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가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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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멕시코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의 단행본 국내 첫 출간
★구병모 소설가 추천 · 셜리 잭슨상 수상 · BBC '최고의 책 10'★
"침엽수림 가운데 얼음과 바람으로 빚어진 한 편의 총체 예술을 보았다.
나는 이미 사로잡혔고 내 사고는 해체되었다."_구병모(소설가)
물결점에서 소설 『타이가 열병』이 출간되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멕시코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국내에서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소설가이자 시인, 역사학자인 그는 소설과 시, 에세이와 비평 등 서로 다른 글쓰기 형식이 맞닿는 작업을 해왔는데,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문학상을 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받았고, 『릴리아나의 무적의 여름』으로 202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안나 제거스상, 로제 카유아상, 호세 도노소 이베로아메리카 문학상,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 '천재들의 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까지 더하며,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의 텍스트 가운데 『타이가 열병』은 작가 스스로 가장 "픽션다운 픽션"에 가깝다고 말한 작품이다. 늘 여러 장르가 인접한 자리에서 써온 작가가 이야기의 힘을 가장 온전히 밀고 나간 소설인 셈인데, 영어로 번역된 후 2018 셜리 잭슨상을 받고 BBC '2018년 최고의 책 10'에 올랐다. 『타이가 열병』은 누아르의 긴장 속에서 시처럼 읽히고 동화처럼 홀린다. 문장들은 팽팽하고 얼음처럼 차가운데 감정은 제목처럼 열을 띤다.
이야기는 탐정인 '나'가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난 아내를 찾아달라는 한 남성의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탐정은 여자가 가는 곳마다 남긴 전보와 편지를 따라, 통역사와 함께 북쪽 끝 타이가로 향한다. 어디를 봐도 같은 나무와 같은 눈뿐인 침엽수림. 그곳에서 견딜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무작정 달아나게 되는 병이 바로 제목의 '타이가 열병'이다. 끝없는 숲, 오두막, 그 둘레를 맴도는 늑대. 낯선 땅의 사건을 따라가는데도 읽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알던 옛이야기 속을 다시 걷는 기분이 되고, 익숙하던 풍경은 한 걸음 들어설 때마다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 그 어긋남들이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사랑이 끝난 뒤의 마음이 놓여 있다는 것.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아주 먼 곳을 다녀온 듯하다. 이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추천사를 쓴 구병모 소설가는 "침엽수림 가운데 얼음과 바람으로 빚어진 한 편의 총체 예술"이라 일컬으며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이미 사로잡혔고 내 사고는 해체되었다."
"이건 동화가 아닙니다, 탐정님. 이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
되울리는 숲, 사랑의 끝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찾아 나서는 탐정 역시 여자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온갖 희한하고 잡다한 사건들을 맡았고, 끝내 풀지 못한 채 해안 마을의 낡은 집에서 타자기로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는 중이라, 일을 맡아달라는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되묻고 싶어 한다. '아니, 제 숱한 실패들은 모르십니까?' 그런 탐정의 눈길을 붙드는 것이 서류 더미 맨 위에 놓인 전보 한 장이다. 젊은 남자와 함께 달아난 여자는 떠나온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전보와 편지를 부쳤는데,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기어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거기 적힌 문장들도 아리송하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이건 무슨 뜻일까? 탐정은 그들을 쫓아 통역사와 함께 길을 나서고, 마침내 숲 어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이 머물던 오두막에 가닿는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집과 거기 살던 타이가의 한 쌍에 대해서 말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가까스로 입을 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들을수록 기이하다. 문간을 지키던 늑대, 숲속의 파란 수영장, 숲 언저리를 맴도는 야생 소년, 타액인지 태반인지 모를 물질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소설은 거기서 더 멀리 나간다. "때로 행성의 끝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실은 하나의 행성 위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탐정과 통역사가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빽빽해지고 이제는 모든 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탐정이 읽은 그 여자의 일기는 숲과 구름과 새에 관한 낱말과 물음으로 가득한데, 떠올릴수록 암호에 가깝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수많은 안개 방울로 변하는 걸까?"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그 두 눈 속의 빛은 어떠한가. 속도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 그러는 사이 탐정이 의뢰인에게 보내려고 적어가던 보고서도 어느새 사적인 일기를 닮아간다. 여자의 일기와 탐정의 보고서가 그렇게 엇갈리고 겹치는 동안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물음 하나가 거듭 되울린다. "그런데 실상 사랑의 끝 너머란 무엇인가?"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은 왜 떠나는지, 사랑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오는지, 우리가 어떤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스물세 개의 짧은 장을 몰입해 읽고 책을 덮으면, 내용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의 강렬함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혹자가 리베라 가르사를 "분위기의 대가"라 부르며 이 소설을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하고 볼라뇨가 내레이션을 맡은 탐정소설"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작고, 짧고, 잿빛에 싸여 있는데, 페이지 위는 반짝이고 머릿속은 눈이 부시다."(소설가 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의 단행본 국내 첫 출간
★구병모 소설가 추천 · 셜리 잭슨상 수상 · BBC '최고의 책 10'★
"침엽수림 가운데 얼음과 바람으로 빚어진 한 편의 총체 예술을 보았다.
