의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를 '이슬'로 치환한다. 인생의 격랑을 '바람'에 비유하여, 시적 자아가 "치마에 매달린 거미줄에 아기 거미 탄생하고"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자신만의 인생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거미줄'을 통해 보여준다. 이 세상은 모든 인연으로 엮여져 있다. '거미줄'처럼 엮인 인드라망因陀羅網의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인연들이 모여 끝없는 길을 내는 세상의 이치를 낮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거미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슬'과 '방울'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단아하다.
눈뜨면 아픔과 두려움이
6.25 전쟁과 구십 평생 살아 왔네
없어졌던 왕진제도 다시 오고
왕진 오신 원장님의 청진기는 생명
청진기는 옹달샘의 옥수
찢어지고 상처 난 곳에
여기저기 갖다 대면 옥수 되고
치료되네
옥수는 생면이고 사랑이고
존경이다 - 윤을온, 「청진기는 옥수」 전문
'청진기'를 통해 이어주는 '아픔'과 '치료'로 귀결되는 시인의 삶의 방식은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어떤 글이든 인생의 밑바닥에 가 닿아야 한다. 자본주의 폭주열차시대에 동승한 시인은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자켜 내려는 자신의 의지가 '중심'에 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상징하는 아파트 입구에 대고 시인은 절하지 않는다. 위선과 거짓 앞에 시인은 무릎을 꿇지 않는다. 진실을 배반할 때 진실은 자신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 말하기 위한 말은 소음에 그칠 뿐이다. 인생길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도, 시도 인생글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 인생 전체가 걸려 있어야 한다. 모든 인생에 '청진기'를 갖다 대듯이 시도 그래야 한다.
거미와 청진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 그러므로 모르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곳. 시는 '없음'에서 '있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곳에서 탄생한다. 시는 귀결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의 시작' 속에서 시는 태어나고 자란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된다면, 그 질문에 이어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사라졌을까, 아니면, 아직 내 속에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시는 근원에 대한, 다시 말하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그 막막하고 낯선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시적 질문은 사물에 대한 느낌과 생각으로 싹이 트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타고 보니 급행열차였지
이 열차는 어떤 철로를 달릴까?
설레며 궁금도 했었지
자연이 주는 선물은 천태만상
차창밖에 스쳐 가는 자연을
감상조차 못 하게 달렸고
자연이 주는 명소도 그냥 지나고
굽은 길을 지날 때
내 몸은 굽은 대로 흔들려 중심을 잃었고
순간순간 긴장하기도 했었지
스쳐 가는 길 위에 아픔도 있네
산허리를 감싸 안은 구부러진 철길
내 몸은 좌우로 흔들리고
곧은 철길이 다가오겠지 - 윤을온, 「인생열차」 부분
언어는 공기처럼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매체이다. 시인 윤을온은 '지나간다'라는 자의식이 '지나가는' 밖을 응시하는 자리에 앉아있다. 시선이 고요하다. 시인의 자의식이 없었다면 풍경을 표현하는 것에 그쳤을지 모를 '열차'에 대한 사유가 신선하다. 그 사유는 들떠있지 않다. "이 열차는 어떤 철로를 달리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시작되는 시의 출발점은 낯선 곳으로, 홀연히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차창 밖에 스쳐 가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처음'인 열차 안, 어느 좌석의 창가에서 시인은 '휘어진 길'과 '곧은 길'을 동시에 본다.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는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 시작되는 "어떤 철로를 달리고 있을까?"는 '중심'과 '긴장' 사이를 횡단하고 있다. 시인의 믿음은 '곧은 길'에 귀착된다.
'굽을 대로 굽은' 길 위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시인의 올곧음은, 자본의 시대가 낳은 폭주 시대 열차 안에서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사대부 조상의 형식을 갖춘 묘
양지바른 묘비를 의지하며 핀 할미꽃
신비하며 살짝 만져보니
회색빛 솜털 옷을 입고 속옷은 자주색
노란색으로 씨방을 갖고
굽은 허리로 꽃씨를 날린다
(중략)
삶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해결해 주는
요양보호사님이 있기에 너를 사랑할 수 있어
오늘 밤 비석의 주인과 하루에 사연을
속삭이겠지
잘자, 안녕, 할미꽃 - 윤을온, 「할미꽃」 부분
언어는 다른 예술의 질료보다 그것의 총체를 훨씬 선명하게 드러낸다. 먼 바다 수평선 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끄집어 서서히 당겨오는 느낌으로, 그 막막한 바다의 수평선 위로 배 한 척이 올라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시라면, 윤을온 시인의 '할미꽃'이 그렇다. 정제미가 느껴지는 시적 울림 속에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수사학이 없이 표현된 이미지가 주는 생동감이 현란하지 않다. "회색빛 솜털 옷을 입고"에서 시인이 보는 '시적 발견'은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태초인 대지와 하늘과 맞닿은 죽음, 즉 '조상의 묘'사이에서 숙연해지게 만드는 '굽은 허리'의 할미꽃에 자신의 삶을 투사시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정갈하다. 시의 씨앗이 발아되는 시저 지점에 들어앉은 '씨방'을 바라라보는 시인은 이제 속삭인다. "잘자, 안녕, 할미꽃"이라고.
