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속으로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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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록하면 그것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될 터였다.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말이다."
괴짜 같고, 특이하고, 집요한 산문을 쓰는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
그가 말하는 '나는 왜 쓰는가' 혹은 '나는 어떻게 쓰는가'
쓰기와 읽기 그리고 살아감에 대한 세심한 탐구
리디아 데이비스(1947~ )는 "기존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작품을 썼다고 평가받을 만큼 50여 년간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반경을 넓혀온 작가다. 국내에는 근 4년간 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고, 그의 괴짜 같고 특이하고 집요한 산문에 작가와 독자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신작 《세부 속으로》는 "미국 소설계의 가장 독보적인 지성"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리디아 데이비스가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라는 질문을 받고 쓴 책이다. 그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끝맺을 때까지 내내 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거의 모든 작가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할 말이 없어지고 말 텐데, 데이비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에게 "당신은 작가잖아요. 틀림없이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 말을 되받아 자문한다. '그게 그렇게 간단할 걸까?'라고.
그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하기를 꾸물거리며 소설가 존 바스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작가가 하는 말에는 그게 뭐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니까요."(p.10) 그리고 이렇게도 말을 더한다. "우리가 쓰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다."(p.12) 그는 자신이 '왜' 쓰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대신에 어떤 특정한 글을 '어떻게' 썼고, 다른 작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특히 자신이 매혹된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에 대한 탐구가 '왜'에 대해 어떤 대답과 통찰을 줄 수 있는지 살핀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답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마치 실시간 메모를 하듯, 일기를 쓰듯 기록해간다. 매일의 순간을 살아가는 와중에 쓰기에 대해 숙고하고 과감한 추측을 해가면서 자기 생각을 쌓아 밀고 나간다. 이 자유롭고 응축된 사유의 여정에서 데이비스는 제일 먼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로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에겐 쓰는 모든 단계에 즐거움이 존재한다. 언어로 다루어야 할 어떤 소재(긍정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는)에 잠재된 풍부함을 인식하는 즐거움, 그 소재에 적합한 형태를 부여하고 다듬어가는 즐거움,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이야기를 공유하는 즐거움. 하지만 글이란 게 즐거움이라는 감정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혹은 신경 쓰이게 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 방식을 살펴보면서, 그들과 같이 자신도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되풀이하고 다시 체험하기 위해,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를 파악해보기 위해, 강렬한 감정이라는 짐을 덜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짚어보게 된다.
"우리가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짧고 긴 이야기의 흐름들을 품고 계속된다. 바로 지금도 내 삶에서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계속 글을 쓰는 동안 각각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점에 도달한 다음 지나갈 것이다. 문제들이 생길 것이고, 나는 처음에는 그것들에 주눅이 들 것이다. 그러다 나는 그것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그것들은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이다가 결국 지나갈 것이다. 나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들의 말을 속상하다고, 적어도 조금은 속상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다 그 속상함 역시 줄어들고 물러난 다음 과거가 될 것이다. 대개는 그렇다."_p.67~68
존재하게 될 터였다.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말이다."
괴짜 같고, 특이하고, 집요한 산문을 쓰는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
그가 말하는 '나는 왜 쓰는가' 혹은 '나는 어떻게 쓰는가'
쓰기와 읽기 그리고 살아감에 대한 세심한 탐구
리디아 데이비스(1947~ )는 "기존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작품을 썼다고 평가받을 만큼 50여 년간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반경을 넓혀온 작가다. 국내에는 근 4년간 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고, 그의 괴짜 같고 특이하고 집요한 산문에 작가와 독자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신작 《세부 속으로》는 "미국 소설계의 가장 독보적인 지성"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리디아 데이비스가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라는 질문을 받고 쓴 책이다. 그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끝맺을 때까지 내내 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거의 모든 작가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할 말이 없어지고 말 텐데, 데이비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에게 "당신은 작가잖아요. 틀림없이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 말을 되받아 자문한다. '그게 그렇게 간단할 걸까?'라고.