나는 이미 사로잡혔고 내 사고는 해체되었다."_구병모(소설가)
물결점에서 소설 『타이가 열병』이 출간되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멕시코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국내에서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소설가이자 시인, 역사학자인 그는 소설과 시, 에세이와 비평 등 서로 다른 글쓰기 형식이 맞닿는 작업을 해왔는데,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문학상을 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받았고, 『릴리아나의 무적의 여름』으로 202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안나 제거스상, 로제 카유아상, 호세 도노소 이베로아메리카 문학상,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 '천재들의 상'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까지 더하며,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의 텍스트 가운데 『타이가 열병』은 작가 스스로 가장 "픽션다운 픽션"에 가깝다고 말한 작품이다. 늘 여러 장르가 인접한 자리에서 써온 작가가 이야기의 힘을 가장 온전히 밀고 나간 소설인 셈인데, 영어로 번역된 후 2018 셜리 잭슨상을 받고 BBC '2018년 최고의 책 10'에 올랐다. 『타이가 열병』은 누아르의 긴장 속에서 시처럼 읽히고 동화처럼 홀린다. 문장들은 팽팽하고 얼음처럼 차가운데 감정은 제목처럼 열을 띤다.
이야기는 탐정인 '나'가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난 아내를 찾아달라는 한 남성의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탐정은 여자가 가는 곳마다 남긴 전보와 편지를 따라, 통역사와 함께 북쪽 끝 타이가로 향한다. 어디를 봐도 같은 나무와 같은 눈뿐인 침엽수림. 그곳에서 견딜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무작정 달아나게 되는 병이 바로 제목의 '타이가 열병'이다. 끝없는 숲, 오두막, 그 둘레를 맴도는 늑대. 낯선 땅의 사건을 따라가는데도 읽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알던 옛이야기 속을 다시 걷는 기분이 되고, 익숙하던 풍경은 한 걸음 들어설 때마다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 그 어긋남들이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사랑이 끝난 뒤의 마음이 놓여 있다는 것.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아주 먼 곳을 다녀온 듯하다. 이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추천사를 쓴 구병모 소설가는 "침엽수림 가운데 얼음과 바람으로 빚어진 한 편의 총체 예술"이라 일컬으며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이미 사로잡혔고 내 사고는 해체되었다."