밤새 내린 이슬비는 거미집에 입주한 것을
축하하듯 은방울 방울방울 영롱한 빛을
내며 바람에 살랑인다
다음날 치마에 매달린 거미줄에 아기 거미
탄생하고 어미 거미는 힘겹게 움직인다
모성애인 듯 애처롭기까지 하다
며칠 후 아기 거미 사라지고 어미 거미 가운데
매달린 채 거미줄도 몇 줄기 끊어지고 헌 집이 됐다
거미가 헌 옷 벗고 새 옷 입고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 - 윤을온, 「거미」 부분
시는 자신과의 싸움이 클수록 농밀해진다. 시 속에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을수록 시적 울림은 커진다. 좋은 글은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인생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슬비는 거미줄에 입주한 것을"에서 세상과의 소통로를 열어준다. "방울방울 영롱한 빛"이 한 삶의 인생을 축하해 주듯이 안과 밖의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를 '이슬'로 치환한다. 인생의 격랑을 '바람'에 비유하여, 시적 자아가 "치마에 매달린 거미줄에 아기 거미 탄생하고"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자신만의 인생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거미줄'을 통해 보여준다. 이 세상은 모든 인연으로 엮여져 있다. '거미줄'처럼 엮인 인드라망因陀羅網의 세상.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인연들이 모여 끝없는 길을 내는 세상의 이치를 낮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거미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슬'과 '방울'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단아하다.
눈뜨면 아픔과 두려움이
6.25 전쟁과 구십 평생 살아 왔네
없어졌던 왕진제도 다시 오고
왕진 오신 원장님의 청진기는 생명
청진기는 옹달샘의 옥수
찢어지고 상처 난 곳에
여기저기 갖다 대면 옥수 되고
치료되네
옥수는 생면이고 사랑이고
존경이다 - 윤을온, 「청진기는 옥수」 전문
'청진기'를 통해 이어주는 '아픔'과 '치료'로 귀결되는 시인의 삶의 방식은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어떤 글이든 인생의 밑바닥에 가 닿아야 한다. 자본주의 폭주열차시대에 동승한 시인은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자켜 내려는 자신의 의지가 '중심'에 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상징하는 아파트 입구에 대고 시인은 절하지 않는다. 위선과 거짓 앞에 시인은 무릎을 꿇지 않는다. 진실을 배반할 때 진실은 자신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 말하기 위한 말은 소음에 그칠 뿐이다. 인생길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도, 시도 인생글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 인생 전체가 걸려 있어야 한다. 모든 인생에 '청진기'를 갖다 대듯이 시도 그래야 한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4
갈대 할머니와의 인연
아흔 하나 을온 씨, 시를 만나다
청춘은 늙지 않는다 15
갈대 18
할미꽃 20
노송나무 22
창조주 24
옥색 바다 26
연꽃 28
거미 30
상고대 32
폭포 34
아사리판 35
마음의 비 36
태산이 모인 곳 38
청춘의 영혼 40
첫눈 42
겨울 은행나무 44
인정받는 삶 46
10분보다 5분이 긴 하루 48
가슴속 외마디 그림 50
우도의 울음 52
도는 세상 54
뒷모습 56
운무 58
빈손 59
모르리 60
청진기는 옥수 62
천년 노송 64
정 66
방구 68
물 냄새 69
가지 나물 70
무념 71
천국에 계신 어머님께 72
대추나무 74
대문 없는 문패 76
에필로그 78
인생 열차
해설 84
거미와 청진기
갈대 할머니와의 인연
아흔 하나 을온 씨, 시를 만나다
청춘은 늙지 않는다 15
갈대 18
할미꽃 20
노송나무 22
창조주 24
옥색 바다 26
연꽃 28
거미 30
상고대 32
폭포 34
아사리판 35
마음의 비 36
태산이 모인 곳 38
청춘의 영혼 40
첫눈 42
겨울 은행나무 44
인정받는 삶 46
10분보다 5분이 긴 하루 48
가슴속 외마디 그림 50
우도의 울음 52
도는 세상 54
뒷모습 56
운무 58
빈손 59
모르리 60
청진기는 옥수 62
천년 노송 64
정 66
방구 68
물 냄새 69
가지 나물 70
무념 71
천국에 계신 어머님께 72
대추나무 74
대문 없는 문패 76
에필로그 78
인생 열차
해설 84
거미와 청진기
저자
저자
윤을온
시인은 1935년 서울 종로구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청운국민학교와 충남 당진중학교를 졸업했고, 6·25 전쟁으로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 생활을, 서울의 보험 회사에서 2년여 동안 교육 강사로 일한 후 원주에서 오랫동안 천석갈비 식당을 운영했다. 23살에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시인의 첫 시집이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 동안 교사 생활을, 서울의 보험 회사에서 2년여 동안 교육 강사로 일한 후 원주에서 오랫동안 천석갈비 식당을 운영했다. 23살에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시인의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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