그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하기를 꾸물거리며 소설가 존 바스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작가가 하는 말에는 그게 뭐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니까요."(p.10) 그리고 이렇게도 말을 더한다. "우리가 쓰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다."(p.12) 그는 자신이 '왜' 쓰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대신에 어떤 특정한 글을 '어떻게' 썼고, 다른 작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특히 자신이 매혹된 글쓰기를 보여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에 대한 탐구가 '왜'에 대해 어떤 대답과 통찰을 줄 수 있는지 살핀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답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마치 실시간 메모를 하듯, 일기를 쓰듯 기록해간다. 매일의 순간을 살아가는 와중에 쓰기에 대해 숙고하고 과감한 추측을 해가면서 자기 생각을 쌓아 밀고 나간다. 이 자유롭고 응축된 사유의 여정에서 데이비스는 제일 먼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로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에겐 쓰는 모든 단계에 즐거움이 존재한다. 언어로 다루어야 할 어떤 소재(긍정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는)에 잠재된 풍부함을 인식하는 즐거움, 그 소재에 적합한 형태를 부여하고 다듬어가는 즐거움,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이야기를 공유하는 즐거움. 하지만 글이란 게 즐거움이라는 감정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혹은 신경 쓰이게 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 방식을 살펴보면서, 그들과 같이 자신도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되풀이하고 다시 체험하기 위해,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를 파악해보기 위해, 강렬한 감정이라는 짐을 덜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짚어보게 된다.
"우리가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짧고 긴 이야기의 흐름들을 품고 계속된다. 바로 지금도 내 삶에서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계속 글을 쓰는 동안 각각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점에 도달한 다음 지나갈 것이다. 문제들이 생길 것이고, 나는 처음에는 그것들에 주눅이 들 것이다. 그러다 나는 그것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그것들은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이다가 결국 지나갈 것이다. 나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들의 말을 속상하다고, 적어도 조금은 속상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다 그 속상함 역시 줄어들고 물러난 다음 과거가 될 것이다. 대개는 그렇다."_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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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며 자기만의 세부로 파고드는 쓰기,
결국 사라지는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는 왜 쓰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오직 다른 작가들이 왜 쓰고 어떻게 쓰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조지 스터트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읽고 있었다. 조지 스터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시골 공예와 일에 대한 글을 쓴 영국 작가다.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실제 수레바퀴 제작인이기도 했던 스터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수레바퀴 제작 기술과 작업실과 그 작업실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칠 만큼 매우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특별히 목공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책을 몇 달에 걸쳐 읽고는 골몰하게 된다. "저자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지루해질 위험을 감수하는 외골수 같은 기록들, 독자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어떤 주제에 대한 저자의 매혹 때문에 존재하게 된 책들, 그러면서도 저자의 바로 그런 전념과 훌륭한 글솜씨 때문에 매력적이고, 좋아할 만하고, 공감이 가며, 마음을 빼앗기까지 하는 책들"(p.72)에 대해서.
리디아 데이비스는 크누트 함순, 존 A. 베이커, 로베르트 무질, 발터 벤야민,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볼드윈, 허먼 멜빌, 제임스 에이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철저하게 파고들면서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갖든 말든 자기만의 관심사에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그들의 "근원적이고도 순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서로 평행을 이루며 흘러가는 우리의 삶에는 우리 각자가 몰두하는 일"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중요하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종종 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일" 말이다.
《세부 속으로》의 원제 'Into the Weeds'는 문자 그대로는 '잡초 속으로'지만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관용구로 '어떤 주제의 세부나 복잡한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깊이 들어가는, 몰두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구절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 같기도 하다. 혹은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 경력 전체를 관통한다고까지 느껴진다. 그 또한 남들은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것(동물과 곤충의 행동에 몰두하거나 심지어는 광물과 물리 현상에까지 몰두하는)의 세부 속으로 지나칠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데이비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상과 상황과 감정의 세부에 얼마나 밀착해서 쓰는지를.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지나치게 자세한 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라짐의 쓰기까지 생각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세부로 파고들다가 글도 사람도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마치 쇠락한 옛 도시의 학교 건물 잔해가 상록수 숲속에서 매년 '잡초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풍경을 데이비스 자신이 목격했듯이. 본문 144쪽 참조), 그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작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의 이치라는 듯. 혹은 쓰기의 목적일지도 모르겠다는 듯.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라지고 마는 일은 그게 인간이든 글이든 피해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잔여물은 어딘가에 최소한 작거나 아주 조그만 입자 형태로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이비스의 혜안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어떤 관심사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따라간다. 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쓴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그 관심사는 그에게조차 지나간 일이 된 지 오래인데도 그렇다. 이제 그 관심사는 사실 그에게도 더는 긴급하지 않고,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긴급한 일이 아니지만, 페이지 위에서는 여전히 긴급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 페이지는 살아 있다. 그것을 쓴 사람은 죽었고 그의 관심사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곤 낯선 사람들뿐인데도 말이다."_p.115
결국 사라지는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는 왜 쓰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오직 다른 작가들이 왜 쓰고 어떻게 쓰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조지 스터트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읽고 있었다. 조지 스터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시골 공예와 일에 대한 글을 쓴 영국 작가다.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실제 수레바퀴 제작인이기도 했던 스터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수레바퀴 제작 기술과 작업실과 그 작업실에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칠 만큼 매우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특별히 목공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책을 몇 달에 걸쳐 읽고는 골몰하게 된다. "저자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지루해질 위험을 감수하는 외골수 같은 기록들, 독자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어떤 주제에 대한 저자의 매혹 때문에 존재하게 된 책들, 그러면서도 저자의 바로 그런 전념과 훌륭한 글솜씨 때문에 매력적이고, 좋아할 만하고, 공감이 가며, 마음을 빼앗기까지 하는 책들"(p.72)에 대해서.