"이건 동화가 아닙니다, 탐정님. 이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
되울리는 숲, 사랑의 끝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찾아 나서는 탐정 역시 여자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온갖 희한하고 잡다한 사건들을 맡았고, 끝내 풀지 못한 채 해안 마을의 낡은 집에서 타자기로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는 중이라, 일을 맡아달라는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되묻고 싶어 한다. '아니, 제 숱한 실패들은 모르십니까?' 그런 탐정의 눈길을 붙드는 것이 서류 더미 맨 위에 놓인 전보 한 장이다. 젊은 남자와 함께 달아난 여자는 떠나온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전보와 편지를 부쳤는데,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기어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거기 적힌 문장들도 아리송하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이건 무슨 뜻일까? 탐정은 그들을 쫓아 통역사와 함께 길을 나서고, 마침내 숲 어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이 머물던 오두막에 가닿는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집과 거기 살던 타이가의 한 쌍에 대해서 말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가까스로 입을 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들을수록 기이하다. 문간을 지키던 늑대, 숲속의 파란 수영장, 숲 언저리를 맴도는 야생 소년, 타액인지 태반인지 모를 물질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소설은 거기서 더 멀리 나간다. "때로 행성의 끝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실은 하나의 행성 위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탐정과 통역사가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빽빽해지고 이제는 모든 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탐정이 읽은 그 여자의 일기는 숲과 구름과 새에 관한 낱말과 물음으로 가득한데, 떠올릴수록 암호에 가깝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수많은 안개 방울로 변하는 걸까?"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그 두 눈 속의 빛은 어떠한가. 속도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 그러는 사이 탐정이 의뢰인에게 보내려고 적어가던 보고서도 어느새 사적인 일기를 닮아간다. 여자의 일기와 탐정의 보고서가 그렇게 엇갈리고 겹치는 동안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물음 하나가 거듭 되울린다. "그런데 실상 사랑의 끝 너머란 무엇인가?"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은 왜 떠나는지, 사랑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오는지, 우리가 어떤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스물세 개의 짧은 장을 몰입해 읽고 책을 덮으면, 내용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의 강렬함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혹자가 리베라 가르사를 "분위기의 대가"라 부르며 이 소설을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하고 볼라뇨가 내레이션을 맡은 탐정소설"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작고, 짧고, 잿빛에 싸여 있는데, 페이지 위는 반짝이고 머릿속은 눈이 부시다."(소설가 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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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동화가 아닙니다, 탐정님. 이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
되울리는 숲, 사랑의 끝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찾아 나서는 탐정 역시 여자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온갖 희한하고 잡다한 사건들을 맡았고, 끝내 풀지 못한 채 해안 마을의 낡은 집에서 타자기로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는 중이라, 일을 맡아달라는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되묻고 싶어 한다. '아니, 제 숱한 실패들은 모르십니까?' 그런 탐정의 눈길을 붙드는 것이 서류 더미 맨 위에 놓인 전보 한 장이다. 젊은 남자와 함께 달아난 여자는 떠나온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전보와 편지를 부쳤는데,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기어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거기 적힌 문장들도 아리송하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이건 무슨 뜻일까? 탐정은 그들을 쫓아 통역사와 함께 길을 나서고, 마침내 숲 어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이 머물던 오두막에 가닿는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집과 거기 살던 타이가의 한 쌍에 대해서 말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가까스로 입을 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들을수록 기이하다. 문간을 지키던 늑대, 숲속의 파란 수영장, 숲 언저리를 맴도는 야생 소년, 타액인지 태반인지 모를 물질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소설은 거기서 더 멀리 나간다. "때로 행성의 끝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실은 하나의 행성 위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탐정과 통역사가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빽빽해지고 이제는 모든 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탐정이 읽은 그 여자의 일기는 숲과 구름과 새에 관한 낱말과 물음으로 가득한데, 떠올릴수록 암호에 가깝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수많은 안개 방울로 변하는 걸까?"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그 두 눈 속의 빛은 어떠한가. 속도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 그러는 사이 탐정이 의뢰인에게 보내려고 적어가던 보고서도 어느새 사적인 일기를 닮아간다. 여자의 일기와 탐정의 보고서가 그렇게 엇갈리고 겹치는 동안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물음 하나가 거듭 되울린다. "그런데 실상 사랑의 끝 너머란 무엇인가?"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은 왜 떠나는지, 사랑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오는지, 우리가 어떤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스물세 개의 짧은 장을 몰입해 읽고 책을 덮으면, 내용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의 강렬함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혹자가 리베라 가르사를 "분위기의 대가"라 부르며 이 소설을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하고 볼라뇨가 내레이션을 맡은 탐정소설"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작고, 짧고, 잿빛에 싸여 있는데, 페이지 위는 반짝이고 머릿속은 눈이 부시다."(소설가 숀)
[옮긴이의 말]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타이가 열병』은 완성된 세계를 완성된 문장으로 옮기는 소설이라기보다, 세계가 말과 기억과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을 계속 노출하는 소설에 가깝다고. 통역의 머뭇거림도, 돌출하는 단어도, 불현듯 끊어지는 문장도 그 변환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앞서 적은 대로 que가 말의 출처를 흐려놓는 한편, 말과 세계 사이에 놓인 필터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그리고 필터는 통과시키는 만큼 걸러 낸다.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타이가 열병』을 번역하고 거듭 읽어나가면서 오래 붙들린 것은 사건의 윤곽이라기보다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과잉이었다. 침엽수림 속에서 계속 되울리는 무언가에 휩싸이는 듯한 기분. "여자의 눈을, 겁에 질린 그 눈을 보기 위해서. 거기로, 그 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북방 침엽수림의 곤충처럼. 침이나 주둥이를 지닌 것이 되어. 더없이 작은 비숍. 안에 들어가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기 위해." 이런 문장들의 윙윙거림. 소용돌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내부의 내부의 내부로 계속 들어가는 듯한. 그 우물 속을 내내 내려다보는 듯한. 목구멍 안에서 터져 나가려 애쓰는 듯한. 그 틈과 잔여물. 왜 계속 둘로 또 셋으로 나타나는가.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
되울리는 숲, 사랑의 끝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찾아 나서는 탐정 역시 여자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온갖 희한하고 잡다한 사건들을 맡았고, 끝내 풀지 못한 채 해안 마을의 낡은 집에서 타자기로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는 중이라, 일을 맡아달라는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되묻고 싶어 한다. '아니, 제 숱한 실패들은 모르십니까?' 그런 탐정의 눈길을 붙드는 것이 서류 더미 맨 위에 놓인 전보 한 장이다. 젊은 남자와 함께 달아난 여자는 떠나온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전보와 편지를 부쳤는데,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기어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거기 적힌 문장들도 아리송하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이건 무슨 뜻일까? 탐정은 그들을 쫓아 통역사와 함께 길을 나서고, 마침내 숲 어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이 머물던 오두막에 가닿는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집과 거기 살던 타이가의 한 쌍에 대해서 말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가까스로 입을 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들을수록 기이하다. 문간을 지키던 늑대, 숲속의 파란 수영장, 숲 언저리를 맴도는 야생 소년, 타액인지 태반인지 모를 물질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소설은 거기서 더 멀리 나간다. "때로 행성의 끝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실은 하나의 행성 위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탐정과 통역사가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빽빽해지고 이제는 모든 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탐정이 읽은 그 여자의 일기는 숲과 구름과 새에 관한 낱말과 물음으로 가득한데, 떠올릴수록 암호에 가깝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수많은 안개 방울로 변하는 걸까?"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그 두 눈 속의 빛은 어떠한가. 속도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 그러는 사이 탐정이 의뢰인에게 보내려고 적어가던 보고서도 어느새 사적인 일기를 닮아간다. 여자의 일기와 탐정의 보고서가 그렇게 엇갈리고 겹치는 동안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물음 하나가 거듭 되울린다. "그런데 실상 사랑의 끝 너머란 무엇인가?"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은 왜 떠나는지, 사랑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오는지, 우리가 어떤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스물세 개의 짧은 장을 몰입해 읽고 책을 덮으면, 내용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의 강렬함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혹자가 리베라 가르사를 "분위기의 대가"라 부르며 이 소설을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하고 볼라뇨가 내레이션을 맡은 탐정소설"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작고, 짧고, 잿빛에 싸여 있는데, 페이지 위는 반짝이고 머릿속은 눈이 부시다."(소설가 숀)
[옮긴이의 말]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타이가 열병』은 완성된 세계를 완성된 문장으로 옮기는 소설이라기보다, 세계가 말과 기억과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을 계속 노출하는 소설에 가깝다고. 통역의 머뭇거림도, 돌출하는 단어도, 불현듯 끊어지는 문장도 그 변환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앞서 적은 대로 que가 말의 출처를 흐려놓는 한편, 말과 세계 사이에 놓인 필터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그리고 필터는 통과시키는 만큼 걸러 낸다.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가.
『타이가 열병』을 번역하고 거듭 읽어나가면서 오래 붙들린 것은 사건의 윤곽이라기보다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과잉이었다. 침엽수림 속에서 계속 되울리는 무언가에 휩싸이는 듯한 기분. "여자의 눈을, 겁에 질린 그 눈을 보기 위해서. 거기로, 그 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북방 침엽수림의 곤충처럼. 침이나 주둥이를 지닌 것이 되어. 더없이 작은 비숍. 안에 들어가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기 위해." 이런 문장들의 윙윙거림. 소용돌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내부의 내부의 내부로 계속 들어가는 듯한. 그 우물 속을 내내 내려다보는 듯한. 목구멍 안에서 터져 나가려 애쓰는 듯한. 그 틈과 잔여물. 왜 계속 둘로 또 셋으로 나타나는가.