리디아 데이비스는 크누트 함순, 존 A. 베이커, 로베르트 무질, 발터 벤야민,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볼드윈, 허먼 멜빌, 제임스 에이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철저하게 파고들면서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갖든 말든 자기만의 관심사에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그들의 "근원적이고도 순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서로 평행을 이루며 흘러가는 우리의 삶에는 우리 각자가 몰두하는 일"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중요하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종종 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일" 말이다.
《세부 속으로》의 원제 'Into the Weeds'는 문자 그대로는 '잡초 속으로'지만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관용구로 '어떤 주제의 세부나 복잡한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깊이 들어가는, 몰두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구절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 같기도 하다. 혹은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 경력 전체를 관통한다고까지 느껴진다. 그 또한 남들은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것(동물과 곤충의 행동에 몰두하거나 심지어는 광물과 물리 현상에까지 몰두하는)의 세부 속으로 지나칠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데이비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상과 상황과 감정의 세부에 얼마나 밀착해서 쓰는지를.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지나치게 자세한 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라짐의 쓰기까지 생각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세부로 파고들다가 글도 사람도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마치 쇠락한 옛 도시의 학교 건물 잔해가 상록수 숲속에서 매년 '잡초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풍경을 데이비스 자신이 목격했듯이. 본문 144쪽 참조), 그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작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의 이치라는 듯. 혹은 쓰기의 목적일지도 모르겠다는 듯.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라지고 마는 일은 그게 인간이든 글이든 피해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잔여물은 어딘가에 최소한 작거나 아주 조그만 입자 형태로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이비스의 혜안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어떤 관심사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따라간다. 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쓴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그 관심사는 그에게조차 지나간 일이 된 지 오래인데도 그렇다. 이제 그 관심사는 사실 그에게도 더는 긴급하지 않고,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긴급한 일이 아니지만, 페이지 위에서는 여전히 긴급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 페이지는 살아 있다. 그것을 쓴 사람은 죽었고 그의 관심사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곤 낯선 사람들뿐인데도 말이다."_p.115
목차
목차
세부 속으로 7
옮긴이의 말 177
옮긴이의 말 177
저자
저자
리디아 데이비스 Lydia Davis
소설가이자 번역가.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반경을 넓혀왔다. 시인지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경계 구분이 모호하고도 자유로운 글을 쓰며, 특히 상황과 감정, 그 세부에 밀착하는 '압축'의 글쓰기로 서사적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한다. 짧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모은 《불안의 변이》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우리의 이방인들》, 장편소설 《이야기의 끝》, 산문집 《형식과 영향력》을 썼다. 2013년 맨부커 국제상을, 2020년 펜/맬러머드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프랑스어 번역가로서 플로베르, 프루스트, 블랑쇼 등의 작품을 영어로 옮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47년 미국 노샘프턴에서 태어났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반경을 넓혀왔다. 시인지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경계 구분이 모호하고도 자유로운 글을 쓰며, 특히 상황과 감정, 그 세부에 밀착하는 '압축'의 글쓰기로 서사적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한다. 짧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모은 《불안의 변이》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우리의 이방인들》, 장편소설 《이야기의 끝》, 산문집 《형식과 영향력》을 썼다. 2013년 맨부커 국제상을, 2020년 펜/맬러머드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프랑스어 번역가로서 플로베르, 프루스트, 블랑쇼 등의 작품을 영어로 옮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47년 미국 노샘프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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