목차
목차
I. 같은 것
II. 계약
III.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가다
IV. 약속
V. 모두가 떨어지는 데 같은 시간이 걸린다
VI. 숨겨진 카메라
VII. 그들의 언어 얼마쯤이 내 언어에
VIII. 사나운 늑대
IX. 밖에 우물이 있다
X. 춤의 이론
XI. 수영장
XII. 그것들
XIII. 야생의 아이
XIV. 태반
XV. 랩 댄스
XVI. 여자들은 섹스 생각밖에 안 한다
XVII. 별것 아닌 얼굴
XVIII. 어둠이 내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XIX. 잔인함은 결코 필요하지 않다
XX. 무언가가 여기서 죽었다
XXI. 끓어오르는 큰 유리
XXII. 닫힌 숲
XXIII. 플레이리스트
옮긴이의 말
II. 계약
III.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가다
IV. 약속
V. 모두가 떨어지는 데 같은 시간이 걸린다
VI. 숨겨진 카메라
VII. 그들의 언어 얼마쯤이 내 언어에
VIII. 사나운 늑대
IX. 밖에 우물이 있다
X. 춤의 이론
XI. 수영장
XII. 그것들
XIII. 야생의 아이
XIV. 태반
XV. 랩 댄스
XVI. 여자들은 섹스 생각밖에 안 한다
XVII. 별것 아닌 얼굴
XVIII. 어둠이 내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XIX. 잔인함은 결코 필요하지 않다
XX. 무언가가 여기서 죽었다
XXI. 끓어오르는 큰 유리
XXII. 닫힌 숲
XXIII. 플레이리스트
옮긴이의 말
저자
저자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1964년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의 국경 도시 마타모로스에서 태어났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휴스턴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휴스턴대학교 히스패닉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자신이 창설한 스페인어 창작 박사과정을 이끌고 있다. 소설과 시, 에세이와 논픽션을 넘나들며 역사와 기억, 몸과 언어, 젠더와 폭력, 국경과 이동을 다루어 왔다. 아카이브와 타인의 목소리를 문학 안으로 불러들이고 글쓰기의 형식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소설로 『아무도 내가 우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Nadie me ver? llorar』(1999), 『장골능La cresta de Ili?n』(2002), 『죽음이 나를 덮친다La muerte me da』(2007), 『타이가 열병El mal de la taiga』(2012), 『목화의 자서전Autobiograf?a del algod?n』(2020), 『지상Terrestre』(2025) 등을 펴냈다.
에세이와 논픽션으로는 멕시코 종합정신병원의 기록에서 환자들의 삶을 읽어낸 『라 카스타녜다La Casta?eda』(2010), 멕시코 사회의 폭력과 고통을 응시한 『애도하기Dolerse』(2011), 폭력과 글쓰기, 탈전유의 문제를 사유한 『길들지 않는 죽은 자들Los muertos ind?ciles』(2013), 후안 룰포의 삶과 작품을 좇은 『안개인지 연기인지 뭔지가 자욱했다Hab?a mucha neblina o humo o no s? qu?』(2016), 살해된 여동생이 남긴 기록과 주변의 증언으로 그의 삶을 복원한 『릴리아나의 무적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2021) 등을 출간했다. 시인으로서 그간 낸 다섯 권의 시집은 시 전집 『내 이름은 여기 없는 몸Me llamo cuerpo que no est?』(2023)에 한데 묶였다.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문학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안나 제거스상, 로제 카유아상, 셜리 잭슨상, 호세 도노소 이베로아메리카 문학상,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에세이와 논픽션으로는 멕시코 종합정신병원의 기록에서 환자들의 삶을 읽어낸 『라 카스타녜다La Casta?eda』(2010), 멕시코 사회의 폭력과 고통을 응시한 『애도하기Dolerse』(2011), 폭력과 글쓰기, 탈전유의 문제를 사유한 『길들지 않는 죽은 자들Los muertos ind?ciles』(2013), 후안 룰포의 삶과 작품을 좇은 『안개인지 연기인지 뭔지가 자욱했다Hab?a mucha neblina o humo o no s? qu?』(2016), 살해된 여동생이 남긴 기록과 주변의 증언으로 그의 삶을 복원한 『릴리아나의 무적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2021) 등을 출간했다. 시인으로서 그간 낸 다섯 권의 시집은 시 전집 『내 이름은 여기 없는 몸Me llamo cuerpo que no est?』(2023)에 한데 묶였다.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문학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안나 제거스상, 로제 카유아상, 셜리 잭슨상, 호세 도노소 이베로아메리카 문학상,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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